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대학원신문 198호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그쪽에서 알아서 "중국의 현실을 숯으로 지핀 뜨거운 생명력"으로 뽑아줬다. 원래 부탁받은 내용이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기에 노벨상 관련 논란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웹으로 보면 폰트가 뒤섞여 있어 보기 힘들다. 참고삼아 아래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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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편집에 들어있는 <소>는 모옌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상징들이 잘 드러나 있는 초기작이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꽤 괜찮은 작품으로 보인다.
맛깔나는 우리말로 옮겼지만, 읽으면서 헷갈리거나 내용전개상 반대되는 문맥으로 옮긴 듯한 것만 찾아서 고쳐봤다.
132쪽.
둥베이(东北) 저지대 웅덩이에서
东北洼里
"둥베이"라고만 하면 만주 지역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산둥성 가오미 동베이향, 즉 모옌 소설의 주배경이다. 혼동하지 않게 설명을 더해 주는 게 좋을 듯.
173쪽.
그럼 우리 뿔로 요놈의 자식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우리는 두 눈 멀뚤멀뚱 뜨고 요놈의 자식이 우리 소중한 불알을 공짜로 먹어치우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은 무슨 느낌이 없었나? 저 놈이 우리 불알을 먹어치울 때, 나는 내 불알 껍질이 칼로 쪼개냈을 때처럼 아팠네. 난 정말 답답해 죽겠네.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왜 그때는 불알 껍질에 고통을 느낄 수 없었을까?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 역시 아픔을 느꼈다네.
那咱就把这小杂种顶死算了,咱们不能白白地让这小杂种把咱们的蛋子吃了。大鲁西道:兄弟们,你们有没有感觉?当他吃我们的蛋子时,我的蛋子像被刀子割着似地痛。我真纳闷,明明地看到他们把我们的蛋子给摘走了,怎么还能感到蛋子痛呢?
双脊和小鲁西说:我们也感觉到痛。=======================================
그럼 우리 요놈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요놈의 자식이 소중한 우리 불알을 날로 먹게 할 순 없잖은가.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도 느꼈는가? 저놈이 우리 불알을 먹을 때 내 불알이 칼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팠다네. 난 정말 궁금한 게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봤는데, 어째서 계속 불알이 아프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거지?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도 아픔을 느꼈다네.
185쪽.
"싯누런 기름투성이 오르알 노른자가 내 밥그릇에 굴러들었을 때, 두씨 마나님은 딸 두우화에게 코를 찡긋하고 눈짓을 보냈을나, 두우화는 그저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 두우화가 못 본 척 무시해버릴수록, 나로서는 호의적인 눈빛을 보여줄 필요가 더욱 없었다. 나는 추호도 사양하는 기색 없이 싯누런 오리알 노른자를 한입에 삼켜버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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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화도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데, 내가 눈치 좋은 척 할 필요가 없었다.
196쪽.
"뤄한아, 우리네 걸음걸이가 별로 느린 셈은 아니다만, 이런 식으로 마냥 걷다가는 한밤중 열두시나 되어야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구경하러 갈 때는 겨우 이십 분이면 뛰어갔다니까요."
“罗汉,咱爷们儿走的还不算慢,按这个走法,半夜十二点时,也许就到兽医站了。”
我说:“还要怎么慢?我去公社看电影,20分钟就能跑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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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한아, 우리 걸음이 그런대로 느린 건 아니다. 이대로만 가면 밤 12시엔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보러 갈 땐 20분만에 뛰어 갔는데요."
197쪽.
우리 할아버지가 인민공사 서기 노릇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 -> 아버지. (그 아래 대화도 마찬가지)
204쪽.
홰나무에는'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란 별명을 가진 벌레가 자라는데,
杨树上生了那种名叫“吊死鬼”的虫,
吊死鬼는 '자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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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나무에는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라 불리는 자벌레가 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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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원작과 경쟁이 안 된다. 원작이 신이라면 번역은 제사장에 불과하다. 창조가 허용되지 않는 제사장에게 진리는 자기 것이
아니다. 신에게 오류가 있더라도 그건 창조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만약 제사장이 오류를 범하면 돌이 날아온다. 제사장의 역할은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는 군중을 위해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누군가 "신은 절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라고 의문을 품고 돌을 던지는 순간 제사장은 피투성이로 제단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대체되어 왔고, 대체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를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내세워 "신의 목소리"라 생각되는 것들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창조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1
신이 되어도 된다. 신인 척하는 것도 제사장에게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신과 경쟁하려는 순간 제사장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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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은 번역이 맛깔나서 한국책으로 읽는 맛이 있다. 강추.
그렇지만 중국 실정과 안 맞는/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번역도 좀 있다. 독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만 메모 삼아 몇 가지 정리해 둔다.
