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을 먹는데, 뉴스에 온통 무인 달탐사 우주선 창어1호가 보내온 달 사진 이야기 뿐이다.
이제와서 다 아는 달 표면 찍어서 뭣에 쓸 건지 모르겠지만, 속셈은 대충 알겠다.
미국하고 맞짱 뜨고,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되고 싶은 거겠지..
“창어 1호의 성공은 힘차게 일어서는 중국의 국력은 물론 높아지고 있는 세계 속의 중국 지위를 상징한다”(원자오바오 총리)
달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로 드높아진 중국의 위상을 자축하고 있을 때,
다른 채널에서는 "남편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하여, 산모와 태아가 죽은 사건"에 대한 심층 보도가 있었다.
지난 21일(수)에 벌어진 모양인데, 오늘 알게 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렇다.
며칠째 기침을 하던 마누라(李丽云; 22세)를 데리고 감기 치료를 하러 병원을 찾은 초씨(肖志军; 34세)는
갑자기 의사들이 산부인과로 입원시키고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수술동의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자
"우리는 감기치료를 위해 왔다, 감기만 낫게 해주면 마누라가 애는 알아서 놓을 거다"는 말만 반복하며 서명을 거부했다.
임신 41주인 산모 이씨는 사실 중증폐렴으로 심폐기능이 이미 상당히 약해져 있어
산모와 태아 모두 극히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에 즉시 제왕절개술을 해야 했다.
그때 즉시 시술했다면 산모와 태아 모두를 살릴 확률이 60~70%는 되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그때 발생했다.
초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한 것이다.
산모는 이미 수술실로 옮길 수도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병실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서둘러 제반준비를 갖췄다.
의사, 간호사, 옆병실 환자, 보호자, 심지어 병원원장까지 나와 번갈아가며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사이 산모가 위기를 맞아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리긴 했지만, 태아는 이미 심장이 멎어버린 상태였다.
다시 한번 위기가 닥쳐 심폐소생술을 한 후 의사들이,
"지금 수술을 하면 어른은 살릴 수 있다"고 또 다시 권해봤지만 되돌아오는 건,
"그녀는 감기 때문에 왔다, 감기만 나으면 애는 마누라가 알아서 놓을 거다"라는 말 뿐이었다.
세 번의 수술기회를 모두 놓친 후, 병원에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산모 리리윈(李丽云)씨는 사망했다.
이날(11월21일) 3시에서 7시 2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는 갑자기 "당신들 왜 내가 서명하지 못하게 막은 거야?"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일단 뉴스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환자나 보호자(가족)의 서명 없이 의사가 수술을 할 수는 없는가? 즉 병원의 책임이냐, 남편 초씨의 책임이냐?
2. 남편 초씨가 정말 합법적인 남편이 맞는가?
3. 남편 초씨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닌가?
4.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비합리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닌가?
이 중 2번 3번은 병원 측에서 경찰을 불러 사건 당일 확인한 바 있다.
합법적인 남편이 맞으며(그러나 신부측 부모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결혼 후 찾아갔지만 쫓겨났다)
간단한 정신측정을 통해 보건대 정신이상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이 때문에 더욱 서명 없는 수술을 병원 측에서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용 문제의 경우, 남편 초씨가 어떤 태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모두들 심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건, 같은 병원에 있던 환자, 보호자 등이 모금을 해서
서명만 하면 1만 위안(125만원 정도; 제왕절개에 드는 비용은 5천 위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거부한 점이다.
병원 관계자들도 돈 걱정 하지 말고 수술을 하자고 권유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 사건에 병원의 책임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호자의 서명 없이 의사가 수술할 수 없다"라는 조항이 있기 위해 필요한 어떤 전제가
아직 중국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모든 수술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모든 걸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면 시술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때문에 수술의 필요성과 생존확률을 보호자에게 알리고, 환자와 보호자가 "선택"을 하게 하는 게 옳다.
그런데 보호자에게 그런 상황에 어떤 선택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 없는 자신의 환경에 대한 걱정은 차지하고라도..)
병원이란 곳은 가만 두면 낫는 병을 괜히 건드려 돈만 잡아먹는 곳이란 생각을 촌사람 초씨는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정말 아내의 "감기" 때문에 온 건데,
의사들이 추운 겨울에 아내의 옷을 벗겨 추워서 감기가 더 심해지게 만들고, 쓸데없이 배를 눌러대 죽게 만든 것이다.
촌에서는 의사가 서명이고 뭐고 없이 치료를 해주니,
서명 안 하고 버티면 병원에서 알아서 치료해주고 그에 따른 책임은 자기가 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환자가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동네 병원에서 급히 대병원으로 옮기고, 대병원에서도 즉각적인 긴급조치들을 취한 정황증거만으로도 알 수 있을)
다른 모든 걸 팽개치고 해야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가난, 무지, 판단능력의 부재가 가져다 준 비극이라고 정리하기엔 ...
그냥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 뿐이다.
사실 이 소식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은,
사건 자체에서 먼저 받았고,
그 사건을 전하는 TV 프로그램의 애매한 태도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담당의사는 가끔 실실 웃으면서 사건당시를 회고했고,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도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담당 아나운서의 말투도 상당히 거슬렸다.
남편 초씨는 법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이 사건을 통해 중국 사회가 반성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냥 "이해할 수 없음"이란 멘트로 마무리를 했다.
죽은 사람도, 남편도, 의사들도, 그걸 바라보는 관중들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인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 있는 가난과 무지를 없애지 않고
외면적인 번영만 추구하는 세계 최고의 중국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달 표면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사진찍는 그 비용으로
지금 자기 땅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찰하는 데 써야하지 않을까?
이게 먼 나라 이웃 나라 가난한 나라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다른 욕망, 다른 상황, 다른 고려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판단능력이 사라져
가장 중요한 뭔가를 놓치곤 하지 않는가.
덧붙이며: 최근 멜라민 사태 때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예정보다 앞당겨 유인위성을 쏘아 멜라민 진화라는 의도를 대부분 알아차렸다. 때문에 위성 타고 우주 가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우주(하늘)로 떠났다"며 그 돈으로 먹거리 걱정없게 하라는 비판여론이 드높았다. 1년 전에는 우연히 대비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 1년 후에는 의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위대한 중국이 좋을까, 행복한 중국이 좋을까? 미국과 제대로 맞장뜨려면 사람들 하나하나가 좀 더 어둠에서 깨어나야(계몽)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올림픽보다는 멜라민 사태가 중국인을 더 깨어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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