내 이름은 빨강

아주 오래전 테레비에서 본 만화가 생각난다. 아니 항상 품고 있다가 가끔씩 꺼내보는 사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만, 제목도,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난 그냥 테레비에서 보고 이야기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왕국에 왕이 아끼는 항아리가 깨졌다. 왕은 왕국 제일의 도예가 할아버지에게 그 항아리를 전혀 깨진 흔적 없이 붙일 것을 명한다. 할아버지는 그 항아리 조각들을 가져가서는 붙일 생각도 하지 않고 들여다 보고만 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고, 그는 왕에게 깨진 흔적 없이 완벽한 항아리를 바친다.

도제가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항아리를 붙였냐고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보자기를 풀어 왕의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을 보여준다.

그는 항아리를 붙인 게 아니라 깨어진 조각들을 보고 그와 똑같은 새로운 항아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단순하게 읽자면 이 깨어진 항아리를 "전통"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각난 좋은 전통을 아쉬워하며, 그것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미 조각으로 남은 그 전통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원래의 전통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추억 속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전통의 복원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 재창조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잊혀진다.


도처에 깨어진 조각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원래의 형체를 깨뜨려 하나하나 조립해 봐야만 깨닫는 진리도 있으니까.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것일수록 원래의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는 그것의 깨어진 부분들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남겨진 부분에 연연하며 어떻게든 매끈하게 붙이려고 애쓴다.


가장 창조적이고 위대한 작업은 이렇다. 국보급 고려청자가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루만지고 감상하는 골동품 애호가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을 아낄수록 단번에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그 깨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핀다. 커다란 조각의 무늬와 빛깔 뿐 아니라 먼지처럼 작은 알갱이를 어루만지며 그것의 재질과 구워질 때의 온도까지 가늠해 본다. 그리고 새로운 항아리를 굽는다.


그 결과는 원래의 항아리를 복원하는 비슷하게 닮은 항아리일 수도 있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똑같거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생각도 우스운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 파편들은 새로운 작품에 생생하게 인용되고 있지만 이미 그의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국보급 문화유산도 깨뜨릴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전통이 된다.




몽타주, 모자이크, 사고의 세부 조각들..  옛 사람들의 파편에서 헤매다 지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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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8. 11. 20. 22:31


레비 스트로스가 이달 28일에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한다.(관련소식: 한겨레 보러가기)
로쟈님의 서재에서 소식을 접한 김에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정리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즉, 중국에서는 이들 사상가들, 혹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얼마나, 어떤 게 번역되었을까?
(서점을 훓어보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이런 건 대충이라도 정리를 해 둬야지 마음만 먹었다가 계속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보일때마다 조금씩 해 두도록 하겠다..)

인구가 많다는 건 이 경우에 상당한 장점이 된다. 역자도 많을 뿐 아니라 그걸 사볼 독자도 많다.
아무리 안 팔릴 분야의 책이라고 해도 '기본으로' 나가는 양이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륙만이 아니라 홍콩과 대만까지 포함시킨다면 웬만한 책들은 다 번역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주로 홍콩과 대만에서 주요 서적들이 먼저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륙에서는 그대로 찍어내던가, "참고"해서 새로 출간하곤 한다.)  물론 관심사와 유행이 한국과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는 전부 다 번역된 사상가의 책이 중국에서는 아예 번역되지 않았거나 막 번역되기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 분야의 기본이 되는 서적들은 대부분 번역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플라톤 전집, 베버 전집 등등..

번역의 질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곤란하겠다. 맑스 자본론 같이 20세기 초에 번역이 시작된 데다 오랫동안 정권의 지지를 받는 책이야 당연히 우리나라의 번역보다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영어에서 옮긴 글은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중국도 석박사과정을 동원시켜 총서를 찍어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주 난잡한 수준인 번역도 적지 않다. 또 학술번역만을 전문으로 하는 역자가 많지는 않다. 즉 워낙 수가 많아 각자 한두 권씩만 번역해도 되는 셈인데, 수고야 적게 덜겠지만 그만큼 전문화된 역자는 적을 수밖에 없겠다. 예전에는 있었다. 문학 전문번역가 푸레이(傅雷), 미학 전문번역가 주광첸(朱光潛)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일부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 번역가가 있을 수도 있으나 내가 관심있게 보고 있는 쪽으로는 거의 찾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의 번역은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훨씬 좋은 편이다. 간간히 한두권이 번역되어 나오다가 2006년 인민대학출판사에서 1권 <구조인류학>을 시작으로 문집으로 정리되고 있다. 서점에서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의 중국어 번역본을 본 기억이 어렴풋하나 인터넷으로 검색되지는 않는다.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그새 절판되었을 수도 있겠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사진) : 출처(한겨레신문)



아래는 <레비스트로스 문집>으로 인민대학출판사에서 출간된 선집이다.


1. 구조인류학(1-2) : 1권은 1989년 文化艺术出版社 초판. 2권은 1999년 上海译文出版社 초판
   
结构人类学(1-2)——列维-斯特劳斯文集1

2. 야생의 사고 : 초판연도(1987년. 商务印书馆). .
  
野性的思维列维-斯特劳斯文集2


3. 신화학1: 날 것과 익힌 것
  
神话学:生食和熟食

4. 신화학2: 꿀에서 재까지
   
神话学:从蜂蜜到烟灰










12. 보다 듣다 읽다 : 초판연도(2003년 三联书店).
   
看·听·读——列维-斯特劳斯文集12



14. Totemism;     图腾制度——世纪人文系列丛书 (2005) : 초판연도(2003?)

15. <슬픈열대>는 <우울한 열대>(2005년, 삼련서점/초판은 2000년)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
바이두에서 "레비스트로스 100세"라는 제목이 검색되어 훓어보니,,
http://www.thebeijingnews.com/culture/spzk/2008/08-02/037@103634.htm

민간고사를 연구하는 "바이"(白)라는 아가씨가 레비스트로스에게 자기 연구주제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100살 먹은 할배가 손수 답장을 보내줬다는 이야기이다.(8월2일자 신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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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6. 00:29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책꽃이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가 에필로그 부분을 확인해 본다.