21~25쪽.
구직탄원서 : 각주에 报销单据에 대한 설명을 "공공업무에 사용한 비용을 사후 해당기관에 청구하는 증빙서류"라고 맞게 달아 두었다. 그런데 "문맥에 맞게" 구직탄원서로 번역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문맥에 맞지 않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공장장, 시장 찾아 가서 구직을 탄원하는 건 (안 될 거야 없지만) 좀 생뚱맞다. 공장에서 짤리지 않았다면 병원 비용을 직장에서 납부하게 되어 있다. 갑자기 짤렸는데, 짤리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서 "여러 해 저축해 둔 돈을 거의 전부 탕진"해 버렸으니 안 되는 줄 알면서 비용을 받아내려고 애쓰는 장면이다. 그 비용을 청구하기 위한 증명서가 报销单据이다. 따라서 각주의 설명을 살려 "비용청구서" / "(의료비) 공제서류" 정도로 옮겨주는 게 맞겠다.
27쪽:
적삼; 중국산 견직물 적삼 : 너무 사전적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중국산 견직물 적삼을 입는 게 너무 당연해서 그렇게 부르지 않을 거다. 게다가 배경이 현대인데 적삼이라고 하니 너무 고전적이다.. 纺绸衬衫. 비단 셔츠?
49쪽:
"강제 퇴직까지 겪으신 몸인데, 여기서 더 재미없는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손님 꼬시기가 낯부끄러워 자기 도제에게 상담하는 장면이다. 不好意思를 옮긴 "재미없는"은 "창피할", "욕볼", "낯뜨거울" 등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강제 퇴직당한 양반이 뭘 그래 체면 따지고 그러십니까?"
49쪽:
"사부님, 제 말씀이 듣기 거북하시면 아직 배가 덜 고프셔서 그런 겁니다. 언젠가 굶주릴 때가 되면, 체면과 배고픔을 비교했을 때 뱃속부터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깨달으실 겁니다."
"사부, 제가 싫은 소리 몇 마디 할께요. 사부는 아직 견딜만 하신가 봅니다. 언제고 배를 곯아 보면 얼굴이랑 배 중에 배가 더 중요하단 걸 아실 겁니다."
83쪽:
'중화'표 고급 시가 두 대 : '중화' 담배 두 보루.
条는 가늘고 긴 물건을 세는 양사이다. 그래서 그냥 시가라고 옮긴 듯하다. (아마 담배를 안 태우시는 분인 듯). 보루가 条이다. 한 개피는 根. 최근엔 달라졌지만 '중화'는 고급담배의 대명사였다. 예전에 한국담배 2000원 겨우 할까말까할 때 한 갑에 40원(당시 환율로 4000원) 했다. 돈 많은 놈들은 그냥 피기도 했겠지만 주로 선물로 많이 돌렸다. 요즘에야 한 보루 5600위안(택스 포함 100만원 ^^) 하는 담배까지 생겼으니 상전벽해.
나라면 "도제"는 "부사수"로 옮겼을 것 같다.
"사부"는 사부님부터 아저씨까지 걸쳐 있는데, 도제가 부르는 호칭이니까 사부가 맞긴 하겠다.
"유머러스"는 제목으로는 나쁘지 않아도, 문장에서는 느낌이 좀 안 산다. 흔히 "웃기는 양반이네" 라고 말할 때의 어감이라고 할까?
살리기가 쉽지 않다..
모옌 "소" 번역 메모 (0) | 2012.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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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꺼의 미조구치 유조 선생 추도사 (0) | 2010.09.27 |
이사, e-book 그리고 수달의 제사 (0) | 2010.07.24 |
새로운 애플 제품이 발표되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30년이 지나면 어떤 느낌으로 이런 풍경을 기억할까?
아래는 문혁 이후 해금된 책에 대한 위화의 추억이다.
발자크가 거의 "아이패드"와 동급이다.
독서에 관한 네번째 이야기는 1977년에 시작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독초로 간주되던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톨스토이와 발자크, 디킨스 등의 문학작품이 처음으로 우리 작은 마을의 서점에 도착했다. 그때의 뜨거웠던 반응은 오늘날 연예계 스타들이 가난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것과 맞먹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고, 목을 빼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우리 마을에 도착하는 책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서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줄을 서서 서표를 받아가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내다붙였다. 서표는 한 사람에게 한 장씩만 배분되었다. 서표 한 장으로 책 두권을 살 수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책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던 장관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날이 밝기 전에 서점 문밖에는 이미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서표를 받기 위해 전날 밤에 서점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밤새 앉아서 기다리기도 했다. (...) 새벽에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금새 자신들이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래 줄 맨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서점 앞에 도착해 보니 거의 3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서표는 50장밖에 없습니다. 50번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주세요."
