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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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wjx.com/other/book/story/top100/

목록을 �어보니 그런대로 꽤 번역이 되어 있다. 특히 30위권 내에는 거의 꽉 차 있다.
번역되자마자 묻히거나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많긴 하지만 일단 소개는 된 셈이다.

번역되지 않은 작품 중 가장 아쉬운 건 라오서의 <사세동당(四世同堂)>이다.
황소자리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최근 의욕적으로 중국현대소설선을 내겠다고 인터뷰했던데,
이미 나와 있는 <낙타상자>를 "다시" 낼 게 아니라 <사세동당>을 번역하는 게 취지에 더욱 부합했을 듯하다.
최영애 역의 <낙타상자> 정도면 나쁘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억에 언젠가 번역비판이 있긴 했었다만, "이보다 더 나은 번역은 없다"는 김용옥의 호언장담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될 번역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중문학계에서 지명도가 높은 일급 번역자들을 섭외해 향후 30여권까지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라면 말이다.(그 "지명도"란 교수급을 말하는 것일 텐데, 지명도와 "일급" 번역자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

"큰 출판사가 놓치는 부분을 저희가 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 제대로 접할 수 없던 중국 현대 명작 소설 30여 권을 권위있는 번역자에게 맡겨 체계적으로 소개할 계획입니다." (연합뉴스 2월18일; http://media.daum.net/culture/book/view.html?cateid=1022&newsid=20080218073411801&cp=yonhap)


아직 번역되지 않은 당대작가 중 개인적으로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작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39. 왕안이(王安忆) : <장한가>는 모처에서 번역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진척이 어떤지 모르겠다.
45. 리루이(李锐)      
52. 왕쩡치(汪曾祺)       
74. 장제(张洁)     

# 54. 주톈원(朱天文)과 88. 주톈신(朱天心) 같은 대만작가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언제고 읽게 되길 기대한다.
# 아청의 <아이들의 왕>과 왕사오보의 <황금시대>는 모르게 나왔다가 슬며시 절판된 작품이다.
  재출간 혹은 재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 근대작가 증박의 <얼해화>는 번역을 상당히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출판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런 식의 목록은 하나의 기준이 될 뿐이지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아니다.
이들이 모두 절대적인 고전인 것도 아니고. 순위에 집착할 필요도 없겠다.
중국인들은(대륙, 홍콩, 대만, 말레이 등을 포함한) 이들이 대표성을 띤다고 선정한 것이지만,
이들 이외에도 "좋은" 작가와 작품은 많다. 포함되지 않은 21세기에는 더욱 좋은 작품이 쓰여지고 있고.
출판사에서 어떤 작품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 번역의 대상으로 선정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여러 출판사에서 중국소설 번역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의 기준에 의한 목록을 만들 필요도 있겠다.
눈높이와 입맛이 다른 것은 확실하니까.


51 우리 도시 我城 시시 西西  
52 승려가 되다 受戒 왕쩡치 汪曾祺  
53 철장 铁浆 주시닝 朱西宁  
54 세기말의 화려 世纪末的华丽 주톈원 朱天文 #저자의 국내 번역은, 《이반의 초상(荒人手記)》, 추 티엔 원, 김은정 옮김(시유시, 2001)   
55 촉산검협전 蜀山剑侠传 환주루주 还珠楼主 《촉산객》, 李壽民  저, 임화백 역(언어문화사, 1987)
《촉산기협》, 이수민 저, 임화백 역(독서당, 1993)
56 종려를 다시 보다 ,又 위리화 於梨华  
57 조바심
浮躁 자핑와 贾平凹 《조바심》,오세경 역(第三企劃, 1994.)
58 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 组织部新来的靑年人 왕멍 王蒙 #저자의 국내 번역작은, 《변신인형》(전형준 역, 문지, 2004) / 《나비》(이욱연/유경철, 문지, 2005)
59 옥리혼 玉梨魂 쉬전야 徐枕亚  
60 홍콩3부작 香港三部曲 스수칭 施叔青  
61 경화연운 京华烟云 린위탕 林语堂  
62 예환지 倪焕之 예성타오 叶圣陶 《예환지/침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2, 예성타오/위따푸 지음, 이영구/전인초 옮김, (중앙일보사, 1989)
63 춘타오 春桃 쉬디산 许地山  
64 상칭과 타오훙 桑青与桃红 녜화링 聂华苓  
65 쪽빛과 검은빛 蓝与黑 왕란 王蓝  
66 2월 二月 러우스 柔石  
67 바람은 차디차게 风萧萧 쉬제 徐讦  
68 부용진 芙蓉镇 구화 古华 《부용진》, 김서기/황대연 공역, (서당)
《부용진》, 신원기획 역, (예본, 1988)
69 땅의 아들 地之子 타이징농 台静农  
70 북경이야기 城南旧事 린하이인 林海音 《북경이야기》(1,2), 린하이인 저, 관웨이싱 그림, 방철환 역(베틀북(프뢰벨), 2001).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북경이야기2) 
71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 古船 장웨이 张炜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상,하), 오세경/김경림 역, (풀빛, 1994)
72 술손님 酒徒 류이청 刘以曾  
73 끝나지 않은 노래 未央歌 루챠오 鹿桥  
74 무거운 날개 沉重的翅膀 장제 张洁  
75 과수원 일기 果园城记 스퉈 师陀  
76 사람아, 아, 사람아! 人啊,人! 다이허우잉 戴厚英 《사람아 아, 사람아!》, 戴厚英 저, (세양, 1992)
《사람아 아, 사람아!》, 신영복 역, (다섯수레, 1991)
《인간. 아, 인간!》, 서정태 옮김, (열음사, 1989)
77 황금시대 黄金时代 왕사오보 王小波 《황금시대》, 왕샤오뽀 지음, 손인숙 옮김(한국문원, 2000)
78 빌어먹을 양식 狗日的粮食 류헝 刘恒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류헝 소설집, 홍순도 옮김(비채, 2007) 중 "빌어먹을 양식"
79 장기왕 棋王 장시궈 张系国  
80 뇌색 赖索 황판 黄凡  
81 처첩성군 妻妾成群 수통 苏童 《이혼 지침서》, 김택규 옮김(아고라, 2006)
82 패왕별희 霸王别姬 리비화 李碧华 《사랑이여 안녕》, 릴리안 리 저, 김정숙/유운석 역(빛샘, 1993)
83 살부 杀夫 리앙 李昂  
84 초류향 楚留香 고룡 古龙 《초류향》, 장학우 옮김(대륙, 1992) /
《신 초류향》, 시공사, 2001.
85 창밖 窗外 경요
琼瑶  
86 침묵의 섬 沉默之岛 쑤웨이전 苏伟贞  
87 백발마녀전 自发魔女传 양우생 梁羽生 《백발마녀전》, 박광일 역(태일출판사, 1993)
88 고도 古都 주톈신 朱天心  
89 윤현장 尹县长 천뤄시 陈若曦  
90 사희우국 四喜忧国 장다춘 张大春  
91 희보 喜宝 이수 亦舒  
92 남자의 반은 여자다 男人的一半是女人 장셴량 张贤亮 《남자의 반은 여자》, 김의진 역, (미학사, 1991)
《남자의 반은 여자다》, 리팡 역, (새론문화사, 1994)
《남자의 절반은 여자》, 정성호 역, (태광문화사, 1986)
《남자의 절반은 여자다》, (문학사상사, 1994)
《사랑 속의 사람》, 김세민 역, (도서출판 춘추원, 1992.11)
93 장군의 머리
将军底头 스저춘 施蛰存  
94 남혈인 蓝血人 니쾅 倪匡  
95 이십년 동안 본 이상한 현상 二十年目睹之怪现状 오견인 吴趼人  
96 살아간다는 것 活着 위화 余华 《살아간다는 것》, 백원담 옮김, (푸른숲, 1997)
97 카일라스의 유혹 冈底斯的诱惑 마위안 马原 《카일라스의 유혹》, (웅진지식하우스, 근간)
98 십년십의 十年十癔 린진란 林斤澜  
99 북극 풍경화
北极风情画 무명씨 无名氏  
10O 옹정황제 雍正皇帝 이월하 二月河 《옹정황제》(10책), 한미화 옮김(출판시대, 2001) / (산수야, 2005)
           


