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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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4 복사꽃, 꽃무덤, 그리고...
  2. 2009.02.24 뚱하니 있지마.. 2
  3. 2009.02.15 올해의 운수? 5
  4. 2008.12.29 지독히 매력적인, 그래서 치명적인..
  5. 2008.12.19 동파육의 유래 4
  6. 2008.01.09 로얄제리 단상
示衆/flaneur, p.m. 4:30 2009. 3. 24. 19:12
해마다 이맘때면 항주에 가 보고 싶어진다. 항주에 반년을 살았지만 여름부터 겨울까지여서 봄의 항주를 모르기 때문이다. 서호변에는 곳곳에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맘때 항주는 복사꽃이 참으로 곱다고 한다. 상해에 두어해 살면서도 항상 복사꽃 필 즈음을 기억하기 힘들었다. 지내다보면 꽃이 벌써 졌거나 뭔가 일이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없곤 한다.

이맘때쯤 복사꽃을 보면 중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를 떠올릴 것이다. 바로 <홍루몽>에서 꽃무덤을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대충 줄거리나 되새기고 기분이나 낼 겸 번역을 해 본다. 꽃을 보러 떠날 수는 없으니, 이런 것으로 기분이나 내 보는 것이다. 번역본을 가져온 게 없어 옳게 옮긴 건지 장담할 수는 없다.

<홍루몽> 23회


그날은 마침 삼월 중순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가보옥은 <서상기(會眞記)>를 끼고 심방갑(沁芳閘) 다리 근처로 걸어가 복숭아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 <서상기>를 펼쳐 처음부터 세세히 완상했다. 막 “붉은 꽃잎 떨어져 무리(陣)을 이루네”라는 구절을 보는데, 한 무리 바람이 불어와 나무 위의 복사꽃이 흩날렸다. 몸에도, 책에도, 땅에도 온통 복사꽃으로 뒤덮였다. 보옥은 그것을 털어내려다, 혹시라도 발로 밟을까봐 꽃잎을 가만히 싸서 연못 쪽으로 가 물속으로 털어냈다. 꽃잎들은 수면 위를 표표히 떠다니다가 마침내 심방갑으로 흘러들어갔다.


되돌아와 보니 땅위에 아직도 한 그득인지라 보옥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여기서 뭐해?” 보옥이 돌아보니 임대옥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에는 꽃 호미를 메고, 호미 위에는 꽃 주머니가 걸려 있었으며 손에는 꽃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보옥이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왔어. 여기 이 꽃을 쓸어 담아 저기 물에다 버려줘. 나도 방금 잔뜩 던져 줬어.” 임대옥이 말했다. “물에 버리면 안 좋아. 여기 물은 깨끗하지만, 흘러흘러 사람들 사는 곳으로 가면 더럽고 냄새나는 게 섞여들어 마찬가지로 꽃을 모욕하는 게 되어 버리잖아. 저기 모퉁이에 내 꽃무덤이 있어. 꽃을 쓸어 담아 이 주머니에 넣었다가 땅에 묻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속으로 스며들 거야. 그게 더 깨끗하지 않겠어?”


보옥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책 갖다 놓고 나도 같이 쓸어 담을께, 조금만 기다려.” 대옥이 말했다. “무슨 책이야?” 보옥이 갑자기 당황하며 책을 감췄다. “뭐 <대학>, <중용> 같은 거야.” 대옥이 웃었다. “내 앞에서 꾀 써봐야 소용없어. 빨랑 내놓는 게 좋을 걸?” 보옥이 대답했다. “좋아. 우리 착한 동생한테 주는 거야 무섭지 않지. 근데 보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 이거 정말정말 좋은 책이야. 너도 보기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릴 걸?” 이렇게 말하며 책을 건네 줬다. 임대옥이 꽃 도구들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받아 살펴봤다. 볼수록 흥미진진하여 밥 한끼 먹을 시간도 되지 않아 16장까지 모두 읽어 버렸다. 정말로 놀랄만큼 뛰어난 글이라, 남은 향기가 입안 가득한 느낌이었다. 책을 다 보긴 했지만 여전히 그 속에 빠져, 좋은 구절들을 가만히 되새겨보고 있었다.


