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明室 2008. 12. 13. 02:41
네 멋대로 찍어라네 멋대로 찍어라 - 6점
조선희 글.사진/황금가지

(경고: 이 글은 사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책에 대해 "내 멋대로 쓴" 글입니다.)

 

일이 있어 잠깐 집에 다녀오다 김포공항 3층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울적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가벼운 느낌과 사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뿐이었다면 이 책은 기대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다. 왠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린,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아무나 특별하게 찍지는 못하는 게 사진이라는 걸 알기에, 멋대로 찍더라도 대부분 멋대로 공개하지는 못한다. 나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쉽게 노출시키기를 꺼려한다. 아직 그 사진에는 내 시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갈 것도 없이 노출이니 구도니 하는 가장 기본적인(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조차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초보일 뿐이니까.

 

아무리 초보일 뿐이라도, 자랑할 만한 자기만의 시각이 없더라도, 누구나 다른 시각을 가지게 마련이니 자신있게 마음대로 찍고 그 사진을 사랑할 것을 이 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손쉬운 충고가 아닐까? 사진은 생각보다 어려운 수련을 거쳐야 되는 높은 단계의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매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나 셔터를 누를 수 있지만 누구나 조선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가둘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 피사체에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그것은 무협지 식으로 말하면, 하루이틀의 수련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십년을 면벽수련한 내공절정의 고수도 이제 갓 무예계에 입문한 기재에게 깨지기도 한다. 시즈쿠와 잇세, 모짜르트와 아마데우스? 예는 차고도 넘친다. 기재도 아니고 사진기만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이 위안인 것은 분명하나, 위안만으로 자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어딘가에서 본 듯 친숙하지만 곰곰히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는 있으되, 두고두고 곱씹을 문장은 별로 없다. 즉 저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장인일지 몰라도 사진에 대한 자기사유의 측면에서는 그냥 자신감 넘치는 초보에 불과하다. 물론 이것을 꼭 평가절하의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 그 책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을 뿐이다. 한 마디는 건졌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절반을, 그 다음날 저녁에 나머지 절반과 눈에 띄는 사진들을 다시 봤다.

나에게 이 책의 가치는 거의 잊고 지냈던 조르바를 되살려 냈다는 것에 있다.

 

아마도 "사소한 것에서 발견하는 특별함"일 것으로 생각되는 챕터를 읽다가 문득 조르바를 떠올렸다. 여행할 때는 그렇게 신기하게 보이던 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직접 생활하면서 좀 더 자세히 알기 전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 익숙함은 양면의 칼인데, 일주일을 여행와서 받아들이듯이 매일의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나의 머리는 터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일상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것으로 처리하며, 단단한 그것에 발을 딛고 서서야 그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현상과 새로운 사건에 주의력을 집중하고 그 의미를 캐내곤 한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이상할 수 있는 일들이 나에겐 전혀 어색하지가 않게 되어 버렸다.(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제 적응했네!"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따라서 그 사건들, 그 풍경들, 그 피사체들은 나에게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조르바의 능력은 이런 것이다(라고 기억된다..ㅡㅡ;;)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이는 태양과 길가에 흩어진 돌맹이들, 이름모를 풀잎의 이슬까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그는 받아들인다. 그는 항상 생명으로 충만해 있다. 그건 마치 잠이 들면 죽었다가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는 항상 아이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연연해 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순전히 지금 이 순간, 한 점으로 소멸되는 현재에 살고 있다. 그것은 카잔차키스의 사유와 인위적인 수련으로 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도가에서 수련을 통해 이루려는 경지를 그는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를 동경하는 한편 겁이 난다. 안 그래도 읽는 족족 머리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매일매일 내 머리가 리셋팅된다면? 그건 절망이다. ^^;; 우리는 (이미 나의 것인) 익숙함을 버리고 그것에 오체투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동경할 뿐이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과 상식에서 새로운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사진기를 마구 갖다 대다 보면 자기도 몰랐던 새로운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건 내가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진기가 바라본 것이다.

 

아끼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20세기 그믐년에 중국으로 일 떠나는 친구에게 줬다. 나에게 그는 특히 생김새 면에서 조르바였다. 그의 삶이 얼마나 조르바다운지는 모른다. 비교적.이라고 해 두자.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남은 조르바? ^^;; 나는 헌책방에서 새로 샀으나 그 후로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그를 대하기가 겁도 나고.머.그런 거다.

조선희의 <네 멋대로 찍어라>는 서가의 한켠에 두는 것보다 읽을 만한 이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상을 잘못 골랐다.

 

상해에 처음으로 와서 이제 막 생활을 시작한 처조카에게 핸드폰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꼬맹이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유학생 카페 벼룩시장에서 비교적 적절한, 애들도 좋아할 만한 한국어가 되는 기종을 골라 연락을 취하고 만나서 협상을 시작했다. 내 협상카드는 이 책을 선물하고 가격을 '많이' 깍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가져온 이는 자기 물건이 아니라서 많이 깎을 수 없고, 사진(책)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떠난 책을 다시 가져오기도 그렇고 해서, 안겨 주고 50원만 깎았다.

핸드폰은 비교적 깨끗했으나 뒤늦게 충전기(아답터 딸린 충전기 말이다)가 없는 것을 발견,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으나 무응답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기다리다, 열흘이 지난 오늘 다시 연락을 취해 보니 전화번호를 죽여 놓았다. 이래저래 인연이 없었던 책이었나 본데. 책이 조금 많이 아깝다. 그 주인에게서도 사랑받지는 못할 것 같다.

카페에 아이디와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쪽을 줄까도 잠깐 생각해 봤지만, 카페가 전임 운영진의 광고비 착복 문제로 어수선하기도 하거니와 충전기 정도로 그럴 것도 없겠다. 충전기야 아무데서나 하나 사면 그만이지만(15원 하더라!), 책까지 선물한 내 정성을 생각해서 그의 미래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비겁함은 다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비겁했던 경험을 곰씹고 직시하지 못하면 그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계속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회피해야 할 것이다. 나의 저주이다. 좀 약하나?

 

 

http://lunatic.textcube.com2008-12-12T17:41:34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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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