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12. 11. 15. 18:00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저자
모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2-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 인민의 생명력 넘치는 삶의 풍경 속으로 초대하다!중국어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중편집에 들어있는 <소>는 모옌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상징들이 잘 드러나 있는 초기작이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꽤 괜찮은 작품으로 보인다.

맛깔나는 우리말로 옮겼지만, 읽으면서 헷갈리거나 내용전개상 반대되는 문맥으로 옮긴 듯한 것만 찾아서 고쳐봤다.


132쪽.

둥베이(东北) 저지대 웅덩이에서

东北洼里


"둥베이"라고만 하면 만주 지역과 혼동될 여지가 있다. 여기서는 산둥성 가오미 동베이향, 즉 모옌 소설의 주배경이다. 혼동하지 않게 설명을 더해 주는 게 좋을 듯.



173쪽.

그럼 우리 뿔로 요놈의 자식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우리는 두 눈 멀뚤멀뚱 뜨고 요놈의 자식이 우리 소중한 불알을 공짜로 먹어치우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은 무슨 느낌이 없었나? 저 놈이 우리 불알을 먹어치울 때, 나는 내 불알 껍질이 칼로 쪼개냈을 때처럼 아팠네. 난 정말 답답해 죽겠네.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왜 그때는 불알 껍질에 고통을 느낄 수 없었을까?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 역시 아픔을 느꼈다네.

那咱就把这小杂种顶死算了,咱们不能白白地让这小杂种把咱们的蛋子吃了。大鲁西道:兄弟们,你们有没有感觉?当他吃我们的蛋子时,我的蛋子像被刀子割着似地痛。我真纳闷,明明地看到他们把我们的蛋子给摘走了,怎么还能感到蛋子痛呢?

双脊和小鲁西说:我们也感觉到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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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요놈을 떠받아 죽여버리세. 요놈의 자식이 소중한 우리 불알을 날로 먹게 할 순 없잖은가. 큰 루시가 말했다. 형제들, 자네들도 느꼈는가? 저놈이 우리 불알을 먹을 때 내 불알이 칼로 잘라내는 것처럼 아팠다네. 난 정말 궁금한 게 그놈들이 우리 불알을 떼어가는 것을 뻔히 봤는데, 어째서 계속 불알이 아프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거지? 솽지와 작은 루시가 말했다. 우리도 아픔을 느꼈다네.



185쪽.

"싯누런 기름투성이 오르알 노른자가 내 밥그릇에 굴러들었을 때, 두씨 마나님은 딸 두우화에게 코를 찡긋하고 눈짓을 보냈을나, 두우화는 그저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 두우화가 못 본 척 무시해버릴수록, 나로서는 호의적인 눈빛을 보여줄 필요가 더욱 없었다. 나는 추호도 사양하는 기색 없이 싯누런 오리알 노른자를 한입에 삼켜버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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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화도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데, 내가 눈치 좋은 척 할 필요가 없었다.



196쪽.

"뤄한아, 우리네 걸음걸이가 별로 느린 셈은 아니다만, 이런 식으로 마냥 걷다가는 한밤중 열두시나 되어야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구경하러 갈 때는 겨우 이십 분이면 뛰어갔다니까요."

“罗汉,咱爷们儿走的还不算慢,按这个走法,半夜十二点时,也许就到兽医站了。”

 我说:“还要怎么慢?我去公社看电影,20分钟就能跑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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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한아, 우리 걸음이 그런대로 느린 건 아니다. 이대로만 가면 밤 12시엔 가축진료소에 도착하겠어."

나는 말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느릴 수가 있겠어요? 내가 인민공사에 영화 보러 갈 땐 20분만에 뛰어 갔는데요."



197쪽.

우리 할아버지가 인민공사 서기 노릇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 -> 아버지. (그 아래 대화도 마찬가지)


204쪽.

홰나무에는'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란 별명을 가진 벌레가 자라는데,

杨树上生了那种名叫“吊死鬼”的虫,


吊死鬼는 '자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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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나무에는 '목매달아 죽은 귀신'이라 불리는 자벌레가 사는데,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6. 00:29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책꽃이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가 에필로그 부분을 확인해 본다.

홍콩판은 국역본과 결말이 조금 다르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판본인데 그건 잡지판을 그대로 배포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역본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이 새로운 내용이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화청>2005년호를 찾아 복사하고 콩푸쯔 헌책방에 홍콩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주문 넣었다. (그러고 보니 금서로 지정되어 전량 회수되었다던 잡지<화청>의 해당호는 버젓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소설의 홍콩판, 대만판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5금" 조치는 어쩌면 중국 내부에서는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작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외국에서 더 흥분해서 이용하는 홍보문구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쪽에서도 일단 원칙적으로 금지는 하되, 이미 파급력이 별로 없는 소설 나부랭이가 그러덩가 말덩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위도 검열되고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던 몇 군데만 찾아보고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어제 번역 정리하느라 다시 꺼낸 김에 좀 살펴보다가 국역본 결말과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국역본에는 역자가 어느 판본을 참고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짐작하기에 대만판을 참고했는데 그게 다른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저자의 요청이었을 수도 있으며, 국내 출간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출판사와 상의하에 삭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자였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판단은 어차피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잡지판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부분이 대부분 실리지 않았고(잡지 게재만으로 문제가 되었다. 즉, 사상적인 검열 때문에 부분삭제하였던 건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참고삼아 홍콩판의 결말을 추가로 번역해 둔다..


 

...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 제일 위쪽에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종이에 써 줘. 돈이 필요하거들랑 액수와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고.


눈 꽃이 휘날리는 그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 들었다. 두께가 반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조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국역본은 여기서 끝난다. 어찌보면 군더더기 없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홍콩판 결말은 바로 이어서 몇 문단이 계속된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흘 후, 이미 중년을 넘어선 류롄이 사령관과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양저우에 있는 친정에 좀 다녀올께.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가서 형제자매들이나 좀 보고 올까 해. 그러나 그렇게 떠난 뒤 류롄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사령관은 양저우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류롄이 양저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류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눈꽃처럼 군구(軍區) 대원(大院)의 1호 사택에서 사라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계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향기만이 그녀가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 놓고 있을 뿐.

2004년 8월 17일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http://lunatic.textcube.com2009-03-26T10:21:410.31010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4. 21:52
이글은 일전에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으며 체크해 둔 몇 부분의 번역을 만져본 것이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비평을 원한다면 다른 글을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먼저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오역을 잡아내기 위한 의도로만 쓰여진 것은 또 아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몇 권의 역서를 통해 보건대, 역자 김태성의 번역은 훌륭하다. 그만큼 일정한 수준의 번역으로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중국어권 번역자 중에서도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설 번역은 한두 문장의 오역이 있더라도 작품이 전하는 어떤 느낌이나 풍을 잘 살리는 한국어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풍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내가 역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고, 시험삼아 한번 번역해 본 것이다.


