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2.05.09 버스 안에서
  2. 2011.02.12 Yertle the Turtle
  3. 2010.07.10 꽃피는 고향 강가에서 5
  4. 2010.04.17 4
  5. 2009.12.27 익숙한 곳에서 길 잃기
  6. 2009.12.05 동면을 앞둔 곰처럼.. 8
  7. 2009.12.04 리히터의 음악 수첩 중에서 8
  8. 2009.10.18 놀이터에서 7
  9. 2009.10.17 야산으로 되돌아간 뒷산 4
  10. 2009.09.18 예의없는 것들, 폭죽 10
示衆/flaneur, p.m. 4:30 2012. 5. 9. 19:53
오월초 나뭇잎 번뜩인다.
뭔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연한 빛이 겨울 견딘 소나무를 틱틱한 얼룩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봄꽃 닮은 이파리의 상큼함은 없다. 한여름 느긋하게 축 늘어진 녹음도 아니다. 연하지만 쫓기듯 뿜어내는 생기가 산을 채우고 있다. 술취한 십대 무리 만난 듯 오월 산이 섬찟한 걸 보니 봄바람 들 나인 지났나부다. 한때다 인석들아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Yertle the Turtle  (0) 2011.02.12
꽃피는 고향 강가에서  (5) 2010.07.10
  (4) 2010.04.17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11. 2. 12. 16:55
약속대로(이긴 하지만 좀 뒤늦게) 딸에게 줄 화이트보드를 사 왔다.
무릎에 올려놓고 쓸 수 있는 자그마한 걸 샀는데, 테두리가 가죽으로 되어 있어 이쁘고 안전해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겨둔다.

거북이 왕 Yertle은 연못 바깥 세상이 보고 싶어,
거북이 백성의 탑을 쌓고 올라가
보이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환호한다.
그런데 당나귀보다, 나무보다, 산보다 높이 올라가도 저 위에는 해가 있고 달이 있다.
아니! 지상池上의 왕인 나보다 높은 곳에 있는 놈이 있다니 용서할 수 없구나.
여봐라 더 높이 탑을 쌓아라.

결국 가장 밑에 깔린 작고 약한 거북의 트림 한방에 거북 탑으로 만들어진 왕좌는 무너지고, 거북이 왕은 꼬꾸라져 진흙탕의 왕이 되어 버린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이집트에 이어졌다. 드디어 무바라크는 사임했고 사람들은 마브로우크(mabrouk; 축하)를 외친다.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결심, 그리고 트림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있던 사람들의 작은 외침이었다.


환호하는 이집트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다음 걸음도 잘 디딜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집트 키워드를 언론과 인터넷에서 봉쇄한 중국, 어쩌다 단신만 전하던 한국의 정부가 겁내는 건 무엇일까?
가장 밑에 깔려 불편한 자, 꺼억 하고 트윗 한방 날려보자.

.
.
p.s. 검색해 보니 그젯밤 Yertle the turtle을 떠올린 게 나만은 아닌 듯. 링크를 남겨둔다.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스 안에서  (0) 2012.05.09
꽃피는 고향 강가에서  (5) 2010.07.10
  (4) 2010.04.17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10. 7. 10. 08:41

오랫만에 시골에 갔더니 텃밭처럼 꾸민 화단에 꽃이 피어 있네요. 낡고 볼품 없는 시골집이지만 마당이 넓어서 좋아요.

 

 

 

 

오토바이를 타고 강쪽으로 나갔더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네요.

 



낙동강 달성보 일부 공사중단 - 한겨레, 2010.06.27.

임금체불, 4대강 낙단보 공사 중단  - 미디어오늘

제가 사진을 찍을 때는 강 건너편 포크레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덤프 트럭 기사 등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않아서 파업 중이라고 하더군요.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아서 살 만하다고...


뒤돌아서 동네 쪽으로 봐도 가관입니다. 동네와 둑 사이에 있던 논도 강바닥에서 긁어낸 준설토로 뒤덮혔네요.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있어요.

오토바이 기름이 얼마 없는 걸 확인도 안 하고 타고 나와서 중간에 멈춰버렸어요. 엥꼬가 난 거죠.

동네 안쪽 토지에 쌓인 준설토를 보려면 사진 오른쪽의 산길에서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었어야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굉장히 기가 막히게 훌륭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합니다. 아쉽게도 멈춰버린 오토바이 때문에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어요.


