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와이탄 지하도로 건설

 

요즘 와이탄을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온통 먼지투성이에 뭔가 공사를 한창 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와이탄 남쪽 끝에 위치한 연안고가도로가 철거되었다는 점, 그리고 북쪽으로는 와이바이두 다리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와이바이두 다리는 원래도 대부분의 교통량은 우숭루자 다리(吴淞路闸桥)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다리의 흉물스러움이라니. 교통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상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와이바이두 다리를 포함한 쑤저우허-황푸강 접경의 경관을 망쳐 놓고 있었다. 지금 진행중인 공사는 이들을 포함한 와이탄 전체를 지하도로로 잇고, 지상은 와이탄을 가로지르는 10차선의 중산동일로를 4차선으로 축소, 나머지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즉 교통은 지하로 돌리고, 지상은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이다.


"와이탄"이 상하이의 얼굴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상하이에 여행 와서 와이탄을 보고 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공사가 완공되면 우리 위대한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분명.

 

와이탄에 건설중인 자동차 전용 지하도로

 

 위의 그림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이 지하도로는 상하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남북 방향, 아래층은 북남 방향의 승용차들이 다니게 된다.(지도의 좌측이 남쪽, 우측이 북쪽이다.) 남쪽의 기점은 중산난루(中山南路) 라오타이핑롱(老太平弄), 그리고 옌안둥루(延安东路) 허난중루(河南中路)의 두 지점에서 시작하고, 북쪽은 우숭루(吴淞路) 하이닝루(海宁路), 둥창지루(东长治路) 뤼순루(旅顺路)에서 시작한다.(두 개의 길 이름을 말한 것은 교차로를 표시한 것이다.) 전체 길이는 약 3720미터, 지하도로의 길이는 약3300에 이른다고 한다. 지하도로 내부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둥먼루(东门路)에서 옌안둥루(延安东路)는 쌍방향 4차선에 긴급정차구역이 있고, 옌안둥루(延安东路)에서 톈퉁루(天潼路)까지는 쌍방향 6차선, 톈퉁루(天潼路)에서 위항루(余杭路)는 쌍방향 4차선, 옌안둥루 지하교차로는 쌍방향4차선, 창즈루(长治路) 지하교차로가 쌍방향 4차선이다. 대체로 각 입구는 4차선으로 시작하되, 차량이 증가하는 와이탄의 지하쪽은 6차선으로 설계했다고 보면 되겠다.

 

 (옌안둥루의 고가가 와이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 만들어질 때만 해도 "아시아 제1만(亚洲第一弯)"이라 불리며 그 "현대화"된 모습에 많은 상해 사람들이 열광했다 한다.(m.i.3에서도 잠깐 등장)

 

지금까지도 와이탄 앞을 지나는 중산둥일로는 많은 교통량을 담당하는 주요도로였는데, 그 대부분의 차량이 와이탄을 방문할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차량이었다.(70-80%를 점한다.) 그것이 와이탄의 역사적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문제는 그 해결방안(?)으로 지하를 뚫는다면 공사 자체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33개의 우수 역사보호건축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인가 라는 점이다. 더하여 시공구간에 와이바이두 다리, 지하철 2호선, 옌안루 터널 등 이미 여러 시설이 교차하고 있어 시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하이는 암반이 없고 모래땅으로 이뤄져 있다(전형적연토지질(软土地质)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질 조건에서 터널 등 지하 공사를 하는 건 두부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공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상하이 와이탄 지역 교통종합개조공정 건설지휘부의 한진화(韩金华)는 역사건축물의 기존 구조 및 침강상황 등에 대해 전면적인 실측이 행해졌고, 위험수치를 체크하여 위험도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푸저우루(福州路)를 경계로 그 남쪽으로는 지면에서 굴착해 들어가지만, 북쪽은 13.95m의 盾构掘进 방식으로 시공한다고 한다. (이 말이 궁금하여 좀 찾아보니, 盾构는 실드머신(Shield Machines)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기계를 활용하여 터널을 굴착하는 방식을 TBM(Tunnel Boring Machine)공법이라고 한다. 이 공법은 무진동, 무발파의 기계화 굴착이므로, 소음, 진동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위 링크를 따라갈 것.)

 

중국에서는 이미 TBM 공법이 꽤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07년 3월 신문에 따르면 베이징 지하철 4호선은 이 공법을 사용하여 1100m를 굴착하여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는 상하이 지하철 11호선 시공 장면이다.

상하이 지하철11호선 盾构掘进

 

암튼 시공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공법을 쓰면 건축물에 대한 피해는 걱정을 좀 줄여도 될 듯하다.

 

이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영국조계에서 길을 건너 와이탄 쪽으로 들어가려면 원래 있던 베이징루와 난징루의 지하도로를 이용하거나, 푸저우루에 임시로 설치된 육교를 이용할 수 있다. (꽤나 흉물스러운 이 육교는 그러나 적당한 높이에서 해관 등 와이탄 북쪽 건물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시야를 가져다 준다.)원래 있던 옌안동루의 육교와 사진에 표시된 진링둥루(金陵東路)의 육교는 철거되었다.

 

푸저우루에 새로 설치된 육교에서 내려다 본 해관(시계탑) 근처 도로 모습


이 지하도로는 엑스포 직전인 2010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http://news.sina.com.cn/c/2008-02-06/021514910065.shtml

http://jfdaily.eastday.com/eastday/jfsy/j/20080229/u1a405871.html


 (이 글의 지하도로 관련 정보는 대부분 위의 중국어 기사에서, 공사가 건물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것은 아래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Posted by lunarog

<색ㅣ계>는 1940년대 상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에 그 시절의 상해 모습을 언뜻 살필 수 있다. 와이탄이나 프랑스 조계 등 비교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는 운하 옆 허름한 집 같은 경우 주변의 소도시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3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부에서 알려주는 지도로 볼 때 와이탄에서 북쪽으로 홍구로 넘어가는 장면이어야 하는데, 그 장면은 상해가 아닌 시탕(西塘)에서 촬영되었다. 현대화된 상해(푸동, 와이탄) 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이 늘어선 시탕의 이미지가 중국이란 표상을 외국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정도로 이해해야 되겠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톰 크루즈가 달려갔다면, 아래 지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 다리를 넘어가야 했을 것이다.)

