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4. 3. 00:22
별로 과학적인 근거는 없겠지만 나는 정신이 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력으로 버텨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사람이 없지는 않으나, 내가 보기에 그건 정신력이 아니라 욕심, 혹은 욕망 때문에 몸에게 너무 가혹한 짓을 하는 거다. 링겔 맞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을 택한 건 그 사람의 입장인 것이고,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몸은 최대한 살살 달래가면서 사용해 줘야 한다. 앞으로 한참을 같이 지내야 하지 않는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기분이 울적할 때 웃는 표정을 지어보라고 한다. 양미간을  펴고 입도 옆으로 길게, 얼굴에 근육도 느슨하게 만들어서.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정말 슬퍼야 할 때 웃는 표정을 짓다가는 조커 취급 당한다. why so serious, son?)
자세는 우선 어깨를 낮춰야 한다. 긴장되어 있을 때 잘 보면 어깨가 들려 있다. 컴퓨터를 오래 쓰다 보면 자연히 어깨가 위로 들리기 쉽다. 팔과 어깨선이 만나는 그곳에 긴장을 풀고 어깨를 낮춰라. 그리고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그렇다. 참선하는 자세다. 앉아 있을 때든 서 있을 때든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어깨를 낮추고 팔을 늘어뜨려 보자. 별 효과는 없을 수 있다만. (이건 태극권 하는 애들, 혹은 이연걸 어깨를 잘 보면 연상이 될까?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애들과는 달리 무술하는 사람들 어깨는 각이 없이 둥글둥글하다. 태권도는 제외다.)

대학원생이 된 후, 그리고 중국에 혼자 와 있으면서 몸을 많이 잊고 지낸다.
억지로 몸을 가지런히 하려고 해도 어느새 내 허리는 구부정해져 있고 어깨는 들려 있으며, 양 미간은 내천자를 그리고 있다. 입술은 꽉 다문 채, 혹은 앞으로 삐죽 내민 채. 자세가 굳어져서 어떨 때는 턱이 아플 지경이다. 입 꽉 깨물고 무슨 비장한 일을 하는 걸까?

편안하게.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앞으로 이 친구와 같이 지낼 날이 적지 않기에, 애 보듯이, 강아지 훈련시키듯이 살살 비위 맞춰가며 칭찬도 해줘가며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 막 부려도 따라올 놈이긴 하나, 이놈 욱 하는 성질이 있어 언제 배신 때릴 지 모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 많은 시간을 앉아 있지만 사실은 비능률적이다. 시간 정해놓고 몰아서 6시간을 투자하는 게 훨씬 능률도 좋고, 몸에도 좋고, 내 정신상태에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늦었기에, 지금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이게 끝나고 나면, 다음부터는...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다.

정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부리고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습관으로 몸이 그것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정신도 만들어질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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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3. 30. 01:56
아파트 단지 앞에 얼마 전부터 신강 라면집이 생겼다. 출출할 때 라면 끓이는 것보다 나가서 한 그릇 먹고 오는 게 싸고 빨라 가끔 이용하곤 한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인지라 손님도 아주 많지는 않아, 밀가루를 미리 반죽해 뒀다가 주문량만큼 떼어다가 수타라면을 만든다. 얼마 전에 본 <누들로드>도 생각나고 해서 라면을 뽑을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미리 반죽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여러 차례 때리고 뽑고 늘이고 하는 사이에 일정한 두께의 탄력적인 면발이 만들어지고, 바로 뜨거운 탕 속으로 직행이다.


면을 뽑는 장면이 보기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면 뽑듯이 뭔가가 제대로, 제때에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말랑말랑한 것 속에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몸도, 생각도, 생활도 말랑해져 경계가 사라진다. 아직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 아직 말랑말랑할 그 때,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보려고 이리 주물럭 저리 주물럭 해보다가 다시 짓이기기를 몇 번. 그조차 딱딱하게 굳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지니 계속 일정한 점성을 유지시키면서 다시 주물럭.


