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최근에야 알게 된 "1933"(정식명칭: 1933老场坊, 1933 creative hub)을 다녀왔다. 위치가 예전 친구들이 놀러와서 하루 묵었던 구룡반점 호텔 바로 옆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면 친구들에게 재미난 구경거리 하나를 추가시킬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근대적 주거양식에 관한 책을 쓴 분도 같이 왔으니, 이 기하학적 내부구조에 아주 재미있어하지 않았을까? 밤에 술이 모자라 이쪽 입구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곧 방향을 틀어 대로변 편의점으로 나가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뒤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이 구룡반점 호텔이다.

도살장, 육류가공공장, 제약회사 등 몇번이나 용도가 바뀐 뒤 2002년부터 그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제약회사(上海长城生化制药厂)가 문을 닫아 2006년까지 버려져 있었지만, 2005년 상하이시에 의해 우수 역사건축으로 지정된 후 재개발되어 2008년부터 개방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이나 전시 위주의 공간으로 임대되는 것 같은데, 아직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 이른바 상하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크리에이트브 센터 중 하나인데. 당분간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와이탄과 둬룬루 문화거리/노신공원의 중간 지점으로 양쪽에서 걸어서 30분 내외란 점을 고려할 때 홍커우 지역 도보여행 코스의 하나로 넣어도 좋을 것 같다. .
왼쪽에는 상하이 공부국(Shanghai Municipal Council)의 약어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 글씨 문양은 지금도1933의 간판 비슷하게 사용된다.
3층으로 올라가는 어두운 계단 끄트머리에서 발견했다.


아르데코 양식의 이 5층 건물은
입구의 네모반듯함이 미로같은 내부의 뒤틀림을 감추고 있다.


원래 "1933"은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上海工部局宰牲场)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와 비슷한 규모의 도살장이 당시 전세계적으로도 3곳에 불과했는데, 다른 두 개는 미국과 영국에 있었다고 한다. 조계 공부국이 영국인에 의해 관리되던 것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이 도살장도 영국인 건축사에 의해 영국식 도살장에 근거하여 지어졌으며, 자재까지 영국에서 수입하였다고 한다. 건축사의 이름은 스테이블포드(C.H. Stableford) 혹은 발푸스(巴尔弗斯)로 소개되는데,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스테이블포드가 당시 상해에 살고 있었다면 발푸스라는 중국식 이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쪽 문헌에서는 발푸스라는 이름의 유래나 영문표기가 병기되지 않아 확인해볼 수가 없었다.

미로처럼 얽힌 저 길은 동물을 위한 길일까, 사람을 위한 길일까?

당시의 식품위생 관념에 근거하여 지어진 이곳은 한때 매일 양 500마리, 돼지 300마리, 소 300마리, 송아지 100마리가 도살되었으며, 130여 톤의 최고급 육류를 생산하여 상해 시민들에게 공급하던 곳이었다. 운하 건너편에 두 개의 굴뚝이 인상적인 건물은 가축 폐기물 처리와 소각에 사용되었다. 이 곳도 지금은 1933의 부속건물로 운영되는 듯하다. 공간분할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주건물을 둘러보는데만도 시간이 꽤 걸려 들어가볼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건너편 건물에도 들어가볼 생각이다.. 1933 바로 옆에는 냉동고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구룡반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운하 좌측의 높은 굴뚝 건물은 도살된 가축 폐기물을 처리하던 곳이었다.



입구

육중한 돌기둥을 통과하면 카운터가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 소지시 신분증을 맡기고 등록을 해야 한다. 촬영의 목적을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로 사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뒤 등록증을 받는다. 여러 명이 가면 한 명만 등록하면 되지만 같이 다녀야 한다. (중간중간 등록증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나 카메라가 없을 경우, 혹은 다른 목적으로 온 경우에는 그냥 입장도 가능한 것 같다.



1층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철골 콘크리트 구조가 사람을 압도한다. 건물 구조만 봤을 때는 상당히 재미 있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도살을 예감한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군데군데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점들로 어수선하며,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게 독특한 의자들을 갖춰 뒀다.



