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25. 12:46

연세대 대학원신문 198호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그쪽에서 알아서 "중국의 현실을 숯으로 지핀 뜨거운 생명력"으로 뽑아줬다. 원래 부탁받은 내용이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기에 노벨상 관련 논란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웹으로 보면 폰트가 뒤섞여 있어 보기 힘들다. 참고삼아 아래 옮겨 놓는다.



모옌(莫言) :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

노벨문학상을 점치는 경매 사이트에서 막판까지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동아시아의 두 후보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감수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해 모옌은 생긴 것부터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바깥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영화 <붉은 수수밭>의 장면인양 거나하게 한상 차려 놓고 웃통 벗어젖힌 채 같이 고량주나 비우면 어울릴 것 같은 생김새다. 그런 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안주로 오를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그의 소설이 된다. 좋게 말하면 정제된 서면어가 담지 못하는 풍부함이 살아 있지만, 다른 한편 그 시공간을 공유하지 못한 외부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감성(번역의 문제와 직결된다), 불알친구들 술자리에 낀 새색시의 불편함,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너스레, 과장된 허풍, 투박함 등이 혼재되어 있다. 대부분 옛날 어디에서 누가 말이지, 라며 시작되는데, 그 시간적 배경은 주로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이고 공간적 배경은 자신의 고향을 문학적으로 확장한 가오미(高密) 현 둥베이(東北) 향이다.

 ‘높이’ 자란 붉은 수수만 ‘빽빽한’ 고향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성 가오미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다. 가족이 아주 많았으며, “굶주림과 고독은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 할 만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 가난은 당시 중국이 처한 정치적・경제적 고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50년대 후반의 연이은 3년 재해와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의 시행착오로 인해 빈곤은 모든 인민이 공유한 경험이 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십년은 그 빈곤을 여러 방면에서 영속화시켰다. 굶주림으로 대표되는 결핍의 경험은 모옌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고작 50여 년 전이었던 유아기를 태고의 원시적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모든 근육이 입과 위장에 집중되어 있고 생활보다는 생존이 문제가 되는 공간이다. 시커먼 석탄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원시 삼림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소든 사람이든 불알을 까고 생육을 계획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중편 「소(牛)」, 장편 『개구리(蛙)』). 굶주림이 해결되고 먹을 게 넘쳐나는 시기가 되어서도 왕성한 식욕은 끝을 몰라 어린 아이를 잡아먹고 다른 한편 여전히 굶주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아이를 낳아 도시에 상품으로 판매한다(<술의 나라(酒國)>).

고향에서의 생활과 가난한 어린 시절은 「백구 그네(白狗秋千架)」(1984),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红萝卜)」(1985)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년기의 개인적인 경험이 깊게 투영된 이들 초기작에는 “기아와 음식물”, “아동고난사”, “꿈과 환상”, “동물과 식물” 등 이후의 창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원초적인 형태로 선보이고 있으며, ‘가오미’가 단순히 고향이란 의미를 넘어 창작의 밑그림과 같은 문학적 공간으로 설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최근작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모옌의 거의 모든 소설은 ‘가오미’에서 진행되거나 그것을 기초로 한 가상공간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혹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비견되는 장소로 지적되어 왔다. “제 소설의 가오미 둥베이향은 이미 문학적인 개념입니다. 실제 지명을 기초로 하였지만 허구의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죠.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가 창조해낸 허구의 고향과 유사한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2살 때 모옌은 소학교 5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소를 치거나 임시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76년 입대한다. 농민, 노동자, 군인으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전형적인 작가의 탄생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정상적인 교육이 정지되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기의 중국은 다른 형태의 굶주림인 고독을 모옌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프랑코 모레티가 빼기를 했는데 더하기를 한 결과라고 소개한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300년 동안 출판이 통제되고 소설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다양한 문학적 전통, 현실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정치적 식민지였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모더니티의 산물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공화국 건국 이후 1980년까지 30여 년간의 중국은 어찌 보면 '마술적 시각으로 변형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경이로운' 중남미의 경험을 압축한 측면이 있다. 모든 소설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형식과 내용의 글만 허용되었다. 문예계에서 인민을 위한 모범이 되는 극이나 글을 대표하는 이른바 "양판"이란 것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래서 생명이 없는 틀이었다. 문혁 10년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거의 모든 책이 금서가 되어 불살라졌다. 모옌, 위화, 옌롄커 등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이 시기의 굶주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게걸스러움을 회고한다. 학교가 열리고 기존의 서적들이 재출간되고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론과 작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옌 또한 이 시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서사기법을 시도한 선봉문학의 대표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서구문화의 맹목적 추구로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의 마르케스"라는 호칭에 걸맞게 특히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향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현실과 신화 속에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한 것을 거울삼아, 그는 중국의 민간전통에서 세계문학과 대결할 수 있는 생명력을 찾아내려 했다. “예외적인 것, 기이한 것, 경이로운 것, 한마디로 말해 모험이 여전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비동시대성의 세계는 라틴 아메리카만이 아니지 않은가. <수호전>의 영웅호걸의 후예가 살고 있는 곳, <요재지이(聊齋志異)>가 못다 수집한 풍부한 지괴 이야기, 소설이라는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민간의 구술전통이 그의 고향 가오미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서구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선봉(아방가르드)과 심근(뿌리찾기)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풍유비둔(豊乳肥臀)>(1995)을 거쳐 <탄샹싱(檀香刑; 박달나무 형벌)>(2000)에서 만개한다. 이 작품은 ‘의화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여, 서양 연합군의 침입으로 서서히 멸망해 가는 청나라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제압당하고 마는 민중들의 혁명, 그리고 그에 이은 잔인한 형벌 등 중국의 민간 사회상이 밀도 있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되자 많은 비평가들은 모옌과 중국당대문학의 세계화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탄샹싱>은 전통적인 서사방식, 민간의 가창문학, 의식의 흐름, 희극, 마술적 리얼리즘, 민간의 역사, 중서문화의 충돌이 어우러져 있는 21세기 중국의 중요한 소설로서, 전지구적 배경 하에서 중국의 뿌리를 지켜나가고, 중국의 전통을 구성하고, 깊은 문화적 전통을 확립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관점에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숯과 다이아몬드

