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번역은 원작과 경쟁이 안 된다. 원작이 신이라면 번역은 제사장에 불과하다. 창조가 허용되지 않는 제사장에게 진리는 자기 것이 아니다. 신에게 오류가 있더라도 그건 창조과정의 일부일 뿐이다.[각주:1] 만약 제사장이 오류를 범하면 돌이 날아온다. 제사장의 역할은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는 군중을 위해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누군가 "신은 절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라고 의문을 품고 돌을 던지는 순간 제사장은 피투성이로 제단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체되어 왔고, 대체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를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내세워 "신의 목소리"라 생각되는 것들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창조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신이 되어도 된다. 신인 척하는 것도 제사장에게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신과 경쟁하려는 순간 제사장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1. 신의 오류를 지적하는 불경을 누가 저지르겠는가? 그것이 오류로 보이는 내 눈을 탓하고 참회한다. 그 속의 깊은 의미는 뒤늦은 깨달음으로 돌아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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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1월4일, 뒤늦게 중국에서 개봉한 아바타.

  • 상하이 유일의 아이맥스 개봉관, 허핑 영화관
일반 상업상영을 하지 않는 상해과기관을 제외하면 유일한 아이맥스 상영관이 와이탄(인민공원 앞)의 허핑 영화관이었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에 비해 아아~~주 열악한 상황. 중국 내에서도 거의 중소도시급. 베이징이나 광저우에 비해 한참 부족. 다른 건 제법 갖춰졌으면서 아이맥스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 개봉 심야표 예매하기
1월 3일 밤12시에 개봉하는 아바타를 보기 위해 오후 5시에 극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4일표까지 매진, 5일 오전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기다렸다 "오늘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아이맥스 표값 120원(2만원 상당)을 내고 표를 받았다. 그런데 티켓에는 100원이 적혀 있었다. 매표원에게 다시 가서 따졌더니 두 말 않고 20원을 돌려주었다.

11시50분에 극장에 가보니, 아이맥스 입구는 2층, 내 표는 5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제서야 들뜬 마음에 질문을 잘못한 걸 깨닫는다. "오늘밤 아이맥스 3D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정확하게 물었어야 했다. 이들의 서비스는 주어진 질문에만 답할 뿐, 더 이상의 정보 혹은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뿐만 아니라 돈을 더 주면 팁으로 여겨 버린다.

10분 정도 망설이다 (어쩔 수 없잖아?) 결국 아이맥스가 아닌 일반3D로 관람. 자리는 좋았지만 화면이 눈에 차지 않아 약간 아쉬웠다능..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허핑에서는 imax 3D는 필름으로, 일반3D는 디지털 상영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간 늦게 개봉한 탓인지, 첫날 심야에는 서양인이 많았다.

  • 중국의 영화 표값
일반상영관 표도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헐리우드 대작은 보통 70-80원(13,000원), 아바타의 경우 3D는 100원 기준, 아이맥스3디는 120원 기준으로 최고 150원(25,000원)까지 했다.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 자막
영어를 들으면서 중국어 자막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상당히 고역이다. 나의 미천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 자막이 있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 이해에는 편했다. 귀와 눈이 다른 외국어에 노출되는 건 매순간 이중번역 상황에 몰리는 느낌이다. 음성으로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눈으론 시각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막도 시각언어의 일부가 되어버리는지라(?).. 사실 자막으로 영화 보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권장할 건 아니다. 자막 보며 줄거리 따라가기 바빠 영상의 구체적인 세부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영화와 책을 분간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자막 때문인지 모른다. ^^) 그런데 영어 음성+ 중국어 자막의 경우, 훨씬 많이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아바타는 서사가 복잡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말로 전달된 힌트 중에는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

  • 중국내 개봉일 입장수입 기록을 깨며 연일 매진
중국에서도 아이맥스와 3D는 연일 매진이다. 상해의 경우 유일하게 아이맥스로 상영하는 허핑 영화관에 영화관 탄생 이후 가장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어떤 관중은 12시간 넘게 줄을 섰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아들과 여자친구를 위해 밤을 새워 아이맥스 표를 구해 주기도 했단다. 다른 지역에선 아바타 줄을 보고 어떤 농민공이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엄마, 올해는 고향 돌아가기 글렀데이. 아직 설이 한달 넘게 남았는데 벌써 줄이 이렇게 기네?" 기차표 예매하는 줄로 오해했던 것. ^^

예매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약간 철지난 인기의 상징들이 동원되는데. 그러나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 22일 전에 2D 아바타는 극장에서 내려지게 될 것 같다. 곧 개봉할 <공자>(주윤발 주연)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서란다. 까라면 까야지. 3D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이 때문에 괜시리 공자에게 반감만 생기는 건 아닐까 몰러?

그러나 중국정부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테고, 아마도 "아바타는 반드시 imax 3D로 봐야 해!!!"라는 신념을 가진 분이 당국에 있는 게 아닐까?

  • 중국인, 아바타를 바라보는 방식[각주:1]
나비족의 관습이나 행동양식 등 많은 부분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을 차용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티벳을 연상하기도 한다. 공간을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바꾸면 확실히 그렇게 볼 여지가 많다. 또는 최강 철거민과 막강 재개발업자의 충돌로 묘사하기도 한다. 중국 곳곳에서 철거가 일상화되다 보니 그게 가장 와닿았을 듯하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철거를 막은 사건을 "현실판 아바타"라고 하기까지.

"아바타는 현대가 원시만도 못하다는 것, 철거민이 재개발업체를 이기는 이야기. 쥬라기공원+킹콩+지옥의묵시록+캣+3D애니+LED판촉광고로 눈돌아가는 무료한 영화!"(아이웨이웨이 트윗)

어떤 북방인은 영화가 끝난 뒤 이렇게 외쳤다고. "니기미, 내 다시는 중국영화 보나 봐라!!"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니까 아바타가 상영금지 당하는 거라구.. 쯧쯧!)

  • 반면 꼭 보면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사소한 트집을 잡는 애들이 있다.
영혼의 나무를 공격하던 전투기에 새겨진 용이 "중국용(龍)"이라는 것에 주목한 중국아해들, "서양용"은 날개가 있는데 날개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확실히 "중국용"이며, 제작사에 그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다고 카메룬이 그 장면을 삭제해 주겠니?) 

첫째
, 서양용의 반대가 왜 중국용이니? 동아시아 문화에 속하는 모든 것을 "중국"으로 환원시키고, 제각각 독특한 신화와 문화를 지닌 서방세계를 하나의 "서양"으로 환원시키는 중국 일반인들의 보통 생각이 여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이들의 일반적인 용법이 "동서"가 아닌 "중서"문명이다.) 중국 땅에서 그 옛날 일어났던 기원으로서의 문화가 모두 현재 중국인의 것이라면, 마찬가지 논리로 그것은 "서양용"이 아니라 북구의 어느 나라 드래곤일 것이며, 또한 다른 대부분의 문화는 서양의 것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것으로 해야 할 것이다. 중국(한문화)이란 코드는 로마와만 맞짱을 떠야 하는 것 아니냐능.
둘째
,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 보자면) 영화에 공격형 인간 쪽을 미국 백인으로 배치했지만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야'라는 말을 감독이 하고 싶어서 용을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 요즘 하는 꼴을 보면 말이지.쯧쯧. (이렇게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중국인이 있기를 바랬다.)