미궁


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복잡하게 얽힌 층계와 주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체구조는 동서남북 네 변을 직사각형 건물이 담장처럼 둘러져 있고, 그 가운데에 24변형의 주건물이 둥그스럼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높이가 제각각인 통로가 얽혀져 있다.

옛 이미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잡지에서 해당 사진만 도려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게 과연 도살장 건물이 맞나? 가축의 도살을 위해 왜 이런 구조가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당시의 근대적 위생관념과 "동물 복리주의"에 근거하여 설계되었다는 말이 쉽게 와닿지는 않는 것이다.


도축 과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http://hi.online.sh.cn/content/2009-04/16/content_2925977.htm

 

1. 가축을 실어온 뒤 하루이틀 정도 방치한다. 긴장한 동물들이 느낄 공포감을 완화시켜 체내 독소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2. 가축들을 비스듬히 난 통로를 통해 2층과 3층으로 보낸다. 지금 보니 통로는 소 한 마리가 지나가기 적당한 넓이이다. 함정식으로 설계된 도축장에 가축이 들어가면 전기철봉으로 기절시켜 도축을 시작한다. (자세한 도축과정은 생략한다. ㅡㅡ;; 통로 한쪽에 액체(?)가 빠져나갈 수 있게 도랑이 설치되어 있다거나, 한쪽 옥상에 늘어선 물탱크를 보면 도축에서 육류가공까지 이곳에서 모두 이뤄지기 용이한 구조였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내부1

입구쪽 내부건물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빛이 곱다. 문을 열고 바깥풍경을 내다볼 수도 있다. 사진으로 담기엔 좋지만, 창문 바깥의 원형격자는 발을 잘못 딛기라도 하면 5층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크니 조심해야 한다. (무심결에 창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내부2


주건물의 상층부는 자연광이 건물 전체를 비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또한 판옵티콘처럼 이곳에서 건물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구조이다. 지금은 전시공간 같은 것으로 활용되는 듯하다.




주변

주위에는 상하이의 전통적인 가정집들이 늘어서 있다. 영국조계의 북쪽에 위치한 이 홍커우에는 중국인들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밀집해 있어 일본 조계라고도 불렸던 지역이다. 석고문, 혹은 이농주택 형식의 상하이의 전통 주거지역을 고층빌딩이 에워싸고 있다. 아마도 신천지(신톈디)처럼 바뀌지 않는 한 이곳도 조만간 사라져 갈 지도 ...


아직은 비어 있는 공간이 많고 어수선하다. 그래서인지 매끈하게 탈바꿈하려해도 어찌할 수 없는 황량함이 살아 있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빨리 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살장의 피냄새와 그로테스크함은 세련된 고급 브랜드와 너무 잘 어울려버릴 테니 말이다.

벌써 여러 차례의 전시회가 열렸으며, 앞으로도 각종 행사와 전시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1933사진전이란 이름의 작은 공간이 있다. 1933을 주제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전시를 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사진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이 어떤 구도로 이 공간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목적으로 이 공간을 찾는다면 "나올 때" 그 작은 전시공간을 살펴보는 게 좋을 듯.


1933의 역사 :

1933년11월: 사징루10호 건축 완성.
1934년1월: 사징루10호 사용 시작.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
上海工部局宰牲场).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점령하여 시립제일 도살장(
市立第一宰牲场)으로 사용.
1946년: 당시 원동 최대 규모의 도살장으로 시 전체 2/3의 육류를 공급.
1951년-1953년: 상하이 시영 도살장(
上海市营宰牲场)
1953년-1958년: 중국식품수출공사 상하이 도살장(
中国食品出口公司上海宰牲厂)
1958-1969년:
국영 상하이 냉동육 가공공장(国营上海冻肉加工厂)

1970년: 상하이 창청 생화학 제약공장(上海长城生化制药厂)
2002년 사용중지 후 2006년까지 방치.
2006년: 우수 역사건축으로 지정된 뒤 1933 크리에이티브 센터로 개조.