 

 

 


엥꼬 난 오토바이를 끌고서 터덜터덜 동네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이쪽 토지도 저기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경계로 모두 준설토로 뒤덮힐 예정이랍니다.

원래 강보다 동네 쪽이 더 낮았는데 고맙게도 높혀준다는 말이죠. 불행히도 우리 하우스는 그런 혜택에서 빗겨났습니다.



아무튼 이로써 이 동네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아래 윗 논으로 나뉘어진 비닐하우스를 포함해 동네 안쪽까지 준설토 적치장으로 포함시키려고 도장 받으러 다닌다길래 절대로 찍어주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경계에 포함된 땅들이 벌써 먹혀든 후였죠. 동네 사람들 생각은 대충 이랬던 것 같습니다.


1. 도장 안 찍어줘도 소용없다. 결국은 자기들 하고싶은 대로 할 것이다.

2. 농사 지어봐야 한해 소득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보상금 받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정부나 힘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한번도 이들의 의견을 묻지 않았으니 의견이란 게 있을 수도 없죠. 대부분 쉽게 동의를 해 줬고 어머님도 내심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찰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예정날짜보다 빨리 준설토를 때려 붓는 바람에 감자를 심자마자 포기해야 됐던 친구어머님은 굉장히 억울해 하셨죠.

원래 날짜대로라면 감자 정도는 캐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심은 공이 무색하게 모래로 뒤덮어 버렸으니 말이죠.

 

사진은 우에 논의 비닐하우스입니다. 그 속에는 오이가 크고 있죠.

아래 논 비닐하우스와의 사이에 있는 소작을 붙혀먹는 땅에는 마늘이 심어져 있습니다. 어머님 생신에 다 같이 내려가 마늘을 뽑고 왔습니다.

비가 왔으니 지금쯤이면 모내기도 끝났겠군요.


이리저리 강바닥을 헤집어 놓은 터라 가장 걱정되는 건 홍수 피해가 될 것 같아요.

강바닥 긁어낸 4대강 준설토, 본격 장마에 위험 주의보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Yertle the Turtle  (0) 2011.02.12
  (4) 2010.04.17
익숙한 곳에서 길 잃기  (0) 2009.12.27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10. 4. 17. 19:53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그래서 부정확한 정보일 수도 있는 글에서 읽은 "색"에 관한 정의를 떠올려 본다. 내 식으로 정리해 보면 색이란 '그것이 아닌 것'이다. 모든 사물은 태양빛이 전해오는 색의 스펙트럼 중 대부분을 흡수하고 그 중 일부만 반사시키는데, 그렇게 흡수하지 않고 반사시킨 색깔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단풍도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생장이 필요하지 않은 나무가 엽록소 즉 녹색을 흡수해 버려서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빨간 단풍을 보고, 빨강이 아닌 모든 색으로 그것을 정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러난 것을 통해 감추어진 것들을 항상 떠올리는 건 너무 구차하다. 저기 봐, 노랑 아닌 모든 색깔인 개나리가 얼마나 이쁘니? 저기엔 분홍 아닌 모든 빛깔의 벚꽃도 피어 있네? ^^;;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편의상 그것이 아닌 것으로 그를 부르기로 하자. 이름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의 언어는 방편으로 꽤나 훌륭하니까.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 검정색, 모든 것을 반사시켜 버리는 하얀색,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가지가지 색깔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현(玄)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이 트기 직전, 완전히 컴컴하지도 않고, 채 푸릇푸릇하지도 않을 때의 하늘색,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투명하기까지 한 어둠을 옛 사람들은 태고의 빛, 원래의 하늘 색깔로 믿었다. 물론 나는 그 색깔을 살아오면서 몇 번 보지 못했다. 뭐, 매일 봐야 좋은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항상 되새기는 방법은 있다. 가끔 쓰는 怡玄이란 이름은 그래서 나오게 된다. 물론 이현이란 '이름'이 표방하듯 나에겐 깊은 투명함이 없다.