홍콩판은 국역본과 결말이 조금 다르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판본인데 그건 잡지판을 그대로 배포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역본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이 새로운 내용이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화청>2005년호를 찾아 복사하고 콩푸쯔 헌책방에 홍콩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주문 넣었다. (그러고 보니 금서로 지정되어 전량 회수되었다던 잡지<화청>의 해당호는 버젓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소설의 홍콩판, 대만판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5금" 조치는 어쩌면 중국 내부에서는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작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외국에서 더 흥분해서 이용하는 홍보문구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쪽에서도 일단 원칙적으로 금지는 하되, 이미 파급력이 별로 없는 소설 나부랭이가 그러덩가 말덩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위도 검열되고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던 몇 군데만 찾아보고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어제 번역 정리하느라 다시 꺼낸 김에 좀 살펴보다가 국역본 결말과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국역본에는 역자가 어느 판본을 참고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짐작하기에 대만판을 참고했는데 그게 다른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저자의 요청이었을 수도 있으며, 국내 출간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출판사와 상의하에 삭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자였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판단은 어차피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잡지판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부분이 대부분 실리지 않았고(잡지 게재만으로 문제가 되었다. 즉, 사상적인 검열 때문에 부분삭제하였던 건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참고삼아 홍콩판의 결말을 추가로 번역해 둔다..


 

...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 제일 위쪽에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종이에 써 줘. 돈이 필요하거들랑 액수와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고.


눈 꽃이 휘날리는 그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 들었다. 두께가 반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조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국역본은 여기서 끝난다. 어찌보면 군더더기 없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홍콩판 결말은 바로 이어서 몇 문단이 계속된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흘 후, 이미 중년을 넘어선 류롄이 사령관과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양저우에 있는 친정에 좀 다녀올께.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가서 형제자매들이나 좀 보고 올까 해. 그러나 그렇게 떠난 뒤 류롄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사령관은 양저우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류롄이 양저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류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눈꽃처럼 군구(軍區) 대원(大院)의 1호 사택에서 사라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계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향기만이 그녀가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 놓고 있을 뿐.

2004년 8월 17일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http://lunatic.textcube.com2009-03-26T10:21:410.31010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4. 21:52
이글은 일전에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으며 체크해 둔 몇 부분의 번역을 만져본 것이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비평을 원한다면 다른 글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먼저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오역을 잡아내기 위한 의도로만 쓰여진 것은 또 아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몇 권의 역서를 통해 보건대, 역자 김태성의 번역은 훌륭하다. 그만큼 일정한 수준의 번역으로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중국어권 번역자 중에서도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설 번역은 한두 문장의 오역이 있더라도 작품이 전하는 어떤 느낌이나 풍을 잘 살리는 한국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풍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내가 역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고, 시험삼아 한번 번역해 본 것이다.


일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제목 번역부터 역자의 입장을 볼 수 있다. service의 번역어인 "복무(服務)"는 보다 공적인 "봉사"라는 의미와 함께 손님접대와 같은 의미인 "서비스"에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와 같이 제한된 문맥에서만 자주 쓰이고 거의 서비스로 대체된 듯하다. 이 소설에서는 일단 인민대중에게 봉사하라는 모택동의 공적인 표어를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른 "써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말로 치환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극히 공적인 표어가 은밀하고 사적인 밀어로 환치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다른 소개글에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인민에게 봉사하라"라는 뜻이 표어로서는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봉사"보다는 "복무"를 선택함으로써 역자는 투박하지만 문혁 시기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투박"이 문제인데, 투박한 문체를 지나치게 세련되게 번역해서도 안 되겠지만,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긴 글의 일반적인 문제가 투박하다는 점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원문 문장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스타일의 투박함이 아닌 번역의 투박함이 생기는 것이다. 혹자는 직역주의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루쉰의 "딱딱한 번역"이나 "타국화 번역"의 문제로 투박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게 다 중문과 출신들이 중국소설만 열심히 읽고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결과이다. 즉 한국어를 능청스럽게 다루지 못한다. 한국어를 장악하지도 못했으면서 한국어를 되돌아보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타국화 번역을 지향한다고 떠든다면 말이 될까? (이런 식의 비판은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비판이다..ㅡㅡ;;)

그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옌롄커가 아주 세련된 도시풍의 중국어를 구사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의도적인 투박함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한국어 번역에서는 원문에 너무 매여 늘어지거나 투박하게 만들어진 문장이 있고, 그게 소설 읽는 맛을 조금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번역문도 정확하거나 세련된 것은 아닐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거나 그거나 별 차이 없네 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전문을 검토한 게 아니라 읽으면서 체크한 몇 부분만 옮겨본 것이니, 감안하고 읽기를 바란다.


보라색 글씨는 번역 원문, 초록 글씨 나의 수정, 그외는 설명이다.


(첫 시작, 1장 13쪽)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소설 속의 사건이기도 하고 삶 속의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삶의 수많은 진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 왜냐하면 어떤 진실한 삶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에 이르게 할 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소설 속의 사건임과 동시에 삶 속의 사건이다.

  혹은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한 사건을 재연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문의 문단구분을 따른다.)



13-4쪽.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 바구니를 들고 사단장 집 주방 입구에 서 있을 때, 그 사건은 또르르 굴러와 마치 수소 폭탄이 터지듯이 요란하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당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붉고 큰 글씨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이번에는 타일로 마감한 주방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이 어색한 이유는 2장의 시작과 함께 바로 받고 있는 말과의 호응 때문이다. 2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바로 지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나무팻말이 또다시 식탁을 이탈해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 시간상 이 "또다시" 이후 전개되는 사건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를 전담하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를 한 바구니 들고 사택 주방 입구에 섰을 때, 그 사건은 수소폭탄이 터지듯 쾅 하며 그의 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탁 위에 진열되어 있던, 커다란 붉은 글씨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란 문구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또 한번 주방의 타일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101쪽.

류롄의 유혹을 거부한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에서 쫓겨나고 전역하게 생겼다. 다급해진 우다왕은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기회"? "인민을 위해 복무할" 기회? 자신의 공적인 욕망을 위해 그녀의 사적인 욕망에 서비스할 기회? 류롄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주문을 외며 우다왕에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한다. 우다왕은 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때 류롄은 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를 뱉어낸다." 국역본에서 그 한마디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러나 이러고 보니 발가벗은 것을 칭찬하고 그것으로 끝난 느낌이다. 문맥상 관계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원문은 다음과 같다:

她说,为人民服务,你为呀,你为呀,你为呀。(잡지에서는 "你为呀"라는 말을 한 번만 한다. 분량 때문에? ^^)

그냥 옷만 벗고 끝난 게 아니라, 옷을 벗으며 눈길을 교환하는 동안 둘 사이의 공기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뒤따르는 마지막 말(5장을 끝내는 말)은 칭찬으로 끝날 게 아니라 생략된 그 이후의 장면을 예비하는 느낌이어야 할 것이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해 봐, 어떻게 서비스할 건데? 해 보라구! 하면서 발가벗은 이후의 행위를 재촉/암시하는 말로 번역되는 게 좋겠다. 내가 제안하는 문구는.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해봐, 해 보라구!"



