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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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5.13 낙타 2
  3. 2009.05.12 신의 물방울20
  4. 2009.05.12 겨루기 1
  5. 2009.04.23 중독 2 1
  6. 2009.04.22 인생의 아침 1
  7. 2009.04.21 중독 8
  8. 2009.04.20 빗방울, 빛방울 1
  9. 2009.04.19 구도 연습 1
  10. 2009.04.15 5시 10분, 새소리 2
示衆/明室 2009. 5. 16. 00:32

090423. 밤11시. 남경서로.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는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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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5. 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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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5. 12. 01:07
이번 신의 물방울은 우주로 날아갔다.
그 키워드는 짤막한 하이쿠다.

동쪽 들판에 붉은 빛이 비치어
돌아보니 달이 비스듬히 걸쳐 있네

헤어진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이탈리아인은 이 시의 해석을 일본인에게 부탁하고 아래와 같은 답을 받는다.

낮에 아지랑이가 보여 집에 가려고 돌아봤더니,
달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 해석에 의해 이탈리아인은 매일 석양이 지는 언덕에서 달이 떠오르는 걸 지켜보며 추억을 와인을 마신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이 시의 해석을 다르게 한다.

동쪽 들판에 서광이 비침에
돌아보니 서쪽 하늘로 달이 기울고 있구나

새벽 어스럼에 같은 장소에 나가 와인을 마시며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직 지지 않은 달빛에 취한다. 3년 일찍 이 시간대에 나왔다면 그는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시가, 그리고 이 와인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를 성취했을 때, 그 빛에 가려 빛을 잃어가는, 그러나 우리가 어두운 시기를 보낼 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을 떠올려 보라는 것이겠다.
밤길을 걸어야 할 때, 자기 스스로 빛을 내지도 못하는 그것에 우리가 얼마나 기대었던가 말이다.

어쨌든 우리가 너무 환한 상태에 있을 때는 그 빛에 가려 내 길을 안내하는 다른 희미한 것들은 묻혀진다. 다시 우리가 내리막길에 처하기 직전, 혹은 우리 인생의 서광이 비쳐 잊혀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에만 우리는 그 은은한 달빛을 살짝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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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5. 12. 00:51
낮에 볼일 보러 나갔다가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들고 간 책을 보며 밥을 기다리는데, 눈은 계속 조그만 TV를 향하고 있다.
단막극인지 연속극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웨딩플레너에 관한 연속극일수도 있겠다.)
너무 허약한 사윗감과의 결혼을 반대하며 특전사 출신의 자기회사 부하직원을 딸의 남편감으로 미는 아빠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요즘도 이렇게 딸의 결혼에 반대하는 뼈대 굵은 집안이 있긴 한가 본데, 거의 전형적인 군인정신, 상명하복의 계급주의에 물든 아빠와 부하직원의 대화가 너무 친숙해서 낫설었다. 어떤 아이디어와 구도만 있고 그것을 채우는 살이 너무, 뭐랄까, 사람의 모습을 흉내낸 인형의 그것이지 사람 얼굴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집까지 찾아와 무릎꿇고 사정하는 사윗감과 딸의 간청에 못이겨 체력으로 시합해서 삼판이승하면 딸을 주겠다고 대답한다. 시합은 윗몸일으키기, 100m달리기, 턱걸이이다. (뭐, 체력장도 아니고 마랴..)
윗몸일으키기는 간단하게 특전사가 100개를 먼저 하며 끝난다.
100m달리기는 앞서가던 특전사가 중간에 넘어졌는데, 사윗감이 지나쳐 가다가 되돌아와 일으켜 세워준다. 근데 특전사가 사윗감을 밀어제키고 달려나가 우승한다.
턱걸이는 특전사가 간단하게 10개만 하고 내려온다. 우승을 확신한 것이다. 사윗감은 젖먹던 힘 짜내어 11개를 한다.
2승1패. 우승.
그런데, 승자는 사윗감이다.
아버지가 페어플레이 정신을 내세우며 100m도 사윗감에게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대충 어떤 구도를 정했는지 알겠고, 딸과 허약한 애인의 우승으로 가는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작위적이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자연스럽다. 살짝 넘어졌다고 다치지도 않는데, 사윗감이 다시 와서 일으켜 세워주고 어쩌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따뜻한 인간미? 윤리적 가치를 내세운다고 작위성이 감춰지는 건 아니다.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100m 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특전사가 넘어지면서 지나쳐가던 사윗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일어서 달려가는 장면으로 바꾸면 어떨까?
어떤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강자의 야비함을 슬쩍 보여주는 것이 윤리로 무장한 약자의 망설임을 보여주는 것보다 효과적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 어쨌든 별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밥이 나왔길래 책은 안 보고, TV로 눈을 주며 먹으면서 슬쩍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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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4. 23. 01:19
"중독"에 대한 글로 팬질하는 마눌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중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노다메나 보고 파일 다운이나 받고 있었냐능.. 질책!?
물론 약간의 농담이긴 한 것 같다만 많이 뜨끔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굴의 팬질을 비웃거나 야단친 적 없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나의 커밍아웃의 대가는 가혹하기만 하다.. *^^*