<색ㅣ계>에서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여주인공 왕자즈는 이 선생에게 점점 마음이 기우는 한편 빨리 암살기회를 노리라는 독촉을 함께 받는다. 이때 이 선생이 불러 이 다리를 넘어 홍구(虹口)로 건너간다. 이 다리는 즉 영국조계지인 와이탄에서 일본조계지라 할 수 있을 홍구로 넘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서 왕자즈의 마음 또한 어느 한쪽으로 넘어간다.

10월1일 국경절을 맞아 오랫만에 와이탄에 나갔다가 일행과 헤어져 와이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와이탄을 따라 나 있는 중산동일로는 공사 중이라 먼지가 자욱했다. 오랫만에 쑤저우허를 따라 올라가면서 골목길을 쏘다닐 셈이었다. 그 전에 와이바이두 다리만 건너면 있는 푸장호텔에 가서 화장실을 쓸 생각이었다. 이 호텔은 상해 최초의 호텔인 리차드 호텔(1846년)을 이전 개축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1907년)도 꽤 보존가치가 있고 내부도 고풍스러운 맛이 남아 있다. 2005년(?)까지는 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방도 제공되었으나, 이후 상해시 보호문물인가가 되고부터 방값이 대폭 올라버렸다. 투숙은 못하지만 급한 볼일은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길은 다른 곳으로만 뚫려 있고 와이바이두 쪽은 공사장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건너편에 있는 브로드웨이 빌딩(上海大厦, 현재broadway mansions hotel)과 푸장 호텔(浦江饭店; Astor House Hotel), 러시아 영사관 등을 찍기 위해 살짝 열린 철문 사이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상해는 워낙 공사중인 곳이 많아 뭐 또 새로운 건물 하나가 들어서나 보다 생각했을 뿐. 뒤돌아서 나온 후 우회도로를 따라 다른 다리로 가서야 이 다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와이바이두 교 옆에 있는 고가도로(吴淞路闸桥)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래 사진처럼 고가도로만 남아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정보를 확인해 본다.

 

확인 결과 설계 당시 50년 수명이었던 이 다리는 100년을 잘 견딘 후 2008년 3월 1일부터 통행금지, 4월 7일 해체한 후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와이탄 등지의 건물에 적용하고 있는 "옛 것을 옛 모습 그대로 고친다(修旧如旧)" 라는 원칙에 따라 와이바이두 다리도 다시 50년의 수명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2009년) 1월 15일 수위가 올라갈 때 원래 위치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공사가 와이탄 앞의 도로(중산동1로)를 정비하여 와이탄에 보행도로를 넓히고 광장을 신축하는 계획이다. 와이탄 앞 도로가 지금 먼지를 날리는 이유가 바로 이 공사 때문이다. 와이탄 남쪽의 연안고가를 철거했고, 북쪽의 와이바이두 다리도 철거했다. 와이탄이 현재 처리하는 교통량이 엄청난데, 그것을 모두 지하로 옮기고 지상은 최소한의 도로만 남겨둔 채 공원화하는 계획인 것이다. 일단 지하를 달려야 하는 차량들은 조금 괴롭겠지만, 상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와이탄은 자동차의 방해를 덜 받고 훨씬 넓고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와이탄의 광장 조성 계획은 추후에 포스팅 예정)

 

 

아래는 내가 놓친 다리의 해체작업에 관한 사진을 찾아 옮겨 놓는다.

 

저수위일 때 운반선이 다리 밑으로 들어간다. 운하 위쪽에서 물을 방류하여 수위를 높이고, 운반선에서는 내부의 물을 배출하여 운반선이 다리에 닿게 한다. 그 다음은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각 그림에 대한 중국어 설명을 번역한 게 아니라, 다른 신문 등의 내용을 뭉뜽그려 간단히 설명한 것임). 다리는 현재 민성루 부두(民生路码头)로 옮겨져 수리 중이다.

 

 

다리가 사라지기 전 모습은 아래와 같다. 와이탄(황포공원)에서 홍구쪽을 바라보는 모습과, 그 대각선 위치에서 푸동쪽을 바라볼 때 와이바이두 다리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흉물스러운 쇳덩어리 다리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도 상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중국" 하면 떠오르는 아치형의 자그마한 다리의 운치도 없고, 건너편 푸동의 동방명주와 어울릴 법한 현대적인 맴시도 없다. 우리나라였다면 6.25로 폭파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70년대 정도에 철거되어 이상하게 촌스러운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을 것이란 상상도 해본다. 허허벌판이던 푸동은 완전히 최첨단으로, 황포강 서쪽 포서는 될 수 있으면 옛 모습 그대로, 이것이 상해 도시관리의 기본정책이다. 어쨌든 상해 토박이에게 이 다리는 아주 각별한 것이라, 철거 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자기 기억에 있는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뜻일 것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와이바이두 다리의 옛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쑤저우허의 33개 다리: http://www.news365.com.cn/wxpd/sh/mjsh/200804/t20080421_1841590.htm
모형: http://www.modtoy.com/index.php?gOo=article_details.dwt&articleid=1271
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8. 9. 26. 23:27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싫어한다.
응시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응시를 알아차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그다지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경우, 즉 아이를 찍거나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모습을 찍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하나의 풍경이 나의 응시를 통해 하나의 틀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그렇게 영원히 평범함에 머물 것이다.

