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1

지식인의 존재적 불안의 담론화


리얼은 80년대 말에 창작을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문단에서의 자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즉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에 매진한 시기는 중국이 소비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는 유행이나 시류를 휩쓸리지 않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식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가하여 그것을 심미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에 치중하였다.

 

「지도교수가 죽었다」, 「오후의 시학」, 「현장(现场)」 등 초기작을 시작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 특히 1990년대 중국 지식인은 리얼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 역사와 현실에서 지식인이 겪는 곤경과 개인의 존재 의의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창작을 관통하고 있다. 리얼의 지식인 소설은 표면적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과 존재형태에 대한 묘사에 그쳐 주제나 인물에 있어 명확한 내포나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보여주는 서사담론과 시각은 강렬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얼의 지식인 서사는 역사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개인의 일상적인 존재와 개체의 생명에 대한 체득으로 회귀하여 지식인의 정신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의 서사는 생활의 아픔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지도교수가 죽었다」에서 그 추형을 보여준 뒤 「망각」,《노래가락》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그것이 인물, 주제, 도덕 같은 내용에 관련되든 텍스트의 문맥이나 서사형식에 관련되든 모두 지식인의 담론생활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담론과 “이야기되는” 그들은 각각의 상이한 환경에서 근본적인 허무를 펼쳐 보인다.


「오후의 시학」(1998)은 「지도교수가 죽었다」와 함께 리얼의 가장 중요하며 가장 뛰어난 중편 대표작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식인의 정신과 담론의 질서가 작품 안에서 변형되면서 원래의 전통적인 합법성을 상실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후의 시학」은 문학적 글쓰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리얼에게 새로운 미학적 기점을 찾아줬으며 “존재”, “담론”에 대해 그가 얼마만큼 파고 들어갈 힘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거대서사는 철저히 해체되었으며 개체의 생명존재에 대한 진술은 확실한 표현방법을 획득하였다.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다룬 이 소설은 인물의 “말”에서 출발하여 주인공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세부와 정신생활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곤경을 겪게 되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페이볜(費邊)은 자신 있게 “고귀함”을 설파하지만 그 자신은 세속의 소용돌이로 떨어진다. 현실과 정신적 지향의 충돌로 인해 그는 담론의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볜의 연애, 결혼, 사업 및 정신생활은 모두 담론의 현시와 암시로 전환되며, 이러한 담론의 현시를 통해 페이볜의 주관세계가 그의 주체가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구,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극,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두 페이볜이란 존재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있으며, 페이볜의 의의 또한 바로 이러한 의식의 창조적 활동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몇 년 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붕괴되어 온갖 희극적 장면이 일상생활의 사진이 되었을 때”도 페이볜은 여전히 친구의 결혼피로연에 동석한 연인 한쌍에게 플라톤의 사랑론을 지껄이며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시 「오후의 시학」을 구상하고 있다.

한 편 두리(杜丽)는 미망인의 신분으로 페이볜에게 나타나 그와 결혼한다. 그녀의 출현이 가져다 준 것은 사랑과 죽음의 결합에 의한 신성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죽지 않았으며 줄곧 비밀리에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그녀는 연극배우에서 유행가수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악한 노래 소리는 우리 시대의 은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 “오후”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림자, 추악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진실함과 경건함이 살아있는가? 예술에 대한 신앙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가?

 

페이볜은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다. “신이여, 우리는 신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신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까뮈의 《반항적 인간》에서 이야기했듯이, 햇빛 찬란한 고대 그리스의 지중해 정신은 용기, 성숙, 균형 등을 의미하는 “정오의 사상”이다. 그에 반해 리얼이 바라보는 세계는 애매하고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오후”이다. “나는 이 시대의 글쓰기를 오후의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리얼은 담론을 이용하면서 그것을 해체한다. 현실에 대해 밀란 쿤데라식의 “농담”을 하며 “지혜의 고통”을 향유한다. 철저히 세속화될 때까지, 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랑과 성 또한 리얼의 소설에서 계속 탐색해온 주제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처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 지식인의 개성적 존재가 가진 은밀함을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벙어리의 목소리(喑哑的声音)」(1998)과 「부유(悬浮)」(1998)는 중년 지식인의 은밀하고 내면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섹스와 정신, 세속적 결혼과 비정상적 감정 등에 대해 소설은 그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인생의 은밀한 일면을 들춰낸다.

 

리얼은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도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적 지식인들은 모두 감정의 미망에 빠져 날로 변화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자신의 윤리관이 뒤흔들리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벙어리의 ‘목소리’와 담론의 ‘부유’는 무중력 상태에 빠진 지식인의 감정과 의지할 곳 없는 영혼,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 현기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얼은 자신의 개인화된 문학적 경험을 최대한 억제하여 당대 인문 지식인의 미리 결정된 일상생활과 담론에 속박된 정신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상적 장면”과 담론적 형태를 철저하게 지식인 서사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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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