약간 변명을 보태자면, 나의 중독은 너굴의 중독과 다르다는 점이다.
노다메를 보고 노다메 역을 맡은 이쁘고 귀여운 여배우를 쫓아다니거나, 치아키 역을 맡은 잘생긴 사내의 개인사를 뒤지는 게 아니라 클래식 명반을 모으고, 피아노 애창곡을 두세 배 늘였다는 점. 자랑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건 비유하자면, 김연아의 수상을 보고 김연아라는 스타에 열광할 것인가, 아니면 피겨스케이트의 새로운 매력에 관심을 가지는가의 문제다. 만약 후자였다면 지금 한국의 이상한 김연아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을 건데 말야. 그런 의미에서 김연아 뉴스를 챙기는 사람보다 아이스링크로 향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겨라는 스포츠 자체가 좋아지면 쓸데없이 국가대항전으로 만들지 않고 마사오의 연기를 좋아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상황에선 김연아가 인기에 녹아서 몸을 못 만들거나, 마사오가 절치부심하여 금메달을 따 버리면(김연아는 메달권에도 못 들면) 완죤히 잊혀져 버리지 않을까? 물론 김연아는 너무 이쁘고 맑다. 그런데 얼음같은 그 피부와 미소는 너무 따뜻한 곳에서 견디기 힘들 거란 말씀.

어쨌든 무엇에 중독되는가와 그 욕망을 어떻게 분출시키는가가 중요할 텐데.
생각해 보니, 한국 드라마들은 사랑놀음 말고면 별 게 없어 팬질이 가장 안전할 것 같기는 하다. 미사나 카인과아벨 보고 너굴이 삼각관계에나 빠지면 나는 어떻하겠는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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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4. 22. 20:38


천재의 눈에는 항상 미가 보인다.
모든 순간은 그에게 충만하다.

하지만 창조할 줄 모르는 이들의 경우,
창조한다는 것은 천재의 '계시를 무기력하게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그 동안 인생에서는 생명력이 고갈되어버린다.
-- Carl Schor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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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4. 21. 01:19
요즘 우리 너굴은 소지섭에 빠져 늦은 나이에 팬질에 여념없다. 여고생도 아닌 주제에..

