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5

리얼(李洱)은 1966년 허난성(河南) 지위안(济源)에서 태어났다. 《홍루몽》, 《삼국연의》와 같은 고전소설을 즐기는 할아버지와 중학교 어문교사였으며 역시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리얼이 작가가 아닌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술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미술교육은 은연중에 그에게 형상적인 사유능력을 키워줬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소설 창작을 목표로 했으며 이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중문과에 입학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소설 읽기를 시작한다.

80년대의 화둥사대는 문학 창작과 비평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오직 글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학청년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근문학(尋根文學)이나 선봉문학(先鋒文學)과 같은 최신의 문학 조류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기도 전에 대학에서는 미리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시작했다. 특히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福音)」(1987)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많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으며 저자 자신도 비교적 만족스러워 하는 초기작은 당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1993)이다.

 

대학원생인 “나”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신중한 어투로 지도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존경의 말투가 극진할수록 지도교수의 행색은 더욱 초라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되는 사건, 장면, 생활의 디테일은 지도교수의 어쩔 수 없는 생존환경과 정신적인 붕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편집자가 출판을 위해 수정을 가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초고를 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두 글자가 달라짐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은 이후 그의 창작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화둥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허난성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수년 간 역임했다. 허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허난성의 창작계와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선봉소설이나 모더니즘 계열 소설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중역본 《보르헤스 소설선》을 끼고서 거리를 다녀 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시 허난 창작계의 분위기였다. 리얼이 보기에 허난성 작가의 소설은 건국 이전의 고루한 양식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리얼이 땅과 향촌의 이야기에 기반한 다른 허난 작가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상하이, 선봉문학,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였다. 이후 허난작가들이 가진 토착성과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자신이 향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시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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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1

지식인의 존재적 불안의 담론화


리얼은 80년대 말에 창작을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문단에서의 자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즉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에 매진한 시기는 중국이 소비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는 유행이나 시류를 휩쓸리지 않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식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가하여 그것을 심미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에 치중하였다.

 

「지도교수가 죽었다」, 「오후의 시학」, 「현장(现场)」 등 초기작을 시작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 특히 1990년대 중국 지식인은 리얼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 역사와 현실에서 지식인이 겪는 곤경과 개인의 존재 의의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창작을 관통하고 있다. 리얼의 지식인 소설은 표면적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과 존재형태에 대한 묘사에 그쳐 주제나 인물에 있어 명확한 내포나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보여주는 서사담론과 시각은 강렬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얼의 지식인 서사는 역사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개인의 일상적인 존재와 개체의 생명에 대한 체득으로 회귀하여 지식인의 정신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의 서사는 생활의 아픔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지도교수가 죽었다」에서 그 추형을 보여준 뒤 「망각」,《노래가락》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그것이 인물, 주제, 도덕 같은 내용에 관련되든 텍스트의 문맥이나 서사형식에 관련되든 모두 지식인의 담론생활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담론과 “이야기되는” 그들은 각각의 상이한 환경에서 근본적인 허무를 펼쳐 보인다.


「오후의 시학」(1998)은 「지도교수가 죽었다」와 함께 리얼의 가장 중요하며 가장 뛰어난 중편 대표작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식인의 정신과 담론의 질서가 작품 안에서 변형되면서 원래의 전통적인 합법성을 상실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후의 시학」은 문학적 글쓰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리얼에게 새로운 미학적 기점을 찾아줬으며 “존재”, “담론”에 대해 그가 얼마만큼 파고 들어갈 힘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거대서사는 철저히 해체되었으며 개체의 생명존재에 대한 진술은 확실한 표현방법을 획득하였다.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다룬 이 소설은 인물의 “말”에서 출발하여 주인공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세부와 정신생활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곤경을 겪게 되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페이볜(費邊)은 자신 있게 “고귀함”을 설파하지만 그 자신은 세속의 소용돌이로 떨어진다. 현실과 정신적 지향의 충돌로 인해 그는 담론의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볜의 연애, 결혼, 사업 및 정신생활은 모두 담론의 현시와 암시로 전환되며, 이러한 담론의 현시를 통해 페이볜의 주관세계가 그의 주체가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구,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극,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두 페이볜이란 존재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있으며, 페이볜의 의의 또한 바로 이러한 의식의 창조적 활동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몇 년 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붕괴되어 온갖 희극적 장면이 일상생활의 사진이 되었을 때”도 페이볜은 여전히 친구의 결혼피로연에 동석한 연인 한쌍에게 플라톤의 사랑론을 지껄이며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시 「오후의 시학」을 구상하고 있다.