이미 초벌은 끝난 번역이지만 다시 보면 고칠 게 또 나오고, 지난번에 놓쳤거나 해결 못한 것은 여전히 헤맨다. 주욱 연결되는 문장을 앞에서 끊어도 말이 되고 뒤로 연결시켜도 말이 되는데, 원문에서는 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던 말들이 이것 아니면 저것에로 무게중심이 이동해 버린다. 그 긴장감을 어떻게 유지시킬 수 있을까.. 아무려면 어때도 상관없을 아 다르고 어 다른 차이에 집착하다, 전체적인 맥락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결점이 있더라도 책으로 만들어지고 나면 딱딱한 하나의 물건이 되어 있을 것이나, 아직은 계속 움직이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말랑말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뼈 없이 근육? 지금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가다듬는 상태인데, 근육의 결에 파묻혀 뼈를 잃어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길을 헤맨다는 느낌에 아무 책이나 꺼내 읽어 본다. 이 편안함이란~..
가끔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단단한 그 길에 그냥 몸을 맡길 필요도 있겠다. 더듬더듬 길인지 뭔지도 모른 채 가다말다 하는 것보다는, 그냥 표지판을 보고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고 가 보자. 어쩌면 그게 내 몸의 점성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지 않을까?

다 만들어진 라면을 먹으면서 면발은 두껍니 어쩌니, 너무 질기다느니 물렁하다느니 한 마디 던지기는 얼마나 쉽나. 그런데 내 눈이 만족하는 면발을 내 손으로 뽑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 眼高手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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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3. 24. 19:12
해마다 이맘때면 항주에 가 보고 싶어진다. 항주에 반년을 살았지만 여름부터 겨울까지여서 봄의 항주를 모르기 때문이다. 서호변에는 곳곳에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맘때 항주는 복사꽃이 참으로 곱다고 한다. 상해에 두어해 살면서도 항상 복사꽃 필 즈음을 기억하기 힘들었다. 지내다보면 꽃이 벌써 졌거나 뭔가 일이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없곤 한다.

이맘때쯤 복사꽃을 보면 중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를 떠올릴 것이다. 바로 <홍루몽>에서 꽃무덤을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대충 줄거리나 되새기고 기분이나 낼 겸 번역을 해 본다. 꽃을 보러 떠날 수는 없으니, 이런 것으로 기분이나 내 보는 것이다. 번역본을 가져온 게 없어 옳게 옮긴 건지 장담할 수는 없다.

<홍루몽> 23회


그날은 마침 삼월 중순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가보옥은 <서상기(會眞記)>를 끼고 심방갑(沁芳閘) 다리 근처로 걸어가 복숭아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 <서상기>를 펼쳐 처음부터 세세히 완상했다. 막 “붉은 꽃잎 떨어져 무리(陣)을 이루네”라는 구절을 보는데, 한 무리 바람이 불어와 나무 위의 복사꽃이 흩날렸다. 몸에도, 책에도, 땅에도 온통 복사꽃으로 뒤덮였다. 보옥은 그것을 털어내려다, 혹시라도 발로 밟을까봐 꽃잎을 가만히 싸서 연못 쪽으로 가 물속으로 털어냈다. 꽃잎들은 수면 위를 표표히 떠다니다가 마침내 심방갑으로 흘러들어갔다.


되돌아와 보니 땅위에 아직도 한 그득인지라 보옥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여기서 뭐해?” 보옥이 돌아보니 임대옥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에는 꽃 호미를 메고, 호미 위에는 꽃 주머니가 걸려 있었으며 손에는 꽃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보옥이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왔어. 여기 이 꽃을 쓸어 담아 저기 물에다 버려줘. 나도 방금 잔뜩 던져 줬어.” 임대옥이 말했다. “물에 버리면 안 좋아. 여기 물은 깨끗하지만, 흘러흘러 사람들 사는 곳으로 가면 더럽고 냄새나는 게 섞여들어 마찬가지로 꽃을 모욕하는 게 되어 버리잖아. 저기 모퉁이에 내 꽃무덤이 있어. 꽃을 쓸어 담아 이 주머니에 넣었다가 땅에 묻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속으로 스며들 거야. 그게 더 깨끗하지 않겠어?”


