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5. 08:48

고서(舊書)

아청(阿城)



오경상(吳慶祥)은 열두 살에 도제가 되었다. 배우는 것은 고서점 일이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와 비슷해서 “반년 동안 물건을 못 팔다가, 물건을 팔면 반년을 먹고 산다.” 오경상은 취급하는 게 반년을 먹고 살 “물건”들이니 큰 장사라고 떠벌이곤 했다. 큰 장사가 잘 될 리야 없지만, 그래도 석인첩(石印帖)이나 수산석료(壽山石料; 사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들락거리면서도 장사는 되었다.

 


들락거리다 보니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문인들이 많은 편인데,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가, 반나절을 뒤적이고 반나절을 서성이다가는 가 버린다. 이런 부류는 새끼 문인들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새끼 문인이 언제 대문호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새끼 문인일 때 잘 모셔 두면 대문호가 된 후 서점의 이름값 또한 같이 올라가는 법이다.
대문호는 종종 쪽지를 남기곤 한다. 쪽지에는 찾는 책이 쓰여 있다. 쪽지의 책을 찾으면 전부 다 찾은 게 아니라 한 권이라도 먼저 찾으면 보내 줘야 한다. 정성껏 찾고 있다는 표시라도 내야 되니까.


책을 배달할 때는 항상 다른 책도 끼워 가야 한다. 어떤 책을 끼울 것인가는 문인의 기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외관을 중시하는 문인에게 외관이 잘 장정된 책을 끼워 가면 보통은 구입해서 서가에 진열해 두었다가 친구가 오면 보여주곤 한다.


오경상이 매입자에게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책을 배달하려면 책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배달하는 게 무슨 책인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오경상은 글자 배우는 머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간 지 삼년 만에 책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오경상은 그때 이미 변성기였고 키도 커서 보통은 그가 열다섯에 불과한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책을 아는 두 번째는 아주 어렵다. 판본에 대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온갖 잡다한 학문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분야라서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오경상은 서점에서 책을 사러 온 고객들을 모실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둔 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먼저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 손발은 바쁘게 놀리면서 말이다. 서점은 학교가 아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책을 팔아 줘야 한다.


머리속에 새겨진 것은 조금씩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기회에 단번에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해하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오경상은 간혹 해정(海淀; 북경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책을 배달하기도 했다.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옆으로 잡초만 무성하다. 오경상은 겨울에 해정까지 책을 배달하는 게 가장 겁난다. 역풍이 부는 데다 날도 빨리 저물어 돌아올 때는 모골이 송연하기 때문이다. 오경상은 훗날 대문호 몇 명과 잘 지냈다. 물론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오경상은 훗날 사창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선무문(宣武門) 바깥의 점원치고 사창가를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가고 싶은 법이다. 서점에 책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아니다.


오경상은 매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나으면 또 사창가를 찾았다.
낮에는 책 파는 일을 돕고, 책 파는 학문에 신경 쓰고 배달도 하다가 어두워지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동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단골을 찾는다. 매번 같은 가격으로.


북평(北平)은 1949년에 해방되어 원래 명칭으로 바뀌어 다시 북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0년 초에 오경상은 자살했다.


오경상의 자살에 대해 친하게 지내던 점원들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오경상은 주인도 아니고 고작 고참 점원에 불과하니 성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사창가를 단속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신사회가 시작되어 도처에 새로운 기상이 움 솟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는데, 어찌하여 사내대장부가 쉽사리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점원들이 오경상을 언급할 때면 지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2008년 6월 5일 초벌. <아청 정선집>(북경연산출판사, 2006년),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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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5

리얼(李洱)은 1966년 허난성(河南) 지위안(济源)에서 태어났다. 《홍루몽》, 《삼국연의》와 같은 고전소설을 즐기는 할아버지와 중학교 어문교사였으며 역시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리얼이 작가가 아닌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술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미술교육은 은연중에 그에게 형상적인 사유능력을 키워줬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소설 창작을 목표로 했으며 이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중문과에 입학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소설 읽기를 시작한다.