보옥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 좋아 안 좋아?” 임대옥도 웃으며 대답했다. “과연 재미난 책이네요.” 보옥이 웃었다. “나는 ‘근심 많고 병 많은 사람’이고, 너는 ‘경국지색’ 그녀야.” 대옥은 이 말을 듣고 뺨에서 귀밑까지 빨개졌다. 곧바로 찌푸린 듯 만 듯 하던 눈썹이 치켜세워지고 뜬 듯 만 듯한 가냘픈 눈을 부릅뜬 채, 노기 가득한 뺨에 성난 얼굴로 보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이렇게 음란한 책을 들고 와서는, 그따위 잡소리로 나를 업수이 여기다니. 내 당장 외삼촌 외숙모에게 이를 테야.” ‘업수이’라는 말을 할 때 이미 눈자위가 붉어져 몸을 돌려 가려하고 있었다. 보옥이 다급하게 그녀를 쫓아와 붙잡았다. “착한 동생, 제발 용서해 주라. 내가 말을 잘못했어. 만약 정말로 널 모욕할 생각이 있었다면, 내일 저 연못에 몸을 던져 자라에게 먹혀 왕빠딴(자라/욕)으로 변했다가, 나중에 네가 ‘일품부인’으로 천수를 누리고 귀천할 때 네 무덤가의 비석이 되어 영원히 엎드려 있을께.” 이 말을 듣고 대옥은 치! 하며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으르는 말도 헛소리만 하냐? ‘툇, 원래 싹수가 노랗군! 은인 줄 알았더니 납으로 만든 창일세!’라는 구절하고 똑같군!” 가보옥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너 이거? 나도 이르러 가야겠다.” 임대옥이 웃었다. “자기는 슬쩍 보기만 해도 외운다고 자랑하더니, 나라고 한눈에 열 줄도 못 외울까봐?”


보옥은 책을 치우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빨리 꽃이나 묻으러 가자,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고.” 두 사람은 떨어진 꽃잎을 주워 같이 잘 묻어주고 있는데, 습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큰어르신이 몸이 안 좋아 아가씨들이 모두 문안드리러 갔어요. 마님이 도련님도 가 보라고 하셨으니 빨리 돌아가서 옷 갈아입읍시다.” 보옥은 그 말을 듣고 책을 챙겨 보옥과 작별한 뒤 습인과 함께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번역은 나중에 시간이 나고 기분이 나면 사전 찾아가며 꼼꼼하게 다듬을 생각이다. 줄거리야 대충 옮겨도 되지만 묘사가 힘들다. 대옥이 내 눈앞에 앉아 있어도 묘사하긴 힘들 것 같다./ 27회에는 또 "장화사(葬花詞)"라는 대옥의 시가 있는데, 시는 더 번역하기 힘드니 오늘은 이만 참도록 하자. 홍루몽 관련 블로그를 참고하고 싶다면: 홍루에서 꿈을 꾸다 .)


올해는 혹시 항주를 다녀올 수 있을까? 지금쯤은 피어 있지 않을까? 라고 가늠할 수 있는 건, 이제는 복사꽃 피는 시기를 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꽃도 아마 음력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음력을 농력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농사짓는 절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력으로 작년 오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 짓다가 몸관리 잘 못하시고 일찍 가신 건데, 밤늦게 전화받고 잠 한숨 못자고 첫 비행기로 급하게 들어갔었다. 뒷산에 아버지가 심어놓은 복숭아 나무 이랑 사이에 묻어드렸다. 복사꽃이 너무 활짝 피어 있었다. 음력으로 이맘때면 복사꽃이 예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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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2. 24. 16:39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훤하게 보이잖니.



“속이 훤하네” 내셔널지오그래픽 투명한 물고기 첫 공개



이미지 출처: Fish With Transparent Head, "Barrel" Eyes, National Geographi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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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9. 2. 15. 20:24
방학에 한국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블로그를 못해 왔다. 예전 이글루스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그렇다.
나에게 있어 한국과 중국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중국이 훨씬 여유롭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이 훨씬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니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들기는 귀찮지만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할 듯.

어쩌다 갓 사주를 배운 돌팔이에게 사주를 보게 되었다.
크게 나쁘지 않은 사주란다. 결점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보완하는 장점이 아주 큰.
말을 많이 하는 게 좋다니 앞으로 블로그에서도 시덥잖은 소리라도 계속 지껄어야겠어.

다만 올해 운이 좋지 않단다.
아프고, 하는 일도 잘 되지 않고.

사주는 음력인가?

설 전날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내리 보름을 앓았다.
쉽게 지치긴 해도 잘 아프지 않은 체질이라, 정말 오랜만에 아파본 것 같다.