보옥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책 갖다 놓고 나도 같이 쓸어 담을께, 조금만 기다려.” 대옥이 말했다. “무슨 책이야?” 보옥이 갑자기 당황하며 책을 감췄다. “뭐 <대학>, <중용> 같은 거야.” 대옥이 웃었다. “내 앞에서 꾀 써봐야 소용없어. 빨랑 내놓는 게 좋을 걸?” 보옥이 대답했다. “좋아. 우리 착한 동생한테 주는 거야 무섭지 않지. 근데 보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이거 정말정말 좋은 책이야. 너도 보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릴 걸?” 이렇게 말하며 책을 건네 줬다. 임대옥이 꽃 도구들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받아 살펴봤다. 볼수록 흥미진진하여 밥 한끼 먹을 시간도 되지 않아 16장까지 모두 읽어 버렸다. 정말로 놀랄만큼 뛰어난 글이라, 남은 향기가 입안 가득한 느낌이었다. 책을 다 보긴 했지만 여전히 그 속에 빠져, 좋은 구절들을 가만히 되새겨보고 있었다.


보옥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 좋아 안 좋아?” 임대옥도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재미난 책이네요.” 보옥이 웃었다. “나는 ‘근심 많고 병 많은 사람’이고, 너는 ‘경국지색’ 그녀야.” 대옥은 이 말을 듣고 뺨에서 귀밑까지 빨개졌다. 곧바로 찌푸린 듯 만 듯 하던 눈썹이 치켜세워지고 뜬 듯 만 듯한 가냘픈 눈을 부릅뜬 채, 노기 가득한 뺨에 성난 얼굴로 보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이렇게 음란한 책을 들고 와서는, 그따위 잡소리로 나를 업수이 여기다니. 내 당장 외삼촌 외숙모에게 이를 테야.” ‘업수이’라는 말을 할 때 이미 눈자위가 붉어져 몸을 돌려 가려하고 있었다. 보옥이 다급하게 그녀를 쫓아와 붙잡았다. “착한 동생, 제발 용서해 주라. 내가 말을 잘못했어. 만약 정말로 널 모욕할 생각이 있었다면, 내일 저 연못에 몸을 던져 자라에게 먹혀 왕빠딴(자라/욕)으로 변했다가, 나중에 네가 ‘일품부인’으로 천수를 누리고 귀천할 때 네 무덤가의 비석이 되어 영원히 엎드려 있을께.” 이 말을 듣고 대옥은 치! 하며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으르는 말도 헛소리만 하냐? ‘툇, 원래 싹수가 노랗군! 은인 줄 알았더니 납으로 만든 창일세!’라는 구절하고 똑같군!” 가보옥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너 이거? 나도 이르러 가야겠다.” 임대옥이 웃었다. “자기는 슬쩍 보기만 해도 외운다고 자랑하더니, 나라고 한눈에 열 줄도 못 외울까봐?”


보옥은 책을 치우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빨리 꽃이나 묻으러 가자,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고.” 두 사람은 떨어진 꽃잎을 주워 같이 잘 묻어주고 있는데, 습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큰어르신이 몸이 안 좋아 아가씨들이 모두 문안드리러 갔어요. 마님이 도련님도 가 보라고 하셨으니 빨리 돌아가서 옷 갈아입읍시다.” 보옥은 그 말을 듣고 책을 챙겨 보옥과 작별한 뒤 습인과 함께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번역은 나중에 시간이 나고 기분이 나면 사전 찾아가며 꼼꼼하게 다듬을 생각이다. 줄거리야 대충 옮겨도 되지만 묘사가 힘들다. 대옥이 내 눈앞에 앉아 있어도 묘사하긴 힘들 것 같다./ 27회에는 또 "장화사(葬花詞)"라는 대옥의 시가 있는데, 시는 더 번역하기 힘드니 오늘은 이만 참도록 하자. 홍루몽 관련 블로그를 참고하고 싶다면: 홍루에서 꿈을 꾸다 .)