좀 약한가? 그럼 조금 더 세게 나가보자.

둘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고 류롄의 몸은 점점 깨어났다.


114.


"그럴 필요 없어. 어서 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줘. 손은 멈추지 마. 입술도 멈추지 말고. 내 거기를 만져줘. 내 거기를 빨아줘.내 거기를 만지고 빨아달란 말이야. 지금 난 사단장의 마누라가 아니야. 나는 우다왕의 아내란 말이야. 난 이미 날 송두리째 샤오우한테 맡켰어. 죽이든 살리든 샤오우 맘대로 하란 말이야."


역자가 조금 지나치게 야하게 번역했다. (원문은 : 想亲我哪儿、摸我哪儿了,你就亲我哪儿摸我哪儿吧). 구문 자체는 "어디든 ~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렇게 해"이다. 어디(哪儿)를 거기(那儿)로 하는 바람에 '세계의 근원', 거기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조금 재미없게 풀어서 해석하면, 내 몸 어디든 키스하고 싶거나 애무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키스하거나 애무하라는 말이겠다.


"필요없어. 그보다 어서 날 안아서 침대에 눕혀 줘. 손은 멈추지 말고 입술도 멈추지 마. 어디든 상관없어. 빨거나 만지고 싶으면 내 몸 어디라도 빨고 만져줘. 이제 난 너희 사단장 마누라가 아니라, 너 우다왕의 아내야. 난 이미 니 꺼니까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



115.

"하늘과 땅처럼 영원하고 열광적인 그날의 키스와 애무로 인해 두 사람의 분명했던 관계는 복잡하고 애매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그 격정적인 키스와 애무는 그렇게 분명했던 그들의 관계를 모호하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성어의 번역이 조금씩 어색하다. 여기서 쓰인 성어는 천장지구(天长地久)이다. 42쪽의 "주사를 가까이 하면 빨개진다는 식"이란 번역도 마찬가지다. 近墨者黑 近朱者赤(근묵자흑 근주자적)에서 가져온 거지만, 너무 빨간 색을 살리기 보다는 다른 식으로 푸는 게 어땠을까 싶다.


116.


  고개를 든 그는 그녀의 창백한 모습을 발견했다. 온몸이 누렇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 같았다.

  뜻밖에도 그녀가 혼절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혼절했다는 것을 알았다. 격정에 사로잡혀 혼절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와의 불타는 섹스가 갑자기 광풍과 폭우가 몰아치듯 그녀에게 경험하기 힘든 숨막힘과 활력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누렇게 뜬 몸을 바라봤다. 죽은 사람인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까무러쳤던 것이다.

  그도 그녀가 까무러쳤다는 걸 안다. 격정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듯 격렬한 섹스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숨막힘과 활력을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독서법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하진의 <기다림>과 함께 읽는 방식이다.


<기다림>의 우만나도 류롄과 마찬가지로 간호사이다. 만약 우만나가 쿵린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웨이 정치위원과 결혼했다면, 그 이후 펼쳐질 삶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의 류롄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다림>의 쿵린과 우만나 이야기의 다른 버전으로 <인민을~>를 읽으라는 것이 아니다. 문혁이라는 시기와 육군병원 혹은 부대라는 공간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한쪽은 모든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고 담담히 2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세상 전체를 파괴할 듯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다. 문혁시기를 살아간 대부분의 일반적인 중국인의 삶은 이 두 가지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의 극단적인 표출방식이 문혁 시기와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의 어떤 경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Posted by lunarog

지난 2005년 10월 17일에 서거한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파금의 3주기를 맞아 몇 가지 행사가 진행된다.


먼저 10월 15일에는 그의 대표작 <가(家)>에 대한 대형 토론회가 열렸다. 작품 탄생 75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자리이다. 이와 함께 자오즈강(赵志刚) 주연으로 상하이 월극단(上海越剧团)에서 월극(越剧)《가》를 재연하였다.


작품 토론회는 따로 부르지 않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파금 전공자이자 월극 <가>의 문학고문이기도 한 지도교수 덕분에 공짜표도 있고 해서 저녁에 시간을 내서 월극을 보러 가게 되었다. 상해에서는 연극을 한편도 못 봤으니 시험삼아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극은 "월(越)" 지방, 즉 절강 지역의 전통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극에 비해 움직임이 적고 여성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당연히 절강 쪽 방언으로 대사와 노래를 했기 때문에 자막에 의지해 내용을 파악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리얼리즘을 표방한 <가>는 아주 재미가 없다. 지루해서 몇 번을 잡았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작품이다. 사실 한국의 중문과는 작품 읽는 걸 그다지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사실 다양한 작품을 읽힐 만한 환경도 되어 있지 않다.. ㅡㅡ;;) 학교 다니면서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었다. 문학사에 나오는 내용만 잘 외우고 있으면 되니까.(못 읽은 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중국 애들하고 이야기할 때 그렇다고 고백하기는 좀 거시기하다만..) 따라서 자막조차 대체로 이해를 못했다면 절강방언으로 하는 이 연극의 내용을 전혀 모를 뻔 했다.


재미 없을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그런대로 볼 만 했다. 소설과는 달리 많은 생략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줄거리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노래와 분위기로 대체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면전환도 느리고 동작도 느린데도 빠르게 진행된다고 느꼈던 것도 아마 "생략"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생략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물론.  주인공을 맡은 자오즈강은 "월극의 왕자"(越剧王子)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는 인물이다만, 월극의 묘미를 모르는 나로선 그가 얼마나 좋은 연기와 노래를 펼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여성 동무들의 노래가 훌륭했고 남성 동무들은 좀 그랬다. 특히 악역인 천이타이(陈姨太) 역을 맡은 중년 배우의 노래가 잘 모르는 내 귀에는 가장 훌륭하게 들렸다.(누군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도통 검색이 안 된다.. 만약 2004년 초연 때와 같은 배우라면 후페이디(胡佩娣)였을 것이다. 전임 서안 월극단 단장이었고, 현재 상해 월극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끊임없이 박수를 치는데, 남들따라 박수 치는 것은 곧바로 포기했다. 노래나 연기가 훌륭할 때 박수가 나오는게 아니라 내용이나 대사가 훌륭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면 박수를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박수는 "정의"의 편이다!!!) 악역 천이타이의 노래가 끝나고 내가 박수를 치려고 하는데, 바로 상대방의 대사가 이어지기도 했고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월극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누구 노래가 좋니 마니 하는 건 좀 그런가?)