일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제목 번역부터 역자의 입장을 볼 수 있다. service의 번역어인 "복무(服務)"는 보다 공적인 "봉사"라는 의미와 함께 손님접대와 같은 의미인 "서비스"에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와 같이 제한된 문맥에서만 자주 쓰이고 거의 서비스로 대체된 듯하다. 이 소설에서는 일단 인민대중에게 봉사하라는 모택동의 공적인 표어를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른 "써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말로 치환시킨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지극히 공적인 표어가 은밀하고 사적인 밀어로 환치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다른 소개글에서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인민에게 봉사하라"라는 뜻이 표어로서는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봉사"보다는 "복무"를 선택함으로써 역자는 투박하지만 문혁 시기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투박"이 문제인데, 투박한 문체를 지나치게 세련되게 번역해서도 안 되겠지만,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긴 글의 일반적인 문제가 투박하다는 점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원문 문장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스타일의 투박함이 아닌 번역의 투박함이 생기는 것이다. 혹자는 직역주의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루쉰의 "딱딱한 번역"이나 "타국화 번역"의 문제로 투박함을 변명하기도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게 다 중문과 출신들이 중국소설만 열심히 읽고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결과이다. 즉 한국어를 능청스럽게 다루지 못한다. 한국어를 장악하지도 못했으면서 한국어를 되돌아보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타국화 번역을 지향한다고 떠든다면 말이 될까? (이런 식의 비판은 너무나 당연하게 자기비판이다..ㅡㅡ;;)

그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옌롄커가 아주 세련된 도시풍의 중국어를 구사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의도적인 투박함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한국어 번역에서는 원문에 너무 매여 늘어지거나 투박하게 만들어진 문장이 있고, 그게 소설 읽는 맛을 조금 떨어뜨리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번역문도 정확하거나 세련된 것은 아닐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거나 그거나 별 차이 없네 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전문을 검토한 게 아니라 읽으면서 체크한 몇 부분만 옮겨본 것이니, 감안하고 읽기를 바란다.


보라색 글씨는 번역 원문, 초록 글씨 나의 수정, 그외는 설명이다.


(첫 시작, 1장 13쪽)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기로 하자.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소설 속의 사건이기도 하고 삶 속의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삶의 수많은 진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 왜냐하면 어떤 진실한 삶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에 이르게 할 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진실을 확실한 진실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소설 속의 사건임과 동시에 삶 속의 사건이다.

  혹은 삶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 속의 한 사건을 재연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문의 문단구분을 따른다.)



13-4쪽.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전문으로 맡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 바구니를 들고 사단장 집 주방 입구에 서 있을 때, 그 사건은 또르르 굴러와 마치 수소 폭탄이 터지듯이 요란하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당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붉고 큰 글씨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이번에는 타일로 마감한 주방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이 어색한 이유는 2장의 시작과 함께 바로 받고 있는 말과의 호응 때문이다. 2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바로 지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나무팻말이 또다시 식탁을 이탈해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 시간상 이 "또다시" 이후 전개되는 사건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를 전담하고 있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채소를 한 바구니 들고 사택 주방 입구에 섰을 때, 그 사건은 수소폭탄이 터지듯 쾅 하며 그의 앞에 펼쳐졌다. 원래 식탁 위에 진열되어 있던, 커다란 붉은 글씨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란 문구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또 한번 주방의 타일 부뚜막 위에 나타난 것이다.



101쪽.

류롄의 유혹을 거부한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에서 쫓겨나고 전역하게 생겼다. 다급해진 우다왕은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기회"? "인민을 위해 복무할" 기회? 자신의 공적인 욕망을 위해 그녀의 사적인 욕망에 서비스할 기회? 류롄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주문을 외며 우다왕에게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한다. 우다왕은 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때 류롄은 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를 뱉어낸다." 국역본에서 그 한마디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러나 이러고 보니 발가벗은 것을 칭찬하고 그것으로 끝난 느낌이다. 문맥상 관계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원문은 다음과 같다:

她说,为人民服务,你为呀,你为呀,你为呀。(잡지에서는 "你为呀"라는 말을 한 번만 한다. 분량 때문에? ^^)

그냥 옷만 벗고 끝난 게 아니라, 옷을 벗으며 눈길을 교환하는 동안 둘 사이의 공기는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뒤따르는 마지막 말(5장을 끝내는 말)은 칭찬으로 끝날 게 아니라 생략된 그 이후의 장면을 예비하는 느낌이어야 할 것이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해 봐, 어떻게 서비스할 건데? 해 보라구! 하면서 발가벗은 이후의 행위를 재촉/암시하는 말로 번역되는 게 좋겠다. 내가 제안하는 문구는.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해봐, 해 보라구!"



좀 약한가? 그럼 조금 더 세게 나가보자.

둘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고 류롄의 몸은 점점 깨어났다.


114.


"그럴 필요 없어. 어서 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혀줘. 손은 멈추지 마. 입술도 멈추지 말고. 내 거기를 만져줘. 내 거기를 빨아줘.내 거기를 만지고 빨아달란 말이야. 지금 난 사단장의 마누라가 아니야. 나는 우다왕의 아내란 말이야. 난 이미 날 송두리째 샤오우한테 맡켰어. 죽이든 살리든 샤오우 맘대로 하란 말이야."


역자가 조금 지나치게 야하게 번역했다. (원문은 : 想亲我哪儿、摸我哪儿了,你就亲我哪儿摸我哪儿吧). 구문 자체는 "어디든 ~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렇게 해"이다. 어디(哪儿)를 거기(那儿)로 하는 바람에 '세계의 근원', 거기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조금 재미없게 풀어서 해석하면, 내 몸 어디든 키스하고 싶거나 애무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키스하거나 애무하라는 말이겠다.


"필요없어. 그보다 어서 날 안아서 침대에 눕혀 줘. 손은 멈추지 말고 입술도 멈추지 마. 어디든 상관없어. 빨거나 만지고 싶으면 내 몸 어디라도 빨고 만져줘. 이제 난 너희 사단장 마누라가 아니라, 너 우다왕의 아내야. 난 이미 니 꺼니까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



115.

"하늘과 땅처럼 영원하고 열광적인 그날의 키스와 애무로 인해 두 사람의 분명했던 관계는 복잡하고 애매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그 격정적인 키스와 애무는 그렇게 분명했던 그들의 관계를 모호하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성어의 번역이 조금씩 어색하다. 여기서 쓰인 성어는 천장지구(天长地久)이다. 42쪽의 "주사를 가까이 하면 빨개진다는 식"이란 번역도 마찬가지다. 近墨者黑 近朱者赤(근묵자흑 근주자적)에서 가져온 거지만, 너무 빨간 색을 살리기 보다는 다른 식으로 푸는 게 어땠을까 싶다.


116.


  고개를 든 그는 그녀의 창백한 모습을 발견했다. 온몸이 누렇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 같았다.

  뜻밖에도 그녀가 혼절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혼절했다는 것을 알았다. 격정에 사로잡혀 혼절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와의 불타는 섹스가 갑자기 광풍과 폭우가 몰아치듯 그녀에게 경험하기 힘든 숨막힘과 활력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누렇게 뜬 몸을 바라봤다. 죽은 사람인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까무러쳤던 것이다.

  그도 그녀가 까무러쳤다는 걸 안다. 격정 때문에 의식을 잃은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듯 격렬한 섹스가 지금껏 맛보지 못한 숨막힘과 활력을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독서법은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하진의 <기다림>과 함께 읽는 방식이다.