한 편 두리(杜丽)는 미망인의 신분으로 페이볜에게 나타나 그와 결혼한다. 그녀의 출현이 가져다 준 것은 사랑과 죽음의 결합에 의한 신성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죽지 않았으며 줄곧 비밀리에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그녀는 연극배우에서 유행가수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악한 노래 소리는 우리 시대의 은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 “오후”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림자, 추악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진실함과 경건함이 살아있는가? 예술에 대한 신앙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가?

 

페이볜은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다. “신이여, 우리는 신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신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까뮈의 《반항적 인간》에서 이야기했듯이, 햇빛 찬란한 고대 그리스의 지중해 정신은 용기, 성숙, 균형 등을 의미하는 “정오의 사상”이다. 그에 반해 리얼이 바라보는 세계는 애매하고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오후”이다. “나는 이 시대의 글쓰기를 오후의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리얼은 담론을 이용하면서 그것을 해체한다. 현실에 대해 밀란 쿤데라식의 “농담”을 하며 “지혜의 고통”을 향유한다. 철저히 세속화될 때까지, 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랑과 성 또한 리얼의 소설에서 계속 탐색해온 주제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처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 지식인의 개성적 존재가 가진 은밀함을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벙어리의 목소리(喑哑的声音)」(1998)과 「부유(悬浮)」(1998)는 중년 지식인의 은밀하고 내면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섹스와 정신, 세속적 결혼과 비정상적 감정 등에 대해 소설은 그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인생의 은밀한 일면을 들춰낸다.

 

리얼은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도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적 지식인들은 모두 감정의 미망에 빠져 날로 변화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자신의 윤리관이 뒤흔들리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벙어리의 ‘목소리’와 담론의 ‘부유’는 무중력 상태에 빠진 지식인의 감정과 의지할 곳 없는 영혼,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 현기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얼은 자신의 개인화된 문학적 경험을 최대한 억제하여 당대 인문 지식인의 미리 결정된 일상생활과 담론에 속박된 정신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상적 장면”과 담론적 형태를 철저하게 지식인 서사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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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42

“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인 중편 「망각」(1999)은 《대가(大家)》잡지의 “요철 텍스트(凸凹文本)” 특집에 문체실험으로 발표되어, 소설문체의 혁명, 순수한 문체실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사책략과 문체기교 방면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새로움은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서사구조의 매력이 아니라 형식 배후에 감춰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화, 생명,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당대의 문화, 인문현상, 당대의 인문 지식인이 가진 진실의 허구와 그것이 가져다 준 첨예함이 그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지도교수 허우허우이(侯后毅; 해를 쏘아 떨어뜨린 신화 속 ‘후예(后羿)’를 연상시키는 이름)는 제자 펑멍(馮蒙;후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의 제자 봉몽(逢蒙)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박사학위 논문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인 상아(嫦娥)를 역사학적으로 고증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아울러 상아와 자신의 특수한 관계, 즉 달에 사는 상아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 러나 펑멍은 상아와 어떠한 교류를 할 수 없으며 그 속에 담긴 논리를 유추하거나 논증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모인 뤄미(羅宓)와의 미묘하고 복잡한 애정관계에 몰두한다. 신화와 현실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억누르고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상상 속에서 현존재의 신비와 황당함, 패러독스가 드러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담론에서 서술되며, 소설 속 현실 또한 신화에 의해 진행된다. 허우허우이가 현실과 신화를 혼동하면서 신화와 현실의 논리질서는 완전히 전복되고 해체된다.

