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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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4.17 100년 전에도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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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1.31 휴식 10
  5. 2010.01.28 색감 테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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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0.01.22 p.m. 05:23 6
  8. 2010.01.22 퇴근시간
  9. 2010.01.20 중국, 야만의 풍경 6
  10. 2010.01.18 상하이에서 본 아바타 4
示衆/flaneur, p.m. 4:30 2010. 4. 17. 19:53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부정확한 정보일 수도 있는 글에서 읽은 "색"에 관한 정의를 떠올려 본다. 내 식으로 정리해 보면 색이란 '그것이 아닌 것'이다. 모든 사물은 태양빛이 전해오는 색의 스펙트럼 중 대부분을 흡수하고 그 중 일부만 반사시키는데, 그렇게 흡수하지 않고 반사시킨 색깔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단풍도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장이 필요하지 않은 나무가 엽록소 즉 녹색을 흡수해 버려서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빨간 단풍을 보고, 빨강이 아닌 모든 색으로 그것을 정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러난 것을 통해 감추어진 것들을 항상 떠올리는 건 너무 구차하다. 저기 봐, 노랑 아닌 모든 색깔인 개나리가 얼마나 이쁘니? 저기엔 분홍 아닌 모든 빛깔의 벚꽃도 피어 있네? ^^;;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편의상 그것이 아닌 것으로 그를 부르기로 하자. 이름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의 언어는 방편으로 꽤나 훌륭하니까.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 검정색, 모든 것을 반사시켜 버리는 하얀색,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가지가지 색깔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현(玄)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이 트기 직전, 완전히 컴컴하지도 않고, 채 푸릇푸릇하지도 않을 때의 하늘색,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투명하기까지 한 어둠을 옛 사람들은 태고의 빛, 원래의 하늘 색깔로 믿었다. 물론 나는 그 색깔을 살아오면서 몇 번 보지 못했다. 뭐, 매일 봐야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항상 되새기는 방법은 있다. 가끔 쓰는 怡玄이란 이름은 그래서 나오게 된다. 물론 이현이란 '이름'이 표방하듯 나에겐 깊은 투명함이 없다.


머리색이 아직 검을 때는 앞이 보이 않는다고 투덜되지 말 것. 가능하면 모든 것을,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온양醖釀시킬 것. 머리가 희끗해질 때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색깔을 슬쩍 드러낼 것. 어느 날인가 내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때, 내 몸이 좁다는 듯이 그것들이 터져나가 나를 텅 빈 공간으로 남겨버리는 폭발이 일어나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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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카테고리 없음 2010. 4. 17. 02:20
내가 아직도 가끔 기억나는 공간은 대학도서관의 잡지실이다. 고시원 비슷하게 되어버린 도서관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다가 피곤하거나, 가끔 열람실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되면 잡지실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대학 4학년. 가끔 잡지를 펼쳐 봤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따위의 고상한 것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대기업 사보 같은,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유치한, 아니 잡스러운 인쇄물을 들춰보곤 했다. 잡지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 대학 때는 책을 지지리도 안 읽었는데, 그런 잡지를 보며 이런 세계도 있구나, 다른 동네 대학생들은 이런 일도 하면서 노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대학 4학년, 동안 나는 뭘 했나 싶기도 했다. 내가 있는 좁은 세계 바깥을 상상해 보지도 상상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다.

2002년이 지났는데 2002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보여준 미래는 오지 않았고, 2007년이 지났는데 미래소년 코난도 없다. 2012년을 맞아 티벳의 어느 산꼭대기에선 과연 현대판 방주를 준비하고 있을까?

아이폰 가지고 놀고, 트위터로 순간순간 소식을 주고받고, 중국애들도 달나라 다녀오고.. 등등.. 우리가 100년 전의 인간들보다 조금은 진화된 것 같은 우월감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조금씩 할 것 같다. 적어도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겠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감탄시키는 맑스, 니체 같은 새끼들은 "소수의 천재"라고 예외적인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특정 전공이 아니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이름 없는 사람들이 당시의 잡지에 쓴 글을 보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정치판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인지.. 작업을 위해서 간단간단하게 정리를 하다가 가끔 100년 전 잡지를 보고 있는지, 21세기의 인터넷 신문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물론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좀 무식해서이다.


