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12. 11. 15. 18:00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저자
모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2-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 인민의 생명력 넘치는 삶의 풍경 속으로 초대하다!중국어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중편집에 들어있는 <소>는 모옌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상징들이 잘 드러나 있는 초기작이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꽤 괜찮은 작품으로 보인다.

맛깔나는 우리말로 옮겼지만, 읽으면서 헷갈리거나 내용전개상 반대되는 문맥으로 옮긴 듯한 것만 찾아서 고쳐봤다.


132쪽.

둥베이(东北) 저지대 웅덩이에서

东北洼里


"둥베이"라고만 하면 만주 지역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산둥성 가오미 동베이향, 즉 모옌 소설의 주배경이다. 혼동하지 않게 설명을 더해 주는 게 좋을 듯.



173쪽.

그럼 우리 뿔로 요놈의 자식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우리는 두 눈 멀뚤멀뚱 뜨고 요놈의 자식이 우리 소중한 불알을 공짜로 먹어치우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은 무슨 느낌이 없었나? 저 놈이 우리 불알을 먹어치울 때, 나는 내 불알 껍질이 칼로 쪼개냈을 때처럼 아팠네. 난 정말 답답해 죽겠네.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왜 그때는 불알 껍질에 고통을 느낄 수 없었을까?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 역시 아픔을 느꼈다네.

那咱就把这小杂种顶死算了,咱们不能白白地让这小杂种把咱们的蛋子吃了。大鲁西道:兄弟们,你们有没有感觉?当他吃我们的蛋子时,我的蛋子像被刀子割着似地痛。我真纳闷,明明地看到他们把我们的蛋子给摘走了,怎么还能感到蛋子痛呢?

双脊和小鲁西说:我们也感觉到痛。

=======================================


그럼 우리 요놈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요놈의 자식이 소중한 우리 불알을 날로 먹게 할 순 없잖은가.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도 느꼈는가? 저놈이 우리 불알을 먹을 때 내 불알이 칼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팠다네. 난 정말 궁금한 게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봤는데, 어째서 계속 불알이 아프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거지?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도 아픔을 느꼈다네.



185쪽.

"싯누런 기름투성이 오르알 노른자가 내 밥그릇에 굴러들었을 때, 두씨 마나님은 딸 두우화에게 코를 찡긋하고 눈짓을 보냈을나, 두우화는 그저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 두우화가 못 본 척 무시해버릴수록, 나로서는 호의적인 눈빛을 보여줄 필요가 더욱 없었다. 나는 추호도 사양하는 기색 없이 싯누런 오리알 노른자를 한입에 삼켜버려, ..."

====================================


두우화도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데, 내가 눈치 좋은 척 할 필요가 없었다.



196쪽.

"뤄한아, 우리네 걸음걸이가 별로 느린 셈은 아니다만, 이런 식으로 마냥 걷다가는 한밤중 열두시나 되어야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구경하러 갈 때는 겨우 이십 분이면 뛰어갔다니까요."

“罗汉,咱爷们儿走的还不算慢,按这个走法,半夜十二点时,也许就到兽医站了。”

 我说:“还要怎么慢?我去公社看电影,20分钟就能跑到。”


==================================

"뤄한아, 우리 걸음이 그런대로 느린 건 아니다. 이대로만 가면 밤 12시엔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보러 갈 땐 20분만에 뛰어 갔는데요."



197쪽.

우리 할아버지가 인민공사 서기 노릇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 -> 아버지. (그 아래 대화도 마찬가지)


204쪽.

홰나무에는'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란 별명을 가진 벌레가 자라는데,

杨树上生了那种名叫“吊死鬼”的虫,


吊死鬼는 '자벌레'.


=================================

사시나무에는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라 불리는 자벌레가 사는데,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2. 11. 12. 05:09

이 단편집은 번역이 맛깔나서 한국책으로 읽는 맛이 있다. 강추.

그렇지만 중국 실정과 안 맞는/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번역도 좀 있다. 독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만 메모 삼아 몇 가지 정리해 둔다.


21~25쪽.

구직탄원서 : 각주에 报销单据에 대한 설명을 "공공업무에 사용한 비용을 사후 해당기관에 청구하는 증빙서류"라고 맞게 달아 두었다. 그런데 "문맥에 맞게" 구직탄원서로 번역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문맥에 맞지 않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공장장, 시장 찾아 가서 구직을 탄원하는 건 (안 될 거야 없지만) 좀 생뚱맞다. 공장에서 짤리지 않았다면 병원 비용을 직장에서 납부하게 되어 있다. 갑자기 짤렸는데, 짤리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서 "여러 해 저축해 둔 돈을 거의 전부 탕진"해 버렸으니 안 되는 줄 알면서 비용을 받아내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그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증명서가 报销单据이다. 따라서 각주의 설명을 살려 "비용청구서" / "(의료비) 공제서류" 정도로 옮겨주는 게 맞겠다.


27쪽:

적삼; 중국산 견직물 적삼 : 너무 사전적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중국산 견직물 적삼을 입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렇게 부르지 않을 거다. 게다가 배경이 현대인데 적삼이라고 하니 너무 고전적이다.. 纺绸衬衫. 비단 셔츠?


49쪽:

"강제 퇴직까지 겪으신 몸인데, 여기서 더 재미없는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손님 꼬시기가 낯부끄러워 자기 도제에게 상담하는 장면이다. 不好意思를 옮긴 "재미없는"은 "창피할", "욕볼", "낯뜨거울" 등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강제 퇴직당한 양반이 뭘 그래 체면 따지고 그러십니까?"


49쪽:

"사부님, 제 말씀이 듣기 거북하시면 아직 배가 덜 고프셔서 그런 겁니다. 언젠가 굶주릴 때가 되면, 체면과 배고픔을 비교했을 때 뱃속부터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깨달으실 겁니다."


"사부, 제가 싫은 소리 몇 마디 할께요. 사부는 아직 견딜만 하신가 봅니다. 언제고 배를 곯아 보면 얼굴이랑 배 중에 배가 더 중요하단 걸 아실 겁니다."


83쪽:

'중화'표 고급 시가 두 대 : '중화' 담배 두 보루.