모택동선집 4권을 제외하면 읽을 책이 없던 시기, 문혁 이후 해금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을 기다리던 시기, 30년이 지난 후 폐지 가격으로 고전들이 팔리는 시기가 위화의 추억으로 대비되고 있다.
문혁 이후 굶주렸던 사람처럼 책과 정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것과 유사한 풍경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책 뿐 아니라 이택후 같은 사상가의 강연에 팝 콘서트처럼 사람이 몰리던 시기였다. 새롭게 재개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한밤중에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던 화장실 비상구 전등 아래서 밤새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80년대 해적판으로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판매량을 이제 다시는 못 따라갈 것이다.
읽을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요즘은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나 한 것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기에 책 한 권의 가격은 요즘 아이패드보다 비쌌다.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권 가격이 하급관원 한달 봉급 정도였다. 게다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다섯 수레" 정도는 읽어줘야! 라고 했을 때 "다섯 수레"는 제법 많은 어감이다. 그러나 장자 시기 죽간으로 된 책 다섯 수레를 텍스트로 변환하면 몇 킬로바이트도 되지 않는 양일 거다. 선장본 종이책으로 다섯 수레 실어도 몇백 메가 될까?(12권짜리[구판 기준] 한어대사전이 텍스트 파일로 62메가 밖에 안 된다. 첫 알바비로 30만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 한어대사전은, 석사기간 내내 유용하게 썼지만, 이사할 때마다 골치거리로 전락하여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정보를 취하는 방식도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굳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더라도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이미 트위터화되어 있다. 계속 새로운 정보들이 보충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받아들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보다는 매일 끊임없이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맨날 고만고만한 뉴스들 속에서 살만 디룩디룩 찌는 거다. 읽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근육훈련도 다시 해야겠다. 이런 점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도입부는 훌륭하다.
트위터, 페이스북에 많은 글을 쓰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거기서 유포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시간 날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보다가 눈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이 숲속에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사실은 뭔가 더 재미난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이뤄지지 않는 기대 때문에..) 집에 돌아올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대출된 책이 내 순번까지 오기를 기다리며, 주문해 뒀다가 며칠만에 받아든 책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을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당일배송되어 목차만 훓어보고 책장에 뒹구는 책들, 테블릿 속에 가득 저장해 놓은 책들에는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저걸 언제 다 보나 하는 한숨이 뒤섞여 있다. 책장에 뒹굴던 위화의 책을 잠깐 펼쳤다가 오랫만에 읽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블로그에 쓰기의 즐거움도 다시?
모옌(莫言)-중국의 현실을 숯으로 지핀 뜨거운 생명력 (0) | 2012.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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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어떤 독서론 (13) | 2009.06.12 |
청출어람이 좋은 걸까? (0) | 2009.03.22 |
"지금 대학이 중세시대처럼 학문만 하는 상아탑도 아니고요
산업혁명 이후 대학의 기능이 분명히 바뀌었고, 그리고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건데
취업이 대학의 성과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난데
어떻게 취업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흐) 저는 그게 더 이해가 안 가거든요.
대학 가서 학문만 하고 대학졸업하고 백수가 돼야겠다
이러면서 대학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지금 시기에..
그러면 대학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뉴스타파 16회, 39:17-39:50 구간. 교과부 관계자 인터뷰.
42. 일과 권태. -- 보수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문명화된 나라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동일하다. 그들 모두에게 일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일을 선택함에 있어 섬세하지 못하다. 그 일이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하지만 일의 즐거움 없이 일하기보다는 차라리 몰락하기를 바라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 까다롭고, 만족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일 자체가 모든 이득 중에 가장 큰 이득이 아니라면 많은 금전적 이득은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한다. 모든 예술가와 사색가가 이런 드문 종류의 인간에 속한다. 그러나 그 외에 자신들의 삶을 사냥이나 여행, 혹은 연애와 모험에 바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모두는 그 일이 즐거움과 결합되어 있을 때만 일과 어려움을 원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지극히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그 밖의 경우에는 단호하게 나태를 택한다. 심지어 가난, 불명예, 건강과 생명의 위험이 그 나태와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은 권태보다도 기쁨 없는 일을 더 두려워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일의 성공을 위해 권태를 필요로 한다. 사상가와 창조적인 정신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권태는 순조로운 항해와 즐거운 바람에 선행하는 유쾌하지 못한 영혼의 "무풍 상태"이다. 그는 이것을 견뎌내면서 그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범속한 천성을 지닌 사람들이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수단을 다해 권태를 몰아내려 하는 것은 기쁨 없이 일하는 것만큼이나 천박한 짓이다.
-- <즐거운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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