시작은 "영화는 영화다"이다. 그 후 한국의 훌륭한 인터넷 환경을 발판삼아 철지난 "미사"까지 밤잠 아껴가며 봐 버리더니, 요즘도 재미없다 아우성치면서 카인과 아벨을 끊지 못하고 있다. 소지섭 팬카페까지 가입해 모든 글을 읽고 동영상 순례까지 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기도 이제 재미없고 지겹고 중복되는 내용도 많아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 나의 조언은 이독제독! 다른 더 재미난 드라마를 봐서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라고 했는데 쉬 안 되나 보다. 한국드라마들은 나름 재미있지만, 스토리 전개상 틈이 너무 많다. 장비도 좋고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은 탁월하지만(그리고 거기에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잘 못 만든다. 빤하고 구멍이 많다. 무엇보다 느리고 긴박감이 없다. 어떤 중요한 장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슬쩍 넘겨야 정말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법인데, 우리고 또 우려먹는다. 스토리 작가에게 투자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작가파업으로 드라마 제작이 중단되는 미국이야기는 정말이지 별나라 외계인들 이야기다. 미드 찬양할 입장도 아니고, 본 것도 얼마 안 되지만 미드는 볼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물론 사람 사는 이야기 뭐 별 게 있겠냐만은, 한편 한편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들의 능력을 보고 있으면 정말 촘촘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드라마는 작은 아이디어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미드처럼 시리즈로 이어지는 드라마들은 그 속에 작은 세계, 작은 우주를 구성한다. 정말 별나라 이야기인 배틀스타 갤럭티카 같은 SF물도 그렇고,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스타워즈 같은 영화나 시리즈 드라마들, 서유기, 수호전, 홍루몽 같은 중국 장회소설들은 이렇게 끊어지며 이어지는 이야기의 조합을 통해 자기 세계를 만들고 있다.(언제고 이들을 모두 엮은 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나는 우주여행도 해보고, 의사도 되어보고, 대관원에서 시도 지어보는 것이다..

아,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고. 중독이었지.. ^^;;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이고 재미도 없어져 그만하고 싶은데 그만둘 수 없는 애처러운 상황.
나에겐 그런 게 없었을까? 통화할 때는 별 적당한 게 생각이 안 났는데 생각해 보니 많다.
담배 같은 경우 언제든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가 이제 끊으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단계로 넘어왔는데, 그건 지금 재미가 없거나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아니다. 술도 습관적으로 마시는 건 아니고.

사실 가장 중독성이 강한 건 운동인데, 이제 근육도 풀렸고 그 바닥을 떠난지 오랜지라 그건 패스하고..

비교적 최근의 예를 생각해 보면, <신의 물방울>을 보고 와인에 빠졌던 경우다.
그 전에도 와인 홀짝이길 싫어한 건 아니지만 마실 기회도 많지 않았고 뭘 알고 마신 건 아니었다. <신의 물방울>도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그런데 내가 독특하게 생각한 점은 주인공이 와인을 마시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각과 후각 훈련을 와인평론가 아버지로부터 받아왔지만 와인은 한방울도 마셔보지 못한 주인공과 그 아버지에게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세상의 모든 와인을 섭렵한 와인평론가 이복형제의 대결구도인데. 이들이 와인을 마시면 갑자기 호수도 나타나고, 그 호수 한켠에 여인도 나타나고, 중세의 성에도 다녀오고, 눈 덮힌 산위에도 올라가 있다. 어떤 감각의 절정? 그런데 와인 찾기는 기억 찾기와 연결된다. 끊어진 아버지와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어머니와의 기억들. 그것은 그냥 억지로 떠올리려고 해서 생각나거나, 돌머리라서 기억 못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와인이라는 매개를 통해야만 찾아지는, 와인이라는 물질성을 통과해야만 상기되는 기억들이다. 신의 물방울 12사제는 그래서 최고의 와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 어머니에서부터 그들의 성장,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이해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편은 못봤으니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축축한 추운 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따뜻한 홍차에 마들렌을 내어온다. 별로 땡기지는 않았지만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한입 먹어본다. 아, 뭐지? 마르셀은 홍차와 마들렌의 조합에서 봉인된 무엇을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다. 다시 한잎 베어물고 그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그 느낌에 집중해 본다. 그 맛의 뿌리를 더듬어가자 기억의 봉인이 풀리며, 어릴 적 고모네 집에서의 장면이 "상기"된다. 그 기억은 머리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억지로 떠올리려 한다고 해서 떠올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머리속이 아니라 그 물건에 들어있다고 할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물건을 만졌다고 갑자기 딱 상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물질에 새겨진 기억을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찾아가야만 되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렇게 프루스트의 <시간>은 특정한 물질, 장소에서 되찾아낸 지나간 기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신의 물방울>에서 그 매개는 와인인 셈이다.

