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조리돌림 2012. 5. 28. 01:03

"지금 대학이 중세시대처럼 학문만 하는 상아탑도 아니고요
산업혁명 이후 대학의 기능이 분명히 바뀌었고, 그리고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건데
취업이 대학의 성과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난데
어떻게 취업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흐) 저는 그게 더 이해가 안 가거든요.
대학 가서 학문만 하고 대학졸업하고 백수가 돼야겠다
이러면서 대학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지금 시기에..
그러면 대학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뉴스타파 16회, 39:17-39:50 구간. 교과부 관계자 인터뷰.


42. 일과 권태. -- 보수를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문명화된 나라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동일하다. 그들 모두에게 일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일을 선택함에 있어 섬세하지 못하다. 그 일이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하지만 일의 즐거움 없이 일하기보다는 차라리 몰락하기를 바라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 까다롭고, 만족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일 자체가 모든 이득 중에 가장 큰 이득이 아니라면 많은 금전적 이득은 아무 소용이 되지 못한다. 모든 예술가와 사색가가 이런 드문 종류의 인간에 속한다. 그러나 그 외에 자신들의 삶을 사냥이나 여행, 혹은 연애와 모험에 바치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모두는 그 일이 즐거움과 결합되어 있을 때만 일과 어려움을 원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지극히 어렵고 힘든 일일지라도. 그 밖의 경우에는 단호하게 나태를 택한다. 심지어 가난, 불명예, 건강과 생명의 위험이 그 나태와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은 권태보다도 기쁨 없는 일을 더 두려워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일의 성공을 위해 권태를 필요로 한다. 사상가와 창조적인 정신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권태는 순조로운 항해와 즐거운 바람에 선행하는 유쾌하지 못한 영혼의 "무풍 상태"이다. 그는 이것을 견뎌내면서 그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범속한 천성을 지닌 사람들이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수단을 다해 권태를 몰아내려 하는 것은 기쁨 없이 일하는 것만큼이나 천박한 짓이다.


-- <즐거운 학문>


'示衆 > 조리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야만의 풍경  (6) 2010.01.20
시국선언이라는 말  (4) 2009.06.11
우한대학의 벚꽃과 기모노 사건  (6) 2009.03.23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10. 1. 20. 03:13
저녁을 먹었음에도 출출해져 잠시 고민하다 운동삼아 자전거로 조금 멀리 밤참을 먹으러 가기로 결심.
택시로 15-20분(기다리고, 길이 막히는 등), mtb로 25분 거리인데 조금 불편해도 아무렇게나 세워둘 수 있는 일반자전거를 타고 갔다. 어차피 운동 삼아 갈 생각이었으니 조금 힘들어도 달려볼 생각이었다. 사오십 분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는 30분. 이거 뭐, 비까번쩍 mtb랑 별 차이도 안 나는구먼. 밤이라서 도로가 한적했기 때문일 터.

나설 때부터 공기가 무거운 게 비가 올 것 같던만 역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맛있게 설렁탕 한 그릇 먹고 나오는데 자전거가 살폿이 젖어 있었다. 우비를 사 입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되돌아왔다. 촉촉한 아스팔트 길.

사거리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이, 구경꾼이 몰려 있으면 그건 사고가 났다는 뜻이다.

나는 다행인지 어쩐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고를 당한 적도 없었고, 사고현장을 목격한 적도 없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아슬했던 몇 번이 있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작은 사고의 경험도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알고 있는 사고대처요령도 당황해서 머리가 하야지지 않을까 싶다.

전기자전거가 나뒹굴고 있고, 승용차 유리도 깨어져 있다. 아스팔트에 한 사람이 누워 있는데,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멈췄다. 손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겨울이고, 비가 오고 있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 경찰이고 구경꾼이고 아무도 그를 일으키거나 구급차로 옮기지 않는다. 그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데 말이다.

경찰은 느긋하게 사고경위를 따지며 사고차량과 피해지점을 오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저기 누워 있는 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 말고 뭐가 더 중요한 게 있단 말인가.. 현장을 보존하고 책임소재 따지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사고 후 그 몇 분 때문에 사람 목숨이 오가는데,.

상해시 도로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몇 가지 규정(上海市道路交通事故处理若干规定)

제11조 (교통사고 책임의 추정)
교통사고 당사자가 위치를 표시하지 않고 교통사고 현장의 차량이나 물품을 이동시켜 교통사고의 책임을 확정할 수 없을 경우 교통사고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第十一条 (交通事故责任的推定)
     交通事故当事人未标明位置而移动交通事故现场的车辆或者物品,致使交通事故责任无法认定的,应当负交通事故全部责任。

중국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공안에게 신고하고 공안(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구급차가 먼저 오는 경우에도 공안이 오지 않으면 이동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전에도 레미콘 차량이 승용차를 덥쳐 아버지는 즉사하고 다리가 절단된 아들은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고 한다. 퇴근시간이라 경찰이 도착하는 데 2시간이 걸린 것. 살지 못했다. 작년에 교회에서 귀가하던 한국인 아주머니들도 이런 규정 때문에 한 분도 못 살았다.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수혈이라도 했다면 한둘은 살릴 수 있는 경우였는데 말이다.