물론 나는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폭력배의 문신 같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감독이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쳤을 장면이다. 용 문양만으로 그런 의도를 주장하기엔 근거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소한 문신 따위가 아니라 내용을 따져보면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라는 이야기를 한 셈이긴 하다. 제국:식민, 자본가:노동자, 남:여, 인간:생태계 등등등에서 각각이 처한 위치에 따라 영화의 지극 단순한 스토리는 반성적으로 읽을 만한 부분이 많다. 아마도 가장 무심한 관람자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는 영화에 왜 우리가 동참해야 하냐?"라는 투의 태도! 너는 아닌 것 같니?


아바타를 보며 내가 떠올린 생각은 정리가 안 된다. 워낙 훌륭한 평이 많으니 나는 패스~~해도 되겠지?

판도라의 세계는 한때 신념의 문제였던 자연과 인간의 합일, 혹은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사실의 차원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최근에야 가능해진 전지구적 네트워크, 인터넷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지금껏 이렇게까지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자기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지구와 비슷한 별에서 만물이 전기 비슷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 허무맹랑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인디언이나 티벳인들이 그런 말을 하면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미신 같다(고 현대인들은 생각해 왔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

다른 생명체에 의식을 주입할 정도로 과학이 발달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래의 인간은 현재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금속성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의식을 전이시킬 때의 장치 또한 굉장히 구태의연하다. 현재의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계문명과 정신문명를 대비하는 장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왜 나비족들은 동족들끼리는 접속하지 않을까? 말을 탈 때,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접속하여 일체가 된다. 반짝반짝 식물들에게 접속하여 정보를 교환한다. 다른 나비와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면 좋지 아니한가? 적어도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섹스 장면에서라도 인간적인 행위인 키스나 섹스가 아니라 다른 교접방식이 보여지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 상대에게 나를 허락한다는 징표로서의 접속. 새로운 방식의 '행위로서의 교감'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1. 중국의 영화평이나 인터넷 감상을 전부 뒤져본 것이 아니라 어쩌다 내 눈에 포착된 제한된 단상들일 뿐, 중국인 일반의 아바타 관람방식은 아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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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최건(추이젠)의 "진창운동(眞唱運動)"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검색해 보다가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일단 립싱크로 노래하는 가수들에 대한 반대로 하는 운동인 것은 확실해 보여 그냥 "라이브 공연 운동"이라고 옮겨 뒀는데, 오늘 보니 최건의 홈페이지가 영어와 중국어로 운영되고 있다.

崔健发起真唱运动홈페이지에서는 "진창운동"에 관한 카테고리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고, 영어로는 "Live Vocals"라고 소개해 두고 있다. 그럼 "라이브 보컬 운동"이라고 옮겨야 하나?

"립싱크-라이브"의 대응은 알겠는데, 그게 우리말로 적절한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요즘 우리말이나 한자어 조합은 잘 안 쓰잖아?

암튼 "진짜 노래 운동 선언"도 홈페이지에는 소개가 되어 있다.
만, 그저 중국도 여지간히 립싱크가 심하구나. 그다지 힘들게 부르지 않아도 되는 노래 같던데..  위대한 "중국 락의 대부"께서 친히 나서셔서 운동을 주창하고 서명을 받을 것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갈 뿐이다.

그보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선언의 아래쪽에 덧붙어져 있는 문구였다.
뭔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법령이었다..
(간단하게 소개된 영어 홈페이지에는 관련내용이 없다.)
 

2008년 11월 문화부 문화시장 부서(文化部文化市场司)는 국무원에서 반포한 <"영업성 공연 관리 조례"의 수정에 대한 결정>(关于修改<营业性演出管理条例>的决定)에 근거하여 <영업성 공연 관리조례 실시 세칙(营业性演出管理条例实施细则; 의견모집 안)>(이하 <조례>로 간칭)을 기초하였으며 공개적으로 의견을 모집하고 있다. <조례>는 영업성 공연에서 립싱크, 가짜 공연 등의 수단으로 관중을 기만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위반시 처벌이 가해질 것이다. <조례>제53조는 처벌 규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가짜 연주 등의 수단으로 관중을 기만할 시 처벌한다. 위법 행위의 혐의가 있는 연출 단체, 예술공연 단체와 연예인에 대해서는 관련 문화행정부문에서 사회에 폭로한다. 연출 단체, 예술공연 단체에서 2년 내에 재차 공표되면 원 증명서 발급기관에서 영업성 공연 허가증을 취소한다. 개별 연예인이 2년 내에 재차 공표되면 공상행정관리 부문에서 영업 면허증을 취소한다.

2008年11月文化部文化市场司根据国务院所发布的 《关于修改<营业性演出管理条例>的决定》,起草了《营业性演出管理条例实施细则(征求意见稿)》(简称《条例》),并公开征求意见。《条例》明确规定营业性演出不得以假唱、假演奏等手段欺骗观众。否则将予以处罚。 《条例》第五十三条做出了处罚规定:以假演奏等手段欺骗观众的,将给予处罚。对于具有违规行为的演出举办单位、文艺表演团体、演员,相关文化行政部门将向 社会曝光。演出举办单位、文艺表演团体在两年内再次被公布的,由原发证机关吊销营业性演出许可证;个体演员在两年内再次被公布的,由工商行政管理部门吊销 营业执照。


이 법령이 지금 벌써 시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이 법령대로라면 갑자기 생각나는 게 올림픽 개막식에서 했던 립싱크는 어떻게 처벌되는 걸까? (사실 나는 그래픽 폭죽도, 립싱크도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만..) 아무튼 의견을 구하고 있다니 앞으로 중국의 공연계가 어떻게 바뀔지 지켜볼 일이다. 혹시 MB도 이런 거 따라하지 않을까? ㅡㅡ;; (아, 다시 생각해 보니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초토하시킬 그런 정책을 가카께서 할 리가 없다. 법을 만든다면 오히려 립싱크를 더욱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

또 하나. 갑자기 최건에게서 장예모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실제로 어떠한가와는 상관없이 반체제, 혹은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던 이가 어느날 보니까 체제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당혹감.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운동 한 몇 년 하고 나니까 법규가 바뀔 정도라면 대단한 것 아닌가? 물론 최건의 중국 내 위상은 한국의 신중현 이상이니 만큼 그런 운동을 할 수 있고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는데, 그게 자발적인 캠페인의 차원을 넘어 법조례를 바꿀 정도라면 .. 역시 80년대 사람들, 대단하다니깐!!


원래도 최건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 때문에 요즘 다시 들어봐도 그다지 좋아지게 되지 않는다. "일무소유" 정도가 귀에 조금 아른거릴 뿐. 이렇게 역사적인 건 원래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정서에 비춰서 생각해야 되는 듯 하다. 음악 자체만으로 따진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좋은 음악은 아닌 것이다.