80년대의 화둥사대는 문학 창작과 비평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오직 글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학청년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근문학(尋根文學)이나 선봉문학(先鋒文學)과 같은 최신의 문학 조류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기도 전에 대학에서는 미리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시작했다. 특히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福音)」(1987)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많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으며 저자 자신도 비교적 만족스러워 하는 초기작은 당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1993)이다.

 

대학원생인 “나”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신중한 어투로 지도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존경의 말투가 극진할수록 지도교수의 행색은 더욱 초라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되는 사건, 장면, 생활의 디테일은 지도교수의 어쩔 수 없는 생존환경과 정신적인 붕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편집자가 출판을 위해 수정을 가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초고를 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두 글자가 달라짐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은 이후 그의 창작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화둥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허난성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수년 간 역임했다. 허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허난성의 창작계와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선봉소설이나 모더니즘 계열 소설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중역본 《보르헤스 소설선》을 끼고서 거리를 다녀 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시 허난 창작계의 분위기였다. 리얼이 보기에 허난성 작가의 소설은 건국 이전의 고루한 양식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리얼이 땅과 향촌의 이야기에 기반한 다른 허난 작가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상하이, 선봉문학,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였다. 이후 허난작가들이 가진 토착성과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자신이 향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시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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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1

지식인의 존재적 불안의 담론화


리얼은 80년대 말에 창작을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문단에서의 자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즉 그가 본격적으로 창작에 매진한 시기는 중국이 소비사회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는 유행이나 시류를 휩쓸리지 않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식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심미적 해석을 가하여 그것을 심미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것에 치중하였다.

 

「지도교수가 죽었다」, 「오후의 시학」, 「현장(现场)」 등 초기작을 시작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 특히 1990년대 중국 지식인은 리얼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 역사와 현실에서 지식인이 겪는 곤경과 개인의 존재 의의를 소설이란 형식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창작을 관통하고 있다. 리얼의 지식인 소설은 표면적으로 지식인의 일상생활과 존재형태에 대한 묘사에 그쳐 주제나 인물에 있어 명확한 내포나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이 보여주는 서사담론과 시각은 강렬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얼의 지식인 서사는 역사나 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개인의 일상적인 존재와 개체의 생명에 대한 체득으로 회귀하여 지식인의 정신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그의 서사는 생활의 아픔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지도교수가 죽었다」에서 그 추형을 보여준 뒤 「망각」,《노래가락》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은 그것이 인물, 주제, 도덕 같은 내용에 관련되든 텍스트의 문맥이나 서사형식에 관련되든 모두 지식인의 담론생활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담론과 “이야기되는” 그들은 각각의 상이한 환경에서 근본적인 허무를 펼쳐 보인다.


「오후의 시학」(1998)은 「지도교수가 죽었다」와 함께 리얼의 가장 중요하며 가장 뛰어난 중편 대표작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지식인의 정신과 담론의 질서가 작품 안에서 변형되면서 원래의 전통적인 합법성을 상실해 버린다는 점이다.

 

「오후의 시학」은 문학적 글쓰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리얼에게 새로운 미학적 기점을 찾아줬으며 “존재”, “담론”에 대해 그가 얼마만큼 파고 들어갈 힘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거대서사는 철저히 해체되었으며 개체의 생명존재에 대한 진술은 확실한 표현방법을 획득하였다. 인간 존재의 불안을 다룬 이 소설은 인물의 “말”에서 출발하여 주인공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세부와 정신생활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곤경을 겪게 되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페이볜(費邊)은 자신 있게 “고귀함”을 설파하지만 그 자신은 세속의 소용돌이로 떨어진다. 현실과 정신적 지향의 충돌로 인해 그는 담론의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볜의 연애, 결혼, 사업 및 정신생활은 모두 담론의 현시와 암시로 전환되며, 이러한 담론의 현시를 통해 페이볜의 주관세계가 그의 주체가 존재하는 객관세계를 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구,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극,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두 페이볜이란 존재의 정신적 바탕이 되고 있으며, 페이볜의 의의 또한 바로 이러한 의식의 창조적 활동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몇 년 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붕괴되어 온갖 희극적 장면이 일상생활의 사진이 되었을 때”도 페이볜은 여전히 친구의 결혼피로연에 동석한 연인 한쌍에게 플라톤의 사랑론을 지껄이며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시 「오후의 시학」을 구상하고 있다.

