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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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8 옌롄커(阎连科) 프로필 -1
  2. 2007.10.27 중국소설가 리얼(李洱) 인터뷰
  3. 2007.09.16 류진운 - 글쓰기와 운동
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3:39

옌롄커(阎连科)


옌롄커는 현재 중국에서 평단의 반응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장악한 중국 당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제1회, 제2회 루쉰 문학상, 제3회 라오서(老舍) 문학상(2005년)을 포함한 국내외 문학상을 20여 차례 이상 수상하였으며, 상당수 작품이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 10여 종의 외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11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수필, 산문,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2007년 9월 12책 분량의 <옌롄커문집(阎连科文集)>을 인민일보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1985년 하남대학 정법과를 졸업했으며, 1991년 해방군예술대학(解放军艺术学院) 문학과(文学系)를 졸업했다. 2004년 군인신분에서 벗어났으며, 현재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북경시 청년연합회(青联) 위원, 일급작가,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작가로 있다.

 

옌롄커는 1958년 허난성(河南) 쑹현(嵩县)의 작은 마을 톈후진(田湖镇)에서 태어났다. 그 옛날 중원으로 불리며 중국 고대문명의 발원지로 이름을 날렸지만, 대륙의 문명이 몰락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중국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이 되어버린 곳이다. 생년월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빈곤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입대할 때 서류작성을 위해 회계관이 임의로 작성한 출생일이 1958년 8월 24일이다. 어머니는 생년월일이 아니라 수확을 못할 정도로 고구마가 풍작이었고 찌는 듯이 무더운 해에 태어났다고만 들려줬던 것이다. 대략적인 추측에 의해 뒤늦게 부여받은 날짜이긴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유희와 장엄이 함께하는 무엇이었다. 옌롄커는 자신의 감수성은 확실히 쑤통, 위화 등 60년대 작가와는 다르며, 50년대 작가의 그것임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50년대 작가와 60년대 작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문학사적 개념이다. 유년기를 어떤 방식으로 거쳤는가가 한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이들을 가르는 차이는 문화대혁명(1966-76년)이란 역사적 사건이다. 대약진 운동, 반우파투쟁, 문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급투쟁의 역사가 그들의 신체에 각인한 것이 무엇이든, 그 또한 50년대 작가인 모옌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년기의 배고픔이었다. 혁명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그와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토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한다.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소설 창작으로 한 작가의 환경 자체가 달라진 것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1975년 동북 지역의 궁벽한 농장에 하향되어 있던 여류작가 장캉캉(张抗抗)은 소설 <경계선(分界線)>의 후반작업을 위해 대도시인 하얼빈으로 옮겨오게 되며, 소설이 출판된 후에도 하얼빈에 남아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즉, 소설가가 되면 농촌을 떠나 도시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등학생이던 1975년부터 습작을 시작하여 「산고을의 혈화(山鄕血花)」라는 계급투쟁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물론 언제 불쏘시개가 되었는지도 모를 소년의 백일몽이었다.

 

실제로 토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다른 농촌청년들과 마찬가지로 1978년 입대를 하면서이다. 입대 후 부대에 있는 문학창작 학습반에 들어가면서 정식으로 문학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1979년 우한의 《전투보》에 처녀작 「천마 이야기(天麻的故事)」를 발표한다. 이 소설은 한 병사가 공산당 입당을 위해 간부의 방에 몰래 천마(天麻) 한 근을 뇌물로 가져다 두는데, 간부가 이를 물리치며 병사에게 편지로 혁명적인 교훈을 전하는 내용이다. 소설이 발표되자 전 사단이 들썩였으며, 옌롄커는 원고료 8원의 반을 잘라 부대원들에게 사탕과 담배를 대접하며 자기 문학의 시작을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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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7. 10. 27. 03:11

리얼(李洱)


중국에서 신생대 작가(新生代作家)로 일컬어지는 리얼은 현대 중국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개성화된 담론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탐색과정을 보여주는 작가로 문단에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는 소설의 기교를 중시하는 선봉적인 의미의 작가임과 동시에 항상 스스로를 발견의 과정에 두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생활과 세계에 대해 의혹과 경계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나는 경험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혼자만의 경험과 거리를 확보하여 우리 담론생활의 진상을 고찰하고 싶다. 형식과 이야기의 금기 깨기에서 나의 창작은 시작된다.”


