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講, 구경 2009. 7. 2. 02:30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한번 지껄여봐야겠다. 간단하게.

나는 도통 사람들이 홍상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자학적인 취미들이 있으신 것 아닌가?
누군가 이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코믹하다는 의미에서) 재미있으며 홍상수의 삶에 대한 태도가 너그러워졌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 나는 기분이 졸라 꿀꿀하다. 오히려 밀양처럼 들이미는 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음란하다, 이 영화는.

일단 남자 주인공들의 대사가 너무 싫다. 다들 국어책 읽는 것 같다. 예술영화(?) 티내나?
고현정의 대사와 표정, 연기는 소름이 돋힌다. 정말. 고현정 너 여신해라!

내 취향과 안목의 문제겠지만, 홍상수 영화를 보고 나면 아리송하거나 가슴이 터질 듯이 꿀꿀하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리송하고,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꿀꿀해진다.
잘알못은 후자에 속하며, 전혀 웃기지도 통쾌하지도 않다.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의 속물성과 위선을 폭로한다구? 뭐 굳이 그럴 것까지나. 몰랐던 것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스물스물 올라오게 만드는 방식이 내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인간의 은밀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싫다. 잘난 척하지만 너도 똑같이 적절한 기회만 되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인간 아니냐. 그래, 나도 그런 놈이었지! 라는 자조 말고 더 이상을 내가 할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내 것이 아닌 가상의 자조이기도 하다.

난 그냥 조금 더 가볍게 비틀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홍상수가 아닌 것이 되겠지.
그래.. 매번 아리송하거나 꿀꿀한 채 욕을 하면서 다시 홍상수를 찾게 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고 싶다거나 칭찬하면 그냥 (동의를 살짝 섞은 아리쏭한) 웃음만 지으면 된다.

김연수에 대한 기억이 튀어나왔는데.
그의 이름을 알기 전의 그의 얼굴이 요즘 들어서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김연수의 문체를 만난 건 기다림, 대성당 같은 번역서 뿐이다..)
쭈뼛쭈뼛하며 흥행감독의 권력을 적당히 즐기는 무난한 연기 데뷔였다고 생각된다. 시간이 나면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군.

암튼 간단하게 쓴다는게 내용도 없이 길어졌는데,
역시나 김우재의 블로그에서 슬쩍 튕긴 대로 영화판이 원래 이리 난잡한가? 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쉽나? 내 안의 욕망이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닌데, 여태껏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30대 전에는 2-3년이 지나야 그때 그 순간이 그런 상황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돌이켜보게 되고 서른이 넘어가니까 한 반년 정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알 것도 같은 그런.. 내가 무딘 건가? 나름 눈치 빠르고 분위기 파악을 잘 한다고 여겨 왔었는데, 그쪽으로만 진화가 덜 되었나?
암튼 여태 물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나도 영화판에 있는 친구에게 그걸 물어봐야겠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겠지만) "홍상수가 예술하는 사람들을 일관되게 이렇게 그리는 데에는 뭔가 확률적인 근거가 좀 있지 않은가"(김우재)라고 말이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講, 구경 2009. 3. 28. 01:46
복단대 문사연구원에서 <도시의 번화함: 1500년 간 동아시아 도시 생활사>(都市繁华:1500年来的东亚城市生活史)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문사연구원과 하바드대학 동아시아학과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기간은 3월26일부터 28일까지이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이기도 했거니와 한참 전부터 예고되어 있던 학회라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준비기간이 길었고 미리 공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학회를 하더라도 공지가 잘 안 되는 편이다.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지도 않고 현수막을 내걸지도 않는다. 포스터가 하루 이틀 전에 나붙을 때도 있을 정도니.

그런데 역시 대형학회에서 내실을 기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들어볼까 생각한 발표는 26일(목) 오후와 28일(토) 오후 정도였는데, 일정을 보니 토요일 학회는 항주에 가서 호텔 잡아서 하고 또 그 다음날은 절강성 어디로 여행까지 간다고 한다. 혹시 학회가 목적이 아니라 꽃피는 춘삼월에 강남 호시절을 맛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도 데리고 가 준다면야.. 안 그래도 항주를 가려 했는데 학회 핑계로 확 가 버릴까 잠깐 생각을 했다.. ㅡㅡ;;)

아무래도 문사연구원이 창립된 후(2007) 어느 정도 굴러가니까 이런 식의 대형학회를 만들어 돈을 좀 푸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다져온 인맥도 확실히 굳히고. 뭐, 내가 내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확인할 도리는 없겠다.

