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10. 4. 17. 19:53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부정확한 정보일 수도 있는 글에서 읽은 "색"에 관한 정의를 떠올려 본다. 내 식으로 정리해 보면 색이란 '그것이 아닌 것'이다. 모든 사물은 태양빛이 전해오는 색의 스펙트럼 중 대부분을 흡수하고 그 중 일부만 반사시키는데, 그렇게 흡수하지 않고 반사시킨 색깔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단풍도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장이 필요하지 않은 나무가 엽록소 즉 녹색을 흡수해 버려서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빨간 단풍을 보고, 빨강이 아닌 모든 색으로 그것을 정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러난 것을 통해 감추어진 것들을 항상 떠올리는 건 너무 구차하다. 저기 봐, 노랑 아닌 모든 색깔인 개나리가 얼마나 이쁘니? 저기엔 분홍 아닌 모든 빛깔의 벚꽃도 피어 있네? ^^;;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편의상 그것이 아닌 것으로 그를 부르기로 하자. 이름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의 언어는 방편으로 꽤나 훌륭하니까.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 검정색, 모든 것을 반사시켜 버리는 하얀색,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가지가지 색깔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현(玄)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이 트기 직전, 완전히 컴컴하지도 않고, 채 푸릇푸릇하지도 않을 때의 하늘색,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투명하기까지 한 어둠을 옛 사람들은 태고의 빛, 원래의 하늘 색깔로 믿었다. 물론 나는 그 색깔을 살아오면서 몇 번 보지 못했다. 뭐, 매일 봐야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항상 되새기는 방법은 있다. 가끔 쓰는 怡玄이란 이름은 그래서 나오게 된다. 물론 이현이란 '이름'이 표방하듯 나에겐 깊은 투명함이 없다.


머리색이 아직 검을 때는 앞이 보이 않는다고 투덜되지 말 것. 가능하면 모든 것을,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온양醖釀시킬 것. 머리가 희끗해질 때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색깔을 슬쩍 드러낼 것. 어느 날인가 내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때, 내 몸이 좁다는 듯이 그것들이 터져나가 나를 텅 빈 공간으로 남겨버리는 폭발이 일어나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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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