하는 일도 잘 되지 않는다.

번역 하나를 마쳐 초고를 넘기고 최종교정본을 작업하고 있는데, 아파서 마감을 넘겨버렸다.
마감을 넘기고 끙끙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대륙에서 나온 이 판본의 무삭제판인 홍콩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너무나 뻔한 관행을 깜빡 놓치고 있었다. 눈에 뭐가 씌였는지..
아~~~~~ 젠장!!

일단 아주 적은 삭제라도 정치적 고려에 의한 삭제가 있다면 무삭제판을 써야 한다.
게다가 한 장을 완전히 들어내어버릴 정도이니 홍콩판은 지금이라도 무조건 입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자에게는 어떻게 말하나? 미리 알아보지 않고 이제사 말이다.

콩푸쯔에 넣으면 보름 정도 걸리려나?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

이외에도 첩첩산중이다.
산이 너무 높아 여기서 그만 주저앉고 싶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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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2. 29. 06:19
저녁을 먹으면서, 뒤늦게 돌려받은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를 펼쳤다가 "벽"에 관한 몇 문단을 읽다.
갑자기 나에게 The Wall: Live in Berlin이 있다는 게 생각나 컴퓨터에 넣어본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 다른 걸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너무 간만이기도 했지만 지독히도 매력적이라 도저히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능..
덕분에 작업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렸다.(조금 예상 못했던 일이다.)
TheWallLiveInBerlin.jpg

이미지출처 : metalprogshrine.blogspot.com


올해는 크리스마스도 연말 기분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아주 조금 울적해지려해 <러브 액츄얼리>를 틀어본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한번쯤 다시봐야 하는 영화니까. (작업시간을 '헛되이' 보낼 게 너무나 뻔해 이번 시즌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그냥 틀어놓고 화면은 절대 안 보고 음악만 들을 생각이었다아아... )

Loveactually_P1.gif

이미지출처 : www.cinecine.co.kr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다가, 한 화면에 다양한, 수천의 얼굴'들'이 모자이크로 쪼개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펼쳐보이지만, 그것은 수천의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따뜻한 사랑으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것들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집중하면 대충 시간당 한편 정도의 작업을 할 수 있는지라, 내일 모임을 위해 평소 두배 정도 되는 작업량을 완수하겠다고 '계획'하고 있었으나, 지금 이 시간까지 한편도 끝내지 못했다능..
그러면서도 '내일 빈손으로 간다고 뭐, 별일 있겠어?'라는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작업을 위한 최소한의 긴장도 무장해제시켜 버린 채 나는 그 편안함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2006년에 시작한 일들, 07년에 끝냈어야 하는 일들, 그리고 올해 안으로 끝내야 하는 일들이 아직 남아 있다. 원래 뭔가를 계획한대로 움직이거나,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인간은 아닌지라,. 또 그런 것들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버린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점을 믿어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하나씩 고쳐갔어야 했다. 굳은 의지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맑은 정신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상의 온갖 매력적인 것의 단점은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눈앞의 아이스크림과 초콜렛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이제 아무도 내 눈앞의 초콜렛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매력을 빨아들이기만 하고 전혀 발산하지 않는다면 그저 까만 점으로만 나는 기억될 것이다.
나는 전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치명적인 매력에 너무 취약하다.

술도 안 취했는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후후. 지각 메리 크리스마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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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의 유래  (4) 200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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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2. 19. 17:08

오마이뉴스를 통해 가끔 정윤수의 BOOK...ing365 라는 블로그의 글을 보곤 한다. 오늘의 주제는 간짜장 앞에 놓고 '동파육'을 논하다 - 소동파 인데, 동파육의 유래에 대해서는 오류가 있어 간단하게 몇 가지 사항만 정리해 둔다. 베이징에서 몇 해 사업을 한 친구의 말을 듣고 재미가 있었더라도 글로 옮길 때는 관련사항을 검색해 보고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면 "황저우"에 "서호"가 있다는 식의 오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조금 더 그럴듯한 동파육의 유래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송대 원우 4년, 즉 1089년(1080년 황주, 1089년 항주)에 소동파는 후베이(湖北)성의 벽촌 황저우(黃州)에 유배를 살고 있었다. 44살 때의 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황저우에 서호가 있어 중국 역대 시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소동파도 서호를 산보하며 많은 시를 썼는데, 시 ‘비 개인 호수에서 술을 마시다’에서는 ‘경국지색’의 서시에 비유한 적 있다. 서시가 화장을 했을 때나 안 했을 때나 천하 일색 미인이듯이, 서호 또한 ‘은빛 물결 출렁일 때나 운해에 가려 천지가 몽롱할 때나’ 천하의 절경이라고 읊었다.