건축명칭: (원) 상하이 공부국 도살장.
건축위치: 훙커우 사징루 10호, 29호.(
虹口区沙泾路 10 号,29号)
건축시기: 1933년
건축사 :
스테이블포드(C.H. Stableford ; 巴尔弗斯)
보호등급: 4급 보호건축(잠정)
건축면적: 약 3.17만 평방미터.
건축층수: 5층 / 철골 콘크리트 구조.

오픈시간: 08:30-22:00
전화번호: 021-6501-1933
홈페이지:
http://www.1933-shanghai.com
약도: 지하철4호선 하이룬루에서 내려, 하이룬루-사징루로 걸어가면 된다.





Posted by lunarog
2009년 4월 17일.

전날 군공로 부두에서 공안에게 걸려 약식심문을 받았던 게 너무 분하기도 했고, 정말로 황포강변을 따라 거의 대부분이 통제구역인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상해 임시정부 90주년 기념 입항식이었다. 슬쩍 소식을 듣긴 했지만 해군이 입항식하는데 내가 가볼 짬냥이 되겠나 하고 신청해볼 생각조차 않았던 것. 복단대 유학생카페에 들어가 보니, "통제구역"이라서 미리 명단을 넘겨야 한다, 그래서 미리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신청을 해놓지는 않았지만(새벽에 학부생 학생회장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잖은가!) 마침 날도 맑고 해서 무작정 나가봤다.

뜻밖에 이곳은 민항이 아니라 군항이었다. 지도에서 "양자(扬子)부두"라는 명칭을 찾지 못한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 같다. 와이탄 북부의 홍구 지역, 즉 황포강과 소주하가 만나는 지점의 북쪽이다. 전략적으로 아주 훌륭한 입지이다. 예전에는 그보다 조금 남쪽에 청의 군대가 진주하고 있었다. 훗날 영국군도 전략적으로 그곳을 선택하고 조계로 만든 곳이다. 조계가 역사적 유물이 되면서 그쪽에 군항을 만들수는 없으니까 그보다 조금 위에 만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상황에서는 푸동이 마주보이고 와이탄도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이 실제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할 것 같다.

입구에서 해군들이 나를 막아섰지만, 한국 여성분이 신청하지 않아도 한국사람이면 된다면서 여권만 확인하고 들여보내 주었다. 10시 시작인데, 9시 50분에 들어갔다. 늦지 않았을까?

늦지 않았고 마침 배가 들어오는 중이었나 보다. 선착장 바깥에는 상해한국학교 초등학생들만 잔뜩 있고, 대학생은 하나도 없다. 학부생들 시험기간이었거나, 아니면 호텔에서 하는 임정기념식에나 가지 이런 땡볕에 야외는 싫었을 수도..? 하여튼 한국군함은 들어왔고 안쪽에서 꽹과리 치는 소리도 들리는데,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이름하여 "관계자"만 들여보냈다.


체험학습 나온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반 별로 기다리고 있다. 상해한국학교 5~6학년 학생들이라고 한다. 배가 들어온 뒤 중국해군과 한국해군 사이에 간단한 환영식(혹은 점검) 같은 게 먼저 있었던 것 같다. 기자나 중국해군들이 다 빠져나온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배가 다 들어온 뒤 해군 아저씨들이 기념행사 준비에 여력없다. 저 표지를 보고 들어온 배가 강감찬호인 줄 알았다. 말로만 듣던 강감찬호를 처음 본 것이다(라고 써 놓고 보니, 군함이라곤 본적이 없다. 예전 교관후배 따라 해사 들어갔을 때도 모형만 봤던가 그랬다..)


정말 오랫만에 국민의례라는 것을 해봤다. 물론 나는 사진기를 핑계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모습과 배, 강, 푸동, 와이탄을 찍고 다녔다.
012345

기념촬영 시간.

