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明室 2009. 4. 19. 21:04
모간산루 M50에 저녁 어스름에 가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이른바 예술이란 것에도 별로 흥미가 없지만, 그곳은 예절, 매너가 지배하는 공간 아닌가. 내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남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틀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 작품도 사람도 은은한 빛과 소리가 지배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 고상한 몸짓을 취해야 한다, 혹은 그런 자세가 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느니 인터넷이나 책으로 내 맘대로 보겠다. 진품이 주는 아우라에 나는 별로 기대하는 게 없고, 다만 어떤 시도들이 행해졌는지 훔쳐보고 싶을 뿐이니까. 복제품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전시장 안으로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남고 기회가 되면 가보긴 해야겠지.

굳이 예술품을 찾지 않더라도 이런 곳에 오면 볼 게 많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흔적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보다 바깥에 많이 묻어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저곳 혼자 어슬렁대다가, 바깥 뒷골목에서 쇠파이프 하나 붙잡고 사진 구도연습이나 해 봤다.

요리 찍고 조리 찍어봐도 썩 마음에 드는 건 없다.
이 좁은 공간에도 선은 여러 개 있어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적절한 비율로 면을 나누기도 힘들고, 시선의 흐름을 유도할 만한 선의 조합은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어두워져서 포기하고 나왔다.

가로등 아래는 조금 더 밝다. 선은 포기하고 면의 분할만 생각하며 찍어본다.



잘 만지지도 못하는 포토샵 가지고 씨름해 왔었는데, 오늘 발견한 ACDSee 기능 중에 자동노출조절 기능을 써 봤다. 자동이긴 하지만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서, 위의 사진들처럼 광량이 부족한 곳에서 찍힌 사진들을 조절하기 적당한 것 같다. 나처럼 미숙한 사람들은 기계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아직 기계의 게임의 법칙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도, 이미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게임들의 규칙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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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