저 명한 역사학자인 그가 전생을 찾아 신화와 전설의 논증을 필생의 임무로 삼게 되면서 엄숙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로서의 그는 망각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담론” 내부의 공간이며, 이 담론은 이미 실재적인 역사와 현실의 증거를 상실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신화는 수정이 가능하고, 역사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현실 또한 존재의 거짓말로 가득 찬 세계이다. 허우허우이가 자기 존재의 기원을 망각하는 순간, 어떠한 권위 있는 담론, 어떠한 개인적인 담론도 허황하고 아무 근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상상적 존재와 담론은 똑같이 일종의 생활방식, 담론적 생활방식이 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에서 현실과 허구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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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38
진실의 다양한 변주


공산혁명, 문화대혁명을 거쳐 현재의 시간이 착종되어 있는 리얼의 대표 장편 《노래가락(花腔)》(2002)은 민족영웅 거런(葛任;‘개인(個人)’과 같은 발음이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역사에서의 개인과 지식인의 운명을 사고하고 질문함으로써 삶에 대한 깊은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적으로 봤을 때 80년대 선봉소설의 탐색성과를 종합한 “선봉소설의 열매”라 평가되며, 그 개인적으로봐서도 새로운 창작경향을 보여준 전환적인 의미의 작품이다. 2001-2002년도 가장 우수한 장편소설의 하나로 손꼽히며, 제1회“21세기 딩쥔(鼎钧) 문학상”을 모옌의 《탄샹싱》과 공동 수상하였다. 제6회 마오둔(茅盾)문학상에 입선되기도 하였다. 제목 “화강(花腔)”의 사전적 의미는 ‘가곡이나 희곡에서 기본 가락을 일부러 굴절시키거나 복잡하게 부르는 창법’을 가리킨다.콜로라투라(coloratura)의 번역어로도 쓰이며 교묘한 말솜씨, 교언영색이란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화강”은 웅성거림, 떠들썩함이란 의미와 함께 다성적인 서사구조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 거런의 이야기는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신분과 지위를 가진 세 사람에 의해 상이한 역사 시기(1943년, 1970년, 2000년)에 각각의다른 입장에서 진술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인공의 입체적인 구체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웅성거림 속에서 진실은사라져간다.


「망각」이 신화전설을 희화화하면서 지식인의 담론을 해체했다면, 《노래가락》은 역사적담론을 모방하면서 역사 담론 자체의 결함과 한계를 드러내고 폭로한다. 이 소설은 다중적 목소리로 개인/거런이 역사, 혁명,개인해방, 근대성과 마주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런이 맞게 되는 상황은 현실적인 국면과 사상적인 국면을 모두 가지고있는 어떤 것이다. 마르크스-레닌 학교 번역실의 번역요원인 거런의 삶과 죽음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서사의 중심이다. 거런/개인의운명을 실마리로 특정 역사적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생존실상을 묘사하며, 특정 역사적 문맥 속에서의 지식인의 “실어”상태를주목하여 거대역사에서 개인의 생존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개인은 역사에 매몰되며, 역사에 의해 비극적인존재로 화한다. 상이한 성격, 상이한 신분, 상이한 말투의 각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역사적 합법성을 증명하기 위해 거런의 말을말살시킨다. 소설은 개인과 역사, 역사와 정치의 불합리한 관계를 부각시켜 중국의 전통문화와 혁명윤리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던지고있는 것이다.


거런은 전사했기 때문에 기념비까지 세워진 전쟁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죽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거런의 생존은 그를 매우 난처하고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혁명영웅이 될 것인가 배반자가 될것인가, 죽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가 될 것인가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 건인가? 생존의 진상조차 밝힐 수 없는 선택불가의이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어찌해볼 수 없는 개인의 미약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그는 영원히 사라질수밖에 없다. 어떠한 문자도 남기지 못하게 하고 그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죽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소설에서그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다시 죽었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개인과 역사 사이의 가치충돌, 역사와 정치권력이 개인에게가하는 억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그 자신의 언어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일률적인 규율을 강요하는시대에서 개인이 어떠한 힘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순수한 인간이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역사와 시학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대응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 소설에 “역사시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한다. “나는 점점문제의 복잡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때문에 경험의 복잡성을 표현하는 데 보다 주의했다. 역사 또한 현실이며, 다른 주제를 주면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역사서술의 작업장 분위기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소멸, 민족주의의 복잡성 따위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되었다.그래서 《노래가락》을 쓰게 된 것이다.” “생활의 복잡성에 대한 감각은 지식인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은문화의 신경이며 문화의 예민한 촉각이다. 나는 ‘복잡성’이란 말을 좋아하고, 복잡한 생활, 복잡한 감각을 묘사하기를 좋아한다.지식인에 대해 쓰는 것은 나의 이러한 바램을 만족시켜 주고, 나의 글쓰기에 대한 이해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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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9