条는 가늘고 긴 물건을 세는 양사이다. 그래서 그냥 시가라고 옮긴 듯하다. (아마 담배를 안 태우시는 분인 듯). 보루가 条이다. 한 개피는 根. 최근엔 달라졌지만 '중화'는 고급담배의 대명사였다. 예전에 한국담배 2000원 겨우 할까말까할 때 한 갑에 40원(당시 환율로 4000원) 했다. 돈 많은 놈들은 그냥 피기도 했겠지만 주로 선물로 많이 돌렸다. 요즘에야 한 보루 5600위안(택스 포함 100만원 ^^) 하는 담배까지 생겼으니 상전벽해.


나라면 "도제"는 "부사수"로 옮겼을 것 같다.

"사부"는 사부님부터 아저씨까지 걸쳐 있는데, 도제가 부르는 호칭이니까 사부가 맞긴 하겠다.

"유머러스"는 제목으로는 나쁘지 않아도, 문장에서는 느낌이 좀 안 산다. 흔히 "웃기는 양반이네" 라고 말할 때의 어감이라고 할까?

살리기가 쉽지 않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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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0. 9. 27. 12:38

지난 7월 13일 새벽 1시에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향년 78세.

타계 즈음에 가족이 중국에 다녀갈 때라 뉴스를 챙길 정신은 없었다. 찾아 보니 중국쪽은 관련 기사가 있고, 몇몇 학자가 그의 학술생애를 정리하는 글을 발표했다. 바이두 백과의 인물소개도 벌써 업데이트되어 있다.
나는 가끔 들르던 사이트에서 쑨꺼의 "送别沟口雄三先生"라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송별"??....이라구?!

검색해 보니 한국쪽 뉴스는 전혀 없다. 놀랍기만 하다. 유일하게 발견되는 네이버 블로그도 중국쪽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국내에도 미조구치 선생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타계 소식도 알고는 있는 모양인데. 가신 분께 적절한 예의 정도는 갖춰야 했지 않나 아쉽다. 계간지들은 겨울호를 준비하나?

물론 내가 선생과 막역한 사이일 리 만무할 뿐더러, 그의 책 중에 제대로 읽은 것도 없다.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도 석사 시절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어렵기도 하고 다급히 읽어야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만두곤 했다. 어찌보면 저 정도 책은 필독서로 한 번 읽어줬어야 했는데, 기본으로 읽어야 할 책 중에 안 읽은 책이 저것 뿐이었겠나 하며 위안한다. ㅠㅠ (즉 나는 전혀 그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쪽글 몇 개에서 살짝 감화를 받았을 뿐이다..)

쑨꺼는 듣기로는 미조구치 선생과 꽤 친분이 있는 사이였던 것 같다. 일중 지식인 네트워크도 같이 하고.. 이번에 글을 읽어보니 그의 문집 번역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글은 중국인 독자를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겠지만, 미조구치의 학술생애 중 주로 중국사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후반기의 활동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담담하게 그의 사상을 정리하고 있고, 쓸데없이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꼭 필요한 이야기를 잘 지적하고 있다.


쑨꺼의 글은 <중국사회과학보> 8월31일자에 발표되었으나, 여기서는 일부만 게시되어 있다. 인터넷에 전문이 소개된 곳이 많이 있고 그 중 내가 확인한 곳은 첨부된 문서에 밝혀져 있다. 해외에서 한글로 이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중간 부분에 사상사 관련,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부분의 번역은 정확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게 문장만 다듬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혹시 잘못 옮겨진 부분이 있다면 알려 주시고..

5페이지 정도 되는 글은 웹보다 출력해서 보시는 것이 편한 것 같아 문서를 첨부한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0. 7. 24. 00:30

1. 달제(獺祭)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풀면 “수달의 제사”라는 뜻인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달제 혹은 달제어(獺祭魚; 수달이 물고기를 제사지내다)의 뜻은 대충 다음과 같이 풀 수 있다.


# 수달은 포획한 물고기를 물가에 벌려놓곤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상을 차려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고 해서 나온 말.

# 글을 지을 때 참고서적을 이리저리 벌려 놓는 것, 전고를 많이 사용하거나 예전에 있었던 관련사항을 나열하여 문장을 짓는 것을 비유.

# 수달이 물고기를 잡으면 잔인하게 죽인 뒤 한 입씩 맛만 보고는 던져 놓아 먹다 남긴 물고기가 사방에 쌓인다고 한다. 이 경우는 ‘제(祭)’의 본의를 ‘잔인하게 죽이다(殘殺)’로 푼 것. (이 경우에도 먹다 남긴 물고기가 쌓이는 것처럼 짧은 글에 다양한 뜻을 쌓아넣는 전고(典故)를 활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수달의 성질이 정말로 어떠한지 보다는 수달을 핑계삼아 짧은 시 한 구절을 지을 때도 세상 모든 책을 펼쳐놓고 뒤적여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고 보면 되겠다. "달제"라는 말을 연상시킬 정도로 함축적인 표현과 전고의 활용에 능숙했던 대표적인 작가는 당대 시인 이상은(李商隱)이다. (자기도 그 많은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서 그랬겠지만 :-) 그는 시를 지을 때 책상 여기저기에 책을 벌려 놓고 시구를 다듬곤 했다고 한다. 마치 수달이 제사를 지내듯 말이다.[각주:1]


2. 이사 때마다 먼지쌓인 책들이 골치다. 라고 마나님이 말씀하셨다. 저놈의 책 땜에 이사비용도 늘고 시간도 지체되고 정리하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라고 말이다. 동의한다. 한데 나는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고, 잘 정리되어 꽂혀 있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데 마나님은 읽지 않는 책은 살 필요가 없고 읽은 책은 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적거리며 찾아야 할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정작 나의 작은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잘만 이용하면서 말이다.

지난 번 이사 때 책을 많이 버렸다. 사실은 복사물이나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최대한 주저하며(그리고 마나님이 버리려고 내놓은 것 중 눈치껏 다시 주워담아가며) 선별해서 버렸는데도 꽤 빠져나갔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좋을 책도 제법 내다버렸다. 미리 계획하고 솎아 냈다면 헌책방에 기증(?)하거나 블로그에 공지를 올려 필요한 분들에게 선물하여도 좋았을 텐데, 이미 이사라는 "일"의 일부가 된 뒤, 닥쳐서 급하게 하다보니 재활용 공간에 내다 버리기에 바빴다. 헌책이든 새책이든 상품으로 사고 선물로 받은 것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3. 이번에 또다시 큰 이사를 하며 책을 또 줄여야 했다. 시골집 방 한칸에 책을 옮겨놓기로 했는데,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필요없는(!) 책을 솎아내야 했다. 무심결에 마님께 이렇게 말했다.

