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상해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가면 쑹장(松江)에 닿을 수 있다.

아마도 상해라는 도시가 커질수록 점점 더 그 주변의 자그만 향진들은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에서 테마파크로 변해갈 것이다. 운하 옆으로 늘어선 강남 지역의 옛 풍광을 팔아먹고 있는 저우좡, 시탕, 주가각 등이 한편에 있다면, 놀이공원이나 이국적인 미니어처가 다른 한편에 있다.

쑹장의 템즈타운은 후자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도시에서는 즐길 수 없는 여유를 누리려 나와보지만,어디에도 세월의 흔적, 진품의 아우라는 찾을 수 없다.

곳곳에 이런 제복 입은 아저씨들이 졸거나 어슬렁거리고 있다.

입장료도 없는 이 공간이 어떻게 유지될까 궁금했는데, 사실은 놀이공원이 아니라 일반 주거지역이었다. (이런 곳에 살고 싶을까? ^^)

관련글 :  한국일보 : 中 신흥부자 “유럽에 살어리랏다”

그냥 구경하면서 사진찍는 것은 제한이 없지만, 모델 촬영을 할 경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야외촬영하는 예비 신랑신부들로 가득했다.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드레스에 비슷한 포즈로.

우리 부부는 비용과 번거러움을 핑계로 야외촬영을 포함한 웨딩촬영을 생략했는데,
다시 한번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이쁘고 행복한 모습이지만, 웬지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게 장소가 주는 느낌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꽤 노련해 보이는 사진사가 포즈를 잡게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도 따라서 몇 장 찍었다.
이날 신부들을 꽤 많이 찍었는데 이 팀이 가장 자연스럽고 이뻐 보였다.
내 맘대로 이날의 퀸으로 선정!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감으로는 (한국과는 달리) 옆에서 자기를 찍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거나 오히려 찍히는 걸 의식하고 표정을 잡아줄 때도 있었다.
너무 이쁘게만 만들려고 그런건지 화장실 찾기가 너무나도 힘들어 헤매고 헤매다가 경비아저씨에게 두번이나 물어보고 또 헤맸다. 알고보니 처음 근처까지 갔다가 입구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상해 외곽이라 도로가 넓고 먼지도 별로 없었다.
시내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다는데, 다음에는 자전거로 한번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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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5. 27. 19:14

몸도 무겁고 가슴도 먹먹하다

집에서 하루종일 인터넷 앞에서 봤던 뉴스만 계속 뒤지고 있을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좀 무리해서 바다까지 가 버렸다

 

저녁시간 동쪽 바다(황해)는 갯벌을 드러내고 있다

발을 걷어붙이고 갯벌에 뛰어들어 뭔가를 잡고 있는 풍경은 익숙하다

한국과 다른 점은 주변에 횟집이 전혀 없다는 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동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는 조금 맑아졌다

멀리 화물선과 비행기들이 간간히 지나다닌다.

짠내가 나지 않아 조금도 바다 같지 않았지만, 시각적인 정보는 바다임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좋은 안내자의 도움으로 헤매지 않고 다녀왔지만

돌아올 때는 정말이지 무릎이 너무 아파 주저앉고 싶었다

친구가 있으면 길이 쉬워진다

 

090524.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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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최근에야 알게 된 "1933"(정식명칭: 1933老场坊, 1933 creative hub)을 다녀왔다. 위치가 예전 친구들이 놀러와서 하루 묵었던 구룡반점 호텔 바로 옆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친구들에게 재미난 구경거리 하나를 추가시킬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근대적 주거양식에 관한 책을 쓴 분도 같이 왔으니, 이 기하학적 내부구조에 아주 재미있어하지 않았을까? 밤에 술이 모자라 이쪽 입구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곧 방향을 틀어 대로변 편의점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뒤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이 구룡반점 호텔이다.

도살장, 육류가공공장, 제약회사 등 몇번이나 용도가 바뀐 뒤 2002년부터 그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제약회사(上海长城生化制药厂)가 문을 닫아 2006년까지 버려져 있었지만, 2005년 상하이시에 의해 우수 역사건축으로 지정된 후 재개발되어 2008년부터 개방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이나 전시 위주의 공간으로 임대되는 것 같은데, 아직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 이른바 상하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크리에이트브 센터 중 하나인데. 당분간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와이탄과 둬룬루 문화거리/노신공원의 중간 지점으로 양쪽에서 걸어서 30분 내외란 점을 고려할 때 홍커우 지역 도보여행 코스의 하나로 넣어도 좋을 것 같다. .
왼쪽에는 상하이 공부국(Shanghai Municipal Council)의 약어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 글씨 문양은 지금도1933의 간판 비슷하게 사용된다.
3층으로 올라가는 어두운 계단 끄트머리에서 발견했다.


아르데코 양식의 이 5층 건물은
입구의 네모반듯함이 미로같은 내부의 뒤틀림을 감추고 있다.


원래 "1933"은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上海工部局宰牲场)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와 비슷한 규모의 도살장이 당시 전세계적으로도 3곳에 불과했는데, 다른 두 개는 미국과 영국에 있었다고 한다. 조계 공부국이 영국인에 의해 관리되던 것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이 도살장도 영국인 건축사에 의해 영국식 도살장에 근거하여 지어졌으며, 자재까지 영국에서 수입하였다고 한다. 건축사의 이름은 스테이블포드(C.H. Stableford) 혹은 발푸스(巴尔弗斯)로 소개되는데,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스테이블포드가 당시 상해에 살고 있었다면 발푸스라는 중국식 이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쪽 문헌에서는 발푸스라는 이름의 유래나 영문표기가 병기되지 않아 확인해볼 수가 없었다.

미로처럼 얽힌 저 길은 동물을 위한 길일까, 사람을 위한 길일까?