노벨상 수상 후 모옌은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勞)>(2006)를 독자들에게 추천한 바 있다. 아마도 <인생은 고달파>를 거치며 비로소 마르케스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을 스스로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고전 장편소설의 서사방식인 장회체(章回體)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차용한 이 작품은 모옌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시도로 평가된다. 지주가 나귀, 소, 돼지, 개와 같은 동물로 환생하여 동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독특한 사고방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전개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장회체의 차용은 폭포처럼 쏟아내던 그의 언어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문학적인 성취의 측면에서 유보적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추천하는 작품은 <개구리>(2009)이다. 작가 스스로 <백 년의 고독> 이전 상태로 회귀하여 썼다고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모옌의 초창기 중단편을 연상시키는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또한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계획생육을 중심으로 환상에 기대지 않은 허구와 상징을 활용함으로써, 생명을 주관하는 신화 속 여와와 한갓 도구에 불과했던 여인의 비애, 그러한 과거에 대한 참회와 새로운 현실의 욕망이 혼재된 모순된 인간상이 고모라는 인물로 잘 형상화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현실문제에 보다 접근하고, 자기표절을 피하고자 애썼다는 모옌은 자신을 넘어 이미 다음 걸음을 딛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옌은 “말하지 말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1981년 이후 30여 년간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듯이 그는 문장 하나까지 지나치게 공을 들이기보다는 격정적으로 창작욕을 분출하는 스타일의 작가이다. 모옌은 자신이 거쳐 온 삶과 중국의 현실을 정련하여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작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석탄이면 어떤가? 아니 석탄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영원히 빛나거나 단단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몸을 달구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벨상 수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모옌 자신은 담담히 말한다. 바라건대 어서 빨리 "알 낳는 암탉"은 잊어버리고 그가 "낳은 달걀"을 맛보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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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2. 11. 15. 18:00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저자
모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2-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 인민의 생명력 넘치는 삶의 풍경 속으로 초대하다!중국어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중편집에 들어있는 <소>는 모옌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상징들이 잘 드러나 있는 초기작이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꽤 괜찮은 작품으로 보인다.

맛깔나는 우리말로 옮겼지만, 읽으면서 헷갈리거나 내용전개상 반대되는 문맥으로 옮긴 듯한 것만 찾아서 고쳐봤다.


132쪽.

둥베이(东北) 저지대 웅덩이에서

东北洼里


"둥베이"라고만 하면 만주 지역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산둥성 가오미 동베이향, 즉 모옌 소설의 주배경이다. 혼동하지 않게 설명을 더해 주는 게 좋을 듯.



173쪽.

그럼 우리 뿔로 요놈의 자식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우리는 두 눈 멀뚤멀뚱 뜨고 요놈의 자식이 우리 소중한 불알을 공짜로 먹어치우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은 무슨 느낌이 없었나? 저 놈이 우리 불알을 먹어치울 때, 나는 내 불알 껍질이 칼로 쪼개냈을 때처럼 아팠네. 난 정말 답답해 죽겠네.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왜 그때는 불알 껍질에 고통을 느낄 수 없었을까?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 역시 아픔을 느꼈다네.

那咱就把这小杂种顶死算了,咱们不能白白地让这小杂种把咱们的蛋子吃了。大鲁西道:兄弟们,你们有没有感觉?当他吃我们的蛋子时,我的蛋子像被刀子割着似地痛。我真纳闷,明明地看到他们把我们的蛋子给摘走了,怎么还能感到蛋子痛呢?

双脊和小鲁西说:我们也感觉到痛。

=======================================


그럼 우리 요놈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요놈의 자식이 소중한 우리 불알을 날로 먹게 할 순 없잖은가.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도 느꼈는가? 저놈이 우리 불알을 먹을 때 내 불알이 칼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팠다네. 난 정말 궁금한 게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봤는데, 어째서 계속 불알이 아프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거지?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도 아픔을 느꼈다네.



185쪽.

"싯누런 기름투성이 오르알 노른자가 내 밥그릇에 굴러들었을 때, 두씨 마나님은 딸 두우화에게 코를 찡긋하고 눈짓을 보냈을나, 두우화는 그저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 두우화가 못 본 척 무시해버릴수록, 나로서는 호의적인 눈빛을 보여줄 필요가 더욱 없었다. 나는 추호도 사양하는 기색 없이 싯누런 오리알 노른자를 한입에 삼켜버려, ..."

====================================


두우화도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데, 내가 눈치 좋은 척 할 필요가 없었다.



196쪽.

"뤄한아, 우리네 걸음걸이가 별로 느린 셈은 아니다만, 이런 식으로 마냥 걷다가는 한밤중 열두시나 되어야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구경하러 갈 때는 겨우 이십 분이면 뛰어갔다니까요."

“罗汉,咱爷们儿走的还不算慢,按这个走法,半夜十二点时,也许就到兽医站了。”

 我说:“还要怎么慢?我去公社看电影,20分钟就能跑到。”


==================================

"뤄한아, 우리 걸음이 그런대로 느린 건 아니다. 이대로만 가면 밤 12시엔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보러 갈 땐 20분만에 뛰어 갔는데요."



197쪽.

우리 할아버지가 인민공사 서기 노릇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 -> 아버지. (그 아래 대화도 마찬가지)


204쪽.

홰나무에는'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란 별명을 가진 벌레가 자라는데,

杨树上生了那种名叫“吊死鬼”的虫,


吊死鬼는 '자벌레'.


=================================

사시나무에는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라 불리는 자벌레가 사는데,



Posted by lunarog

번역은 원작과 경쟁이 안 된다. 원작이 신이라면 번역은 제사장에 불과하다. 창조가 허용되지 않는 제사장에게 진리는 자기 것이 아니다. 신에게 오류가 있더라도 그건 창조과정의 일부일 뿐이다.[각주:1] 만약 제사장이 오류를 범하면 돌이 날아온다. 제사장의 역할은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는 군중을 위해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누군가 "신은 절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라고 의문을 품고 돌을 던지는 순간 제사장은 피투성이로 제단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체되어 왔고, 대체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를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내세워 "신의 목소리"라 생각되는 것들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창조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신이 되어도 된다. 신인 척하는 것도 제사장에게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신과 경쟁하려는 순간 제사장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1. 신의 오류를 지적하는 불경을 누가 저지르겠는가? 그것이 오류로 보이는 내 눈을 탓하고 참회한다. 그 속의 깊은 의미는 뒤늦은 깨달음으로 돌아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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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2. 11. 12. 05:09

이 단편집은 번역이 맛깔나서 한국책으로 읽는 맛이 있다. 강추.

그렇지만 중국 실정과 안 맞는/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번역도 좀 있다. 독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만 메모 삼아 몇 가지 정리해 둔다.


21~25쪽.