한 편 두리(杜丽)는 미망인의 신분으로 페이볜에게 나타나 그와 결혼한다. 그녀의 출현이 가져다 준 것은 사랑과 죽음의 결합에 의한 신성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남편은 죽지 않았으며 줄곧 비밀리에 그녀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그녀는 연극배우에서 유행가수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추악한 노래 소리는 우리 시대의 은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 “오후”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림자, 추악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받들고 있다. 이 시대에 아직도 진실함과 경건함이 살아있는가? 예술에 대한 신앙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가?

 

페이볜은 다음과 같이 읊조리고 있다. “신이여, 우리는 신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신을 경외하고 있습니다.” 까뮈의 《반항적 인간》에서 이야기했듯이, 햇빛 찬란한 고대 그리스의 지중해 정신은 용기, 성숙, 균형 등을 의미하는 “정오의 사상”이다. 그에 반해 리얼이 바라보는 세계는 애매하고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오후”이다. “나는 이 시대의 글쓰기를 오후의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리얼은 담론을 이용하면서 그것을 해체한다. 현실에 대해 밀란 쿤데라식의 “농담”을 하며 “지혜의 고통”을 향유한다. 철저히 세속화될 때까지, 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사랑과 성 또한 리얼의 소설에서 계속 탐색해온 주제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처한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소설을 통해 지식인의 개성적 존재가 가진 은밀함을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벙어리의 목소리(喑哑的声音)」(1998)과 「부유(悬浮)」(1998)는 중년 지식인의 은밀하고 내면적인 성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섹스와 정신, 세속적 결혼과 비정상적 감정 등에 대해 소설은 그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인생의 은밀한 일면을 들춰낸다.

 

리얼은 이러한 감정을 억압하지도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문적 지식인들은 모두 감정의 미망에 빠져 날로 변화하는 현대생활 속에서 자신의 윤리관이 뒤흔들리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벙어리의 ‘목소리’와 담론의 ‘부유’는 무중력 상태에 빠진 지식인의 감정과 의지할 곳 없는 영혼,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 현기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얼은 자신의 개인화된 문학적 경험을 최대한 억제하여 당대 인문 지식인의 미리 결정된 일상생활과 담론에 속박된 정신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상적 장면”과 담론적 형태를 철저하게 지식인 서사의 중심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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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42

“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인 중편 「망각」(1999)은 《대가(大家)》잡지의 “요철 텍스트(凸凹文本)” 특집에 문체실험으로 발표되어, 소설문체의 혁명, 순수한 문체실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사책략과 문체기교 방면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새로움은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서사구조의 매력이 아니라 형식 배후에 감춰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화, 생명,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당대의 문화, 인문현상, 당대의 인문 지식인이 가진 진실의 허구와 그것이 가져다 준 첨예함이 그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지도교수 허우허우이(侯后毅; 해를 쏘아 떨어뜨린 신화 속 ‘후예(后羿)’를 연상시키는 이름)는 제자 펑멍(馮蒙;후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의 제자 봉몽(逢蒙)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박사학위 논문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인 상아(嫦娥)를 역사학적으로 고증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아울러 상아와 자신의 특수한 관계, 즉 달에 사는 상아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 러나 펑멍은 상아와 어떠한 교류를 할 수 없으며 그 속에 담긴 논리를 유추하거나 논증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모인 뤄미(羅宓)와의 미묘하고 복잡한 애정관계에 몰두한다. 신화와 현실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억누르고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상상 속에서 현존재의 신비와 황당함, 패러독스가 드러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담론에서 서술되며, 소설 속 현실 또한 신화에 의해 진행된다. 허우허우이가 현실과 신화를 혼동하면서 신화와 현실의 논리질서는 완전히 전복되고 해체된다.