이북 리더 사 주면 당장 책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사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걸 나에게 사줄 리도 없고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되돌아온 답은...

얼만데?

응.. 그냥 흑백으로 이북만 볼 수 있는 건 한 30만원이면 돼.

당장 사줄테니 책이나 줄이셔!
내가 기대한 최대치의 대답은, 내가 그 물건을 사도 괜찮다는 윤허 정도였다. 평소 행동으로 봐서 전혀 믿어지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속는 셈치고 열심히 책을 솎아냈다.


예전 석사논문 쓸 때 어렵게 구한 자료들도 대표적인 것 몇 개만 남겨두고 쑥쑥 골라냈다. 대학원 들어온 후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샀던 당시 시가 30만원 정도의 <한어대사전>은 지난 번 이사 때 버렸다. 씨디롬 나온지 한참 되었고, 요즘은 Lingoes에서 전문을 검색할 수 있다.(위에 달제 뜻풀이도 lingoes 한어대사전 뜻풀이를 '편집'한 거다.) 노신전집은 대학원 후배에게 보내줬다. 그것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노신전집 이야기가 나와서 줄 수 있었다. 지난번 이사 때 아끼고 주저했던 책들, 석박사 논문들, 학회 발표문들, 기타 정리되지 않은 복사물 등을 죄다 내다놓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랄까, 이상하고 신기했던 건 아무도 책을 골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설이나 산문집 중에 꽤 읽을 만한 것도 있었고 교재들도 좀 있고, 아무튼 가져갈 만한 책이다 싶은 것, 예전에는 한두 권씩 집어가곤 했던 부류의 책을 이번에는 아무도 집어가지 않았다. 대신 날이 어두워지자 순식간에 통째로 사라졌다. 그 다음날 비슷한 양을 다시 내다 놓았는데, 이번에는 미리 대기한 듯 잠깐 사이에 종이 한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폐지 값이 비싸져서 그렇게 한두 번 내놓은 양이 6-7만원 어치는 넘어갔나 보다. 이사짐 아저씨가 그럴 거면 자기들 주지 그랬냐면서 들려준 이야기였다.

아무튼, 열심히 책을 줄이고 마님께 다시 당부를 받으려고 물어봤다. "당장"이 언제야? 이사 끝나면 당장 사는 거지? 돌아온 대답은 구질구질하게 밝히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수 있을 듯. 처음부터 믿기지 않는 말은 믿지 말았어야 했다. 책은 사라졌고 이북 리더도 사라졌다. 덧없는 인생이다.


4. 한국어 전자책 컨텐츠는 아직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독서용 책과 참고용 책을 조금 분리하는 편인데, 독서용 책은 여전히 인쇄된 서적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다 읽지 않더라도 "물건"을 들고 한장 한장 넘겨가며 재미난 구절에 줄도 그어가며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아껴읽는 것이 좋고 편하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갖 잡다한 지식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때그때 뒤적여봐야 하는 책은 이북이 좋을 것 같다. 한 구절을 위해 책 한 권의 부피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낭비니까. 책상 여기저기에 이 책 저 책 펼쳐놓는 것보다 컴퓨터 화면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뒤적거리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공간에 구애받지도 않고 검색에도 편하다. 이른바 e-달제 스타일? ^^;; 적어도 도구가 되는 공구서는 이북이 훨씬 편했다.(사전을 그냥 치운 것이 아니다.)


다행히 나에게 도구가 되는 참고용 책들은 중국어 원전이 많고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근대 이전의 책들이 많다.


영어권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중국은 신간의 이북 종류가 우리나라보다 다양한 것 같다. 솔직히 왠만한 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2000년 이전 출간도서의 경우, 아직 규제가 심하지 않아서인지 자체제작한 도서 pdf 파일이 많이 돌아다닌다. 불법dvd와 마찬가지로 이런 해적판 pdf서적들도 앞으로 외부의 압력이 적지 않을 것이고, 결국 많은 규제를 받을 것이다. 근대 이전 자료들은 원작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파일이 웹에 공짜로 돌아다니면 영인한 출판사 쪽에는 손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저작권을 엄밀히 적용하면 문제가 될 사이트가 수두룩하겠지만, 자료 하나 복사하러 북경으로 홍콩으로 다닐 필요 없이 내가 필요한 문서를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한때 영화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오면 눈이 뒤집어져 몇 십만원 어치의 디비디를 사 들고 간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국내에서 정상적인 경로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엄청난 "자료"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되었건 내가 책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의 이북은 앞으로 몇 년 두고 봐야겠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중국어/한문 원전의 참고용 공구서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디지털로 가공되어 있다는 점. 어차피 달제형 인간들은 이북 베이스로 옮겨갈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 고정된 장소에서만 작업한다면 듀얼모니터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다양한 문서포맷을 지원하는 아이리버 스토리.
그러나 그래도 역시 아이패드.

한번 충전하면 무진장 오래 쓸 수 있고 눈에도 편하고 가격도 적당한 아이리버 스토리가 좋을 듯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이패드.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Kindle DXG


  1. 宋吳炯《五總志》:“唐李商隱為文,多檢閱書史,鱗次堆集左右,時謂為獺祭魚。” [본문으로]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9. 10. 31. 00:38
동아시아 출판인회의를 조직하여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한다는 말을 일전에 들었는데 29일에 선정 및 발표되었다.
동아시아 격변기 세계관 바꾼 ‘현대의 고전’ 한겨레
“거대한 독서공동체 복원 첫걸음” 한겨레
한·중·일 이어줄 ‘100권의 책’ 중앙일보
책에서 동아시아 문화 유전자 찾는다 중앙일보

내가 번역한 책도 후보에 올라와 있어 출간을 약간 미루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최종선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후보 명단에 올라와 있던 책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출판사별로 나눠먹기식이어서 성격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선정된 책들을 보니 나라별로 기준은 다르지만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색깔에 의하면 중국쪽에서 선정한 목록에 내 번역서가 포함되지 않는 게 너무 당연하게 보일 정도이다.