당시의 식품위생 관념에 근거하여 지어진 이곳은 한때 매일 양 500마리, 돼지 300마리, 소 300마리, 송아지 100마리가 도살되었으며, 130여 톤의 최고급 육류를 생산하여 상해 시민들에게 공급하던 곳이었다. 운하 건너편에 두 개의 굴뚝이 인상적인 건물은 가축 폐기물 처리와 소각에 사용되었다. 이 곳도 지금은 1933의 부속건물로 운영되는 듯하다. 공간분할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주건물을 둘러보는데만도 시간이 꽤 걸려 들어가볼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건너편 건물에도 들어가볼 생각이다.. 1933 바로 옆에는 냉동고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구룡반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운하 좌측의 높은 굴뚝 건물은 도살된 가축 폐기물을 처리하던 곳이었다.



입구

육중한 돌기둥을 통과하면 카운터가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 소지시 신분증을 맡기고 등록을 해야 한다. 촬영의 목적을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로 사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뒤 등록증을 받는다. 여러 명이 가면 한 명만 등록하면 되지만 같이 다녀야 한다. (중간중간 등록증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나 카메라가 없을 경우, 혹은 다른 목적으로 온 경우에는 그냥 입장도 가능한 것 같다.



1층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철골 콘크리트 구조가 사람을 압도한다. 건물 구조만 봤을 때는 상당히 재미 있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도살을 예감한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군데군데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점들로 어수선하며,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게 독특한 의자들을 갖춰 뒀다.



미궁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복잡하게 얽힌 층계와 주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체구조는 동서남북 네 변을 직사각형 건물이 담장처럼 둘러져 있고, 그 가운데에 24변형의 주건물이 둥그스럼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높이가 제각각인 통로가 얽혀져 있다.

옛 이미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잡지에서 해당 사진만 도려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게 과연 도살장 건물이 맞나? 가축의 도살을 위해 왜 이런 구조가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당시의 근대적 위생관념과 "동물 복리주의"에 근거하여 설계되었다는 말이 쉽게 와닿지는 않는 것이다.


도축 과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http://hi.online.sh.cn/content/2009-04/16/content_2925977.htm

 

1. 가축을 실어온 뒤 하루이틀 정도 방치한다. 긴장한 동물들이 느낄 공포감을 완화시켜 체내 독소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2. 가축들을 비스듬히 난 통로를 통해 2층과 3층으로 보낸다. 지금 보니 통로는 소 한 마리가 지나가기 적당한 넓이이다. 함정식으로 설계된 도축장에 가축이 들어가면 전기철봉으로 기절시켜 도축을 시작한다. (자세한 도축과정은 생략한다. ㅡㅡ;; 통로 한쪽에 액체(?)가 빠져나갈 수 있게 도랑이 설치되어 있다거나, 한쪽 옥상에 늘어선 물탱크를 보면 도축에서 육류가공까지 이곳에서 모두 이뤄지기 용이한 구조였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내부1

입구쪽 내부건물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빛이 곱다. 문을 열고 바깥풍경을 내다볼 수도 있다. 사진으로 담기엔 좋지만, 창문 바깥의 원형격자는 발을 잘못 딛기라도 하면 5층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크니 조심해야 한다. (무심결에 창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내부2


주건물의 상층부는 자연광이 건물 전체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또한 판옵티콘처럼 이곳에서 건물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구조이다. 지금은 전시공간 같은 것으로 활용되는 듯하다.




주변

주위에는 상하이의 전통적인 가정집들이 늘어서 있다. 영국조계의 북쪽에 위치한 이 홍커우에는 중국인들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밀집해 있어 일본 조계라고도 불렸던 지역이다. 석고문, 혹은 이농주택 형식의 상하이의 전통 주거지역을 고층빌딩이 에워싸고 있다. 아마도 신천지(신톈디)처럼 바뀌지 않는 한 이곳도 조만간 사라져 갈 지도 ...


아직은 비어 있는 공간이 많고 어수선하다. 그래서인지 매끈하게 탈바꿈하려해도 어찌할 수 없는 황량함이 살아 있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빨리 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살장의 피냄새와 그로테스크함은 세련된 고급 브랜드와 너무 잘 어울려버릴 테니 말이다.

벌써 여러 차례의 전시회가 열렸으며, 앞으로도 각종 행사와 전시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1933사진전이란 이름의 작은 공간이 있다. 1933을 주제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전시를 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사진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이 어떤 구도로 이 공간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목적으로 이 공간을 찾는다면 "나올 때" 그 작은 전시공간을 살펴보는 게 좋을 듯.


1933의 역사 :

1933년11월: 사징루10호 건축 완성.
1934년1월: 사징루10호 사용 시작.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
上海工部局宰牲场).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점령하여 시립제일 도살장(
市立第一宰牲场)으로 사용.
1946년: 당시 원동 최대 규모의 도살장으로 시 전체 2/3의 육류를 공급.
1951년-1953년: 상하이 시영 도살장(
上海市营宰牲场)
1953년-1958년: 중국식품수출공사 상하이 도살장(
中国食品出口公司上海宰牲厂)
1958-1969년:
국영 상하이 냉동육 가공공장(国营上海冻肉加工厂)

1970년: 상하이 창청 생화학 제약공장(上海长城生化制药厂)
2002년 사용중지 후 2006년까지 방치.
2006년: 우수 역사건축으로 지정된 뒤 1933 크리에이티브 센터로 개조.

건축명칭: (원)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
건축위치: 훙커우 사징루 10호, 29호.(
虹口区沙泾路 10 号,29号)
건축시기: 1933년
건축사 :
스테이블포드(C.H. Stableford ; 巴尔弗斯)
보호등급: 4급 보호건축(잠정)
건축면적: 약 3.17만 평방미터.
건축층수: 5층 / 철골 콘크리트 구조.

오픈시간: 08:30-22:00
전화번호: 021-6501-1933
홈페이지:
http://www.1933-shanghai.com
약도: 지하철4호선 하이룬루에서 내려, 하이룬루-사징루로 걸어가면 된다.