머리색이 아직 검을 때는 앞이 보이 않는다고 투덜되지 말 것. 가능하면 모든 것을,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온양醖釀시킬 것. 머리가 희끗해질 때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색깔을 슬쩍 드러낼 것. 어느 날인가 내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때, 내 몸이 좁다는 듯이 그것들이 터져나가 나를 텅 빈 공간으로 남겨버리는 폭발이 일어나길 기다리면서..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피는 고향 강가에서  (5) 2010.07.10
익숙한 곳에서 길 잃기  (0) 2009.12.27
동면을 앞둔 곰처럼..  (8) 2009.12.05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12. 27. 01:04
처음 뭔가를 시작한 사람이 가지기 마련인 "열정"으로,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지속해온 사람의 매너리즘을 탓할 수는 없다. 언제 식을 지 모르는 열정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 어떤 일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신참자의 눈에 구태의연하게만 보이는 저들은 그 열정을 거쳐온 사람들이며, 열정이 사라진 후에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두둔할 생각은 없다만 처음으로 그들에게 감탄해 본다. 문제는 열정이 사라진 후 그 일을 계속할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나는 모른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이 언제나 필요할 텐데, 그렇게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는 것도 그의 능력이다.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2010.04.17
동면을 앞둔 곰처럼..  (8) 2009.12.05
리히터의 음악 수첩 중에서  (8) 2009.12.04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12. 5. 17:34
최근에 느낀 건데, 계속 배가 고프다.
자주 가는 식당 음식이 물리기도 하고, 반찬을 네 종류에서 세 종류로 줄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이유를 찾았는데,
문득 해마다 이맘때 즈음해서 반복적으로 배가 헛헛했단 걸 깨달았다.
먹어도 살로 가지 않는 유전적 특징 때문에 내 몸에 지방이 많이 부족한데, 그래서 갈수록 겨울이 고달프다.
추위가 바로 뼈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아마도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이 지방 성분을 원하는 것 아닐까?
이것은 여름 무더위에 맥없이 늘어지는 헛헛함과 분명 다르다!

마른 몸매를 생각할 때 동면을 취하기 직전 독오른 뱀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쥐나 개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잔머리는 조금 굴려도 영악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동면을 취하는 날씬한 동물 중에 적당한 놈을 하나 골라 토템으로 삼아야겠다.
그때까지만 우선 곰.

그렇다고 쑥과 마늘로만 버틸 순 없고
허기를 달래기 위한 간식을 준비해 본다: 고구마, 감자, 계란.

집앞 슈퍼에서 고구마를 사서 한번에 여러 개 삶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먹었다.
근데 왜 난 중국에는 밤고구마를 못 먹어봤을까.
얼마 전 달성보 기공식이 열린 달성군 논공면에서 한 일이십 리를 돌아서 내려가면 나오는 우리 동네 강변은
땅이 좋아
심었다 하면 뭐든 잘 자라고 맛있었다.
물론 고구마도 밤고구마!
잦은 홍수 피해로 정부에서 땅을 매입한 뒤 놀려두면서 경작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홍수를 빌미로 보다 큰 댐을 만들고 새로운 댐 바깥의 농지를 없애던 그 때 이미
그토록 원대한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던 셈.
난 그저 타박타박 맛있는 고구마를 먹고 싶을 뿐.
세상 좋다.
지도로 보면 왜 저 너른 땅을 두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귀퉁이에 터를 잡았을까 싶다.
그치만 저렇게 좁아 보여도 사오십 가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았던 셈.
지도 좌상단의  굽이치기 직전에 위치한 파란 점은 도동서원이고,
중앙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하얀 선은 중부내륙도로,
우측의 평야는 현풍면, 우측 상단의 공단지구가 논공면이다.
곧 우리 동네 앞으로 낙동운하가 흐를 예정이다.



최근 인터넷 접속에 문제가 많아 중국전신에 다녀오는 길에 근처에 마트가 새로 생긴 걸 발견했다.
얼마 전에 깨뜨린 컵이며 잡다한 것들을 사고, 식품 코너에서 고구마와 감자, 계란을 골랐다.
고구마는 종류가(그래서 가격이) 다른 걸 섞었다고 다시 골라 오라길래 귀찮아서 두고 감자와 계란만 사왔다.
나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호박 고구마니 뭐니 하는 것들은 없었다구. 그저 밤고구마면 끝이지.
이사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진 소금도 사고.

