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42

“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인 중편 「망각」(1999)은 《대가(大家)》잡지의 “요철 텍스트(凸凹文本)” 특집에 문체실험으로 발표되어, 소설문체의 혁명, 순수한 문체실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사책략과 문체기교 방면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새로움은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서사구조의 매력이 아니라 형식 배후에 감춰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화, 생명,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당대의 문화, 인문현상, 당대의 인문 지식인이 가진 진실의 허구와 그것이 가져다 준 첨예함이 그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지도교수 허우허우이(侯后毅; 해를 쏘아 떨어뜨린 신화 속 ‘후예(后羿)’를 연상시키는 이름)는 제자 펑멍(馮蒙;후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의 제자 봉몽(逢蒙)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박사학위 논문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인 상아(嫦娥)를 역사학적으로 고증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아울러 상아와 자신의 특수한 관계, 즉 달에 사는 상아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 러나 펑멍은 상아와 어떠한 교류를 할 수 없으며 그 속에 담긴 논리를 유추하거나 논증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모인 뤄미(羅宓)와의 미묘하고 복잡한 애정관계에 몰두한다. 신화와 현실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억누르고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상상 속에서 현존재의 신비와 황당함, 패러독스가 드러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담론에서 서술되며, 소설 속 현실 또한 신화에 의해 진행된다. 허우허우이가 현실과 신화를 혼동하면서 신화와 현실의 논리질서는 완전히 전복되고 해체된다.

저 명한 역사학자인 그가 전생을 찾아 신화와 전설의 논증을 필생의 임무로 삼게 되면서 엄숙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로서의 그는 망각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담론” 내부의 공간이며, 이 담론은 이미 실재적인 역사와 현실의 증거를 상실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신화는 수정이 가능하고, 역사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현실 또한 존재의 거짓말로 가득 찬 세계이다. 허우허우이가 자기 존재의 기원을 망각하는 순간, 어떠한 권위 있는 담론, 어떠한 개인적인 담론도 허황하고 아무 근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상상적 존재와 담론은 똑같이 일종의 생활방식, 담론적 생활방식이 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에서 현실과 허구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