http://hi.baidu.com/80dc/blog/item/9d2b41d36fc01d053bf3cf81.html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2:3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21733505&code=960100

뒤늦게 경향신문의 기사(6월3일자)를 통해 옌롄커가 한국을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인 옌롄커(閻連科·50)가 한국에 왔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경북 포항에서 ‘아시아, 소멸의 이야기에서 생성의 이야기로’(포스코청암재단 주최·계간 아시아 주관)란 주제로 열린 문학포럼에 초청됐다."라고 기사는 소개하고 있다.

금서 하나 썼다고 반체제 작가가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좀 오버다.
현재 금서로 지정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발표할 2005년에 그는 노사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기사에도 소개하고 있다시피 여전히 작가협회 소속 작가로 있고, 그 정도를 소설에서 표현하는 게 반체제까지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현정부에 그다지 위험한 내용도 아니지 않은가..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신간 번역 소식이다.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흐르는 세월’(1998년), ‘물처럼 단단하게’(2002년), ‘즐거움’(2003년), ‘딩좡의 꿈’(2006년) 등을 이 시기에 썼다. 이중 ‘물처럼 단단하게’와 ‘딩좡의 꿈’은 올 하반기 중 국내 출판사인 물레와 아시아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언급되는 소설은 모두 옌롄커의 문풍이 바뀐 이후 작품들이다. 그 중 옌롄커의 대표작은 여전히 <물처럼 단단하게>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물처럼 단단하게>의 속편의 하나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책 또한 금서로 묶였다가 풀렸다. 언제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풀리지 않을까 싶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이미 간단하게 포스팅한 바 있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번역본을 읽은 소감을 간단하게 정리해 두려고 한다만. 당장은 시간을 내기 힘들 것 같다.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읽히는 번역이기 때문에 별로 토를 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암튼 <물처럼 단단하게>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보다 번역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한국어로 표현될지 기대된다..

또 하나, 이상한 부분이 보여 검색해 본다.


"작가는 특히 최근작인 ‘딩좡의 꿈’에 대해 애착을 드러냈다. 딩좡이란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주민들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붕괴된 처참한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은 홍콩 잡지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06 중국어로 쓰여진 10대 저작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정장몽>(딩좡의 꿈)은 "2005《亚洲周刊》全球十大中文好书", 즉 2005년에 선정되었다. (발표는 2006년에 되었다.)
1위라는 기준도 애매하다. 관련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면,
"中文十大好书是《半生为人》、《丁庄梦》、《战废品》、《一阵风,留下了千古绝唱》、《遍地枭雄》、《土与火》、《红楼望月》、《天工开物》、《阅读的故事》和《回到诗》,显示全球华人知识界的精神追求和对中华民族命运的承担。"

보통 처음 언급하는 걸 1위라고 한다면 그런가보다 싶지만, 보시다시피 두번째로 언급되고 있다.
다른 근거가 발견되면 수정하겠지만, 일단은
그냥 "2005년도 <아주주간> 선정 전세계 10대 중국어 우수도서"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

(중국애들 잘 쓰는 표현인데 가끔 속아 넘어가는 표현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큰, 대단한, 등등)이라는 표현 뒤에 "중국", 혹은 "중국어"라는 한정어를 슬쩍 붙이는 방식. 중국어로 창작된 작품 중 가장 우수한 책이라는 건데.. 중국대륙 이외에도 중국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많으니까 용인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비슷한 표현을 볼 때마다 좀 거시기하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이 가능하겠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중국산" 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중국"제 자동차, 등등.. 써놓고 보니 한국어로는 좀 헷갈리는데, 방점은 뒤에 있다. 암튼..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 싶다니 그러라고 두는 게 좋겠다.)

