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오보의 중편소설 <황금시대>의 초반부 번역이다.
심심풀이로 조금
번역해 보다가 국내에 기출판된 것을 확인하고 김이 샜다.
2000년에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 것.
번역은 특별한 오류는 없는 듯하나 소설을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
내 번역이 왕사오보의 문체를 더 잘 살렸다고 확신할 배짱은
없다만,
보다 간결하게 흐름을 살려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둔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보다 적절한 문체는 어떤
걸까?
"절묘하다!" 라는 느낌을 내 번역에서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작가 왕사오뽀(1952-1997)는 97년에 이른 죽음을 맞은 후 재평가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꽤 많은 독자층과 비평계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많은 청년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2006년 여름 상하이의 대형
서점마다 왕사오보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인기만 좋은 시덥잖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겠거니 했는데 조금씩 소문도 듣고 내가 직접 읽어본
뒤에야 맛을 알게 되었다.
대표작은 <황금시대>, <백은시대>, <청동시대> 연작(시대삼부곡)이며,
그 외 <침묵하는 대다수>, <사유의 즐거움> 등의 산문집이 있다.
그 중 <황금시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현실'을 다루었고, <백은시대>는 미래를, <청동시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삼부곡"은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필치로 시대를 넘나들며 권력이 인간의 욕망과 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압하는지를 잘 그려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각각 중편모음집인 이 연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주간> "20세기
중국소설 100선", 중국당대문단 "최고의 수확"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간단한 작가소개 정도는 해두려고 논문과 소개글 몇 개를 모아
두었는데
물론 언제 정리할 마음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황금시대
왕사오보
王小波, 《黃金時代》, 陜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
나는 스물한 살에 윈난의 생산대로 배속되었다. 천칭양(陳淸揚)은 당시 스물여섯이었으며 거기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산 아래 14생산대에 있었고 그녀는 산 위 15생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걸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론하려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대충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녀가 토론하고 싶어 한 것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걸레라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서방질을 해야 걸렌데, 자기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남편이 일 년 간 감옥에 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서방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자기를 걸레라고 부르는지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논리적으로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만약 천칭양이 걸레라면, 즉 천칭양이 서방질을 했다면 적어도 하나라도 같이 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그게 누구인지 지목하지 못했으니 천칭양이 서방질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천칭양이 걸레이며, 그 점에 있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천칭양이 자기가 걸레가 아니라고 증명하려 내려온 것은 내가 침 맞으러 그녀에게 갔기 때문이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농번기가 되자 생산대장이 나에게 밭가는 것을 멈추고 모를 심으라고 시켰다. 그래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 키가 190cm 이상이며 내가 허리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모내기를 했더니 허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라도 막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생산대 의무실에 있는 침은 도금이 벗겨지고 끝이 낚시 바늘 같아 내 허리의 살을 발라내기 일쑤였다. 결국 내 허리는 산탄총을 맞은 것처럼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생산대의 천칭양이 생각났다. 그녀는 베이징 의학원을 졸업한 의사니까 침과 갈고리는 구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30분도 되기 전에 그녀가 내 방까지 쫓아와 자기가 걸레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천칭양은 자기가 걸레를 업신여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의 관찰에 의하면 걸레들은 모두 착했고 다른 사람 돕는 걸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는 걸 가장 싫어하였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면에서 걸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제는 걸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자기는 절대 걸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고양이를 사람들이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그 고양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칭양이 내 초가에 와 있을 때 산 위 의무실에서의 옷차림 그대로 어깨와 다리를 벌겋게 드러낸 흰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풀어 헤친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흰 가운 아래에 뭔가를 입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입었을까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가 예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녀는 뭘 입든 안 입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자신감이다. 나는 그녀가 걸레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까지 몇 개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른바 걸레라고 함은 하나의 호칭이다. 