<기다림>의 우만나도 류롄과 마찬가지로 간호사이다. 만약 우만나가 쿵린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웨이 정치위원과 결혼했다면, 그 이후 펼쳐질 삶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의 류롄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다림>의 쿵린과 우만나 이야기의 다른 버전으로 <인민을~>를 읽으라는 것이 아니다. 문혁이라는 시기와 육군병원 혹은 부대라는 공간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한쪽은 모든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고 담담히 2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세상 전체를 파괴할 듯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다. 문혁시기를 살아간 대부분의 일반적인 중국인의 삶은 이 두 가지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의 극단적인 표출방식이 문혁 시기와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의 어떤 경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7. 15. 11:14

왕사오보의 중편소설 <황금시대>의 초반부 번역이다.
심심풀이로 조금 번역해 보다가 국내에 기출판된 것을 확인하고 김이 샜다.
2000년에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절판된 것.
번역은 특별한 오류는 없는 듯하나 소설을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진다.
내 번역이 왕사오보의 문체를 더 잘 살렸다고 확신할 배짱은 없다만,
보다 간결하게 흐름을 살려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둔다.
중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보다 적절한 문체는 어떤 걸까?
"절묘하다!" 라는 느낌을 내 번역에서도, 다른 사람의 번역에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작가 왕사오뽀(1952-1997)는 97년에 이른 죽음을 맞은 후 재평가되어 현재까지 중국에서 꽤 많은 독자층과 비평계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많은 청년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하였다.
2006년 여름 상하이의 대형 서점마다 왕사오보의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인기만 좋은 시덥잖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겠거니 했는데 조금씩 소문도 듣고 내가 직접 읽어본 뒤에야 맛을 알게 되었다.

대표작은 <황금시대>, <백은시대>, <청동시대> 연작(시대삼부곡)이며, 그 외 <침묵하는 대다수>, <사유의 즐거움> 등의 산문집이 있다.

그 중 <황금시대>는 문화대혁명 시기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현실'을 다루었고, <백은시대>는 미래를, <청동시대>는 과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삼부곡"은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필치로 시대를 넘나들며 권력이 인간의 욕망과 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압하는지를 잘 그려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각각 중편모음집인 이 연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내적 논리와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주주간> "20세기 중국소설 100선", 중국당대문단 "최고의 수확"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간단한 작가소개 정도는 해두려고 논문과 소개글 몇 개를 모아 두었는데
물론 언제 정리할 마음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황금시대

왕사오보

王小波, 《黃金時代》, 陜西師範大學出版社, 2003.


1.


나는 스물한 살에 윈난의 생산대로 배속되었다. 천칭양(陳淸揚)은 당시 스물여섯이었으며 거기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산 아래 14생산대에 있었고 그녀는 산 위 15생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걸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론하려고 산을 내려왔다. 그때는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해서 그냥 대충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녀가 토론하고 싶어 한 것은 이런 거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걸레라고 이야기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서방질을 해야 걸렌데, 자기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남편이 일 년 간 감옥에 가 있긴 하지만 그녀는 서방질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전에도 서방질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자기를 걸레라고 부르는지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논리적으로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만약 천칭양이 걸레라면, 즉 천칭양이 서방질을 했다면 적어도 하나라도 같이 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그게 누구인지 지목하지 못했으니 천칭양이 서방질했다는 것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천칭양이 걸레이며, 그 점에 있어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천칭양이 자기가 걸레가 아니라고 증명하려 내려온 것은 내가 침 맞으러 그녀에게 갔기 때문이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농번기가 되자 생산대장이 나에게 밭가는 것을 멈추고 모를 심으라고 시켰다. 그래서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내 키가 190cm 이상이며 내가 허리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모내기를 했더니 허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라도 막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 생산대 의무실에 있는 침은 도금이 벗겨지고 끝이 낚시 바늘 같아 내 허리의 살을 발라내기 일쑤였다. 결국 내 허리는 산탄총을 맞은 것처럼 상처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15생산대의 천칭양이 생각났다. 그녀는 베이징 의학원을 졸업한 의사니까 침과 갈고리는 구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왔는데, 30분도 되기 전에 그녀가 내 방까지 쫓아와 자기가 걸레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천칭양은 자기가 걸레를 업신여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의 관찰에 의하면 걸레들은 모두 착했고 다른 사람 돕는 걸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는 걸 가장 싫어하였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면에서 걸레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문제는 걸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자기는 절대 걸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강아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고양이를 사람들이 강아지라고 부른다면 그 고양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그녀를 걸레라고 부르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안절부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천칭양이 내 초가에 와 있을 때 산 위 의무실에서의 옷차림 그대로 어깨와 다리를 벌겋게 드러낸 흰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달라진 건 풀어 헤친 긴 머리를 손수건으로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흰 가운 아래에 뭔가를 입었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입었을까 하고. 바로 이 점이 그녀가 예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그녀는 뭘 입든 안 입든 상관없는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자신감이다. 나는 그녀가 걸레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까지 몇 개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른바 걸레라고 함은 하나의 호칭이다. 즉 모두가 당신이 걸레라고 말하면 당신은 걸레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신이 서방질했다고 하면 서방질한 것이지 그것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모두들 왜 당신을 걸레라고 말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보기엔 이렇다. 모두들 결혼한 여자가 서방질하지 않으면 얼굴이 거무스레하고 가슴은 축 처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당신은 얼굴이 검기는커녕 하얗고, 가슴은 봉긋하다. 그래서 당신이 걸레인 거다. 만약 당신이 걸레가 되기 싫으면 얼굴은 검게, 가슴은 축 처지게 만들어라. 그럼 아무도 당신이 걸레라고 안 할 거다. 물론 그렇게 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거다. 근데 만약 당신이 손해 보기 싫으면 서방질을 하는 수밖에. 그러면 당신도 자기가 걸레라고 생각하게 될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서방질했는지를 먼저 밝힌 후 당신을 걸레라고 불러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근데 당신에겐 남들이 당신을 걸레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말을 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천칭양의 두 눈을 부릅뜬 표정은 거의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릴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귀싸대기 날리는 걸로는 유명했다.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걸레면 걸레지 뭐. 근데 가슴이 처지네 마네, 얼굴이 검네 마네 하는 건 너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러면서 한 마디 보탰다. 행여 내가 이 일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가는 귀싸대기를 얻어맞게 될 거라고 말이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천칭양과 걸레 문제를 토론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얼굴이 누렇고 뜨고 말라 터진 입술에는 종이조각과 담배가루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반창고로 찢어진 곳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헤진 군벌 하나 입고서 나무침대에 다리를 꼬아 앉아 있는 꼬락서니가 완전히 건달이 따로 없었다. 아마 천칭양이 이런 놈에게 자기 가슴이 처졌니 안 처졌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이 얼마나 근질거렸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좀 신경질적인 편이었는데, 그건 모두 아주 건장한 청년들이 아픈 데도 없으면서 진료를 핑계로 그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의사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걸레를 보러 간 것이다. 나만 예외였다. 내 허리는 저팔계에게 쇠스랑으로 몇 대 맞은 것처럼 아팠으니까. 허리 아픈 게 진짜든 아니든 거기 뻥뻥 뚫린 구멍만으로 의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 구멍이 그녀에게 자신이 걸레가 아님을 나에게는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실망시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가 걸레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 말고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다. 봄에 생산대장은 내가 자기 집 어미개의 왼쪽 눈을 애꾸로 만들어, 이놈이 무슨 발레라도 하는 것처럼 항상 고개를 돌려서 사람 쪽을 본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언제나 트집을 잡았다. 나는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아래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1. 생산대장의 집에는 어미개가 없다.

2. 이 어미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없다.