어쨌든 지금 상해의 상징은 동방명주이다. 동방명주를 배경으로 나오게 잡아봤다. 태극기와 동방명주의 부조화가 색다른 느낌을 줬지만, 썩 마음에 들게 사진이 나오지는 않았다.


기념행사가 끝난 뒤 (아마도 식당이 좁아서 그런 것 같은데) 반 별로 흩어져서 군함 곳곳을 구경했다. 먼저 식당으로 가는 반에 끼지 못해 쫄쫄 굶으면서 꽤 넓고 깊은 군함을 몇 군데 둘러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함정 양쪽에 설치된 망원경인데, 해군들 안 보는 사이에 슬쩍 자리를 잡고 이리저리 맞춰 보니 뜨아, 이건 뭐 육안으로는 점처럼 보이는 와이탄의 관광객이 바로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다. 푸동 쪽으로 돌려보면 강변 야외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기야 망망대해를 항해하려면 당연히 이 정도 배율의 망원경은 있어야겠지.. 아무리 레이더가 발달하더라도 말이다.


원래는 군함만 둘러보고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배가 너무 고파져 우리반 친구들과 함께 해군식당으로 향했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짬밥인가. 식당은 꽤 깨끗하고 스카이까지 달려 있어 한국 테레비도 볼 수 있었다. 메뉴는 비빔밥, 빈 자리가 없어 헤매는데 어떤 꼬마 친구가 가방을 치워주며 앉으라고 했다. 한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들마저 먼저 가 버리고 나니 혼자서 밥을 먹게 되었다. 느리게 먹는 자의 비애이다. (이등병 때는 3분만에 쑤셔넣기도 했다. 내 인생 최악의 시절이었다..)

빈 자리에서 혼자 먹고 있으니 다른 해군 병사들이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어색어색.. 어색함을 깨려고, 후배가 교관으로 있을 때 해사 가보니 교정이 정말 예쁘더라..부터 시작해서 한두마디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 밥을 먹을 때는 허기만 채우려 했는데, 비비다 보니 너무 많아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먹다보니 이게 또 꽤.. 먹을 만한 수준 정도가 아니라, 맛.있.었.다!
그래서 자리를 뜨기 전, 해군장교에게 "육군 짬밥은 정말 먹기가 곤란한데, 역시 해군은 밥도 다르다. 정말 맛있었다!"라는 예의성 멘트를 날려줬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내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짬밥이 다 맛있겠는가?! 중국에서 내가 이렇게 험하게 살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중에 이곳저곳 알아보니 해군 짬밥은 정말 맛있다고 한다. 역쉬 영국귀족의 전통을 이은 군대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 암튼 해군식당에서 먹은 비빔밥은 정말 뜻밖의 감동이었다. *^^*
 
나서기 전 이 군항에서 찍을 수 있는 와이탄의 모습과 푸동의 전경을 몇 컷 찍고 강감찬호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있는데. 갑자기 "밥을 같이 먹은 인연"을 앞세우며 친구들이 뛰어 들어왔다. 미안~ 광각 밖에 없어서 너희들 인물사진을 갑자기 찍을 수가 없었어용~~

이렇게 하여 사흘에 걸친 와이탄 이외의 황포강 보기, 혹은 항구 보기 프로젝트가 끝났다. 사실은 와이탄 지역만 본 것이나 다름 없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각도에서 푸동과 와이탄을 볼 수 있었다는 점 말고는 건진 게 별로 없는 셈이다. 그래도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의 와이탄을 거닐다가 점심때까지 군함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4기가 메모리를 가득 채우고 카메라 밧데리가 방전될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정작 입항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별로 담지 못했다. 행사 자체가 너무 관방 느낌이 나는 딱딱한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쨌든 영사관, 한인상회, 해군관계자 등이 아닌 일반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로 기획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해군 군함에 올랐던 것은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군 병사들은 오랫만에 육지를 밟는 것이어선지 약간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상해 어디를 돌아보고 갔을까?

Posted by lunarog
첫날의 항구 찾기, 혹은 황포강변 보기에 실패한 다음 날(4월 16일) 비슷한 시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보았다. 기필코 강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 비슷한 게 생겼기 때문이다. 설마 강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도 없으려고.