올해는 혹시 항주를 다녀올 수 있을까? 지금쯤은 피어 있지 않을까? 라고 가늠할 수 있는 건, 이제는 복사꽃 피는 시기를 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꽃도 아마 음력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음력을 농력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농사짓는 절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력으로 작년 오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 짓다가 몸관리 잘 못하시고 일찍 가신 건데, 밤늦게 전화받고 잠 한숨 못자고 첫 비행기로 급하게 들어갔었다. 뒷산에 아버지가 심어놓은 복숭아 나무 이랑 사이에 묻어드렸다. 복사꽃이 너무 활짝 피어 있었다. 음력으로 이맘때면 복사꽃이 예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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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3. 23. 15:20
요즘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상해에도 벚꽃이 폈는지 잘 모르겠다만
비도 오고 추워져서 봄 기분 내기는 힘들겠다(라고 변명하며 더 안나가고 있다...)
상해에도 벚꽃이 양옆으로 늘어선 길이 있을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있다 해도 상해는 벚꽃과 그리 썩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왠지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중국에서는 우한(武漢)대학이 전국적인 벚꽃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나 보다.
하루 10만명이 다녀갈 때도 있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학생이 아니면 입장료까지 내고 봐야 한다고 한다. 한때는 일본의 상징으로 배척당하기도 했다.(경향일보: “일본軍이 심은 벚꽃은 중국의 수치다” ) 그 논쟁의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니 그냥 상징은 상징이고 꽃놀이는 꽃놀이대로 즐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꽃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다 봉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지난 주말에 일어났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모노 입은 쪽바리는 꺼져!

어떤 모녀가 기모노를 입고 우한대학에서 꽃놀이 사진을 찍다가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일행은 사진을 찍어주던 중년 남성과 그들을 수행하던 젊은 여자까지 해서 총 4명이었다. 모두 우한 지역 사투리를 쓰고 있었지만 복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0여분 정도 사진촬영을 하는데 갑자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모노 입고 우한대에서 사진 찍지 마!"라고 외쳤고, 뒤이어 "기모노 입은 일본인은 꺼져라!"라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모녀는 놀라며 다른 곳으로 피했지만, 순식간에 10여명이 몰려와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어떤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한참 욕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모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즉시 기모노를 벗어 수행하던 여자에게 주고 그곳을 급히 피했다. 엄마는 얼굴이 벌개진 채 어쩔 줄을 몰라했고, 수행하던 여자는 "신경쓰지마, 별 거 아냐, 미친 놈들이지 뭐"라고 여자애를 달래고 있었다.

기자가 쫓아가 왜 기모노를 입고 왔는지 물어보니,
"기모노 입고 사진 찍으면 예쁠 것 같아 그랬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건 자체만 보면 정보학과 2학년생이 똘아이짓 한 것으로, 대학신문에나 간단하게 언급할 내용이지 전국지에 실릴 정도는 아니다. 열 댓명이 고함 몇 번 질러서 놀러온 일가족을 위협한 정도다. 블로그 이슈라면 모를까, 포털 검색어에 등장할 정도는 아닌 듯. (궁금하면, 다음 문구를 긁어서 바이두해 보시길.. 기모노(和服)만 치면, 和服事件, 和服女, 和服 武大, 和服 樱花, 和服 武汉 등등이 자동입력창에 뜰 것이다.)
작은 걸 부풀려 이슈로 만드는 찌질이 상업지의 속성인 것이지, 은근히 반일 기류를 만드려는 정부의 속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혹시 나 몰래 마오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지도 모르겠다만..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an)이 중국에 와서 민족주의적 옷을 입은 걸 "분청(愤青; 분노한 청년)"이라고 하는데, 분청들 사이에서도 잘했니 못했니 말이 많은 것 같다. 하긴 "분청(粪青; 똥칠하는 청년)"이 저질러 놓은 것을 "분청"이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해결이 되겠나만은.