좋은 사진을 보면 오르가즘을 느낀다.
좋은 소설이나 굉장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영화는 몰아쳐오는 쾌감을 최대한 같은 호흡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은 쾌감이 몰려올 때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어쩌다 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
너무 한 문장에만 머물러 있다가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식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여성적인 오르가즘이고 소설은 남성적인 오르가즘이다. 내 편견이다.

사진은 지속되는 오르가즘이다.
순간을 영원히 고정, 정지시키는 죽음의 이미지가 사진에는 강한데, 여기서 방점은 영원에 찍히게 된다.
오르가즘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뭐인지 모를 자극이 눈을 때리는 순간 내 몸은 이미지에 고정되고
천천히 세부를 훓으며 그 쾌감을 음미한다.
그 순간 절정은 이미 지나가 있다.
오르가즘 이후 그것이 못내 아쉬워 애무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속이 영원에 가닿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示衆 > 明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도 연습  (1) 2009.04.19
둘로 이뤄진 세상  (2) 2009.03.05
네 멋대로 찍어라! ...... 그러나 새롭게 바라보라  (0) 2008.12.13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講, 구경 2008. 9. 26. 22:48

중국에서 느낀 한 가지는 강연이나 학회 등이 참으로 많고 다양하며, 세계 각지의 유명 학자들이 초청되어 온다는 점이다. 내가 관심 갖는 분야인 중국문학, 역사, 중국학 쪽의 미국, 유럽, 일본, 홍콩 등지의 학계의 거물들이 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들로서는 자기가 연구하는 나라에서 부르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학회 핑계로 돈까지 받아가며 와서는 예전에 써놓은 글 하나 발표하고 나머지 시간은 사람들 만나 인맥을 쌓거나, 중국에만 있는 자료를 수집하거나, 하다못해 관광이라도 한다면 나쁠 게 전혀 없지 않은가.

굳이 중국학이 아니라도 꽤 초청되어 온다.

어제(9월25일)는 복단대 사회과학 고등연구원(复旦大学社会科学高等研究院) "중국과 세계: 사회과학고급논단"(“中国与世界:社会科学高级论坛”)의 발족을 기념하여 마샬 살린스(Marshall Sahlins)가 "포스트모더니즘, 신자유주의, 문화와 인성"(后现代主义、新自由主义、人性与文化)이란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하였다.

여든에 가까운 이 할아버지는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강연원고를 읽었고, 순차통역(?)으로 중국어로 원고내용을 읽었으며 미리 준비된 번역문이 양쪽 화면에 떴다.

http://www.fudan.edu.cn/fudannews/news_content.php?channel=1&id=19337

서두가 너무 길었고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강연의 내용이 아니라 강연 전에 생긴 조그마한 소란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강연이 자주 있고 그 중 세계적인 거물들도 자주 오는데, 대부분은 전공불문하고 많이들 몰려오기 때문에 왠만하면 1시간 전에는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한 사람이 몇 개씩 자리를 잡아놓곤 한다.) 어영부영하다가 30분 전에 도착하게 되면 어김없이 땅바닥에 앉아서 혹은 뒤쪽에 서서 들어야 한다. 이날도 밥먹고 어기적거리다가 조금 늦게 도착했고 역시나 자리는 없었다. 주최측에서 더 대형 강의실을 준비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자리가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뒤쪽 출입구에 서 있는데, 여직원이 비좁은 틈을 뚫고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청소, 수리, 혹은 기타 잡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직원이 또 나를 비집고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왼쪽 통로 끝부분에 어떤 남학생이 간이의자에 앉아 있고 남자직원은 비키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강의실 뒤쪽에 위치한 방송실 겸 중앙통제실에 있는 의자를 그 남학생이 가져가서 앉았던 것이다.
내 상식에서는 허락받지 않고 의자를 들고 갔다면, 그것도 자기 혼자 앉기 위해서 그랬다면 여직원이 와서 달라고 해도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 여분이 있는 줄 알았다 하고 비켜줬을 것 같은데, 남자직원이 좀 강하게 요구하고서야 마지못해 의자를 내줬다.

조금 더 황당한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그 남자직원이 의자를 가지고 나가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너희 복단대 학생들 수준이 이게 뭐니?"(你们复旦人的文化水平怎么这么差?!)

그 말을 들은 그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당장 발끈한다.

"무슨 말이냐? 복단대 학생들이 뭐 어쨌다고?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

그 중 한 남학생은 남자직원이 들고 있는 의자를 잡고 놔주질 않았고 그 옆의 여학생이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즉, 니가 여기서 일하는 것도, 그 의자가 여기 있는 것도 복단대 학생들 때문이 아니느냐는 식이었다.
오래 끌지는 않았고, 그 남자직원이 나간 후 뒤쪽에서 "그래, 의자를 원래대로 가져다 놨으면 됐다, 그만해라"는 따위의 윗선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깐만에 끝났고 그 주위에 있던 몇몇만 목격한 소동이지만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의자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방송실에는 또 의자가 원래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직원들의 요구는 내 생각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자기 혼자 편해 보겠다고 의자 가져다가 앉아 있는 이기적인 학생을 비난하는 한 마디, "복단대 학생(复旦人)"의 수준에 자기 동일시하여 주위 학생들이 나서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이 소리다.
앞뒤 따지지 않고 발끈해야할 만큼 "복단대 학생"이라는 기호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덧붙여, 화가 나서 무심코 던진 말이기도 하지만, 직원의 비난은 복단대 정도씩이나 다니는 놈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라는 그 개인에게 향한 비난으로 읽혀야 한다.)