찾아본 교통사고 관련 규정에는 책임규명과 현장보존, 보상에 관한 사항들만 있을 뿐이다. 법규와 돈은 있는데 사람이 빠져 있다.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

우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일 그 자리에 누워 있을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사람 목숨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이들의 태도에 "야만"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살만해져 2020년에는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어 있어도 당신들이 그렇게 바라는 세계 최고가 될 리는 없다는 점,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당신들의 방식에 사람은 빠져 있고 효율만 있다는 것, 땅밑에서 신음이 들리는데 그냥 말 그대로 덮어버리는 식으로 지진현장을 효율적으로 처리한 당신들, 탱크로 천안문의 시민들을 밟아버리는 식으로 생각을 막아버렸던 당신들. 그것을 실행하는 게 사악한 그들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모두의 동의에 의해서라는 것.

한국과 중국은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거리다.

'示衆 > 조리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과 권태, 취업과 백수  (0) 2012.05.28
시국선언이라는 말  (4) 2009.06.11
우한대학의 벚꽃과 기모노 사건  (6) 2009.03.23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6. 11. 01:19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이후 4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동참했고, 대학사회를 넘어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블로거 시국선언도 준비중이며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선언문을 포스팅하거나 트위터로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트위터 시국선언 참여자 명단) 나도 그참에 트위터에 가입하고 슬쩍 이름을 올리긴 했는데.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누르고 있다.

우선, 시국선언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나 소나 시국선언 한다고 나서느냐?"

시국선언에 참여한 많은 사람을 개나소나로 만들어 버린 단초는 정부의 첫 반응이 제공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대 교수가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124명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냐?"

1700여 명 vs 124명 이라는 숫자로 계량화하는 순간 시국선언의 취지나 의미, 구체적인 선언문의 내용, 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의 고민 같은 것은 사라진다. 자연히 건국이후 최대라는 시국선언 참여교수 4000명 돌파 또한 무의미하다. 전국의 교수는 또 얼마란 말인가. 무게가 달라진 것은 교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지식인, 혹은 최소한 어른 취급 받던 대학생들이 지식인은커녕 미성숙한 어린애 취급받는 분위기에 비례하여 교수들에 대한 인식 또한 예전만하지 못하다. 그들 또한 그냥 직업인이며, 자기 세계에 파묻혀 뭔지 모를 것들을 하는데 돈도 별로 못 버는 것 같고, 알게모르게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 같더라는. 이미 교수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의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을 기대하던 시대는 지났다.(배부르게 "잠수함의 토끼"를 교수들에게 요구할 것까지도 없다.) 그것까지도 MB는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교수에게 그런 권위가 사라진 것처럼, 경찰과 검찰에도, 정치인에게도,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위는 이미 사라져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총통에게 돌려줄 수 있다. 국민이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유권자의 30%의 찬성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유권자에 더하여 투표권이 없는 시민들까지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할 것 아니냐? 자기 편한 숫자만 취하지 말고 공평한 잣대를 들이밀자면, 그냥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비록 07년에는 지지했지만 지금은 돌아선 사람들까지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90%의 권력을 가진 상위 1%를 위한 일만 하는 주제에, '다 잘 되자고 하는 짓이다. 비록 지금은 나를 비난하지만 결국엔 나를 칭송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버티기에 좀 버겁지 않니?

또 하나는 블로거 시국선언문.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몇 개 읽어봤는데, 우선 참여교수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 보인다. 즉, 왠지 이런 자리에 낄 것 같지 않은 의외의 교수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 있어야 할텐데 빠진 사람도 없지 않다. 선언문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들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꼭 짚어야 할 사안들을 거론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엠비에게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강조한 인하대학교 시국선언이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구글독스에 정리된 블로그 시국선언문에도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 있지만, 왠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수들 흉내내지 말고 블로거로서의 특징을 좀 더 낼 방법이 없을까? 블로거다운 글로 블로거들의 요구를. 물론 시국선언이니만큼 블로그나 인터넷에 한정되지 않은 현 시국에 대한 진단과 요구가 들어가야겠지만, 그걸 적절하게 표현하는 블로거다운 방식은 뭘까? 캡콜드님의 140자 선언문의 모음?

사회적 삶의 질이 개판이고, 그게 상당 부분 너네 때문. 용케 대통령과 국회 과반 먹은 건 알겠는데, 여기까지 엉망이면 난감.

1.남의 말도 좀 듣고, 말 좀 막지마.

1.너네편이라고 쭉정이들만 자꾸 기용하지마.

1.같이 잘살아보게 궁리 좀 하자 좀.