헛헛한데 지방을 보충해야 하는데 하면서 결국은 이런 것들만 샀군.
어쨌든 지난 밤 삶은 감자의 맛은 정말 감동이었다. 하하.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숙한 곳에서 길 잃기  (0) 2009.12.27
리히터의 음악 수첩 중에서  (8) 2009.12.04
놀이터에서  (7) 2009.10.18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12. 4. 17:34
리히터? 리흐테르? Richter..
러시아어 발음은 리흐테르인가?
중국어로는 리허터里赫特, 칼 리히터는 리시터李希特. 그러니 리흐테르가 맞나부다.
(중국어 e발음을 따져서 억지로 표기하면 "리흐어터어" 정도.)


스터디 시작을 기다리며, 반군의 집에서 (그도 빌렸다는) <리흐테르>를 들춰보다가 몇 구절 옮겨 본다.
젊은 날의 리히터가 멍때리고 앉아 있는 표지와 전기 부분은 건너뛰고 음악수첩에 적힌 메모를 몇 구절 골라봤다.
음악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건 별로 익숙하지 않은데, 음악을 말로 바꿀 필요가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눌 일이 없다. ^^;;

리흐테르 - 10점
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정원출판사

p.260부터..

리히터,슈만, <후모레스케>, op.20. 1970. 24/12
내 녹음을 들을 때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언제나 내가 예상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신선함도 의외성도 발견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실망감...

1.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예전에 써 놓았던 것, 자신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우연히 다시 접하면 대견하다는 느낌이 우선 들곤 한다. 당시에는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다가 어쩔 수 없이 봉합한 것인데도, 다시 보면 의외로 신선했던 발상이랄까 그런 게 보이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 글에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아무런 진전도 없으며 오히려 그 때만도 못한 처지임을 그런 대견함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 범인들은 계속 과거를 부여잡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게 나의 과거이든 찬란한 역사적 과거이든. 꽃다운 시절이며, 모든 고대는 위대하다! 반면 몽상가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기획한다. 하지만 미래는 장래가 되지 못한다. 창조는 현재 그 순간,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 집중하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창조적인 순간을 사는 사람들의 어떤 태도를 리히터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나간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의 의외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그가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었기 때문일테다.
그 다음은 거기에 매이지 않고 다음 발걸음을 딛는 거겠다.(너무 흔한 말인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것의 결과로)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자기 논리를 보강하는 우를 피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듯. [위의 흔한 말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쉽지.]
..

2. 녹음을 듣는다는 것. 오직 현재 뿐인 음악의 흐름을 무한반복하는 이상한 행위. 그게 완벽하게 똑같은 음악일까? 자신의 녹음에서 실망감을 느끼는 리히터와는 입장이 다른 우리는, 그 순간을 매번 다른 창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현장에서와 같이 거기서 그가 떠나고 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절박함은 없겠지만, 우리는 매번 오직 한번 뿐인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다. 듣기 나름이다.


바흐, 영국 모음곡 3번 G단조. S.R. 1971, 24/10
어떤 작품이 정확히 연주되기만 한다면 녹음기술이 어떠하든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녹음기술의 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그들이 녹음기술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음악보다 기술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연주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은 기계와 기술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반영이다. 사람들은 자연과 참다운 인간적 정서로부터 더욱 멀어져 그들 스스로 차츰차츰 기계가 되어간다.
...
바흐를 다시 연습하는 게 좋을 듯하다. 결국 그는 모든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다. <영국 모음곡 G단조>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다.


1972. 25/11. 평균율 클라비어
.. 때때로 바흐를 듣는 것은 단지 정신 건강의 관점에서도 나쁘지 않다.

평균율 1권 연주는 마음에 드는데, 2권 중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구절도 있었다.

하루키가 1Q84를 평균율의 구성에 따라 썼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의미일까.
수학도 모르고, 음악도 모르고, 소설도 잘 모른다.
다만 1Q84도 2권 도입부터는 좀 늘어졌던 것 같다..

29/12
글렌 굴드의 장점은 음색.. 그러나 더 깊은 통찰과 엄격함 요구...

암튼. 내가 아래 곡을 틀어놓는다면 그것은 단지 정신건강을 위해서이다.
중국에서 처음 샀던 이 네장짜리 씨디는 이제 flac 음원으로 추출해서 들고 다닌다.
한번 틀어놓으면 한참은 뭘 들을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ㅋㅋ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면을 앞둔 곰처럼..  (8) 2009.12.05
놀이터에서  (7) 2009.10.18
야산으로 되돌아간 뒷산  (4) 2009.10.17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10. 18. 17:54

한국에 와 있는 동안은 아이와 놀이터 가는 게 중요한 임무이자 낙이다.
힘이 쏙 빠지도록 놀아도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 때문에 조금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런 실랑이도 재미다.