저 명한 역사학자인 그가 전생을 찾아 신화와 전설의 논증을 필생의 임무로 삼게 되면서 엄숙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로서의 그는 망각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담론” 내부의 공간이며, 이 담론은 이미 실재적인 역사와 현실의 증거를 상실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신화는 수정이 가능하고, 역사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현실 또한 존재의 거짓말로 가득 찬 세계이다. 허우허우이가 자기 존재의 기원을 망각하는 순간, 어떠한 권위 있는 담론, 어떠한 개인적인 담론도 허황하고 아무 근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상상적 존재와 담론은 똑같이 일종의 생활방식, 담론적 생활방식이 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에서 현실과 허구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9

농촌의 정치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작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石榴树上结樱桃)》(2004)는 《노래가락》과는 또 다른 변화가 시도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중국고전소설의 표현수법을 현대소설의 서사로 재활용하였으며, 지식인이 아닌 농촌을 주요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촌장 선거를 둘러싸고 권력의 유혹앞에서 시험받는 인간의 자존심과 양심을 묘사하여, 권력이 순수한 농촌을 어떻게 침식해 들어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의 선거나 과장, 부장으로의 진급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누가 촌장이 되는가에 따라 농민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농촌은 온갖 모순이 모인 곳이다. 농민은 생존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마을에서 한자리라도 차지해야 하고 조상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사내아이의 출생에 목을 매는 것 또한 합리적인 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들의 합리성은 국가정책과 모순된다.”

 

소재가 향촌으로 전환되었으되 여전히 지식인의 입장에서 향토 중국을 이해하려는시도임이 잘 드러난다. 그에게는 이 소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인 소설이다. 지식인 자아의 개성적 표현에서 나아가 타자인 농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식인의 책임임과 동시에 더욱 순수한 지식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리얼은 다른 향촌소설과는 달리 농민들의 고난 자체보다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요소, 현대적 문화가 변화시킨 농민들의 담론생활에 더욱 주목한다. 당대의 농민들은 돼지우리에 서서 핸드폰으로 촌장 선거를 토론한다거나 타이완 해협과 같은 정치현안, 지속가능한 발전, 미국 대통령 선거, 전지구화, 페미니즘 따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담론생활과 생존환경 사이의 “간극”이 그가 초점을 맞추고있는 부분이다.


“향토 중국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건 계속 꿈꿔오던 것이었다. 다른 향촌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기이한 사건을 서술하거나, 일상적 사건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든 난제를 묘사하고 싶지 않았으며, 현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향토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작가들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곤란”함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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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2

리얼은 15~6년간 거의 매일 소설을 읽어 왔으며 특히 유럽 소설을 섭렵하였다. 최근에는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방면으로 독서의범위를 확장시켰다. 이는 문학서적들이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좋아하는 작가는 카뮈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다.


창작 이외에 리얼이 가장즐기는 것은 잡담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것은 너무 비용부담이 크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축구를즐겨 본다. 그는 특히 중국 축구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중국의 모든 직종 중에 축구가 가장 제대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어느 영역에서 감히 이렇게 외칠 수 있겠는가? 이기든 지든 눈앞에 펼쳐져 모두가 볼수 있고, 욕할 수 있다. 게다가 수만 명이 모여서 같이 욕하고, 수억의 관중이 같이 목이 터져라 욕할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이게 가능한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통로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축구를 볼 때마다, 특히 중국 축구를 볼때마다 아무리 무참히 깨지더라도 속으로 잘 찼다를 연발한다. 이게 어디 축구겠는가, 이건 분명 전지구화 시대의 중국현실에 대한너무나도 리얼한 사진이다. 축구나 축구와 관련된 영역은 가장 현실주의적인 소설도 비교할 수 없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식《아내가 결혼했다》를 기대해도 좋을 대목이다.


앞으로의 창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 리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저는 원래 중단편소설 이외에 평생 세 편의 장편만을 쓸 계획이었습니다. 역사, 현실, 미래에 관하여 각각 한 편씩을 구상하고있었습니다. 《노래가락》은 역사에 관한 소설입니다. 《석류나무 위에 열린 앵두》는 두 번째 장편을 준비하던 중 임시로 끼어든것입니다. 지금 집필하고 있는 것은 원래 계획의 두 번째 장편인 현실에 관한 소설입니다. 내용이 비교적 복잡하고 편폭 또한길어서 대략 30만 자 정도 될 것입니다.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고 언제 완성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제 계획에 있어 이 세장편은 사실 하나의 생각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이 말은 뒤바꾸어도 됩니다. 미래는역사임과 동시에 현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현실은 역사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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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3. 01:23