작가들이 가장 작가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블로거다운 방식이 더 많은 공명을 얻어내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작가들의 선언을.. 엠비 공무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6·9 작가 선언-이것은 사람의 말'

아마도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이런저런 고려 때문에 쉽게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가장 간단한 건, 어쩌면 선언문 따위 제쳐두고. 바로 저들의 논리, 즉 "블로거가 몇 명인 줄 아느냐?"라는 말이 쑥 들어가게 엄청난 인원, 최소한 500만 정도가 블로거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게 어차피 읽지도 않을, 혹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선언문을 만드는 것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고작 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말의 힘. 말 속에 숨어있는 의미의 힘.이 점점 작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를 뱉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외면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示衆 > 조리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야만의 풍경  (6) 2010.01.20
우한대학의 벚꽃과 기모노 사건  (6) 2009.03.23
중국의 지도교수는 사장님?  (0) 2009.03.05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3. 23. 15:20
요즘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상해에도 벚꽃이 폈는지 잘 모르겠다만
비도 오고 추워져서 봄 기분 내기는 힘들겠다(라고 변명하며 더 안나가고 있다...)
상해에도 벚꽃이 양옆으로 늘어선 길이 있을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있다 해도 상해는 벚꽃과 그리 썩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왠지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중국에서는 우한(武漢)대학이 전국적인 벚꽃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나 보다.
하루 10만명이 다녀갈 때도 있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학생이 아니면 입장료까지 내고 봐야 한다고 한다. 한때는 일본의 상징으로 배척당하기도 했다.(경향일보: “일본軍이 심은 벚꽃은 중국의 수치다” ) 그 논쟁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니 그냥 상징은 상징이고 꽃놀이는 꽃놀이대로 즐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꽃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다 봉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지난 주말에 일어났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모노 입은 쪽바리는 꺼져!

어떤 모녀가 기모노를 입고 우한대학에서 꽃놀이 사진을 찍다가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일행은 사진을 찍어주던 중년 남성과 그들을 수행하던 젊은 여자까지 해서 총 4명이었다. 모두 우한 지역 사투리를 쓰고 있었지만 복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0여분 정도 사진촬영을 하는데 갑자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모노 입고 우한대에서 사진 찍지 마!"라고 외쳤고, 뒤이어 "기모노 입은 일본인은 꺼져라!"라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모녀는 놀라며 다른 곳으로 피했지만, 순식간에 10여명이 몰려와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어떤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한참 욕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모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즉시 기모노를 벗어 수행하던 여자에게 주고 그곳을 급히 피했다. 엄마는 얼굴이 벌개진 채 어쩔 줄을 몰라했고, 수행하던 여자는 "신경쓰지마, 별 거 아냐, 미친 놈들이지 뭐"라고 여자애를 달래고 있었다.

기자가 쫓아가 왜 기모노를 입고 왔는지 물어보니,
"기모노 입고 사진 찍으면 예쁠 것 같아 그랬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건 자체만 보면 정보학과 2학년생이 똘아이짓 한 것으로, 대학신문에나 간단하게 언급할 내용이지 전국지에 실릴 정도는 아니다. 열 댓명이 고함 몇 번 질러서 놀러온 일가족을 위협한 정도다. 블로그 이슈라면 모를까, 포털 검색어에 등장할 정도는 아닌 듯. (궁금하면, 다음 문구를 긁어서 바이두해 보시길.. 기모노(和服)만 치면, 和服事件, 和服女, 和服 武大, 和服 樱花, 和服 武汉 등등이 자동입력창에 뜰 것이다.)
작은 걸 부풀려 이슈로 만드는 찌질이 상업지의 속성인 것이지, 은근히 반일 기류를 만드려는 정부의 속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혹시 나 몰래 마오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지도 모르겠다만..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an)이 중국에 와서 민족주의적 옷을 입은 걸 "분청(愤青; 분노한 청년)"이라고 하는데, 분청들 사이에서도 잘했니 못했니 말이 많은 것 같다. 하긴 "분청(粪青; 똥칠하는 청년)"이 저질러 놓은 것을 "분청"이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해결이 되겠나만은.

벚꽃이 일본의 상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과 상관없이 꽃놀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일본의 상징인 줄 알면서 벚꽃과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모노를 입은 사람을 성토할 자격이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 진해에서 어떤 한국인 가족이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면?

코스프레??

'示衆 > 조리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국선언이라는 말  (4) 2009.06.11
중국의 지도교수는 사장님?  (0) 2009.03.05
청동 토끼와 쥐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0) 2009.02.15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3. 5. 20:15

언젠가 한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상해에서 유학하고 있는 후배들과 잠깐 다니러 온 선배 교수가 만난 자리였는데,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그 선배에게 한수 가르쳐 주듯 중국에서는 어떠어떠하다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떠들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때 한 친구가 "중국에서는 지도교수를 사장님(老板; 라오빤)이라고 부른다"고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 친구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해서,

나는 우리 지도학생들은 선생을 "라오빤"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는데?