목록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선정기준이 거의 유사하고 출판인회의에서 내세운 취지에 잘 맞는 것 같다. 두 나라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역사를 거쳤고 그것을 해결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이 "학술서"에 보다 치중한 반면 한국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진 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에서 아니나다를까 선정 기준이 뭐냐고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편집자 레터] '한국 대표하는 책' 기준은), 한국일보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저술한 학술서와 고급 교양서"임에 반해 한국은 "정치ㆍ사회적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 눈에 띄어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한국쪽 선정도서에 대한 견해는 비슷한데, 일본쪽 선정도서에 대해서는 한국일보와 한겨레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어차피 한국사람들에겐 생소한 분야라 신문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 테니까.)

이에 반해 중국쪽은 명확하게 중국 "학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뭐, 그다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그런 거. 처음 추천후보에 각종 사전류가 대거 포함된 것을 생각해 보면 많이 나아진 거긴 하다. 사전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하긴 할 테지만, 무려 "동아시아 100권의 책"으로 서로 돌려보자는 취지에는? 그걸 어찌 번역해? 후후.
암튼 정리된 최종선정 목록에는 인민공화국 건립 이후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중국쪽 매체에서는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한국어로 엉성하게 번역된 책 제목이 아니라 좀 더 정확한 목록을 살펴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되어 나오는 건 중앙일보 등이 올초에 제공한 기사의 중문판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중국 쪽은 발만 슬쩍 담근 형국??


이 중 한국어로 이미 번역된 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1. 시론, 주광잠(주광첸), 동문선
4. 중국철학약사, 풍우란(펑유란) ; (간명한)중국철학사 / 펑유란 지음 ; 정인재 옮김 형설, 2007
7. 한어사고, 왕리 ; 중국어 어법 발전사 / 王力 著 ; 박덕준 ... [등]역 사람과책, 1997
10. 미의 역정, 이택후(리쩌허우), 동문선

18. 담예록, 전종서(첸중수) ; 하나마나한 번역으로 <중국어문학> 학회지에 완역(미출간).
19. 향토중국, 비효통(페이샤오퉁) ; 중국사회의 기본구조 = Rural China / 費孝通 원저 ; 이경규 역 一潮閣, 1995
20. 현대중국사상의 흥기, 왕후이 (출간예정)

대만
3. 중국예술의 정신, 서복관(쉬푸관) ;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權德周 ... [等譯] 東文選, 1990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李鍵煥 譯 百選文化社, 2000
11. 만력 15년, 레이 황


각 신문들의 소개를 보면, 책 제목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사람 이름에서는 오류가 많다. 특히 중국식 병음은 많이 알려져 거의 오류가 없지만(중앙일보 표기는 엉망이다), 대만식 영문표기는 대부분의 신문에서 뒤죽박죽이다. 웨이드식 표기라는 걸 모르면 장광즈(張光直)를 창쾅츠(Chang, Kwang-chih)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심종문(선충원)을 셴콩웬(Shen Congwen)이라고 읽는 건 뭘까? 아마도 홍콩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번 선정에 한중일 각 26권, 대만이 15권, 홍콩 7권이다. 그러나 대만, 홍콩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은 한두 권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범중화권으로 묶일 수 있을 성질의 것들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 대륙에서 출간하지 않고 홍콩이나 대만에서 출간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규모 면에서 한중일이 똑같은 분량으로 했을 때 나오는 불균형을 이런 식으로 메꾼 것으로 보인다만, 대만이나 홍콩 자신의 역사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정련한 책들이 아쉽긴 하다. (이 목록만 보면 이들은 이미 "하나의 중국"이다.)

신문에 소개된 것처럼 차후에 번역이나 후속활동이 계속되겠지만, 이제껏 한중일 삼국이 서로 관심 가는 책들을 번역해서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물론 중국에서의 한국책 번역 비율은 낮다만, 사업 이후에 갑자기 한국책을 많이 번역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사업 자체로 문화공동체 운운하는 건 좀 과장일 듯하다. "같이" 뭘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든 책은 없고 자국의 특성을 강조하는 책들로 다들 뽑았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 쪽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공동체"로 묶이는 걸 그닥 바라지도 않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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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9. 8. 8. 01:23
고민하는 힘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제목 그대로이다. <고민하는 힘>이 세 권이 된 이야기.

강상중의 어느 책보다 잘 팔릴 것같고 많이 팔린 이 책을 내가 사게 된 것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나를 이모부라고 부르는 꼬마가 있는데, 그 조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조카는 지금 주재원으로 나와있는 아빠를 따라 상해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 초등학생이다.
아빠의 연수 때문에 미국에서 3년간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에서 또 2-3년, 그리고 또 상해까지.. 이렇게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다. 그런데 적응의 강도가 지나쳤나 보다. 조카가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킨다고 친구 아버지가 집까지 찾아와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자식이 왕따를 당한다면?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자식이 왕따를 시킨다면?
이 또한 마찬가지로 골치아플 것 같다.

문제가 되었던 그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 생활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그 사건을 계기로 마음의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지만,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멀찍이서 살펴보기에 조카가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라
(대견하게도?) 왕따를 시키는 쪽이 되었던 건 주류에의 욕망 같은 게 아닐까 짐작해 봤다. 계속 떠돌아 다녀야 했고, 친구들도 계속 바뀌어왔다. 변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 안정된 상태에서 조금씩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갈 환경이 아니었으니,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 속에 내가 포함되는 편한 방식을 택한 듯하다. 듣기로 포항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문제가 되었듯이 상해에서도 너무나도 빨리 또래의 주류 속으로 잘 편입되었던 듯하다. 이쁘고 똑똑하고 공부 잘 하니 뭐 하나 빠질 건 없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까 를 기준으로 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것 말이다. 어린 조카에게 자기 취향과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라고 충고하는 건 너무 과한 것일까? 이 주류의 범위는 좁게는 잘 나가는 또래 그룹에서 시작하여, 상해에서도 중국인들이 다니는 저렴한 로컬 학교가 아닌 내 박사과정 등록금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욕망 같은 것을 넘어, 더 멀리 가면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에의 경도까지를 포함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시작했으니 미국적 시스템과 한국의 학교시스템이 어린 친구 눈에도 너무 확연히 차이가 났을 테다. 그런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학교 졸업 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목표만 가지고는 .. 그것 자체로 조카가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다. (잘 돼 봐야 돈 좀 많이 벌고, 잘난 놈과 결혼하는 것 정도?)