류전윈(劉震雲)

 

 

1958년 5월 하남성(河南省) 옌진현(延津县)에서 출생했다. 1973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습작을 시작했으며, 1978년에제대하였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초기작 「신병훈련(新兵连)」(1987)은 신병연대에서 궁벽한 농촌청년들이 겪게 되는새옹지마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대 이후 잠깐 동안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며, 문혁 동안 중단되었던대학입시가 부활하자 1978년 가을 북경대 중문과에 입학한다. 처녀작 「탑마을(塔铺)」(1987)에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기고향에서의 경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8년에서 1991년까지 위화(余華), 모옌(莫言) 등과 함께 북경사범대학루쉰문학원(鲁迅文学院) 창작연구생반에서 수학하여 문예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년 대학 졸업 후 《농민일보(农民日报)》에입사하였으며, 지금은 문화부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북경시 청년연합회(靑聯) 위원,일급작가(一級作家)이며, ‘루쉰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부터 창작을 시작했으며, 1987년 《인민문학》에 단편소설 「탑마을」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소설로 그는1987-88년 전국우수단편소설상, 1987년 《소설선간(小说选刊)》우수단편소설상, 1987년《인민문학(人民文学)》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드라마로 제작되어 전국 드라마 “비천상(飞天奖)”을 수상한다. 같은 해발표한 「신병훈련」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아, 제3회 《소설월보(小说月报)》 우수중편소설 “백화상(百花奖)”과 제2회 청년문학창작성취상을 수상한다. 이후 「우두머리(斗人)」(1988), 「직장(单位)」(1988), 「관직(官场)」(1989), 「닭털같은 나날(一地鸡毛)」(1990), 「관리들 만세(官人)」(1991), 「1942년을 돌아보다(温故一九四二)」(1993),「뉴스(新闻)」(1994) 등 우수한 중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중편에 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소설에는형이상학적인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여실하게 그려지고 있어 80년대 후반 대두한 신사실주의소설의 대표로 손꼽히고 있다. 현실의 담담한 묘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러나 그 옛날 루쉰을 떠올리게 하는 절망과 음울함, 그리고중국인의 노예성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닭털 같이 가볍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이 잘 그려진 「닭털 같은 나날」 또한 그의소설 특유의 블랙 유머와 실존주의적 모색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 또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세기 100대세계명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가가 가장 중시하는 작품의 하나인 「1942년을 돌아보다(温故一九四二)」는 르포르타주의형식적 외피 아래에 권력의 속성을 멀찍이서 그려내고 있다.

 

여러 중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일상, 권력, 역사 등의 키워드는 ‘고향’을 주요무대로 그려낸 일련의 장편에서 더욱 다양하게 변주된다. ‘신역사소설’의 대표작품으로 평가되는 《고향의 국화(故乡天下黄花)》(1991)는 한 촌락의 권력투쟁사를 통해 주류 이데올로기적 혁명의 역사에 대한 전복을 꾀하고 있다. 《고향의 국화》는 “20년간 중국 영향력 100위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닭털 같은 나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전략적 시도인 《고향의 옛 이야기(故乡相处流传)》(1993)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을 적극 활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고향 하남성을 근거지로 활약한) 조조의 삼국시대와 현재를 오가며 “허구세계의 진실”과 “진실세계의 허구”를 교차시키고 있다. 농촌에서 그려낸 《악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향의 꽃송이(故乡面和花朵)》(1998)는 8년이라는 창작기간과 ‘4권 220만 자’라는 규모로 인해, 그리고 기존관습에서 벗어난 형식적인 실험으로 인해 여전히 의론이분분한 상태이다. 그러나 과잉일지는 몰라도 시대의 획을 긋는 새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의 언어적 실험은《온통 헛소리(一腔废话)》(2002)에서 더욱 자유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근작 《핸드폰(手机)》(2003)은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닭털 같은 나날」, 「1942년을 돌아보다」, 《핸드폰》 등 다수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거나 제작 예정이다. 또한 중국 최초의 “작가영화”라고 평가되는 《내 이름은 류약진(我叫刘跃进)》(감독: 마리원马俪文)에서는 직접 제작, 시나리오, 연기(카메오) 등에 참여하였으며, 2008년 1월 16일 상영예정이다. 이러한 최근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로운 문학적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 류진운은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국역본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최근작 <류약진>이 곧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도 국내에 개봉할까? 영화는 모르겠으나 소설<류약진>은 너무 시끌벅쩍하고 수다스러워서 내 취향은 좀 아니었다. 영화도 아마 짐작에는 <크레이지스톤>에 가까운 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녀의 전작 <워먼랴; 우리 두 사람>은 좋았지만 말이다.