구직탄원서 : 각주에 报销单据에 대한 설명을 "공공업무에 사용한 비용을 사후 해당기관에 청구하는 증빙서류"라고 맞게 달아 두었다. 그런데 "문맥에 맞게" 구직탄원서로 번역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문맥에 맞지 않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공장장, 시장 찾아 가서 구직을 탄원하는 건 (안 될 거야 없지만) 좀 생뚱맞다. 공장에서 짤리지 않았다면 병원 비용을 직장에서 납부하게 되어 있다. 갑자기 짤렸는데, 짤리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서 "여러 해 저축해 둔 돈을 거의 전부 탕진"해 버렸으니 안 되는 줄 알면서 비용을 받아내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그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증명서가 报销单据이다. 따라서 각주의 설명을 살려 "비용청구서" / "(의료비) 공제서류" 정도로 옮겨주는 게 맞겠다.


27쪽:

적삼; 중국산 견직물 적삼 : 너무 사전적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중국산 견직물 적삼을 입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렇게 부르지 않을 거다. 게다가 배경이 현대인데 적삼이라고 하니 너무 고전적이다.. 纺绸衬衫. 비단 셔츠?


49쪽:

"강제 퇴직까지 겪으신 몸인데, 여기서 더 재미없는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손님 꼬시기가 낯부끄러워 자기 도제에게 상담하는 장면이다. 不好意思를 옮긴 "재미없는"은 "창피할", "욕볼", "낯뜨거울" 등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강제 퇴직당한 양반이 뭘 그래 체면 따지고 그러십니까?"


49쪽:

"사부님, 제 말씀이 듣기 거북하시면 아직 배가 덜 고프셔서 그런 겁니다. 언젠가 굶주릴 때가 되면, 체면과 배고픔을 비교했을 때 뱃속부터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깨달으실 겁니다."


"사부, 제가 싫은 소리 몇 마디 할께요. 사부는 아직 견딜만 하신가 봅니다. 언제고 배를 곯아 보면 얼굴이랑 배 중에 배가 더 중요하단 걸 아실 겁니다."


83쪽:

'중화'표 고급 시가 두 대 : '중화' 담배 두 보루.


条는 가늘고 긴 물건을 세는 양사이다. 그래서 그냥 시가라고 옮긴 듯하다. (아마 담배를 안 태우시는 분인 듯). 보루가 条이다. 한 개피는 根. 최근엔 달라졌지만 '중화'는 고급담배의 대명사였다. 예전에 한국담배 2000원 겨우 할까말까할 때 한 갑에 40원(당시 환율로 4000원) 했다. 돈 많은 놈들은 그냥 피기도 했겠지만 주로 선물로 많이 돌렸다. 요즘에야 한 보루 5600위안(택스 포함 100만원 ^^) 하는 담배까지 생겼으니 상전벽해.


나라면 "도제"는 "부사수"로 옮겼을 것 같다.

"사부"는 사부님부터 아저씨까지 걸쳐 있는데, 도제가 부르는 호칭이니까 사부가 맞긴 하겠다.

"유머러스"는 제목으로는 나쁘지 않아도, 문장에서는 느낌이 좀 안 산다. 흔히 "웃기는 양반이네" 라고 말할 때의 어감이라고 할까?

살리기가 쉽지 않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저자
모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2-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 인민의 생명력 넘치는 삶의 풍경 속으로 초대하다!중국어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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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11. 05:30

새로운 애플 제품이 발표되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30년이 지나면 어떤 느낌으로 이런 풍경을 기억할까?

아래는 문혁 이후 해금된 책에 대한 위화의 추억이다.

발자크가 거의 "아이패드"와 동급이다.



독서에 관한 네번째 이야기는 1977년에 시작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독초로 간주되던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톨스토이와 발자크, 디킨스 등의 문학작품이 처음으로 우리 작은 마을의 서점에 도착했다. 그때의 뜨거웠던 반응은 오늘날 연예계 스타들이 가난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것과 맞먹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고, 목을 빼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우리 마을에 도착하는 책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서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줄을 서서 서표를 받아가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내다붙였다. 서표는 한 사람에게 한 장씩만 배분되었다. 서표 한 장으로 책 두권을 살 수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책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던 장관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날이 밝기 전에 서점 문밖에는 이미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서표를 받기 위해 전날 밤에 서점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밤새 앉아서 기다리기도 했다. (...) 새벽에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금새 자신들이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래 줄 맨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서점 앞에 도착해 보니 거의 3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서표는 50장밖에 없습니다. 50번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주세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
위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9-0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다!소설가 위화가 그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모택동선집 4권을 제외하면 읽을 책이 없던 시기, 문혁 이후 해금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을 기다리던 시기, 30년이 지난 후 폐지 가격으로 고전들이 팔리는 시기가 위화의 추억으로 대비되고 있다.


문혁 이후 굶주렸던 사람처럼 책과 정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것과 유사한 풍경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책 뿐 아니라 이택후 같은 사상가의 강연에 팝 콘서트처럼 사람이 몰리던 시기였다. 새롭게 재개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한밤중에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던 화장실 비상구 전등 아래서 밤새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80년대 해적판으로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판매량을 이제 다시는 못 따라갈 것이다.


읽을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요즘은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나 한 것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기에 책 한 권의 가격은 요즘 아이패드보다 비쌌다.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권 가격이 하급관원 한달 봉급 정도였다. 게다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다섯 수레" 정도는 읽어줘야! 라고 했을 때 "다섯 수레"는 제법 많은 어감이다. 그러나 장자 시기 죽간으로 된 책 다섯 수레를 텍스트로 변환하면 몇 킬로바이트도 되지 않는 양일 거다. 선장본 종이책으로 다섯 수레 실어도 몇백 메가 될까?(12권짜리[구판 기준] 한어대사전이 텍스트 파일로 62메가 밖에 안 된다. 첫 알바비로 30만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 한어대사전은, 석사기간 내내 유용하게 썼지만, 이사할 때마다 골치거리로 전락하여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정보를 취하는 방식도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굳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더라도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이미 트위터화되어 있다. 계속 새로운 정보들이 보충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받아들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보다는 매일 끊임없이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맨날 고만고만한 뉴스들 속에서 살만 디룩디룩 찌는 거다. 읽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근육훈련도 다시 해야겠다. 이런 점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도입부는 훌륭하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저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읽고 쓰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트위터, 페이스북에 많은 글을 쓰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거기서 유포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시간 날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보다가 눈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이 숲속에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사실은 뭔가 더 재미난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이뤄지지 않는 기대 때문에..) 집에 돌아올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대출된 책이 내 순번까지 오기를 기다리며, 주문해 뒀다가 며칠만에 받아든 책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을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당일배송되어 목차만 훓어보고 책장에 뒹구는 책들, 테블릿 속에 가득 저장해 놓은 책들에는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저걸 언제 다 보나 하는 한숨이 뒤섞여 있다. 책장에 뒹굴던 위화의 책을 잠깐 펼쳤다가 오랫만에 읽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블로그에 쓰기의 즐거움도 다시?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0. 9. 27. 12:38

지난 7월 13일 새벽 1시에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향년 78세.