와인? 그냥 맛있기만 한걸? 아무리 마셔봐도 내 눈앞에는 꽃밭도 펼쳐지지 않고, 호숫가에서 다소곳이 목욕하는 그녀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래도 난 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퍽!!)

불행인지 다행인지, 와인에 미치기 위해서는 돈이 조금 많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2-3만원대 와인이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 가격대에서 살 수 있는 맛있는 와인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조차 종류별로, 원산지별로 다 마셔보려면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맥주 한잔 하고 속 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 와인에 미칠 뻔 했지만, 애달픈 속을 추스르며, <신의 물방울>만 꼭꼭 챙겨보며 그냥 잊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도 가끔 코스트코 와인 진열대에서 기웃거리다가 너굴에게 쥐어박히는 일이 다반사다. 보는 것 가지고 너무 뭐라 그러지 말라구...

조금 다르지만, 음악 쪽 만화로는 <피아노의 숲>이 비슷하다. 카이의 연주는 사람들에게 피아노의 숲을 시각적으로 연상시키고, 숲의 바람을 촉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아직 연주하는 곡이 매개가 되어 각각의 곡마다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못 본 것 같다. 카이는 사람들을 자신의 숲으로 인도할 뿐이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런 이미지나 감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듣기에 즐거울 뿐이다.. ㅡㅡ;;)

그렇담 이제 <노다메 칸타빌레>로 넘어갈 차례다.
일본 드라마는 거의 본 게 없다. 그 유명한 <하얀 거탑>의 바람이 몰아칠 때도 그닥 땡기지 않아 한국, 대만, 일본의 거탑 전부를 안 봤다. 노다메도 별로 볼 마음이 없었는데, 밥먹다가 룸메가 틀길래 슬쩍 봤는데 . . 화~ 바로 뻑 가 버렸다. 다행히 일드는 짧다. 미드처럼 시리즈 10까지 가고 그런 일도 없다. 노다메가 시즌 3,4로 가지 않는 게 다행이고 불행이다.

클래식은 이전까지 기껏 들어봐야 리히터의 피아노곡 몇 개, 애너 빌스마의 첼로곡 몇 개 등등만 옆에 두고 가끔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노다메의 유쾌함에 빠져, 거기에 등장하는 곡들을 시작으로 온갖 클래식 음반을 뒤지고 다녔다.
다행히 중국 e-mule에는 온갖 명반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불행히도 인터넷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ape나 flac 같은 무손실 음반을 받는 데 며칠, 몇 주가 걸렸고, 고클래식 같은 곳에서 돈 내고 다운받아도 속이 터진다. (한국에서는 몇 분에 끝날 일이다.) 그렇다고 그 정도를 못 참겠는가? ^^;;
노다메는 떠났지만 명반은 내 하드에 남았다. 재즈까지 합치면 100기가 가까운 음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따로 이동하드에 보관중인 압축도 안 풀린 놈들까지 합치면, 글쎄 아직 듣지 못한 놈들이 너무 많은 셈. 물론 이조차 정말 몇년에 걸쳐 수집하고 들어온 사람(모씨는 테라 단위라고 한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차고도 넘친다. 음반 수집의 단계를 넘어 클래식에 대한 모든 것으로 넘어갔다면 나의 중독은 꽤 심각해졌을 것이다. 내가 듣는 음악을 그냥 느낌이 아닌 분명한 느낌, 지식으로 알고 싶어 책을 뒤지기도 했는데 적당한 책이 발견되지 않았다. 딱 100기가 수집에서 멈췄기에 망정이지. 나는 아직도 내가 듣는 음반을 부르는 법을 모른다. 그냥 리히터의 바흐 무슨 곡, 그 정도다. (소나타 몇번 몇단조 이런 거 몰라!) 그리고 여기서 만족한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과 누구의 무슨 곡이 좋네, 뭐가 명반이네 하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다.