  • (덧붙임) : 영화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기대작이어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소개를 작성한 후 출판된 소설 <내 이름은 류약진> 또한 나로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글루스에 올리기 전인 07년 9월~10월 사이 작가 소개가 작성되었고 책은 2007년11월에 출판되었다.) 일단 <닭털 같은 나날>의 류진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핸드폰>이나 <내 이름은 유약진>을 좋아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다. 대체적인 평가는 초기의 단편이 뛰어나고, <고향의 국화; 고향 하늘의 노란 꽃> 정도까지를 쳐주는 편이다. 그 이후의 소설은 나로서는 너무 수다스럽다.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김영철 역, 2001년 7월, 책이있는마을 /단편 "단위" 수록

<닭털 같은 나날>, 김영철 역, 2004년 2월, 소나무

<핸드폰>, 김태성 역, 2007년 11월, 황매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 김재영 역, 2007년 12월, 황매



핸드폰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닭털 같은 나날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 고향 하늘 아래 노란꽃은 아무래도 그냥 "국화"로 옮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소개말에 보면 "황화"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바로 국화 아닐까 하는 것이다.
  • 물론 나는 위의 약력을 쓸 때 위에 소개된 저자의 말은 모르고 있었고, 고향 삼부작의 제목 번역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 그 중 압권은 "고향의 꽃송이"로 두리뭉실하게 옮긴 <故乡面和花朵>이다. 중국인들도 제목을 어떻게 끊어 읽어야 될 지 모르겠다고 한다. 추후에 지도교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데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어 원래의 "두루뭉술"로 둘 수밖에.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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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4:03

(전면수거된 <화성>2005년 봄호 중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의 표지)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쾌활>로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제3회 라오서 문학상(老舍文学奖)을 수상하였던 그 해에, 옌롄커는 중편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爲人民服務)」(2005)를 문예지 《화성(花城)》 2005년 봄호에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발표 즉시 마오쩌둥 석고상을 부수고 <마오쩌둥 선집>을 찢는 등의 장면이 문제가 되어 당국으로부터 금서 처분과 함께 전량 회수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러나 해외로의 번역 저작권 판매는 금지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활발히 소개되었으며, 중국에서도 포털사이트 등에서 쉽게 원문을 구해 읽을 수 있다. (물론 전량회수되었다는 문예지 <화성>은 대학도서관에 버젓이 꽂혀 있다. 연구용으로는 허용되는 것인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 인민해방군 사단장의 젊은 후처와 그 집에 배속된 말단 사병의 불륜을 그린다. 작가는 쾌락의 끝을 향해 치닫는 남녀의 사랑 행위와 문혁의 집단적 광기를 대비시킴으로써 혁명 서사에 억눌렸던 인간의 감성을 부활시킨다.

 

대만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왕더웨이는 이 소설이 등장한 것은 “혁명으로 호소하는 사회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의했다.


어긋난 유토피아


《아주주간(亞洲週刊)》 세계 10대 중국어도서에 선정된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2006)은 중국 최초의 에이즈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실존하는 에이즈 마을의 환경개선을 위해 쓴 작품이며,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 기부금을 출연하기로 협의되었지만, 출판사의 계약위반으로 법정투쟁까지 벌였고 결국 기부금 전체를 저자가 부담했다.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착종된 서사 스타일로 한 소년의 기억을 통해 중국내륙의 한 에이즈 마을을 조명하고 있다. 이 오랜 마을의 농민들의 빈궁함, 우매함, 낙후, 탐욕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피를 팔아 가난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마을 전체의 에이즈 병동화라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 작품에서 오히려 죽음은 향유하기조차 힘든 사치이다. 의지할 곳 없는 고난과 절망이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존재이며, 죽음은 그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연속일 뿐이었다.