Posted by lunarog
첫날의 항구 찾기, 혹은 황포강변 보기에 실패한 다음 날(4월 16일) 비슷한 시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보았다. 기필코 강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 비슷한 게 생겼기 때문이다. 설마 강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도 없으려고.

그런데, 정말 없었다.

어제와 달리 북쪽으로 가다가 옆(동쪽)으로 빠지는 큰길(쥔공루; 军工路)로 접어들었다. 역시 강이 가깝다는 건 느낄 수 있었고, 제법 큰 길로 화물차만 다니고 있었다.

01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고 자전거 길도 텅텅 비어 있다. 길에는 먼지만 가득하다.


가도가도 이런 길만 반복되길래 무턱대고 경비가 지키고 있는 입구로 들어가 봤다. 경비에게 들어가서 강을 좀 구경해도 되겠냐니까, 자기들 통로는 안 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되돌아가서 아까 지나쳐온 통로를 그냥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 통로는 잠겨 있고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쪽문이 열려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던 것이다. 흠, 여기가 바로 통로로구나! 라고 생각하며 여유만만 강쪽으로 이동하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래 사진은 색깔의 대비가 예뻐 이리저리 찍어봤는데 건진 건 없고 그냥 전체적인 모양만 기록으로 남겨둔다.

이 화물차 뒤로 강이 보이고 지나다니는 배가 보였다. 와~~ 드디어 한강변 같은, 혹은 와이탄에서 보던 그런 강변의 느낌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런 관광지는 아니면서 한적하게 산책을 할 수 있겠구나. 혹시 일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말이라도 건네 봐야지~~ 라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어이, 거기 뭐해? 어떻게 들어왔어!!? 이쪽으로 와봐!!"

돌아보니 공안이 초소에서 걸어나와 나를 쳐다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강 바로 앞이었다.
왠 공안? 갑자기 살짝 얼어서 어리버리 오라는 건지 빨리 나가라는 건지 헷갈렸다.

이쪽으로 와바. 누구냐?
어, 그게,.. 전 유학생인데요?
여기서 뭐하는데?
그냥 강 볼려구요.
집이 어디냐
근처에요. 산책 나왔어요.
신분증 꺼내봐. 여권 가져왔어? 학생증은?
산책 나왔다니깐요. 신분증 없어요.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것 같던만, 존대어가 따로 없지만 왠지 그쪽은 하대하고 나는 공손하게 높임말을 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얘가 좀 어리버리한 것 같아보여 그냥 철없는 외국인이 어쩌다 왔나보다 하고 보내줬다. 그런데 입구에서 나가려니 이제 또 경비가 잡는 것이었다.

누구냐?
그게.. (우쒸, 아까 들어올 땐 잡지도 않던만!)
어디 갔다 온 거야?
아까 이쪽으로 들어와서 저쪽에 갔다가 저기 공안들이 보내줬어요. 나 가도 된다고 했거든요..?
신분증 보자. 들어온지 얼마나 된 거야?

똑같은 답변을 또 해야되는 난처한 상황에서 공안들이 차를 몰고 와서 설명하고 그냥 보내줬다.
지가 딴짓한다고 들어오는줄도 몰라놓고 말야. (심문 받는 느낌은 너무 싫어~)


즉, 지도로 표시된 강으로 통하는 길은 해운회사나 세관의 허가를 받은 화물차들만 통과가 가능했다. 곳곳에 위와 같은 금지표시, 행인도, 자전거도 승용차도 들어올 수 없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왜 한강처럼 강을 열어놓고 일반인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지 않는 걸까?
물이 더러워서? 그렇담 와이탄도 막아야지. 와이탄을 흐르는 물이 이쪽으로 빠져나가는 거니까.
가만히 강과 지형의 구조를 생각해 보니, 황해에서 장강을 거쳐 오송구 입구에서 황포강으로 접어들면 곧장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황포강은 화물선과 여객선이 드나들 수 있는 큰 강이고, 와이탄 아래쪽에 여전히 큰 항구가 남아 있다. 즉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밀항과 밀무역이 가능한 것이다. 강변을 따라서는 허가받은 해운업체와 세관이 줄지어 있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겠다.

확인차 인터넷으로 입체지도를 열어보니 역시 예상대로이다. 조깅코스 한강변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각 이미지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공안에게 잡혀 심문받은 곳이다.)



기필코 허가받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을 들어가 볼 생각으로 그 다음날에는 임시정부90주년 기념 한국해군 입항식에 참여한다. 3일 연속 강변보기 프로젝트 되겠다. 위치는 소주하와 황포강이 만나는 곳, 위 지도에서 빨간색이 시작하는 와이탄 북쪽의 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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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9. 4. 19. 21:04
모간산루 M50에 저녁 어스름에 가다.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이른바 예술이란 것에도 별로 흥미가 없지만, 그곳은 예절, 매너가 지배하는 공간 아닌가. 내가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남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며, 어떤 틀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 작품도 사람도 은은한 빛과 소리가 지배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 고상한 몸짓을 취해야 한다, 혹은 그런 자세가 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느니 인터넷이나 책으로 내 맘대로 보겠다. 진품이 주는 아우라에 나는 별로 기대하는 게 없고, 다만 어떤 시도들이 행해졌는지 훔쳐보고 싶을 뿐이니까. 복제품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전시장 안으로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남고 기회가 되면 가보긴 해야겠지.

굳이 예술품을 찾지 않더라도 이런 곳에 오면 볼 게 많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흔적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보다 바깥에 많이 묻어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곳저곳 혼자 어슬렁대다가, 바깥 뒷골목에서 쇠파이프 하나 붙잡고 사진 구도연습이나 해 봤다.

요리 찍고 조리 찍어봐도 썩 마음에 드는 건 없다.
이 좁은 공간에도 선은 여러 개 있어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적절한 비율로 면을 나누기도 힘들고, 시선의 흐름을 유도할 만한 선의 조합은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어두워져서 포기하고 나왔다.