문혁 이후 혁명 가극을 많이 보지 못했고 그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10여년 전에 항주에서 봤던 전통 월극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새로 나오고 있는 소위 "신편 현대월극(新编现代越剧)"은 혁명 가극 냄새도 좀 풍기는 것 같다. 나로선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로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노인네들만 가득찰 줄 알았는데(물론 대부분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다.) 의외로 젊은 층도 많았고, 극이 시작하기 직전에 중학생들도 한 무더기 들어왔다. 혹시 동원된 애들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끝나고 환호를 지르며 "~선생님(老师)"라고 부르는 걸 보니 희극학교 학생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터넷 뒤져보니까 의외로 젊은 월극 마니아들이 꽤 있다.


남녀 주연배우. 자오즈강(赵志刚)과 산양핑(单仰萍). 이 외에 쑨즈쥔(孙智君), 쉬제(许杰) 등 출연.


극의 완성도에 비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건 너무나도 후진 음향 시스템이었다.

의자가 불편해도, 할배들이 떠들고 큰 소리로 기침해도, 공기가 나빠도 참겠는데(담배냄새가 간간히 났던 것 같은데, 설마 정말로 누군가 담배를 피웠던 건 아니겠지? 우리나라 예전 극장에서처럼??), 그 스피커는 정말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저음에서는 그런대로 들을 만했지만, 극의 절정부나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음악과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찢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AM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잡음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그대로 들렸다. 예를 들어 눈을 뿌릴 때 하늘에서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윙윙 소리를 내면서 눈이 날린다. 양푸대극원(杨浦大剧院)의 후진 시설을 탓할 수 밖에 없겠다.


깜빡하고 사진기를 챙기지 않아 직접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공연 중간에 함부로 후레쉬를 터뜨리는 중국 아해들의 매너 없음을 마음껏 욕해줬다. 극도 극이지만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같은 것도 사진으로 담아뒀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맛뵈기로 동영상 파일을 보실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http://so.ku6.com/v/q%E8%B6%8A%E5%89%A7%E5%AE%B6

 

 

     越剧《家》01

          越剧》0115:21

播客:SNCWC88
播放:240
标签:越剧《家》赵志刚主演
发布:11月前

      越剧《家》03

          越剧》0315:21

播客:SNCWC88
播放:114
标签:越剧《家》影视剧 赵志刚 许杰单仰萍主演
发布:11月前

 

상하이 월극원(上海越剧院) 홈페이지에 가면 월별 일정, 공연 장소와 시간 등이 나와 있다. 배우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제공한다.

http://www.yueju.net/article/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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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늦은 저녁을 먹으며 <샤오추이 토크쇼(小崔说事)>를 본다. 일요일 9시 30분에 본방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지나간 문화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른바 "옛 것으로 오늘날을 감상한다(以旧鉴今)",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바라본다"(忆往昔,看今朝)를 기본취지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추이용위안(崔永元)이 전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지나간 옛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문화나 70-80년대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끔 재미난 주제가 있긴 하지만 샤오추이가 지껄이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별로고 해서 일부러 챙겨 보지는 않는다. 그런 말투가 일견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나게 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2005년 새로 편성된 연극 <체 게바라>. 이른바 "여성판"(全女版). 색계의 탕웨이가 주연이다.

 

하여튼 오늘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체 게바라였다.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국을 좋아했고, 모택동을 숭배했다고는 하지만,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 게바라 화전(切·格瓦拉畵傳)>의 편자인 스용강(师永刚)과  연극 <체 게바라>의 감독, 주연, 음악감독이 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나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숭배자들이 자기가 그를 숭배하는 이유를 이상화하는 그런 논의들 말이다. 한 가지 건진 것은 있다. 바로 쿠바에서 7년 간 머물면서 체 게바라를 직접 만난 팡빙안(庞炳庵; 전임 신화사 부사장)의 회고였다. 평소 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직접 체를 만난 중국 기자(통역)의 체험담은 꽤 신선했다. 누군가 정리한 책이나 자료를 수집하여 이야기를 푸는 사람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직접 봤다는데 어쩌겠나.


1962년 쿠바, 팡빙안은 검은색 옷을 입고 차에 앉아 있다. 쿠바 군인들 인터뷰 장면.

 

그는 중국 신화사의 기자 쿵마이(孔迈)와 함께 상인으로 변장하여 쿠바에 갔다고 한다. 그 후 1959년 4월18일 처음 체를 인터뷰한 후 1965년 3월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를 만났다. 아마도 체의 중국과 모택동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첫 인터뷰를 위해 체를 찾았을 때 일정상 다음날 오라는 말에 되돌아갔는데, 중간에 어떤 차가 따라와 길을 막아서더니 '체가 시간이 나서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체 게바라였다고 한다. 체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중국에 대한 존중이 보여지는 장면이다.

 

이 팡빙안이라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체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체는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체는 현실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그런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근거한 문제의식에 따라 혁명의 강령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는 구사회의 파괴자에 그친 게 아니라 신사회의 건설자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체의 형상을 한 돌맹이(사진을 구할 수가 없다. 돌맹이 안쪽에 형상이 새겨져 있다. TV로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여러 면에서 체는 예수와 동격이다..)를 쿠바에 기증했을 때 그에게 체 게바라를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내가 듣고 기억한 만큼만 정리함.)

 

"우리 몸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외부의 어떤 병균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백혈구는 자기를 희생하여 병균을 제거합니다. 백혈구는 죽지만 사람은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죠. 체 게바라는 백혈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하여 힘없는 민중을 구했습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출현하기 때문이겠죠."

 

그는 또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체의 습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진 기자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체는 장난스레 두 손으로 렌즈를 가려버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를 발견하고는 "에이, 너도 왔냐?" 라는 식으로 찡긋 한다고 한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재빨리 찍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친숙한, 온갖 티셔츠며 벽이며 문신이며에 등장하는 사진에 대해서도 이 할배 한 마디 덧붙인다. '그 사진 찍을 때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덜랑요. 근데 저는 필기를 해야 돼서 사진은 못 찍었죠.'

 

 

"그때 폭발사고가 나서 70여명이 죽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70여 명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죠. 카스트로가 추도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체에게 귓속말을 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쌀쌀해지니까 체가 잠버의 자크를 위로 끝까지 올리더군요. 그때 제 옆에서 찰칵 찰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사진에 온 세상에 퍼져 있더군요."