그런데, 정말 없었다.

어제와 달리 북쪽으로 가다가 옆(동쪽)으로 빠지는 큰길(쥔공루; 军工路)로 접어들었다. 역시 강이 가깝다는 건 느낄 수 있었고, 제법 큰 길로 화물차만 다니고 있었다.

01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고 자전거 길도 텅텅 비어 있다. 길에는 먼지만 가득하다.


가도가도 이런 길만 반복되길래 무턱대고 경비가 지키고 있는 입구로 들어가 봤다. 경비에게 들어가서 강을 좀 구경해도 되겠냐니까, 자기들 통로는 안 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되돌아가서 아까 지나쳐온 통로를 그냥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 통로는 잠겨 있고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쪽문이 열려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던 것이다. 흠, 여기가 바로 통로로구나! 라고 생각하며 여유만만 강쪽으로 이동하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래 사진은 색깔의 대비가 예뻐 이리저리 찍어봤는데 건진 건 없고 그냥 전체적인 모양만 기록으로 남겨둔다.

이 화물차 뒤로 강이 보이고 지나다니는 배가 보였다. 와~~ 드디어 한강변 같은, 혹은 와이탄에서 보던 그런 강변의 느낌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런 관광지는 아니면서 한적하게 산책을 할 수 있겠구나. 혹시 일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말이라도 건네 봐야지~~ 라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어이, 거기 뭐해? 어떻게 들어왔어!!? 이쪽으로 와봐!!"

돌아보니 공안이 초소에서 걸어나와 나를 쳐다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강 바로 앞이었다.
왠 공안? 갑자기 살짝 얼어서 어리버리 오라는 건지 빨리 나가라는 건지 헷갈렸다.

이쪽으로 와바. 누구냐?
어, 그게,.. 전 유학생인데요?
여기서 뭐하는데?
그냥 강 볼려구요.
집이 어디냐
근처에요. 산책 나왔어요.
신분증 꺼내봐. 여권 가져왔어? 학생증은?
산책 나왔다니깐요. 신분증 없어요.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것 같던만, 존대어가 따로 없지만 왠지 그쪽은 하대하고 나는 공손하게 높임말을 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더니, 얘가 좀 어리버리한 것 같아보여 그냥 철없는 외국인이 어쩌다 왔나보다 하고 보내줬다. 그런데 입구에서 나가려니 이제 또 경비가 잡는 것이었다.

누구냐?
그게.. (우쒸, 아까 들어올 땐 잡지도 않던만!)
어디 갔다 온 거야?
아까 이쪽으로 들어와서 저쪽에 갔다가 저기 공안들이 보내줬어요. 나 가도 된다고 했거든요..?
신분증 보자. 들어온지 얼마나 된 거야?

똑같은 답변을 또 해야되는 난처한 상황에서 공안들이 차를 몰고 와서 설명하고 그냥 보내줬다.
지가 딴짓한다고 들어오는줄도 몰라놓고 말야. (심문 받는 느낌은 너무 싫어~)


즉, 지도로 표시된 강으로 통하는 길은 해운회사나 세관의 허가를 받은 화물차들만 통과가 가능했다. 곳곳에 위와 같은 금지표시, 행인도, 자전거도 승용차도 들어올 수 없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왜 한강처럼 강을 열어놓고 일반인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지 않는 걸까?
물이 더러워서? 그렇담 와이탄도 막아야지. 와이탄을 흐르는 물이 이쪽으로 빠져나가는 거니까.
가만히 강과 지형의 구조를 생각해 보니, 황해에서 장강을 거쳐 오송구 입구에서 황포강으로 접어들면 곧장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황포강은 화물선과 여객선이 드나들 수 있는 큰 강이고, 와이탄 아래쪽에 여전히 큰 항구가 남아 있다. 즉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밀항과 밀무역이 가능한 것이다. 강변을 따라서는 허가받은 해운업체와 세관이 줄지어 있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겠다.