(디비디 가게에 가서 "최건" 씨디 있나요? 그랬더니 "최근" 건 이 앞에 있는데? 그러더군요. 잠깐 내 갱상도 발음이 샜나 했다가, 아니 중국어 표준말로 했는데... 추이젠, 쭈이진!!  별로 안 비슷한데..비슷한가? 내 훌륭한 표준 중국어가 갑자기?? )

최건의 홈페이지에 있는 "라이브 공연 운동 선언"은 번역하지 않고 옮겨두기만 한다. 내용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다. "진창운동"이란 말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가능할 듯.


真唱运动宣言 


  在我们置身的这个时代,音乐精神的沉沦和贫乏是有目共睹的。假唱已经成为一个毒瘤,导致大中华地区、亚洲其他地区同世界流行音乐现场演出的距离越来越大。
  音乐的视觉化强调对歌手外形的包装,使真正意义上的音乐被败坏。假唱包括对口型、假伴奏、请他人代唱。假唱给艺术的中庸化、媚俗化提供了繁殖的温床。 让公众在不知情的状态下,获得低质量的精神消费,这是不道德,也是不公平的,属于欺诈行为。
  假唱的最大危害在于破坏歌坛真正的游戏规则,设置了一种潜规则,让音乐依附于强势传媒。假唱是歌坛版的皇帝的新衣,人人都知道,但都保持沉默。沉默本身就是一种耻辱。
  “真唱运动”需要用信心和爱去鼓舞,用自己的行动促进时代的进步。如果我们对假唱熟视无睹,那么一切热爱音乐、尊重艺术劳动的表白都可以看成是虚伪的。
  真唱是一种权力。“真唱运动”是我们的第一步,这个行动不是公益活动,不是宣战,而是一次纯粹的自卫行动。它已超越对公民经济权利的保护范畴,隐含着公民人身权利意识的觉醒 。我们呼吁最终以立法的形式,给有良知、有能力的艺术家更多的公平和机会。
  从某种意义上来说,“真唱运动”应该是全人类的运动。因为嗓子是人类第一件共同的乐器,而现代科技正与商业合谋,试图扼杀或替代这一人类最为珍贵的东 西。我们希望假唱成为全世界所有音乐家都感到可耻的行为,只有真实的音乐才是真正动人的、感人的音乐。
  你在此签名不是为了我们,而是为了你自己。如果你真正热爱音乐,并认同我们的理念,请公开写下你的姓名、职业和国籍,表达你的立场。凡是签了名的经理 人、制作人、导演、歌手,希望自己不假唱也不给假唱者提供机会,并为自己的行为负全部的道义上的责任。
  我们希望媒体和公众的监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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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한동안 영화를 못 보다가 어제 후배들과 술을 한잔 한 김에 견자단이 주연한 <엽문>을 보았다.
그래. 나는 엽문이 이소룡의 스승이라서 본 것이 아니라 견자단이 주연을 했기 때문에 봤다.
견자단에게는 이소룡의 아우라도 없고, 성룡의 익숙한 재미도, 이연걸의 화려함도 없다.
그렇지만 견자단에게는 위 세 사람에 뒤지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견자단을 계속 찾게 하는 것이다.


사실 무술 좀 합네, 혹은 무술영화 좀 봤네 하는 사람 중 견자단을 챙기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황비홍2나 철마류 등에서도 괜찮았지만 드라마 <정무문>에서 아마 증폭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실전 최고수 철구 형님께서도 한때 드라마 정무문에 뻑 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소룡 같은 카리스마나 이연걸의 화려함이 아니라 무술의 스킬을 보고 배운다는 입장에서 보면 견자단의 동작은 꽤 매력적인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견자단 같이 한 길만 걷다가 대가의 경지에 이르는 액션배우가 없다는 게 아쉽다.
한국은 막싸움을 리얼액션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영화의 과장된 액션에 대한 반대급부이겠지만, 막싸움도 정말 리얼한 액션은 아니지. "영화는 영화다"!? "한국형 액션"이란 건 액션에 한국형, 일본형, 중국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처럼 할 능력과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선택한 소극적인 길일 뿐이다. 물론 한국도 정두홍이나 류승완처럼 재미난 액션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 "액션"에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대가의 몸짓은 없다. 좀 거칠다고 할까.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교한 맛은 확실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영춘권을 그다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엽문>의 액션은 정말 군더더기가 없는 대가의 그것이다.
이소룡의 그 발산하는 매력은 잘 아는 바이나, 사실 그렇게 오버할 필요는 없다. 오버 잘못 하면 제대로 깨진다..


< 엽문>의 이야기 구성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예전 무술영화가 고난-수련-복수(혹은 성취)의 성장영화 스타일이 주요 스토리라인이었다면 요즘은 고수의 수련기는 생략한 채 활약만 보여준다. 그 속에 민족주의적인 감성도 슬쩍 섞여 들어가고. <엽문>도 일본군과 중국 민중의 대비를 통해 편하게 민족주의적인 대립구도에 기대고 있기는 한데. 세심하게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구도는 실전에서 영춘권이 얼마나 유효하고 강력한 무술인지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느낌이다. 중국 무도가들과 싸울 때는 얌전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다가, 일본 애들 족칠 때 제자 이소룡을 예비하는 몸짓을 보여준 것이겠다.
영화가 민족주의적인 것이 되지 않게 나갈 장치를 더 강조할 수도 있었을 건데, 아마 익숙한 장치에 기대기 위해 간략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것 같다. 중국인이 나쁜 중국인을 혼내 주는 것보다 "일본"이라는 국가장치에 맞서는 게 더 명분이 있는 법이니까.


아무튼 견자단과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감독 엽위신의 카메라도 나쁘지 않고 여러 가지 잔재미도 많으며, 감정을 너무 쥐어 짜지 않으면서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잘 구성된 영화인 것 같다.

설마 감독 엽위신이 엽문의 후손은 아니겠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성으로 읽을 때는 엽위신, 엽문이 아니라 섭위신, 섭문 아닌가?
물론 중국어 발음에선 구분이 없고 어감은 엽문이 좋다만은.


생각나는 대사 몇 개만 간단히 정리해 두자.
금산조(金山找)가 결투에서 진 후 엽문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북방무술이 남방무술에게 졌다!"
"북방무술이 진 게 아니라 니가 문제야 임마!"

수련이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어떤 문파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이다. 어떤 무술을 익혔는가가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수련했느냐에 따라 결투의 결과는 달라진다. 이 대사에서 개인이 두드러졌다면, 일본군과의 10:1 대련 후에는 그 또한 "나는 그저 중국인일 뿐이오"라는 대사를 날리며 중국인 전체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자는 없고 존경하는 남자만 있다."