아래는 한국일보에서 전한 인터뷰이다.
<옌롄커 "작품마다 비평가 표적… 인간·진실에 다가설 뿐">

국내외 문인 61명이 참가한 '아시아문학포럼 2008' 행사가 28~29일 경북 포항 포스텍(옛 포항공대)에서 열렸다. 포스코청암재단이 주최하고 계간 < 아시아 > 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28일 환영 만찬, 29일 개회식과 3개 분과 토론으로 진행됐다.

포럼엔 2005년 출간 당시 '마오쩌둥의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의해 판금 조치를 당했던 소설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의 작가 옌롄커(50)가 초청됐다. 이 작품은 최근 국내 번역돼 출간 2주만에 재판을 찍는 호응을 얻고 있다. 29일 오전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문학 번역가 김태성씨가 통역했다.

- 소설에서 마오쩌둥의 혁명 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군대 상관 부인과 취사병 간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최음제'로 전락한다. 이런 설정이 일으킬 파문을 예상하지 않았나.

"28년간 복무하던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해방감 속에 쓴 작품이다. 쓸 당시엔 파장을 예상 못했다. 30년간(1978년 데뷔) 써온 작품들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억압된 인간 권리, 군대 비리, 문화혁명을 비판한 소설이긴 하다. 문혁 때 썼다면 총살감이다(웃음). 중국이 그동안 열린 사회로 변해 국내 판금 이상의 제재가 없었고, 20여개국에 번역돼 널리 읽혔으니 나로선 행운이다."

- 루쉰문학상, 라오서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여럿 받은 당신 이력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작품이 좋아 상을 받았을 뿐, 줄곧 중국 정부와 사회에서 환영을 못 받았다. 나는 작품을 낼 때마다 가장 많은 비평가들의 표적이 되는 작가다. '블랙유머 작가' '광상(狂想) 현실주의' '몽환 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등 많은 수식구가 뒤따랐지만 무엇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난 어떤 유파에 속한 적 없다. 스스로를 '가장 독립적인 작가'로 평가한다."

- 저명 평론가 천쓰허는 이 작품과 위화의 < 형제 > 를 꼽으며 "문혁을 공포ㆍ반성 대상이 아닌, 유희 대상으로 바라보는 괴탄(怪誕)문학이 탄생했다"고 평했다.

"글쎄. < 형제 > 는 천쓰허의 평가에 부합하지만 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성적인 측면을 약간 코믹하게 다루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엄숙하고 진지한 작품이다."

- < 인민을… > 은 노골적 성애 묘사뿐 아니라, 중국 내 권력ㆍ계층 문제에 대한 첨예한 풍자가 읽힌다. 베이다오, 가오싱젠 등 망명작가가 아닌, 중국 내부에서 이처럼 강한 사회비판 문학이 존재한다는 게 놀랍다.

"비판문학의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위화의 작품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내가 중국 정부로부터 환영 못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성적 묘사는 별개 문제로, 정부 역시 여기엔 관대하다. 내 작품이 판금 조치된 것도 성적 묘사의 적나라함과는 무관하다. 한국에도 번역될 < 물처럼 단단하게 > 란 작품은 < 인민을… > 보다 더 노골적인데 아무 문제 없었다(웃음)."

- 중국 작가 대부분은 중국작가협회(작협)에 소속돼 있다. 이런 관변적 운영이 작가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나.

"나는 작협 일급작가라서 성과와 무관하게 대학교수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작협은 굉장히 느슨한 조직이라 작가에게 미치는 실질적 통제력이 거의 없다. < 인민을… > 이 판금됐을 때도 작협이 내게 제재를 가한 게 없다."

- 무리해서 글을 쓰다 몸이 안좋아지니까 누워서 글 쓸 수 있는 특수의자를 장애인용 의료기 제작 공장에서 맞췄다는 얘기를 들었다.

"96~98년에 이 의자에 누워 < 흐르는 세월 > > < 물처럼 단단하게 > 같은 대표작을 썼다. 지금도 허리가 아파 책상에 앉으려면 요대를 감아야 한다. 난 생명 전부를 문학에 투입하고 있다. 인간의 진실, 중국 인민의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서고 싶다."

- 올 하반기 < 딩좡의 꿈 > 이란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다고 들었다.

" < 인민을… > 다음에 쓴 작품으로, 중국 최초로 에이즈(AIDS)를 소재로 했다. 딩좡이란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 사용으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이 실제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성의 어두운 면을 묘사했다. 홍콩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06 중국어로 쓰여진 10대 저작물' 1위에 뽑혔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12. 04:15

잠깐 서점에 들렀다가 새로 나온 책을 몇 권 사다.

주유쟁 선생이 <走出中世纪二集>를 냈다. 그냥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

2007년에 <走出中世纪>增訂本을 냈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여기저기 발표한 글과 미발표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대체적인 스타일이나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이름에 "2집"을 더한 제목을 썼다. 증정본의 표제논문인 "走出中世纪"의 속편이 2집에 대표논문으로 실렸다. 50쪽에 이어서 51쪽부터 내용을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다.