벚꽃이 일본의 상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과 상관없이 꽃놀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일본의 상징인 줄 알면서 벚꽃과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모노를 입은 사람을 성토할 자격이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 진해에서 어떤 한국인 가족이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는다면?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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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3. 5. 20:48

둘로 나눠진 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추운 곳과 따뜻한 곳,
밝은 곳 어두운 곳.
멀찍이서 서로 기대기도 하고 마주 보기도 하고.

둘이 모이면 세상이 만들어진다.
2, 음양, 상대, 적대...
이분법: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단순한 공식.


(예원 앞 스타퍽스에서. 2009.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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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3. 5. 20:15

언젠가 한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상해에서 유학하고 있는 후배들과 잠깐 다니러 온 선배 교수가 만난 자리였는데,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그 선배에게 한수 가르쳐 주듯 중국에서는 어떠어떠하다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떠들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때 한 친구가 "중국에서는 지도교수를 사장님(老板; 라오빤)이라고 부른다"고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 친구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해서,

나는 우리 지도학생들은 선생을 "라오빤"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는데?

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대답은 (전체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당신이 당신 지도교수 밑에 있는 다른 중국인 지도학생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그렇다!" 였다. ^^;;

뭐, 사실과 많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만, 후배에게 까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거시기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 지도학생 모임(졸업생, 현 석박사 과정생이 모두 모이는 자리이다)에서 우연히 한 졸업생이 "라오빤"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녀와 교수의 관계는 예전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에 더하여 현재는 학과 주임과 사무실 직원의 관계이기도 해서 이 "라오빤"이 아주 어색한 것은 아니다.

어쨋든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지도학생들은 그 말은 안 쓴다고 우기고 싶은 것이다!! 쳇! ㅡㅡ;;

(나는 우리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중국의 사제지간에 대한 지식을 여럿 수정해야 했다. 그것은 오히려 박노자가 지적하기 이전의 우리나라 사제지간을 닮은 그것인데, 묘하게 다른 면도 있다. 그것이 단순한 교수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인지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여튼, 하나의 경우를 "중국의~" 무엇이라고 일반화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그러다, 얼마 전 첸리췬의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첸리췬은 북경대에서 퇴임 후 문혁 전후에 몸담은 바 있는 귀주로 내려가 향촌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대학은 정신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大学应该成为“精神圣地”)라는 제목의 이 글 또한 향촌교육, 혹은 지역특성화 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귀주대학에서 행한 강연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한, 즉 크게는 문혁 이전까지 소련식 학제에서 최근의 미국식 학제를 모방하려는 경향에서 작게는 북경대, 청화대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 지역 내부에서 교육의 자원을 찾고 각 지역의 전통과 특성에 맞는 교육을 첸리췬은 강조하고 있다. 그 실례로 귀주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적, 전문적 교육과 함께 "서원식 교육"(왕양명이 귀주에서 서원을 열었나 보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 중 "나의 서원교육 몽상"이란 절의 앞부분을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나의 서원교육 몽상


   개인적으로 나는 왕양명의 서원교육에 가장 흥미를 느낀다. 이것은 내가 꿈꾸던 것이다. 서원교육은 사실 중국교육의 좋은 전통의 하나이다. 이쪽으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좋은 연구를 내어 놓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실천의 문제이다. 즉 서원교육이 오늘날 우리의 대학교육에, 특히 대학원생 교육에 참고로 삼을 만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나아가 "서원식 교육"을 실험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교육에 대해 내가 가지고 꿈꾸고 있는 몽상이다.