즉 모두가 당신이 걸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걸레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신이 서방질했다고 하면 서방질한 것이지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모두들 왜 당신을 걸레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보기엔 이렇다. 모두들 결혼한 여자가 서방질하지 않으면 얼굴이 거무스레하고 가슴은 축 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당신은 얼굴이 검기는커녕 하얗고, 가슴은 봉긋하다. 그래서 당신이 걸레인 거다. 만약 당신이 걸레가 되기 싫으면 얼굴은 검게, 가슴은 축 처지게 만들어라. 그럼 아무도 당신이 걸레라고 안 할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거다. 근데 만약 당신이 손해 보기 싫으면 서방질을 하는 수밖에. 그러면 당신도 자기가 걸레라고 생각하게 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서방질했는지를 먼저 밝힌 후 당신을 걸레라고 불러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근데 당신에겐 남들이 당신을 걸레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말을 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천칭양의 두 눈을 부릅뜬 표정은 거의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릴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귀싸대기 날리는 걸로는 유명했다.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걸레면 걸레지 뭐. 근데 가슴이 처지네 마네, 얼굴이 검네 마네 하는 건 너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행여 내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가는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 거라고 말이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천칭양과 걸레 문제를 토론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얼굴이 누렇고 뜨고 말라 터진 입술에는 종이조각과 담배가루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반창고로 찢어진 곳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헤진 군벌 하나 입고서 나무침대에 다리를 꼬아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완전히 건달이 따로 없었다. 아마 천칭양이 이런 놈에게 자기 가슴이 처졌니 안 처졌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좀 신경질적인 편이었는데, 그건 모두 아주 건장한 청년들이 아픈 데도 없으면서 진료를 핑계로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의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걸레를 보러 간 것이다. 나만 예외였다. 내 허리는 저팔계에게 쇠스랑으로 몇 대 맞은 것처럼 아팠으니까. 허리 아픈 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 뻥뻥 뚫린 구멍만으로 의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구멍이 그녀에게 자신이 걸레가 아님을 나에게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 말고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다. 봄에 생산대장은 내가 자기 집 어미개의 왼쪽 눈을 애꾸로 만들어, 이놈이 무슨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고개를 돌려서 사람 쪽을 본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언제나 트집을 잡았다. 나는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래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생산대장의 집에는 어미개가 없다.
2. 이 어미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없다.
3. 나는 손이 없어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수 없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생산대장의 집에는 확실히 갈색 어미개가 한 마리 있고, 이 어미개의 왼쪽 눈은 확실히 나중에 먼 것이며, 나는 총을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밀한 사격술을 자랑한다. 그 얼마 전에 나는 뤄샤오쓰(羅小四)의 총을 빌려 녹두 한 그릇을 총알삼아 빈 창고에 있던 쥐를 두 근이나 잡았다. 물론 우리 생산대에서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목록에는 뤄샤오쓰도 포함되어 있다. 총은 그의 것이고, 게다가 그가 생산대장의 어미개의 눈을 쏘았을 때 나는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이 한 일을 까발릴 수는 없었고, 뤄샤오쓰는 나하고 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생산대장이 만약 뤄샤오쓰를 건드릴 수 있었다면 나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묵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나는 모를 심으러 가서 부러진 전봇대마냥 엎드려 있어야 했고, 가을 추수 후에는 또 소를 먹이러 나가 뜨신 밥은 먹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산 위에서 마침 뤄샤오쓰의 총을 빌린 날 생산대장의 어미개가 산으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총알을 날려 그 놈의 오른쪽 눈을 쏘았다. 이 개는 이미 왼쪽 눈을 잃은 데다 오른쪽 눈마저 사라지니 생산대장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하늘만이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나는 산에 올라 소를 먹이거나 집에 드리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칭양이 또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녀가 나하고 서방질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1. 천칭양은 처녀다.
2. 나는 고자라서 성교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결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천칭양은 이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렸다가 얼굴이 뻘게지더니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천칭양은 내가 언제나 악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생 까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그녀가 우리 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섹스를 한 번 하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면 뒤에 이야기할 사건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루스에서 # by luna | 2008/07/15 11:14 | 独立阅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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