 이 말은 다음에 꼭 써먹어야겠다. 아주 멋진 자기합리화잖아?  ^^;;
Posted by lunarog
아주 오래전 테레비에서 본 만화가 생각난다. 아니 항상 품고 있다가 가끔씩 꺼내보는 사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만, 제목도,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 난 그냥 테레비에서 보고 이야기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왕국에 왕이 아끼는 항아리가 깨졌다. 왕은 왕국 제일의 도예가 할아버지에게 그 항아리를 전혀 깨진 흔적 없이 붙일 것을 명한다. 할아버지는 그 항아리 조각들을 가져가서는 붙일 생각도 하지 않고 들여다 보고만 있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고, 그는 왕에게 깨진 흔적 없이 완벽한 항아리를 바친다.

도제가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항아리를 붙였냐고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보자기를 풀어 왕의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을 보여준다.

그는 항아리를 붙인 게 아니라 깨어진 조각들을 보고 그와 똑같은 새로운 항아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단순하게 읽자면 이 깨어진 항아리를 "전통"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각난 좋은 전통을 아쉬워하며, 그것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이미 조각으로 남은 그 전통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원래의 전통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듯이 추억 속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전통의 복원 또한 사람의 손에 의해 재창조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잊혀진다.


도처에 깨어진 조각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원래의 형체를 깨뜨려 하나하나 조립해 봐야만 깨닫는 진리도 있으니까.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것일수록 원래의 형체는 알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는 그것의 깨어진 부분들이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남겨진 부분에 연연하며 어떻게든 매끈하게 붙이려고 애쓴다.


가장 창조적이고 위대한 작업은 이렇다. 국보급 고려청자가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루만지고 감상하는 골동품 애호가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을 아낄수록 단번에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그 깨어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핀다. 커다란 조각의 무늬와 빛깔 뿐 아니라 먼지처럼 작은 알갱이를 어루만지며 그것의 재질과 구워질 때의 온도까지 가늠해 본다. 그리고 새로운 항아리를 굽는다.


그 결과는 원래의 항아리를 복원하는 비슷하게 닮은 항아리일 수도 있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똑같거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생각도 우스운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 파편들은 새로운 작품에 생생하게 인용되고 있지만 이미 그의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국보급 문화유산도 깨뜨릴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전통이 된다.




몽타주, 모자이크, 사고의 세부 조각들..  옛 사람들의 파편에서 헤매다 지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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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10월 17일에 서거한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파금의 3주기를 맞아 몇 가지 행사가 진행된다.


먼저 10월 15일에는 그의 대표작 <가(家)>에 대한 대형 토론회가 열렸다. 작품 탄생 75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자리이다. 이와 함께 자오즈강(赵志刚) 주연으로 상하이 월극단(上海越剧团)에서 월극(越剧)《가》를 재연하였다.


작품 토론회는 따로 부르지 않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파금 전공자이자 월극 <가>의 문학고문이기도 한 지도교수 덕분에 공짜표도 있고 해서 저녁에 시간을 내서 월극을 보러 가게 되었다. 상해에서는 연극을 한편도 못 봤으니 시험삼아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극은 "월(越)" 지방, 즉 절강 지역의 전통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극에 비해 움직임이 적고 여성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당연히 절강 쪽 방언으로 대사와 노래를 했기 때문에 자막에 의지해 내용을 파악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리얼리즘을 표방한 <가>는 아주 재미가 없다. 지루해서 몇 번을 잡았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작품이다. 사실 한국의 중문과는 작품 읽는 걸 그다지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사실 다양한 작품을 읽힐 만한 환경도 되어 있지 않다.. ㅡㅡ;;) 학교 다니면서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었다. 문학사에 나오는 내용만 잘 외우고 있으면 되니까.(못 읽은 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중국 애들하고 이야기할 때 그렇다고 고백하기는 좀 거시기하다만..) 따라서 자막조차 대체로 이해를 못했다면 절강방언으로 하는 이 연극의 내용을 전혀 모를 뻔 했다.


재미 없을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그런대로 볼 만 했다. 소설과는 달리 많은 생략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줄거리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노래와 분위기로 대체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면전환도 느리고 동작도 느린데도 빠르게 진행된다고 느꼈던 것도 아마 "생략"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생략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물론.  주인공을 맡은 자오즈강은 "월극의 왕자"(越剧王子)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는 인물이다만, 월극의 묘미를 모르는 나로선 그가 얼마나 좋은 연기와 노래를 펼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여성 동무들의 노래가 훌륭했고 남성 동무들은 좀 그랬다. 특히 악역인 천이타이(陈姨太) 역을 맡은 중년 배우의 노래가 잘 모르는 내 귀에는 가장 훌륭하게 들렸다.(누군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도통 검색이 안 된다.. 만약 2004년 초연 때와 같은 배우라면 후페이디(胡佩娣)였을 것이다. 전임 서안 월극단 단장이었고, 현재 상해 월극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끊임없이 박수를 치는데, 남들따라 박수 치는 것은 곧바로 포기했다. 노래나 연기가 훌륭할 때 박수가 나오는게 아니라 내용이나 대사가 훌륭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면 박수를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박수는 "정의"의 편이다!!!) 악역 천이타이의 노래가 끝나고 내가 박수를 치려고 하는데, 바로 상대방의 대사가 이어지기도 했고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월극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내가 누구 노래가 좋니 마니 하는 건 좀 그런가?)


문혁 이후 혁명 가극을 많이 보지 못했고 그 역사적인 관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10여년 전에 항주에서 봤던 전통 월극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새로 나오고 있는 소위 "신편 현대월극(新编现代越剧)"은 혁명 가극 냄새도 좀 풍기는 것 같다. 나로선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로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노인네들만 가득찰 줄 알았는데(물론 대부분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다.) 의외로 젊은 층도 많았고, 극이 시작하기 직전에 중학생들도 한 무더기 들어왔다. 혹시 동원된 애들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끝나고 환호를 지르며 "~선생님(老师)"라고 부르는 걸 보니 희극학교 학생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터넷 뒤져보니까 의외로 젊은 월극 마니아들이 꽤 있다.


남녀 주연배우. 자오즈강(赵志刚)과 산양핑(单仰萍). 이 외에 쑨즈쥔(孙智君), 쉬제(许杰) 등 출연.


극의 완성도에 비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건 너무나도 후진 음향 시스템이었다.

의자가 불편해도, 할배들이 떠들고 큰 소리로 기침해도, 공기가 나빠도 참겠는데(담배냄새가 간간히 났던 것 같은데, 설마 정말로 누군가 담배를 피웠던 건 아니겠지? 우리나라 예전 극장에서처럼??), 그 스피커는 정말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저음에서는 그런대로 들을 만했지만, 극의 절정부나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음악과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찢어지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AM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잡음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그대로 들렸다. 예를 들어 눈을 뿌릴 때 하늘에서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게 아니라 윙윙 소리를 내면서 눈이 날린다. 양푸대극원(杨浦大剧院)의 후진 시설을 탓할 수 밖에 없겠다.