吳貫因, <論今日欲整理財政宜採用社會政策>(재정을 정돈하려면 사회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의 재정을 근본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재정을 정리함에 있어 급선무는 수입의 증가에 있다. 그러나 제도가 정비되지 않고 국민경제가 빈궁하여 세수를 증가시키기 쉽지 않다. 필자는 재정 제도에 사회정책을 도입하면 국고의 수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세기 들어 사회문제가 정치상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사회정책을 펼침으로써 재정상의 곤란도 해소하고 사회의 환부를 제거하여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사회정책의 의미는 빈부의 격차를 조정하는 것이며, 부자에게 많이 걷고 빈민에게 조금 걷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1. 국가 경비의 팽창: 고대에 비해 늘어난 경비에 비해 빈민의 납세능력은 제자리. 부자에게 가산세를 걷어야 政費의 필요에 따라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2. 평민정치의 발흥: 특권 없이 평등하게 납세의 의무.
3. 재정학의 발달: 사대부는 재정을 홀시하였고 부자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良法으로 오인했다. 재정학의 발달에 따라 조세 징수에 있어 부담의 보편성(普及)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지를 가진 일부계급에게만 세금을 징수하고 (오히려 부와 권력을 쥔 사대부는 세금을 내지 않는) 일조편법보다는 모든 계급의 사람에게 세금을 분배하게 하고, 부자에게는 가산세를 부과하면 재정의 기초가 공고해질 것이다.
4. 산업혁명의 영향: 일부 대자본가의 출현으로 극심한 빈부의 계급차가 벌어졌으며, 이는 사회혁명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천하의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게 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조세를 통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상 네 가지 이유를 종합컨데, 재정제도와 사회정책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庸言, 1권19호, 1913/09/01

劉馥, <變鹽法議>(염법의 개혁에 대하여)
조세의 원칙 중 부담보편의 원칙에 의해 누구나 먹는 소금에 세금을 징수하면 국가재정에 이익이 된다. 그러나 공평부담의 원칙에 의거하자면, 빈민계급의 부담이 부유한 계층에 비해 과다하게 되어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원칙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염세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이론이 펼쳐진다. 염법의 이해득실을 사회, 경제, 재정 각 방면에서 관찰해본 결과 염세를 절대로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마땅히 연구해야 할 후속과제는 염세의 부과방법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庸言, 1권19호, 1913/09/01

간단하게 개요만 정리하고 넘어가는 식이어서 소략하다. 구체적인 논리를 따라가면 상당히 재미난데, 전문을 번역하려면 따져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들다. 당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이 글을 쓴 사람의 문체, 문법적인 규칙들이며 사용되는 단어나 개념이 당시 중국에서 어떻게 쓰였고, 원래 유럽에서의 개념어는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통용되는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개략적인 내용을 옮겨두는 것으로도 벅차다.

예를 들면, 작은 정부를 주장하던 긴축재정주의자들의 논의를 살피다가,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봉급을 좀 세게 책정한 아래 글 같은 경우. 엄청 세게 책정했다는 금액이 5천원인지 6천원인지가 모호했다. 처음에 얼마로 정했다가 반대여론에 부딛혀 유야무야 하다가 좀 조정하다가 눈 가리고 아웅하다가 결국 얼마로 정해서 의결하고 정부비준 받았다.(암튼 언제 어디서든 자기 봉급 문제에 국회의원들은 가장 쉽게 의견일치를 보는 모냥이다.) 당시 공무원 과장 월급이 30-40원 정도, 당시 세계최고 연봉이라는 미국 의원 연봉이 2만6천원. 그렇지만 1:7 정도의 물가수준을 고려하면 미국보다 월등하게 많은 금액.