作  者: 朱维铮
出 版 社: 复旦大学出版社
出版时间: 2008-5-1
字 数: 262000 页 数: 322 I S B N : 978730905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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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쟁 선생은 현재 복단대 역사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것을 시원하게 비판한다.

 

다른 하나는 왕후이의 <탈정치화의 정치: 단기 20세기의 종결과 90년대>이다.



<去政治化的政治—短20世纪的终结与90年代 >

作  者: 汪晖

出版时间: 2008-5-1

字  数: 465000

页  数: 532

I S B N : 978710802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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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현대중국사상의 흥기>신판을 하드커버로 내기도 했는데,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신판 서문("중국"과 그것의 "근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 추가된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내용을 만지거나 오탈자 등을 손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드커버라서 책이 좀 고전 느낌도 나긴 했다. 더불어 왕후이도 대가 반열에 들어선 것인가. 신판의 서문도 이 책 후반에 포함되어 있으니 구태여 신판을 살 필요는 없겠다.아울러 <현대중국사상의 흥기>는 한국어로 번역중인 것으로 안다.(꽤 오래 기다려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명이 작업하고 있지만 분량이 워낙 방대하고 내용도 만만찮으니 말이다.)정리해 두는 셈치고 이 책의 소개를 겸해 서문을 조금만 들여다 보자..

'"90년대"는 1989-1991년의 세계적인 거대한 변화를 거치면서 탄생했다.'로 첫마디를 시작한다.밖으로는 공산권의 몰락, 안으로는 천안문사건 등을 염두에 두고 앞 시기와는 다른 맥락에서 90년대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더하여 그는 "90년대"라는 말과 "1990년대"를 조금 다르게 쓰겠다고 밝힌다. "1990년대"가 단순한 시간개념이라면, "90년대"는 시장경제의 형성과 그로 인해 일어난 복잡한 변화를 그 특징으로 하는 가치개념을 함축한 용어이다.그의 기본적인 주장이라고 밝힌 부분을 옮겨 본다.

"80년대"는 사회주의식 자기개혁이라는 형식으로 펼쳐진 혁명시대의 마지막이었다. 그것에 영감을 제공한 원천은 주로 그것이 비판하던 시대에서 나왔다.("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가치규율과 상품경제", "휴머니즘과 소외 문제" 등이 전형적인 "80년대식 논제"로 간주되는데, 사실 그것들은 모두 50, 60, 70년대의 사회주의 역사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90년대"는 혁명시대의 종결을 전제로 펼쳐진 새로운 희극이었다. 경제, 정치, 문화 및 군사적 의미에서 이 시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만약 재정의를 거치지 않는다면, 심지어 정당, 국가, 군중 등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범주조차 이 시기를 분석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80년대와 90년대의 복잡다단한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후자는 전자의 자연적인 연속이 아닌 것이다. "90년대"에는 서로 상이한 사상적 역량이 신자유주의와 대치하면서 중요한 사상적 사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신좌파의 흥기, 포스트모던 사조의 기복, 보수주의의 침투, 민족주의의 성쇠, 자유주의의 유행 등 각각의 조류는 모두 모호한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신자유주의 전지구화의 흥성과 쇠락, 전환이라는 국면에 놓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진정한 방향을 파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상이 서로 대치되는 형세나 매체에서의 혼전상황을 통해 우리는 일련의 구체적인 사회문제, 법률문제, 정치문제 및 문화문제가 공공적 토론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며, 현재적 문제에 관한 모든 논쟁은 20세기 중국의 역사적 전통의 재평가를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90년대"의 눈에 띄는 또다른 표지는 20세기에 형성된 가치 시스템과 역사관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혁명시대와 사회주의 역사가 제공한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위에서 언급한 "80년대식 명제"도 별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90년대"의 의미를 캐묻다 보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20세기"는 "장기 19세기" 내부의 타자인 것인가, 아니면 혁명을 통해 21세기의 탄생을 재촉하는 유령인가?

저자는 80년대와 90년대에 명확한 선을 그으며, 90년대의 탄생이 20세기 역사의 붕괴와 중첩된다는 점에서 그것을 20세기의 일부가 아닌 "장기 19세기"와 더욱 친연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20세기의 막을 내리면서 '19세기'를 특징짓던 사회관계가 재등장하게 된다. 마치 혁명시대의 충격과 개조를 거치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90년대'는 '역사의 종결'이라고 하기보다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19세기적 의미의 역사가 반복이라는 형식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냉전의 종결과 혁명의 종결의 상호중첩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이 시대는 19세기의 단순한 연장도 아니지만 20세기적인 정치적 모델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9세기의 대변혁은 자본주의 시대의 내부의 적, 즉 무산계급과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을 창조하였으며, 결국 사회주의당 일국체제를 기본 형식으로 하는 서방 자본주의 외부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20세기 말의 대변혁은 이 자본주의 외부체계의 종결을 표지로 한다. 이는 사회주의 체계의 와해를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계급투쟁, 민족투쟁, 정당정치 등 전통적인 정치형식의 대대적 쇠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국면을 탐색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중국의 지식계에서는 일련의 대표적 논제들이 나타난다.
(시장화, 전지구화, 민족주의, 문명충돌론, 인문정신, 포스트콜로니얼, 제도개혁(창신), 국가능력, 도시화와 농민노동자(농민공), 신고전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삼농위기(농촌, 농업, 농민), 의료보장체제의 위기, 부동산 체제위기와 노동권리 위기,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보수주의, 근대성의 반성, 인문교육과 대학개혁 등등)이러한 논제들은 80년대의 학술연구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90년대의 주제, 방법, 시각, 규모 등은 이미 앞시기와 분명한 경계를 긋고 있다.90년대의 특징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 아래 몇 가지 문제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왜 냉전의 종결과 혁명의 종결은 상호중첩되는가?
왜 "90년대"는 "단기 20세기"의 끝이 아니라 "장기 19세기"의 연장에 가까운가?