농촌의 정치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작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石榴树上结樱桃)》(2004)는 《노래가락》과는 또 다른 변화가 시도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중국고전소설의 표현수법을 현대소설의 서사로 재활용하였으며, 지식인이 아닌 농촌을 주요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촌장 선거를 둘러싸고 권력의 유혹앞에서 시험받는 인간의 자존심과 양심을 묘사하여, 권력이 순수한 농촌을 어떻게 침식해 들어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의 선거나 과장, 부장으로의 진급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누가 촌장이 되는가에 따라 농민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농촌은 온갖 모순이 모인 곳이다. 농민은 생존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마을에서 한자리라도 차지해야 하고 조상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사내아이의 출생에 목을 매는 것 또한 합리적인 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들의 합리성은 국가정책과 모순된다.”

 

소재가 향촌으로 전환되었으되 여전히 지식인의 입장에서 향토 중국을 이해하려는시도임이 잘 드러난다. 그에게는 이 소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인 소설이다. 지식인 자아의 개성적 표현에서 나아가 타자인 농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식인의 책임임과 동시에 더욱 순수한 지식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리얼은 다른 향촌소설과는 달리 농민들의 고난 자체보다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요소, 현대적 문화가 변화시킨 농민들의 담론생활에 더욱 주목한다. 당대의 농민들은 돼지우리에 서서 핸드폰으로 촌장 선거를 토론한다거나 타이완 해협과 같은 정치현안, 지속가능한 발전, 미국 대통령 선거, 전지구화, 페미니즘 따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담론생활과 생존환경 사이의 “간극”이 그가 초점을 맞추고있는 부분이다.


“향토 중국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건 계속 꿈꿔오던 것이었다. 다른 향촌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기이한 사건을 서술하거나, 일상적 사건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든 난제를 묘사하고 싶지 않았으며, 현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향토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작가들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곤란”함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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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2

리얼은 15~6년간 거의 매일 소설을 읽어 왔으며 특히 유럽 소설을 섭렵하였다. 최근에는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방면으로 독서의범위를 확장시켰다. 이는 문학서적들이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좋아하는 작가는 카뮈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다.


창작 이외에 리얼이 가장즐기는 것은 잡담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것은 너무 비용부담이 크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축구를즐겨 본다. 그는 특히 중국 축구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중국의 모든 직종 중에 축구가 가장 제대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어느 영역에서 감히 이렇게 외칠 수 있겠는가? 이기든 지든 눈앞에 펼쳐져 모두가 볼수 있고, 욕할 수 있다. 게다가 수만 명이 모여서 같이 욕하고, 수억의 관중이 같이 목이 터져라 욕할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이게 가능한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통로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축구를 볼 때마다, 특히 중국 축구를 볼때마다 아무리 무참히 깨지더라도 속으로 잘 찼다를 연발한다. 이게 어디 축구겠는가, 이건 분명 전지구화 시대의 중국현실에 대한너무나도 리얼한 사진이다. 축구나 축구와 관련된 영역은 가장 현실주의적인 소설도 비교할 수 없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식《아내가 결혼했다》를 기대해도 좋을 대목이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 리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저는 원래 중단편소설 이외에 평생 세 편의 장편만을 쓸 계획이었습니다. 역사, 현실, 미래에 관하여 각각 한 편씩을 구상하고있었습니다. 《노래가락》은 역사에 관한 소설입니다. 《석류나무 위에 열린 앵두》는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던 중 임시로 끼어든것입니다. 지금 집필하고 있는 것은 원래 계획의 두 번째 장편인 현실에 관한 소설입니다. 내용이 비교적 복잡하고 편폭 또한길어서 대략 30만 자 정도 될 것입니다.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고 언제 완성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제 계획에 있어 이 세장편은 사실 하나의 생각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이 말은 뒤바꾸어도 됩니다. 미래는역사임과 동시에 현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현실은 역사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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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3. 01:23

류전윈(劉震雲)

 

 