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대답은 (전체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당신이 당신 지도교수 밑에 있는 다른 중국인 지도학생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그렇다!" 였다. ^^;;

뭐, 사실과 많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만, 후배에게 까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거시기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지도학생 모임(졸업생, 현 석박사 과정생이 모두 모이는 자리이다)에서 우연히 한 졸업생이 "라오빤"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녀와 교수의 관계는 예전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에 더하여 현재는 학과 주임과 사무실 직원의 관계이기도 해서 이 "라오빤"이 아주 어색한 것은 아니다.

어쨋든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지도학생들은 그 말은 안 쓴다고 우기고 싶은 것이다!! 쳇! ㅡㅡ;;

(나는 우리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중국의 사제지간에 대한 지식을 여럿 수정해야 했다. 그것은 오히려 박노자가 지적하기 이전의 우리나라 사제지간을 닮은 그것인데, 묘하게 다른 면도 있다. 그것이 단순한 교수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인지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여튼, 하나의 경우를 "중국의~" 무엇이라고 일반화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그러다, 얼마 전 첸리췬의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첸리췬은 북경대에서 퇴임 후 문혁 전후에 몸담은 바 있는 귀주로 내려가 향촌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대학은 정신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大学应该成为“精神圣地”)라는 제목의 이 글 또한 향촌교육, 혹은 지역특성화 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귀주대학에서 행한 강연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한, 즉 크게는 문혁 이전까지 소련식 학제에서 최근의 미국식 학제를 모방하려는 경향에서 작게는 북경대, 청화대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 지역 내부에서 교육의 자원을 찾고 각 지역의 전통과 특성에 맞는 교육을 첸리췬은 강조하고 있다. 그 실례로 귀주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적, 전문적 교육과 함께 "서원식 교육"(왕양명이 귀주에서 서원을 열었나 보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중 "나의 서원교육 몽상"이란 절의 앞부분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나의 서원교육 몽상


   개인적으로 나는 왕양명의 서원교육에 가장 흥미를 느낀다. 이것은 내가 꿈꾸던 것이다. 서원교육은 사실 중국교육의 좋은 전통의 하나이다. 이쪽으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좋은 연구를 내어 놓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즉 서원교육이 오늘날 우리의 대학교육에, 특히 대학원생 교육에 참고로 삼을 만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나아가 "서원식 교육"을 실험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교육에 대해 내가 가지고 꿈꾸고 있는 몽상이다.

    내가 이러한 꿈을 꾸는 것은 지금의 대학원생 교육이 문제이며, 다른 교육자원을 찾아 참고하고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 요즘은 사제관계(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변해 버렸다는 점이다. 갈수록 "사장"과 "알바생"의 관계로 변하고 있다. 요즘 많은 지도교수들이 "사장"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듣자하니 명실상부하게도 요즘은 지도교수가 되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즉 반드시 국가나 성급 학술 프로그램을 따야 하며, 그 프로그램의 경비를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학생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거야 이공계열에서는 일찌감치 그래왔던 건데, 최근에는 문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사제관계 변화의 배후에는 교육의 변질이 도사리고 있다. 즉 지식을 사고파는 관계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매매는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으로 변해 버렸다. 거기에는 마음의 교류, 사상의 충돌, 인격의 영향, 성정(性情)의 훈도, 정신의 흡인과 전달 같은 게 없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교육의 본질적인 것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면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서원교육은 분명 장점을 갖추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바에 따르면, 서원교육은 사제와 동학 간의 밀접한 교류, 즉 아무런 조건없는 접촉을 중시할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감응에도 또한 주목한다. 인간집단 내에서의 화해 및 인간과 자연의 화해라는 분위기 아래서 인간의 생명은 차분히 가라앉은 침잠된 상태로 진입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만 정말로 마음껏 독서의 즐거움, 학문하기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또한 생명, 우주, 인생, 인성, 중국, 세계, 인류 등 거대한 문제에 대한 사고를 즐길 수 있으며, 사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진정한 교육과 학술의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현대 교육, 특히 오늘날의 중국 대학교육, 대학원생 교육에서는 전혀 꿈꾸지 못한다. 우리의 교육은 갈수록 가시적인 이익 추구에 급급하며,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갈수록 조급하다. 그것은 우리가 교육과 학술에서 갈수록 멀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분적으로라도 학원식(아마도 "서원식"??) 교육방식을 도입하여 짧게나마 실천의 기회를 줘서 젊은 학생들이 교육과 학술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 지금의 교육은 정말로 증오심이 일 정도로 밥맛이다. 나의 몽상은 이렇게 가련한 소망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천애>, 2008년 5기. (《天涯》 2008年第05期)


첸리췬이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길게 하지는 않겠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이고, 글로 정리하려면 쉽지 않으니까..

그러나 자기 영역에서 이제껏 해온 연구를 정리하기만 해도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퇴임한 대학교수가 귀주까지 내려가서 중학교에서 노신 강의를 하기도 했고, "중학생들도 머리가 너무 굳었어~!"라면서 소학교에도 기웃거려 보는 인물이다.

