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면 꽤 좋아하는 편인데, 하루에 못해도 서너 잔씩 마시는 편이니 말이다.
단, 막입이라서 자판기 커피, 커피믹스도 좋아하고, 원두도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마시는 편이다.
(이건 뭐, 아무 취향이 없는 거잖아??!!!)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 자취생활을 처음 할 때의 기분으로 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았다. 처음엔 1년 예정으로 온 터라 에스프레소 머신은 말할 것도 없고 별 다른 도구를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1. 프렌치 프레스 :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옆에 있는, 이케아에서 7000원 정도에 구입한
프렌치프레스. 뭐 맛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일 간편하다. 커피 넣고 물 붓고 기다리면 끝이니까. 아주 깔끔한 맛은 아니었지만 유리가 깨지지만 않았다면 여전히 자주 애용했을 것이다.
2. 모카포트 : 그러다 약간 욕심을 낸 게
모카포트이다. 싸구려라서 프렌치프레스의 철망이 벌어지기도 했고, 수명이 다 된 참에 에스프레소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구하기로 한 것이다. 기본 5-6만원 하는 비알레띠 뭐니 하는 것 말고, 마찬가지로 이케아에서 당시 환율로 2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팔리던 놈을 샀다. (이케아에서 사진이 검색되지 않아서 패스~ 단순한 원통형의 튼튼한 놈..)
모카포트로 처음 커피를 마실 때는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물이 달아오르면서 그 압력으로 위로 커피가 추출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부드러운 크레마와 함께 진한 커피를~~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불조절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볶음요리가 많은 중국의 가정집 가스렌지는 보통 한국의 식당 가스렌지 화력에 버금간다.
중국 가스렌지에 비하면 한국의 가정집 가스렌지는 등산용 버너 정도에 불과할 테니..
평소에도 압력밥솥에 밥을 하거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화력조절에 애를 먹곤 했는데,
더구나 새로 이사해서 2년간 살고 있는 집의 가스렌지는 조금 낡은 거라서 약한 불 조절이 잘 안 되었다.
꺼지지 않을 정도의 약한 불로도 화력이 너무 강해서 적절한 맛의 커피를 추출하기가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추출한 커피를 다시 여과지에 여과시켜 보기까지 했을까...
커피가 너무 쓰고 찌꺼기가 많이 나와서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화력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알콜램프를 살까, 가스렌지를 바꿀까? ㅡㅡ;;
3. 드리퍼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아래
하리오 드리퍼! (약간 욕심 부렸다..)
사이폰이나 기타 등등 여러 제품에 눈길이 갔지만 역시 이사를 다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드립커피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던 것. 아무리 따져봐도 가장 간단하고 짐도 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사이트에 18,000원 정도에 팔리던 놈인데, 타오바오(한국의 옥션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배송료까지 76원(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 환율로 16,000원 정도; 허걱! 요즘은
40원(7200원)에?)에 살 수 있었다. 이 녀석 아주 마음에 든다.
사실 핸드드립 커피는 드리퍼와 여과지만 있으면 된다. 여러 명이 마시려면 드립서버도 있어야 하고, 물을 가늘게 잘 부으려면 드립포트도 있으면 좋지만 가격들도 만만찮고, 또 나는 주로 혼자서 마시니까 컵에 바로 추출하면 되었다. 바로 아래와 같이. 포트는 그냥 무선주전자로~
무선주전자로 물을 부으면 와락 하고 한꺼번에 물이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가 와인을 따를 때를 연상하며(^^) 가늘고 일정하게 물을 부을 수 있도록 연습하는 중이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온도. 물을 끓였다가 적당하게 식기를 기다리며 딴짓하다가 너무 식어버려 다시 끓이는 일을 반복하곤 한다. 드립하는 방식은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지금은 3번에 한 번 꼴로 꽤 괜찮은 맛의 커피가 나온다(그냥 잘 모르지만 내 느낌이다..)
핸드드립 커피 하면, 씨디나 디비디 같은 좋은 기술보다 레코드판에 진공관 엠프를 선호하는 클래식한 취향 같은 것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런 거품을 빼고 보면 가장 간단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커피를 뽑을 수 있는 방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요즘은 드리퍼도 필요없이 일회용 핸드드립용 티백도 있으니까..)
결국 커피 맛은
신선한 원두 + 적당한 온도의 깨끗한 물이 전부 아닐까?
그러니까 위 사진과 같이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 내 맘대로 마시기가 가능한 것.
(사진이 좀 거시기하죠? 커피 내리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 )
커피와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조차 번거러운 취미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나름 즐기는 내 입장에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간단하게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킨 셈이다. 물론 "가난한 자의~" 어쩌고는 좀 과장이겠죠? :-)
아참! 내가 자주 마시는 원두는
숯배전 커피(碳烧咖啡豆 ; charcal fire). 타오바오에서 이것저것 종류별로 시켜보다가 요즘은 이것만 마신다. 한국의 이름난 가게에서 파는 원두에 비하면 딸릴 지 모르지만, 어쨌든 싸고 편하게 갓 뽁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 주문하면 볶아서 택배로 보내준다. 그럭저럭 만족하는 맛이다. 한 봉지에 7000원 정도. (비슷한 용량의
UCC Sumiyaki (숯배전 커피)225g은 17,000원.)
1.
드리퍼+분쇄기+원두 : 이렇게 사 봐야 카페에서 먹는 커피 약 10잔 정도 가격이다. 한달 안에 원금 회수하고, 이후로는 원두 값만으로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사실 이런 셈법으로 하면 원두도 꽤 비싼 걸 사 먹어도 카페에서 먹는 것보다는 싸지 않을까?
2. 분쇄기(핸드밀)은 대만제가 싸고 괜찮았다. 1-2만원. (
* 내가 여기서 고른 것들은 모두 한국과 비교해서 싼 것들이다. 물론 무조건 중국이 더 싼 것은 아니다. 종류에 따라서는, 주로 수입품의 경우 한국보다 훨씬 비싼 것도 많다. 일례로 비알레띠 모카포트는 한국이 4-5만원대인데 중국은 400원 이상(8만원 가량)이다.. 원두나 핸드밀도 수입제품은 상당히 고가에 판매된다. 한국에서도 싸고 괜찮은 놈이 있지 않을까?)
3. 나의 하리오 드리퍼가 며칠 전 금이 갔다. 씻은 후 물을 털어내다가 수도꼭지와 키스를 해 버린 것! 꽤 세게 부딛혔는데 깨지지는 않고 금만 가 있어 당분간은 버텨줄 것 같다.. (간이 꽁알만해진 상태로 한동안 물도 잠그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4. 핸드드립 커피 맛내는 법을 정식으로 배우거나 한 건 아닌데. 뭐 어떤가. 요리처럼 자꾸 하다보면 나만의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겠다. 조심조심 물을 부으면, 고체가 액체 속으로도 스며들고 기체 속으로도 스며든다. 그 시간이 바쁜 일상에 조금의 여유를 준다면, 그런 여유를 위해 최소한의 투자는 해 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