복단대라는 이름에 대한 자기동일시, 직원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엘리트 의식 따위가 겹쳐 (아무리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따위가 복단대란 이름 전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라는 식의 공기가 너무 당연하게 깔려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 자체에 대해 어떤 반성, 혹은 질문을 던지는 눈빛을 보이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물론 이 소동의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10명 안쪽이다.)

그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느낄 수 있었으나, 살짝 우울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재미난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소속감이 국가 등 더 큰 단위에서 발현된다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사건들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9/26 22:48 | 조리돌림 | 트랙백 |

Posted by lunarog
올해도 상하이 여행축제(上海旅游节; Shanghai tourism Festival 2008)가 열리고 있다.
9월13일에 시작하여 10월6일에 끝난다.
그 사이 상해의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연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아래 표 참고)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데, 상해가 워낙 볼 게 없다보니 관방에서 이런 식으로 행사를 만드는 것 아니겠나 싶어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공식 웹페이지(http://www.tourfest.org)에도 별 내용이 없다. 하다못해 한국이라면 영화 하나 개봉할 때 만드는 팬페이지만도 못한 것이다.
그만큼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홍보를 하였을 것이고, 그런 식의 홍보를 나처럼 나다니지 않거나 관광객이 아닌 사람은 접하지 못했을 수도..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여행 "축제"인데 영어 웹페이지라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전세계에서 미리 알고 찾아오지 않을까?

활동이 여러가지인데, 일일이 번역해 두기는 귀찮고 눈에 띄는 몇 개만...


활동 명칭

시간

장소

문의전화(021)

幕式暨开幕大巡游
개막식 및  대행진

913
19302100

淮海路(西藏路-西路)
화이하이로

53510930

幕大联欢及南京路欢乐

913日—20

南京路步行街

63287413

巡游暨评比大奖赛

914日-106

全市各区县及周城市

53868030

上海
상하이 쇼핑 축제

913日-105

全市范
시 전체,

62729983

竹文化

919日—1031

古猗

59122225

上海旅游念品(品)博览会

917日—22

商城悦宾楼

53868020

上海国际烟花节暨上海旅游节闭幕式
상하이 국제음악 불꽃축제 및 상하이 여행축제 폐막식

930日-106


푸동 세기공원

53510930

“中秋上海情—乐圆都江堰”上海原乐汇

914日—15

淮海公

53868025

唐韵中秋游园会

914

汇区桂林公

64569090

桂之旅

9月-10

及江和浙江有景点

962020

子江万国啤
독일 맥주 축제

917日—27

区扬子江万大酒店

62750000*2366

小主人欢乐

913日—15

中山公大草坪

22050808

梅川路休欢乐

927日—106

普陀梅川路休

52564588-7004

九子大决赛

914

九子公

63273227


예원 중국의 날

95日-106

商城

63559999

天喜地”音激光烟花表演
음악 불꽃 축제

102(중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10
5(미국, 한국, 스페인)

大宁石公
음악보다는 각 참가국의 불꽃놀이 위주일 듯.
(
참가국은 출처마다 조금씩 다름)

63805390665766076601

四川北路欢乐节

92627

虹口四川北路商街沿线

25658306

第八都市森林欢乐节

929日-105

森林公

65328194

上海情周
상하이 일본 문화주간

919日-921
지나갔군!

淮海公、久光百
이런 것도 하는구나..

62994929

玫瑰婚典

105

卢湾区淮海中路

64454965/
64672030

都市咖文化国际爵士同乐节
도시 커피문화제, 국제 재즈 음악축제

919日—106

安公

62982541

山田园农

910日—107

区东方假日田

66860992/
56607878

“廊古韵”民俗情系列活

918日—107

区黄浦江水文化博物,七

64133461

缤纷嘉定欢乐

915日-107

嘉定南翔、安亭、曹安马陆镇

69989529

根越角——第三届枫泾婚典

920

金山区枫泾

57355555

运动联欢

913日—1031

汇区上海野生

61180000

走近港,体滴水湖

913日—106

汇区临港新城滴水湖

68283907

上海旅游风筝会

929日-105

贤区旅游

57120888

第六“上海之根”文化旅游

920日—1011

松江区佘家森林公、泰晤士小

57651701

第十朱家角古旅游

9月下旬-10月上旬

朱家角

59715804

第三
3차 전국 북 축제(경연대회)

929日-104

区东绿

59233000转销售部

上海崇明森林旅游

915日-107

崇明

69692411

 
나는 분위기 봐서 맥주 한잔을 하러 가거나, 커피 및 재즈 축제 쪽으로 가고 싶고, 혹시 시간이 되면 불꽃놀이도 한번 가볼까 생각중이다. 아마도 생각만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국경절 전후로 이어지는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유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에 있었던 소식 중에 나의 눈길을 끄는 한 가지는 바로 아래 이어지는 사진들!



별 것 아닌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타기 공연(http://www.tvsou.com/xinwen/a/20080917/98330.htm)
독일에서 온 공연단이 내가 반년 정도 살았던 구역인 톈린(田林社区)에서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내가 이 행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른 그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래에 부분으로 따온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이 상하이에 100년도 더 전에 저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상하이에 들여온 사람도, 그것을 주로 타던 사람도 서양인이었다.


외발수레[小車; 혹은 독륜거(獨輪車)]는 인력거만 못하고 인력거는 마차보다 못하며 마차는 기차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제까지 거리를 다니는 것은 외발수레 아니면 인력거였고 마차는 보통 남자가 몰았다. 이번에 서양인이 자전거를 발명하였는데 매우 가볍고 빠르며, 길을 다니기가 수월하다. 한 서양 여자가 숙련된 솜씨로 한발로 페달을 밟으며 빠르게 달리는데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한다.(1891년2월)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근 2년간 상해에 많이 생겨났다. 올해 영국 여왕에 대한 축하행사 때 서양 상인들은 자전거를 몰고 거리로 나온 이가 많았다. 니성교(泥城橋) 서쪽의 경마장에 새하얀 자전거 바퀴에 숙련된 기술이 실로 볼 만했다.(1897년6월)


(자료는 중국학센터http://www.sinology.org/ 제공. <점석재화보> 일부 : 포토샵을 밀어버린 바람에 그림판으로 자른 그림이 영 시원찮다. 전체 그림의 한 부분만 부각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시길..)