 

옌 롄커는 다루고 있는 소재가 어떤 것이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생활을 주목하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현장성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딩씨 마을의 꿈>은 지금 여기의 세계에 옌롄커가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설이다.

 

“의 심할 것 없이 이 소설은 내가 허난성 출신이란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마땅히 사회와 인류에게 가장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이즈가 허난성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고난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의 변화과정, 내적세계, 그리고 그들의 생존방식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전 소설과 비교해 보자면, <일광유년>이나 <쾌활>은 상상에서 현실로 진입한 작품이다. 상상은 현실과 역사의 교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에서 역사로 진입한 작품이다. 현실은 상상으로 나아가는 교량이며,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근거이다.”


그는 세 부류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마음이 약한 사람이 읽으면 너무 괴로워질 것이다. 둘째 최신문화의 유행을 쫓는 사람들, 예를 들어 장이머우의 <영웅>이나 천카이거의 <무극> 같은 블록버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소설은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셋째,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목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읽을 필요가 없다. <딩씨 마을의 꿈>이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지불해야 할 사랑이다.”



p.s. 최근 옌롄커는 새로운 장편소설 하나를 탈고했다고 한다. 아직 정식발표되지 않아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편 <연월일> 이후의 옌롄커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곧 한두편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특히 위 두편은 곧!!?)

....
웅진의 중국당대문학 걸작선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8년 4월 30일 출간되었다.
띠지의 홍보문구는 다음과 같다.

"<색,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이다!"

표지는 상당히 매혹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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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4:02

쾌활한 리얼리즘


< 쾌활(受活)>(2004)은 옌롄커 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묘한 상상력, 은유, 아이러니를 버물려 놓은 중국식 마술적 사실주의의 완성이며, “중국문학의 사유를 바꾼 개척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 부가된 작가의 주석에 따르면 제목 “수활(受活)”은 “향락, 향유, 쾌활, 즐거움” 등을 뜻하는 북방 방언이다. 파러우 산맥(耙耬山脈)에 위치한 쾌활촌민의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바로 이 “쾌활(受活)”이다. 작품은 중국내륙의 외딴 곳에 있는 쾌활촌(受活庄) 이라는 허구의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대대로 이 마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맹인, 벙어리, 절름발이 등 197명의 장애인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상인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는 그런 곳이다. 깊은 산맥 속에 위치해 있어 중국근현대사의 그 수많은 전쟁과 운동도 이 마을의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방해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의 붉은 깃발이 중국 대륙 전체를 뒤덮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마오즈(茅枝) 할멈과 류잉췌(柳鹰雀) 현장이라는 두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홍군(紅軍)이었던 마오즈는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낙오되어 쾌활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혁명의 물결이 쾌활촌에 미쳤을 때 홍군이었던 마오즈의 피는 다시 끓어오른다. 토호 타도, 농지 분배, 대약진, 인민공사, 문혁과 같은 일련의 혁명개조운동에 촌민들을 이끌고 앞장선다. 그러나 전국을 뒤덮던 3년간의 자연재해를 거치면서 쾌활촌의 자급자족 경제가 상급부처의 징세와 이재민의 약탈로 파괴되는 것을 목도한 후 차츰 혁명의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그 후 인민공사에서 “퇴사(退社)”하여 원래의 “방임, 자유, 자급, 자족”의 생활로 회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또 다른 중심인물 류잉췌(柳鹰雀) 현장은 현의 경제상황을 진작시키기 위해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운다. 소련의 해체소식을 접한 후 레닌의 유체를 사와 레닌기념당을 만들어 입장료로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유체를 구입할 막대한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마오즈와 협상을 생각해 낸다. 쾌활촌이 “퇴사”하여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게 해 주는 대신 장애인들로 구성된 기예단을 만들어 전국순회공연을 하면서 레닌 구입비용을 모은다는 것이다. 쾌활촌민은 육체적 수난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것을 위해 인격적인 수난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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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3:58