3. 나는 손이 없어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수 없다.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었다. 생산대장의 집에는 확실히 갈색 어미개가 한 마리 있고, 이 어미개의 왼쪽 눈은 확실히 나중에 먼 것이며, 나는 총을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밀한 사격술을 자랑한다. 그 얼마 전에 나는 뤄샤오쓰(羅小四)의 총을 빌려 녹두 한 그릇을 총알삼아 빈 창고에 있던 쥐를 두 근이나 잡았다. 물론 우리 생산대에서 사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목록에는 뤄샤오쓰도 포함되어 있다. 총은 그의 것이고, 게다가 그가 생산대장의 어미개의 눈을 쏘았을 때 나는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이 한 일을 까발릴 수는 없었고, 뤄샤오쓰는 나하고 친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생산대장이 만약 뤄샤오쓰를 건드릴 수 있었다면 나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침묵은 묵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나는 모를 심으러 가서 부러진 전봇대마냥 엎드려 있어야 했고, 가을 추수 후에는 또 소를 먹이러 나가 뜨신 밥은 먹지도 못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 산 위에서 마침 뤄샤오쓰의 총을 빌린 날 생산대장의 어미개가 산으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총알을 날려 그 놈의 오른쪽 눈을 쏘았다. 이 개는 이미 왼쪽 눈을 잃은 데다 오른쪽 눈마저 사라지니 생산대장에게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하늘만이 그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 나는 산에 올라 소를 먹이거나 집에 드리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천칭양이 또 산에서 내려와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또 다른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녀가 나하고 서방질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결백하단 걸 증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1. 천칭양은 처녀다.

2. 나는 고자라서 성교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모두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결백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천칭양은 이 말을 듣고 새하얗게 질렸다가 얼굴이 뻘게지더니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일어나 가 버렸다.


천칭양은 내가 언제나 악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생 까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그녀가 우리 둘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섹스를 한 번 하자고 건의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결심을 알았다면 뒤에 이야기할 사건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7/15 11:14 | 独立阅读 |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8. 06:46

옌롄커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왔다.

作  者: 阎连科
出 版 社: 江苏人民出版社
出版时间: 2008-6-1
页  数: 332
I S B N : 9787214055569

곧 근작이 나올 거라는 걸 그의 강연에서 들었지만 잊고 있다가 그저께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출간소식을 알게 되었다.
당당에 주문하기는 좀 늦고 해서 서점에 가서 실물을 확인해 봤다.
재고량이 47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열되어 있지 않았고 서점직원이 한참 찾은 후에야 서가 아래쪽에 쌓여있는 걸 하나 건네 주었다.
중국의 서점들은 도서분류가 너무 엉망이다. 출판사 분류도 아니고 저자 분류도 아니다. 완전히 흩어져 있어 "당대소설" 서가 전체를 하나하나 뒤져야 한다.(上海書城이 대표적. 대학 근처의 전문적인 일부 작은 서점들은 분류가 꽤 잘 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교수 양과(楊科)는 5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풍아지송: <시경>정신의 본원에 관한 탐구(风雅之颂——关于〈诗经〉精神的本源探究)》라는 필생의 저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침대 위에 벌거벗은 마누라와 부총장이다. 처용이 생각나는 장면인데, 양과의 대처 또한 처용과 비슷하다.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고 싶으면 말만 하게, 올해 국가급 모범학자는 따논 당상일세, 상금이 오만원(7백만원)이라구, 학과 주임이 되고 싶다면 밀어줌세,.. 뻘줌하게 주절대는 부총장에게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한다.
제가 생각이 완전히 깬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니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주세요, 지식인의 명예를 걸고 부탁드리건데,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는 곧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거기서 환자들에게 <시경>을 강의하며, 얼마 후 정신병원을 고향으로 돌아간다.

청연대학(清燕大学; 청화대와 북경대(연경대)를 혼합한 명칭?)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지식인의 허위와 추악함을 풍자하는 방향으로 그려질 것 같다. 당장 꼼꼼하게 읽어볼 시간을 내기는 힘들지만, 제발 바라는 것은 류진운의 <내 이름은 유약진> 같이 실망시키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시끄럽게 왔다갔다 하면서 혼을 빼놓지만 별로 건질 게 없어 사람을 굉장히 지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기우인지 몰라도 몇 페이지 읽다 보니 "수다"스럽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또 하나 띠지에 있는 "중국 황당(荒誕) 현실주의 대사 옌롄커"라는 말!
천쓰허 같은 경우 "괴탄(怪誕)문학" 혹은 "괴탄(怪誕) 사실주의"라고 옌롄커 등의 경향을 칭했다고 국내 신문에도 소개된 바,
아무거나 다 "~~주의" 갖다 붙이면 되냐고 말들이 많다.
(황당주의가 아니라 요즘 대학의 실상을 밝힌 다큐멘터리라는 식의 반어적 댓글이 있을 정도..)

중국쪽 언론이나 포털에는 관련 기사가 몇 개 올라와 있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어찌되었든 내가 직접 읽어봐야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

이제 막 나온 소설의 원문 대부분을 웹에서 서비스한다는 거다. 물론 전체를 다 보려면 사 봐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거 좀 따라했으면 좋겠다.. 절판된 책은 웹에서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



阎连科最新的长篇杰作:风雅颂(选载)

아무튼 (시경의 편명을 빌린) 목차는 다음과 같다.
http://product.dangdang.com/product.aspx?product_id=20246252

目录
卷一
 〔关雎〕当《诗经》遭遇一对狗男女
 〔汉广〕柿子树下的初情
 〔终风〕红彤彤的欲念
 〔(艹择)兮〕蹿红的的女教授
卷二
 〔有瞽〕硬学问软膝盖
 〔良耜〕侍候飞累的鸟儿
 〔噫嘻〕那条该死的内裤
 〔泮水〕我们各怀鬼胎
卷三
 〔出车〕必要的成交
 〔都人士〕膝盖又发软了
 〔十月之交〕捕风汉子
 〔绵蛮〕举手表决
 〔白驹〕悲壮的告别 
卷四
卷五
 〔式微〕天使得不到尊敬
 〔晨风〕往事香艳
 〔蒹葭〕情人的礼物
 〔东门之(木分)〕教授来到天堂街
 〔匪风〕温暖的家
卷六
 〔菁菁者莪〕庄严的摸顶
 〔斯干〕农事温情
 〔思齐〕情爱事业
 〔白华〕无力挽留
 〔小明〕祭奠吴德贵 
 〔南山有台〕守墓人的颂歌
卷七
 〔噫嘻〕婚姻真相
 〔臣工〕有尊严地告别 
 〔駉〕欢年
 〔有駜〕小姐们的束修
卷八
卷九
 〔大田〕昨日重来
 〔车辖〕鸳鸯于飞
 〔隰桑〕小敏的选择
 〔渐渐之石〕别人的婚礼
 〔小弁〕一日不见如三秋兮
 〔桑柔〕哄抢有理
 〔白驹〕不能没有你
 〔鸳鸯〕死神婚床
卷十
 〔般〕逃犯
 〔天作〕狂喜
 〔时迈〕石头记
 〔有瞽〕诗经古城
卷十一 
 〔东山〕新家
 〔草虫〕家园之诗
 〔甘棠〕我又被举手表决了
 〔芄兰〕柳树下
 〔葛藟〕繁华的黄昏
卷十一
附录:后记三篇
 飘浮与回家
 不存在的存在

 为什么写作和要写怎样的小说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4:56
Daum 파워에디터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중국소설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소설이 너무 자주 보인다 싶어서 검색해 본다.