타계 즈음에 가족이 중국에 다녀갈 때라 뉴스를 챙길 정신은 없었다. 찾아 보니 중국쪽은 관련 기사가 있고, 몇몇 학자가 그의 학술생애를 정리하는 글을 발표했다. 바이두 백과의 인물소개도 벌써 업데이트되어 있다.
나는 가끔 들르던 사이트에서 쑨꺼의 "送别沟口雄三先生"라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송별"??....이라구?!

검색해 보니 한국쪽 뉴스는 전혀 없다. 놀랍기만 하다. 유일하게 발견되는 네이버 블로그도 중국쪽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국내에도 미조구치 선생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타계 소식도 알고는 있는 모양인데. 가신 분께 적절한 예의 정도는 갖춰야 했지 않나 아쉽다. 계간지들은 겨울호를 준비하나?

물론 내가 선생과 막역한 사이일 리 만무할 뿐더러, 그의 책 중에 제대로 읽은 것도 없다.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도 석사 시절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어렵기도 하고 다급히 읽어야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만두곤 했다. 어찌보면 저 정도 책은 필독서로 한 번 읽어줬어야 했는데, 기본으로 읽어야 할 책 중에 안 읽은 책이 저것 뿐이었겠나 하며 위안한다. ㅠㅠ (즉 나는 전혀 그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쪽글 몇 개에서 살짝 감화를 받았을 뿐이다..)

쑨꺼는 듣기로는 미조구치 선생과 꽤 친분이 있는 사이였던 것 같다. 일중 지식인 네트워크도 같이 하고.. 이번에 글을 읽어보니 그의 문집 번역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글은 중국인 독자를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겠지만, 미조구치의 학술생애 중 주로 중국사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후반기의 활동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담담하게 그의 사상을 정리하고 있고, 쓸데없이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꼭 필요한 이야기를 잘 지적하고 있다.


쑨꺼의 글은 <중국사회과학보> 8월31일자에 발표되었으나, 여기서는 일부만 게시되어 있다. 인터넷에 전문이 소개된 곳이 많이 있고 그 중 내가 확인한 곳은 첨부된 문서에 밝혀져 있다. 해외에서 한글로 이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중간 부분에 사상사 관련,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부분의 번역은 정확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게 문장만 다듬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란다. 혹시 잘못 옮겨진 부분이 있다면 알려 주시고..

5페이지 정도 되는 글은 웹보다 출력해서 보시는 것이 편한 것 같아 문서를 첨부한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10. 7. 24. 00:30

1. 달제(獺祭)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풀면 “수달의 제사”라는 뜻인데,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달제 혹은 달제어(獺祭魚; 수달이 물고기를 제사지내다)의 뜻은 대충 다음과 같이 풀 수 있다.


# 수달은 포획한 물고기를 물가에 벌려놓곤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상을 차려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다고 해서 나온 말.

# 글을 지을 때 참고서적을 이리저리 벌려 놓는 것, 전고를 많이 사용하거나 예전에 있었던 관련사항을 나열하여 문장을 짓는 것을 비유.

# 수달이 물고기를 잡으면 잔인하게 죽인 뒤 한 입씩 맛만 보고는 던져 놓아 먹다 남긴 물고기가 사방에 쌓인다고 한다. 이 경우는 ‘제(祭)’의 본의를 ‘잔인하게 죽이다(殘殺)’로 푼 것. (이 경우에도 먹다 남긴 물고기가 쌓이는 것처럼 짧은 글에 다양한 뜻을 쌓아넣는 전고(典故)를 활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수달의 성질이 정말로 어떠한지 보다는 수달을 핑계삼아 짧은 시 한 구절을 지을 때도 세상 모든 책을 펼쳐놓고 뒤적여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고 보면 되겠다. "달제"라는 말을 연상시킬 정도로 함축적인 표현과 전고의 활용에 능숙했던 대표적인 작가는 당대 시인 이상은(李商隱)이다. (자기도 그 많은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서 그랬겠지만 :-) 그는 시를 지을 때 책상 여기저기에 책을 벌려 놓고 시구를 다듬곤 했다고 한다. 마치 수달이 제사를 지내듯 말이다.[각주:1]


2. 이사 때마다 먼지쌓인 책들이 골치다. 라고 마나님이 말씀하셨다. 저놈의 책 땜에 이사비용도 늘고 시간도 지체되고 정리하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라고 말이다. 동의한다. 한데 나는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고, 잘 정리되어 꽂혀 있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데 마나님은 읽지 않는 책은 살 필요가 없고 읽은 책은 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적거리며 찾아야 할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정작 나의 작은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잘만 이용하면서 말이다.

지난 번 이사 때 책을 많이 버렸다. 사실은 복사물이나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최대한 주저하며(그리고 마나님이 버리려고 내놓은 것 중 눈치껏 다시 주워담아가며) 선별해서 버렸는데도 꽤 빠져나갔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면 좋을 책도 제법 내다버렸다. 미리 계획하고 솎아 냈다면 헌책방에 기증(?)하거나 블로그에 공지를 올려 필요한 분들에게 선물하여도 좋았을 텐데, 이미 이사라는 "일"의 일부가 된 뒤, 닥쳐서 급하게 하다보니 재활용 공간에 내다 버리기에 바빴다. 헌책이든 새책이든 상품으로 사고 선물로 받은 것이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3. 이번에 또다시 큰 이사를 하며 책을 또 줄여야 했다. 시골집 방 한칸에 책을 옮겨놓기로 했는데,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필요없는(!) 책을 솎아내야 했다. 무심결에 마님께 이렇게 말했다.

이북 리더 사 주면 당장 책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사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걸 나에게 사줄 리도 없고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되돌아온 답은...

얼만데?

응.. 그냥 흑백으로 이북만 볼 수 있는 건 한 30만원이면 돼.

당장 사줄테니 책이나 줄이셔!
내가 기대한 최대치의 대답은, 내가 그 물건을 사도 괜찮다는 윤허 정도였다. 평소 행동으로 봐서 전혀 믿어지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속는 셈치고 열심히 책을 솎아냈다.