수록된 글들은 모두 90년대에 쓰여졌으며, 구체적으로 94년에서 2007년까지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미 다른 책에 출간한 논문을 거듭 묶어내는 중국 출판계의 관행은 고쳐질 필요가 있겠다. 즉 이 책도 "새" 논문은 별로 없다.)
또한 이 시기는 그가 <학인>, <독서> 등 학술잡지의 편집을 맡고 있을 때와 맞물린다.
(왕후이는 <독서> 주간을 그만두었다. 짤렸다! 이 논란도 정리해보면 재미있을 건데.. 왕후이가 독서 주간을 맡은 동안 <독서>가 너무 재미 없었다는 출판사 쪽 의견이라든가 왕후이를 지지하는 반대쪽 의견 따위 말이다..)

아무튼,
주유쟁 선생의 책을 산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학술적 공력과 비판정신 같은 게 좋긴 하지만 그의 책을 그대로 한국에 소개하기는 힘들다. 주유쟁 선생이 되짚고 있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좀 더 개괄적인 자료의 연구 및 소개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왕후이는 이미 한국에 몇 권이 번역되어 있고 지금도 번역 중이다.
이 책도 분량은 꽤 되는 편인데, 한국에 이미 소개된 논문은 빼고 약간의 편집을 거친다면
누군가 나서서 번역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 자젠잉의 <80년대 방담록> 등을 위시한 80년대를 회고하는 분위기가 중국을 휩쓸었다. 시장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90년대와는 다른 가능성의 탐색 기제로 80년대를 회고하는 것으로 나는 판단했다. 문혁을 막 벗어난 후 혁명에의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려는 에너지가 분출되던 시기가 80년대였다. 90년대는 그러한 열정의 변질을 특징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80년대가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성숙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식인보다는 학자, 전문가가 득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80년대는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의 한국적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뭔가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경로의 하나로 80년대식 뜨거운 피를 구성하는 기본인자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다.
 
그에 비해 왕후이의 90년대 논의는 기본적으로 중국적인 상황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이미 전지구적인 상황에 내몰린 중국에 대한 이야기라 우리의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겠다.
90년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80년대가 이미 해결된 문제여서가 아니라 그 둘을 같이 놓고 봐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런 것들을 꼼꼼히 챙겨보는 편은 아닌지라 어떤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도 보이는대로 챙겨놓고 정리해 볼 필요는 부정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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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5. 08:48

고서(舊書)

아청(阿城)



오경상(吳慶祥)은 열두 살에 도제가 되었다. 배우는 것은 고서점 일이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와 비슷해서 “반년 동안 물건을 못 팔다가, 물건을 팔면 반년을 먹고 산다.” 오경상은 취급하는 게 반년을 먹고 살 “물건”들이니 큰 장사라고 떠벌이곤 했다. 큰 장사가 잘 될 리야 없지만, 그래도 석인첩(石印帖)이나 수산석료(壽山石料; 사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들락거리면서도 장사는 되었다.

 


들락거리다 보니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문인들이 많은 편인데,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가, 반나절을 뒤적이고 반나절을 서성이다가는 가 버린다. 이런 부류는 새끼 문인들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새끼 문인이 언제 대문호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새끼 문인일 때 잘 모셔 두면 대문호가 된 후 서점의 이름값 또한 같이 올라가는 법이다.
대문호는 종종 쪽지를 남기곤 한다. 쪽지에는 찾는 책이 쓰여 있다. 쪽지의 책을 찾으면 전부 다 찾은 게 아니라 한 권이라도 먼저 찾으면 보내 줘야 한다. 정성껏 찾고 있다는 표시라도 내야 되니까.


책을 배달할 때는 항상 다른 책도 끼워 가야 한다. 어떤 책을 끼울 것인가는 문인의 기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외관을 중시하는 문인에게 외관이 잘 장정된 책을 끼워 가면 보통은 구입해서 서가에 진열해 두었다가 친구가 오면 보여주곤 한다.


오경상이 매입자에게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책을 배달하려면 책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배달하는 게 무슨 책인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오경상은 글자 배우는 머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간 지 삼년 만에 책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오경상은 그때 이미 변성기였고 키도 커서 보통은 그가 열다섯에 불과한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책을 아는 두 번째는 아주 어렵다. 판본에 대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온갖 잡다한 학문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분야라서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오경상은 서점에서 책을 사러 온 고객들을 모실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둔 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먼저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 손발은 바쁘게 놀리면서 말이다. 서점은 학교가 아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책을 팔아 줘야 한다.


머리속에 새겨진 것은 조금씩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기회에 단번에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해하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오경상은 간혹 해정(海淀; 북경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책을 배달하기도 했다.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옆으로 잡초만 무성하다. 오경상은 겨울에 해정까지 책을 배달하는 게 가장 겁난다. 역풍이 부는 데다 날도 빨리 저물어 돌아올 때는 모골이 송연하기 때문이다. 오경상은 훗날 대문호 몇 명과 잘 지냈다. 물론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오경상은 훗날 사창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선무문(宣武門) 바깥의 점원치고 사창가를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가고 싶은 법이다. 서점에 책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아니다.


오경상은 매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나으면 또 사창가를 찾았다.
낮에는 책 파는 일을 돕고, 책 파는 학문에 신경 쓰고 배달도 하다가 어두워지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동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단골을 찾는다. 매번 같은 가격으로.


북평(北平)은 1949년에 해방되어 원래 명칭으로 바뀌어 다시 북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0년 초에 오경상은 자살했다.