깜빡하고 사진기를 챙기지 않아 직접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공연 중간에 함부로 후레쉬를 터뜨리는 중국 아해들의 매너 없음을 마음껏 욕해줬다. 극도 극이지만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같은 것도 사진으로 담아뒀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맛뵈기로 동영상 파일을 보실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http://so.ku6.com/v/q%E8%B6%8A%E5%89%A7%E5%AE%B6

 

 

     越剧《家》01

          越剧》0115:21

播客:SNCWC88
播放:240
标签:越剧《家》赵志刚主演
发布:11月前

      越剧《家》03

          越剧》0315:21

播客:SNCWC88
播放:114
标签:越剧《家》影视剧 赵志刚 许杰单仰萍主演
发布:11月前

 

상하이 월극원(上海越剧院) 홈페이지에 가면 월별 일정, 공연 장소와 시간 등이 나와 있다. 배우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제공한다.

http://www.yueju.net/article/index.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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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늦은 저녁을 먹으며 <샤오추이 토크쇼(小崔说事)>를 본다. 일요일 9시 30분에 본방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지나간 문화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른바 "옛 것으로 오늘날을 감상한다(以旧鉴今)",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바라본다"(忆往昔,看今朝)를 기본취지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추이용위안(崔永元)이 전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지나간 옛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문화나 70-80년대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끔 재미난 주제가 있긴 하지만 샤오추이가 지껄이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별로고 해서 일부러 챙겨 보지는 않는다. 그런 말투가 일견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나게 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2005년 새로 편성된 연극 <체 게바라>. 이른바 "여성판"(全女版). 색계의 탕웨이가 주연이다.

 

하여튼 오늘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체 게바라였다.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국을 좋아했고, 모택동을 숭배했다고는 하지만,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 게바라 화전(切·格瓦拉畵傳)>의 편자인 스용강(师永刚)과  연극 <체 게바라>의 감독, 주연, 음악감독이 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나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숭배자들이 자기가 그를 숭배하는 이유를 이상화하는 그런 논의들 말이다. 한 가지 건진 것은 있다. 바로 쿠바에서 7년 간 머물면서 체 게바라를 직접 만난 팡빙안(庞炳庵; 전임 신화사 부사장)의 회고였다. 평소 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직접 체를 만난 중국 기자(통역)의 체험담은 꽤 신선했다. 누군가 정리한 책이나 자료를 수집하여 이야기를 푸는 사람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직접 봤다는데 어쩌겠나.


1962년 쿠바, 팡빙안은 검은색 옷을 입고 차에 앉아 있다. 쿠바 군인들 인터뷰 장면.

 

그는 중국 신화사의 기자 쿵마이(孔迈)와 함께 상인으로 변장하여 쿠바에 갔다고 한다. 그 후 1959년 4월18일 처음 체를 인터뷰한 후 1965년 3월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를 만났다. 아마도 체의 중국과 모택동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첫 인터뷰를 위해 체를 찾았을 때 일정상 다음날 오라는 말에 되돌아갔는데, 중간에 어떤 차가 따라와 길을 막아서더니 '체가 시간이 나서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체 게바라였다고 한다. 체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중국에 대한 존중이 보여지는 장면이다.

 

이 팡빙안이라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체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체는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체는 현실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그런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근거한 문제의식에 따라 혁명의 강령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는 구사회의 파괴자에 그친 게 아니라 신사회의 건설자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체의 형상을 한 돌맹이(사진을 구할 수가 없다. 돌맹이 안쪽에 형상이 새겨져 있다. TV로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여러 면에서 체는 예수와 동격이다..)를 쿠바에 기증했을 때 그에게 체 게바라를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내가 듣고 기억한 만큼만 정리함.)

 

"우리 몸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외부의 어떤 병균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백혈구는 자기를 희생하여 병균을 제거합니다. 백혈구는 죽지만 사람은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죠. 체 게바라는 백혈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하여 힘없는 민중을 구했습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출현하기 때문이겠죠."

 

그는 또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체의 습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진 기자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체는 장난스레 두 손으로 렌즈를 가려버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를 발견하고는 "에이, 너도 왔냐?" 라는 식으로 찡긋 한다고 한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재빨리 찍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친숙한, 온갖 티셔츠며 벽이며 문신이며에 등장하는 사진에 대해서도 이 할배 한 마디 덧붙인다. '그 사진 찍을 때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덜랑요. 근데 저는 필기를 해야 돼서 사진은 못 찍었죠.'

 

 

"그때 폭발사고가 나서 70여명이 죽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70여 명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죠. 카스트로가 추도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체에게 귓속말을 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쌀쌀해지니까 체가 잠버의 자크를 위로 끝까지 올리더군요. 그때 제 옆에서 찰칵 찰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사진에 온 세상에 퍼져 있더군요."

 

 

솔직히 나는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너무 유행이 되어 있었던지라, 그 어설픈 유행을 뒤늦게 어설프게 쫓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 게다가, 자신이 그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교수가 그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걸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 더 관심을 가지기 싫어졌다. 뭔가. 좀 어설프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10월 9일이 체가 총살당한 날이라고 한다. 진짜 체에 가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늦었지만 기회가 되면 체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일단은 링크 하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44138&PAGE_CD=

Posted by lunarog
중국의 대표적인 인문잡지 <독서> 2007년 2월호에 실린 <삼협호인>관련 좌담회의 초벌번역.
내가 읽기 위한 번역인지라, 정확성보다는 전체적인 흐름만 잡았다.
전문을 번역한 후, 필요하다면 추가로 수정하도록 하겠다.


<삼협호인> : 고향, 변화 그리고 자장커의 리얼리즘

<三峽好人> : 故里、变迁与贾樟柯的现实主义


<讀書> 2007년 2월호


좌담참가자 :

시추안(西川), 어우양장허(歐陽江河), 왕후이(汪暉),

리퉈(李陀), 추이웨이핑(崔衛平), 자장커(賈樟柯)


 

왕후이: <독서>잡지의 좌담회를 열 수 있게 도와주신 펀양(汾陽)중학 측에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소무>를 보면서부터 펀양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펀양에 오게 되었는데, 방금 거리를 가로질러 이 학교 문으로 들어서며 이렇게 크고 보존이 잘 된 건물이 1902년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학교를 들어설 때 우리는 마치 근대적 변화가 시작되던 역사시기로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펀양에서 <삼협호인>을 보면서 친구들은 모두 흥분했습니다. 각양각색의 블록버스터들이 거의 모든 영화적 공간을 점거하고 있기에 자장커의 영화는 충분히 귀중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영화가 없다면 당대 중국영화에 대한 담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띨 것입니다. 지금부터 마이크를 회의에 참가한 친구들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5세대 이후 새로운 감독의 등장

 