확인차 인터넷으로 입체지도를 열어보니 역시 예상대로이다. 조깅코스 한강변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각 이미지에서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내가 공안에게 잡혀 심문받은 곳이다.)



기필코 허가받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을 들어가 볼 생각으로 그 다음날에는 임시정부90주년 기념 한국해군 입항식에 참여한다. 3일 연속 강변보기 프로젝트 되겠다. 위치는 소주하와 황포강이 만나는 곳, 위 지도에서 빨간색이 시작하는 와이탄 북쪽의 군항이다.

'FIN-DE-SIECLE SHANGHAI > 弄堂을 거닐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하이 템즈타운  (4) 2009.06.02
외백도교 다리 너머..  (8) 2009.04.18
오송구(항구) 가는 길 (1)  (1) 2009.04.16
Posted by lunarog
와이탄 북쪽으로 외백도(와이바이두; 外白渡)교라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보수를 위해 잠시 철거되었다가 올초에 다시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기사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통행이 시작된 건 열흘 정도라고 하더군요.


작년에는 아래와 같이 사라져 있었습니다.(여기를 보세요: http://lunatic.textcube.com/2)

새로 말끔하게 수리가 되었고 원형 그대로인데, 다만 바닥과 난간은 바뀐 것 같군요.

다리 아래로 배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아침도 시작되었습니다.

다리를 지나 북쪽으로 가면 브로드웨이빌딩(上海大厦, 현재broadway mansions hotel)이 위용을 드러냅니다.

육지에서도 아침은 시작되었군요.

다리를 건너자마자 푸장반점((浦江饭店; Astor House Hotel)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상해최초의 호텔이란 이름을 물려받고 있는 곳입니다(건물은 나중에 개축한 겁니다만). 원래는 여행객을 위한 저렴한 도미토리도 있었고, 와이탄을 바라볼 수 있는 우측은 삐걱거리는 나무바닥을 유지한 비교적 저렴한 객실, 출장온 사람들을 위한 설비가 갖춰진 세련된 객실인 오른쪽 통로의 행정루가 구분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이 호텔이 역사문물로 지정되면서 도미토리도 없어지고(요즘 나오는 여행책자에도 여전히 도미토리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비싸졌습니다. 이름값을 하겠다는 말이겠죠. 아마도 작년 한해 외백도교 공사 때문에 죽을 쑤었을 겁니다. 시끄럽고 통행이 불편했을 테니 누가 찾았겠습니까..

예전에 사진으로 본 모습과는 달랐지만, 상해영화촬영소 세트에도 푸장 호텔 간판이 있더군요.

거기 1층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4년 전 이날 너구리와 결혼을 했으니까요. 우리는 신혼여행지로 상해를 택했고, 이곳에서 묵었습니다. 그래서 궤적이나 쫓아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조식으로 딸려나온 커피가 상당히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맛이 진하고 좋더군요. 아침으로 샌드위치도 같이 시켜 먹었습니다. 혼자 먹어서 먄~~

중후한 할아버지가 주문을 받고 커피를 가져다 주더군요. 은근한 그의 태도에서 연륜이 묻어납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이곳이 주는 느낌을 더듬어 봅니다.
이곳의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 장소는 나에게 어떤 기억들을 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지낸 기간보다 떨어져 사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푸념도 이제 쑤욱 들어갔습니다.
성과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가닥이 잡혀야 할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탐색중이라서 더 미안합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그다지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듬어 가보고 싶었습니다.
핑계야 많잖아요. 마침 드물게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4월 17일을 기념하며 18일에 ..
Posted by lunarog
지도를 보면 내가 사는 곳에서 황포강이 장강과 만나는 오송구가 멀지 않다.
가끔 밤이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고 해서 언제고 한번 다녀와야지 하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집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고 해서 동호회 가입 후 엠티를 갔다가,
족구 몇 판 하고 다리가 맛이 가 버렸다.
다리에 활력이나 더할 겸 자전거를 타고 오송구 쪽으로 향해 본다.
지도로 예상한 지점까지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강이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 가면 모두 막혀 있거나 해운업체로 통하는 길이라 강쪽으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출입을 막고 있었던 것.