 

 

솔직히 나는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너무 유행이 되어 있었던지라, 그 어설픈 유행을 뒤늦게 어설프게 쫓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 게다가, 자신이 그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교수가 그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걸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 더 관심을 가지기 싫어졌다. 뭔가. 좀 어설프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10월 9일이 체가 총살당한 날이라고 한다. 진짜 체에 가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늦었지만 기회가 되면 체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일단은 링크 하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44138&PAGE_CD=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講, 구경 2008. 9. 26. 22:48

중국에서 느낀 한 가지는 강연이나 학회 등이 참으로 많고 다양하며, 세계 각지의 유명 학자들이 초청되어 온다는 점이다. 내가 관심 갖는 분야인 중국문학, 역사, 중국학 쪽의 미국, 유럽, 일본, 홍콩 등지의 학계의 거물들이 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들로서는 자기가 연구하는 나라에서 부르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학회 핑계로 돈까지 받아가며 와서는 예전에 써놓은 글 하나 발표하고 나머지 시간은 사람들 만나 인맥을 쌓거나, 중국에만 있는 자료를 수집하거나, 하다못해 관광이라도 한다면 나쁠 게 전혀 없지 않은가.

굳이 중국학이 아니라도 꽤 초청되어 온다.

어제(9월25일)는 복단대 사회과학 고등연구원(复旦大学社会科学高等研究院) "중국과 세계: 사회과학고급논단"(“中国与世界:社会科学高级论坛”)의 발족을 기념하여 마샬 살린스(Marshall Sahlins)가 "포스트모더니즘, 신자유주의, 문화와 인성"(后现代主义、新自由主义、人性与文化)이란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하였다.

여든에 가까운 이 할아버지는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강연원고를 읽었고, 순차통역(?)으로 중국어로 원고내용을 읽었으며 미리 준비된 번역문이 양쪽 화면에 떴다.

http://www.fudan.edu.cn/fudannews/news_content.php?channel=1&id=19337

서두가 너무 길었고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강연의 내용이 아니라 강연 전에 생긴 조그마한 소란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강연이 자주 있고 그 중 세계적인 거물들도 자주 오는데, 대부분은 전공불문하고 많이들 몰려오기 때문에 왠만하면 1시간 전에는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한 사람이 몇 개씩 자리를 잡아놓곤 한다.) 어영부영하다가 30분 전에 도착하게 되면 어김없이 땅바닥에 앉아서 혹은 뒤쪽에 서서 들어야 한다. 이날도 밥먹고 어기적거리다가 조금 늦게 도착했고 역시나 자리는 없었다. 주최측에서 더 대형 강의실을 준비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자리가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뒤쪽 출입구에 서 있는데, 여직원이 비좁은 틈을 뚫고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청소, 수리, 혹은 기타 잡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직원이 또 나를 비집고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왼쪽 통로 끝부분에 어떤 남학생이 간이의자에 앉아 있고 남자직원은 비키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강의실 뒤쪽에 위치한 방송실 겸 중앙통제실에 있는 의자를 그 남학생이 가져가서 앉았던 것이다.
내 상식에서는 허락받지 않고 의자를 들고 갔다면, 그것도 자기 혼자 앉기 위해서 그랬다면 여직원이 와서 달라고 해도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 여분이 있는 줄 알았다 하고 비켜줬을 것 같은데, 남자직원이 좀 강하게 요구하고서야 마지못해 의자를 내줬다.

조금 더 황당한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그 남자직원이 의자를 가지고 나가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너희 복단대 학생들 수준이 이게 뭐니?"(你们复旦人的文化水平怎么这么差?!)

그 말을 들은 그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당장 발끈한다.

"무슨 말이냐? 복단대 학생들이 뭐 어쨌다고?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

그 중 한 남학생은 남자직원이 들고 있는 의자를 잡고 놔주질 않았고 그 옆의 여학생이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즉, 니가 여기서 일하는 것도, 그 의자가 여기 있는 것도 복단대 학생들 때문이 아니느냐는 식이었다.
오래 끌지는 않았고, 그 남자직원이 나간 후 뒤쪽에서 "그래, 의자를 원래대로 가져다 놨으면 됐다, 그만해라"는 따위의 윗선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깐만에 끝났고 그 주위에 있던 몇몇만 목격한 소동이지만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자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방송실에는 또 의자가 원래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직원들의 요구는 내 생각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자기 혼자 편해 보겠다고 의자 가져다가 앉아 있는 이기적인 학생을 비난하는 한 마디, "복단대 학생(复旦人)"의 수준에 자기 동일시하여 주위 학생들이 나서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 소리다.
앞뒤 따지지 않고 발끈해야할 만큼 "복단대 학생"이라는 기호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덧붙여, 화가 나서 무심코 던진 말이기도 하지만, 직원의 비난은 복단대 정도씩이나 다니는 놈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라는 그 개인에게 향한 비난으로 읽혀야 한다.)

복단대라는 이름에 대한 자기동일시, 직원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엘리트 의식 따위가 겹쳐 (아무리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따위가 복단대란 이름 전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라는 식의 공기가 너무 당연하게 깔려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 자체에 대해 어떤 반성, 혹은 질문을 던지는 눈빛을 보이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물론 이 소동의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10명 안쪽이다.)

그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느낄 수 있었으나, 살짝 우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재미난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소속감이 국가 등 더 큰 단위에서 발현된다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9/26 22:48 | 조리돌림 | 트랙백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7. 15. 11:14

왕사오보의 중편소설 <황금시대>의 초반부 번역이다.
심심풀이로 조금 번역해 보다가 국내에 기출판된 것을 확인하고 김이 샜다.
2000년에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 것.
번역은 특별한 오류는 없는 듯하나 소설을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
내 번역이 왕사오보의 문체를 더 잘 살렸다고 확신할 배짱은 없다만,
보다 간결하게 흐름을 살려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둔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보다 적절한 문체는 어떤 걸까?
"절묘하다!" 라는 느낌을 내 번역에서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작가 왕사오뽀(1952-1997)는 97년에 이른 죽음을 맞은 후 재평가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꽤 많은 독자층과 비평계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많은 청년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2006년 여름 상하이의 대형 서점마다 왕사오보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인기만 좋은 시덥잖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겠거니 했는데 조금씩 소문도 듣고 내가 직접 읽어본 뒤에야 맛을 알게 되었다.

대표작은 <황금시대>, <백은시대>, <청동시대> 연작(시대삼부곡)이며, 그 외 <침묵하는 대다수>, <사유의 즐거움> 등의 산문집이 있다.

