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 이후 4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동참했고, 대학사회를 넘어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블로거 시국선언도 준비중이며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선언문을 포스팅하거나 트위터로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트위터 시국선언 참여자 명단) 나도 그참에 트위터에 가입하고 슬쩍 이름을 올리긴 했는데.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누르고 있다.
우선, 시국선언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나 소나 시국선언 한다고 나서느냐?"
시국선언에 참여한 많은 사람을 개나소나로 만들어 버린 단초는 정부의 첫 반응이 제공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대 교수가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124명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냐?"
1700여 명 vs 124명 이라는 숫자로 계량화하는 순간 시국선언의 취지나 의미, 구체적인 선언문의 내용, 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의 고민 같은 것은 사라진다. 자연히 건국이후 최대라는 시국선언 참여교수 4000명 돌파 또한 무의미하다. 전국의 교수는 또 얼마란 말인가. 무게가 달라진 것은 교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지식인, 혹은 최소한 어른 취급 받던 대학생들이 지식인은커녕 미성숙한 어린애 취급받는 분위기에 비례하여 교수들에 대한 인식 또한 예전만하지 못하다. 그들 또한 그냥 직업인이며, 자기 세계에 파묻혀 뭔지 모를 것들을 하는데 돈도 별로 못 버는 것 같고, 알게모르게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 같더라는. 이미 교수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의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을 기대하던 시대는 지났다.(배부르게 "잠수함의 토끼"를 교수들에게 요구할 것까지도 없다.) 그것까지도 MB는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교수에게 그런 권위가 사라진 것처럼, 경찰과 검찰에도, 정치인에게도,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위는 이미 사라져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총통에게 돌려줄 수 있다. 국민이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유권자의 30%의 찬성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유권자에 더하여 투표권이 없는 시민들까지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할 것 아니냐? 자기 편한 숫자만 취하지 말고 공평한 잣대를 들이밀자면, 그냥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비록 07년에는 지지했지만 지금은 돌아선 사람들까지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90%의 권력을 가진 상위 1%를 위한 일만 하는 주제에, '다 잘 되자고 하는 짓이다. 비록 지금은 나를 비난하지만 결국엔 나를 칭송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버티기에 좀 버겁지 않니?
또 하나는 블로거 시국선언문.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몇 개 읽어봤는데, 우선 참여교수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 보인다. 즉, 왠지 이런 자리에 낄 것 같지 않은 의외의 교수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 있어야 할텐데 빠진 사람도 없지 않다. 선언문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들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꼭 짚어야 할 사안들을 거론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엠비에게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강조한 인하대학교 시국선언이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작가들이 가장 작가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블로거다운 방식이 더 많은 공명을 얻어내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작가들의 선언을.. 엠비 공무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6·9 작가 선언-이것은 사람의 말'
아마도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이런저런 고려 때문에 쉽게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가장 간단한 건, 어쩌면 선언문 따위 제쳐두고. 바로 저들의 논리, 즉 "블로거가 몇 명인 줄 아느냐?"라는 말이 쑥 들어가게 엄청난 인원, 최소한 500만 정도가 블로거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게 어차피 읽지도 않을, 혹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선언문을 만드는 것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고작 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말의 힘. 말 속에 숨어있는 의미의 힘.이 점점 작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를 뱉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외면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국선언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나 소나 시국선언 한다고 나서느냐?"
시국선언에 참여한 많은 사람을 개나소나로 만들어 버린 단초는 정부의 첫 반응이 제공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대 교수가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124명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냐?"
1700여 명 vs 124명 이라는 숫자로 계량화하는 순간 시국선언의 취지나 의미, 구체적인 선언문의 내용, 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의 고민 같은 것은 사라진다. 자연히 건국이후 최대라는 시국선언 참여교수 4000명 돌파 또한 무의미하다. 전국의 교수는 또 얼마란 말인가. 무게가 달라진 것은 교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지식인, 혹은 최소한 어른 취급 받던 대학생들이 지식인은커녕 미성숙한 어린애 취급받는 분위기에 비례하여 교수들에 대한 인식 또한 예전만하지 못하다. 그들 또한 그냥 직업인이며, 자기 세계에 파묻혀 뭔지 모를 것들을 하는데 돈도 별로 못 버는 것 같고, 알게모르게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 같더라는. 이미 교수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의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을 기대하던 시대는 지났다.(배부르게 "잠수함의 토끼"를 교수들에게 요구할 것까지도 없다.) 그것까지도 MB는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교수에게 그런 권위가 사라진 것처럼, 경찰과 검찰에도, 정치인에게도, 대통령에게도 그런 권위는 이미 사라져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총통에게 돌려줄 수 있다. 국민이 몇 명인줄 아느냐? 고작 유권자의 30%의 찬성으로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말이 되느냐? 유권자에 더하여 투표권이 없는 시민들까지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할 것 아니냐? 자기 편한 숫자만 취하지 말고 공평한 잣대를 들이밀자면, 그냥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비록 07년에는 지지했지만 지금은 돌아선 사람들까지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90%의 권력을 가진 상위 1%를 위한 일만 하는 주제에, '다 잘 되자고 하는 짓이다. 비록 지금은 나를 비난하지만 결국엔 나를 칭송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버티기에 좀 버겁지 않니?
또 하나는 블로거 시국선언문.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 대학들을 중심으로 몇 개 읽어봤는데, 우선 참여교수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 보인다. 즉, 왠지 이런 자리에 낄 것 같지 않은 의외의 교수들이 여럿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 있어야 할텐데 빠진 사람도 없지 않다. 선언문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들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꼭 짚어야 할 사안들을 거론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엠비에게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강조한 인하대학교 시국선언이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구글독스에 정리된 블로그 시국선언문에도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 있지만, 왠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수들 흉내내지 말고 블로거로서의 특징을 좀 더 낼 방법이 없을까? 블로거다운 글로 블로거들의 요구를. 물론 시국선언이니만큼 블로그나 인터넷에 한정되지 않은 현 시국에 대한 진단과 요구가 들어가야겠지만, 그걸 적절하게 표현하는 블로거다운 방식은 뭘까? 캡콜드님의 140자 선언문의 모음?
사회적 삶의 질이 개판이고, 그게 상당 부분 너네 때문. 용케 대통령과 국회 과반 먹은 건 알겠는데, 여기까지 엉망이면 난감.
1.남의 말도 좀 듣고, 말 좀 막지마.
1.너네편이라고 쭉정이들만 자꾸 기용하지마.
1.같이 잘살아보게 궁리 좀 하자 좀.
작가들이 가장 작가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블로거다운 방식이 더 많은 공명을 얻어내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작가들의 선언을.. 엠비 공무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6·9 작가 선언-이것은 사람의 말'
아마도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이런저런 고려 때문에 쉽게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가장 간단한 건, 어쩌면 선언문 따위 제쳐두고. 바로 저들의 논리, 즉 "블로거가 몇 명인 줄 아느냐?"라는 말이 쑥 들어가게 엄청난 인원, 최소한 500만 정도가 블로거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게 어차피 읽지도 않을, 혹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선언문을 만드는 것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고작 5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말의 힘. 말 속에 숨어있는 의미의 힘.이 점점 작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한마디를 뱉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외면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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