중독되고 빠질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아주 작은 차이에 민감해진다. 그 작은 차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와 비용을 감수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에 연연할 정도로 지금 나에게 그것이 필요한가? 중독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질문이 이것인 것 같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중독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디오, 자전거, 카메라 등등에 빠진 사람들은 아주 미세한 음의 차이, 페달을 밟을 때의 작은 느낌, 빛을 잡아내고 색깔을 고정시키는 특정 장비의 힘에 연연해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런데 장비만 갖춘다고 높이 올라가지는 건 또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비싼 와인이 우아함을 보증할 수 없듯이, 고급장비가 감각을 끌어올려 주는 건 아니다. 아, 물론 원액을 희석한 3000원짜리 마주앙(요즘도 있나?) 먹으면서 와인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만. 격식있는 자리에서 기백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불편함을 감수하느니, 편한 친구들과 할인마트 와인을 마시면서 그 맛과 분위기를 음미할 줄 아는 정신. 헝그리와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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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4. 20. 00:30
흐르는 비츤 잡히지 않는다.
내가 바라본 것은 창밖이 아니라 창이었고, 빗방울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유리의 결이었다.
나는 내가 본 것의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본성은 다양성과 결단력 결여이다.
그것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미끄러짐' 뿐이다.
다른 세대가 확고한 것으로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미끄러지는 것'임을 알고 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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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衆/明室 2009. 4. 19. 21:04
모간산루 M50에 저녁 어스름에 가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이른바 예술이란 것에도 별로 흥미가 없지만, 그곳은 예절, 매너가 지배하는 공간 아닌가. 내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남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틀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 작품도 사람도 은은한 빛과 소리가 지배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 고상한 몸짓을 취해야 한다, 혹은 그런 자세가 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느니 인터넷이나 책으로 내 맘대로 보겠다. 진품이 주는 아우라에 나는 별로 기대하는 게 없고, 다만 어떤 시도들이 행해졌는지 훔쳐보고 싶을 뿐이니까. 복제품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전시장 안으로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남고 기회가 되면 가보긴 해야겠지.

굳이 예술품을 찾지 않더라도 이런 곳에 오면 볼 게 많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흔적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보다 바깥에 많이 묻어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저곳 혼자 어슬렁대다가, 바깥 뒷골목에서 쇠파이프 하나 붙잡고 사진 구도연습이나 해 봤다.

요리 찍고 조리 찍어봐도 썩 마음에 드는 건 없다.
이 좁은 공간에도 선은 여러 개 있어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적절한 비율로 면을 나누기도 힘들고, 시선의 흐름을 유도할 만한 선의 조합은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어두워져서 포기하고 나왔다.

가로등 아래는 조금 더 밝다. 선은 포기하고 면의 분할만 생각하며 찍어본다.



잘 만지지도 못하는 포토샵 가지고 씨름해 왔었는데, 오늘 발견한 ACDSee 기능 중에 자동노출조절 기능을 써 봤다. 자동이긴 하지만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서, 위의 사진들처럼 광량이 부족한 곳에서 찍힌 사진들을 조절하기 적당한 것 같다. 나처럼 미숙한 사람들은 기계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아직 기계의 게임의 법칙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도, 이미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게임들의 규칙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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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4. 15. 18:10
5시 10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맑고도 경쾌하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하늘은 검푸른 玄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시골에서 났지만 닭 홰 치는 소리와 아침을 맞은 적은 없다.
닭의 울음소리는 아침을 깨운다고들 한다.
새의 울음소리는 내가 생각하는 아침이 되기도 전에 시작된다.
아직도 잠들지 않았냐는 모닝콜이겠다.

5시 10분이 되면 어김없이 새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맑고도 경쾌하다.
공원도, 산도 없는 도시의 한복판, 나무라고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수 뿐인데,
한낮, 어디서 무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도 어김없다.
시끄럽지 않지만 또렷한 소리는 남들은 하루를 끝낸 지금 무얼 시작하려고 아둥바둥이냐고 묻는다.

마음 한구석에 떨쳐내지 못한 생각들을 글로 털어버리려고 써 보지만
쉽게 정리되지도 털어지지도 않는다.
이 글은 미완성 비공개글로 그냥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나온 한 흔적으로 이 블로그에 남겨져 있을 것인가.
다만 내 머리속에서 조금 지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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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