오경상의 자살에 대해 친하게 지내던 점원들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오경상은 주인도 아니고 고작 고참 점원에 불과하니 성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사창가를 단속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신사회가 시작되어 도처에 새로운 기상이 움 솟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는데, 어찌하여 사내대장부가 쉽사리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점원들이 오경상을 언급할 때면 지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2008년 6월 5일 초벌. <아청 정선집>(북경연산출판사, 2006년),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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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5

리얼(李洱)은 1966년 허난성(河南) 지위안(济源)에서 태어났다. 《홍루몽》, 《삼국연의》와 같은 고전소설을 즐기는 할아버지와 중학교 어문교사였으며 역시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리얼이 작가가 아닌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술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미술교육은 은연중에 그에게 형상적인 사유능력을 키워줬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소설 창작을 목표로 했으며 이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중문과에 입학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소설 읽기를 시작한다.

80년대의 화둥사대는 문학 창작과 비평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오직 글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학청년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근문학(尋根文學)이나 선봉문학(先鋒文學)과 같은 최신의 문학 조류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기도 전에 대학에서는 미리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시작했다. 특히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福音)」(1987)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많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으며 저자 자신도 비교적 만족스러워 하는 초기작은 당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1993)이다.

 

대학원생인 “나”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신중한 어투로 지도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존경의 말투가 극진할수록 지도교수의 행색은 더욱 초라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되는 사건, 장면, 생활의 디테일은 지도교수의 어쩔 수 없는 생존환경과 정신적인 붕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편집자가 출판을 위해 수정을 가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초고를 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두 글자가 달라짐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은 이후 그의 창작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화둥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허난성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수년 간 역임했다. 허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허난성의 창작계와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선봉소설이나 모더니즘 계열 소설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중역본 《보르헤스 소설선》을 끼고서 거리를 다녀 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시 허난 창작계의 분위기였다. 리얼이 보기에 허난성 작가의 소설은 건국 이전의 고루한 양식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리얼이 땅과 향촌의 이야기에 기반한 다른 허난 작가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상하이, 선봉문학,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였다. 이후 허난작가들이 가진 토착성과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자신이 향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시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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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1

지식인의 존재적 불안의 담론화


리얼은 80년대 말에 창작을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문단에서의 자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즉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에 매진한 시기는 중국이 소비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는 유행이나 시류를 휩쓸리지 않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식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가하여 그것을 심미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에 치중하였다.

 

「지도교수가 죽었다」, 「오후의 시학」, 「현장(现场)」 등 초기작을 시작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 특히 1990년대 중국 지식인은 리얼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 역사와 현실에서 지식인이 겪는 곤경과 개인의 존재 의의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창작을 관통하고 있다. 리얼의 지식인 소설은 표면적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과 존재형태에 대한 묘사에 그쳐 주제나 인물에 있어 명확한 내포나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보여주는 서사담론과 시각은 강렬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얼의 지식인 서사는 역사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개인의 일상적인 존재와 개체의 생명에 대한 체득으로 회귀하여 지식인의 정신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의 서사는 생활의 아픔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지도교수가 죽었다」에서 그 추형을 보여준 뒤 「망각」,《노래가락》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그것이 인물, 주제, 도덕 같은 내용에 관련되든 텍스트의 문맥이나 서사형식에 관련되든 모두 지식인의 담론생활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담론과 “이야기되는” 그들은 각각의 상이한 환경에서 근본적인 허무를 펼쳐 보인다.


「오후의 시학」(1998)은 「지도교수가 죽었다」와 함께 리얼의 가장 중요하며 가장 뛰어난 중편 대표작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식인의 정신과 담론의 질서가 작품 안에서 변형되면서 원래의 전통적인 합법성을 상실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후의 시학」은 문학적 글쓰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리얼에게 새로운 미학적 기점을 찾아줬으며 “존재”, “담론”에 대해 그가 얼마만큼 파고 들어갈 힘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거대서사는 철저히 해체되었으며 개체의 생명존재에 대한 진술은 확실한 표현방법을 획득하였다.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다룬 이 소설은 인물의 “말”에서 출발하여 주인공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세부와 정신생활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곤경을 겪게 되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페이볜(費邊)은 자신 있게 “고귀함”을 설파하지만 그 자신은 세속의 소용돌이로 떨어진다. 현실과 정신적 지향의 충돌로 인해 그는 담론의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볜의 연애, 결혼, 사업 및 정신생활은 모두 담론의 현시와 암시로 전환되며, 이러한 담론의 현시를 통해 페이볜의 주관세계가 그의 주체가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구,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극,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두 페이볜이란 존재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있으며, 페이볜의 의의 또한 바로 이러한 의식의 창조적 활동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몇 년 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붕괴되어 온갖 희극적 장면이 일상생활의 사진이 되었을 때”도 페이볜은 여전히 친구의 결혼피로연에 동석한 연인 한쌍에게 플라톤의 사랑론을 지껄이며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시 「오후의 시학」을 구상하고 있다.

한 편 두리(杜丽)는 미망인의 신분으로 페이볜에게 나타나 그와 결혼한다. 그녀의 출현이 가져다 준 것은 사랑과 죽음의 결합에 의한 신성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죽지 않았으며 줄곧 비밀리에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그녀는 연극배우에서 유행가수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악한 노래 소리는 우리 시대의 은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 “오후”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림자, 추악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진실함과 경건함이 살아있는가? 예술에 대한 신앙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가?