리퉈: 이 영화는 제가 줄곧 기다려온 작품입니다. 최소한 저 한 사람만 하더라도 거의 십여 년을 기대해 온 영화이죠. <삼협호인>이 출현한 것의 의의는 그것이 좋은 영화이거나, 자장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탔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영화의 의의는 반드시 중국 당대영화의 전체 판도 내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중국 당대영화사상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며, 새로운 영화적 발전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에 평론을 시작했으니 저도 영화평론을 한지 꽤 되었죠. 90년대 이후로는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영화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계속하여 중국영화의 발전상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중국영화가 하나의 절정을 이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영화비평, 영화사 연구를 하는 몇몇 친구들은 80년대 당시에 이미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신영화운동”(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썼는데 지금은 이미 잊혀졌다)이 과연 지속될 수 있는가? 과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 의혹은 그 친구들에게 가시와 같아서 찌를수록 더욱 깊이 파묻혀 버릴 뿐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늘 저는 조금도 예의를 갖추지 않고, 그리고 공개석상에서는 처음으로 5세대 감독들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특히 장이머우와 천카이거에 대해 말이죠. 왜 5세대를 강조했던 거죠? “5세대”는 80년대 “새로운 영화”의 중심이었습니다. 중국영화의 희망이었고, 중국영화의 미래로 여겨져 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5세대 영화인들의 이미지가 날로 더러워지는 걸 보고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이번에 바닥을 치고 나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돌아온 건 매번 반복되는 실망뿐이었죠. 실제로 모두가 목도한 것은 천카이거, 장이머우로 상징되는 “5세대 영화”가 한없이 몰락하는 과정이었죠.

 

지금 제가 사용한 “몰락”이라는 단어는 신중히 고려한 것입니다. 저 자신이 보기에도 과하긴 합니다만 몰락은 몰락인 거죠, 확실한 한 세대의 몰락 말입니다. 5세대 영화와 중국 신영화운동의 몰락은 중국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며, 세계영화에 있어서도 큰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중국 신영화운동이 80년대에 일어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영화적 사건으로, 각국의 영화사가, 비평가, 관중들의 뜨거운 관심과 높은 평가를 받아왔죠. 이러한 새로운 영화적 물결이 왜 그렇게 빨리(겨우 몇 년의 전성기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몰락해 버렸는가? 그에 대해 많은 다양한 이유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왜 이렇게 5세대 영화의 몰락을 강조하는 걸까요? 그건 우리가 자장커와 그의 <삼협호인>을 평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술운동의 몰락에 대해 비평하고 분석하는 것 또한 중요하긴 하지만, 더 세게 비판하고 더 가혹하게 욕해도 영화 자체의 발전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새로운 작품, 새로운 영화적 실천으로 우리 영화에 아직도 출로가 있음을, 여전히 새로운 탐색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삼협호인>의 출현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뿐 아니라 우리의 기대 이상이기도 합니다. 5세대는 몰락할 수 있어도 중국영화는 몰락할 수 없죠. 자장커의 출현과 진보에서 우리는 또 다시 희망를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무>를 볼 때가 생각나는군요. 약간은 신비스러운 색채마저 풍기게 몇십 명이 길거리에 모여 이리저리 돌고 돌아 한 비밀스러운 장소에 가서 봤는데(어우양장허가 끼어듦: “거긴 서예가 청라이더의 작업실이었어요. 제가 사람을 모으고 장소를 물색하여, 그때 <소무>가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죠.), 정말로 무슨 비밀회합을 하듯이 했죠. 몇 되지도 않는 관중 중에 장이머우도 끼어 있어,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놀라워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러나 장이머우는 영화가 끝난 후 아무 말도 않고 가 버렸죠. 저에게 <소무>는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고 일종의 예감마저 느껴졌어요. 이건 새로운 물건이다, 그 속에 어떤 새로운 영화적 발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라고 느꼈던 거죠. 그러나 이 가능성이 어떤 물건으로 성장할 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살펴보며 기다려야 했죠.

 

오늘 저는 끝내 기다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삼협호인>으로 인해 자장커는 <소무>에서 보여준 시도와 탐색을 결국 완성된 결과물로, 다시 한번 성장된, 완숙한 실천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우리는 이제 <소무>에서 <삼협호인>까지 자장커의 영화 창작이 이미 영화사적 의의를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일어난 새로운 영화의 물결이 몰락한 이 때 우리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의 등장을, 새로운 희망을, 새로운 공간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강조해서 말하고 싶은 의미입니다.

 

  자장커 영화의 출현을 이야기하기 위한 또 다른 전제는 최근 몇 년 신속히 밀어닥치고 있는 중국 상업 영화입니다. 중국이 이미 전지구적 시장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상업영화와 블록버스터를 찍어 영화 한편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시장경제의 흐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거죠. 한 국가의 영화가 완전히 상업영화 일색이어야 하는가? 상업 영화 이외의 다른 영화들은 생존할 수 있는가? 일군의 감독들이 사적인 이익이나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상업영화제작을 하지 않고, 진지한 예술영화를 제작할 충분한 공간이 있는가? 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렵긴 하지만, 그건 우리 중국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많은 국가에서도 상당히 곤란을 겪고 있는 문제죠.

 

1997년 프라하에서 두 달간 머물면서 체코 영화를 좀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온통 미국영화 뿐이었죠. 한참 후에야 좌석 몇십 개에 불과한 지하영화관을 어렵사리 찾아 10여 편의 체코 영화를 볼 기회를 가졌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죠. 헐리우드의 바깥에서 체코의 영화감독들은 그렇게 대단한 영화를 찍어왔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그에 비해 80년대에 등장한 중국의 영화감독들은 일부 소수를 제외한 전체가 헐리우드에 투항한 셈이니 서글플 따름이죠. 물론 그렇다고 중국에선 아무도 비상업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당연히 있었죠.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몇몇 젊은 감독들이 나타나 은밀하게 작업을 해왔죠. 비록 아직은 모호하긴 하지만 이들 청년감독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어 어떤 공통적인 경향을 형성했습니다. 

 

바로 영화로 현실을 주시하고 현실에 개입한다는 점이죠. 자장커야말로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 인물이죠. <삼협호인>의 성공이 가진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의의는 이처럼 잠복되어 있던 영화적 경향, 청년 영화인 무리들이 단번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회의 주목과 시험을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5세대 감독보다 더욱 엄격한 태도로 끊임없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당신들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 계속 지금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현실에 대한 주시와 개입은 대체 당신들의 지향점인가? 아니면 일종의 임시적인 책략에 불과한 것인가?


<소무>의 활력으로 되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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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문화, 역사적 기억, 중국의 경험

-- 레오 오판 리(Leo Ou-fan Lee; 李歐梵)과의 대화


羅崗


1. 앞을 내다보며, 뒤를 향해 나간다


        뤄강: 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기억으로 선생님께서 2002년 홍콩대학 여름학교를 개설하실 때 선택하신 주제가 “공공비평과 시각문화”로, 주로 최근 서양에서 시작된 “시각문화연구”가 중국어권 세계(중국 대륙, 홍콩, 대만 및 기타 중국어 지역)를 이해하는 방식에 어떠한 시사점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셨습니다. 올해 홍콩과기대학에서 강의하실 때는 더 직접적으로 청말민초의 인쇄문화와 중국(사실은 인쇄문화 위주였습니다만)의 “시각문화”를 논의하셨습니다. 이로써 선생님께서 최근 “시각문화”에 대해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의 배후에 어떤 특별한 흥미나 이유 같은 게 있으신지요?

