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오늘은 태풍 때문인지 하루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잠깐잠깐 비가 그칠 때 보니 비와 바람에 씻겨나가 상해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흐린 날이라 어차피 가시거리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나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 아래 거리 풍경이, 반짝인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색감이 좋았다.
회색도 그런 색을 낼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

푸동쪽에 약속이 있어 폭우가 쏟아짐에도 외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물살을 가르는 택시를 보면서 처음으로 상해의 도로에는 배수구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시내쪽 도로들은 어떤지 생각이 잘 안 난다만,) 적어도 고가도로를 포함하여 푸동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서 배수구는 발견할 수 없었다. 확인삼아 택시기사에게 "도로에 왜 배수구가 안 보이니?" 했더니, "그런 거 원래 없어!" 그러더구먼.
그러니까, 오르막길인 고가도로에서,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기로서니, 도로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택시 창밖으로 고가 쪽을 찍어봤다.
물이 많이 튈 때를 제대로 못 잡았는데, 이렇게 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래로 물이 엄청나게 튄다.

따라서 고가가 끝나는 아래쪽 도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저렇게 물이 차여 버린다.
배수구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 게 아니라 배수구가 아예 없는 것이다.(물론 배수구가 있었어도 워낙에 집중호우였기 때문에 물은 좀 차였겠지만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좀 많이 흔들렸는데, 저렇게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야 한다.
양포대교를 오르막길로 오르고 있는데도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야 했다.
자꾸 흔들려 정말로 센 물살은 찍지 못해 사진만 봐서는 잘 실감이 안 나게 되어 버렸다.
암튼 시내 쪽이나 인도가 있는 도로에서는 배수로가 어떤지 한번 주의깊게 살펴봐야겠다. 적어도 내가 본 문헌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이미 상해의 도로는 서구식으로 넓고 평탄하게 닦은 후 도로 양 옆에 인도와 배수구를 설치하고 있었다. 상해같이 비가 많은 도시에서 도로에 배수구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건, 그게 아무리 고가도로나 인도가 주위에 없는 도로라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데 우리나라도 그런가?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6/28 05:11 | 石庫門 |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