자기만의 상상력을 키우고 자기 생각이란 것이 있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미국이든 유럽이든 대학을 선택한다면 나는 조카가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냥 중국이든 한국에서 대학을 다녀도 마찬가지고.

정리되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이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귀국하는 날까지 책이 도착하지 않아 공항서점에서 또 한 권을 샀다. 먼저 읽고 선물을 한 다음 뒤늦게 도착한 책은 한국집에 보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또 한 권을 샀다.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을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와이프가 산 책은 또 다른 친구에게 선물하고, 내가 산 책은 조카에게 선물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5월8일에 사놓고, 언제 줄 거니!? ㅡㅡ;;)

<고민하는 힘>을 다 읽고 나도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민상담용 책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을 주문하는 책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우리들의 고민이란 게 소세키나 막스 베버가 살았던 100년 전의 고민과 많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누군가 먼저 고민하고 내놓은 대답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내가 고민하고, 그 고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확신할 때까지 계속 고민"하는 것, 거기서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살아가는 의미라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결국 자기가 찾아야 하는 것일 테니까.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고민.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될까? ^^

http://lunatic.textcube.com2009-08-07T16:23:0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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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6. 00:29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책꽃이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가 에필로그 부분을 확인해 본다.

홍콩판은 국역본과 결말이 조금 다르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판본인데 그건 잡지판을 그대로 배포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역본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이 새로운 내용이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화청>2005년호를 찾아 복사하고 콩푸쯔 헌책방에 홍콩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주문 넣었다. (그러고 보니 금서로 지정되어 전량 회수되었다던 잡지<화청>의 해당호는 버젓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소설의 홍콩판, 대만판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5금" 조치는 어쩌면 중국 내부에서는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작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외국에서 더 흥분해서 이용하는 홍보문구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쪽에서도 일단 원칙적으로 금지는 하되, 이미 파급력이 별로 없는 소설 나부랭이가 그러덩가 말덩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위도 검열되고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던 몇 군데만 찾아보고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어제 번역 정리하느라 다시 꺼낸 김에 좀 살펴보다가 국역본 결말과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국역본에는 역자가 어느 판본을 참고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짐작하기에 대만판을 참고했는데 그게 다른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저자의 요청이었을 수도 있으며, 국내 출간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출판사와 상의하에 삭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자였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판단은 어차피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잡지판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부분이 대부분 실리지 않았고(잡지 게재만으로 문제가 되었다. 즉, 사상적인 검열 때문에 부분삭제하였던 건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참고삼아 홍콩판의 결말을 추가로 번역해 둔다..


 

...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 제일 위쪽에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종이에 써 줘. 돈이 필요하거들랑 액수와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고.


눈 꽃이 휘날리는 그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 들었다. 두께가 반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조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국역본은 여기서 끝난다. 어찌보면 군더더기 없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홍콩판 결말은 바로 이어서 몇 문단이 계속된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흘 후, 이미 중년을 넘어선 류롄이 사령관과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양저우에 있는 친정에 좀 다녀올께.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가서 형제자매들이나 좀 보고 올까 해. 그러나 그렇게 떠난 뒤 류롄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사령관은 양저우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류롄이 양저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류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눈꽃처럼 군구(軍區) 대원(大院)의 1호 사택에서 사라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계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향기만이 그녀가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 놓고 있을 뿐.

2004년 8월 17일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http://lunatic.textcube.com2009-03-26T10:21:410.31010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4. 21:52
이글은 일전에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으며 체크해 둔 몇 부분의 번역을 만져본 것이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비평을 원한다면 다른 글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먼저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오역을 잡아내기 위한 의도로만 쓰여진 것은 또 아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몇 권의 역서를 통해 보건대, 역자 김태성의 번역은 훌륭하다. 그만큼 일정한 수준의 번역으로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중국어권 번역자 중에서도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설 번역은 한두 문장의 오역이 있더라도 작품이 전하는 어떤 느낌이나 풍을 잘 살리는 한국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풍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내가 역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고, 시험삼아 한번 번역해 본 것이다.


일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제목 번역부터 역자의 입장을 볼 수 있다. service의 번역어인 "복무(服務)"는 보다 공적인 "봉사"라는 의미와 함께 손님접대와 같은 의미인 "서비스"에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와 같이 제한된 문맥에서만 자주 쓰이고 거의 서비스로 대체된 듯하다. 이 소설에서는 일단 인민대중에게 봉사하라는 모택동의 공적인 표어를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른 "써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말로 치환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극히 공적인 표어가 은밀하고 사적인 밀어로 환치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다른 소개글에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인민에게 봉사하라"라는 뜻이 표어로서는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봉사"보다는 "복무"를 선택함으로써 역자는 투박하지만 문혁 시기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투박"이 문제인데, 투박한 문체를 지나치게 세련되게 번역해서도 안 되겠지만,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긴 글의 일반적인 문제가 투박하다는 점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원문 문장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스타일의 투박함이 아닌 번역의 투박함이 생기는 것이다. 혹자는 직역주의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루쉰의 "딱딱한 번역"이나 "타국화 번역"의 문제로 투박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게 다 중문과 출신들이 중국소설만 열심히 읽고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결과이다. 즉 한국어를 능청스럽게 다루지 못한다. 한국어를 장악하지도 못했으면서 한국어를 되돌아보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타국화 번역을 지향한다고 떠든다면 말이 될까? (이런 식의 비판은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비판이다..ㅡㅡ;;)

그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옌롄커가 아주 세련된 도시풍의 중국어를 구사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의도적인 투박함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한국어 번역에서는 원문에 너무 매여 늘어지거나 투박하게 만들어진 문장이 있고, 그게 소설 읽는 맛을 조금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번역문도 정확하거나 세련된 것은 아닐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거나 그거나 별 차이 없네 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전문을 검토한 게 아니라 읽으면서 체크한 몇 부분만 옮겨본 것이니, 감안하고 읽기를 바란다.


보라색 글씨는 번역 원문, 초록 글씨 나의 수정, 그외는 설명이다.