 

        이구범: 두 가지 방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홍콩에 머물던 그 시기에 저는 李湛?(Benjamin Lee) 등과 함께 많은 연구계획을 논의했는데, 결국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여 강연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넓은 의미의 문화연구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담민은 일련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자기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전에 시카고 대학 문화간 연구센터에서 시작된 것이었죠. 나는 그의 프로젝트를 따랐고, 이 때문에 내가 원래 연구하던 중국 현대문학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 것이죠. 일종의 특별한 “문화연구”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한데, 그들의 기본적인 한 방향은 “공공영역”의 문제에서 연장된 것입니다. 공공영역, 미디어, 정보의 흐름, 문화의 흐름 등에서 지금 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화의 전지구적 흐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연구에 나는 대부분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변두리에 서 있다가 가끔 그들과 함께 몇 가지 관련 연구를 해왔죠.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제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국현대문학 연구와 문화연구의 관계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것은 제가 문학사자료를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의 문제에 영향을 주었고, 이 때문에 저는 “인쇄문화”, 즉 신문잡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이 노선은 이담심 등의 연구노선을 뒤따른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제 개인적인 흥미입니다. 미국에서 30년 동안 강의를 했고 내년이면 퇴임하는데, 제 전공은 주로 중국현대문학이었고 중국 학자와의 교류 또한 현대문학 위주였습니다. 당시의 연구가 이 정도 수준에 이르게되자 온통 소설이나 텍스트 연구뿐이라는 점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죠. 그래서 정말로 “우연히” 상하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를 연구하며 <상하이 모던>이라는 책을 쓸 당시에는 원래 신감각파를 연구할 생각이었는데, 신감각파와 텍스트만 연구하는 것은 어떻게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더군요. 훗날 상하이에 가서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잠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줄곧 계속되어, 결국 현대문학의 작가와 작품의 연구에서 상하이의 도시문화 연구로 연구영역이 바뀌게 된 셈이죠. 도시문화와 문학 텍스트의 관계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연구가 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벤야민인데, 이 연구전통은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이러한 각도에서 출발하여 현대문학연구를 파고든 것은 십 수년 전의 중국에서는 아직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중국현대문학연구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여전히 리얼리즘과 향토문학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고의로 그에 반하는 논의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리얼리즘”을 논할 때 나는 “데카당스”를 논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향촌”을 이야기할 때 나는 “도시”를 이야기했던 거죠. 그 후 “도시문화” 연구 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해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쇄문화”와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많은 인쇄문화 안에서, 특히 신문잡지 속에서, 내 마음 속에 있던 당시 상하이의 근대성에 대한 그림을 다시 드러내거나 다시 그려내려 한 것이죠.

  제 연구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노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즘 문화연구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연구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왜 그러냐 하면, 작금의 문화연구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영상”이나 “시각”(視像)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뒤떨어지건 말건 괘념하지 않는데, 중요한 것은 나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만약 한 가지 노선을 더 말하자면, 이 외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세계문학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강의주제는 청말의 인쇄와 시각문화입니다만, 지난 학기는 순전히 세계문학과 현대문학의 고전만 가지고 강의했습니다. 카프카,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토마스 만, 여기에 쿤데라가 더해졌고, 다시 노신, 백선용, 장애령 등을 같이 논의하는 방식이었죠. 모두 중국과 외국문학의 고전이었어요. 왜 지금 고전을 이야기해야 하느냐 하면, 내 생각에 홍콩문화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경전인데, 홍콩문화는 모든 게 상품화되어버린 것 같아요. 심지어 상품화 속에서 고전을 재발굴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포스트모던한 상업사회에서 고전을 재발굴하는 것은 우리 연배 사람들이 고전을 읽던 때보다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제 연구는 이 세 가지 노선이 결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뤄강: 인쇄문화 연구는 작금의 문화연구 조류에서 볼 때 좀 뒤떨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인쇄문화에서 영상문화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공통성이 시종 관철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벤야민이 말한 “기계적 관조(技術性觀視; 원문 찾아보기)”입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은 어떤 기술 수단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풍경을 감상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주로 텔레비전, 영화, 사진, 엽서 등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는데, 이러한 “매체”는 모두 “기술적”인 것들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바라보기 행위를 “기계적 관조(技術性觀視)”라고 말한 것이지요. 이 개념은 시각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지적해 주는데, 선생님의 만청 시기 연구를 예로 들면 먼저 석인(石印) 기술이 있어야 <점석재화보>가 있을 수 있고 吳友如가 그려낸 그러한 이미지들이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구범: 홍콩대학의 교수 아크바 아바스(Ackbar Abbas)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직선적인 발전방식으로 문화현상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먼저 인쇄문화가 있고 난 뒤 영상문화가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현재는 한 곳에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쇄문화가 있지만 영상문화도 있고 시각문화도 있는 등등, 게다가 각 방면 모두에 기술적인 요소가 들어 있죠. 그는 벤야민에 가장 심취했고, 저 또한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벤야민은 인쇄문화가 가장 왕성하던 시대를 살았지만, 가장 먼저 영화와 사진이라는 시각문화의 잠재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속에 당신이 말한 “기술” 문제가 들어 있죠. 물론 기술 문제에 대한 논의는 독일에서 뿌리깊은 전통의 하나로 철학가들마다 이야기하는 “테크네tehcne”가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면 다른 문제가 되어버리는데 우리가 요즘 말하는 “기술”과는 별로 같지 않기 때문이죠. 때문에 벤야민과 유사한 입장에서 보자면, 요즘 중국과 같은 환경에서는 사실 많은 문화적 요소가 동시진행될 뿐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영상을 볼 때조차 시각적 형상에서 인쇄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술성분(?)이나 읽기의 관습 같은 것이 그것이죠. 바꿔 말해, 인쇄문화의 텍스트 구조와 독서 관습이 시각문화에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홍콩영화는 이 방면에서의 특징이 아주 명확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물이 중국문화에서 가지는 의미와 로스앤젤레스(헐리우드?) 위주의 미국문화에서 가지는 의미는 그다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근데 오래된 것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나는 “새로운” 것 속에서 “오래된” 것을 발견하고 싶은데, 아마도 “구식”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식”이기 때문에 나는 현재 갈수록 뒤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갈수록 앞으로 나가고, 갈수록 현재를 향해 나가는데 말입니다.