80년대 말 창작을 시작한 후, 지도교수가 죽었다(导师死了), 오후의 시학(午后的诗学), 현장(现场), 거울을 깨고 나오다(破镜而出), 망각(遗忘)(“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 밤의 도서관(夜游图书馆), 수다스러운 벙어리(饶舌的哑巴)30여 편의 중단편과 5권의 소설집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장편으로는 <노래가락(花腔)>(2002),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石榴树上结樱桃)>(2004)가 있으며, 현재 허난성 문학원 전업작가 및 문예지 <망원(莽原)>의 부주편으로 있다. 아직 그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중국의 지적인 독자층과 문단의 평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 : 허난성 출신인데 상하이에서 대학을 다니고 처녀작을 썼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 : 소설을 쓰고 싶어 중문과를 지원했고, 화둥사범대학의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했다.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이다.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초고를 돌려주는 좋은 전통이 있었다. 몇 구절을 수정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게 이후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400원이라는 거액의 원고료로 냉장고를 샀다.

 

* : 지도교수가 죽었다, 오후의 시학, 현장등 초기작은 주로 지식인의 생활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지식인의 처지에서 무엇을 발견하려 한 것인가?

* : “초기가 아니라 줄곧 지식인의 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지식인이 역사와 현실에서 겪는 곤경과 개인의 존재 의의를 소설의 형식으로 탐색하고자 한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써도 바로 되돌아와 버린다. 게다가 기껏 써냈다고 해도 그 배후에 지식인의 시각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복잡함을 몇 마디로 압축하기는 힘들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할 것이다.


* : 대표작 노래가락(2002)을 시작으로 크게 달라진 점이 사회의 공공영역에 대한 깊은 관심인 것 같다. 이전까지는 개인적인 영역에 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

* : 이전에도 개인적인 영역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점점 문제의 복잡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때문에 경험의 복잡성을 표현하는 데 보다 주의했다. 역사 또한 현실이며, 다른 주제를 주면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역사서술의 작업장 분위기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소멸, 민족주의의 복잡성 따위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가락을 쓰게 된 것이다.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또한 변화하였다. 여기서는 중국고전소설의 표현수법을 현대소설의 서사에 시도해 봤으며, 농촌에 관한 문제를 다루어 보았다.


* : 2004년에 발표한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는 농촌의 정치에 관한 소설이다. 지식인 소재에서 농촌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이며, 다른 향촌소설과의 차이는 어디에 두고 있는가?

* : 향토 중국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건 계속 꿈꿔오던 것이었다. 다른 향촌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기이한 사건을 서술하거나, 일상적 사건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든 난제를 묘사하고 싶지 않았으며, 현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향토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작가들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곤란함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 : 동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들의 장점, 혹은 단점은 어디에 있는가?

* : 사실상 글쓰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이후 모두들 대면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전지구화의 상황에서 중국적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떻게 그 복잡성을 표현할 것인가? 또한 그 표현은 독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소설가의 도덕적 대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글쓰기가 개인적인 것임을 강조한다면 90년대 초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좀 큰 문제인 듯 보이지만 사실 모두와 관계된 것이고 모두에게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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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7. 9. 16. 22:55
류전윈은 글쓰기를 운동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운동에는 승리를 추구하는 운동과 실패를 알아가는 운동이 있다.
구기종목은 대부분 승리를 위한 운동이다.
그러나 높이뛰기는 실패를 알아가는 운동이다. 막대기가 떨어지면 경기가 끝난다.
글쓰기는 류전윈에게 있어 실패를 알아가는 운동인 것이다.


 

“만약 어떤 작품을 쓰고 나서 스스로 그게 굉장히 좋다고 생각된다면 그 작가는 그걸로 끝장이다.
작가가 어떤 걸 진심으로 써냈다면 항상 너무 부끄러워져 남에게 보이기 민망해지기 마련이다.
쓰기 전에는 자신이 있어 이 작품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쓰고 나면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또 다른 걸 써 보지만 여전히 아니다.
자기가 표현하려는 게 하늘에 있는 것 같아 하늘에 가서 찾아보지만 아니고, 골짜기도 여전히 아니다.
어렵사리 발견했다 싶은데 자세히 보면 또 아니다.
글쓰기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어렴풋이 알아가는 과정이며, 계속하여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닭털 같은 나날>의 작가 류진운의 인터뷰 중에서..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