예전 석사논문 쓸 때 어렵게 구한 자료들도 대표적인 것 몇 개만 남겨두고 쑥쑥 골라냈다. 대학원 들어온 후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샀던 당시 시가 30만원 정도의 <한어대사전>은 지난 번 이사 때 버렸다. 씨디롬 나온지 한참 되었고, 요즘은 Lingoes에서 전문을 검색할 수 있다.(위에 달제 뜻풀이도 lingoes 한어대사전 뜻풀이를 '편집'한 거다.) 노신전집은 대학원 후배에게 보내줬다. 그것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노신전집 이야기가 나와서 줄 수 있었다. 지난번 이사 때 아끼고 주저했던 책들, 석박사 논문들, 학회 발표문들, 기타 정리되지 않은 복사물 등을 죄다 내다놓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랄까, 이상하고 신기했던 건 아무도 책을 골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설이나 산문집 중에 꽤 읽을 만한 것도 있었고 교재들도 좀 있고, 아무튼 가져갈 만한 책이다 싶은 것, 예전에는 한두 권씩 집어가곤 했던 부류의 책을 이번에는 아무도 집어가지 않았다. 대신 날이 어두워지자 순식간에 통째로 사라졌다. 그 다음날 비슷한 양을 다시 내다 놓았는데, 이번에는 미리 대기한 듯 잠깐 사이에 종이 한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폐지 값이 비싸져서 그렇게 한두 번 내놓은 양이 6-7만원 어치는 넘어갔나 보다. 이사짐 아저씨가 그럴 거면 자기들 주지 그랬냐면서 들려준 이야기였다.

아무튼, 열심히 책을 줄이고 마님께 다시 당부를 받으려고 물어봤다. "당장"이 언제야? 이사 끝나면 당장 사는 거지? 돌아온 대답은 구질구질하게 밝히지 않아도 모두들 짐작할 수 있을 듯. 처음부터 믿기지 않는 말은 믿지 말았어야 했다. 책은 사라졌고 이북 리더도 사라졌다. 덧없는 인생이다.


4. 한국어 전자책 컨텐츠는 아직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독서용 책과 참고용 책을 조금 분리하는 편인데, 독서용 책은 여전히 인쇄된 서적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다 읽지 않더라도 "물건"을 들고 한장 한장 넘겨가며 재미난 구절에 줄도 그어가며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아껴읽는 것이 좋고 편하다. 그런데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온갖 잡다한 지식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때그때 뒤적여봐야 하는 책은 이북이 좋을 것 같다. 한 구절을 위해 책 한 권의 부피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낭비니까. 책상 여기저기에 이 책 저 책 펼쳐놓는 것보다 컴퓨터 화면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뒤적거리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공간에 구애받지도 않고 검색에도 편하다. 이른바 e-달제 스타일? ^^;; 적어도 도구가 되는 공구서는 이북이 훨씬 편했다.(사전을 그냥 치운 것이 아니다.)


다행히 나에게 도구가 되는 참고용 책들은 중국어 원전이 많고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근대 이전의 책들이 많다.


영어권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중국은 신간의 이북 종류가 우리나라보다 다양한 것 같다. 솔직히 왠만한 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2000년 이전 출간도서의 경우, 아직 규제가 심하지 않아서인지 자체제작한 도서 pdf 파일이 많이 돌아다닌다. 불법dvd와 마찬가지로 이런 해적판 pdf서적들도 앞으로 외부의 압력이 적지 않을 것이고, 결국 많은 규제를 받을 것이다. 근대 이전 자료들은 원작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파일이 웹에 공짜로 돌아다니면 영인한 출판사 쪽에는 손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저작권을 엄밀히 적용하면 문제가 될 사이트가 수두룩하겠지만, 자료 하나 복사하러 북경으로 홍콩으로 다닐 필요 없이 내가 필요한 문서를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한때 영화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오면 눈이 뒤집어져 몇 십만원 어치의 디비디를 사 들고 간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국내에서 정상적인 경로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엄청난 "자료"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되었건 내가 책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의 이북은 앞으로 몇 년 두고 봐야겠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중국어/한문 원전의 참고용 공구서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디지털로 가공되어 있다는 점. 어차피 달제형 인간들은 이북 베이스로 옮겨갈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 고정된 장소에서만 작업한다면 듀얼모니터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다양한 문서포맷을 지원하는 아이리버 스토리.
그러나 그래도 역시 아이패드.

한번 충전하면 무진장 오래 쓸 수 있고 눈에도 편하고 가격도 적당한 아이리버 스토리가 좋을 듯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이패드.

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Kindle DXG


  1. 宋吳炯《五總志》:“唐李商隱為文,多檢閱書史,鱗次堆集左右,時謂為獺祭魚。” [본문으로]
Posted by lunarog
1월4일, 뒤늦게 중국에서 개봉한 아바타.

  • 상하이 유일의 아이맥스 개봉관, 허핑 영화관
일반 상업상영을 하지 않는 상해과기관을 제외하면 유일한 아이맥스 상영관이 와이탄(인민공원 앞)의 허핑 영화관이었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에 비해 아아~~주 열악한 상황. 중국 내에서도 거의 중소도시급. 베이징이나 광저우에 비해 한참 부족. 다른 건 제법 갖춰졌으면서 아이맥스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 개봉 심야표 예매하기
1월 3일 밤12시에 개봉하는 아바타를 보기 위해 오후 5시에 극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4일표까지 매진, 5일 오전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기다렸다 "오늘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아이맥스 표값 120원(2만원 상당)을 내고 표를 받았다. 그런데 티켓에는 100원이 적혀 있었다. 매표원에게 다시 가서 따졌더니 두 말 않고 20원을 돌려주었다.

11시50분에 극장에 가보니, 아이맥스 입구는 2층, 내 표는 5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제서야 들뜬 마음에 질문을 잘못한 걸 깨닫는다. "오늘밤 아이맥스 3D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정확하게 물었어야 했다. 이들의 서비스는 주어진 질문에만 답할 뿐, 더 이상의 정보 혹은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뿐만 아니라 돈을 더 주면 팁으로 여겨 버린다.

10분 정도 망설이다 (어쩔 수 없잖아?) 결국 아이맥스가 아닌 일반3D로 관람. 자리는 좋았지만 화면이 눈에 차지 않아 약간 아쉬웠다능..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허핑에서는 imax 3D는 필름으로, 일반3D는 디지털 상영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간 늦게 개봉한 탓인지, 첫날 심야에는 서양인이 많았다.