가로등 아래는 조금 더 밝다. 선은 포기하고 면의 분할만 생각하며 찍어본다.



잘 만지지도 못하는 포토샵 가지고 씨름해 왔었는데, 오늘 발견한 ACDSee 기능 중에 자동노출조절 기능을 써 봤다. 자동이긴 하지만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서, 위의 사진들처럼 광량이 부족한 곳에서 찍힌 사진들을 조절하기 적당한 것 같다. 나처럼 미숙한 사람들은 기계에 맡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아직 기계의 게임의 법칙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도, 이미지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게임들의 규칙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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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요즘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모임을 하고 있어, 혹시나 하고 상해의 괜찮은 커피숍을 검색해본다.
모임의 구성원이 사는 곳이 제각각인데, 고정된 한곳에서 만나기는 심심하고 해서 까페 순례를 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작업도 검토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하여, 바이두 해 본 결과,

"올해 최고의 커피숍: 편안한 카페 환경, 맛있는 커피, 음료, 간식을 제공하는 커피숍 뽑기"라는 제목이 검색된다.(귀찮아서 제목에서 뺏다만, 그대로 번역하자면 <"간식"(甜品)이 가장 훌륭한 카페>가 원래 제목이다. 케익, 머핀, 쿠키 같은 걸 통칭하는 말로 간식 말고 뭐 있나? 잘 모르겠네용~  ㅡ_ㅡ;;)

참고삼아 저장해 두고, 하나씩 돌아볼 생각이다.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각각의 제목에 지도를 링크해 두었다.


年度最佳甜品咖啡馆 : 让人舒适的 Café环境,有最美味的咖啡、饮品、甜品提供,进行综合评分。

小洋房咖啡馆,还有免费的无线网络可以使用,下午茶套餐美味实惠。进贤路 222 号,近陕西南路( 6258 1620 )

花园内的咖啡馆,生姜汁是特色,很多饮品里都加有生姜,适合冬日饮用。复兴西路 299 弄 1 号,近华山路( 6433 9437 )

这里能吃到法国乳蛋饼和德国烘焙糕点。周六周日这里更是附近老外家庭早午餐的首选地。武康路 376 号,近湖南路( 6466 0361 )

咖啡和蛋糕都很出彩,去这家店还能尝到“西茜公主最爱的西点”。绍兴路 25 弄 2 号,陕西南路瑞金二路间( 6445 2131 )

 

在相对僻静的安福路,这家餐厅多少沾染了话剧艺术中心的文艺气质,舒适而简单的装修风格令人过目不忘,咖啡、甜品、简餐都可圈可点。安福路 201 号近乌鲁木齐中路( 5404 0998 )

 

그 결과는 지금 현재 다음과 같다.(이미 끝난 모양이다. 20일에 본 결과와 지금의 결과가 동일하다.)

이 다섯 곳 모두 나로선 처음 듣는 이름인데, 투표결과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편견이겠지만 커피맛이나 까페 분위기에 대한 독특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다수가 자기가 가 봤거나 많이 들어본 곳을 투표했을 가능성이 많다. 나도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상해 젊은이들이 커피맛을 그렇게 따질 것 같지도 않다.. 1위로 꼽힌 곳은 상해의 "신천지" 등에 체인이 있는 곳이다. 나머지도 서양인 취향을 고려한다고 만든 상해식 카페가 아닐까 싶다. 그 중 coffee tree와 citizen cafe를 은근히 기대해 보는데.. 더도 말고 "학림"처럼 커피향과 함께 그 집에 배어있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없을까..?



더하여, 검색하다가 찾은 상해 커피숍에 대한 글(上海咖啡馆的15个瞬间) 중에 인상적인 말을 옮겨 본다.

"상해의 커피숍은 분위기는 있는데 커피가 맛이 없다. 홍콩은 커피가 맛있지만 커피숍 분위기가 별로다. 타이베이는 커피도 맛있고 커피숍 분위기도 뛰어나다."

어쨌든 상해의 커피숍에서는 대부분 죽치고 앉아 이야기하고 사람 구경, 풍경 구경하면서 앞에 놓인 커피가 천천히 식어가도록 내비둔다.

잘 차려입고 와서 데이트하거나 사람들 만나는 공간으로 까페가 활용되지 뭔가 일상적인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겠다. 사실 한국에서도 동네 까페에 갈라쳐도 느슨한 차림으로는 커피 마시며 책보기가 좀 거시기하다.. ^^;;


접어둔 글에 소개된 까페와 바는 그다지. 엄선된 것 같지는 않다. 잡지 같은 데서 좀 전문가 스러운 사람이 추천하는 괜찮은 카페 관련 글은 없는 걸까? ..

암튼, 위에 소개된 곳 중에 내가 그래도 마음에 드는 곳은 한위안 서점이다.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되어 있는 곳인데, 상해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북카페에 속한다. 지하철 역 근처가 아니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 보면 독특하면서도 조용하고 편안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주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책도 여기서 구할 수 있다. 한위안에 대한 포스팅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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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이탄에 새로 설치될 광장

 

 앞에서도 말했듯이 와이탄은 상해의 얼굴과 같은 곳이다. 1945년 영국에 의한 개항 이전에도 물론 상해라는 지명이 존재했지만, 중국 전체에서 그 존재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광주(광저우)가 있고, 복건의 하문(샤먼)이 있고, 바로 옆에 절강의 영파(닝뽀)처럼 바다에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항구가 있는데 상해가 왜 필요했겠는가? 영국이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이곳을 요구했고, 영국의 조계지가 만들어졌고, 그러다가 중국 근대화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고, 그래서 현재의 상하이도 있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곳이 바로 와이탄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30년대의 상하이

 

지금 우리가 와이탄이라고 말하는 곳의 상당부분은 영국조계지의 동쪽 경계인 황포강변을 말한다. 항상 강물이 넘쳐 질퍽거리던 곳에 둑을 만들고(그래서 bund이다.) 그 안쪽에 건물을 세웠다. 와이탄은 항구의 역할과 함께 서양인들이 한적한 저녁에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되었다.(와이탄 산보객(外灘客; bunders)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항구의 역할은 거의 사라졌고(와이탄 남쪽의 "16포"는 여전히 항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예전 닝뽀에서 배를 타고 왔을 때 여기에서 내렸다.), 산책의 공간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다만 거주자의 산책이 아니라 관광객과 호객꾼의 산책만 남아 있다.