더하여, "<아주주간>이 선정한"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한 이름이 왠지 제각각인 것 같다. 번역을 제각각으로 해서기도 하겠지만 중국쪽에서도 책 선전할 때 이것저것을 쓰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검색결과 과연 중국인들도 이름을 제각각으로 사용한다.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소설 100부, 혹은 100강, 혹은 가장 아름다운 소설.., 혹은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100편의 중국소설, 등등.. 각각의 목록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2000년에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것은 하나다.

정식명칭은 "20세기 100대 중국어 소설(二十世纪中文小说100强)".
"중국소설"이 아닌 "중국어 소설"인 이유는 중국대륙 뿐 아니라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 중국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중국어로 창작된 소설을 심사대상으로 하였고, 심사위원도 각지의 대표적인 인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식으로 번역하자면 구태여 "중국어"소설이라고 강조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그게 더 정확하겠지만, ..

(그 외에 <아주주간>에서는 해마다 10대 중국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비공개로 스크랩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조금씩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이 100대 중국소설의 내용 자체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고(중앙일보, 순위로 보는 중국문학,)
국내번역본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도 있다.(http://www.korea.ac.kr/~sinoview/wenxue1/list(korean).htm)
Be Nobody's darling : 아주주간 추천 20세기 중국 소설 100에도 전반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금 지난 목록들인지라 몇 가지는 보충해둘 필요가 있겠다...

일단은 위 두 사이트에 근거하되 최근에 나온 국내번역본들이나 누락된 번역들도 정리해 본다.
루쉰처럼 많은 번역본이 있는 경우 대표번역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추천번역과 신간을 포함한 몇 종류를 내 맘대로 선정하겠다.
차후에 시간나는대로 목록을 채워나가고, 각 번역본에는 인터넷 서점 혹은 도서관의 링크를 걸어두도록 하겠다..


1 납함 呐喊 루쉰 鲁迅 《루쉰 소설전집》, 김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2 변성 边城 선총원 沈从文 《변방의 도시/이가장의 변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6, 심혜영/김시준 옮김(중앙일보사, 1989)
《변성》, 김동성 역(한울, 1997)
3 낙타상자 骆驼样子 라오서 老舍 《낙타상자》 중국현대문학전집 5, 유성준 옮김(중앙일보사, 1989)
《루어투어 시앙쯔》(상,하), 최영애 옮김, 김용옥 풀음(통나무, 1986)
《낙타샹즈》,  심규호/유소영 역(황소자리, 2008년 2월)
4 전기 传奇 장아이링 张爱玲 《첫번째 향로》, 김순진 역(문학과지성사, 2005)
5 포위된 성 围城 첸중수 钱钟书 《포위된 성》, 오윤숙 역(실록출판사, 1994)
《황하의 노을》, 이혜란 역(황제출판사, 1993)
6 자야 子夜 마오둔 茅盾 《새벽이 오는 깊은 밤》 중국현대문학전집 3, 김하림 옮김 (중앙일보사, 1989)
《자야》(상,하), 김하림 역(한울, 1986.4)
《칠흙같이 어두운 밤도》, 김하림 옮김(한울, 1986)
7 타이베이 사람들 台北人 바이셴융 白先勇 《반하류사회/대북사람들》(半下流社會/臺北人), 중국현대문학전집 16, 허세욱 옮김(중앙일보사, 1989)
8 바진 巴金 《가》, 박난영 역, (이삭문화사, 1985)
《가》, 강계철 옮김, (도서출판 세계, 1985)
《가》, 최보섭 옮김, (청람문화사, 1985)
9 호란하 이야기 呼兰河传 샤오훙 萧红 《호란하 이야기》, 원종례 역(글누림, 2006)
10 라오찬 여행기 老残游记 류악 刘鹗 《라오찬 여행기》, 김시준 역(솔출판사, 1997)
11 추운 밤 寒夜 바진 巴金 《추운 밤/동터오는 강변 외寒夜/黎明的河邊》 중국현대문학전집 7, 김하림 옮김(중앙일보사, 1989)
12 방황 彷徨 루쉰 鲁迅 《루쉰 소설전집》, 김시준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13 관장현형기 宫场现形记 이백원 李伯元 《난세》, 이보가 지음, 강성위/김중걸 옮김(일송북, 2003) 
14 지주의 자녀들 财主底儿女们 루링 路翎  
15 장군족 将军族 천잉전 陈映真  
16 타락 沉沦 위다푸 郁达夫 《예환지/침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2, 예성타오/위따푸 지음, 이영구/전인초 옮김, (중앙일보사, 1989)
17 사수미란 死水微澜 리제런 李劼人  
18 붉은 수수 红高梁 모옌 莫言 《붉은 수수밭》, 심혜영 역, (문학과지성사, 1997)
《홍까오량 가족》, 박명애 역(문학과지성사, 2007)
19 소이흑의 결혼 小二黑结婚 자오수리 赵树理  
20 장기왕 棋王 아청 阿城 《아이들의 왕(孩子王/棋王/樹王), 박소정 옮김(지성의 샘, 1993)
21 가변 家变 왕원싱 王文兴  
22 마교사전 马桥词典 한사오공 韩少功 《마교사전》, 심규호(민음사, 2007)
23 아시아의 고아 亚细亚的孤儿 우줘류 吴浊流  
24 반생연 半生缘 장아이링 张爱玲 《반생연》, 권효진 옮김(문일, 1999.1.18.)
25 사세동당 四世同堂 라오서 老舍  
26 호설암 胡雪岩 가오양 高阳  
27 제소인연 啼笑姻缘 장헌쉐이 张恨水  
28 샌드위치 맨 儿子的大玩偶 황춘밍 黄春明  
29 사조영웅전 射雕英雄传 김용 金庸 《사조영웅전》,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역(김영사, 2003) / 《영웅문》, 김일강 역(고려원, 1987)
30 샤페이 여사의 일기 莎菲女士的日记 딩링 丁玲 《중국 현대 여성소설 명작선 : 1920년대 여성소설 단편선》, 김은희/최은정 옮김(語文學社, 2005) 중 "샤페이 여사의 일기"
31 녹정기 鹿鼎记 김용
金庸 《녹정기》, 박영창 역(중원문화사, 1986) / (중원문화, 2008)
32 얼해화 孽海花 증박 曾朴  
33 야사 惹事 라이허 赖和  
34 가장일우차 嫁妆一牛车 왕전허 王祯和  
35 이역 异域 덩커바오
(보양)
邓克保(柏杨)  #본명은 궈딩성(郭定生).
36 증국번 曾国藩 탕하오밍 唐浩明  
37 고향사람 原乡人 중리허 钟理和  
38 백록원 自鹿原 천중스 陈忠实 《백록원》(1-5), 임홍빈/강영래 역, (한국문원, 1997)
39 장한가 长恨歌 왕안이 王安忆  
40 길릉춘추 吉陵春秋 리융핑 李永平  
41 황화 黄祸 바오미
(왕리슝)
保密(王力雄) 《황화》(1-4), 유전귀 역, (영웅, 1992.6)
42 광풍사 狂风沙 쓰마중위안 司马中原  
43 화창한 봄날 艳阳天 하오란 浩然  
44 공동묘지 公墓 무스잉 穆时英  
45 옛터 旧址 리루이 李锐  
46 별,달,해 星星·月亮·太阳 쉬쑤 徐速  
45 타이베이인 삼부작 台湾人三部曲 중자오정 钟肇政  
48 목욕(세뇌) 洗澡 양장 杨绛  
49 회오리바람 旋风 장구이 姜贵  
50 연꽃호수 荷花淀 쑨리 孙犁  

내용이 너무 길다고 글이 올라가지를 않아 50개씩 자른다.

http://www.douban.com/doulist/37375/

http://www.cppinfo.cn/XinWen/XinWen_detail.aspx?lmgl_id=574&key=3934&ztgl_id=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4:35

윗 글에 이어 목록 정리 중.
전문 혹은 소개를 원문으로 보려면 다음 사이트 클릭 :
http://www.mwjx.com/other/book/story/top100/

목록을 �어보니 그런대로 꽤 번역이 되어 있다. 특히 30위권 내에는 거의 꽉 차 있다.
번역되자마자 묻히거나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많긴 하지만 일단 소개는 된 셈이다.