개요의 작성이야 정확한 액수보다 문맥의 흐름을 강조하면 되지만, 글쓴이의 모호한 문맥처리, 당시 진행되고 있던 사건이라 글쓴이도 정확하게 몰랐을 가능성 등이 있어 자료를 찾아봤다가 시간만 허비했다. 중국기간망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국내대학의 접근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배의 아이디는 비번을 바꿨는지 접속이 안 되고(또 오늘따라 왠지 학교 도서관 사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와이프 도서관의 아이디도 이번 학기는 사용할 수 없다. 예전에 충전해둔 금액이 조금 남아서 어찌어찌 다운은 받았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없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시간을 허비한 셈.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할 수도 있다능..)

陳詵, <吾之減政主義>(나의 긴축재정주의)

긴축재정 정책(減政主義)을 모두가 찬성하고 있다. 국가파산 사태를 맞을 수도 있는 시기이므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면적인 긴축재정을 펼쳐서는 안 되며, 크고 장기적인 것을 우선해야지 작고 단기적인 것은 미뤄도 된다.
1. 국회: 긴축재정을 논의하는 형국에 의원들은 고액의 세비를 의결하였고 정부도 그것을 공표하였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견제해야 한다. 세금의 증가를 제의할 권한이 없는 의원들이 세금의 일부인 자신의 봉급을 의결한 것은 월권이고, 정부가 거부하지 않고 통과시킨 것은 실책이다. 850여 명의 의원 세비 5천원만 해도 5백만 원인데, 여비, 출석비 등 기타 항목까지 더하면 약 천만원이 지출된다.兩院을 하나로 통일하고(倂院), 의원 수를 줄이며(裁額), 의원의 봉급을 줄여야(減薪) 할 것이다.
2. 총통부: 총통부의 경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역산해 보면 수백만 원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이 33만원에 불과한 걸 고려하면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3. 군대: 18세기 이후 각국의 군비팽창주의으로 국가의 재정에 많은 영향을 미쳐 국민의 부담은 늘고 전세계의 학술과 공예가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무기 제조에 집중되었다. 중국 또한 전국의 군대가 10배로 늘고 군사비가 세금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국민을 보호하기보다는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마땅히 군대를 축소하고 민병제도를 채용해야 한다.
행정권을 감독해야 할 입법부 최상위기관인 국회가 사욕만 채우고 있으니 가장 먼저 축소되어야 한다. 총통부는 국무원 이하 지방에 이르기까지 고문, 상담 등 직무 없이 봉급을 받는 관리를 감원하고 경비를 공개해야 한다. 세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사비용을 축소하여 국민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庸言, 1권20호, 1913/09/16

100년 전 중국에서 이야기되던 것들이다. 배경지식이 없음에도 매우 익숙하다.

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4. 15. 08:32
4월14일. 며칠째 흐리고 비가 내리다, 급기야 우박이 우두둑 쏟아졌다.
내륙에서 또 지진 소식이 들렸다. 땅과 하늘은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야 정리가 끝난 새로 이사한 집에서 새벽에 남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바라본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다.


비교적 깨끗한 단지 사이에 낀 낡은 저층이라 옆집 컴퓨터 켜지는 소리, 앞집 핸드폰 벨 소리, 새벽에 옆집 노인네들이 일어나 뭔가 이야기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음악 틀어놓을 생각은 포기. 대신 바깥에서 화물차의 진동이 아닌 새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신기한 것은 이렇게 방음이 안 되는 공간인데 보름 넘게 살면서 시끄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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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1. 31. 21:21

잠깐 쉽니다. 한국에서 오신 동료들과 샤먼으로 떠납니다.
샤먼의 옛 흔적들을 더듬으며, 많이 비워두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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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1. 28. 00:00
http://www.xrite.com/custom_page.aspx?PageID=77

색감 테스트라는 게 있어서 한번 해 봤다. 결과는..
얼마나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최고점인 0점 맞는 사람도 많나 보네?


틀리는 색에서 계속 틀리는 것 같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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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1. 24. 19:01
내가 사는 지우팅은 상하이의 일부이면서 변두리 읍내 분위기가 난다. 한편 정겹기도 하고 한편으론 혼란스럽고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필름으로도 가끔 사진을 찍는데, 연습삼아 하는 거라서 비싼 필름은 못 쓰고 유통기한이 지난 거나 싸구려로 유통되는 것을 쓰고 있다. (지난 번에 산 코닥 프로이미지는 "아프리카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문구가 박혀 있었으며, 1000원 이하. ^^) 그래서인지 실력이 안 좋아서인지 화질이 별루다.