 

그래서 관광객과 호객꾼들에게 보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주요 목적은 2010년 엑스포 대비용이다.) 그에 앞서 10차선이던 와이탄 앞 지상도로(중산동일로)를 4차선만 남기고 지하로 옮기는 공사를 진행한다. 넓어진 지상 공간을 활용하여 주요 거점 4곳에 광장을 설치하게 된다.

 

와이탄 광장공사 전체 평면도. 광장이 추가되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원래의 황포강 연안 산책로도 구간에 따라 상당히 많이 넓혀지며, 비스듬히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비탈길도 확장했다.


 

1. 왼쪽에서부터 보면, 와이바이두 다리를 건너 소주하를 넘어 오면 황포공원(黄浦公园)이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출입구가 따로 있고 입장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서쪽 입구에 있던 대문과 담장을 헐고 그 앞을 터 황포공원과 광장을 연결시키게 된다. 황포공원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와이탄의 기점 역할을 다시 제대로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황포공원(원래 명칭은 "공가화원(public garden)", 혹은 와이탄공원)은 예전의 잘못된 소문이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민족적 수치로 생각하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로 유명하던 곳이었다. 상해의 제국주의적 기운을 누르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민족적 자존심을 좀 세우려는 것인지, 지금은 창처럼 뾰족하게 인민영웅기념탑이 설치되어 있다(소주하와 황포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원의 중심부가 탑이다). 이제는 이소룡의 분노한 발치기로 그 팻말을 뽀개지 않아도(정무문), 개와 중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확장된 남경로 입구의 "천이광장". 인민해방군 창건자의 한 사람인 "천이"는 해방 후 상해 초대 시장을 역임했다.

 

2. 남경로(南京路) 입구에 있던 천이광장(陈毅广场)은 지금보다 규모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 원래 남경로 입구는 예전 영국조계 시절부터 각종 기념행사의 주요한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도로를 잘 살펴보면, 고속주행 자동차는 지하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상에는 버스 등 공공교통 수단 및 이 곳을 방문하는 차량 위주로 운행되며, 4차선 좌우에 여유차선을 만들어 임시주차, 버스 정류장 등으로 이용할 계획이다.(위 그림처럼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차선 없는 일반도로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80% 이상이라고 본다. ^^) 또한 건물 쪽 인도의 폭도 지금보다 넓게 확장하여 와이탄의 이름난 건축물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3. 복주로(福州路) 입구에는 중간 정도 높이로 경축광장(节庆广场)이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와이탄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적절한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고, 각종 기념일, 경축 관련 행사(节庆活动)를 진행하는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지금은 이 지점에 임시로 지어진 육교가 설치되어 있다.

 

 

 

4. 연안로(延安路) 입구에는 기상대(信号台)를 중심으로 하는 광장이 들어서 와이탄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준다. 연안 고가도로를 철거한 이유도 이 광장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연안로는 영국조계지의 남쪽 경계로, 원래 "양징방"이라는 운하였다. 중서의 경계였기 때문에 "양징방"이 조계를 대신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상업적인 용도의 피진(pidgin; business의 중국적 발음) 영어를 "양징방 영어"라고 했던 것도 한때 이곳이 중서 교역의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양징방이 오물로 더러워지고 보다 넓은 도로가 요구되면서 메워져 현재의 연안동로가 되었다.(상해의 주요도로 중 이렇게 운하였던 곳이 많다.)

 

경계의 역할을 했던 것이 기상대이다. 1884년에 처음 만들어진 후 몇 번의 재공사를 거친 뒤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와이탄이 부두의 역할을 겸했기 때문에 진입하는 선박들에게 적절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는데,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안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상대 위쪽 전망대를 이용하려 했는데, 레스토랑 쪽에서 레스토랑 최소 소비액을 요구하거나 전망대 관람료를 따로 받아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고가가 사라진 후 저 위치, 저 높이에서 와이탄의 전망을 제공하는 곳이 기상대 뿐인 셈이라 한몫 제대로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 거다. 그것도 연안고가 철거 직전에나 가능했지, 공사가 진행중인 지금은 죽을 맛일 거다. 도대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지 않은가.(들어갈 수나 있는지, 영업은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저 난리법석인 곳이 위의 조감도처럼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와이탄의 옛 사진을 보면 상당히 정겹기도 하고 소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한쪽에 벤치를 놓고 산책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가 하면, 시대에 따라서는 전차, 자동차와 배, 사람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 어쨋든 그 시절과는 다른 기능이 지금은 요구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너무 미끈하고 인공적인 냄새가 풍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사에 전체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 지하도로를 건설할 때, 그리고 지하로 자동차가 달릴 때의 진동 같은 게 이 지역의 건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한 조사가 진행되어 안전하다는 판단 하에 했다면, 지상은 조금 더 여유로운 공간이 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아무리 넓혀 놓아도 이곳은 항상 사람들로 득실거릴 테지만 말이다.

 

 

출처:  http://sh.eastday.com/qtmt/20080528/u1a433541.html

1. 이미지는 모두 위 링크에서 가져왔으며, 기사는 광장에 관련된 몇 부분만 참고하였다.