당시 외국인의 전유물이었던 신문물은 이제 어느새 관광객을 위한 공연의 소품이 되어 있고,
뻐기듯 상하이의 조계 한 자락에서 멋있게 타고 다니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와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
굳이 너무 멀리까지 나갈 필요는 없고, 억지로 의미부여할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도 자전거가 지닌 의미가 갈수록 변해가고 있다.
말 한 마리보다 비싸던 시기도 있었고(대체 말이 되는가?), 거의 전국민의 발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다시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더 선호하는 날이 중국에도 올까.
자동차 핸들 돌리는 것보다 자전거를 밟는 게 더 부유한 삶이라는 생각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9/22 02:49 | 石庫門 |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9. 1. 00:01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국은 여전히 올림픽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글쎄 TV를 틀었다 하면 아직도 주요 경기장면이 나오곤 하니 말이다.
한국도 올림픽, 월드컵 등이 끝나면 많이 우려먹긴 한 것 같은데,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 장정일이 에코를 빌어 한 마디 했다.
스포츠 일반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올림픽에 대한 심기를 슬쩍 내비친 것인데.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려고 사창가에 가는 사람"이라는 일갈은 스포츠 관람객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일 듯하다.

나 자신, 미친 스포츠는 없지만 또 보다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보게 되는 것이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 말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사실 그 관음증이다.
그게 뭐가 나쁠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몰래 보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떳떳하게 책을 읽기 위해, 영화를 보기 위해,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써야 하고, 영화를 찍어야 하고, 웹사이트를 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소설을 쓰지 않고도, 영화를 제작하거나 비평에 관여하지 않아도
몰래 나 혼자만 발견한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기뻐한다.
그런 거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자기가 제작해 쓰는 고대로 돌아갈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것이 '유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비판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보면서 어떤 경기의 승패에 따라 국력이 신장되었다가 축소되었다가 하는 느낌을 받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 따위는 문제가 있겠다.
중국이 올림픽 전부터 지금까지 전국민(?)이 그것의 성공 여부에 목을 매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좀 오바다.
어떤 중국애가 이렇게 (농담삼아) 물었다고 한다.
"(한국 니네들) 중국이 올림픽 성공해서 좀 서운해?"
역시 오바다.

올림픽과 ‘스포츠 관음증’

필 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가진 영국의 문화비평가가 그 글들을 모아 에코의 반(反)스포츠론을 완벽히 다듬어낸 일종의 ‘오마주 북’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 부를지 잘 안다.

마 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관음증 환자다. 에코의 말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놀이를 잃어버린 관객들이 생생한 체험을 보상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하며, 피를 보고야 마는 훌리건의 난동은 경기 시간 동안 자기 신체를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청년들의 슬픈 마스터베이션이다. 비약하면, 세계가 놀란 한국인의 응원문화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만큼 자기 향락이 무엇인지 모르며, 실제 스포츠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증거다.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과 육체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라면, 관음화된 현대의 스포츠는 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제거된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잡담가로 타락시킨다. 그들은 장관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축구 감독에 대해 논의하며,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선수의 기록을 복기한다. 또 새로운 정책이나 법령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어제 벌어진 승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면서 마치 중요한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화된 스포츠 경기란 사익에 충실한 극히 개인적인 활동임이 분명한데도, 스포츠 잡담가들은 그걸 국력과 연관지으며 공적(公的)인 화제인 양 기만한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올림픽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사족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면, 사변적이고 나약한 ‘먹물’이라는 기왕의 이미지를 단번에 씻겠다는 듯, 문인들은 참 오지게도 도착적인 스포츠를 예찬하고 스타를 ‘빨아’준다. 유명세를 부풀릴 좋은 기회를 어쩌자고 놓치랴?

장정일 소설가

by luna | 2008/09/01 00:01 | 조리돌림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7. 15. 11:14

왕사오보의 중편소설 <황금시대>의 초반부 번역이다.
심심풀이로 조금 번역해 보다가 국내에 기출판된 것을 확인하고 김이 샜다.
2000년에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 것.
번역은 특별한 오류는 없는 듯하나 소설을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
내 번역이 왕사오보의 문체를 더 잘 살렸다고 확신할 배짱은 없다만,
보다 간결하게 흐름을 살려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둔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보다 적절한 문체는 어떤 걸까?
"절묘하다!" 라는 느낌을 내 번역에서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작가 왕사오뽀(1952-1997)는 97년에 이른 죽음을 맞은 후 재평가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꽤 많은 독자층과 비평계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많은 청년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2006년 여름 상하이의 대형 서점마다 왕사오보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인기만 좋은 시덥잖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겠거니 했는데 조금씩 소문도 듣고 내가 직접 읽어본 뒤에야 맛을 알게 되었다.

대표작은 <황금시대>, <백은시대>, <청동시대> 연작(시대삼부곡)이며, 그 외 <침묵하는 대다수>, <사유의 즐거움> 등의 산문집이 있다.