 

        뤄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세번째 노선도 아주 재미있는 화제인 것 같습니다. 왜 지금같은 소비사회에서 고전의 의의를 다시 제기할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이죠. 사실 이 문제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각문화와 관련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각문화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시각예술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죠. 시각예술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세계명화나 무슨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 예술작품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각문화와 시각예술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시각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바라보는 장소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장소가 모두 공식적이고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미술관에 가서 유화를 보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등..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광고를 보고 집에서 DVD를 보는 등등.. 시각문화는 사람들의 주의력을 구조가 완정하고 공식적인 관람장소에서 유리시켰습니다. 영화관과 갤러리는 일상생활 중 시각경험의 중심으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바라보기의 과정에서, 광고 같은 경우, 각양각색의 고전적 이미지를 보게 되곤 하는데, 광고에서 이러한 고전적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은 상품을 선전하려는 목적에서이죠. 가장 친숙한 예가 여기저기서 남용되고 있는 <모나리자>일 것입니다. 물론 <모나리자>보다 더욱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뭉크의 <절규>와 같은 작품도 광고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죠.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어떻게 소비사회에서 고전의 의의를 재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고전과 마주칠 기회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만, 마주치는 시기와 장소는 원래와 너무 다릅니다.

 

        이구범: 그래서 제가 홍콩에 막 도착했을 때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이 홍콩의 광고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홍콩의 광고는 고전을 살짝 바꾼 것이 종종 있는데, 어떤 때는 깜빡 속아넘어가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이태리 핸드백 광고에 영문으로 mandarina duck이라고 되어 있는 걸 저는 “원앙호접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 내 머리 속에 동서의 고전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기서 어떤 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는데, 금방 말씀하신 시각문화가 홍콩 같은 곳에서, 그리고 장래 상해도 마찬가지가 될텐데, 중서문화가 서로 뒤섞이게 될 것이란 점이죠. 고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번역은 “고전”의 유통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서양의 고전이 중국어로 번역된 후 모양을 바꿔 중국의 것으로 변하고 말죠. 저는 요즘 셜록 홈즈(福爾摩斯: Sherlock Holmes)가 어떠한 변화를 거쳐 중국의 호돈(?桑: Nathaniel Hawthorne)이 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호돈이 포스트모던 사회인 오늘날 건너왔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문학에서 “탐정”은 벤야민이 묘사한 그러한 이미지에서 현재 어떤 이미지로 변화되었을까요?

  고전의 유통과 번역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과 관련되는데, 그것은 “지점”이라는 개념입니다. 요즘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던한 문화연구에서 이 개념은 아주 중요합니다. 바로 예전의 일대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말입니다.(不是?)요즘 많은 책에서 “박물관”을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박물관은 궁전인 동시에 묘지라서 고전을 추앙하는 동시에 매장시켜 버린다고 말이죠. 때문에 많은 전시(畵展)가 박물관 바깥에서 이뤄졌던 것이죠.

 

        뤄강: 박물관의 배치가 일종의 계급제도를 보여주며, 심지어 권력관계이기도 하다는 비평적 견해도 있습니다. 서구와 비서구, 정통과 이단 등과 같이 많은 개념이 배치의 뒷편에 침투되어 있죠. 관람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박물관에서 의도적으로 배치한 미리 정해진 질서대로 관람하고 동일시될 것을 요구받습니다.

 

(5절 중 제1절만 번역, 읽기 위한 초벌번역/ 추후 인용원문 대조, 교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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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섬 - 10점
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넌 나랑 똑같은 걸 보고 겪은 거야. 단지 그걸 나랑은 다른 식으로 해석했을 뿐이지."
-- S.S. 반 디네.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에요. 방파제는 엄청나게 큰데 배는 두어척 밖에 없고, 낙서들은 여러나라 말로 갈겨 쓰여져 있는가 하면, 여자 혼자 잡화점을 꾸려 가고, 그 여자 아들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으니...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고, 꼭대기엔 폐쇄된 등대만 우뚝 서 있는 아주 작은 섬에 이 모든 것이 다 모여 있다니.."

이 만화책은, 외딴 섬에 흘러들어간 한 남자와 그보다 먼저 와 있던 한 여자,
그리고 섬에서 여관, 술집, 식당을 겸해서 하고 있는 아줌마와 아들.
..정도가 등장인물의 전부다.

외딴 섬이니 뭔가 사건이 발생할 것 같다.
살인사건처럼 섬뜩한 일이 일어난 뒤 주인공에게 탐정 역을 맡겨도 되겠고, 아줌마와 여인을 둘러싼 삼각관계, 혹은 강간 정도는 나올 법도 하다, 아주 당연히..

물론 살인도 나오고 강간도 나오고 삼각관계도 펼쳐지지만 결코 사건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만화는 탐정만화도, 로맨스도 아니다.
각 에피소드는 파편화되어 있고, 그것들이 모여서 어떤 전체를 구성할 의지도 그다지 노출시키지 않는다.

하나의 끈을 잡고, 그것을 줄거리라 생각하고 끝까지 가더라도, 결국 독자는 자신이 타고온 줄기 전체를 재배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줄거리란 어떤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이다.
원래 따로 떨어져 있던 명사들을 조사로 연결시키기.
한 곳에 고정된 덩어리들을 동사로 운동시키기.

<섬>에서 등장하는 각 요소(인물, 배경, 그림 등..)들은 모두 그 자체로 하나의 섬들이다.

연결이 되더라도 배와 섬의 연결일 뿐이고,
운동이 발생한다 해도 대륙이 되지는 못한다.

짧은 순간, 나름의 방식으로 상대에 대한 호의를 베풀고 어떤 인연의 끈을 잡아보려 노력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하나의 섬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주 긴 방파제를 가진 이 섬의 모양은,
바다 저멀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에게 내민 손은 가끔, 혹은 항상,
상대의 가슴을 찌르는 바늘이 되곤한다.

책상 한곳에 꽂아두고 한번씩 그림도 들춰보고,
이리저리 내 맘대로 줄거리도 만들어보면 나름 괜찮을 것 같다.
그림은 하나하나 공을 들였고, 줄거리는 지겹지 않을 정도로 모호하다.
그러나 혹, 그러다 영원히 고립된 섬이 되어 버리지나 않을란가?

"우리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어떤 섬에 배를 댔는데, 이 황량한 바위섬에는 도마뱀과 갈매기, 수줍음을 타는 노파와 말이 적고 거칠어 보이는 남자, 상스럽고 단정치 못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었다. 이 섬에서는 외딴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폐쇄된 등대를 제외하면 그들의 집이 유일한 건물이었다. 그 집은 더럽고 다 쓰러져가는 데다 썩어서 악취에 가까운 기름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물론 그들은 아주 싼 값에 방과 음식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차라리 배에서 저녁을 먹고 자는 쪽을 택했다.

바로 그날 밤, 산드라가 꼭 샴페인을 마시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다섯 잔을 마시고 나서 취하기 직전의 경이로운 영감의 상태에 사로잡힌 그녀는 등대에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마르띤은 거절했다. 그러나 나는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심연으로 이어지는 광채가 그녀의 눈에서 반사되는 걸 보는 순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아르망 실라스, <욕망의 빛>, 1988.

"실라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의 두 번째 에로틱 소설인 <욕망의 빛>은 자전적 체험을 다루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관심거리-불건전한 호기심-이다. 독자들은 언급할 만한 그 어떤 다른 가치도 이 책에서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A. 카사스, <욕망의 빛>에 대한 비평, 1992.



2004.04.23. 알라딘 서재.

http://lunatic.textcube.com2009-05-14T13:07:050.31010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