근데 나는 학자들이 왜 이런 대형학회를 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기 문제를 여기 와서 풀 수도 없고,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기도 힘들다. 평소 글로만 알고 지내던 사람을 한번 만나본다는 정도? 그럼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글로 만나는 게 더 강렬한가, 아니면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게 더 강렬한가?


이번 학회의 발표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기록 차원에서 찍어둔 첫날 사진만 몇 장 올려둔다.

스티븐 웨스트 교수이다. (난 좀 더 젊을 줄 알았다.)

생각보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일본어로 관심 없는 내용을 이야기해서 먼저 나왔다. 개막식 장소로 꽤 넓은 곳을 빌렸는데, 사람이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았다. (중국학생들은 아침도 상관없이 일찍 자리를 채우는 편이다.) 따라서 오후에도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오후 일정 중 재미있을 만한 곳으로 찾아갔다. 왕더웨이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3시 30분에 시작하는데 딱 맞춰 갔더니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다. 뒤에서 서서 들을 수밖에.. (보통은 최소 30분은 먼저 가 있어야 한다. 이날은 오후 첫번째 시간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냥 쭈욱 앉게 된 모양이다.)

중국 아해들도 마찬가지로 좀 일찍 오거나 미리 자리를 맡아둔 쪽은 앉고 나머지는 서서 발표를 들었다.


질문은 주진학 선생 한 사람에게로 몰렸다. 옛 상해에 관한 발표였는데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만, 아무래도 다들 상해에 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라 재미있게 들었나 보다.
왕더웨이 교수다. 똘똘하고 공부 잘 하게 생겼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문학자의 하나이다.

개막식은 큰 곳에서 규모 있게 하고, 각 세션은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 위주로 할 계획이었나 본데 실제로 이렇게 큰 규모에서는 토론이 잘 이뤄지기 힘들다. 발표자들도 이런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로운 글이나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 예전에 써 뒀던 글을 장소만 바꿔서 다시 발표하는 식이다. 이름난 학자일수록 그런데, 이쪽에서도 그의 이름 때문에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궁합이 잘 맞는다. (비슷한 내용을 한국과 중국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적도 있고, 대만쪽 대학 웹싸이트에 발표자료와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강연을 다시 듣게 된 경우도 있다..)

내실을 기한다면 수유에서 하고 있는 국제워크샵 같은 형식이 참고할 만하겠다.
미리 발표자와 기획 단계에서 충분한 상의를 하고, 이쪽에서도 발표자와 관련된 논문이나 저작을 세미나 등을 통해서 충분히 읽어둔다. 그냥 그 날 되어서 우르르 몰려와 한번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만날 준비를 양쪽 모두 충분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부딪혀야 발표자도 듣는 사람도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내부 구성원이 회의진행자, 사회자, 통역, 토론자, 청중의 역할을 모두 맡는다.(물론 외부에도 열려 있다.) 특히 통역의 경우 제아무리 동시통역에 능한 사람이라도 학술 쪽은 쉽지 않은 편이다. 한국어로 이야기한대도 해당 분야에 대한 상식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는 게 많을 텐데, 그걸 외국어로 어떻게 옮기겠는가. 통역은 그 언어가 아니라 그 담론에 익숙한 사람이 맡아야 원활한 회의진행이 된다. 그걸 내부구성원이 맡아서 하고, 잘 수행하기 위한 공부를 따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방식이 좋은 줄 알면서도 대학에서는 실제로 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학회를 하는 목적이 공부에 있는 게 아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방관자의 입장에서 이름만 알고 있는 학자들 얼굴이나 봐두자는 속셈으로 간 학회이니,
학회 자체보다는 이런 학회 왜 하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 들었던 것. 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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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講, 구경 2008. 9. 26. 22:48

중국에서 느낀 한 가지는 강연이나 학회 등이 참으로 많고 다양하며, 세계 각지의 유명 학자들이 초청되어 온다는 점이다. 내가 관심 갖는 분야인 중국문학, 역사, 중국학 쪽의 미국, 유럽, 일본, 홍콩 등지의 학계의 거물들이 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들로서는 자기가 연구하는 나라에서 부르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학회 핑계로 돈까지 받아가며 와서는 예전에 써놓은 글 하나 발표하고 나머지 시간은 사람들 만나 인맥을 쌓거나, 중국에만 있는 자료를 수집하거나, 하다못해 관광이라도 한다면 나쁠 게 전혀 없지 않은가.