그 중 <황금시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현실'을 다루었고, <백은시대>는 미래를, <청동시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삼부곡"은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필치로 시대를 넘나들며 권력이 인간의 욕망과 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압하는지를 잘 그려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각각 중편모음집인 이 연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주간> "20세기 중국소설 100선", 중국당대문단 "최고의 수확"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간단한 작가소개 정도는 해두려고 논문과 소개글 몇 개를 모아 두었는데
물론 언제 정리할 마음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황금시대

왕사오보

王小波, 《黃金時代》, 陜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


나는 스물한 살에 윈난의 생산대로 배속되었다. 천칭양(陳淸揚)은 당시 스물여섯이었으며 거기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산 아래 14생산대에 있었고 그녀는 산 위 15생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걸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론하려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대충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녀가 토론하고 싶어 한 것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걸레라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서방질을 해야 걸렌데, 자기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남편이 일 년 간 감옥에 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서방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자기를 걸레라고 부르는지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논리적으로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만약 천칭양이 걸레라면, 즉 천칭양이 서방질을 했다면 적어도 하나라도 같이 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그게 누구인지 지목하지 못했으니 천칭양이 서방질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천칭양이 걸레이며, 그 점에 있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천칭양이 자기가 걸레가 아니라고 증명하려 내려온 것은 내가 침 맞으러 그녀에게 갔기 때문이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농번기가 되자 생산대장이 나에게 밭가는 것을 멈추고 모를 심으라고 시켰다. 그래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 키가 190cm 이상이며 내가 허리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모내기를 했더니 허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라도 막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생산대 의무실에 있는 침은 도금이 벗겨지고 끝이 낚시 바늘 같아 내 허리의 살을 발라내기 일쑤였다. 결국 내 허리는 산탄총을 맞은 것처럼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생산대의 천칭양이 생각났다. 그녀는 베이징 의학원을 졸업한 의사니까 침과 갈고리는 구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30분도 되기 전에 그녀가 내 방까지 쫓아와 자기가 걸레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천칭양은 자기가 걸레를 업신여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의 관찰에 의하면 걸레들은 모두 착했고 다른 사람 돕는 걸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는 걸 가장 싫어하였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면에서 걸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제는 걸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자기는 절대 걸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고양이를 사람들이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그 고양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칭양이 내 초가에 와 있을 때 산 위 의무실에서의 옷차림 그대로 어깨와 다리를 벌겋게 드러낸 흰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풀어 헤친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흰 가운 아래에 뭔가를 입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입었을까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가 예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녀는 뭘 입든 안 입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자신감이다. 나는 그녀가 걸레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까지 몇 개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른바 걸레라고 함은 하나의 호칭이다. 즉 모두가 당신이 걸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걸레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신이 서방질했다고 하면 서방질한 것이지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모두들 왜 당신을 걸레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보기엔 이렇다. 모두들 결혼한 여자가 서방질하지 않으면 얼굴이 거무스레하고 가슴은 축 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당신은 얼굴이 검기는커녕 하얗고, 가슴은 봉긋하다. 그래서 당신이 걸레인 거다. 만약 당신이 걸레가 되기 싫으면 얼굴은 검게, 가슴은 축 처지게 만들어라. 그럼 아무도 당신이 걸레라고 안 할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거다. 근데 만약 당신이 손해 보기 싫으면 서방질을 하는 수밖에. 그러면 당신도 자기가 걸레라고 생각하게 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서방질했는지를 먼저 밝힌 후 당신을 걸레라고 불러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근데 당신에겐 남들이 당신을 걸레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말을 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천칭양의 두 눈을 부릅뜬 표정은 거의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릴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귀싸대기 날리는 걸로는 유명했다.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걸레면 걸레지 뭐. 근데 가슴이 처지네 마네, 얼굴이 검네 마네 하는 건 너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행여 내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가는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 거라고 말이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천칭양과 걸레 문제를 토론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얼굴이 누렇고 뜨고 말라 터진 입술에는 종이조각과 담배가루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반창고로 찢어진 곳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헤진 군벌 하나 입고서 나무침대에 다리를 꼬아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완전히 건달이 따로 없었다. 아마 천칭양이 이런 놈에게 자기 가슴이 처졌니 안 처졌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좀 신경질적인 편이었는데, 그건 모두 아주 건장한 청년들이 아픈 데도 없으면서 진료를 핑계로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의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걸레를 보러 간 것이다. 나만 예외였다. 내 허리는 저팔계에게 쇠스랑으로 몇 대 맞은 것처럼 아팠으니까. 허리 아픈 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 뻥뻥 뚫린 구멍만으로 의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구멍이 그녀에게 자신이 걸레가 아님을 나에게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 말고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다. 봄에 생산대장은 내가 자기 집 어미개의 왼쪽 눈을 애꾸로 만들어, 이놈이 무슨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고개를 돌려서 사람 쪽을 본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언제나 트집을 잡았다. 나는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래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생산대장의 집에는 어미개가 없다.

2. 이 어미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없다.

3. 나는 손이 없어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수 없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생산대장의 집에는 확실히 갈색 어미개가 한 마리 있고, 이 어미개의 왼쪽 눈은 확실히 나중에 먼 것이며, 나는 총을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밀한 사격술을 자랑한다. 그 얼마 전에 나는 뤄샤오쓰(羅小四)의 총을 빌려 녹두 한 그릇을 총알삼아 빈 창고에 있던 쥐를 두 근이나 잡았다. 물론 우리 생산대에서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목록에는 뤄샤오쓰도 포함되어 있다. 총은 그의 것이고, 게다가 그가 생산대장의 어미개의 눈을 쏘았을 때 나는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이 한 일을 까발릴 수는 없었고, 뤄샤오쓰는 나하고 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생산대장이 만약 뤄샤오쓰를 건드릴 수 있었다면 나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묵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나는 모를 심으러 가서 부러진 전봇대마냥 엎드려 있어야 했고, 가을 추수 후에는 또 소를 먹이러 나가 뜨신 밥은 먹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산 위에서 마침 뤄샤오쓰의 총을 빌린 날 생산대장의 어미개가 산으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총알을 날려 그 놈의 오른쪽 눈을 쏘았다. 이 개는 이미 왼쪽 눈을 잃은 데다 오른쪽 눈마저 사라지니 생산대장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하늘만이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나는 산에 올라 소를 먹이거나 집에 드리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칭양이 또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녀가 나하고 서방질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1. 천칭양은 처녀다.