바로 그 서호를 치수할 일이 생겼다. 소동파는 항주의 백성들과 함께 서호의 방제 작업을 함께 하여 오랜 고생 끝에 그것을 성공시키게 되었다. 힘겨운 공사를 끝낸 백성들이 집집마다 돼지를 잡으며 잔치를 하게 되었고 이때 소동파가 돼지고기에 소흥 술로 적절히 졸인 고기 요리를 선보이며 백성들과 한 때를 더불어 지냈다는 것이다.

소동파는 이 요리를 위하여 시까지 지었다고 한다. “질 좋은 돼지고기는 아주 싼값이지만 잘 사는 사람은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삶지를 못하는구나. 물을 적게 넣고 약한 불로 삶으면, 다 익고 나서 스스로 제 맛이 나누나."


 

물론 동파육의 유래는 다양하다. 요리법 자체는 원래 있었던 것을 소동파가 (자기 요리사에게 시켰거나 자신이 직접) 개량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소동파가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해야만 그 이름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동파는 이름난 요리를 찾아 다녔고,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이용할 수 있는 한국쪽 글은 없으니 참고삼아 바이두 백과의 동파육 유래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동파육이 황주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름난 문인 소식(동파)는 요리 쪽으로도 일가견을 이뤘다. 그가 황주(황저우; 黄州)로 폄적되었을 때(1080), 직접 요리를 하여 친구들과 맛을 보곤 했는데 특히 홍소육(红烧肉)이 최고였다. 그는 요리 비법을 "약한 불로 천천히, 물을 적게 넣고 삶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난다."란 시구로 표현하였다. 황주에서 지은 이 시는 다음과 같다.

돼지고기 먹기《食猪肉》

황주의 돼지고기는 질은 좋으면서 가격이 진흙처럼 싸,
부자는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삶을 줄 모른다.
약한 불로 천천히, 물을 적게 넣고 삶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난다.
매일 아침 한 그릇 뚝딱, 내 배가 부르니 그대 뭐라 하지 마오.

黄州好猪肉,价贱如粪土。
富者不肯吃,贫者不解煮。
慢着火,少着水,火候足时它自美。
每日早来打一碗,饱得自家君莫管

이것에 대한 "돼지고기 송"도 있다.

냄비를 깨끗이 씻어, 물을 적게 넣고, 화염이 일지 않을 정도의 약한 불로 천천히 익히되, 익기 전에 급하게 뚜껑을 열지 마라.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날 것이다. 황주의 돼지고기는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진흙처럼 싸다. 부자들은 먹으려고 하지를 않는데 가난한 사람은 삶을 줄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한두 그릇 뚝딱 먹는다. 내 배가 부르니 누가 뭐래도 상관 없지.
净洗锅,少著水,柴头罨烟焰不起。待它自熟莫催它,火候足时它自美。黄州好猪肉,价贱如泥土。贵人不肯吃,贫人不解煮。早晨起来打两碗,饱得自家君莫管。(《猪肉颂》)

 

그런데 황저우 시기의 이 요리는 그냥 홍소육이지 "동파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소동파가 폄적되어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서주(쉬저우; 徐州), 황주, 항주(항저우; 杭州) 세 곳 모두에서 동파육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는데, 서주의 경우 회증육(回赠肉)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가 서주지주(徐州知州)로 재직할 때 홍수용 제방과 성곽의 보수를 하자 백성들이 감사하는 마음에 돼지를 가져다 바쳤는데, 동파가 거절하지 않고 모조리 받은 후 홍소육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 주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먹어보니 돼지비계가 많아도 느끼하지 않고 향기와 맛이 뛰어나 즐거워했다. 즉, 지금의 동파육과 거의 비슷했지만 이 시기의 이름은 "선물로 되돌려준 고기", "답례용 고기"라는 뜻의 "회증육"이었다.

 

지금은 황주 쪽에서야 동파육이란 이름을 찾아오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동파육이 유명해지고 지금까지 중국 전역에 퍼지게 된 것은 항주와의 관련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단 하나의 유래만 말한다면 동파가 항주의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 있었던 이야기만 하면 된다.