굳이 중국학이 아니라도 꽤 초청되어 온다.

어제(9월25일)는 복단대 사회과학 고등연구원(复旦大学社会科学高等研究院) "중국과 세계: 사회과학고급논단"(“中国与世界:社会科学高级论坛”)의 발족을 기념하여 마샬 살린스(Marshall Sahlins)가 "포스트모더니즘, 신자유주의, 문화와 인성"(后现代主义、新自由主义、人性与文化)이란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하였다.

여든에 가까운 이 할아버지는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강연원고를 읽었고, 순차통역(?)으로 중국어로 원고내용을 읽었으며 미리 준비된 번역문이 양쪽 화면에 떴다.

http://www.fudan.edu.cn/fudannews/news_content.php?channel=1&id=19337

서두가 너무 길었고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강연의 내용이 아니라 강연 전에 생긴 조그마한 소란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강연이 자주 있고 그 중 세계적인 거물들도 자주 오는데, 대부분은 전공불문하고 많이들 몰려오기 때문에 왠만하면 1시간 전에는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한 사람이 몇 개씩 자리를 잡아놓곤 한다.) 어영부영하다가 30분 전에 도착하게 되면 어김없이 땅바닥에 앉아서 혹은 뒤쪽에 서서 들어야 한다. 이날도 밥먹고 어기적거리다가 조금 늦게 도착했고 역시나 자리는 없었다. 주최측에서 더 대형 강의실을 준비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자리가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뒤쪽 출입구에 서 있는데, 여직원이 비좁은 틈을 뚫고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청소, 수리, 혹은 기타 잡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직원이 또 나를 비집고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왼쪽 통로 끝부분에 어떤 남학생이 간이의자에 앉아 있고 남자직원은 비키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강의실 뒤쪽에 위치한 방송실 겸 중앙통제실에 있는 의자를 그 남학생이 가져가서 앉았던 것이다.
내 상식에서는 허락받지 않고 의자를 들고 갔다면, 그것도 자기 혼자 앉기 위해서 그랬다면 여직원이 와서 달라고 해도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 여분이 있는 줄 알았다 하고 비켜줬을 것 같은데, 남자직원이 좀 강하게 요구하고서야 마지못해 의자를 내줬다.

조금 더 황당한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그 남자직원이 의자를 가지고 나가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너희 복단대 학생들 수준이 이게 뭐니?"(你们复旦人的文化水平怎么这么差?!)

그 말을 들은 그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당장 발끈한다.

"무슨 말이냐? 복단대 학생들이 뭐 어쨌다고?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

그 중 한 남학생은 남자직원이 들고 있는 의자를 잡고 놔주질 않았고 그 옆의 여학생이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즉, 니가 여기서 일하는 것도, 그 의자가 여기 있는 것도 복단대 학생들 때문이 아니느냐는 식이었다.
오래 끌지는 않았고, 그 남자직원이 나간 후 뒤쪽에서 "그래, 의자를 원래대로 가져다 놨으면 됐다, 그만해라"는 따위의 윗선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깐만에 끝났고 그 주위에 있던 몇몇만 목격한 소동이지만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자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방송실에는 또 의자가 원래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직원들의 요구는 내 생각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자기 혼자 편해 보겠다고 의자 가져다가 앉아 있는 이기적인 학생을 비난하는 한 마디, "복단대 학생(复旦人)"의 수준에 자기 동일시하여 주위 학생들이 나서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 소리다.
앞뒤 따지지 않고 발끈해야할 만큼 "복단대 학생"이라는 기호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덧붙여, 화가 나서 무심코 던진 말이기도 하지만, 직원의 비난은 복단대 정도씩이나 다니는 놈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라는 그 개인에게 향한 비난으로 읽혀야 한다.)

복단대라는 이름에 대한 자기동일시, 직원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엘리트 의식 따위가 겹쳐 (아무리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따위가 복단대란 이름 전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라는 식의 공기가 너무 당연하게 깔려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 자체에 대해 어떤 반성, 혹은 질문을 던지는 눈빛을 보이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물론 이 소동의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10명 안쪽이다.)

그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느낄 수 있었으나, 살짝 우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재미난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소속감이 국가 등 더 큰 단위에서 발현된다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9/26 22:48 | 조리돌림 | 트랙백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講, 구경 2007. 3. 23. 00:07

최근에는 이사를 했습니다. 처음 구했던 집이, 가족들도 와있을 예정으로 잡았던 꽤 큰 방인지라, 돈도 아깝고 공간도 아까워서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복단대가 위치한 상해 북쪽 지역으로 왔지요.