2. 위 링크에 들어가면 보다 큰 사이즈의 그림을 다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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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이탄 지하도로 건설

 

요즘 와이탄을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온통 먼지투성이에 뭔가 공사를 한창 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와이탄 남쪽 끝에 위치한 연안고가도로가 철거되었다는 점, 그리고 북쪽으로는 와이바이두 다리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와이바이두 다리는 원래도 대부분의 교통량은 우숭루자 다리(吴淞路闸桥)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다리의 흉물스러움이라니. 교통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상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와이바이두 다리를 포함한 쑤저우허-황푸강 접경의 경관을 망쳐 놓고 있었다. 지금 진행중인 공사는 이들을 포함한 와이탄 전체를 지하도로로 잇고, 지상은 와이탄을 가로지르는 10차선의 중산동일로를 4차선으로 축소, 나머지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즉 교통은 지하로 돌리고, 지상은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이다.


"와이탄"이 상하이의 얼굴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상하이에 여행 와서 와이탄을 보고 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공사가 완공되면 우리 위대한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분명.

 

와이탄에 건설중인 자동차 전용 지하도로

 

 위의 그림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이 지하도로는 상하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남북 방향, 아래층은 북남 방향의 승용차들이 다니게 된다.(지도의 좌측이 남쪽, 우측이 북쪽이다.) 남쪽의 기점은 중산난루(中山南路) 라오타이핑롱(老太平弄), 그리고 옌안둥루(延安东路) 허난중루(河南中路)의 두 지점에서 시작하고, 북쪽은 우숭루(吴淞路) 하이닝루(海宁路), 둥창지루(东长治路) 뤼순루(旅顺路)에서 시작한다.(두 개의 길 이름을 말한 것은 교차로를 표시한 것이다.) 전체 길이는 약 3720미터, 지하도로의 길이는 약3300에 이른다고 한다. 지하도로 내부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둥먼루(东门路)에서 옌안둥루(延安东路)는 쌍방향 4차선에 긴급정차구역이 있고, 옌안둥루(延安东路)에서 톈퉁루(天潼路)까지는 쌍방향 6차선, 톈퉁루(天潼路)에서 위항루(余杭路)는 쌍방향 4차선, 옌안둥루 지하교차로는 쌍방향4차선, 창즈루(长治路) 지하교차로가 쌍방향 4차선이다. 대체로 각 입구는 4차선으로 시작하되, 차량이 증가하는 와이탄의 지하쪽은 6차선으로 설계했다고 보면 되겠다.

 

 (옌안둥루의 고가가 와이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 만들어질 때만 해도 "아시아 제1만(亚洲第一弯)"이라 불리며 그 "현대화"된 모습에 많은 상해 사람들이 열광했다 한다.(m.i.3에서도 잠깐 등장)

 

지금까지도 와이탄 앞을 지나는 중산둥일로는 많은 교통량을 담당하는 주요도로였는데, 그 대부분의 차량이 와이탄을 방문할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차량이었다.(70-80%를 점한다.) 그것이 와이탄의 역사적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문제는 그 해결방안(?)으로 지하를 뚫는다면 공사 자체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33개의 우수 역사보호건축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인가 라는 점이다. 더하여 시공구간에 와이바이두 다리, 지하철 2호선, 옌안루 터널 등 이미 여러 시설이 교차하고 있어 시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하이는 암반이 없고 모래땅으로 이뤄져 있다(전형적연토지질(软土地质)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질 조건에서 터널 등 지하 공사를 하는 건 두부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공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상하이 와이탄 지역 교통종합개조공정 건설지휘부의 한진화(韩金华)는 역사건축물의 기존 구조 및 침강상황 등에 대해 전면적인 실측이 행해졌고, 위험수치를 체크하여 위험도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푸저우루(福州路)를 경계로 그 남쪽으로는 지면에서 굴착해 들어가지만, 북쪽은 13.95m의 盾构掘进 방식으로 시공한다고 한다. (이 말이 궁금하여 좀 찾아보니, 盾构는 실드머신(Shield Machines)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기계를 활용하여 터널을 굴착하는 방식을 TBM(Tunnel Boring Machine)공법이라고 한다. 이 공법은 무진동, 무발파의 기계화 굴착이므로, 소음, 진동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위 링크를 따라갈 것.)

 

중국에서는 이미 TBM 공법이 꽤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07년 3월 신문에 따르면 베이징 지하철 4호선은 이 공법을 사용하여 1100m를 굴착하여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는 상하이 지하철 11호선 시공 장면이다.

상하이 지하철11호선 盾构掘进

 

암튼 시공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공법을 쓰면 건축물에 대한 피해는 걱정을 좀 줄여도 될 듯하다.

 

이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영국조계에서 길을 건너 와이탄 쪽으로 들어가려면 원래 있던 베이징루와 난징루의 지하도로를 이용하거나, 푸저우루에 임시로 설치된 육교를 이용할 수 있다. (꽤나 흉물스러운 이 육교는 그러나 적당한 높이에서 해관 등 와이탄 북쪽 건물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시야를 가져다 준다.)원래 있던 옌안동루의 육교와 사진에 표시된 진링둥루(金陵東路)의 육교는 철거되었다.

 

푸저우루에 새로 설치된 육교에서 내려다 본 해관(시계탑) 근처 도로 모습


이 지하도로는 엑스포 직전인 2010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http://news.sina.com.cn/c/2008-02-06/021514910065.shtml

http://jfdaily.eastday.com/eastday/jfsy/j/20080229/u1a405871.html


 (이 글의 지하도로 관련 정보는 대부분 위의 중국어 기사에서, 공사가 건물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것은 아래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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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ㅣ계>는 1940년대 상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기에 그 시절의 상해 모습을 언뜻 살필 수 있다. 와이탄이나 프랑스 조계 등 비교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는 운하 옆 허름한 집 같은 경우 주변의 소도시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3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부에서 알려주는 지도로 볼 때 와이탄에서 북쪽으로 홍구로 넘어가는 장면이어야 하는데, 그 장면은 상해가 아닌 시탕(西塘)에서 촬영되었다. 현대화된 상해(푸동, 와이탄) 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옥이 늘어선 시탕의 이미지가 중국이란 표상을 외국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정도로 이해해야 되겠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톰 크루즈가 달려갔다면, 아래 지도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 다리를 넘어가야 했을 것이다.)

