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8. 12. 29. 06:19
저녁을 먹으면서, 뒤늦게 돌려받은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를 펼쳤다가 "벽"에 관한 몇 문단을 읽다.
갑자기 나에게 The Wall: Live in Berlin이 있다는 게 생각나 컴퓨터에 넣어본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 다른 걸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너무 간만이기도 했지만 지독히도 매력적이라 도저히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능..
덕분에 작업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렸다.(조금 예상 못했던 일이다.)
TheWallLiveInBerlin.jpg

이미지출처 : metalprogshrine.blogspot.com


올해는 크리스마스도 연말 기분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아주 조금 울적해지려해 <러브 액츄얼리>를 틀어본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한번쯤 다시봐야 하는 영화니까. (작업시간을 '헛되이' 보낼 게 너무나 뻔해 이번 시즌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그냥 틀어놓고 화면은 절대 안 보고 음악만 들을 생각이었다아아... )

Loveactually_P1.gif

이미지출처 : www.cinecine.co.kr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다가, 한 화면에 다양한, 수천의 얼굴'들'이 모자이크로 쪼개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펼쳐보이지만, 그것은 수천의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따뜻한 사랑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것들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집중하면 대충 시간당 한편 정도의 작업을 할 수 있는지라, 내일 모임을 위해 평소 두배 정도 되는 작업량을 완수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었으나, 지금 이 시간까지 한편도 끝내지 못했다능..
그러면서도 '내일 빈손으로 간다고 뭐, 별일 있겠어?'라는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작업을 위한 최소한의 긴장도 무장해제시켜 버린 채 나는 그 편안함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2006년에 시작한 일들, 07년에 끝냈어야 하는 일들, 그리고 올해 안으로 끝내야 하는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원래 뭔가를 계획한대로 움직이거나,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인간은 아닌지라,. 또 그런 것들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버린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점을 믿어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하나씩 고쳐갔어야 했다. 굳은 의지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맑은 정신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상의 온갖 매력적인 것의 단점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눈앞의 아이스크림과 초콜렛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이제 아무도 내 눈앞의 초콜렛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매력을 빨아들이기만 하고 전혀 발산하지 않는다면 그저 까만 점으로만 나는 기억될 것이다.
나는 전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치명적인 매력에 너무 취약하다.

술도 안 취했는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후후. 지각 메리 크리스마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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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