혹시나 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 봐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지도로 확대해 보니,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그냥 쭈욱 가서는 강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컨테이너 화물트럭은 물론 갈 수 있겠지만..) 중간에 빠지는 큰 길을 가 보거나, 시작부터 돌아서 가는 길로 다음에 다시 가볼 수밖에 없겠다.

하여튼 이렇게 헤매느라고 편도 30분 길을 두 시간 가까이 허비.

막힌 길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다시 들어가는 아주머니에게 항구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지 물어봤다. 어디어디로 가라는데, 아마도 자기들이야 그쪽으로 다니는지 몰라도 나는 갈 수 없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그래도 기계와 건축자재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강으로 흘러드는 운하 옆까지 드디어 왔다만. 이미 어두워져서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차피 운하를 보려는 게 아니라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보는 게 목적이었는데.. 지게차와 컨테이너만 가득 쌓여 있다.


돌아오는 길은 컴컴하고 먼지가 많이 날리지만, 다리에 과부하를 좀 주겠다는 원래의 목적이야 이룬 셈이다.

광고판을 지나치다 지붕 처마 같은 느낌이 들어 찍어봤는데, 네모에 삼각형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몰라 한참을 요리조리 돌려 봤다만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다.(사실 어떤 게 좋은 건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해야겠지?) 뭐든 제대로 하려면 힘들다.

"眼疾手快"라는 (광고업체의)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눈도 빠르고 손도 빨라야 한다"는 정도의 뜻이다. 그 앞에 쓰여진 말은 "좋은 위치를 잡으려면...(好位置就要...)"이다.
눈도 느리고 손도 느리니, 빛도 잡히지 않고 형체도 포착하기 힘들다.

별 모양은 없지만 튼튼하게 아무 불평 없이 3년을 잘 버텨준 자전거다. 가끔 기름칠도 하고, 상으로 장바구니와 자물쇠도 바꿔 줬다. 3년 타고도 삐거덕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자전거, 중국에서 보기 힘들 거다!!

이것도 운동이라고 밥맛이 좋아졌다. ^^;;

2009. 06.03.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원래 지도에서 봤던 것처럼 길을 타고 올라가면 오송 항구가 나왔다.
황포강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운하를 건너는 고가도로를 자전거로는 못 간다고 착각했던 것.
다시 가 보니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고가도로 옆으로 나 있었다.
오송항구에서는 창사도, 충밍도 등 장강하구의 섬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고, 그냥 황포강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근배도 있었다. 와이탄과 푸동을 오가는 배와 마찬가지였다..

Posted by lunarog
일전에 택시를 타고 급히 가는데 갑자기 봉고차 한대가 끼어들기를 했다.
순간 "초보운전"이라고 붙여둔 건 줄 알고, 초보가 상당히 과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초보운전 써 두는 건 본적이 없는 것 같아 다시 보니,,


차 넘버를 도둑맞았다고 표시해 둔 거였다. "넘버를 도둑맞았어요, 제 넘버는 아래와 같습니다.."

열을 받은 것인지 상당히 과격한 운전으로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댔다만, 우리보다 별로 빨리 가지도 못하고 계속 내 눈앞을 얼쩡거렸다.


예전에 아파트 단지에서도 넘버가 없는 차가 종종 눈에 띄여 물어보니, 밤새 넘버를 훔쳐가는 놈들이 있어 집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다고들 한다. 그까이 넘버 몇푼이나 한다고 그런 걸 훔쳐가나 싶은데..
이게 또 굉장히 값이 나가는 모양이다.

상해 표시가 붙은 넘버의 가격이 경매가 4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 같다. 지금 환율로 하면 거의 8-9백만원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또 뭐 그렇게 장점이 많냐? 그것도 아닌 게, 유일한 장점이라곤 출퇴근 시간(오전07:30-09:30, 오후04:30-06:30)에 고가와 내환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그게 또 넘버만 달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월150원 정도의 세금을 내야 된다.