이 글만 읽어도 그가 보여주는 어떤 입장은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까 한다. 생긴 게 꼭 항주 영은사의 미륵불처럼 생겼는데, 역시나 (조상의) 본적이 항주이다.

단순히 "지도교수"와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문제가 생각나서 이 글을 옮겨 번역해 보기는 했는데,

처음 읽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한글로 정리를 해 봐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면에서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새길 만한 부분이 많은 글이다. 저 높은 SKY만 바라보고 지방에 남은 절대다수는 실패자가 되어 버리는 현실 말이다. "돈"이 유일한 가치평가의 기준인 상황에서는 누구도 그 울타리를 깨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지방대 출신이 삼성 들어간 거나, 지방대 대학원생이 미국 대학교수로 취임한 것에 우쭐하는 것으로 그칠 테니까. 동일한 기준에서 움직이는 것. 첸리췬 스스로 이상주의라고 한 것처럼, 그것을 대체할 어떤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누가 "이상"의 이름으로라도 아직 오지 않은 그것을 제시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


하여튼 결론은 앞으로 누구도 함부로 지도교수를 "라오빤"이라고 부르지는 말지어다!!!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2. 15. 03:14

신문을 보다가 궁금한 부분이 있어 관련사항을 검색해 본다.

 

중-프랑스 이번엔 ‘문화재 싸움’

 

 

분수로 사용된 이 12지상은 고장나서 원명원의 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2차 아편전쟁 당시 약탈되었다고 한다. 코에서 물이 졸졸 나왔단 말인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약탈 문물을 경매에서 구입할 것인가, 반환요구를 할 것인가이다.

 

중국인이 개인적으로 경매에서 구입한 후 국가에 기부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다.

그런데 원래 자기 소유였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다시 구입해 온다는 게 영 찝찝할 것이다.

게다가 동일한 12지신상의 일부인 돼지머리를 600만 위안에 구입한 적이 있는데, 토끼와 쥐의 경매가는 2억 위안을 호가한다. 중국측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긴 하지만 물건 자체가 그렇게까지 고가인 것은 아니라는 것. 훔쳐가서는 비싼 가격에 경매를 부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러나 반환요구 또한 쉽지 않다.


우리가 사들여서 청와대에 기증하는 건 어떨까?



현재 80여명의 변호인단이 법률소송으로 경매를 저지하고 반환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법률 소송으로 갈 경우 증명해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많다.

 

또한 소송의 원고를 "애신각라"(爱新觉罗; 청 황조의 성씨)의 종친회로 한 점 또한 문제가 된다.

소송에 국가가 나서면 국가 대 국가의 대결국면을 조성하여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을 내세운 것인데(따라서 원명원이나 약탈유물 관련 단체가 원고가 되기를 거부했다), 이 경우 소송이 성공하더라도 청 황실의 유물이 애신각라의 후손들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 애신각라씨 후손들이 중국과 대만의 박물관에 소장된 그 많은 보물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오면 볼 만 하겠다..(그런데 애신각라를 성씨로 쓰고 있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암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심정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법률적, 현실적으로는 풀지 못한다는 난점이 있는 것 같다. 깊히 생각하지는 않고 신문을 보다가 대충 찾아본 내용 일부를 정리해 둔다.

 

그런데, 아래 설문 내용이 인상적이다. 공신력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뜻밖이다.

 

*원명원의 유실 문물, 어떻게 해야할까?  (투표수: 961)

 

반환되어야 한다, 어쨌든 구입하는 방식은 안돼. 40.58%

돈이 얼마가 들어도 반드시 사 와야지.. 4.99%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나라의 힘을 키우자. 22.58%

외국에 그냥 둬라, 반환되어봐야 아끼지도 않을 걸. 31.58%

 

·圆明园流失的文物,该咋办? (得票数:961)
应讨要,无论如何都不买 40.58% 390票
务必都买回来,不惜重金 4.99% 48票
不着急,先力争国富民强 22.58% 217票
放国外吧,要回也不珍惜 31.85% 306票
投票起止时间:2009-02-14 至2009-02-16

http://vote.talk.163.com/vote/results.jsp?voteid=34551

 

약탈 유물은 원래 중국 소유였으니 당연히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긴 하다.

그런데, 그냥 내비 둬라. 거기 그대로 있는 게 낫다. 라는 의견도 비슷하게 많다.

 

남겨진 유산이 워낙 많아서 아까울 게 없다는 태도인가, 아니면 중국의 문화재 관리를 믿지 못해서일까?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12. 1. 05:07
개혁개방 30년 이래 중국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해외전문가 15인이 선정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수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중국의 현대화 건설에 이바지한 바, 그들의 업적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잡지<국제인재교류>에서 발의한 것으로, 총 29인의 후보자가 거론되었고 이 중 "공헌력"과 "영향력"을 기준으로 15인이 투표로 선정된 것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전문가가 숫적 우위에 있으며 최근의 사스, 지진, 올림픽과 관련된 인물이 많다. 특이하게도 일본 전문가 3인이 선정되었다. (한국인은 중국하키 국가대표 김창백 감독이 후보에 올랐다.)