번역되지 않은 작품 중 가장 아쉬운 건 라오서의 <사세동당(四世同堂)>이다.
황소자리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최근 의욕적으로 중국현대소설선을 내겠다고 인터뷰했던데,
이미 나와 있는 <낙타상자>를 "다시" 낼 게 아니라 <사세동당>을 번역하는 게 취지에 더욱 부합했을 듯하다.
최영애 역의 <낙타상자> 정도면 나쁘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억에 언젠가 번역비판이 있긴 했었다만, "이보다 더 나은 번역은 없다"는 김용옥의 호언장담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될 번역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중문학계에서 지명도가 높은 일급 번역자들을 섭외해 향후 30여권까지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라면 말이다.(그 "지명도"란 교수급을 말하는 것일 텐데, 지명도와 "일급" 번역자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

"큰 출판사가 놓치는 부분을 저희가 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 제대로 접할 수 없던 중국 현대 명작 소설 30여 권을 권위있는 번역자에게 맡겨 체계적으로 소개할 계획입니다." (연합뉴스 2월18일; http://media.daum.net/culture/book/view.html?cateid=1022&newsid=20080218073411801&cp=yonhap)


아직 번역되지 않은 당대작가 중 개인적으로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작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39. 왕안이(王安忆) : <장한가>는 모처에서 번역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진척이 어떤지 모르겠다.
45. 리루이(李锐)      
52. 왕쩡치(汪曾祺)       
74. 장제(张洁)     

# 54. 주톈원(朱天文)과 88. 주톈신(朱天心) 같은 대만작가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언제고 읽게 되길 기대한다.
# 아청의 <아이들의 왕>과 왕사오보의 <황금시대>는 모르게 나왔다가 슬며시 절판된 작품이다.
  재출간 혹은 재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 근대작가 증박의 <얼해화>는 번역을 상당히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출판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런 식의 목록은 하나의 기준이 될 뿐이지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아니다.
이들이 모두 절대적인 고전인 것도 아니고. 순위에 집착할 필요도 없겠다.
중국인들은(대륙, 홍콩, 대만, 말레이 등을 포함한) 이들이 대표성을 띤다고 선정한 것이지만,
이들 이외에도 "좋은" 작가와 작품은 많다. 포함되지 않은 21세기에는 더욱 좋은 작품이 쓰여지고 있고.
출판사에서 어떤 작품들을 어떤 기준에 의해 번역의 대상으로 선정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여러 출판사에서 중국소설 번역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의 기준에 의한 목록을 만들 필요도 있겠다.
눈높이와 입맛이 다른 것은 확실하니까.


51 우리 도시 我城 시시 西西  
52 승려가 되다 受戒 왕쩡치 汪曾祺  
53 철장 铁浆 주시닝 朱西宁  
54 세기말의 화려 世纪末的华丽 주톈원 朱天文 #저자의 국내 번역은, 《이반의 초상(荒人手記)》, 추 티엔 원, 김은정 옮김(시유시, 2001)   
55 촉산검협전 蜀山剑侠传 환주루주 还珠楼主 《촉산객》, 李壽民  저, 임화백 역(언어문화사, 1987)
《촉산기협》, 이수민 저, 임화백 역(독서당, 1993)
56 종려를 다시 보다 ,又 위리화 於梨华  
57 조바심
浮躁 자핑와 贾平凹 《조바심》,오세경 역(第三企劃, 1994.)
58 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 组织部新来的靑年人 왕멍 王蒙 #저자의 국내 번역작은, 《변신인형》(전형준 역, 문지, 2004) / 《나비》(이욱연/유경철, 문지, 2005)
59 옥리혼 玉梨魂 쉬전야 徐枕亚  
60 홍콩3부작 香港三部曲 스수칭 施叔青  
61 경화연운 京华烟云 린위탕 林语堂  
62 예환지 倪焕之 예성타오 叶圣陶 《예환지/침륜 외》 중국현대문학전집 2, 예성타오/위따푸 지음, 이영구/전인초 옮김, (중앙일보사, 1989)
63 춘타오 春桃 쉬디산 许地山  
64 상칭과 타오훙 桑青与桃红 녜화링 聂华苓  
65 쪽빛과 검은빛 蓝与黑 왕란 王蓝  
66 2월 二月 러우스 柔石  
67 바람은 차디차게 风萧萧 쉬제 徐讦  
68 부용진 芙蓉镇 구화 古华 《부용진》, 김서기/황대연 공역, (서당)
《부용진》, 신원기획 역, (예본, 1988)
69 땅의 아들 地之子 타이징농 台静农  
70 북경이야기 城南旧事 린하이인 林海音 《북경이야기》(1,2), 린하이인 저, 관웨이싱 그림, 방철환 역(베틀북(프뢰벨), 2001).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북경이야기2) 
71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 古船 장웨이 张炜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상,하), 오세경/김경림 역, (풀빛, 1994)
72 술손님 酒徒 류이청 刘以曾  
73 끝나지 않은 노래 未央歌 루챠오 鹿桥  
74 무거운 날개 沉重的翅膀 장제 张洁  
75 과수원 일기 果园城记 스퉈 师陀  
76 사람아, 아, 사람아! 人啊,人! 다이허우잉 戴厚英 《사람아 아, 사람아!》, 戴厚英 저, (세양, 1992)
《사람아 아, 사람아!》, 신영복 역, (다섯수레, 1991)
《인간. 아, 인간!》, 서정태 옮김, (열음사, 1989)
77 황금시대 黄金时代 왕사오보 王小波 《황금시대》, 왕샤오뽀 지음, 손인숙 옮김(한국문원, 2000)
78 빌어먹을 양식 狗日的粮食 류헝 刘恒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 류헝 소설집, 홍순도 옮김(비채, 2007) 중 "빌어먹을 양식"
79 장기왕 棋王 장시궈 张系国  
80 뇌색 赖索 황판 黄凡  
81 처첩성군 妻妾成群 수통 苏童 《이혼 지침서》, 김택규 옮김(아고라, 2006)
82 패왕별희 霸王别姬 리비화 李碧华 《사랑이여 안녕》, 릴리안 리 저, 김정숙/유운석 역(빛샘, 1993)
83 살부 杀夫 리앙 李昂  
84 초류향 楚留香 고룡 古龙 《초류향》, 장학우 옮김(대륙, 1992) /
《신 초류향》, 시공사, 2001.
85 창밖 窗外 경요
琼瑶  
86 침묵의 섬 沉默之岛 쑤웨이전 苏伟贞  
87 백발마녀전 自发魔女传 양우생 梁羽生 《백발마녀전》, 박광일 역(태일출판사, 1993)
88 고도 古都 주톈신 朱天心  
89 윤현장 尹县长 천뤄시 陈若曦  
90 사희우국 四喜忧国 장다춘 张大春  
91 희보 喜宝 이수 亦舒  
92 남자의 반은 여자다 男人的一半是女人 장셴량 张贤亮 《남자의 반은 여자》, 김의진 역, (미학사, 1991)
《남자의 반은 여자다》, 리팡 역, (새론문화사, 1994)
《남자의 절반은 여자》, 정성호 역, (태광문화사, 1986)
《남자의 절반은 여자다》, (문학사상사, 1994)
《사랑 속의 사람》, 김세민 역, (도서출판 춘추원, 1992.11)
93 장군의 머리
将军底头 스저춘 施蛰存  
94 남혈인 蓝血人 니쾅 倪匡  
95 이십년 동안 본 이상한 현상 二十年目睹之怪现状 오견인 吴趼人  
96 살아간다는 것 活着 위화 余华 《살아간다는 것》, 백원담 옮김, (푸른숲, 1997)
97 카일라스의 유혹 冈底斯的诱惑 마위안 马原 《카일라스의 유혹》, (웅진지식하우스, 근간)
98 십년십의 十年十癔 린진란 林斤澜  
99 북극 풍경화
北极风情画 무명씨 无名氏  
10O 옹정황제 雍正皇帝 이월하 二月河 《옹정황제》(10책), 한미화 옮김(출판시대, 2001) / (산수야, 2005)
           