  • 중국의 영화 표값
일반상영관 표도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헐리우드 대작은 보통 70-80원(13,000원), 아바타의 경우 3D는 100원 기준, 아이맥스3디는 120원 기준으로 최고 150원(25,000원)까지 했다.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 자막
영어를 들으면서 중국어 자막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상당히 고역이다. 나의 미천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 자막이 있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 이해에는 편했다. 귀와 눈이 다른 외국어에 노출되는 건 매순간 이중번역 상황에 몰리는 느낌이다. 음성으로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눈으론 시각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막도 시각언어의 일부가 되어버리는지라(?).. 사실 자막으로 영화 보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권장할 건 아니다. 자막 보며 줄거리 따라가기 바빠 영상의 구체적인 세부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영화와 책을 분간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자막 때문인지 모른다. ^^) 그런데 영어 음성+ 중국어 자막의 경우, 훨씬 많이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아바타는 서사가 복잡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말로 전달된 힌트 중에는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

  • 중국내 개봉일 입장수입 기록을 깨며 연일 매진
중국에서도 아이맥스와 3D는 연일 매진이다. 상해의 경우 유일하게 아이맥스로 상영하는 허핑 영화관에 영화관 탄생 이후 가장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어떤 관중은 12시간 넘게 줄을 섰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아들과 여자친구를 위해 밤을 새워 아이맥스 표를 구해 주기도 했단다. 다른 지역에선 아바타 줄을 보고 어떤 농민공이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엄마, 올해는 고향 돌아가기 글렀데이. 아직 설이 한달 넘게 남았는데 벌써 줄이 이렇게 기네?" 기차표 예매하는 줄로 오해했던 것. ^^

예매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약간 철지난 인기의 상징들이 동원되는데. 그러나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 22일 전에 2D 아바타는 극장에서 내려지게 될 것 같다. 곧 개봉할 <공자>(주윤발 주연)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서란다. 까라면 까야지. 3D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이 때문에 괜시리 공자에게 반감만 생기는 건 아닐까 몰러?

그러나 중국정부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테고, 아마도 "아바타는 반드시 imax 3D로 봐야 해!!!"라는 신념을 가진 분이 당국에 있는 게 아닐까?

  • 중국인, 아바타를 바라보는 방식[각주:1]
나비족의 관습이나 행동양식 등 많은 부분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을 차용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티벳을 연상하기도 한다. 공간을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바꾸면 확실히 그렇게 볼 여지가 많다. 또는 최강 철거민과 막강 재개발업자의 충돌로 묘사하기도 한다. 중국 곳곳에서 철거가 일상화되다 보니 그게 가장 와닿았을 듯하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철거를 막은 사건을 "현실판 아바타"라고 하기까지.

"아바타는 현대가 원시만도 못하다는 것, 철거민이 재개발업체를 이기는 이야기. 쥬라기공원+킹콩+지옥의묵시록+캣+3D애니+LED판촉광고로 눈돌아가는 무료한 영화!"(아이웨이웨이 트윗)

어떤 북방인은 영화가 끝난 뒤 이렇게 외쳤다고. "니기미, 내 다시는 중국영화 보나 봐라!!"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니까 아바타가 상영금지 당하는 거라구.. 쯧쯧!)

  • 반면 꼭 보면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사소한 트집을 잡는 애들이 있다.
영혼의 나무를 공격하던 전투기에 새겨진 용이 "중국용(龍)"이라는 것에 주목한 중국아해들, "서양용"은 날개가 있는데 날개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확실히 "중국용"이며, 제작사에 그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다고 카메룬이 그 장면을 삭제해 주겠니?) 

첫째
, 서양용의 반대가 왜 중국용이니? 동아시아 문화에 속하는 모든 것을 "중국"으로 환원시키고, 제각각 독특한 신화와 문화를 지닌 서방세계를 하나의 "서양"으로 환원시키는 중국 일반인들의 보통 생각이 여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이들의 일반적인 용법이 "동서"가 아닌 "중서"문명이다.) 중국 땅에서 그 옛날 일어났던 기원으로서의 문화가 모두 현재 중국인의 것이라면, 마찬가지 논리로 그것은 "서양용"이 아니라 북구의 어느 나라 드래곤일 것이며, 또한 다른 대부분의 문화는 서양의 것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것으로 해야 할 것이다. 중국(한문화)이란 코드는 로마와만 맞짱을 떠야 하는 것 아니냐능.
둘째
,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 보자면) 영화에 공격형 인간 쪽을 미국 백인으로 배치했지만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야'라는 말을 감독이 하고 싶어서 용을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 요즘 하는 꼴을 보면 말이지.쯧쯧. (이렇게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중국인이 있기를 바랬다.)

물론 나는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폭력배의 문신 같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감독이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쳤을 장면이다. 용 문양만으로 그런 의도를 주장하기엔 근거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소한 문신 따위가 아니라 내용을 따져보면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라는 이야기를 한 셈이긴 하다. 제국:식민, 자본가:노동자, 남:여, 인간:생태계 등등등에서 각각이 처한 위치에 따라 영화의 지극 단순한 스토리는 반성적으로 읽을 만한 부분이 많다. 아마도 가장 무심한 관람자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는 영화에 왜 우리가 동참해야 하냐?"라는 투의 태도! 너는 아닌 것 같니?


아바타를 보며 내가 떠올린 생각은 정리가 안 된다. 워낙 훌륭한 평이 많으니 나는 패스~~해도 되겠지?

판도라의 세계는 한때 신념의 문제였던 자연과 인간의 합일, 혹은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사실의 차원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최근에야 가능해진 전지구적 네트워크, 인터넷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지금껏 이렇게까지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자기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지구와 비슷한 별에서 만물이 전기 비슷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 허무맹랑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인디언이나 티벳인들이 그런 말을 하면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미신 같다(고 현대인들은 생각해 왔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

다른 생명체에 의식을 주입할 정도로 과학이 발달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래의 인간은 현재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금속성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의식을 전이시킬 때의 장치 또한 굉장히 구태의연하다. 현재의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계문명과 정신문명를 대비하는 장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왜 나비족들은 동족들끼리는 접속하지 않을까? 말을 탈 때,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접속하여 일체가 된다. 반짝반짝 식물들에게 접속하여 정보를 교환한다. 다른 나비와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면 좋지 아니한가? 적어도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섹스 장면에서라도 인간적인 행위인 키스나 섹스가 아니라 다른 교접방식이 보여지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 상대에게 나를 허락한다는 징표로서의 접속. 새로운 방식의 '행위로서의 교감'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1. 중국의 영화평이나 인터넷 감상을 전부 뒤져본 것이 아니라 어쩌다 내 눈에 포착된 제한된 단상들일 뿐, 중국인 일반의 아바타 관람방식은 아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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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로쟈의 저공비행은 내가 즐겨찾는 블로그다. 비평고원이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름도 가물가물하고나..)일 때부터 그의 글을 봐 왔고, 특히 번역에 대한 그의 문제제기, 혹은 그러한 상황을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에 마음으로나마 지지를 보내왔다.(지지를 꼭 드러나게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그 지지의 한 방식으로 나도 중국쪽 원전이 잘못 번역된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고쳐 두고는 했다. 천성이 게을러 눈에 띄게 하지는 못했지만. 양만 다른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른데, 나같은 듣보잡에겐 번역계 전반에 대한 비판이란 일은 가당치도 않아 그저 내가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만 고쳐가며 읽는 정도다.