나는 도시의 놀이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요즘 초등학생들 참 재미나게 논다.
우르르 몰려와서는 뭔가를 읽고는 다른쪽으로 또 우르르 몰려다니길래,
궁금증이 생겨 나도 슬쩍 끼어 보았다.


나도 번호 순서대로 하나씩 쫓아가 보고 싶었지만 아이를 내버려두고 그럴 순 없어서.. ㅠㅠ
게다가 이런 놀이가 여러 번 반복된 듯, 순서 배열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위 사진들 중에서도 순서가 있는데 굳이 순서대로 사진을 배치하지는 않았다.
암튼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노는 모습들이 참으로 재미나서,
나도 제발 좀 끼워달라고 하고 싶었다.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히터의 음악 수첩 중에서  (8) 2009.12.04
야산으로 되돌아간 뒷산  (4) 2009.10.17
예의없는 것들, 폭죽  (10) 2009.09.18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10. 17. 17:36

어릴 적 해마다 가을이면 가장 기다려지는 게 홍시였다.
우리 동네는 감나무가 많았는데 우리 집만 해도 다섯 그루나 있었다. 제법 높게 올라간 놈은 대나무로 가지를 꺽어서 따거나 나무에 올라가 직접 따먹고 나트막한 나무는 그냥 손을 뻗으면 되었다. 이 나트막한 놈은 죽었다가 살아난 고목인데, 감은 몇 개 열리지 않았지만 맛이 기가 막혔다. 그냥 단맛만 있는 젊은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맛. 가을이면, 학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잘 익은 감을 골라 따 먹는 것이었다. 내일 먹으면 딱 적당할 놈을 동생이 못 참고 먼저 먹었다면 난리가 나곤 했다. ^^

요즘은 감나무가 거의 사라졌다. 홍시가 그냥 떨어져 길바닥을 더럽힐 정도로 동네에 꼬맹이가 없더니 모두들 베어 버린 것이다. 우리집 감나무도 혹은 베어지거나, 혹은 태풍에 쓰러져 지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동네에 단감을 재배하는 가구가 많아졌다. 농업경쟁력을 독려한 농협의 부추김으로 몇년 전, 그러니까 10여년 전 한 차례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그 즈음해서 뒷산을 깎아 울 아부지도 감나무를 심었다. 멀쩡한 산이 과수원 모양새가 되었는데, 햇볕도 잘 안 들고 토질도 별로여서 왜 그랬는지 그때도 지금도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인삼이나 심으시쥐. ㅡㅡ;;) 원래부터 과수에 좋은 땅도 아니었고 관리도 잘 안 되어 감나무는 망쳤고, 그러더니 거기다 또 복숭아를 심으셨다. 복숭아라고 잘 될 리가 있을까만은.

그래도 아부지가 만들고 정도 쏟고 했던 곳이라 산소도 그쪽으로 꾸미긴 했다.

추석이라 고향에 갔다가, 음식준비하는 사이 밤을 따러 뒷산에 올랐다. 밤을 따러 간다는 건 조금은 핑계였다. 왠지 집에 오면 뒷산에도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밤은 다 떨어져 있었고 나무에 달려 있는 놈들도 벌레가 가득했다. 칡넝쿨과 수풀을 헤치며 몇 나무 살펴보다가 포기하고 바닥에 떨어진 놈 중에 그나마 쓸만한 놈들을 골라본다. 그런대로 먹을만한 놈만 골라도 제법 깔 수 있었다. 의외로 말이다.

칡이 너무 무성하여 숲을 하나로, 자기 영역으로 만들고 있었다. 지난번 동생과 칡넝쿨을 없애보려다 결국은 포기했다. 한나절에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 심해져 있다. 칡넝쿨 사이에 말벌집도 보았는데, 올해는 밤나무 근처에서 그보다 더 큰 벌집을 발견했다. 굉장히 크고, 좀 이뻤다. 둥그런 황금색 집 중간에 구멍이 한 개만 뚤려 있었다. 벌집은 드나드는 구멍이 여럿 되는 줄 알았는데...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아 벌집을 찍지 못한 게 아쉬워 추석 당일에 차례를 끝내놓고 다시 뒷산을 올랐다.
하루사이, 벌집은 찾을 수가 없었다. 별로 넓지도 않은 산인데, 그 부근을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포기하고 가려는데 앞쪽 비탈에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가느다랗게 또아리를 튼, 머리도 내밀지 않은, 그렇지만 언제든지 달려들 듯 살기를 보이는.