(첫 시작, 1장 13쪽)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소설 속의 사건이기도 하고 삶 속의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삶의 수많은 진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 왜냐하면 어떤 진실한 삶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에 이르게 할 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소설 속의 사건임과 동시에 삶 속의 사건이다.

  혹은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한 사건을 재연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문의 문단구분을 따른다.)



13-4쪽.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 바구니를 들고 사단장 집 주방 입구에 서 있을 때, 그 사건은 또르르 굴러와 마치 수소 폭탄이 터지듯이 요란하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당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붉고 큰 글씨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이번에는 타일로 마감한 주방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이 어색한 이유는 2장의 시작과 함께 바로 받고 있는 말과의 호응 때문이다. 2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바로 지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나무팻말이 또다시 식탁을 이탈해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 시간상 이 "또다시" 이후 전개되는 사건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를 전담하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를 한 바구니 들고 사택 주방 입구에 섰을 때, 그 사건은 수소폭탄이 터지듯 쾅 하며 그의 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탁 위에 진열되어 있던, 커다란 붉은 글씨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란 문구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또 한번 주방의 타일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101쪽.

류롄의 유혹을 거부한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에서 쫓겨나고 전역하게 생겼다. 다급해진 우다왕은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기회"? "인민을 위해 복무할" 기회? 자신의 공적인 욕망을 위해 그녀의 사적인 욕망에 서비스할 기회? 류롄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주문을 외며 우다왕에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한다. 우다왕은 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때 류롄은 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를 뱉어낸다." 국역본에서 그 한마디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러나 이러고 보니 발가벗은 것을 칭찬하고 그것으로 끝난 느낌이다. 문맥상 관계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원문은 다음과 같다:

她说,为人民服务,你为呀,你为呀,你为呀。(잡지에서는 "你为呀"라는 말을 한 번만 한다. 분량 때문에? ^^)

그냥 옷만 벗고 끝난 게 아니라, 옷을 벗으며 눈길을 교환하는 동안 둘 사이의 공기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뒤따르는 마지막 말(5장을 끝내는 말)은 칭찬으로 끝날 게 아니라 생략된 그 이후의 장면을 예비하는 느낌이어야 할 것이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해 봐, 어떻게 서비스할 건데? 해 보라구! 하면서 발가벗은 이후의 행위를 재촉/암시하는 말로 번역되는 게 좋겠다. 내가 제안하는 문구는.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해봐, 해 보라구!"



좀 약한가? 그럼 조금 더 세게 나가보자.

둘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고 류롄의 몸은 점점 깨어났다.


114.


"그럴 필요 없어. 어서 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줘. 손은 멈추지 마. 입술도 멈추지 말고. 내 거기를 만져줘. 내 거기를 빨아줘.내 거기를 만지고 빨아달란 말이야. 지금 난 사단장의 마누라가 아니야. 나는 우다왕의 아내란 말이야. 난 이미 날 송두리째 샤오우한테 맡켰어. 죽이든 살리든 샤오우 맘대로 하란 말이야."


역자가 조금 지나치게 야하게 번역했다. (원문은 : 想亲我哪儿、摸我哪儿了,你就亲我哪儿摸我哪儿吧). 구문 자체는 "어디든 ~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렇게 해"이다. 어디(哪儿)를 거기(那儿)로 하는 바람에 '세계의 근원', 거기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조금 재미없게 풀어서 해석하면, 내 몸 어디든 키스하고 싶거나 애무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키스하거나 애무하라는 말이겠다.


"필요없어. 그보다 어서 날 안아서 침대에 눕혀 줘. 손은 멈추지 말고 입술도 멈추지 마. 어디든 상관없어. 빨거나 만지고 싶으면 내 몸 어디라도 빨고 만져줘. 이제 난 너희 사단장 마누라가 아니라, 너 우다왕의 아내야. 난 이미 니 꺼니까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



115.

"하늘과 땅처럼 영원하고 열광적인 그날의 키스와 애무로 인해 두 사람의 분명했던 관계는 복잡하고 애매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그 격정적인 키스와 애무는 그렇게 분명했던 그들의 관계를 모호하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성어의 번역이 조금씩 어색하다. 여기서 쓰인 성어는 천장지구(天长地久)이다. 42쪽의 "주사를 가까이 하면 빨개진다는 식"이란 번역도 마찬가지다. 近墨者黑 近朱者赤(근묵자흑 근주자적)에서 가져온 거지만, 너무 빨간 색을 살리기 보다는 다른 식으로 푸는 게 어땠을까 싶다.


116.


  고개를 든 그는 그녀의 창백한 모습을 발견했다. 온몸이 누렇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 같았다.

  뜻밖에도 그녀가 혼절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혼절했다는 것을 알았다. 격정에 사로잡혀 혼절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와의 불타는 섹스가 갑자기 광풍과 폭우가 몰아치듯 그녀에게 경험하기 힘든 숨막힘과 활력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누렇게 뜬 몸을 바라봤다. 죽은 사람인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까무러쳤던 것이다.

  그도 그녀가 까무러쳤다는 걸 안다. 격정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듯 격렬한 섹스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숨막힘과 활력을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독서법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하진의 <기다림>과 함께 읽는 방식이다.


<기다림>의 우만나도 류롄과 마찬가지로 간호사이다. 만약 우만나가 쿵린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웨이 정치위원과 결혼했다면, 그 이후 펼쳐질 삶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의 류롄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다림>의 쿵린과 우만나 이야기의 다른 버전으로 <인민을~>를 읽으라는 것이 아니다. 문혁이라는 시기와 육군병원 혹은 부대라는 공간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한쪽은 모든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고 담담히 2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세상 전체를 파괴할 듯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다. 문혁시기를 살아간 대부분의 일반적인 중국인의 삶은 이 두 가지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의 극단적인 표출방식이 문혁 시기와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의 어떤 경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7. 15. 11:14

왕사오보의 중편소설 <황금시대>의 초반부 번역이다.
심심풀이로 조금 번역해 보다가 국내에 기출판된 것을 확인하고 김이 샜다.
2000년에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 것.
번역은 특별한 오류는 없는 듯하나 소설을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
내 번역이 왕사오보의 문체를 더 잘 살렸다고 확신할 배짱은 없다만,
보다 간결하게 흐름을 살려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둔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보다 적절한 문체는 어떤 걸까?
"절묘하다!" 라는 느낌을 내 번역에서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작가 왕사오뽀(1952-1997)는 97년에 이른 죽음을 맞은 후 재평가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꽤 많은 독자층과 비평계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많은 청년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2006년 여름 상하이의 대형 서점마다 왕사오보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인기만 좋은 시덥잖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겠거니 했는데 조금씩 소문도 듣고 내가 직접 읽어본 뒤에야 맛을 알게 되었다.