1958년 5월 하남성(河南省) 옌진현(延津县)에서 출생했다. 1973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습작을 시작했으며, 1978년에제대하였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초기작 「신병훈련(新兵连)」(1987)은 신병연대에서 궁벽한 농촌청년들이 겪게 되는새옹지마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대 이후 잠깐 동안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문혁 동안 중단되었던대학입시가 부활하자 1978년 가을 북경대 중문과에 입학한다. 처녀작 「탑마을(塔铺)」(1987)에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기고향에서의 경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8년에서 1991년까지 위화(余華), 모옌(莫言) 등과 함께 북경사범대학루쉰문학원(鲁迅文学院) 창작연구생반에서 수학하여 문예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년 대학 졸업 후 《농민일보(农民日报)》에입사하였으며, 지금은 문화부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북경시 청년연합회(靑聯) 위원,일급작가(一級作家)이며, ‘루쉰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부터 창작을 시작했으며, 1987년 《인민문학》에 단편소설 「탑마을」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소설로 그는1987-88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 1987년 《소설선간(小说选刊)》우수단편소설상, 1987년《인민문학(人民文学)》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드라마로 제작되어 전국 드라마 “비천상(飞天奖)”을 수상한다. 같은 해발표한 「신병훈련」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아, 제3회 《소설월보(小说月报)》 우수중편소설 “백화상(百花奖)”과 제2회 청년문학창작성취상을 수상한다. 이후 「우두머리(斗人)」(1988), 「직장(单位)」(1988), 「관직(官场)」(1989), 「닭털같은 나날(一地鸡毛)」(1990), 「관리들 만세(官人)」(1991), 「1942년을 돌아보다(温故一九四二)」(1993),「뉴스(新闻)」(1994) 등 우수한 중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중편에 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형이상학적인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여실하게 그려지고 있어 80년대 후반 대두한 신사실주의소설의 대표로 손꼽히고 있다. 현실의 담담한 묘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러나 그 옛날 루쉰을 떠올리게 하는 절망과 음울함, 그리고중국인의 노예성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닭털 같이 가볍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이 잘 그려진 「닭털 같은 나날」 또한 그의소설 특유의 블랙 유머와 실존주의적 모색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 또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세기 100대세계명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가가 가장 중시하는 작품의 하나인 「1942년을 돌아보다(温故一九四二)」는 르포르타주의형식적 외피 아래에 권력의 속성을 멀찍이서 그려내고 있다.

 

여러 중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일상, 권력, 역사 등의 키워드는 ‘고향’을 주요무대로 그려낸 일련의 장편에서 더욱 다양하게 변주된다. ‘신역사소설’의 대표작품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국화(故乡天下黄花)》(1991)는 한 촌락의 권력투쟁사를 통해 주류 이데올로기적 혁명의 역사에 대한 전복을 꾀하고 있다. 《고향의 국화》는 “20년간 중국 영향력 100위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닭털 같은 나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적 시도인 《고향의 옛 이야기(故乡相处流传)》(1993)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을 적극 활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고향 하남성을 근거지로 활약한) 조조의 삼국시대와 현재를 오가며 “허구세계의 진실”과 “진실세계의 허구”를 교차시키고 있다. 농촌에서 그려낸 《악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향의 꽃송이(故乡面和花朵)》(1998)는 8년이라는 창작기간과 ‘4권 220만 자’라는 규모로 인해, 그리고 기존관습에서 벗어난 형식적인 실험으로 인해 여전히 의론이분분한 상태이다. 그러나 과잉일지는 몰라도 시대의 획을 긋는 새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의 언어적 실험은《온통 헛소리(一腔废话)》(2002)에서 더욱 자유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근작 《핸드폰(手机)》(2003)은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닭털 같은 나날」, 「1942년을 돌아보다」, 《핸드폰》 등 다수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거나 제작 예정이다. 또한 중국 최초의 “작가영화”라고 평가되는 《내 이름은 류약진(我叫刘跃进)》(감독: 마리원马俪文)에서는 직접 제작, 시나리오, 연기(카메오) 등에 참여하였으며, 2008년 1월 16일 상영예정이다. 이러한 최근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로운 문학적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 류진운은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국역본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최근작 <류약진>이 곧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도 국내에 개봉할까? 영화는 모르겠으나 소설<류약진>은 너무 시끌벅쩍하고 수다스러워서 내 취향은 좀 아니었다. 영화도 아마 짐작에는 <크레이지스톤>에 가까운 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녀의 전작 <워먼랴; 우리 두 사람>은 좋았지만 말이다.