..
선정 결과에 지나치게 신경쓸 필요는 없으나, 거론된 후보자와 선정된 전문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http://world.people.com.cn/GB/41214/8245037.html
http://www.gg-px.net/ndetail.aspx?id=11030
http://news.sina.com.cn/c/2008-11-30/105714807752s.shtml

(중국어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표기)


  1.与中国人民携手战胜非典的健康卫士——贝汉卫; Henk Bekedam

중국인민과 손잡고 사스를 물리친 건강 지킴이.



  2.20世纪最为杰出的华裔建筑大师——贝聿铭;Ieoh Ming Pei; 베이위밍

20세기 가장 걸출한 중국계 건축가. “미국 역사상 가장 우수한 건축가”란 칭호로 불리며,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Pritzker) 상을 수상하였다.



  3.站在时代风口潮头的“洋厂长”——威尔纳·格里希Werner Gerich (1919-2003)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초청된 서양 공장장으로, 그가 근무했던 1984년-86년의 시기 동안 중국의 낙후된 공장관리 시스템을 일신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4.香港新一代商界领袖和慈善企业家——霍震寰



  5.心系祖国科技事业的科学家——李政道

조국의 과학기술 사업에 힘쓴 과학가(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정다오.



  6.中央电视台首位“洋主播”——艾德文·马厄(Edwin Charles Maher)

CCTV 최초의 서양 뉴스앵커 : 에드윈 마허



  7.关注中国经济发展的“欧元之父”——罗伯特·蒙代尔Robert A. Mundell

2003년 사스에도 불구, 뉴욕의 본사를 베이징으로 옮겨 중국에 대한 믿음 보여줌. 미국의 인민폐 절상요구에서도 중국의 입장에서 절상반대. 금융인재 양성 위해 40여개 대학의 명예교수 맡으며 활발한 강연활동.



  8.“一村一品运动”发起人——平松守彦Morihiko Hiramatsu

일촌일품운동 발기인.



  9.1美元年薪的清华大学客座教授——约翰·桑顿John Thornton

연봉 1달러의 칭화대학 객원교수. 1120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10.藏区盲童的“光明使者”——苏珊·萨布莉亚·坦芭肯Susan Sabriya Tenberken



  11.抗震救灾现场的“白求恩”——莫瑞斯·托帕兹Moris Topaz

사천대지진 현장의 "닥터 노먼 베쑨" : 모리스 토파즈.



  12.北京奥运功勋人物——海因·维尔布鲁根Hain Verbruggen



  13.新中国第一个回国访问的华裔知名学者——杨振宁

양전닝(중국/미국 물리학자; 楊振寧, Yang Chenning, 양진녕)은 리정다오와 공동으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받은 물리학자. 얼마 전 54세 연하의 제자와 결혼함(82세 때 28세의 제자 웡판과 결혼).



  14.来自日本的“治沙愚公”——远山正瑛TOYAMA SEIEI(已故)

일본에서 온 "사막을 치유하는 우공" : 도오야마 세이헤이(작고)

인간의 작은손, 거대한 사막을 밀어내다

중국에 푸른 기적 일으킨 일본 노학자


志愿者举行远山正瑛纪念活动(一)


  15.情系中国水稻事业的日本专家——原正市HARA SHOICH

중국에 일본식 한랭지 재배기술을 도입.



"일본식 비닐 온실 육묘의 도입으로 수도(水稻)의 생산량이 10%늘었다."(http://agre.krei.re.kr/file/pdfsource/WRD-00027.hwp)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10. 26. 06:55
얼마 전에 상해에서 개최된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World Congress of Food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우유의 하나인 "이리"가 수상했다.

이미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 뿐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터라, 정부와 관련업계로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던 듯하다. 이번 멜라민 파동이 전 중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단순히 브랜드만 보고 멜라민이 들어있는 우유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 낙농업자가 다르고, 관리방식이 다르고, 그 해결방식도 다른 것 같다.(멜라민 여부도 지역별 메이커를 봐야 한다. 북경만 중국은 아니니까.) "싼루"를 비롯한 대표적인 멜라민 우유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우유를 안 먹을 수도 없고 싸잡아 비난하기도 말보다는 쉽지 않다. 상해는 몇 년 전부터 엄격한 관리를 해 안전하다는 정부쪽 성명을 그냥 믿기로 했다. 일단은 생우유만, 어제부터.. ㅡㅡ;;

암튼 이리 우유의 식품올림픽 수상 소식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글이 재미난다.
그 중 최고는 물론 "SF"라는 답글이다.
아래에 기사와 답글을 내 맘대로 취사선택하여 한국어로 옮겨 본다.