http://hi.baidu.com/80dc/blog/item/9d2b41d36fc01d053bf3cf81.html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21. 02:3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21733505&code=960100

뒤늦게 경향신문의 기사(6월3일자)를 통해 옌롄커가 한국을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반체제 소설가인 옌롄커(閻連科·50)가 한국에 왔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경북 포항에서 ‘아시아, 소멸의 이야기에서 생성의 이야기로’(포스코청암재단 주최·계간 아시아 주관)란 주제로 열린 문학포럼에 초청됐다."라고 기사는 소개하고 있다.

금서 하나 썼다고 반체제 작가가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좀 오버다.
현재 금서로 지정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발표할 2005년에 그는 노사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기사에도 소개하고 있다시피 여전히 작가협회 소속 작가로 있고, 그 정도를 소설에서 표현하는 게 반체제까지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현정부에 그다지 위험한 내용도 아니지 않은가..

기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신간 번역 소식이다.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흐르는 세월’(1998년), ‘물처럼 단단하게’(2002년), ‘즐거움’(2003년), ‘딩좡의 꿈’(2006년) 등을 이 시기에 썼다. 이중 ‘물처럼 단단하게’와 ‘딩좡의 꿈’은 올 하반기 중 국내 출판사인 물레와 아시아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언급되는 소설은 모두 옌롄커의 문풍이 바뀐 이후 작품들이다. 그 중 옌롄커의 대표작은 여전히 <물처럼 단단하게>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물처럼 단단하게>의 속편의 하나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책 또한 금서로 묶였다가 풀렸다. 언제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풀리지 않을까 싶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이미 간단하게 포스팅한 바 있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번역본을 읽은 소감을 간단하게 정리해 두려고 한다만. 당장은 시간을 내기 힘들 것 같다.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읽히는 번역이기 때문에 별로 토를 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암튼 <물처럼 단단하게>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보다 번역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한국어로 표현될지 기대된다..

또 하나, 이상한 부분이 보여 검색해 본다.


"작가는 특히 최근작인 ‘딩좡의 꿈’에 대해 애착을 드러냈다. 딩좡이란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주민들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붕괴된 처참한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은 홍콩 잡지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06 중국어로 쓰여진 10대 저작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정장몽>(딩좡의 꿈)은 "2005《亚洲周刊》全球十大中文好书", 즉 2005년에 선정되었다. (발표는 2006년에 되었다.)
1위라는 기준도 애매하다. 관련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면,
"中文十大好书是《半生为人》、《丁庄梦》、《战废品》、《一阵风,留下了千古绝唱》、《遍地枭雄》、《土与火》、《红楼望月》、《天工开物》、《阅读的故事》和《回到诗》,显示全球华人知识界的精神追求和对中华民族命运的承担。"

보통 처음 언급하는 걸 1위라고 한다면 그런가보다 싶지만, 보시다시피 두번째로 언급되고 있다.
다른 근거가 발견되면 수정하겠지만, 일단은
그냥 "2005년도 <아주주간> 선정 전세계 10대 중국어 우수도서"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

(중국애들 잘 쓰는 표현인데 가끔 속아 넘어가는 표현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큰, 대단한, 등등)이라는 표현 뒤에 "중국", 혹은 "중국어"라는 한정어를 슬쩍 붙이는 방식. 중국어로 창작된 작품 중 가장 우수한 책이라는 건데.. 중국대륙 이외에도 중국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많으니까 용인되는 표현이긴 하지만, 비슷한 표현을 볼 때마다 좀 거시기하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이 가능하겠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중국산" 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중국"제 자동차, 등등.. 써놓고 보니 한국어로는 좀 헷갈리는데, 방점은 뒤에 있다. 암튼.. 세계 최강대국이 되고 싶다니 그러라고 두는 게 좋겠다.)

아래는 한국일보에서 전한 인터뷰이다.
<옌롄커 "작품마다 비평가 표적… 인간·진실에 다가설 뿐">

국내외 문인 61명이 참가한 '아시아문학포럼 2008' 행사가 28~29일 경북 포항 포스텍(옛 포항공대)에서 열렸다. 포스코청암재단이 주최하고 계간 < 아시아 > 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28일 환영 만찬, 29일 개회식과 3개 분과 토론으로 진행됐다.

포럼엔 2005년 출간 당시 '마오쩌둥의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의해 판금 조치를 당했던 소설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의 작가 옌롄커(50)가 초청됐다. 이 작품은 최근 국내 번역돼 출간 2주만에 재판을 찍는 호응을 얻고 있다. 29일 오전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문학 번역가 김태성씨가 통역했다.

- 소설에서 마오쩌둥의 혁명 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군대 상관 부인과 취사병 간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최음제'로 전락한다. 이런 설정이 일으킬 파문을 예상하지 않았나.

"28년간 복무하던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해방감 속에 쓴 작품이다. 쓸 당시엔 파장을 예상 못했다. 30년간(1978년 데뷔) 써온 작품들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억압된 인간 권리, 군대 비리, 문화혁명을 비판한 소설이긴 하다. 문혁 때 썼다면 총살감이다(웃음). 중국이 그동안 열린 사회로 변해 국내 판금 이상의 제재가 없었고, 20여개국에 번역돼 널리 읽혔으니 나로선 행운이다."

- 루쉰문학상, 라오서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여럿 받은 당신 이력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작품이 좋아 상을 받았을 뿐, 줄곧 중국 정부와 사회에서 환영을 못 받았다. 나는 작품을 낼 때마다 가장 많은 비평가들의 표적이 되는 작가다. '블랙유머 작가' '광상(狂想) 현실주의' '몽환 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등 많은 수식구가 뒤따랐지만 무엇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난 어떤 유파에 속한 적 없다. 스스로를 '가장 독립적인 작가'로 평가한다."

- 저명 평론가 천쓰허는 이 작품과 위화의 < 형제 > 를 꼽으며 "문혁을 공포ㆍ반성 대상이 아닌, 유희 대상으로 바라보는 괴탄(怪誕)문학이 탄생했다"고 평했다.