  • (덧붙임) : 영화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기대작이어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소개를 작성한 후 출판된 소설 <내 이름은 류약진> 또한 나로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글루스에 올리기 전인 07년 9월~10월 사이 작가 소개가 작성되었고 책은 2007년11월에 출판되었다.) 일단 <닭털 같은 나날>의 류진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핸드폰>이나 <내 이름은 유약진>을 좋아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 대체적인 평가는 초기의 단편이 뛰어나고, <고향의 국화; 고향 하늘의 노란 꽃> 정도까지를 쳐주는 편이다. 그 이후의 소설은 나로서는 너무 수다스럽다.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김영철 역, 2001년 7월, 책이있는마을 /단편 "단위" 수록

<닭털 같은 나날>, 김영철 역, 2004년 2월, 소나무

<핸드폰>, 김태성 역, 2007년 11월, 황매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 김재영 역, 2007년 12월, 황매



핸드폰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닭털 같은 나날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은 아무래도 그냥 "국화"로 옮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소개말에 보면 "황화"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바로 국화 아닐까 하는 것이다.
  • 물론 나는 위의 약력을 쓸 때 위에 소개된 저자의 말은 모르고 있었고, 고향 삼부작의 제목 번역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 그 중 압권은 "고향의 꽃송이"로 두리뭉실하게 옮긴 <故乡面和花朵>이다. 중국인들도 제목을 어떻게 끊어 읽어야 될 지 모르겠다고 한다. 추후에 지도교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데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어 원래의 "두루뭉술"로 둘 수밖에.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 9. 03:40

아침 8시 30분에 시험을 보는데 봐야할 분량의 1/3도 못 봤다.
낮에는 중국친구들이 드디어 영어시험이 끝났다고, 그네들 말로 "해방되었다"면서 종강파티를 한데서
같이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낮술도 한잔..
지들은 해방되었지만 나는 그 다음날 시험이 있는데 말이다.
사실 어학시험은 . 글쎄.
학교에서 요구하는 필수과정이라서 듣는 어학과정은 영양가도 없고, 하기도 싫은 법.
영양가는 없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것도 시험인지라 쓰기가 힘들 거라는 것,
그것이 내 실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핑계까지.
뒤섞여 머리에서 맴돌며 시험공부에 빠져드는 걸 피하게 해준다.
나에겐 해야할, 하고 싶은, 더 중요한, 할 만한 일이 많단 말야.. ㅡㅡ;;

로얄제리를 조금씩 챙겨먹고 있다.
중국에서는 비싸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호주산 머시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벌이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관리를 어떻게 잘 한다고 해도 오십보백보일 것이다(라면서 위안을 삼는다).

태어날 때 일벌과 여왕벌은 아무런 구별이 없어.
먹는 것에 따라 누구는 일벌이 되어 일주일 만에 죽고, 누구는 여왕벌이 되어 몇년을 살며 엄청난 생산력을 보여주지.
애야.
먹는 게 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어떤 책을 읽느냐가 사람을 달라지게 한단다.
여왕처럼은, 더 부유하게와 반드시 연결되는 건 아닐거야.
그래도 더 고귀하게 살 수는 있겠지.
꿀같은 책도 있고, 로얄제리같은 책도 있단다.
먹을 땐 달콤하지만, 물론 이것도 몸에 좋은 거긴 하지만, 일주일도 못 가 사라져 버릴 책도 있고,
먹을 때는 시큼하고, 떨뜨럼하고, 톡 쏘고, 역겨워서 못 삼킬 수도 있지만
너를 여왕처럼 고귀하게 만들어줄 책도 있지요.

로얄제리를 먹으며,
아이가 커서 말을 이해할 때가 되면 이런 말을 들려줘야지 하는 몽상을 해본다.
그러나, 사실은,
그건 나에게 필요한 말일 터다.
그게 자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아니라, 자신에게 되묻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꿀같은 책을 읽고 있나, 로얄제리같은 책을 읽고 있나.
이미 굳어진 내 신체와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로얄제리와 같은 책을 상대할 자신은 있는가.
시큼떨떠름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외면하고 달콤한 몇 가지 말귀에 내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아닌가.

