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明室 2008. 9. 26. 23:27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싫어한다.
응시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응시를 알아차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그다지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경우, 즉 아이를 찍거나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모습을 찍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하나의 풍경이 나의 응시를 통해 하나의 틀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그렇게 영원히 평범함에 머물 것이다.

좋은 사진을 보면 오르가즘을 느낀다.
좋은 소설이나 굉장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영화는 몰아쳐오는 쾌감을 최대한 같은 호흡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은 쾌감이 몰려올 때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어쩌다 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
너무 한 문장에만 머물러 있다가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식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여성적인 오르가즘이고 소설은 남성적인 오르가즘이다. 내 편견이다.

사진은 지속되는 오르가즘이다.
순간을 영원히 고정, 정지시키는 죽음의 이미지가 사진에는 강한데, 여기서 방점은 영원에 찍히게 된다.
오르가즘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뭐인지 모를 자극이 눈을 때리는 순간 내 몸은 이미지에 고정되고
천천히 세부를 훓으며 그 쾌감을 음미한다.
그 순간 절정은 이미 지나가 있다.
오르가즘 이후 그것이 못내 아쉬워 애무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속이 영원에 가닿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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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