    내가 이러한 꿈을 꾸는 것은 지금의 대학원생 교육이 문제이며, 다른 교육자원을 찾아 참고하고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 요즘은 사제관계(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변해 버렸다는 점이다. 갈수록 "사장"과 "알바생"의 관계로 변하고 있다. 요즘 많은 지도교수들이 "사장"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듣자하니 명실상부하게도 요즘은 지도교수가 되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즉 반드시 국가나 성급 학술 프로그램을 따야 하며, 그 프로그램의 경비를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학생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거야 이공계열에서는 일찌감치 그래왔던 건데, 최근에는 문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사제관계 변화의 배후에는 교육의 변질이 도사리고 있다. 즉 지식을 사고파는 관계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매매는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으로 변해 버렸다. 거기에는 마음의 교류, 사상의 충돌, 인격의 영향, 성정(性情)의 훈도, 정신의 흡인과 전달 같은 게 없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교육의 본질적인 것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면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서원교육은 분명 장점을 갖추고 있다. 내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바에 따르면, 서원교육은 사제와 동학 간의 밀접한 교류, 즉 아무런 조건없는 접촉을 중시할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감응에도 또한 주목한다. 인간집단 내에서의 화해 및 인간과 자연의 화해라는 분위기 아래서 인간의 생명은 차분히 가라앉은 침잠된 상태로 진입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만 정말로 마음껏 독서의 즐거움, 학문하기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또한 생명, 우주, 인생, 인성, 중국, 세계, 인류 등 거대한 문제에 대한 사고를 즐길 수 있으며, 사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진정한 교육과 학술의 경계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현대 교육, 특히 오늘날의 중국 대학교육, 대학원생 교육에서는 전혀 꿈꾸지 못한다. 우리의 교육은 갈수록 가시적인 이익 추구에 급급하며,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갈수록 조급하다. 그것은 우리가 교육과 학술에서 갈수록 멀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분적으로라도 학원식(아마도 "서원식"??) 교육방식을 도입하여 짧게나마 실천의 기회를 줘서 젊은 학생들이 교육과 학술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 지금의 교육은 정말로 증오심이 일 정도로 밥맛이다. 나의 몽상은 이렇게 가련한 소망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천애>, 2008년 5기. (《天涯》 2008年第05期)


첸리췬이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길게 하지는 않겠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이고, 글로 정리하려면 쉽지 않으니까..

그러나 자기 영역에서 이제껏 해온 연구를 정리하기만 해도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퇴임한 대학교수가 귀주까지 내려가서 중학교에서 노신 강의를 하기도 했고, "중학생들도 머리가 너무 굳었어~!"라면서 소학교에도 기웃거려 보는 인물이다.

이 글만 읽어도 그가 보여주는 어떤 입장은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까 한다. 생긴 게 꼭 항주 영은사의 미륵불처럼 생겼는데, 역시나 (조상의) 본적이 항주이다.

단순히 "지도교수"와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문제가 생각나서 이 글을 옮겨 번역해 보기는 했는데,

처음 읽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한글로 정리를 해 봐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면에서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새길 만한 부분이 많은 글이다. 저 높은 SKY만 바라보고 지방에 남은 절대다수는 실패자가 되어 버리는 현실 말이다. "돈"이 유일한 가치평가의 기준인 상황에서는 누구도 그 울타리를 깨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지방대 출신이 삼성 들어간 거나, 지방대 대학원생이 미국 대학교수로 취임한 것에 우쭐하는 것으로 그칠 테니까. 동일한 기준에서 움직이는 것. 첸리췬 스스로 이상주의라고 한 것처럼, 그것을 대체할 어떤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누가 "이상"의 이름으로라도 아직 오지 않은 그것을 제시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


하여튼 결론은 앞으로 누구도 함부로 지도교수를 "라오빤"이라고 부르지는 말지어다!!!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2. 24. 16:39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훤하게 보이잖니.