대표작은 <황금시대>, <백은시대>, <청동시대> 연작(시대삼부곡)이며, 그 외 <침묵하는 대다수>, <사유의 즐거움> 등의 산문집이 있다.

그 중 <황금시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현실'을 다루었고, <백은시대>는 미래를, <청동시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삼부곡"은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필치로 시대를 넘나들며 권력이 인간의 욕망과 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압하는지를 잘 그려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각각 중편모음집인 이 연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주간> "20세기 중국소설 100선", 중국당대문단 "최고의 수확"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간단한 작가소개 정도는 해두려고 논문과 소개글 몇 개를 모아 두었는데
물론 언제 정리할 마음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황금시대

왕사오보

王小波, 《黃金時代》, 陜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


나는 스물한 살에 윈난의 생산대로 배속되었다. 천칭양(陳淸揚)은 당시 스물여섯이었으며 거기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산 아래 14생산대에 있었고 그녀는 산 위 15생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걸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론하려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대충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녀가 토론하고 싶어 한 것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걸레라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서방질을 해야 걸렌데, 자기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남편이 일 년 간 감옥에 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서방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자기를 걸레라고 부르는지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논리적으로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만약 천칭양이 걸레라면, 즉 천칭양이 서방질을 했다면 적어도 하나라도 같이 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그게 누구인지 지목하지 못했으니 천칭양이 서방질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천칭양이 걸레이며, 그 점에 있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천칭양이 자기가 걸레가 아니라고 증명하려 내려온 것은 내가 침 맞으러 그녀에게 갔기 때문이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농번기가 되자 생산대장이 나에게 밭가는 것을 멈추고 모를 심으라고 시켰다. 그래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 키가 190cm 이상이며 내가 허리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모내기를 했더니 허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라도 막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생산대 의무실에 있는 침은 도금이 벗겨지고 끝이 낚시 바늘 같아 내 허리의 살을 발라내기 일쑤였다. 결국 내 허리는 산탄총을 맞은 것처럼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생산대의 천칭양이 생각났다. 그녀는 베이징 의학원을 졸업한 의사니까 침과 갈고리는 구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30분도 되기 전에 그녀가 내 방까지 쫓아와 자기가 걸레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천칭양은 자기가 걸레를 업신여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의 관찰에 의하면 걸레들은 모두 착했고 다른 사람 돕는 걸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는 걸 가장 싫어하였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면에서 걸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제는 걸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자기는 절대 걸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고양이를 사람들이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그 고양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칭양이 내 초가에 와 있을 때 산 위 의무실에서의 옷차림 그대로 어깨와 다리를 벌겋게 드러낸 흰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풀어 헤친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흰 가운 아래에 뭔가를 입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입었을까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가 예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녀는 뭘 입든 안 입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자신감이다. 나는 그녀가 걸레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까지 몇 개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른바 걸레라고 함은 하나의 호칭이다. 즉 모두가 당신이 걸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걸레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신이 서방질했다고 하면 서방질한 것이지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모두들 왜 당신을 걸레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보기엔 이렇다. 모두들 결혼한 여자가 서방질하지 않으면 얼굴이 거무스레하고 가슴은 축 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당신은 얼굴이 검기는커녕 하얗고, 가슴은 봉긋하다. 그래서 당신이 걸레인 거다. 만약 당신이 걸레가 되기 싫으면 얼굴은 검게, 가슴은 축 처지게 만들어라. 그럼 아무도 당신이 걸레라고 안 할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거다. 근데 만약 당신이 손해 보기 싫으면 서방질을 하는 수밖에. 그러면 당신도 자기가 걸레라고 생각하게 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서방질했는지를 먼저 밝힌 후 당신을 걸레라고 불러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근데 당신에겐 남들이 당신을 걸레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말을 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천칭양의 두 눈을 부릅뜬 표정은 거의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릴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귀싸대기 날리는 걸로는 유명했다.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걸레면 걸레지 뭐. 근데 가슴이 처지네 마네, 얼굴이 검네 마네 하는 건 너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행여 내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가는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 거라고 말이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천칭양과 걸레 문제를 토론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얼굴이 누렇고 뜨고 말라 터진 입술에는 종이조각과 담배가루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반창고로 찢어진 곳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헤진 군벌 하나 입고서 나무침대에 다리를 꼬아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완전히 건달이 따로 없었다. 아마 천칭양이 이런 놈에게 자기 가슴이 처졌니 안 처졌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좀 신경질적인 편이었는데, 그건 모두 아주 건장한 청년들이 아픈 데도 없으면서 진료를 핑계로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의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걸레를 보러 간 것이다. 나만 예외였다. 내 허리는 저팔계에게 쇠스랑으로 몇 대 맞은 것처럼 아팠으니까. 허리 아픈 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 뻥뻥 뚫린 구멍만으로 의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구멍이 그녀에게 자신이 걸레가 아님을 나에게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 말고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다. 봄에 생산대장은 내가 자기 집 어미개의 왼쪽 눈을 애꾸로 만들어, 이놈이 무슨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고개를 돌려서 사람 쪽을 본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언제나 트집을 잡았다. 나는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래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생산대장의 집에는 어미개가 없다.

2. 이 어미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없다.

3. 나는 손이 없어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수 없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생산대장의 집에는 확실히 갈색 어미개가 한 마리 있고, 이 어미개의 왼쪽 눈은 확실히 나중에 먼 것이며, 나는 총을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밀한 사격술을 자랑한다. 그 얼마 전에 나는 뤄샤오쓰(羅小四)의 총을 빌려 녹두 한 그릇을 총알삼아 빈 창고에 있던 쥐를 두 근이나 잡았다. 물론 우리 생산대에서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목록에는 뤄샤오쓰도 포함되어 있다. 총은 그의 것이고, 게다가 그가 생산대장의 어미개의 눈을 쏘았을 때 나는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이 한 일을 까발릴 수는 없었고, 뤄샤오쓰는 나하고 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생산대장이 만약 뤄샤오쓰를 건드릴 수 있었다면 나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묵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나는 모를 심으러 가서 부러진 전봇대마냥 엎드려 있어야 했고, 가을 추수 후에는 또 소를 먹이러 나가 뜨신 밥은 먹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산 위에서 마침 뤄샤오쓰의 총을 빌린 날 생산대장의 어미개가 산으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총알을 날려 그 놈의 오른쪽 눈을 쏘았다. 이 개는 이미 왼쪽 눈을 잃은 데다 오른쪽 눈마저 사라지니 생산대장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하늘만이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나는 산에 올라 소를 먹이거나 집에 드리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칭양이 또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녀가 나하고 서방질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1. 천칭양은 처녀다.