그 중 <황금시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현실'을 다루었고, <백은시대>는 미래를, <청동시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삼부곡"은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필치로 시대를 넘나들며 권력이 인간의 욕망과 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압하는지를 잘 그려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각각 중편모음집인 이 연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주간> "20세기 중국소설 100선", 중국당대문단 "최고의 수확"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간단한 작가소개 정도는 해두려고 논문과 소개글 몇 개를 모아 두었는데
물론 언제 정리할 마음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황금시대

왕사오보

王小波, 《黃金時代》, 陜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


나는 스물한 살에 윈난의 생산대로 배속되었다. 천칭양(陳淸揚)은 당시 스물여섯이었으며 거기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산 아래 14생산대에 있었고 그녀는 산 위 15생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걸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론하려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대충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녀가 토론하고 싶어 한 것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걸레라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서방질을 해야 걸렌데, 자기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남편이 일 년 간 감옥에 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서방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자기를 걸레라고 부르는지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논리적으로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만약 천칭양이 걸레라면, 즉 천칭양이 서방질을 했다면 적어도 하나라도 같이 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그게 누구인지 지목하지 못했으니 천칭양이 서방질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천칭양이 걸레이며, 그 점에 있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천칭양이 자기가 걸레가 아니라고 증명하려 내려온 것은 내가 침 맞으러 그녀에게 갔기 때문이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농번기가 되자 생산대장이 나에게 밭가는 것을 멈추고 모를 심으라고 시켰다. 그래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 키가 190cm 이상이며 내가 허리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모내기를 했더니 허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라도 막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생산대 의무실에 있는 침은 도금이 벗겨지고 끝이 낚시 바늘 같아 내 허리의 살을 발라내기 일쑤였다. 결국 내 허리는 산탄총을 맞은 것처럼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생산대의 천칭양이 생각났다. 그녀는 베이징 의학원을 졸업한 의사니까 침과 갈고리는 구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30분도 되기 전에 그녀가 내 방까지 쫓아와 자기가 걸레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천칭양은 자기가 걸레를 업신여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의 관찰에 의하면 걸레들은 모두 착했고 다른 사람 돕는 걸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는 걸 가장 싫어하였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면에서 걸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제는 걸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자기는 절대 걸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고양이를 사람들이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그 고양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칭양이 내 초가에 와 있을 때 산 위 의무실에서의 옷차림 그대로 어깨와 다리를 벌겋게 드러낸 흰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풀어 헤친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흰 가운 아래에 뭔가를 입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입었을까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가 예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녀는 뭘 입든 안 입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자신감이다. 나는 그녀가 걸레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까지 몇 개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른바 걸레라고 함은 하나의 호칭이다. 즉 모두가 당신이 걸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걸레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신이 서방질했다고 하면 서방질한 것이지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모두들 왜 당신을 걸레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보기엔 이렇다. 모두들 결혼한 여자가 서방질하지 않으면 얼굴이 거무스레하고 가슴은 축 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당신은 얼굴이 검기는커녕 하얗고, 가슴은 봉긋하다. 그래서 당신이 걸레인 거다. 만약 당신이 걸레가 되기 싫으면 얼굴은 검게, 가슴은 축 처지게 만들어라. 그럼 아무도 당신이 걸레라고 안 할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거다. 근데 만약 당신이 손해 보기 싫으면 서방질을 하는 수밖에. 그러면 당신도 자기가 걸레라고 생각하게 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서방질했는지를 먼저 밝힌 후 당신을 걸레라고 불러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근데 당신에겐 남들이 당신을 걸레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말을 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천칭양의 두 눈을 부릅뜬 표정은 거의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릴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귀싸대기 날리는 걸로는 유명했다.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걸레면 걸레지 뭐. 근데 가슴이 처지네 마네, 얼굴이 검네 마네 하는 건 너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행여 내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가는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 거라고 말이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천칭양과 걸레 문제를 토론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얼굴이 누렇고 뜨고 말라 터진 입술에는 종이조각과 담배가루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반창고로 찢어진 곳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헤진 군벌 하나 입고서 나무침대에 다리를 꼬아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완전히 건달이 따로 없었다. 아마 천칭양이 이런 놈에게 자기 가슴이 처졌니 안 처졌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좀 신경질적인 편이었는데, 그건 모두 아주 건장한 청년들이 아픈 데도 없으면서 진료를 핑계로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의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걸레를 보러 간 것이다. 나만 예외였다. 내 허리는 저팔계에게 쇠스랑으로 몇 대 맞은 것처럼 아팠으니까. 허리 아픈 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 뻥뻥 뚫린 구멍만으로 의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구멍이 그녀에게 자신이 걸레가 아님을 나에게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 말고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다. 봄에 생산대장은 내가 자기 집 어미개의 왼쪽 눈을 애꾸로 만들어, 이놈이 무슨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고개를 돌려서 사람 쪽을 본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언제나 트집을 잡았다. 나는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래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생산대장의 집에는 어미개가 없다.

2. 이 어미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없다.

3. 나는 손이 없어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수 없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생산대장의 집에는 확실히 갈색 어미개가 한 마리 있고, 이 어미개의 왼쪽 눈은 확실히 나중에 먼 것이며, 나는 총을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밀한 사격술을 자랑한다. 그 얼마 전에 나는 뤄샤오쓰(羅小四)의 총을 빌려 녹두 한 그릇을 총알삼아 빈 창고에 있던 쥐를 두 근이나 잡았다. 물론 우리 생산대에서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목록에는 뤄샤오쓰도 포함되어 있다. 총은 그의 것이고, 게다가 그가 생산대장의 어미개의 눈을 쏘았을 때 나는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이 한 일을 까발릴 수는 없었고, 뤄샤오쓰는 나하고 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생산대장이 만약 뤄샤오쓰를 건드릴 수 있었다면 나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묵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나는 모를 심으러 가서 부러진 전봇대마냥 엎드려 있어야 했고, 가을 추수 후에는 또 소를 먹이러 나가 뜨신 밥은 먹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산 위에서 마침 뤄샤오쓰의 총을 빌린 날 생산대장의 어미개가 산으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총알을 날려 그 놈의 오른쪽 눈을 쏘았다. 이 개는 이미 왼쪽 눈을 잃은 데다 오른쪽 눈마저 사라지니 생산대장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하늘만이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나는 산에 올라 소를 먹이거나 집에 드리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칭양이 또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녀가 나하고 서방질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1. 천칭양은 처녀다.

2. 나는 고자라서 성교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결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천칭양은 이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렸다가 얼굴이 뻘게지더니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천칭양은 내가 언제나 악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생 까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그녀가 우리 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섹스를 한 번 하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면 뒤에 이야기할 사건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7/15 11:14 | 独立阅读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8. 06:46

옌롄커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왔다.