“속이 훤하네” 내셔널지오그래픽 투명한 물고기 첫 공개



이미지 출처: Fish With Transparent Head, "Barrel" Eyes, National Geographi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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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2. 15. 20:24
방학에 한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블로그를 못해 왔다. 예전 이글루스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그렇다.
나에게 있어 한국과 중국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중국이 훨씬 여유롭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이 훨씬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니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들기는 귀찮지만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할 듯.

어쩌다 갓 사주를 배운 돌팔이에게 사주를 보게 되었다.
크게 나쁘지 않은 사주란다. 결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보완하는 장점이 아주 큰.
말을 많이 하는 게 좋다니 앞으로 블로그에서도 시덥잖은 소리라도 계속 지껄어야겠어.

다만 올해 운이 좋지 않단다.
아프고, 하는 일도 잘 되지 않고.

사주는 음력인가?

설 전날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내리 보름을 앓았다.
쉽게 지치긴 해도 잘 아프지 않은 체질이라, 정말 오랜만에 아파본 것 같다.

하는 일도 잘 되지 않는다.

번역 하나를 마쳐 초고를 넘기고 최종교정본을 작업하고 있는데, 아파서 마감을 넘겨버렸다.
마감을 넘기고 끙끙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륙에서 나온 이 판본의 무삭제판인 홍콩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너무나 뻔한 관행을 깜빡 놓치고 있었다. 눈에 뭐가 씌였는지..
아~~~~~ 젠장!!

일단 아주 적은 삭제라도 정치적 고려에 의한 삭제가 있다면 무삭제판을 써야 한다.
게다가 한 장을 완전히 들어내어버릴 정도이니 홍콩판은 지금이라도 무조건 입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자에게는 어떻게 말하나? 미리 알아보지 않고 이제사 말이다.

콩푸쯔에 넣으면 보름 정도 걸리려나?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

이외에도 첩첩산중이다.
산이 너무 높아 여기서 그만 주저앉고 싶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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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9. 2. 15. 03:14

신문을 보다가 궁금한 부분이 있어 관련사항을 검색해 본다.

 

중-프랑스 이번엔 ‘문화재 싸움’

 

 

분수로 사용된 이 12지상은 고장나서 원명원의 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2차 아편전쟁 당시 약탈되었다고 한다. 코에서 물이 졸졸 나왔단 말인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약탈 문물을 경매에서 구입할 것인가, 반환요구를 할 것인가이다.

 

중국인이 개인적으로 경매에서 구입한 후 국가에 기부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다.

그런데 원래 자기 소유였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다시 구입해 온다는 게 영 찝찝할 것이다.

게다가 동일한 12지신상의 일부인 돼지머리를 600만 위안에 구입한 적이 있는데, 토끼와 쥐의 경매가는 2억 위안을 호가한다. 중국측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긴 하지만 물건 자체가 그렇게까지 고가인 것은 아니라는 것. 훔쳐가서는 비싼 가격에 경매를 부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러나 반환요구 또한 쉽지 않다.


우리가 사들여서 청와대에 기증하는 건 어떨까?



현재 80여명의 변호인단이 법률소송으로 경매를 저지하고 반환요청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법률 소송으로 갈 경우 증명해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많다.

 

또한 소송의 원고를 "애신각라"(爱新觉罗; 청 황조의 성씨)의 종친회로 한 점 또한 문제가 된다.

소송에 국가가 나서면 국가 대 국가의 대결국면을 조성하여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을 내세운 것인데(따라서 원명원이나 약탈유물 관련 단체가 원고가 되기를 거부했다), 이 경우 소송이 성공하더라도 청 황실의 유물이 애신각라의 후손들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어 버린다. 애신각라씨 후손들이 중국과 대만의 박물관에 소장된 그 많은 보물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오면 볼 만 하겠다..(그런데 애신각라를 성씨로 쓰고 있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암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심정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법률적, 현실적으로는 풀지 못한다는 난점이 있는 것 같다. 깊히 생각하지는 않고 신문을 보다가 대충 찾아본 내용 일부를 정리해 둔다.