 

페이볜은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다. “신이여, 우리는 신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신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까뮈의 《반항적 인간》에서 이야기했듯이, 햇빛 찬란한 고대 그리스의 지중해 정신은 용기, 성숙, 균형 등을 의미하는 “정오의 사상”이다. 그에 반해 리얼이 바라보는 세계는 애매하고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오후”이다. “나는 이 시대의 글쓰기를 오후의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리얼은 담론을 이용하면서 그것을 해체한다. 현실에 대해 밀란 쿤데라식의 “농담”을 하며 “지혜의 고통”을 향유한다. 철저히 세속화될 때까지, 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랑과 성 또한 리얼의 소설에서 계속 탐색해온 주제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처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 지식인의 개성적 존재가 가진 은밀함을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벙어리의 목소리(喑哑的声音)」(1998)과 「부유(悬浮)」(1998)는 중년 지식인의 은밀하고 내면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섹스와 정신, 세속적 결혼과 비정상적 감정 등에 대해 소설은 그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인생의 은밀한 일면을 들춰낸다.

 

리얼은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도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적 지식인들은 모두 감정의 미망에 빠져 날로 변화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자신의 윤리관이 뒤흔들리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벙어리의 ‘목소리’와 담론의 ‘부유’는 무중력 상태에 빠진 지식인의 감정과 의지할 곳 없는 영혼,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 현기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얼은 자신의 개인화된 문학적 경험을 최대한 억제하여 당대 인문 지식인의 미리 결정된 일상생활과 담론에 속박된 정신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상적 장면”과 담론적 형태를 철저하게 지식인 서사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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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42

“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인 중편 「망각」(1999)은 《대가(大家)》잡지의 “요철 텍스트(凸凹文本)” 특집에 문체실험으로 발표되어, 소설문체의 혁명, 순수한 문체실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사책략과 문체기교 방면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새로움은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서사구조의 매력이 아니라 형식 배후에 감춰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화, 생명,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당대의 문화, 인문현상, 당대의 인문 지식인이 가진 진실의 허구와 그것이 가져다 준 첨예함이 그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지도교수 허우허우이(侯后毅; 해를 쏘아 떨어뜨린 신화 속 ‘후예(后羿)’를 연상시키는 이름)는 제자 펑멍(馮蒙;후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의 제자 봉몽(逢蒙)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박사학위 논문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인 상아(嫦娥)를 역사학적으로 고증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아울러 상아와 자신의 특수한 관계, 즉 달에 사는 상아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 러나 펑멍은 상아와 어떠한 교류를 할 수 없으며 그 속에 담긴 논리를 유추하거나 논증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모인 뤄미(羅宓)와의 미묘하고 복잡한 애정관계에 몰두한다. 신화와 현실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억누르고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상상 속에서 현존재의 신비와 황당함, 패러독스가 드러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담론에서 서술되며, 소설 속 현실 또한 신화에 의해 진행된다. 허우허우이가 현실과 신화를 혼동하면서 신화와 현실의 논리질서는 완전히 전복되고 해체된다.

저 명한 역사학자인 그가 전생을 찾아 신화와 전설의 논증을 필생의 임무로 삼게 되면서 엄숙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로서의 그는 망각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담론” 내부의 공간이며, 이 담론은 이미 실재적인 역사와 현실의 증거를 상실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신화는 수정이 가능하고, 역사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현실 또한 존재의 거짓말로 가득 찬 세계이다. 허우허우이가 자기 존재의 기원을 망각하는 순간, 어떠한 권위 있는 담론, 어떠한 개인적인 담론도 허황하고 아무 근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상상적 존재와 담론은 똑같이 일종의 생활방식, 담론적 생활방식이 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에서 현실과 허구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38
진실의 다양한 변주


공산혁명, 문화대혁명을 거쳐 현재의 시간이 착종되어 있는 리얼의 대표 장편 《노래가락(花腔)》(2002)은 민족영웅 거런(葛任;‘개인(個人)’과 같은 발음이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역사에서의 개인과 지식인의 운명을 사고하고 질문함으로써 삶에 대한 깊은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적으로 봤을 때 80년대 선봉소설의 탐색성과를 종합한 “선봉소설의 열매”라 평가되며, 그 개인적으로봐서도 새로운 창작경향을 보여준 전환적인 의미의 작품이다. 2001-2002년도 가장 우수한 장편소설의 하나로 손꼽히며, 제1회“21세기 딩쥔(鼎钧) 문학상”을 모옌의 《탄샹싱》과 공동 수상하였다. 제6회 마오둔(茅盾)문학상에 입선되기도 하였다. 제목 “화강(花腔)”의 사전적 의미는 ‘가곡이나 희곡에서 기본 가락을 일부러 굴절시키거나 복잡하게 부르는 창법’을 가리킨다.콜로라투라(coloratura)의 번역어로도 쓰이며 교묘한 말솜씨, 교언영색이란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화강”은 웅성거림, 떠들썩함이란 의미와 함께 다성적인 서사구조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 거런의 이야기는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신분과 지위를 가진 세 사람에 의해 상이한 역사 시기(1943년, 1970년, 2000년)에 각각의다른 입장에서 진술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인공의 입체적인 구체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웅성거림 속에서 진실은사라져간다.


「망각」이 신화전설을 희화화하면서 지식인의 담론을 해체했다면, 《노래가락》은 역사적담론을 모방하면서 역사 담론 자체의 결함과 한계를 드러내고 폭로한다. 이 소설은 다중적 목소리로 개인/거런이 역사, 혁명,개인해방, 근대성과 마주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런이 맞게 되는 상황은 현실적인 국면과 사상적인 국면을 모두 가지고있는 어떤 것이다. 마르크스-레닌 학교 번역실의 번역요원인 거런의 삶과 죽음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서사의 중심이다. 거런/개인의운명을 실마리로 특정 역사적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생존실상을 묘사하며, 특정 역사적 문맥 속에서의 지식인의 “실어”상태를주목하여 거대역사에서 개인의 생존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개인은 역사에 매몰되며, 역사에 의해 비극적인존재로 화한다. 상이한 성격, 상이한 신분, 상이한 말투의 각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역사적 합법성을 증명하기 위해 거런의 말을말살시킨다. 소설은 개인과 역사, 역사와 정치의 불합리한 관계를 부각시켜 중국의 전통문화와 혁명윤리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던지고있는 것이다.


