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ㅣ계>는 1940년대 상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에 그 시절의 상해 모습을 언뜻 살필 수 있다. 와이탄이나 프랑스 조계 등 비교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는 운하 옆 허름한 집 같은 경우 주변의 소도시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3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부에서 알려주는 지도로 볼 때 와이탄에서 북쪽으로 홍구로 넘어가는 장면이어야 하는데, 그 장면은 상해가 아닌 시탕(西塘)에서 촬영되었다. 현대화된 상해(푸동, 와이탄) 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이 늘어선 시탕의 이미지가 중국이란 표상을 외국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정도로 이해해야 되겠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톰 크루즈가 달려갔다면, 아래 지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 다리를 넘어가야 했을 것이다.)
<색ㅣ계>에서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여주인공 왕자즈는 이 선생에게 점점 마음이 기우는 한편 빨리 암살기회를 노리라는 독촉을 함께 받는다. 이때 이 선생이 불러 이 다리를 넘어 홍구(虹口)로 건너간다. 이 다리는 즉 영국조계지인 와이탄에서 일본조계지라 할 수 있을 홍구로 넘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서 왕자즈의 마음 또한 어느 한쪽으로 넘어간다.
10월1일 국경절을 맞아 오랫만에 와이탄에 나갔다가 일행과 헤어져 와이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와이탄을 따라 나 있는 중산동일로는 공사 중이라 먼지가 자욱했다. 오랫만에 쑤저우허를 따라 올라가면서 골목길을 쏘다닐 셈이었다. 그 전에 와이바이두 다리만 건너면 있는 푸장호텔에 가서 화장실을 쓸 생각이었다. 이 호텔은 상해 최초의 호텔인 리차드 호텔(1846년)을 이전 개축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1907년)도 꽤 보존가치가 있고 내부도 고풍스러운 맛이 남아 있다. 2005년(?)까지는 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방도 제공되었으나, 이후 상해시 보호문물인가가 되고부터 방값이 대폭 올라버렸다. 투숙은 못하지만 급한 볼일은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길은 다른 곳으로만 뚫려 있고 와이바이두 쪽은 공사장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건너편에 있는 브로드웨이 빌딩(上海大厦, 현재broadway mansions hotel)과 푸장 호텔(浦江饭店; Astor House Hotel), 러시아 영사관 등을 찍기 위해 살짝 열린 철문 사이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상해는 워낙 공사중인 곳이 많아 뭐 또 새로운 건물 하나가 들어서나 보다 생각했을 뿐. 뒤돌아서 나온 후 우회도로를 따라 다른 다리로 가서야 이 다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와이바이두 교 옆에 있는 고가도로(吴淞路闸桥)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래 사진처럼 고가도로만 남아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정보를 확인해 본다.
확인 결과 설계 당시 50년 수명이었던 이 다리는 100년을 잘 견딘 후 2008년 3월 1일부터 통행금지, 4월 7일 해체한 후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와이탄 등지의 건물에 적용하고 있는 "옛 것을 옛 모습 그대로 고친다(修旧如旧)" 라는 원칙에 따라 와이바이두 다리도 다시 50년의 수명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2009년) 1월 15일 수위가 올라갈 때 원래 위치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공사가 와이탄 앞의 도로(중산동1로)를 정비하여 와이탄에 보행도로를 넓히고 광장을 신축하는 계획이다. 와이탄 앞 도로가 지금 먼지를 날리는 이유가 바로 이 공사 때문이다. 와이탄 남쪽의 연안고가를 철거했고, 북쪽의 와이바이두 다리도 철거했다. 와이탄이 현재 처리하는 교통량이 엄청난데, 그것을 모두 지하로 옮기고 지상은 최소한의 도로만 남겨둔 채 공원화하는 계획인 것이다. 일단 지하를 달려야 하는 차량들은 조금 괴롭겠지만, 상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와이탄은 자동차의 방해를 덜 받고 훨씬 넓고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와이탄의 광장 조성 계획은 추후에 포스팅 예정)
아래는 내가 놓친 다리의 해체작업에 관한 사진을 찾아 옮겨 놓는다.
저수위일 때 운반선이 다리 밑으로 들어간다. 운하 위쪽에서 물을 방류하여 수위를 높이고, 운반선에서는 내부의 물을 배출하여 운반선이 다리에 닿게 한다. 그 다음은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각 그림에 대한 중국어 설명을 번역한 게 아니라, 다른 신문 등의 내용을 뭉뜽그려 간단히 설명한 것임). 다리는 현재 민성루 부두(民生路码头)로 옮겨져 수리 중이다.
다리가 사라지기 전 모습은 아래와 같다. 와이탄(황포공원)에서 홍구쪽을 바라보는 모습과, 그 대각선 위치에서 푸동쪽을 바라볼 때 와이바이두 다리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흉물스러운 쇳덩어리 다리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도 상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중국" 하면 떠오르는 아치형의 자그마한 다리의 운치도 없고, 건너편 푸동의 동방명주와 어울릴 법한 현대적인 맴시도 없다. 우리나라였다면 6.25로 폭파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70년대 정도에 철거되어 이상하게 촌스러운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을 것이란 상상도 해본다. 허허벌판이던 푸동은 완전히 최첨단으로, 황포강 서쪽 포서는 될 수 있으면 옛 모습 그대로, 이것이 상해 도시관리의 기본정책이다. 어쨌든 상해 토박이에게 이 다리는 아주 각별한 것이라, 철거 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자기 기억에 있는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뜻일 것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와이바이두 다리의 옛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쑤저우허의 33개 다리: http://www.news365.com.cn/wxpd/sh/mjsh/200804/t20080421_1841590.htm
모형: http://www.modtoy.com/index.php?gOo=article_details.dwt&articleid=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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