(왼쪽: 동파육은 보통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겨 나온다. 오른쪽: 동파육 모양의 수석)

 

동파가 항주에 부임했을 때 서호는 그 옛날 이름난 아름다운 호수가 아니라 옛 흔적만 남은 진흙 시궁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동파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호수 정비 사업을 한다. 이 때 호수의 진흙으로 만든 제방이 아직도 서호십경의 하나로 꼽히는 소제(苏堤)이다. 당시 백성들은 서호가 풍광도 좋아지고 넉넉한 저수량으로 풍년을 이루게 되자 소동파의 서호 정비사업을 칭송하였는데, 마침 동파가 홍소육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설날에 너나 할 것 없이 돼지고기를 선물로 보내게 된다. 어차피 혼자서 먹기에 곤란한 양이었던지라 소동파는 그 고기를 서호 정비사업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요리법을 집안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네모나게 썰어서 약한 불로 익히고 술과 함께 백성들에게 줄 것을 지시한다. 그런데 집안 사람들이 "술과 함께 라"(连酒一起)는 말을 "술과 함께 라"(连酒一起)고 듣고는 술과 고기를 함께 넣고 조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요리의 맛과 향이 더할 나위 없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동파의 이름을 딴 "동파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역사와 민간의 이야기가 혼합된 이것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지금도 항주의 서호변에 있는 이름난 식당 "루외루"(楼外楼菜馆)의 동파육을 가장 정통으로 친다.

 

(루외루 식당의 "동파육", 아래는 마찬가지로 루외루의 대표요리 "거지닭". 아, 다시 먹고 시포..)

#이미지 출처는 바이두(http://image.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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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 9. 03:40

아침 8시 30분에 시험을 보는데 봐야할 분량의 1/3도 못 봤다.
낮에는 중국친구들이 드디어 영어시험이 끝났다고, 그네들 말로 "해방되었다"면서 종강파티를 한데서
같이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낮술도 한잔..
지들은 해방되었지만 나는 그 다음날 시험이 있는데 말이다.
사실 어학시험은 . 글쎄.
학교에서 요구하는 필수과정이라서 듣는 어학과정은 영양가도 없고, 하기도 싫은 법.
영양가는 없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것도 시험인지라 쓰기가 힘들 거라는 것,
그것이 내 실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핑계까지.
뒤섞여 머리에서 맴돌며 시험공부에 빠져드는 걸 피하게 해준다.
나에겐 해야할, 하고 싶은, 더 중요한, 할 만한 일이 많단 말야.. ㅡㅡ;;

로얄제리를 조금씩 챙겨먹고 있다.
중국에서는 비싸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호주산 머시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벌이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관리를 어떻게 잘 한다고 해도 오십보백보일 것이다(라면서 위안을 삼는다).

태어날 때 일벌과 여왕벌은 아무런 구별이 없어.
먹는 것에 따라 누구는 일벌이 되어 일주일 만에 죽고, 누구는 여왕벌이 되어 몇년을 살며 엄청난 생산력을 보여주지.
애야.
먹는 게 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어떤 책을 읽느냐가 사람을 달라지게 한단다.
여왕처럼은, 더 부유하게와 반드시 연결되는 건 아닐거야.
그래도 더 고귀하게 살 수는 있겠지.
꿀같은 책도 있고, 로얄제리같은 책도 있단다.
먹을 땐 달콤하지만, 물론 이것도 몸에 좋은 거긴 하지만, 일주일도 못 가 사라져 버릴 책도 있고,
먹을 때는 시큼하고, 떨뜨럼하고, 톡 쏘고, 역겨워서 못 삼킬 수도 있지만
너를 여왕처럼 고귀하게 만들어줄 책도 있지요.

로얄제리를 먹으며,
아이가 커서 말을 이해할 때가 되면 이런 말을 들려줘야지 하는 몽상을 해본다.
그러나, 사실은,
그건 나에게 필요한 말일 터다.
그게 자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아니라, 자신에게 되묻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꿀같은 책을 읽고 있나, 로얄제리같은 책을 읽고 있나.
이미 굳어진 내 신체와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로얄제리와 같은 책을 상대할 자신은 있는가.
시큼떨떠름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외면하고 달콤한 몇 가지 말귀에 내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아닌가.

며칠째 계속 묻고 있지만,, 글쎄다.
내가 이 말을 자신있게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쓰디쓴 어학책을 팽겨치고 달콤한 텍스트들에 빠지고 싶은 생각 뿐.
좀 자 둬야 그나마라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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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