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12. 5. 17:34
최근에 느낀 건데, 계속 배가 고프다.
자주 가는 식당 음식이 물리기도 하고, 반찬을 네 종류에서 세 종류로 줄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이유를 찾았는데,
문득 해마다 이맘때 즈음해서 반복적으로 배가 헛헛했단 걸 깨달았다.
먹어도 살로 가지 않는 유전적 특징 때문에 내 몸에 지방이 많이 부족한데, 그래서 갈수록 겨울이 고달프다.
추위가 바로 뼈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아마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이 지방 성분을 원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여름 무더위에 맥없이 늘어지는 헛헛함과 분명 다르다!

마른 몸매를 생각할 때 동면을 취하기 직전 독오른 뱀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쥐나 개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잔머리는 조금 굴려도 영악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동면을 취하는 날씬한 동물 중에 적당한 놈을 하나 골라 토템으로 삼아야겠다.
그때까지만 우선 곰.

그렇다고 쑥과 마늘로만 버틸 순 없고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식을 준비해 본다: 고구마, 감자, 계란.

집앞 슈퍼에서 고구마를 사서 한번에 여러 개 삶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먹었다.
근데 왜 난 중국에는 밤고구마를 못 먹어봤을까.
얼마 전 달성보 기공식이 열린 달성군 논공면에서 한 일이십 리를 돌아서 내려가면 나오는 우리 동네 강변은
땅이 좋아
심었다 하면 뭐든 잘 자라고 맛있었다.
물론 고구마도 밤고구마!
잦은 홍수 피해로 정부에서 땅을 매입한 뒤 놀려두면서 경작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홍수를 빌미로 보다 큰 댐을 만들고 새로운 댐 바깥의 농지를 없애던 그 때 이미
그토록 원대한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던 셈.
난 그저 타박타박 맛있는 고구마를 먹고 싶을 뿐.
세상 좋다.
지도로 보면 왜 저 너른 땅을 두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귀퉁이에 터를 잡았을까 싶다.
그치만 저렇게 좁아 보여도 사오십 가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았던 셈.
지도 좌상단의  굽이치기 직전에 위치한 파란 점은 도동서원이고,
중앙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하얀 선은 중부내륙도로,
우측의 평야는 현풍면, 우측 상단의 공단지구가 논공면이다.
곧 우리 동네 앞으로 낙동운하가 흐를 예정이다.



최근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많아 중국전신에 다녀오는 길에 근처에 마트가 새로 생긴 걸 발견했다.
얼마 전에 깨뜨린 컵이며 잡다한 것들을 사고, 식품 코너에서 고구마와 감자, 계란을 골랐다.
고구마는 종류가(그래서 가격이) 다른 걸 섞었다고 다시 골라 오라길래 귀찮아서 두고 감자와 계란만 사왔다.
나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호박 고구마니 뭐니 하는 것들은 없었다구. 그저 밤고구마면 끝이지.
이사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진 소금도 사고.

헛헛한데 지방을 보충해야 하는데 하면서 결국은 이런 것들만 샀군.
어쨌든 지난 밤 삶은 감자의 맛은 정말 감동이었다. 하하.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한 곳에서 길 잃기  (0) 2009.12.27
리히터의 음악 수첩 중에서  (8) 2009.12.04
놀이터에서  (7) 2009.10.18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