http://club.business.sohu.com/main.php?c=133&b=enjoy&a=1079201


최근 전세계 유업 성장률 50% 초과는 중국의 공헌이다. 이 숫자는 또한 중국유업계에서 신제품 생산에 있어 끊임없이 노력한 것을 보여준다. 10월 20일 이리(伊利) "소화 잘 되는 우유"(营养舒化奶;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저유당 우유의 일종)가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에서 "과학기술 창신상"을 획득했다. 이 상의 수상은 중국 식품업이 이미 양적, 질적인 면에서 세계 일류 수준에 진입했음을 반영한다.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는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행사로 "식품계의 올림픽"이라 불린다.(한국은 2001년 11회 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에는 오대주의 백여 개 국가에서 수만 종의 제품이 선을 보였다. 이리 유업의 "소화 잘 되는 우유"는 고품질, 첨단 기술 제품임을 인정받아 최종적으로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기업은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탁월한 품질만이 세계의 신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찾는 사람들 또한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식품과학기술학회 이사장인 판베이레이(潘蓓蕾)의 이러한 평가는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뤄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는 중국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 식품 관련 회의였으며, 이후 세계 식품업계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 중국인 업자는 기자의 인터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대회의 중국 개최는 중국 식품업계가 국제적인 명품 브랜드와 직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리 제품의 수상은 세계로 하여금 중국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하게 했을 뿐 아니라, 중국 식품관련 기업들이 더욱 열심히 더 좋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도록 해 준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줄곧 브랜드보다는 품질을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번 수상도 그렇고, 올림픽 협찬의 성공도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이리의 품질 우선 정책은 정확하고 실천가능한 것입니다." 이리 그룹의 회장 장젠추(张剑秋)는 이렇게 표명하였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유원료의 관리와 기술적 창신은 이리가 존중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발전 방향입니다. 우유원료 합작사의 건설을 통해 우리는 중국유업계를 위해 좋은 발전모델을 제공했습니다. "민주적 관리, 자주적인 경영, 이익의 공유, 위험의 공동부담"이란 방식으로 축산업자와 기업 간의 소통 통로를 열었으며, 낙농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원료 관리의 모든 세부사항이 기업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에 이리는 매년 계속적인 투자를 통해 낙농의 현대화된 설비를 업그레이드하여 가장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우유를 공급할 것을 확신합니다."



답글 1 :   sf

답글 2 : 드디어 소가 왜 하늘로 날아갔는지 알게 됐군. 오늘 또다시 그놈의 품질이 화성인의 품질을 뛰어넘엇다고 허풍을 치는 꼴이라니..
(멜라민 사태 때 여론무마용으로 유인우주선 발사한 것 풍자)

답글 3 : 이리는 쓰레기야.
글 하나로 네티즌들을 바보로 만들려고? 자기들 품질관리나 더 엄격하게 하셔!
"유제품업계 제일"의 모자를 쓰고 "멜라민 함량이 가장 적은 우유"라는 연극은 하지 말고.
친구들, 씻고 잠이나 자라고들~~

답글 4 : 자기 애한테는 멜라민 안 먹이나?

답글 5 :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들! 여러분, 저놈들 우유는 절대 사지 맙시다. 우리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주자구요. 멜라민 집어넣을 땐 대체 뭔 생각을 했던 걸까?

답글 6 : 가증스러운 것들! 멜라민을 못 넣게 되었으니 이제 뭘 또 넣으려고?

답글 7 : 잘 들어! 중국 우유에 멜라민만 안 넣으면 그게 바로 "창신"이야!

답글 8 : 노벨 풍자상 후보로 추천하자구..


답글 9 : 批准~~钦此~~~~~~~~~~~~~~~~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9. 1. 00:01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국은 여전히 올림픽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글쎄 TV를 틀었다 하면 아직도 주요 경기장면이 나오곤 하니 말이다.
한국도 올림픽, 월드컵 등이 끝나면 많이 우려먹긴 한 것 같은데,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 장정일이 에코를 빌어 한 마디 했다.
스포츠 일반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올림픽에 대한 심기를 슬쩍 내비친 것인데.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려고 사창가에 가는 사람"이라는 일갈은 스포츠 관람객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일 듯하다.

나 자신, 미친 스포츠는 없지만 또 보다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보게 되는 것이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 말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사실 그 관음증이다.
그게 뭐가 나쁠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몰래 보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떳떳하게 책을 읽기 위해, 영화를 보기 위해,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써야 하고, 영화를 찍어야 하고, 웹사이트를 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소설을 쓰지 않고도, 영화를 제작하거나 비평에 관여하지 않아도
몰래 나 혼자만 발견한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기뻐한다.
그런 거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자기가 제작해 쓰는 고대로 돌아갈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것이 '유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비판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보면서 어떤 경기의 승패에 따라 국력이 신장되었다가 축소되었다가 하는 느낌을 받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 따위는 문제가 있겠다.
중국이 올림픽 전부터 지금까지 전국민(?)이 그것의 성공 여부에 목을 매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좀 오바다.
어떤 중국애가 이렇게 (농담삼아) 물었다고 한다.
"(한국 니네들) 중국이 올림픽 성공해서 좀 서운해?"
역시 오바다.