일 단 유학생이 많은 곳이라 실제생활은 더 편해졌어요. 상해에 오는 직장인들은 예전 국제공항이었던 홍교공항 근교(롱바이, 구베이)에 몰려 있고, 유학생들은 복단대에 집중되어 있죠. 원래 그들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하려고, 한국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한 6개월을 산 셈인데, 결국은 포기하게 되었네요..

장소가 바뀌니 생활도 조금 달라졌는데.
우선 여기선 밥을 많이 사먹게 되네요. 맛은 별로지만 싸고 근처에 여러곳이 있으니까요. 예전엔 혼자 먹을데가 없어 해먹었거던요.
다른 하나는, 청강을 두개정도 하고 있어요. 가끔 도서관에 가서 자료만 찾곤 했는데, 간만에 수업을 들어보니 좋더군요.
이쪽에서 유학하는 후배들이 한국보다 교육환경이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하던 게 거짓은 아니었구요.
적어도 듣고 있는 두 수업의 수준도 상당하더군요.

저 는 주유쟁(朱維錚), 갈조광(葛兆光) 두 교수의 수업을 들어요. 어쩌다 보니 사상사 관련으로만 둘을 듣게 되었네요. 개설된 수업 중 마땅한 게 없기도 했지만, 이 두 교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여기 와서 학회에서도 몇번 인상깊게 보기도 했거던요.

갈 조광은 우리나라에 <도교와 중국문화>, <선과 중국문화>가 번역되어 있는데, 요즘 중국사상사 쪽으로 꽤 꽁푸를 쌓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청화대에 있다가 최근 복단대로 스카웃되었고, (이 사람을 위해) "문사연구소"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지난 시간 내용이 근년에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들을 사상사가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 그로 인해 사상사가 얼마나 더 풍부해질 수 있는지 등에 관한 것이었는데 꽤 흥미로웠어요. 제가 최근 발굴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가 여럿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죠.

갈조광은 현재 중국 최고'급'의 학자임은 분명하지만, 비판에는 조심스럽고 종합하는 능력이 강한 것 같습디다. 따라서 그의 사상사 책의 해당부분을 읽고 강의를 같이 들으면 꽤나 유익한 정보와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주유쟁 선생은 일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력적이고, 목소리도 크고, 대놓고 학계와 교수, 공산당, 중국사회 전반을 비판합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학회에서도, 학생들 앞에서도 말이죠.

"중국의 인문정신"이라는 수업내용과는 별도로 그를 통해 많은 정보도 얻고, 계발도 많이 받는거 같아요.

이 분은 20대후반~30대에 문혁을 거쳤기 때문에, 소위 홍위병들에게 엄청난 학대를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몇 살 어렸으면 문혁의 주역이 되었겠지만, 암튼 인생의 황금기이고 학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직전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그 "십년"을 어떤 방식으로던 되돌아보고 질문하면서 살고 있는거 같아요.

다행히 문혁 말기에 당에서 만든 "장태염 주석組"에 배당되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죠. 공부라곤 해본적도 없는 18명의 농공병들에게 맞아가면서, 시간맞춰서 반우파비판도 받아가면서, 사전 찾는 법부터 가르치고 그들이 작업한 말도 안되는 주석을 수정하는 일을 한 거죠. 이 멍청이 주석그룹이 지금은 학계의 거물들이 되어 있구요. (제가 처음 신청한 지도교수도 그 중 한명일 가능성이 다분하더군요. 실력보다는 능력과 수단이 뛰어난.. 너무 다행스러운 건 그 사람이 너무 바빠서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거죠. 혹은 저도 거물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것일까요? ^^;; )

자세한 건 나중에 시간이 되면 주유쟁 선생 인터뷰를 번역해서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개인에게는 불행이었고, 저로서는 아주 행운이기도 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비판이라기보다는 "비아냥"의 형식이긴 하지만, 책이나 다른 자료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니까요.. 중국학생들도 키득키득 거리면서 듣구요. 중국에서 누가 대놓고 공개석상에서 그 정도 강도의 비판을 할 수 있겠어요. 이 할배 나이가 10년만 젊었어도 무슨 수를 썼을 거에요.

암튼 제가 신청한 연구비와는 관계없는 이 두 수업을 재미있게 듣고 있어요.

별로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죠?
대충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7/03/23 00:07 | 조리돌림 |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