 

그런데, 아래 설문 내용이 인상적이다. 공신력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뜻밖이다.

 

*원명원의 유실 문물, 어떻게 해야할까?  (투표수: 961)

 

반환되어야 한다, 어쨌든 구입하는 방식은 안돼. 40.58%

돈이 얼마가 들어도 반드시 사 와야지.. 4.99%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나라의 힘을 키우자. 22.58%

외국에 그냥 둬라, 반환되어봐야 아끼지도 않을 걸. 31.58%

 

·圆明园流失的文物,该咋办? (得票数:961)
应讨要,无论如何都不买 40.58% 390票
务必都买回来,不惜重金 4.99% 48票
不着急,先力争国富民强 22.58% 217票
放国外吧,要回也不珍惜 31.85% 306票
投票起止时间:2009-02-14 至2009-02-16

http://vote.talk.163.com/vote/results.jsp?voteid=34551

 

약탈 유물은 원래 중국 소유였으니 당연히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긴 하다.

그런데, 그냥 내비 둬라. 거기 그대로 있는 게 낫다. 라는 의견도 비슷하게 많다.

 

남겨진 유산이 워낙 많아서 아까울 게 없다는 태도인가, 아니면 중국의 문화재 관리를 믿지 못해서일까?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2. 29. 06:19
저녁을 먹으면서, 뒤늦게 돌려받은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를 펼쳤다가 "벽"에 관한 몇 문단을 읽다.
갑자기 나에게 The Wall: Live in Berlin이 있다는 게 생각나 컴퓨터에 넣어본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 다른 걸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너무 간만이기도 했지만 지독히도 매력적이라 도저히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능..
덕분에 작업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렸다.(조금 예상 못했던 일이다.)
TheWallLiveInBerlin.jpg

이미지출처 : metalprogshrine.blogspot.com


올해는 크리스마스도 연말 기분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아주 조금 울적해지려해 <러브 액츄얼리>를 틀어본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한번쯤 다시봐야 하는 영화니까. (작업시간을 '헛되이' 보낼 게 너무나 뻔해 이번 시즌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그냥 틀어놓고 화면은 절대 안 보고 음악만 들을 생각이었다아아... )

Loveactually_P1.gif

이미지출처 : www.cinecine.co.kr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다가, 한 화면에 다양한, 수천의 얼굴'들'이 모자이크로 쪼개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펼쳐보이지만, 그것은 수천의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따뜻한 사랑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것들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집중하면 대충 시간당 한편 정도의 작업을 할 수 있는지라, 내일 모임을 위해 평소 두배 정도 되는 작업량을 완수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었으나, 지금 이 시간까지 한편도 끝내지 못했다능..
그러면서도 '내일 빈손으로 간다고 뭐, 별일 있겠어?'라는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작업을 위한 최소한의 긴장도 무장해제시켜 버린 채 나는 그 편안함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2006년에 시작한 일들, 07년에 끝냈어야 하는 일들, 그리고 올해 안으로 끝내야 하는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원래 뭔가를 계획한대로 움직이거나,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인간은 아닌지라,. 또 그런 것들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버린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점을 믿어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하나씩 고쳐갔어야 했다. 굳은 의지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맑은 정신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상의 온갖 매력적인 것의 단점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눈앞의 아이스크림과 초콜렛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이제 아무도 내 눈앞의 초콜렛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매력을 빨아들이기만 하고 전혀 발산하지 않는다면 그저 까만 점으로만 나는 기억될 것이다.
나는 전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치명적인 매력에 너무 취약하다.

술도 안 취했는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후후. 지각 메리 크리스마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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