요즘은 로쟈도 워낙 유명해지고 바빠서 그렇겠지만, 자기 글은 별로 올리지 않고 책과 관련된 소식을 블로그로 모으고 짧은 논평만 남겨놓곤 한다. 여러 정보 중에서 "선별"하는 것만도 능력이고, 그의 서재에 가면 그렇게 선별된 글들을 한번에 볼 수 있으니 편하다. 다만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링크만 걸어두는 식으로 바뀌는 게 좋을 듯하다. 알라딘은 블로그가 아니라 "서재"이기 때문에 책을 사서 차곡차곡 꽂아놓듯이 정보들을 서재로 모으는 게 정당화될 수도 있겠다. 자기 서재에 꼽힌 무수한 책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읽어주는 듯한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인용으로 도배된 혹은 남의 글을 전문인용하는 논문 같은 느낌도 든다. 굳이 저작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출판되었고 아직 절판되지 않은 글을 다른 사람이 재출간할 필요는 없는 거다.(그런 면에서 서재와 도서관의 차이처럼 대별되는 곳이 cliomedia이다.) 정말 서재라면, 그래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둘 필요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비공개로 본인만 보면 된다. 지금처럼이라면 연예계 기사를 퍼와서 간단한 논평을 붙이는 네이버 블로그와 행위 자체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로쟈가 저렇게 해 주면 나도 편하고 그의 선별취향도 마음에 들기 때문에 자주 들렀었는데, 갑자기 약간 비아냥조가 되는 이유는 이번에 한국일보의 기사를 옮긴 당신이 읽는 거의 모든 것을 읽다가 감정적으로 살짝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 [책의 풍경, 2009] <8> 번역서, 당신이 읽는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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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번역, 탁해지는 출판시장

번역서의 범람이라는 현상에 비해, 번역의 수준을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출판계에선 수치로 드러나는 양보다 무분별한 번역이 해치고 있는 출판의 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서평 활동을 하는 이현우씨는 "번역의 질 자체는 태반이 '날림'"이라고 꼬집으며, 이를 유해 농산물에 빗대 '중국산 번역'이라 표현했다. 이씨는 "먹거리라면 그렇게 무분별하게 수입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대중이 더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듯, 독자도 품질 높은 번역서를 읽을 권리를 출판사에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꼭 필요한 분야의 책이 제때 번역돼 나올 수 있는 환경의 구축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저자를 찾기 힘든 선진 담론을 소개하는 것이 번역 출판의 본래 의미. 그러나 기초학문 도서 등의 출간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거의 없다.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은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었지만, 쟈넷 브라운 등의 훌륭한 다윈 관련 책들은 정작 번역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번역가 김석희씨는 "전공 분야의 고전을 번역해도 연구 업적으로 쳐주지 않는 등 학계의 닫힌 현실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상호기자)

* 배경색 강조는 로쟈, 밑줄과 굵은글씨는 루나.

이 한국일보 기사에 대한 로쟈의 간단한 코멘트는 이러하다.

한국일보의 2009년 출판계 결산 연재 가운데, 번역서에 관한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엊그제 한 인터뷰에서 몇 마디 거든 게 인용돼 있다. '태반이 날림'이라고 한 표현은 과한데, 날림으로 나온 번역도 적지 않다 정도이다. '중국산 번역'이란 표현은 내가 곧잘 쓰는 것이다.


아마도 made in china의 이미지를 원용한 듯한데. 별 고민 없이 저런 멘트를 자주 써도 될지 의아스럽다. 문화적으로나마 대국인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주위에 중국친구도 없을 테니 '우리끼리 하는 우스개소리' 정도에서야 곧잘 써도 누가 뭐라겠냐.만은. 솔직히 중국 쪽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듣기 유쾌한 말은 아니다.

딱 들었을 때 한국인이 반응을 보일 만할 만한 비유를 찾다보니 그랬을 수는 있겠다. "비유"에 정색하고 문제점을 따지는 게 더 문제가 되는 이상한 짓인 것 같긴 하다만, 저 문구를 보자마자 내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당화해야겠다.


번역을 둘러싼 문제가 한두 해도 아니고, 별로 새로운 문제제기도 없이, 딱히 대안이랄 것도 없는 그저 연말 정리기사에 로쟈를 인용한 것은 그가 지금까지 번역을 둘러싸고 해 왔던 일들에 링크를 걸어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미 번역에 대한 로쟈의 발언을 인정하고 있는 셈. 날림을 나온 번역도 적지 않다는 정도의 발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날림 번역에서 문제가 되는 게 원산지였나?
(번역서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학문의 식민상황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물론 나는 번역으로 인한 식민상황을 전혀 걱정하지 않으며, 번역이 더 많아지는 게 오히려 식민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선 별 상관없는 문제이므로 패스~~)

중국산 먹거리가 문제가 되었던 게 원래부터 안 좋은 걸 무분별하게 들여와서인가, 아니면 원래는 하자가 없는 건데 한국에 와서 잘못 가공해서 문제가 되는 건가. 즉 "먹거리라면 그렇게 무분별하게 수입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저 말을 사용하려면 원래부터 하자가 있는 원전을 들여오는 경우에나 합당할 거다. 예를 들어 짜집기한 책인 줄 모르고 번역 소개한다거나, 들뢰즈가 쓰지도 않은 짝퉁 철학서를 표지의 서명만 믿고 번역한다거나 뭐 그런 거. 그게 로쟈를 위시한 우리 한국인이 연상하는 중국산 이미지이지 않나?

그런데 보통 번역의 대상이 되는 원전, 특히 로쟈가 추천하는 책들은 멀쩡할 뿐 아니라 그쪽 분야에서는 최상품으로 평가받는 것들이다. 그게 한국에 와서 쓰레기가 되곤 한다. 너무나도 어이 없는 쓰레기가 많아 로쟈를 위시한 많은 이들이 광분한 것이고, 역량있는 저자의 의미 있는 저작을 제목만 보고 집어들었다가 좌절한 이땅의 많은 후배들이 로쟈를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다. 딴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렇다.