作  者: 阎连科
出 版 社: 江苏人民出版社
出版时间: 2008-6-1
页  数: 332
I S B N : 9787214055569

곧 근작이 나올 거라는 걸 그의 강연에서 들었지만 잊고 있다가 그저께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출간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당에 주문하기는 좀 늦고 해서 서점에 가서 실물을 확인해 봤다.
재고량이 47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열되어 있지 않았고 서점직원이 한참 찾은 후에야 서가 아래쪽에 쌓여있는 걸 하나 건네 주었다.
중국의 서점들은 도서분류가 너무 엉망이다. 출판사 분류도 아니고 저자 분류도 아니다. 완전히 흩어져 있어 "당대소설" 서가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야 한다.(上海書城이 대표적. 대학 근처의 전문적인 일부 작은 서점들은 분류가 꽤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교수 양과(楊科)는 5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풍아지송: <시경>정신의 본원에 관한 탐구(风雅之颂——关于〈诗经〉精神的本源探究)》라는 필생의 저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침대 위에 벌거벗은 마누라와 부총장이다. 처용이 생각나는 장면인데, 양과의 대처 또한 처용과 비슷하다.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고 싶으면 말만 하게, 올해 국가급 모범학자는 따논 당상일세, 상금이 오만원(7백만원)이라구, 학과 주임이 되고 싶다면 밀어줌세,.. 뻘줌하게 주절대는 부총장에게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한다.
제가 생각이 완전히 깬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니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주세요, 지식인의 명예를 걸고 부탁드리건데,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는 곧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환자들에게 <시경>을 강의하며, 얼마 후 정신병원을 고향으로 돌아간다.

청연대학(清燕大学; 청화대와 북경대(연경대)를 혼합한 명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지식인의 허위와 추악함을 풍자하는 방향으로 그려질 것 같다. 당장 꼼꼼하게 읽어볼 시간을 내기는 힘들지만, 제발 바라는 것은 류진운의 <내 이름은 유약진> 같이 실망시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시끄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혼을 빼놓지만 별로 건질 게 없어 사람을 굉장히 지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기우인지 몰라도 몇 페이지 읽다 보니 "수다"스럽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또 하나 띠지에 있는 "중국 황당(荒誕) 현실주의 대사 옌롄커"라는 말!
천쓰허 같은 경우 "괴탄(怪誕)문학" 혹은 "괴탄(怪誕) 사실주의"라고 옌롄커 등의 경향을 칭했다고 국내 신문에도 소개된 바,
아무거나 다 "~~주의" 갖다 붙이면 되냐고 말들이 많다.
(황당주의가 아니라 요즘 대학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라는 식의 반어적 댓글이 있을 정도..)

중국쪽 언론이나 포털에는 관련 기사가 몇 개 올라와 있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어찌되었든 내가 직접 읽어봐야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이제 막 나온 소설의 원문 대부분을 웹에서 서비스한다는 거다. 물론 전체를 다 보려면 사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거 좀 따라했으면 좋겠다.. 절판된 책은 웹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



阎连科最新的长篇杰作:风雅颂(选载)

아무튼 (시경의 편명을 빌린) 목차는 다음과 같다.
http://product.dangdang.com/product.aspx?product_id=20246252

目录
卷一
 〔关雎〕当《诗经》遭遇一对狗男女
 〔汉广〕柿子树下的初情
 〔终风〕红彤彤的欲念
 〔(艹择)兮〕蹿红的的女教授
卷二
 〔有瞽〕硬学问软膝盖
 〔良耜〕侍候飞累的鸟儿
 〔噫嘻〕那条该死的内裤
 〔泮水〕我们各怀鬼胎
卷三
 〔出车〕必要的成交
 〔都人士〕膝盖又发软了
 〔十月之交〕捕风汉子
 〔绵蛮〕举手表决
 〔白驹〕悲壮的告别 
卷四
卷五
 〔式微〕天使得不到尊敬
 〔晨风〕往事香艳
 〔蒹葭〕情人的礼物
 〔东门之(木分)〕教授来到天堂街
 〔匪风〕温暖的家
卷六
 〔菁菁者莪〕庄严的摸顶
 〔斯干〕农事温情
 〔思齐〕情爱事业
 〔白华〕无力挽留
 〔小明〕祭奠吴德贵 
 〔南山有台〕守墓人的颂歌
卷七
 〔噫嘻〕婚姻真相
 〔臣工〕有尊严地告别 
 〔駉〕欢年
 〔有駜〕小姐们的束修
卷八
卷九
 〔大田〕昨日重来
 〔车辖〕鸳鸯于飞
 〔隰桑〕小敏的选择
 〔渐渐之石〕别人的婚礼
 〔小弁〕一日不见如三秋兮
 〔桑柔〕哄抢有理
 〔白驹〕不能没有你
 〔鸳鸯〕死神婚床
卷十
 〔般〕逃犯
 〔天作〕狂喜
 〔时迈〕石头记
 〔有瞽〕诗经古城
卷十一 
 〔东山〕新家
 〔草虫〕家园之诗
 〔甘棠〕我又被举手表决了
 〔芄兰〕柳树下
 〔葛藟〕繁华的黄昏
卷十一
附录:后记三篇
 飘浮与回家
 不存在的存在

 为什么写作和要写怎样的小说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4:56
Daum 파워에디터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중국소설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소설이 너무 자주 보인다 싶어서 검색해 본다.

더하여, "<아주주간>이 선정한"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이름이 왠지 제각각인 것 같다. 번역을 제각각으로 해서기도 하겠지만 중국쪽에서도 책 선전할 때 이것저것을 쓰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검색결과 과연 중국인들도 이름을 제각각으로 사용한다.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소설 100부, 혹은 100강, 혹은 가장 아름다운 소설.., 혹은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100편의 중국소설, 등등.. 각각의 목록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2000년에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것은 하나다.

정식명칭은 "20세기 100대 중국어 소설(二十世纪中文小说100强)".
"중국소설"이 아닌 "중국어 소설"인 이유는 중국대륙 뿐 아니라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 중국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중국어로 창작된 소설을 심사대상으로 하였고, 심사위원도 각지의 대표적인 인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식으로 번역하자면 구태여 "중국어"소설이라고 강조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게 더 정확하겠지만, ..

(그 외에 <아주주간>에서는 해마다 10대 중국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비공개로 스크랩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조금씩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이 100대 중국소설의 내용 자체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고(중앙일보, 순위로 보는 중국문학,)
국내번역본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도 있다.(http://www.korea.ac.kr/~sinoview/wenxue1/list(korean).htm)
Be Nobody's darling : 아주주간 추천 20세기 중국 소설 100에도 전반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금 지난 목록들인지라 몇 가지는 보충해둘 필요가 있겠다...