혁명과 사랑


<물처럼 단단하게(坚硬如水)>(2001)는 성적 욕망이 가장 억압되었던 “문혁” 시기를 배경으로 혁명의 물길 속에서 사랑에 탐닉하였던 조반(造反) 남녀를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미친 듯이 조반하고, 우파의 집안을 뒤집어 놓았으며 폭력을 행사하고 비판을 주도하는 혁명을 단행하는 한편, 무덤이든 땅굴이든 인적 드문 곳을 찾아들어가 미친 듯이 사랑의 탐욕에 빠져들기도 한다. 특 히 주목할 만한 설정은 “혁명 가곡”의 반주가 울리는 순간 그들의 욕망 또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대의 혁명적 열정을 사랑했다. 샤홍메이(夏紅梅)에게 가오아이쥔(高愛軍)은 혁명의 훌륭한 교과서였고, 가오아이쥔은 혁명의 이름으로 그녀에게 맹세한다.

 

“홍메이, 당신이 믿던 안 믿던, 당신을 위해, 나는 죽을 각오로 혁명을 완수하겠소!”

 

이 소설의 내부구조는 지상과 지하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지상”은 혁명, 정치, 권력, 광명, 미래 등 거대한 붉은 글자들로 가득 찬 양(陽)의 세계이다. 이 부분은 문혁 시기 문학에 자주 사용되던 혁명과 사랑의 서사와 대응하도록 의도적으로 구성한 패러디로도 볼 수 있다. 반면 “지하”는 묘지, 터널, 정욕 등 음(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혁명가곡에 의해 촉발되는 충동적인 욕망만이 이 두 세계를 연결시켜 준다.

 

한 편 이 두 세계는 작품 내부에서 두 가지 상이한 담론체계를 구성한다. 독립적이면서 서로 뒤엉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두 세계와 마찬가지로 정치 담론과 개인 담론은 서로 병치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면서 독특한 담론적 풍경을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초기 마오쩌둥에 의해 행해졌던 중요한 언설들이 가오아이쥔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지만 그건 어딘지 비틀어져 있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개인 담론에 의한 정치 담론의 전복을 통해 더욱 반어적으로 다가온다.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혁명의 언어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거기서 정치 담론과 개인 담론은 완전히 뒤섞인 상태로 나타난다. 옌 롄커는 정치권력의 담론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지상 세계의 견고한 자태를 묘사하는 동시에 지하 세계의 개인 담론을 통해 정치 담론을 해체하고 그것의 허위와 황당함을 까발리며, 그 부드러운 본질을 보여준다. 유희적인 문체 속에서 정치담론과 개인담론, 견고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묘한 전환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러나 상흔문학(傷痕文學)이나 반사문학(反思文學)이 정치담론의 개인담론에 대한 폭력을 강조하면서 둘 사이의 이원대립적 관계를 구성한 것과는 달리, 옌롄커는 그것이 양자 간의 묵계에 의해 서로 교환되는 것임에 더욱 주목하였다. 정치담론이 원초적 충동에 근거한 개인담론의 체계 속으로 들어오면서 둘은 서로 의존하기도, 충돌하기도 하며, 양자는 배척관계인 동시에 공모관계인 것이 드러난다.

 성 과 사랑에 관한 서사는 문혁 시기까지 다루기 애매한 주제였다. 그나마 사랑은 있었지만 성과 욕망에 관한 묘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성이 버려지고 그 자리를 동지끼리의 정치적 신념과 혁명 신앙이 대신한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기의 소설에 대한 다음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 자들은 혁명으로 인해 사랑을 얻고, 여자들은 사랑 때문에 혁명을 추종하는 줄거리가 사랑을 묘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리하여 원래 생동적이고 미묘하여 규범 짓기 어려운 사랑의 체험은 협애한 혁명적 주제로 수렴되었고, 색정적이고 애욕적인 부분은 말끔히 씻겨나가 버렸다.”

 

“성적 욕망은 사회제도에 대한 잠재적 전복이다. 정욕이 싹트는 것은 이질적인 사회구성의 시작이다.”

 

성적 생산과 권력 생산을 미묘하게 중첩시켜 상징질서를 재조합하고 프롤레타리아 정치구조를 재검토했다는 면에서 <물처럼 단단하게>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현재 2008년 출간을 예정으로 번역 중이라고 한다. 내 실력으로는 내용만 대충 파악할 정도다. 매끄러운 한글로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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