내 실력이 별루인 것과 별도로 지우팅 사진관의 서비스도 별로였다. 현상 후 스캔해 달라고 했는데, 맡길 때는 별말 없더니 스캔은 자기들이 못한다며 현상한 필름만 줬다. 집에 가져와 보니, 한 통은 다른 사람 것과 바꿔치기되어 있고, 또 한통은 구겨지고 찢어져 있다. 다시 가서 따졌더니 구겨져도 인화는 잘 된다며 스캔을 떠 줬다. (원래 자체현상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맡겼던 모양인데,. 그렇담 처음부터 그쪽 업체에 "스캔"을 해달라고 말했으면 되잖아?) 암튼. 문제 없기는 개뿔.

(좌: 지금 사는 단지의 농구장. 우: 옛날 살던 단지의 집앞 벤치)

예전 살던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 신년에 후배가 떡국 해준다고 해서 오랫만에 "옛집"을 찾았다.
제일 뒷쪽 건물에 후배'들'이 살고, 그 앞 동에 내가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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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1. 22. 00:59

자전거를 세워두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복도 너머로 건너편이 눈에 들어왔다.
낮의 빛이 사라져가고 밤의 빛은 아직 나오기 전이다.
잠깐 바라보다 그냥 10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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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10. 1. 22. 00:14

또다시. 요금고지서도 보내주지 않고 전화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독촉전화가 왔다. 전화는 상관없지만 어그적거리다간 또 인터넷이 끊어질 지도 모르기 때문에 오후에 전신국에 요금을 내러 갔다. 서두른다고 했지만 뭉기적거리다가 전신국 문이 닫혀 요금은 내지 못했다. 오후 4시30분에 문을 닫다니.

나온 김에 자전거로 시내 외곽으로 나가 본다. 지우팅(九亭)은 시내라고 해봐야 읍내 수준이기 때문에 번화가에서 살짝만 나가도 별장촌, 공장지대, 옛 강남의 집들, 뒷골목, 시골의 풍경 등등을 모두 볼 수 있다. 진작에 곳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좀 찍어두고 싶었는데, 한동안은 사진기를 챙기지 않고 자전거로 운동삼아 이곳저곳 다녀보기만 했다.

큰길 너머에는 제법 큰 운하가 있는데, 장식용 비슷하게 된 다른 운하와는 다르게 여전히 배들이 제법 다닌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여기도 교통정리가 필요할 정도였다. 자동차 운행이 금지된 낡은 콘크리트 다리 위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예전에 상하이에 대해 쓰면서, 운하를 메우고 그 위에 생겨난 잘 구획된 도로를 이 도시의 근대적 변환의 한 상징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강남 지역의 옛 지도를 보면 육상도로 표시는 거의 없고 구불구불 운하만 커다랗게 그려 놓았다.(실제로 도로가 없었던 게 아니다. 지도는 이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만 표시할 뿐.) 성곽 안으로도 운하가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상으로 나 있는 성문 옆에는 선박운행을 통제하는 갑문이 따로 있었다. 구불구불 당나귀의 길은 사라졌고, 곧게 뻗은 인간(=기계)의 길로의 구획은 성공하여 우리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최단거리를 질주해야 한다. (그것을 아주 잘했다고 어스대던 어떤 인간이 운하를 다시 인간의 길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빛이 사라져가는 5시 어름이었다. 적당히 가려질 건 가려지는 시간이다. 이곳의 배들은 왜 항상 모래를 주로 실어 나르는지 모르겠다. 강아지 한 마리가 모래밭에서 뛰어놀고 있다. 제 몸에 비해 넓은 놀이터지만 어떤 당혹감 같은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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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10. 1. 20. 03:13
저녁을 먹었음에도 출출해져 잠시 고민하다 운동삼아 자전거로 조금 멀리 밤참을 먹으러 가기로 결심.
택시로 15-20분(기다리고, 길이 막히는 등), mtb로 25분 거리인데 조금 불편해도 아무렇게나 세워둘 수 있는 일반자전거를 타고 갔다. 어차피 운동 삼아 갈 생각이었으니 조금 힘들어도 달려볼 생각이었다. 사오십 분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는 30분. 이거 뭐, 비까번쩍 mtb랑 별 차이도 안 나는구먼. 밤이라서 도로가 한적했기 때문일 터.