<색ㅣ계>에서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여주인공 왕자즈는 이 선생에게 점점 마음이 기우는 한편 빨리 암살기회를 노리라는 독촉을 함께 받는다. 이때 이 선생이 불러 이 다리를 넘어 홍구(虹口)로 건너간다. 이 다리는 즉 영국조계지인 와이탄에서 일본조계지라 할 수 있을 홍구로 넘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서 왕자즈의 마음 또한 어느 한쪽으로 넘어간다.

10월1일 국경절을 맞아 오랫만에 와이탄에 나갔다가 일행과 헤어져 와이탄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와이탄을 따라 나 있는 중산동일로는 공사 중이라 먼지가 자욱했다. 오랫만에 쑤저우허를 따라 올라가면서 골목길을 쏘다닐 셈이었다. 그 전에 와이바이두 다리만 건너면 있는 푸장호텔에 가서 화장실을 쓸 생각이었다. 이 호텔은 상해 최초의 호텔인 리차드 호텔(1846년)을 이전 개축한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1907년)도 꽤 보존가치가 있고 내부도 고풍스러운 맛이 남아 있다. 2005년(?)까지는 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방도 제공되었으나, 이후 상해시 보호문물인가가 되고부터 방값이 대폭 올라버렸다. 투숙은 못하지만 급한 볼일은 볼 수 있겠지.

 

그런데, 길은 다른 곳으로만 뚫려 있고 와이바이두 쪽은 공사장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사태파악을 못하고 건너편에 있는 브로드웨이 빌딩(上海大厦, 현재broadway mansions hotel)과 푸장 호텔(浦江饭店; Astor House Hotel), 러시아 영사관 등을 찍기 위해 살짝 열린 철문 사이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상해는 워낙 공사중인 곳이 많아 뭐 또 새로운 건물 하나가 들어서나 보다 생각했을 뿐. 뒤돌아서 나온 후 우회도로를 따라 다른 다리로 가서야 이 다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와이바이두 교 옆에 있는 고가도로(吴淞路闸桥)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래 사진처럼 고가도로만 남아 있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정보를 확인해 본다.

 

확인 결과 설계 당시 50년 수명이었던 이 다리는 100년을 잘 견딘 후 2008년 3월 1일부터 통행금지, 4월 7일 해체한 후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와이탄 등지의 건물에 적용하고 있는 "옛 것을 옛 모습 그대로 고친다(修旧如旧)" 라는 원칙에 따라 와이바이두 다리도 다시 50년의 수명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년(2009년) 1월 15일 수위가 올라갈 때 원래 위치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공사가 와이탄 앞의 도로(중산동1로)를 정비하여 와이탄에 보행도로를 넓히고 광장을 신축하는 계획이다. 와이탄 앞 도로가 지금 먼지를 날리는 이유가 바로 이 공사 때문이다. 와이탄 남쪽의 연안고가를 철거했고, 북쪽의 와이바이두 다리도 철거했다. 와이탄이 현재 처리하는 교통량이 엄청난데, 그것을 모두 지하로 옮기고 지상은 최소한의 도로만 남겨둔 채 공원화하는 계획인 것이다. 일단 지하를 달려야 하는 차량들은 조금 괴롭겠지만, 상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 와이탄은 자동차의 방해를 덜 받고 훨씬 넓고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와이탄의 광장 조성 계획은 추후에 포스팅 예정)

 

 

아래는 내가 놓친 다리의 해체작업에 관한 사진을 찾아 옮겨 놓는다.

 

저수위일 때 운반선이 다리 밑으로 들어간다. 운하 위쪽에서 물을 방류하여 수위를 높이고, 운반선에서는 내부의 물을 배출하여 운반선이 다리에 닿게 한다. 그 다음은 그림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각 그림에 대한 중국어 설명을 번역한 게 아니라, 다른 신문 등의 내용을 뭉뜽그려 간단히 설명한 것임). 다리는 현재 민성루 부두(民生路码头)로 옮겨져 수리 중이다.

 

 

다리가 사라지기 전 모습은 아래와 같다. 와이탄(황포공원)에서 홍구쪽을 바라보는 모습과, 그 대각선 위치에서 푸동쪽을 바라볼 때 와이바이두 다리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흉물스러운 쇳덩어리 다리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도 상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중국" 하면 떠오르는 아치형의 자그마한 다리의 운치도 없고, 건너편 푸동의 동방명주와 어울릴 법한 현대적인 맴시도 없다. 우리나라였다면 6.25로 폭파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70년대 정도에 철거되어 이상하게 촌스러운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을 것이란 상상도 해본다. 허허벌판이던 푸동은 완전히 최첨단으로, 황포강 서쪽 포서는 될 수 있으면 옛 모습 그대로, 이것이 상해 도시관리의 기본정책이다. 어쨌든 상해 토박이에게 이 다리는 아주 각별한 것이라, 철거 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자기 기억에 있는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뜻일 것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와이바이두 다리의 옛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쑤저우허의 33개 다리: http://www.news365.com.cn/wxpd/sh/mjsh/200804/t20080421_1841590.htm
모형: http://www.modtoy.com/index.php?gOo=article_details.dwt&articleid=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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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상하이 여행축제(上海旅游节; Shanghai tourism Festival 2008)가 열리고 있다.
9월13일에 시작하여 10월6일에 끝난다.
그 사이 상해의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연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아래 표 참고)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데, 상해가 워낙 볼 게 없다보니 관방에서 이런 식으로 행사를 만드는 것 아니겠나 싶어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공식 웹페이지(http://www.tourfest.org)에도 별 내용이 없다. 하다못해 한국이라면 영화 하나 개봉할 때 만드는 팬페이지만도 못한 것이다.
그만큼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다른 방식으로 열심히 홍보를 하였을 것이고, 그런 식의 홍보를 나처럼 나다니지 않거나 관광객이 아닌 사람은 접하지 못했을 수도..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여행 "축제"인데 영어 웹페이지라도 하나 만들어 놓으면 전세계에서 미리 알고 찾아오지 않을까?