며칠째 계속 묻고 있지만,, 글쎄다.
내가 이 말을 자신있게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쓰디쓴 어학책을 팽겨치고 달콤한 텍스트들에 빠지고 싶은 생각 뿐.
좀 자 둬야 그나마라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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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7. 12. 16. 01:48

<색, 계> : 소설에서 영화까지


이구범(레오 어우판 리)
<書城> 2007년 12월호

(< 상하이 모던>의 저자 리어우판이 쓴 <색,계>에 관한 글이다. 그는 장아이링의 소설에 대해서도, 리안의 영화에 대해서도, 그 옛날 상하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주 정교한 글은 아니지만 소설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이니 조금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 어렵고, 이해가 안 되니 번역하기도 쉽지 않다. 글에서 소설의 인용문이 나올 때마다 번역을 멈추게 된다..)

1.

리 안이 장아이링의 소설 <색, 계>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며 상연되기 전부터 떠들썩했다. 나는 운좋게 먼저 볼 기회가 있어 홍콩에서 시사회를 할 때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원래 몇 번이나 읽어본 소설이기도 해서 그보다 더 놀라운 영화를 찍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리안은 확실히 대단한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앞선 걸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경지를 또 한 단계 넘어서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 아이링의 <색, 계>는 결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으며, 다시 읽을 �도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세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 소설은 고의로 감추는 서사기교를 사용하여 너무 빙빙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 온갖 사소한 세부를 이야기의 전면에 배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인 왕자즈가 등장할 때도 그녀의 용모나 옷에 대해서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그런 다음 마작판에서 다른 세 명의 마나님이 하는 대화를 장장 세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어, 오히려 이(易) 부인이 중심인물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장아이링은 이처럼 간접적인 "눈속임법"으로 섹스와 스파이가 뒤섞인 이야기를 그냥 봐서는 색정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스릴도 없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반도 읽기 전에 참을 수가 없어, 장아이링 소설을 읽을 때 피해야 할 금기인 대충 이야기만 �어보는 방식으로 읽어 버렸다.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일반독자들은 더욱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장아이링은 대단히 고심하여 장면장면 서사기교에 경심(control)을 더하여 아주 생동적이어야 할 곳마저 다채로운() 묘사를 아꼈다. 등장인물의 개성은 가벼운 필치로 처리되었고 줄거리마저 잘 드러나지 않아, 거의 묘사와 논리가 뒤섞인 전지적 서사언어로 대체되어 버린 것만 같다.

"이거 너무 위험한데. 오늘도 성공하지 못해서 계속 끌고 가다가는 이 부인이 알아차릴 거야."
왕 자즈가 이렇게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속으로 뱉을 때도, 처음 읽을 때는 여전히 도통 무슨 소리인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지? 왕자즈가 뭘 하려는 건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는 그녀가 원래 국민당의 여자 스파이이며, 왕징웨이 정부의 통제하에 있던 상하이에서 왕징웨이의 특무 대장인 이(易) 선생을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왕자즈가 이미 이 선생의 정부였던 것도 말이다. 이들의 관계를 장아이링은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신한다.
"지난 두 번은 아파트에서 만났다."
왕자즈가 처음으로 이 선생을 유혹하는 장면도 이렇게 한두 마디로 끝난다.
"그는 확실이 유혹이 너무 많아 그녀만을 바라보게 하려면 그야말로 젖가슴을 받쳐들고 그의 눈앞에다 흔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예전에 장아이링 마니아인 남자 친구에게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 내용은 사실 "계색(戒色)"이야.

이 는 물론 이 "문자 수수께끼"의 절반만 보아낸 것이다. <색,계>라는 제목 자체도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원래 장아이링은 왜 색과 계 사이에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썼을까? 그리고 영화에서 리안은 의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중국어 제목을 쓰고, 중간에는 모점(、병렬)도 아니고 쉼표도 아닌 줄(|)로 구분했다. 내 생각에 리안의 해석이 아주 그럴 듯한 것 같다. 이 둘은 사실 변증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상호간의 강렬한 대립이 있지만, 서로 표리 관계에 있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다이아몬드 반지(戒; 반지의 중국어가 戒指이다) 에서 이 둘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처럼 중요한 대목에서 이 선생은 스탠드 불빛 아래로 왕자즈의 손에 끼워진 6캐럿 반지를 바라본다. ― 그가 자기 마누라에게는 쓰고싶지 않으면서 왕자즈에게 준 값진 선물―그는 "눈빛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데, 속눈썹이 쌀색깔의 거위날개마냥 여윈 뺨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따스하게 자기를 아끼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쿵하며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너무 늦었다."