2. 나는 고자라서 성교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결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천칭양은 이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렸다가 얼굴이 뻘게지더니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천칭양은 내가 언제나 악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생 까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그녀가 우리 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섹스를 한 번 하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면 뒤에 이야기할 사건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7/15 11:14 | 独立阅读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8. 06:46

옌롄커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왔다.

作  者: 阎连科
出 版 社: 江苏人民出版社
出版时间: 2008-6-1
页  数: 332
I S B N : 9787214055569

곧 근작이 나올 거라는 걸 그의 강연에서 들었지만 잊고 있다가 그저께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출간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당에 주문하기는 좀 늦고 해서 서점에 가서 실물을 확인해 봤다.
재고량이 47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열되어 있지 않았고 서점직원이 한참 찾은 후에야 서가 아래쪽에 쌓여있는 걸 하나 건네 주었다.
중국의 서점들은 도서분류가 너무 엉망이다. 출판사 분류도 아니고 저자 분류도 아니다. 완전히 흩어져 있어 "당대소설" 서가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야 한다.(上海書城이 대표적. 대학 근처의 전문적인 일부 작은 서점들은 분류가 꽤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교수 양과(楊科)는 5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풍아지송: <시경>정신의 본원에 관한 탐구(风雅之颂——关于〈诗经〉精神的本源探究)》라는 필생의 저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침대 위에 벌거벗은 마누라와 부총장이다. 처용이 생각나는 장면인데, 양과의 대처 또한 처용과 비슷하다.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고 싶으면 말만 하게, 올해 국가급 모범학자는 따논 당상일세, 상금이 오만원(7백만원)이라구, 학과 주임이 되고 싶다면 밀어줌세,.. 뻘줌하게 주절대는 부총장에게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한다.
제가 생각이 완전히 깬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니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주세요, 지식인의 명예를 걸고 부탁드리건데,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는 곧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환자들에게 <시경>을 강의하며, 얼마 후 정신병원을 고향으로 돌아간다.

청연대학(清燕大学; 청화대와 북경대(연경대)를 혼합한 명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지식인의 허위와 추악함을 풍자하는 방향으로 그려질 것 같다. 당장 꼼꼼하게 읽어볼 시간을 내기는 힘들지만, 제발 바라는 것은 류진운의 <내 이름은 유약진> 같이 실망시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시끄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혼을 빼놓지만 별로 건질 게 없어 사람을 굉장히 지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기우인지 몰라도 몇 페이지 읽다 보니 "수다"스럽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또 하나 띠지에 있는 "중국 황당(荒誕) 현실주의 대사 옌롄커"라는 말!
천쓰허 같은 경우 "괴탄(怪誕)문학" 혹은 "괴탄(怪誕) 사실주의"라고 옌롄커 등의 경향을 칭했다고 국내 신문에도 소개된 바,
아무거나 다 "~~주의" 갖다 붙이면 되냐고 말들이 많다.
(황당주의가 아니라 요즘 대학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라는 식의 반어적 댓글이 있을 정도..)

중국쪽 언론이나 포털에는 관련 기사가 몇 개 올라와 있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어찌되었든 내가 직접 읽어봐야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이제 막 나온 소설의 원문 대부분을 웹에서 서비스한다는 거다. 물론 전체를 다 보려면 사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거 좀 따라했으면 좋겠다.. 절판된 책은 웹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



阎连科最新的长篇杰作:风雅颂(选载)

아무튼 (시경의 편명을 빌린) 목차는 다음과 같다.
http://product.dangdang.com/product.aspx?product_id=20246252

目录
卷一
 〔关雎〕当《诗经》遭遇一对狗男女
 〔汉广〕柿子树下的初情
 〔终风〕红彤彤的欲念
 〔(艹择)兮〕蹿红的的女教授
卷二
 〔有瞽〕硬学问软膝盖
 〔良耜〕侍候飞累的鸟儿
 〔噫嘻〕那条该死的内裤
 〔泮水〕我们各怀鬼胎
卷三
 〔出车〕必要的成交
 〔都人士〕膝盖又发软了
 〔十月之交〕捕风汉子
 〔绵蛮〕举手表决
 〔白驹〕悲壮的告别 
卷四
卷五
 〔式微〕天使得不到尊敬
 〔晨风〕往事香艳
 〔蒹葭〕情人的礼物
 〔东门之(木分)〕教授来到天堂街
 〔匪风〕温暖的家
卷六
 〔菁菁者莪〕庄严的摸顶
 〔斯干〕农事温情
 〔思齐〕情爱事业
 〔白华〕无力挽留
 〔小明〕祭奠吴德贵 
 〔南山有台〕守墓人的颂歌
卷七
 〔噫嘻〕婚姻真相
 〔臣工〕有尊严地告别 
 〔駉〕欢年
 〔有駜〕小姐们的束修
卷八
卷九
 〔大田〕昨日重来
 〔车辖〕鸳鸯于飞
 〔隰桑〕小敏的选择
 〔渐渐之石〕别人的婚礼
 〔小弁〕一日不见如三秋兮
 〔桑柔〕哄抢有理
 〔白驹〕不能没有你
 〔鸳鸯〕死神婚床
卷十
 〔般〕逃犯
 〔天作〕狂喜
 〔时迈〕石头记
 〔有瞽〕诗经古城
卷十一 
 〔东山〕新家
 〔草虫〕家园之诗
 〔甘棠〕我又被举手表决了
 〔芄兰〕柳树下
 〔葛藟〕繁华的黄昏
卷十一
附录:后记三篇
 飘浮与回家
 不存在的存在