2. 나는 고자라서 성교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결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천칭양은 이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렸다가 얼굴이 뻘게지더니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천칭양은 내가 언제나 악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생 까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그녀가 우리 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섹스를 한 번 하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면 뒤에 이야기할 사건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7/15 11:14 | 独立阅读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8. 06:46

옌롄커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왔다.

作  者: 阎连科
出 版 社: 江苏人民出版社
出版时间: 2008-6-1
页  数: 332
I S B N : 9787214055569

곧 근작이 나올 거라는 걸 그의 강연에서 들었지만 잊고 있다가 그저께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출간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당에 주문하기는 좀 늦고 해서 서점에 가서 실물을 확인해 봤다.
재고량이 47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열되어 있지 않았고 서점직원이 한참 찾은 후에야 서가 아래쪽에 쌓여있는 걸 하나 건네 주었다.
중국의 서점들은 도서분류가 너무 엉망이다. 출판사 분류도 아니고 저자 분류도 아니다. 완전히 흩어져 있어 "당대소설" 서가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야 한다.(上海書城이 대표적. 대학 근처의 전문적인 일부 작은 서점들은 분류가 꽤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교수 양과(楊科)는 5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풍아지송: <시경>정신의 본원에 관한 탐구(风雅之颂——关于〈诗经〉精神的本源探究)》라는 필생의 저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침대 위에 벌거벗은 마누라와 부총장이다. 처용이 생각나는 장면인데, 양과의 대처 또한 처용과 비슷하다.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고 싶으면 말만 하게, 올해 국가급 모범학자는 따논 당상일세, 상금이 오만원(7백만원)이라구, 학과 주임이 되고 싶다면 밀어줌세,.. 뻘줌하게 주절대는 부총장에게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한다.
제가 생각이 완전히 깬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니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주세요, 지식인의 명예를 걸고 부탁드리건데,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는 곧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환자들에게 <시경>을 강의하며, 얼마 후 정신병원을 고향으로 돌아간다.

청연대학(清燕大学; 청화대와 북경대(연경대)를 혼합한 명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지식인의 허위와 추악함을 풍자하는 방향으로 그려질 것 같다. 당장 꼼꼼하게 읽어볼 시간을 내기는 힘들지만, 제발 바라는 것은 류진운의 <내 이름은 유약진> 같이 실망시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시끄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혼을 빼놓지만 별로 건질 게 없어 사람을 굉장히 지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기우인지 몰라도 몇 페이지 읽다 보니 "수다"스럽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또 하나 띠지에 있는 "중국 황당(荒誕) 현실주의 대사 옌롄커"라는 말!
천쓰허 같은 경우 "괴탄(怪誕)문학" 혹은 "괴탄(怪誕) 사실주의"라고 옌롄커 등의 경향을 칭했다고 국내 신문에도 소개된 바,
아무거나 다 "~~주의" 갖다 붙이면 되냐고 말들이 많다.
(황당주의가 아니라 요즘 대학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라는 식의 반어적 댓글이 있을 정도..)

중국쪽 언론이나 포털에는 관련 기사가 몇 개 올라와 있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어찌되었든 내가 직접 읽어봐야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이제 막 나온 소설의 원문 대부분을 웹에서 서비스한다는 거다. 물론 전체를 다 보려면 사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거 좀 따라했으면 좋겠다.. 절판된 책은 웹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



阎连科最新的长篇杰作:风雅颂(选载)

아무튼 (시경의 편명을 빌린) 목차는 다음과 같다.
http://product.dangdang.com/product.aspx?product_id=20246252

目录
卷一
 〔关雎〕当《诗经》遭遇一对狗男女
 〔汉广〕柿子树下的初情
 〔终风〕红彤彤的欲念
 〔(艹择)兮〕蹿红的的女教授
卷二
 〔有瞽〕硬学问软膝盖
 〔良耜〕侍候飞累的鸟儿
 〔噫嘻〕那条该死的内裤
 〔泮水〕我们各怀鬼胎
卷三
 〔出车〕必要的成交
 〔都人士〕膝盖又发软了
 〔十月之交〕捕风汉子
 〔绵蛮〕举手表决
 〔白驹〕悲壮的告别 
卷四
卷五
 〔式微〕天使得不到尊敬
 〔晨风〕往事香艳
 〔蒹葭〕情人的礼物
 〔东门之(木分)〕教授来到天堂街
 〔匪风〕温暖的家
卷六
 〔菁菁者莪〕庄严的摸顶
 〔斯干〕农事温情
 〔思齐〕情爱事业
 〔白华〕无力挽留
 〔小明〕祭奠吴德贵 
 〔南山有台〕守墓人的颂歌
卷七
 〔噫嘻〕婚姻真相
 〔臣工〕有尊严地告别 
 〔駉〕欢年
 〔有駜〕小姐们的束修
卷八
卷九
 〔大田〕昨日重来
 〔车辖〕鸳鸯于飞
 〔隰桑〕小敏的选择
 〔渐渐之石〕别人的婚礼
 〔小弁〕一日不见如三秋兮
 〔桑柔〕哄抢有理
 〔白驹〕不能没有你
 〔鸳鸯〕死神婚床
卷十
 〔般〕逃犯
 〔天作〕狂喜
 〔时迈〕石头记
 〔有瞽〕诗经古城
卷十一 
 〔东山〕新家
 〔草虫〕家园之诗
 〔甘棠〕我又被举手表决了
 〔芄兰〕柳树下
 〔葛藟〕繁华的黄昏
卷十一
附录:后记三篇
 飘浮与回家
 不存在的存在

 为什么写作和要写怎样的小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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