활동이 여러가지인데, 일일이 번역해 두기는 귀찮고 눈에 띄는 몇 개만...


활동 명칭

시간

장소

문의전화(021)

幕式暨开幕大巡游
개막식 및  대행진

913
19302100

淮海路(西藏路-西路)
화이하이로

53510930

幕大联欢及南京路欢乐

913日—20

南京路步行街

63287413

巡游暨评比大奖赛

914日-106

全市各区县及周城市

53868030

上海
상하이 쇼핑 축제

913日-105

全市范
시 전체,

62729983

竹文化

919日—1031

古猗

59122225

上海旅游念品(品)博览会

917日—22

商城悦宾楼

53868020

上海国际烟花节暨上海旅游节闭幕式
상하이 국제음악 불꽃축제 및 상하이 여행축제 폐막식

930日-106


푸동 세기공원

53510930

“中秋上海情—乐圆都江堰”上海原乐汇

914日—15

淮海公

53868025

唐韵中秋游园会

914

汇区桂林公

64569090

桂之旅

9月-10

及江和浙江有景点

962020

子江万国啤
독일 맥주 축제

917日—27

区扬子江万大酒店

62750000*2366

小主人欢乐

913日—15

中山公大草坪

22050808

梅川路休欢乐

927日—106

普陀梅川路休

52564588-7004

九子大决赛

914

九子公

63273227


예원 중국의 날

95日-106

商城

63559999

天喜地”音激光烟花表演
음악 불꽃 축제

102(중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10
5(미국, 한국, 스페인)

大宁石公
음악보다는 각 참가국의 불꽃놀이 위주일 듯.
(
참가국은 출처마다 조금씩 다름)

63805390665766076601

四川北路欢乐节

92627

虹口四川北路商街沿线

25658306

第八都市森林欢乐节

929日-105

森林公

65328194

上海情周
상하이 일본 문화주간

919日-921
지나갔군!

淮海公、久光百
이런 것도 하는구나..

62994929

玫瑰婚典

105

卢湾区淮海中路

64454965/
64672030

都市咖文化国际爵士同乐节
도시 커피문화제, 국제 재즈 음악축제

919日—106

安公

62982541

山田园农

910日—107

区东方假日田

66860992/
56607878

“廊古韵”民俗情系列活

918日—107

区黄浦江水文化博物,七

64133461

缤纷嘉定欢乐

915日-107

嘉定南翔、安亭、曹安马陆镇

69989529

根越角——第三届枫泾婚典

920

金山区枫泾

57355555

运动联欢

913日—1031

汇区上海野生

61180000

走近港,体滴水湖

913日—106

汇区临港新城滴水湖

68283907

上海旅游风筝会

929日-105

贤区旅游

57120888

第六“上海之根”文化旅游

920日—1011

松江区佘家森林公、泰晤士小

57651701

第十朱家角古旅游

9月下旬-10月上旬

朱家角

59715804

第三
3차 전국 북 축제(경연대회)

929日-104

区东绿

59233000转销售部

上海崇明森林旅游

915日-107

崇明

69692411

 
나는 분위기 봐서 맥주 한잔을 하러 가거나, 커피 및 재즈 축제 쪽으로 가고 싶고, 혹시 시간이 되면 불꽃놀이도 한번 가볼까 생각중이다. 아마도 생각만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국경절 전후로 이어지는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유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에 있었던 소식 중에 나의 눈길을 끄는 한 가지는 바로 아래 이어지는 사진들!



별 것 아닌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타기 공연(http://www.tvsou.com/xinwen/a/20080917/98330.htm)
독일에서 온 공연단이 내가 반년 정도 살았던 구역인 톈린(田林社区)에서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내가 이 행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른 그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아래에 부분으로 따온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이 상하이에 100년도 더 전에 저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상하이에 들여온 사람도, 그것을 주로 타던 사람도 서양인이었다.


외발수레[小車; 혹은 독륜거(獨輪車)]는 인력거만 못하고 인력거는 마차보다 못하며 마차는 기차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제까지 거리를 다니는 것은 외발수레 아니면 인력거였고 마차는 보통 남자가 몰았다. 이번에 서양인이 자전거를 발명하였는데 매우 가볍고 빠르며, 길을 다니기가 수월하다. 한 서양 여자가 숙련된 솜씨로 한발로 페달을 밟으며 빠르게 달리는데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한다.(1891년2월)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근 2년간 상해에 많이 생겨났다. 올해 영국 여왕에 대한 축하행사 때 서양 상인들은 자전거를 몰고 거리로 나온 이가 많았다. 니성교(泥城橋) 서쪽의 경마장에 새하얀 자전거 바퀴에 숙련된 기술이 실로 볼 만했다.(1897년6월)


(자료는 중국학센터http://www.sinology.org/ 제공. <점석재화보> 일부 : 포토샵을 밀어버린 바람에 그림판으로 자른 그림이 영 시원찮다. 전체 그림의 한 부분만 부각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시길..)


당시 외국인의 전유물이었던 신문물은 이제 어느새 관광객을 위한 공연의 소품이 되어 있고,
뻐기듯 상하이의 조계 한 자락에서 멋있게 타고 다니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와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
굳이 너무 멀리까지 나갈 필요는 없고, 억지로 의미부여할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도 자전거가 지닌 의미가 갈수록 변해가고 있다.
말 한 마리보다 비싸던 시기도 있었고(대체 말이 되는가?), 거의 전국민의 발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다시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더 선호하는 날이 중국에도 올까.
자동차 핸들 돌리는 것보다 자전거를 밟는 게 더 부유한 삶이라는 생각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이글루스에서 by luna | 2008/09/22 02:49 | 石庫門 |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