나설 때부터 공기가 무거운 게 비가 올 것 같던만 역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맛있게 설렁탕 한 그릇 먹고 나오는데 자전거가 살폿이 젖어 있었다. 우비를 사 입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되돌아왔다. 촉촉한 아스팔트 길.

사거리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이, 구경꾼이 몰려 있으면 그건 사고가 났다는 뜻이다.

나는 다행인지 어쩐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고를 당한 적도 없었고, 사고현장을 목격한 적도 없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아슬했던 몇 번이 있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작은 사고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알고 있는 사고대처요령도 당황해서 머리가 하야지지 않을까 싶다.

전기자전거가 나뒹굴고 있고, 승용차 유리도 깨어져 있다. 아스팔트에 한 사람이 누워 있는데,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멈췄다. 손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이고, 비가 오고 있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경찰이고 구경꾼이고 아무도 그를 일으키거나 구급차로 옮기지 않는다. 그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데 말이다.

경찰은 느긋하게 사고경위를 따지며 사고차량과 피해지점을 오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저기 누워 있는 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 말고 뭐가 더 중요한 게 있단 말인가.. 현장을 보존하고 책임소재 따지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사고 후 그 몇 분 때문에 사람 목숨이 오가는데,.

상해시 도로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몇 가지 규정(上海市道路交通事故处理若干规定)

제11조 (교통사고 책임의 추정)
교통사고 당사자가 위치를 표시하지 않고 교통사고 현장의 차량이나 물품을 이동시켜 교통사고의 책임을 확정할 수 없을 경우 교통사고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第十一条 (交通事故责任的推定)
     交通事故当事人未标明位置而移动交通事故现场的车辆或者物品,致使交通事故责任无法认定的,应当负交通事故全部责任。

중국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공안에게 신고하고 공안(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구급차가 먼저 오는 경우에도 공안이 오지 않으면 이동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전에도 레미콘 차량이 승용차를 덥쳐 아버지는 즉사하고 다리가 절단된 아들은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고 한다. 퇴근시간이라 경찰이 도착하는 데 2시간이 걸린 것. 살지 못했다. 작년에 교회에서 귀가하던 한국인 아주머니들도 이런 규정 때문에 한 분도 못 살았다.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수혈이라도 했다면 한둘은 살릴 수 있는 경우였는데 말이다.

찾아본 교통사고 관련 규정에는 책임규명과 현장보존, 보상에 관한 사항들만 있을 뿐이다. 법규와 돈은 있는데 사람이 빠져 있다.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

우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일 그 자리에 누워 있을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사람 목숨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이들의 태도에 "야만"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살만해져 2020년에는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어 있어도 당신들이 그렇게 바라는 세계 최고가 될 리는 없다는 점,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당신들의 방식에 사람은 빠져 있고 효율만 있다는 것, 땅밑에서 신음이 들리는데 그냥 말 그대로 덮어버리는 식으로 지진현장을 효율적으로 처리한 당신들, 탱크로 천안문의 시민들을 밟아버리는 식으로 생각을 막아버렸던 당신들. 그것을 실행하는 게 사악한 그들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모두의 동의에 의해서라는 것.

한국과 중국은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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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1월4일, 뒤늦게 중국에서 개봉한 아바타.

  • 상하이 유일의 아이맥스 개봉관, 허핑 영화관
일반 상업상영을 하지 않는 상해과기관을 제외하면 유일한 아이맥스 상영관이 와이탄(인민공원 앞)의 허핑 영화관이었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에 비해 아아~~주 열악한 상황. 중국 내에서도 거의 중소도시급. 베이징이나 광저우에 비해 한참 부족. 다른 건 제법 갖춰졌으면서 아이맥스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 개봉 심야표 예매하기
1월 3일 밤12시에 개봉하는 아바타를 보기 위해 오후 5시에 극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4일표까지 매진, 5일 오전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기다렸다 "오늘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아이맥스 표값 120원(2만원 상당)을 내고 표를 받았다. 그런데 티켓에는 100원이 적혀 있었다. 매표원에게 다시 가서 따졌더니 두 말 않고 20원을 돌려주었다.