독이 있는 산뱀은 사람을 봐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
그곳은 자기 집이었다.
영역을 침범당한 뱀의 살기는 독성이 아주 셌다.
그걸 본 순간부터 나는 꼼짝도 않고 그 놈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또한 미동도 않은 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까? 벌 대신 뱀? 혹시 찰칵 하는 소리에 위협을 느껴 달려들지는 않을까? 사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천천히 발을 옮겨 그 자리를 피해야 했다.

흙과 낙엽 사이에 그것과 똑같은 색으로 또아리를 튼 뱀의 영상은 며칠이고 내 머리 속에 남아, 올라오는 버스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눈에 아른거렸다.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내 산에서 내가 쫓겨 나야 한다니.
불과 몇 년 사이. 집 바로 뒤에 있는, 한때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 울창한 정글이 되어 버렸다.
한때 가장 치열한 전투지역이었다가 이제는 생태의 보고가 된 문득 DMZ가 떠올랐다. ご,.ご;;
사실 60년까지 갈 것도 없이 2,3년만 그냥 내버려 둬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리는 게 산인가 보다.

뱀이 보낸 경고를 엄마와 식구들에게 전해줬다.
약간만 경로를 벗어나도 겨울잠 자기 전 독기가 바싹 오른 뱀을 밟을 수도 있다.
멧돼지는 언제고 내려와 더덕을 캐먹고 간다.
과수들은 벌레들이 점령했고, 칡넝쿨에 엉켜 햇볕을 더 못보게 되었다.

벌집을 떼내고, 뱀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고, 벌레 먹지 않게 농약을 때때로 뿌리고, 칡은 뿌리채 뽑아내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다시 사람이 제어하고 이용 가능한 곳이 된다. 등산로나 과수원 바깥에서는 적응 못할 정도로 모두들 도시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울창한 숲이 되어버린 동네 다른 산들처럼 그냥 뱀과 멧돼지와 늑대에게 산을 돌려줄 수밖에..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이라면 뱀이나 벌이나 멧돼지들도 자기 땅이라고 우기진 못할 테니. 아~ 모르겠다..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이터에서  (7) 2009.10.18
예의없는 것들, 폭죽  (10) 2009.09.18
단상: 호미당이라는 이름의 식당  (7) 2009.09.15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9. 18. 00:53
추석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선 명절만 되면 또래 아이들끼리 모여 폭죽을 터뜨리며 밤을 보냈다.
폭죽이나 장난감을 살 돈이 생기는 건 명절 정도여서, 세뱃돈을 받자마자 너나할것 없이 폭죽을 사 와서는 밤새 터뜨리며 동네를 쏘다녔던 것. 불을 붙이면 조그마한 폭죽이 하늘로 씨욱 하는 소리를 내며 올라가 뻥. 하고 터진다.
가끔 불발이라도 나면 아쉬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하여튼 명절 밤에는 집에 있을 여가도, 이유도 없었다.
그 즐거웠던 기억이 명절이 다가오면 생각이 나고 가끔 설레고 그런다.
(폭죽이나 대보름 쥐불놀이는 어느 해, 아마도 80년대 중반, 화재예방을 내세운 면사무소 직원의 방해로 중단되었다. 내 힘으로 쥐불놀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마침하여 금지령이 떨어진 것. 이후 민속놀이 어쩌구 하면서 장려해도 요즘 아무도 쥐불놀이 안 한다. 동네에 애들도 없고.)


중국도 설에는 전통적으로 폭죽을 터뜨려 왔다.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배우는 중국문화개황 어쩌고 하는 책에 섣달 그믐(除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찾아보긴 귀찮고 기억이 대충 맞다면) 년(年)이라는 괴물을 내쫓기 위해 "년"이 가장 싫어하는 붉은색을 내걸고 폭죽을 터뜨린다 뭐 이런 이야기.