"글쎄. < 형제 > 는 천쓰허의 평가에 부합하지만 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성적인 측면을 약간 코믹하게 다루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엄숙하고 진지한 작품이다."

- < 인민을… > 은 노골적 성애 묘사뿐 아니라, 중국 내 권력ㆍ계층 문제에 대한 첨예한 풍자가 읽힌다. 베이다오, 가오싱젠 등 망명작가가 아닌, 중국 내부에서 이처럼 강한 사회비판 문학이 존재한다는 게 놀랍다.

"비판문학의 목소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위화의 작품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내가 중국 정부로부터 환영 못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성적 묘사는 별개 문제로, 정부 역시 여기엔 관대하다. 내 작품이 판금 조치된 것도 성적 묘사의 적나라함과는 무관하다. 한국에도 번역될 < 물처럼 단단하게 > 란 작품은 < 인민을… > 보다 더 노골적인데 아무 문제 없었다(웃음)."

- 중국 작가 대부분은 중국작가협회(작협)에 소속돼 있다. 이런 관변적 운영이 작가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나.

"나는 작협 일급작가라서 성과와 무관하게 대학교수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작협은 굉장히 느슨한 조직이라 작가에게 미치는 실질적 통제력이 거의 없다. < 인민을… > 이 판금됐을 때도 작협이 내게 제재를 가한 게 없다."

- 무리해서 글을 쓰다 몸이 안좋아지니까 누워서 글 쓸 수 있는 특수의자를 장애인용 의료기 제작 공장에서 맞췄다는 얘기를 들었다.

"96~98년에 이 의자에 누워 < 흐르는 세월 > > < 물처럼 단단하게 > 같은 대표작을 썼다. 지금도 허리가 아파 책상에 앉으려면 요대를 감아야 한다. 난 생명 전부를 문학에 투입하고 있다. 인간의 진실, 중국 인민의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서고 싶다."

- 올 하반기 < 딩좡의 꿈 > 이란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다고 들었다.

" < 인민을… > 다음에 쓴 작품으로, 중국 최초로 에이즈(AIDS)를 소재로 했다. 딩좡이란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 사용으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이 실제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성의 어두운 면을 묘사했다. 홍콩 아주주간에서 선정한 '2006 중국어로 쓰여진 10대 저작물' 1위에 뽑혔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5. 08:48

고서(舊書)

아청(阿城)



오경상(吳慶祥)은 열두 살에 도제가 되었다. 배우는 것은 고서점 일이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와 비슷해서 “반년 동안 물건을 못 팔다가, 물건을 팔면 반년을 먹고 산다.” 오경상은 취급하는 게 반년을 먹고 살 “물건”들이니 큰 장사라고 떠벌이곤 했다. 큰 장사가 잘 될 리야 없지만, 그래도 석인첩(石印帖)이나 수산석료(壽山石料; 사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들락거리면서도 장사는 되었다.

 


들락거리다 보니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문인들이 많은 편인데,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가, 반나절을 뒤적이고 반나절을 서성이다가는 가 버린다. 이런 부류는 새끼 문인들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새끼 문인이 언제 대문호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새끼 문인일 때 잘 모셔 두면 대문호가 된 후 서점의 이름값 또한 같이 올라가는 법이다.
대문호는 종종 쪽지를 남기곤 한다. 쪽지에는 찾는 책이 쓰여 있다. 쪽지의 책을 찾으면 전부 다 찾은 게 아니라 한 권이라도 먼저 찾으면 보내 줘야 한다. 정성껏 찾고 있다는 표시라도 내야 되니까.


책을 배달할 때는 항상 다른 책도 끼워 가야 한다. 어떤 책을 끼울 것인가는 문인의 기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외관을 중시하는 문인에게 외관이 잘 장정된 책을 끼워 가면 보통은 구입해서 서가에 진열해 두었다가 친구가 오면 보여주곤 한다.


오경상이 매입자에게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책을 배달하려면 책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배달하는 게 무슨 책인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오경상은 글자 배우는 머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간 지 삼년 만에 책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오경상은 그때 이미 변성기였고 키도 커서 보통은 그가 열다섯에 불과한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책을 아는 두 번째는 아주 어렵다. 판본에 대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온갖 잡다한 학문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분야라서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오경상은 서점에서 책을 사러 온 고객들을 모실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둔 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먼저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 손발은 바쁘게 놀리면서 말이다. 서점은 학교가 아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책을 팔아 줘야 한다.


머리속에 새겨진 것은 조금씩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기회에 단번에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해하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오경상은 간혹 해정(海淀; 북경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책을 배달하기도 했다.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옆으로 잡초만 무성하다. 오경상은 겨울에 해정까지 책을 배달하는 게 가장 겁난다. 역풍이 부는 데다 날도 빨리 저물어 돌아올 때는 모골이 송연하기 때문이다. 오경상은 훗날 대문호 몇 명과 잘 지냈다. 물론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오경상은 훗날 사창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선무문(宣武門) 바깥의 점원치고 사창가를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가고 싶은 법이다. 서점에 책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아니다.


오경상은 매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나으면 또 사창가를 찾았다.
낮에는 책 파는 일을 돕고, 책 파는 학문에 신경 쓰고 배달도 하다가 어두워지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동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단골을 찾는다. 매번 같은 가격으로.


북평(北平)은 1949년에 해방되어 원래 명칭으로 바뀌어 다시 북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0년 초에 오경상은 자살했다.


오경상의 자살에 대해 친하게 지내던 점원들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오경상은 주인도 아니고 고작 고참 점원에 불과하니 성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사창가를 단속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신사회가 시작되어 도처에 새로운 기상이 움 솟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는데, 어찌하여 사내대장부가 쉽사리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점원들이 오경상을 언급할 때면 지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2008년 6월 5일 초벌. <아청 정선집>(북경연산출판사, 2006년), 99-100쪽.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5

리얼(李洱)은 1966년 허난성(河南) 지위안(济源)에서 태어났다. 《홍루몽》, 《삼국연의》와 같은 고전소설을 즐기는 할아버지와 중학교 어문교사였으며 역시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리얼이 작가가 아닌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술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미술교육은 은연중에 그에게 형상적인 사유능력을 키워줬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소설 창작을 목표로 했으며 이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중문과에 입학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소설 읽기를 시작한다.

80년대의 화둥사대는 문학 창작과 비평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오직 글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학청년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근문학(尋根文學)이나 선봉문학(先鋒文學)과 같은 최신의 문학 조류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기도 전에 대학에서는 미리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시작했다. 특히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福音)」(1987)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많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으며 저자 자신도 비교적 만족스러워 하는 초기작은 당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1993)이다.

 

대학원생인 “나”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신중한 어투로 지도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존경의 말투가 극진할수록 지도교수의 행색은 더욱 초라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되는 사건, 장면, 생활의 디테일은 지도교수의 어쩔 수 없는 생존환경과 정신적인 붕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편집자가 출판을 위해 수정을 가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초고를 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두 글자가 달라짐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은 이후 그의 창작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화둥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허난성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수년 간 역임했다. 허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허난성의 창작계와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선봉소설이나 모더니즘 계열 소설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중역본 《보르헤스 소설선》을 끼고서 거리를 다녀 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시 허난 창작계의 분위기였다. 리얼이 보기에 허난성 작가의 소설은 건국 이전의 고루한 양식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리얼이 땅과 향촌의 이야기에 기반한 다른 허난 작가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상하이, 선봉문학,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였다. 이후 허난작가들이 가진 토착성과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자신이 향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시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