일단은 위 두 사이트에 근거하되 최근에 나온 국내번역본들이나 누락된 번역들도 정리해 본다.
루쉰처럼 많은 번역본이 있는 경우 대표번역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추천번역과 신간을 포함한 몇 종류를 내 맘대로 선정하겠다.
차후에 시간나는대로 목록을 채워나가고, 각 번역본에는 인터넷 서점 혹은 도서관의 링크를 걸어두도록 하겠다..


1 납함 呐喊 루쉰 鲁迅 《루쉰 소설전집》, 김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2 변성 边城 선총원 沈从文 《변방의 도시/이가장의 변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6, 심혜영/김시준 옮김(중앙일보사, 1989)
《변성》, 김동성 역(한울, 1997)
3 낙타상자 骆驼样子 라오서 老舍 《낙타상자》 중국현대문학전집 5, 유성준 옮김(중앙일보사, 1989)
《루어투어 시앙쯔》(상,하), 최영애 옮김, 김용옥 풀음(통나무, 1986)
《낙타샹즈》,  심규호/유소영 역(황소자리, 2008년 2월)
4 전기 传奇 장아이링 张爱玲 《첫번째 향로》, 김순진 역(문학과지성사, 2005)
5 포위된 성 围城 첸중수 钱钟书 《포위된 성》, 오윤숙 역(실록출판사, 1994)
《황하의 노을》, 이혜란 역(황제출판사, 1993)
6 자야 子夜 마오둔 茅盾 《새벽이 오는 깊은 밤》 중국현대문학전집 3, 김하림 옮김 (중앙일보사, 1989)
《자야》(상,하), 김하림 역(한울, 1986.4)
《칠흙같이 어두운 밤도》, 김하림 옮김(한울, 1986)
7 타이베이 사람들 台北人 바이셴융 白先勇 《반하류사회/대북사람들》(半下流社會/臺北人), 중국현대문학전집 16, 허세욱 옮김(중앙일보사, 1989)
8 바진 巴金 《가》, 박난영 역, (이삭문화사, 1985)
《가》, 강계철 옮김, (도서출판 세계, 1985)
《가》, 최보섭 옮김, (청람문화사, 1985)
9 호란하 이야기 呼兰河传 샤오훙 萧红 《호란하 이야기》, 원종례 역(글누림, 2006)
10 라오찬 여행기 老残游记 류악 刘鹗 《라오찬 여행기》, 김시준 역(솔출판사, 1997)
11 추운 밤 寒夜 바진 巴金 《추운 밤/동터오는 강변 외寒夜/黎明的河邊》 중국현대문학전집 7, 김하림 옮김(중앙일보사, 1989)
12 방황 彷徨 루쉰 鲁迅 《루쉰 소설전집》, 김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13 관장현형기 宫场现形记 이백원 李伯元 《난세》, 이보가 지음, 강성위/김중걸 옮김(일송북, 2003) 
14 지주의 자녀들 财主底儿女们 루링 路翎  
15 장군족 将军族 천잉전 陈映真  
16 타락 沉沦 위다푸 郁达夫 《예환지/침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2, 예성타오/위따푸 지음, 이영구/전인초 옮김, (중앙일보사, 1989)
17 사수미란 死水微澜 리제런 李劼人  
18 붉은 수수 红高梁 모옌 莫言 《붉은 수수밭》, 심혜영 역, (문학과지성사, 1997)
《홍까오량 가족》, 박명애 역(문학과지성사, 2007)
19 소이흑의 결혼 小二黑结婚 자오수리 赵树理  
20 장기왕 棋王 아청 阿城 《아이들의 왕(孩子王/棋王/樹王), 박소정 옮김(지성의 샘, 1993)
21 가변 家变 왕원싱 王文兴  
22 마교사전 马桥词典 한사오공 韩少功 《마교사전》, 심규호(민음사, 2007)
23 아시아의 고아 亚细亚的孤儿 우줘류 吴浊流  
24 반생연 半生缘 장아이링 张爱玲 《반생연》, 권효진 옮김(문일, 1999.1.18.)
25 사세동당 四世同堂 라오서 老舍  
26 호설암 胡雪岩 가오양 高阳  
27 제소인연 啼笑姻缘 장헌쉐이 张恨水  
28 샌드위치 맨 儿子的大玩偶 황춘밍 黄春明  
29 사조영웅전 射雕英雄传 김용 金庸 《사조영웅전》,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역(김영사, 2003) / 《영웅문》, 김일강 역(고려원, 1987)
30 샤페이 여사의 일기 莎菲女士的日记 딩링 丁玲 《중국 현대 여성소설 명작선 : 1920년대 여성소설 단편선》, 김은희/최은정 옮김(語文學社, 2005) 중 "샤페이 여사의 일기"
31 녹정기 鹿鼎记 김용
金庸 《녹정기》, 박영창 역(중원문화사, 1986) / (중원문화, 2008)
32 얼해화 孽海花 증박 曾朴  
33 야사 惹事 라이허 赖和  
34 가장일우차 嫁妆一牛车 왕전허 王祯和  
35 이역 异域 덩커바오
(보양)
邓克保(柏杨)  #본명은 궈딩성(郭定生).
36 증국번 曾国藩 탕하오밍 唐浩明  
37 고향사람 原乡人 중리허 钟理和  
38 백록원 自鹿原 천중스 陈忠实 《백록원》(1-5), 임홍빈/강영래 역, (한국문원, 1997)
39 장한가 长恨歌 왕안이 王安忆  
40 길릉춘추 吉陵春秋 리융핑 李永平  
41 황화 黄祸 바오미
(왕리슝)
保密(王力雄) 《황화》(1-4), 유전귀 역, (영웅, 1992.6)
42 광풍사 狂风沙 쓰마중위안 司马中原  
43 화창한 봄날 艳阳天 하오란 浩然  
44 공동묘지 公墓 무스잉 穆时英  
45 옛터 旧址 리루이 李锐  
46 별,달,해 星星·月亮·太阳 쉬쑤 徐速  
45 타이베이인 삼부작 台湾人三部曲 중자오정 钟肇政  
48 목욕(세뇌) 洗澡 양장 杨绛  
49 회오리바람 旋风 장구이 姜贵  
50 연꽃호수 荷花淀 쑨리 孙犁  

내용이 너무 길다고 글이 올라가지를 않아 50개씩 자른다.

http://www.douban.com/doulist/37375/

http://www.cppinfo.cn/XinWen/XinWen_detail.aspx?lmgl_id=574&key=3934&ztgl_id=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