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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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09 외국어를 대하는 한 태도 6
  2. 2008.06.05 <고서>, 아청의 작은 소설 번역 (초벌)
문화혁명/80년대 2009. 7. 9. 14:58
외국어는 언제나 스트레스이다.
나의 뭉개지는 발음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이런 것도 모른다고 물어보면 무식하단 소릴 듣지나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게 문법에 맞는 표현일까?
등등.. 목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예전에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독일인가 프랑스에서 현지어를 모르는 장모님이 현지 할머니와 한참 수다를 떠는 걸 보고 신기해서, 어머님 무슨 말씀하셨어요?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대답했다는 게 생각이 난다.(정확한 출처는 찾아보지 않았다..) 한국어로 말하고 독일어로 대답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반대로 한국어로만 대화를 나눠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 국회나 파란기와지붕 아래 있는 사람들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이 통할까? 무슨 외계어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그냥 그들과 오래 지내다보면 말이 통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소통은 수사가 아니라 의지이기 때문일 테다.


아래는 천카이거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는 소설 <아이들의 왕>의 작가 아청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양쯔: 오랫동안 미국에 계셨는데, 영어가 문제가 되지는 않았나요?

아청: 영어가 스트레스였던 적은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저는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잖습니까. 그런 동네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문제가 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습니다. 장족(티벳) 지역에서든 타이족(태족:傣族) 지역에서든 마찬가지죠.
    중고등학교에서 저는 영어를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출신성분이 안 좋으면 영어반, 출신성분이 좋으면 러시아어번에 들어갔습니다. 커리큘럼이야 똑같이 <류샤오치의 모포> 같은 거였죠.
    의사소통은 언제나 문제가 됩니다. 그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그렇지만 신체언어, 눈빛, 직감만으로도 바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아요. 바로 그 분위기 안에 같이 있기 때문이죠. 영국에 가면 정통영어를 하겠지만, 미국에서는 각종 유형의 영어가 사용됩니다. 라틴아메리카식 영어, 흑인식 영어 이탈리아식 영어, 중국식 영어 등등, 언젠가 차를 고치다가 아르메니아식 영어를 들었던 적도 있어요.

양쯔: 영어로 책을 읽는 것은 어떤가요?

아청: 영문서적을 읽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 독서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니까요.

-- 양쯔杨子, <예술 인터뷰(艺术访谈录)> 중에서

비슷한 구절을 아청의 다른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청: ... 제가 가진 특수한 경험은 열 몇 살에 삽대를 떠났는데, 그 지역 말을 거의 못 알아듣거나 전혀 못 알아듣곤 했습니다. 내몽고, 윈난 모두 제대로 알아듣기 힘듭니다. 그래서 미국에 갔을 때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별로 스트레스를 안 받았어요. 십여 년을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못 알아듣는 환경에서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자젠잉: 항상 소수민족들과 함께 있었습니까? 그럼 어떻게 말을 하나요?

 

아청: 간단한 말만 하다가 조금씩 복잡한 말을 배우기 시작했죠. 욕부터 먼저 배우고, 정식 표현도 조금씩 배워갔죠. 그들도 중국어 표준말을 하긴 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중국어를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배우는 게 낫겠더라구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야 얼마 되나요 머. 미국에 가서도 비슷했죠.

 

자젠잉: 당신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었겠군요. 다른 사람에게 그건 중심에서 주변으로 내몰리는 경험이었습니다. 80년대 출국한 대부분이 받았던 느낌이 그랬습니다.


-- 자젠잉查建英, <80년대 중국과의 대화>(八十年代:访谈录) 중에서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5. 08:48

고서(舊書)

아청(阿城)



오경상(吳慶祥)은 열두 살에 도제가 되었다. 배우는 것은 고서점 일이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와 비슷해서 “반년 동안 물건을 못 팔다가, 물건을 팔면 반년을 먹고 산다.” 오경상은 취급하는 게 반년을 먹고 살 “물건”들이니 큰 장사라고 떠벌이곤 했다. 큰 장사가 잘 될 리야 없지만, 그래도 석인첩(石印帖)이나 수산석료(壽山石料; 사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들락거리면서도 장사는 되었다.

 


들락거리다 보니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문인들이 많은 편인데,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가, 반나절을 뒤적이고 반나절을 서성이다가는 가 버린다. 이런 부류는 새끼 문인들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새끼 문인이 언제 대문호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새끼 문인일 때 잘 모셔 두면 대문호가 된 후 서점의 이름값 또한 같이 올라가는 법이다.
대문호는 종종 쪽지를 남기곤 한다. 쪽지에는 찾는 책이 쓰여 있다. 쪽지의 책을 찾으면 전부 다 찾은 게 아니라 한 권이라도 먼저 찾으면 보내 줘야 한다. 정성껏 찾고 있다는 표시라도 내야 되니까.


책을 배달할 때는 항상 다른 책도 끼워 가야 한다. 어떤 책을 끼울 것인가는 문인의 기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외관을 중시하는 문인에게 외관이 잘 장정된 책을 끼워 가면 보통은 구입해서 서가에 진열해 두었다가 친구가 오면 보여주곤 한다.


오경상이 매입자에게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책을 배달하려면 책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배달하는 게 무슨 책인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오경상은 글자 배우는 머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간 지 삼년 만에 책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오경상은 그때 이미 변성기였고 키도 커서 보통은 그가 열다섯에 불과한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책을 아는 두 번째는 아주 어렵다. 판본에 대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온갖 잡다한 학문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분야라서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오경상은 서점에서 책을 사러 온 고객들을 모실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둔 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먼저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 손발은 바쁘게 놀리면서 말이다. 서점은 학교가 아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책을 팔아 줘야 한다.


머리속에 새겨진 것은 조금씩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기회에 단번에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해하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오경상은 간혹 해정(海淀; 북경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책을 배달하기도 했다.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옆으로 잡초만 무성하다. 오경상은 겨울에 해정까지 책을 배달하는 게 가장 겁난다. 역풍이 부는 데다 날도 빨리 저물어 돌아올 때는 모골이 송연하기 때문이다. 오경상은 훗날 대문호 몇 명과 잘 지냈다. 물론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오경상은 훗날 사창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선무문(宣武門) 바깥의 점원치고 사창가를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가고 싶은 법이다. 서점에 책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아니다.


오경상은 매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나으면 또 사창가를 찾았다.
낮에는 책 파는 일을 돕고, 책 파는 학문에 신경 쓰고 배달도 하다가 어두워지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동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단골을 찾는다. 매번 같은 가격으로.


북평(北平)은 1949년에 해방되어 원래 명칭으로 바뀌어 다시 북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0년 초에 오경상은 자살했다.


오경상의 자살에 대해 친하게 지내던 점원들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오경상은 주인도 아니고 고작 고참 점원에 불과하니 성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사창가를 단속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신사회가 시작되어 도처에 새로운 기상이 움 솟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는데, 어찌하여 사내대장부가 쉽사리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점원들이 오경상을 언급할 때면 지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2008년 6월 5일 초벌. <아청 정선집>(북경연산출판사, 2006년), 99-100쪽.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