이 부분은 이야기 전체의 구성과 두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다. 그의 경계심이 처음으로 허물어졌다. 또한 그 때문에 금기(계)를 깨고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색마의 심정에서 사랑으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더욱이 색에서 정이 생겨난 셈이다. 의도적으로 그를 유혹하려던 계획에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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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11월17일 상하이 동방예술중심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다.
최근 "노다메" 광풍에 뒤늦게 합류하여 여러 음악을 들어보고 있던 중이었다.
원래 클래식 쪽은 애너 빌스마의 첼로와 리히터의 피아노 몇 개 듣는 정도였다.
그러다 드라마에 빠져 노다메에 나오는 곡들을 검색해 보고 다운받고 사서 듣고 하는 식이었던 터.
방안에서 제한된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 직접 제대로 공명을 느끼고 싶다는 느낌이 들던 중에
연말에 상하이에서 열리는 공연 몇 개를 점찍었다.

우선은 체코필.
내가 즐겨찾는 상해문화정보 사이트(http://www.culture.sh.cn)에는 중국어 소개 뿐이라
어떤 곡을 하는지도 모르고 갔다.
일단은 공연장이 어떤지, 중국의 공연문화는 어떤지 알아나 보자는 식으로 편하게 갔던 것.

(곡목 소개가 이런 식이다.)=============================

曲目

11月17日(周六)

贝多伊奇·斯美塔那:交响组曲《我的祖国》

I. 维谢赫拉得

II. 沃尔塔瓦河

III. 萨尔卡

-中场休息-

IV. 波希米亚的森林与草原

V. 塔波尔

VI. 布拉尼克山

★ 因曲目安排,迟到观众须在外等候至中场,敬请准时入场

11月18日(周日)

安东尼·德沃夏克 “波尔卡”选自捷克组曲

b小调大提琴协奏曲(独奏:王健)

-中场休息-

安东尼·德沃夏克 e小调第九交响曲《自新大陆》

========================================================

인터넷 예매가 이미 종료되어 무작정 동방예술중심으로 가봤다.
왠걸. 곳곳에 암표상이 득실댄다.
2200원(28만원 정도) 하는 표를 잘 깍으니 800원까지도 살 수 있겠다.
3명이 2000원 주고 2200원 1장, 1800원 두장을 사서 들어간다.


THE CZECH PHILHARMONIC ORCHESTRA TOUR CONCERTS

 

초상국 135주년 기념으로 초청한 것이다.
19세기 말 그 이름도 유명한 초상윤선국(招商輪船局)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초상은행이라는 명칭을 볼 때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암튼 검은 양복의 거물들이 꽤 있었던 것 같고, 아마도 표를 사거나 받았다가 암표상들에게 헐값에 넌긴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그다지 나쁘지 않은 2층 자리였지만 곡이 딱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방안을 울리는 스피커에 내 귀가 적응해서였을까?
책자를 살펴보고서야 오늘 연주할(한) 곡이 스메타나(Bedrich Smetana)의 "나의 조국"(Ma Vlast)란 걸 알았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 변법자강 운동의 물결 속에서 만들어진 초상국이 초청한 것이니,
분위기는 대충 맞아떨어질 법하다.

 

사진촬영은 당연히 금지이지만,
망설이던 끝에 퇴장하기 직전에 한컷.
망설이던 끝에 지휘자의 모습을 담지 못한 게 후회.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동방예술중심의 콘서트홀의 시설이나 좌석배치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끝나고 나오면서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지휘자의 이름과 얼굴을 살펴본다.

즈데넥 마칼(Zdenek Macal)!
체코필의 수석 지휘자.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보니, 노다메에 비에라 역으로 나왔던 그 지휘자가 맞다.

 



THE CZECH PHILHARMONIC ORCHESTRA TOUR CONCERTS

연말과 신년에 계획된 연주회는 다 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암스테르담 교향악단 정도는 가보고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집에서 내 스피커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직은 그 정도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7/12/12 01:21 | 바라보기 |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