 为什么写作和要写怎样的小说

Posted by lunarog

오늘은 태풍 때문인지 하루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잠깐잠깐 비가 그칠 때 보니 비와 바람에 씻겨나가 상해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흐린 날이라 어차피 가시거리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나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 아래 거리 풍경이, 반짝인다는 느낌이 날 정도로 색감이 좋았다.
회색도 그런 색을 낼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

푸동쪽에 약속이 있어 폭우가 쏟아짐에도 외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물살을 가르는 택시를 보면서 처음으로 상해의 도로에는 배수구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시내쪽 도로들은 어떤지 생각이 잘 안 난다만,) 적어도 고가도로를 포함하여 푸동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서 배수구는 발견할 수 없었다. 확인삼아 택시기사에게 "도로에 왜 배수구가 안 보이니?" 했더니, "그런 거 원래 없어!" 그러더구먼.
그러니까, 오르막길인 고가도로에서,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기로서니, 도로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택시 창밖으로 고가 쪽을 찍어봤다.
물이 많이 튈 때를 제대로 못 잡았는데, 이렇게 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래로 물이 엄청나게 튄다.

따라서 고가가 끝나는 아래쪽 도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저렇게 물이 차여 버린다.
배수구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 게 아니라 배수구가 아예 없는 것이다.(물론 배수구가 있었어도 워낙에 집중호우였기 때문에 물은 좀 차였겠지만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좀 많이 흔들렸는데, 저렇게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야 한다.
양포대교를 오르막길로 오르고 있는데도 물살을 가르면서 달려야 했다.
자꾸 흔들려 정말로 센 물살은 찍지 못해 사진만 봐서는 잘 실감이 안 나게 되어 버렸다.
암튼 시내 쪽이나 인도가 있는 도로에서는 배수로가 어떤지 한번 주의깊게 살펴봐야겠다. 적어도 내가 본 문헌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이미 상해의 도로는 서구식으로 넓고 평탄하게 닦은 후 도로 양 옆에 인도와 배수구를 설치하고 있었다. 상해같이 비가 많은 도시에서 도로에 배수구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건, 그게 아무리 고가도로나 인도가 주위에 없는 도로라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근데 우리나라도 그런가?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6/28 05:11 | 石庫門 |

Posted by lunarog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국도 작년보다 과일가격이 상당히 올랐다는 느낌이다.
환율까지 올라 요즘은 과일 먹기도 겁이 날 지경이다.
과일, 채소 등 식료품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중국의 장점도 이제 물 건너간 모양이다.

간만에 과일가게에 들렸다가 "타이완 여지왕"이란 놈을 봤다.
꽤나 과일을 즐겼고 여름에는 여지 킬러였다고 자부하는데, 어쩐지 이놈은 이번에 처음 봤다.
신기한 마음에 한번 사들고 와 본다.
크기만 하고 맛은 없으며, 껍질이 엄청 두껍고 씨는 커서 과육은 적은 건 아닐까 걱정을 쬐금 하면서 말이다.

왠걸, 껍질도 그다지 두껍지 않고 과육도 꽤 도톰하니 씹을 게 많았다.
무엇보다 달고 신 여지의 맛과 향이 제대로 살아있었다.
(올해 먹어본 다른 여지는 너무 맛이 없었다. 시고 떨떠름한 것들 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산 것 중에서는..)
입에 통채로 넣고 한입에 다 씹지도 못하고 우물우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복숭아 하나를 넣고 같이 찍어 봤다.
복숭아가 조금 작은 것이긴 하지만 그냥 봐도 여지 하나가 거의 자두만한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크기대조를 위해 담배곽을 옆에 두고 찍어봤다.(사진은 대충 찍었으니 크기만 확인하시라..)

보여줄 수 있는 건 크기 밖에 없는지라,..
맛은 직접 드셔보는 수밖에. 강추다.
한근에 12원, 또는 14원 했다.(가게에 따라서)
위 사진만큼이 43원(6500원 정도?)어치이다.

바이두에서 여지왕을 검색해 보니 재미난 게 뜬다.
1. 홍콩 출신 하드코어 밴드 이름이 여지왕(King Lychee)이다.
나야 머 이쪽 음악은 잼병이라 수준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만.
음악을 아는 분들은 직접 들어보시고, 딱딱한 껍질 속에 말랑말랑한 내용물과 함께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단단한 핵심이 있는지 느껴보시라.

2. 정말로 "여지王"을 뽑기도 한다.
해남도 해구시에서 거행하는 여지문화제의 여지왕 왕보걸(王宝杰)씨다.
맛, 육질, 외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한다고 한다.
이 기사로 보면 올해 여지는 아주 풍작이었다는데, 내가 먹은 그 여지들은 왜 비싸고 맛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암튼 왕으로 뽑힌 아저씨의 웃음이 아주 친근하다.

(http://www.hq.xinhuanet.com/news/2008-06/19/content_13590488.htm)

 

3. 씨없는 여지왕에 대한 기사도 보인다.(http://www.foodqs.com/news/gnspzs01/200862417147611.htm)

기사에 따르면 올림픽 추천 과일이기도 한 이 "씨없는 여지왕(无核荔枝王)"은 전세계에서 해남도에서만 생산되며 해남도에서 항공편으로 수송해와,
베이징 신발지(新发地)에 위치한 올림픽과일 전문매장에 6월24일부터 진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이런 것도 있었나?)

1년 중 6월에만 생산되기 때문에 생산량이 아주 적고, 도매가가 킬로당 76원(런민비)에 이른다고.

비싸기도 하거니와 이런저런 이유로 상해에서는 먹어보기(구경하기) 쉽지 않겠군!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6/28 04:30 | flaneur |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