올림픽과 ‘스포츠 관음증’

필 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가진 영국의 문화비평가가 그 글들을 모아 에코의 반(反)스포츠론을 완벽히 다듬어낸 일종의 ‘오마주 북’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 부를지 잘 안다.

마 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관음증 환자다. 에코의 말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놀이를 잃어버린 관객들이 생생한 체험을 보상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하며, 피를 보고야 마는 훌리건의 난동은 경기 시간 동안 자기 신체를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청년들의 슬픈 마스터베이션이다. 비약하면, 세계가 놀란 한국인의 응원문화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만큼 자기 향락이 무엇인지 모르며, 실제 스포츠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증거다.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과 육체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라면, 관음화된 현대의 스포츠는 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제거된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잡담가로 타락시킨다. 그들은 장관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축구 감독에 대해 논의하며,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선수의 기록을 복기한다. 또 새로운 정책이나 법령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어제 벌어진 승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면서 마치 중요한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화된 스포츠 경기란 사익에 충실한 극히 개인적인 활동임이 분명한데도, 스포츠 잡담가들은 그걸 국력과 연관지으며 공적(公的)인 화제인 양 기만한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올림픽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사족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면, 사변적이고 나약한 ‘먹물’이라는 기왕의 이미지를 단번에 씻겠다는 듯, 문인들은 참 오지게도 도착적인 스포츠를 예찬하고 스타를 ‘빨아’준다. 유명세를 부풀릴 좋은 기회를 어쩌자고 놓치랴?

장정일 소설가

by luna | 2008/09/01 00:01 | 조리돌림 |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3. 17. 21:45

루쉰의 쇠로 된 방의 비유를 생각해 본다. 사방이 쇠로 막힌 방에 사람들이 자고 있다. 그들은 서서히 질식되어 죽을 것이다. 그들이 깬다고 하더라도 두꺼운 쇠를 뚫고 밖으로 나올 방법은 없다. 아무런 고통 없이 서서히 죽어가게 둘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겠지만 그들을 깨워 마지막 순간까지 그 방을 나올 모든 수를 써보게 할 것인가.


최근 티베트 사태를 잠깐 생각해보다 이 비유를 떠올렸다.


티베트를 어떤 순수하고 신성한 땅, 중국의 식민치하에 억압받는 소수민족의 땅으로 신비화하거나 그런 신비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시위와 중국의 강경대응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은 그걸 재확인시켜 주는 한 사례이다. 중국도 초반에 확 잡아서 올림픽 때 문제가 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도 들 테고 그러면서도 외국 눈치도 봐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도 중국에 한 마디씩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카드의 하나로 생각하는 듯하고.

박노자는 예전에 티베트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티베트가 신성화되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고, 중국 견제용으로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드의 하나이라는 전제에, 더하여 달라이 라마를 수장으로 한 티벳 불교 승려가 신분적으로 최상층을 구성하면서 나머지 인민들을 착취했던 역사를 언급했다. 그 수가 얼마인가, 혹은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해방된 사람도 없지는 않은 셈이다. 문제는 그러한 해방에 수반되는 다른 언어, 다른 가치, 다른 이데올로기의 강요가 빈곤이나 익숙한 억압보다 더 억압적일 수도 있다는 점일 테다.
국 가, 민족을 초월한 신분적 해방이 더욱 행복할까, 익숙한 내 언어, 내 풍속 안에 살 수 있는 민족적 해방이 더욱 행복할까? 이분법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만 놓고 보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이 이분법이 티베트 문제를 아우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냥 뒀으면 정치+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계급/신분에 만족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쇠로 된 방을 다시 떠올려 본 것이다. 쇠로 된 방에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면 그들은 쉽게 질식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당연한 듯이 죽어갈 테니까. 루쉰의 반성은 옳았다. 그 반성이 자기를 포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쉰은 바깥의 초월적 위치에서 방 안의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망설이던 순간에 어떤 희망을 발견했고, 쇠로 된 것으로 보였던 방은 너무 쉽게 벽이 허물어졌다.

그런데, 똑같은 비유를 이런 입장에서 해 보자.
지금 너는 쇠로 된 방에 갖혀 있어. 내가 그 쇠로 된 벽을 허물어 줄께.
이런 방식은 너무나 쉽게 폭력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고 쇠로 된 방 안의 현재에 만족하면서 살라고, 외부의 너희는 간섭하지 말라는 방식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당연하게도.

중국이 만든 벽에도, 달라이 라마가 만든 벽에도 갖히지 않는 방식을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찾아낼 수 있을까..


내 별로 깊지 않은 고민이 바닥을 드러낸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