11시50분에 극장에 가보니, 아이맥스 입구는 2층, 내 표는 5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제서야 들뜬 마음에 질문을 잘못한 걸 깨닫는다. "오늘밤 아이맥스 3D 아바타 표 있어요?"라고 정확하게 물었어야 했다. 이들의 서비스는 주어진 질문에만 답할 뿐, 더 이상의 정보 혹은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니까. 뿐만 아니라 돈을 더 주면 팁으로 여겨 버린다.

10분 정도 망설이다 (어쩔 수 없잖아?) 결국 아이맥스가 아닌 일반3D로 관람. 자리는 좋았지만 화면이 눈에 차지 않아 약간 아쉬웠다능..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허핑에서는 imax 3D는 필름으로, 일반3D는 디지털 상영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간 늦게 개봉한 탓인지, 첫날 심야에는 서양인이 많았다.

  • 중국의 영화 표값
일반상영관 표도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헐리우드 대작은 보통 70-80원(13,000원), 아바타의 경우 3D는 100원 기준, 아이맥스3디는 120원 기준으로 최고 150원(25,000원)까지 했다. 한국보다 비싼 편이다.

  • 자막
영어를 들으면서 중국어 자막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상당히 고역이다. 나의 미천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할 때는 영어 자막이 있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 이해에는 편했다. 귀와 눈이 다른 외국어에 노출되는 건 매순간 이중번역 상황에 몰리는 느낌이다. 음성으로 줄거리를 이해하면서 눈으론 시각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막도 시각언어의 일부가 되어버리는지라(?).. 사실 자막으로 영화 보는 게 (익숙해져서 그렇지) 권장할 건 아니다. 자막 보며 줄거리 따라가기 바빠 영상의 구체적인 세부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영화와 책을 분간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자막 때문인지 모른다. ^^) 그런데 영어 음성+ 중국어 자막의 경우, 훨씬 많이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아바타는 서사가 복잡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말로 전달된 힌트 중에는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

  • 중국내 개봉일 입장수입 기록을 깨며 연일 매진
중국에서도 아이맥스와 3D는 연일 매진이다. 상해의 경우 유일하게 아이맥스로 상영하는 허핑 영화관에 영화관 탄생 이후 가장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어떤 관중은 12시간 넘게 줄을 섰다고 하고, 어떤 엄마는 아들과 여자친구를 위해 밤을 새워 아이맥스 표를 구해 주기도 했단다. 다른 지역에선 아바타 줄을 보고 어떤 농민공이 고향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엄마, 올해는 고향 돌아가기 글렀데이. 아직 설이 한달 넘게 남았는데 벌써 줄이 이렇게 기네?" 기차표 예매하는 줄로 오해했던 것. ^^

예매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약간 철지난 인기의 상징들이 동원되는데. 그러나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 22일 전에 2D 아바타는 극장에서 내려지게 될 것 같다. 곧 개봉할 <공자>(주윤발 주연)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서란다. 까라면 까야지. 3D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이 때문에 괜시리 공자에게 반감만 생기는 건 아닐까 몰러?

그러나 중국정부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테고, 아마도 "아바타는 반드시 imax 3D로 봐야 해!!!"라는 신념을 가진 분이 당국에 있는 게 아닐까?

  • 중국인, 아바타를 바라보는 방식[각주:1]
나비족의 관습이나 행동양식 등 많은 부분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을 차용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티벳을 연상하기도 한다. 공간을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바꾸면 확실히 그렇게 볼 여지가 많다. 또는 최강 철거민과 막강 재개발업자의 충돌로 묘사하기도 한다. 중국 곳곳에서 철거가 일상화되다 보니 그게 가장 와닿았을 듯하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철거를 막은 사건을 "현실판 아바타"라고 하기까지.