아무튼 설날, 추석 등 명절에 꼭 등장하는 게 폭죽. 그 중 돈 잘 벌게 해달라고 재신(财神)에게 복을 비는 1월 5일이 피크.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하고, 귀가 멍할 정도로 도시 곳곳에서 폭죽이 터진다. 이럴 때면 정말 어디 피할 곳도 없고, 그냥 즐기는 수밖에 없다. 희한한 놈들이네~ 뭐하려고 저런 짓을?

정확한 가격은 알지 못하지만 별로 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한 건 세뱃돈으로 꼬맹이들이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해 수입이 괜찮았던 주민이 돈을 기부하여 설에 폭죽을 터뜨리게 하기도 했다. 아파트 앞에 몇 박스나 쌓인 폭죽을 보면서, 아마도 그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나 혼자만 울상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화재를 유발하거니와 봉건적인 풍속이기도 해서 한동안 폭죽은 금지되었지만, 아마도 90년대 들어와서 그러한 제한이 없어졌고(게다가 요즘은 전통풍습을 오히려 장려하니까..), 돈도 좀 있고 하니까 너나 할 것 없이 폭죽을 터뜨려 댄다. 화재의 위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올초인가에 CCTV 신사옥이 폭죽 때문에 완공 전에 화재가 나기도 했다. 물론 잘 나가는 거 자랑하려고 폭죽에 폭약을 지나치게 많이 넣었겠지만.


즐거운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명절의 폭죽이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런데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죽은 정말 골치 아프다.
대표적인 게 결혼식과 신장개업.
지들이 언제 결혼하고 개업하는지 내가 알게 뭔가. 정말 갑자기 터뜨린다. 꼭 알리고 싶을까?



삼각대 없이 급하게 찍은 거라 좀 많이 흔들렸는데. 한국사람들이 폭죽이라고 생각하는 불꽃놀이용 폭죽은 가끔만 동원된다. 주로 밤에만. 중국에서 더 많이, 빠지지 않고 터뜨리는 것은 삐엔파오(鞭炮)라고 불리는 연발식 폭죽이다.

따따따따...

그렇다. 괴물이 싫어한 것은 불꽃이 아니라 폭죽의 소리인 것이다. 따따따따 하는 소리에 놀라 그믐날 밤 괴물이 도망을 간다. 사람이라고 괜찮을까? 개시할 때 뻥, 빵!(한 통을 터뜨리면 밑에서 불이 붙으면서 한번, 추진체가 10여 미터 위로 치솟아 꼭대기에서 다시 한 번 터진다.) 터뜨리는 폭죽까지 하면,

뻥, 빵..
따따따따.... (길게는 5분)
뻥, 빵..
뻥, 빵..(연속하여 폭죽이 소진될 때까지. 처음 들으면 총소리 같다.)

이 과정이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 넘게 이어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장개업할 때 음악 빵빵하게 털어놓고 모델들이 마이크로 홍보하는 시끄러운 풍경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고 싶은.

그런데,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 7시부터 이렇게 10분 넘게 폭죽을 터뜨려 댄다면?

8시2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7시에 일어나면 하루가 힘들고, 그렇다고 누워있게 놔두지도 않는다. 내가 왠만해선 욕은 하지 않는데, 정말 눈 뜨자마자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미리 다양한 욕을 못 배워둔 게 원망스러울 정도다. 아~ 쒸! (춈 크게!!)

밤 9시에도 터뜨리더니, 어제는 인적 드문 10시 30분에도 남아있는 폭죽을 소진시키는 모냥이다.


이게 다~ 내가 한창 뭔가 들어서고 있는 동네에 왔기 때문이다.
예전에 살던 곳은 주택가라 이런 식의 소음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문만 열고 나가면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요즘 자주 가는 카페테리아 옆에 딤섬 위주의 대만식 식당과 새로운 슈퍼마켓이 생겼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요 며칠 시끄러웠던 듯.

암튼, 그곳이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한번 가볼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폭죽 때문에 니네들은 나한테 찍혔다.


보너스. 불꽃 찍던 카메라를 약간 돌려 담아본 내 책상. 왠지 너저분하군.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산으로 되돌아간 뒷산  (4) 2009.10.17
단상: 호미당이라는 이름의 식당  (7) 2009.09.15
리셋  (14) 2009.09.08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