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늦은 저녁을 먹으며 <샤오추이 토크쇼(小崔说事)>를 본다. 일요일 9시 30분에 본방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지나간 문화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른바 "옛 것으로 오늘날을 감상한다(以旧鉴今)",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바라본다"(忆往昔,看今朝)를 기본취지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추이용위안(崔永元)이 전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지나간 옛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문화나 70-80년대를 회고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끔 재미난 주제가 있긴 하지만 샤오추이가 지껄이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별로고 해서 일부러 챙겨 보지는 않는다. 그런 말투가 일견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재미나게 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2005년 새로 편성된 연극 <체 게바라>. 이른바 "여성판"(全女版). 색계의 탕웨이가 주연이다.

 

하여튼 오늘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체 게바라였다.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국을 좋아했고, 모택동을 숭배했다고는 하지만,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 게바라 화전(切·格瓦拉畵傳)>의 편자인 스용강(师永刚)과  연극 <체 게바라>의 감독, 주연, 음악감독이 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나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숭배자들이 자기가 그를 숭배하는 이유를 이상화하는 그런 논의들 말이다. 한 가지 건진 것은 있다. 바로 쿠바에서 7년 간 머물면서 체 게바라를 직접 만난 팡빙안(庞炳庵; 전임 신화사 부사장)의 회고였다. 평소 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직접 체를 만난 중국 기자(통역)의 체험담은 꽤 신선했다. 누군가 정리한 책이나 자료를 수집하여 이야기를 푸는 사람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직접 봤다는데 어쩌겠나.


1962년 쿠바, 팡빙안은 검은색 옷을 입고 차에 앉아 있다. 쿠바 군인들 인터뷰 장면.

 

그는 중국 신화사의 기자 쿵마이(孔迈)와 함께 상인으로 변장하여 쿠바에 갔다고 한다. 그 후 1959년 4월18일 처음 체를 인터뷰한 후 1965년 3월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를 만났다. 아마도 체의 중국과 모택동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첫 인터뷰를 위해 체를 찾았을 때 일정상 다음날 오라는 말에 되돌아갔는데, 중간에 어떤 차가 따라와 길을 막아서더니 '체가 시간이 나서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체 게바라였다고 한다. 체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중국에 대한 존중이 보여지는 장면이다.

 

이 팡빙안이라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체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체는 결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그는 강하게 주장한다. 체는 현실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그런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근거한 문제의식에 따라 혁명의 강령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는 구사회의 파괴자에 그친 게 아니라 신사회의 건설자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체의 형상을 한 돌맹이(사진을 구할 수가 없다. 돌맹이 안쪽에 형상이 새겨져 있다. TV로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여러 면에서 체는 예수와 동격이다..)를 쿠바에 기증했을 때 그에게 체 게바라를 정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내가 듣고 기억한 만큼만 정리함.)

 

"우리 몸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습니다. 외부의 어떤 병균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백혈구는 자기를 희생하여 병균을 제거합니다. 백혈구는 죽지만 사람은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죠. 체 게바라는 백혈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하여 힘없는 민중을 구했습니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출현하기 때문이겠죠."

 

그는 또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체의 습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진 기자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체는 장난스레 두 손으로 렌즈를 가려버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를 발견하고는 "에이, 너도 왔냐?" 라는 식으로 찡긋 한다고 한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재빨리 찍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친숙한, 온갖 티셔츠며 벽이며 문신이며에 등장하는 사진에 대해서도 이 할배 한 마디 덧붙인다. '그 사진 찍을 때 제가 바로 옆에 있었거덜랑요. 근데 저는 필기를 해야 돼서 사진은 못 찍었죠.'

 

 

"그때 폭발사고가 나서 70여명이 죽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70여 명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죠. 카스트로가 추도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체에게 귓속말을 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쌀쌀해지니까 체가 잠버의 자크를 위로 끝까지 올리더군요. 그때 제 옆에서 찰칵 찰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사진에 온 세상에 퍼져 있더군요."

 

 

솔직히 나는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너무 유행이 되어 있었던지라, 그 어설픈 유행을 뒤늦게 어설프게 쫓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 게다가, 자신이 그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교수가 그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걸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 더 관심을 가지기 싫어졌다. 뭔가. 좀 어설프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10월 9일이 체가 총살당한 날이라고 한다. 진짜 체에 가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늦었지만 기회가 되면 체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일단은 링크 하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44138&PAGE_CD=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