"아바타는 현대가 원시만도 못하다는 것, 철거민이 재개발업체를 이기는 이야기. 쥬라기공원+킹콩+지옥의묵시록+캣+3D애니+LED판촉광고로 눈돌아가는 무료한 영화!"(아이웨이웨이 트윗)

어떤 북방인은 영화가 끝난 뒤 이렇게 외쳤다고. "니기미, 내 다시는 중국영화 보나 봐라!!"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니까 아바타가 상영금지 당하는 거라구.. 쯧쯧!)

  • 반면 꼭 보면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사소한 트집을 잡는 애들이 있다.
영혼의 나무를 공격하던 전투기에 새겨진 용이 "중국용(龍)"이라는 것에 주목한 중국아해들, "서양용"은 날개가 있는데 날개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확실히 "중국용"이며, 제작사에 그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다고 카메룬이 그 장면을 삭제해 주겠니?) 

첫째
, 서양용의 반대가 왜 중국용이니? 동아시아 문화에 속하는 모든 것을 "중국"으로 환원시키고, 제각각 독특한 신화와 문화를 지닌 서방세계를 하나의 "서양"으로 환원시키는 중국 일반인들의 보통 생각이 여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이들의 일반적인 용법이 "동서"가 아닌 "중서"문명이다.) 중국 땅에서 그 옛날 일어났던 기원으로서의 문화가 모두 현재 중국인의 것이라면, 마찬가지 논리로 그것은 "서양용"이 아니라 북구의 어느 나라 드래곤일 것이며, 또한 다른 대부분의 문화는 서양의 것이 아닌 그리스, 로마의 것으로 해야 할 것이다. 중국(한문화)이란 코드는 로마와만 맞짱을 떠야 하는 것 아니냐능.
둘째
,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 보자면) 영화에 공격형 인간 쪽을 미국 백인으로 배치했지만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야'라는 말을 감독이 하고 싶어서 용을 활용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 요즘 하는 꼴을 보면 말이지.쯧쯧. (이렇게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중국인이 있기를 바랬다.)

물론 나는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폭력배의 문신 같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감독이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쳤을 장면이다. 용 문양만으로 그런 의도를 주장하기엔 근거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소한 문신 따위가 아니라 내용을 따져보면 '중국 니네도 마찬가지야'라는 이야기를 한 셈이긴 하다. 제국:식민, 자본가:노동자, 남:여, 인간:생태계 등등등에서 각각이 처한 위치에 따라 영화의 지극 단순한 스토리는 반성적으로 읽을 만한 부분이 많다. 아마도 가장 무심한 관람자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는 영화에 왜 우리가 동참해야 하냐?"라는 투의 태도! 너는 아닌 것 같니?


아바타를 보며 내가 떠올린 생각은 정리가 안 된다. 워낙 훌륭한 평이 많으니 나는 패스~~해도 되겠지?

판도라의 세계는 한때 신념의 문제였던 자연과 인간의 합일, 혹은 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사실의 차원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이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최근에야 가능해진 전지구적 네트워크, 인터넷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지금껏 이렇게까지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자기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지구와 비슷한 별에서 만물이 전기 비슷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 허무맹랑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인디언이나 티벳인들이 그런 말을 하면 뭔가 신비로우면서도 미신 같다(고 현대인들은 생각해 왔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

다른 생명체에 의식을 주입할 정도로 과학이 발달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미래의 인간은 현재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금속성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의식을 전이시킬 때의 장치 또한 굉장히 구태의연하다. 현재의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계문명과 정신문명를 대비하는 장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왜 나비족들은 동족들끼리는 접속하지 않을까? 말을 탈 때,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접속하여 일체가 된다. 반짝반짝 식물들에게 접속하여 정보를 교환한다. 다른 나비와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면 좋지 아니한가? 적어도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섹스 장면에서라도 인간적인 행위인 키스나 섹스가 아니라 다른 교접방식이 보여지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 상대에게 나를 허락한다는 징표로서의 접속. 새로운 방식의 '행위로서의 교감'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1. 중국의 영화평이나 인터넷 감상을 전부 뒤져본 것이 아니라 어쩌다 내 눈에 포착된 제한된 단상들일 뿐, 중국인 일반의 아바타 관람방식은 아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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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