같은 말인데, 저 비유로 어떠한 자기반성을 끌어낼 수 있나?

날림 번역이 많은 한국 번역계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싸구려 중국산을 탓할 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자기반성을 더 고려한 비유여야 하지 않을까? 출판환경이나 제도, 번역자의 역량과 함께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적 교양수준 등이 어우러져 반복되고 있는 저 문제에 관해 그렇게 올바른 목소리를 내왔던 분이 왜 저런 비유를 쓰는지 모르겠다.

여튼 중국산을 저 따위로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사실 없다. (나도 쓰다 보니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정도다. 일 방문자 100명 정도의 조용한 내 블로그가 시끄러워지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중국의 많은 부분을 싫어하고, 실제로 비판적으로 볼 구석이 많은 동네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기존에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를 별로 적절하지 않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태도는 좀 아니다. 그건 자체로 기분이 나쁘다. 굳이 하고 싶다면 "미국산 쇠고기 번역"이라고 하실 것을 추천한다. 정치적 올바름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자기반성보다는 원산지를 탓하는 논리에서도 그게 더 적합한 비유 아니겠나.


# 비아냥을 좀 덜어내 보려는데 잘 안 되네요. 제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로쟈님의 작업을 부정하는 건 아니랍니다. 갑자기 대법원 판결식 댓글이 달릴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다만 문제있는 번역에 대한 교정 요구를 출판사에 해야 한다는 주장을 독자의 입장에서 로쟈의 서재에 돌려주는 것으로 이해해 주세요. 변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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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9. 10. 31. 00:38
동아시아 출판인회의를 조직하여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한다는 말을 일전에 들었는데 29일에 선정 및 발표되었다.
동아시아 격변기 세계관 바꾼 ‘현대의 고전’ 한겨레
“거대한 독서공동체 복원 첫걸음” 한겨레
한·중·일 이어줄 ‘100권의 책’ 중앙일보
책에서 동아시아 문화 유전자 찾는다 중앙일보

내가 번역한 책도 후보에 올라와 있어 출간을 약간 미루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최종선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후보 명단에 올라와 있던 책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출판사별로 나눠먹기식이어서 성격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선정된 책들을 보니 나라별로 기준은 다르지만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색깔에 의하면 중국쪽에서 선정한 목록에 내 번역서가 포함되지 않는 게 너무 당연하게 보일 정도이다.

목록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선정기준이 거의 유사하고 출판인회의에서 내세운 취지에 잘 맞는 것 같다. 두 나라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역사를 거쳤고 그것을 해결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이 "학술서"에 보다 치중한 반면 한국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진 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에서 아니나다를까 선정 기준이 뭐냐고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편집자 레터] '한국 대표하는 책' 기준은), 한국일보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저술한 학술서와 고급 교양서"임에 반해 한국은 "정치ㆍ사회적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 눈에 띄어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한국쪽 선정도서에 대한 견해는 비슷한데, 일본쪽 선정도서에 대해서는 한국일보와 한겨레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어차피 한국사람들에겐 생소한 분야라 신문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 테니까.)

이에 반해 중국쪽은 명확하게 중국 "학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뭐, 그다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그런 거. 처음 추천후보에 각종 사전류가 대거 포함된 것을 생각해 보면 많이 나아진 거긴 하다. 사전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하긴 할 테지만, 무려 "동아시아 100권의 책"으로 서로 돌려보자는 취지에는? 그걸 어찌 번역해? 후후.
암튼 정리된 최종선정 목록에는 인민공화국 건립 이후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중국쪽 매체에서는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한국어로 엉성하게 번역된 책 제목이 아니라 좀 더 정확한 목록을 살펴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되어 나오는 건 중앙일보 등이 올초에 제공한 기사의 중문판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중국 쪽은 발만 슬쩍 담근 형국??


이 중 한국어로 이미 번역된 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1. 시론, 주광잠(주광첸), 동문선
4. 중국철학약사, 풍우란(펑유란) ; (간명한)중국철학사 / 펑유란 지음 ; 정인재 옮김 형설, 2007
7. 한어사고, 왕리 ; 중국어 어법 발전사 / 王力 著 ; 박덕준 ... [등]역 사람과책, 1997
10. 미의 역정, 이택후(리쩌허우), 동문선

18. 담예록, 전종서(첸중수) ; 하나마나한 번역으로 <중국어문학> 학회지에 완역(미출간).
19. 향토중국, 비효통(페이샤오퉁) ; 중국사회의 기본구조 = Rural China / 費孝通 원저 ; 이경규 역 一潮閣, 1995
20. 현대중국사상의 흥기, 왕후이 (출간예정)

대만
3. 중국예술의 정신, 서복관(쉬푸관) ;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權德周 ... [等譯] 東文選, 1990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李鍵煥 譯 百選文化社, 2000
11. 만력 15년, 레이 황


각 신문들의 소개를 보면, 책 제목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사람 이름에서는 오류가 많다. 특히 중국식 병음은 많이 알려져 거의 오류가 없지만(중앙일보 표기는 엉망이다), 대만식 영문표기는 대부분의 신문에서 뒤죽박죽이다. 웨이드식 표기라는 걸 모르면 장광즈(張光直)를 창쾅츠(Chang, Kwang-chih)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심종문(선충원)을 셴콩웬(Shen Congwen)이라고 읽는 건 뭘까? 아마도 홍콩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번 선정에 한중일 각 26권, 대만이 15권, 홍콩 7권이다. 그러나 대만, 홍콩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은 한두 권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범중화권으로 묶일 수 있을 성질의 것들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 대륙에서 출간하지 않고 홍콩이나 대만에서 출간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규모 면에서 한중일이 똑같은 분량으로 했을 때 나오는 불균형을 이런 식으로 메꾼 것으로 보인다만, 대만이나 홍콩 자신의 역사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정련한 책들이 아쉽긴 하다. (이 목록만 보면 이들은 이미 "하나의 중국"이다.)

신문에 소개된 것처럼 차후에 번역이나 후속활동이 계속되겠지만, 이제껏 한중일 삼국이 서로 관심 가는 책들을 번역해서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물론 중국에서의 한국책 번역 비율은 낮다만, 사업 이후에 갑자기 한국책을 많이 번역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사업 자체로 문화공동체 운운하는 건 좀 과장일 듯하다. "같이" 뭘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든 책은 없고 자국의 특성을 강조하는 책들로 다들 뽑았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 쪽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공동체"로 묶이는 걸 그닥 바라지도 않지 않나?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