거런은 전사했기 때문에 기념비까지 세워진 전쟁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죽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거런의 생존은 그를 매우 난처하고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혁명영웅이 될 것인가 배반자가 될것인가, 죽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가 될 것인가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 건인가? 생존의 진상조차 밝힐 수 없는 선택불가의이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어찌해볼 수 없는 개인의 미약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그는 영원히 사라질수밖에 없다. 어떠한 문자도 남기지 못하게 하고 그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죽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소설에서그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다시 죽었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개인과 역사 사이의 가치충돌, 역사와 정치권력이 개인에게가하는 억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그 자신의 언어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일률적인 규율을 강요하는시대에서 개인이 어떠한 힘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순수한 인간이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역사와 시학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대응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 소설에 “역사시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한다. “나는 점점문제의 복잡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때문에 경험의 복잡성을 표현하는 데 보다 주의했다. 역사 또한 현실이며, 다른 주제를 주면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역사서술의 작업장 분위기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소멸, 민족주의의 복잡성 따위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되었다.그래서 《노래가락》을 쓰게 된 것이다.” “생활의 복잡성에 대한 감각은 지식인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은문화의 신경이며 문화의 예민한 촉각이다. 나는 ‘복잡성’이란 말을 좋아하고, 복잡한 생활, 복잡한 감각을 묘사하기를 좋아한다.지식인에 대해 쓰는 것은 나의 이러한 바램을 만족시켜 주고, 나의 글쓰기에 대한 이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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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9

농촌의 정치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작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石榴树上结樱桃)》(2004)는 《노래가락》과는 또 다른 변화가 시도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중국고전소설의 표현수법을 현대소설의 서사로 재활용하였으며, 지식인이 아닌 농촌을 주요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촌장 선거를 둘러싸고 권력의 유혹앞에서 시험받는 인간의 자존심과 양심을 묘사하여, 권력이 순수한 농촌을 어떻게 침식해 들어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의 선거나 과장, 부장으로의 진급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누가 촌장이 되는가에 따라 농민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농촌은 온갖 모순이 모인 곳이다. 농민은 생존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마을에서 한자리라도 차지해야 하고 조상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사내아이의 출생에 목을 매는 것 또한 합리적인 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들의 합리성은 국가정책과 모순된다.”

 

소재가 향촌으로 전환되었으되 여전히 지식인의 입장에서 향토 중국을 이해하려는시도임이 잘 드러난다. 그에게는 이 소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인 소설이다. 지식인 자아의 개성적 표현에서 나아가 타자인 농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식인의 책임임과 동시에 더욱 순수한 지식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리얼은 다른 향촌소설과는 달리 농민들의 고난 자체보다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요소, 현대적 문화가 변화시킨 농민들의 담론생활에 더욱 주목한다. 당대의 농민들은 돼지우리에 서서 핸드폰으로 촌장 선거를 토론한다거나 타이완 해협과 같은 정치현안, 지속가능한 발전, 미국 대통령 선거, 전지구화, 페미니즘 따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담론생활과 생존환경 사이의 “간극”이 그가 초점을 맞추고있는 부분이다.


“향토 중국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건 계속 꿈꿔오던 것이었다. 다른 향촌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기이한 사건을 서술하거나, 일상적 사건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든 난제를 묘사하고 싶지 않았으며, 현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향토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작가들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곤란”함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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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2

리얼은 15~6년간 거의 매일 소설을 읽어 왔으며 특히 유럽 소설을 섭렵하였다. 최근에는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방면으로 독서의범위를 확장시켰다. 이는 문학서적들이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좋아하는 작가는 카뮈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다.


창작 이외에 리얼이 가장즐기는 것은 잡담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것은 너무 비용부담이 크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축구를즐겨 본다. 그는 특히 중국 축구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중국의 모든 직종 중에 축구가 가장 제대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어느 영역에서 감히 이렇게 외칠 수 있겠는가? 이기든 지든 눈앞에 펼쳐져 모두가 볼수 있고, 욕할 수 있다. 게다가 수만 명이 모여서 같이 욕하고, 수억의 관중이 같이 목이 터져라 욕할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이게 가능한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통로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축구를 볼 때마다, 특히 중국 축구를 볼때마다 아무리 무참히 깨지더라도 속으로 잘 찼다를 연발한다. 이게 어디 축구겠는가, 이건 분명 전지구화 시대의 중국현실에 대한너무나도 리얼한 사진이다. 축구나 축구와 관련된 영역은 가장 현실주의적인 소설도 비교할 수 없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식《아내가 결혼했다》를 기대해도 좋을 대목이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 리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저는 원래 중단편소설 이외에 평생 세 편의 장편만을 쓸 계획이었습니다. 역사, 현실, 미래에 관하여 각각 한 편씩을 구상하고있었습니다. 《노래가락》은 역사에 관한 소설입니다. 《석류나무 위에 열린 앵두》는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던 중 임시로 끼어든것입니다. 지금 집필하고 있는 것은 원래 계획의 두 번째 장편인 현실에 관한 소설입니다. 내용이 비교적 복잡하고 편폭 또한길어서 대략 30만 자 정도 될 것입니다.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고 언제 완성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제 계획에 있어 이 세장편은 사실 하나의 생각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이 말은 뒤바꾸어도 됩니다. 미래는역사임과 동시에 현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현실은 역사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