원래 상해의 고가도로와 터널 등 주요 도로를 시정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 민영기업에 위탁하여 만든 모양이다. (上海新建设发展有限公司라는 합작회사인데, 정부쪽 끈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만들고 있거나 계획중인 도로들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 관리 운영권을 20-25년 정도 해당회사에 넘겨주는 식인데,.
문제는 원래 주요 관문마다 톨게이트 비슷한 걸 설치해서 요금을 징수하다가 교통 흐름이 원활하지 않자 그 대안이랍시고 한 게 일괄징수라는 점이다. 상해 넘버가 있는 모든 차량은 월 150원의 통행세를 일괄적으로 시정부에 내야 한다.(그 중 무려 6/7이 회사로 넘어간다.)

이런 불합리함 때문에 일부는 외지 넘버를 붙이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초기비용도 싸고, 안 걸리면 세금 안 내고 다니면 되기 때문일 거다. 외지 넘버는 상해 진입할 때 30원을 내고 7일을 체류할 수 있다. 7일을 초과하면 원칙적으로 30원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몰래 그냥 타고 다니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고가에만 안 올라가면 되는 것. 요즘은 외지 넘버가 비율상으로는 조금 줄었다고 하는데, 중저가 차량들은 비싼 상해 넘버 달기가 힘들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 "통행세"에 반발하는 여론도 많다.
내가 사는 도시의 공공시설인 도로 같은 걸 만들라고 세금 내는 건데, 왜 별도의 통행세를 받느냐는 것이다. 이런 반발이 힘을 받을 경우 정부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문제는 계약을 그리 해 뒀으니 20년(1997년~) 동안은 빼도박도 못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부터 민영화를 실천하고 있으니 역시 상해는 대단하다.

혹시 지나가다가 상해 넘버가 붙은 차가 방치되어 있으면 슬쩍~??  :-)
Posted by lunarog
서류 뗄 일이 있어 학과 사무실에 갔다가 입구에 붙은 포스트를 봤다.
니엔하우저 할배가 다음주에 강연을 온다고 하고, 또 이것저것 강연 포스트가 붙어 있는 사이
교내 재즈 공연 포스트도 하나 붙어 있었다. 아래처럼 생겼다.

Joey Lu(陆宣辰)라는 신인이 보컬/피아노를 맡은 삼중주 공연이었다.
제3회 "캠퍼스 재즈 시리즈 음악회"라는 문구를 보니 벌써 두번은 했나 본데, 이런 공연이 학교에서 열리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맨날 가극 같은 것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이걸 발견한 시간이 3시 9분,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은행에서 일도 봐야 하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후딱 일을 보고 다시 오는 걸로 방향을 정했다.
허허벌판에 두 개의 탑을 세워놓은 광화루로 들어서는데, 이 공간이 지금까지 삭막했던 이유가 소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메라를 챙기오지 않았다.
사진찍기란 게 묘해서, 사진기를 들고 여행을 다니면 풍경은 머리 속에 남지 않고 사진만 남는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음악이 뭉개져서 음악으로 들리지 않고(그래도 상관없고) 오직 네모난 프레임 속에 소리가 아닌 빛을 담으려고만 한다. 음악이 아니라 연주하는 분위기만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숙련된 사진가들은 어떠한지 내 모르나, 사진이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인 게 분명한 것 같다. 시간을 멈추게 하고, 제한된 틀 속에 한 순간의 빛을 구겨넣는 작업. 강조이지 확장은 아닌 것이다. 경험은 그 틀 바깥으로 무한히 열려 있어서 오히려 무의미한 것이기도 한데, 우리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알고 있는 것 이상을 경험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진 속에 응축시켜야 할 경험도 있고, 사진기를 버려두고 내 느낌 이상을 받아들여야 할 경험도 분명히 있겠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집을 나설 때 사진기를 놓고 온 것이 분해서였겠다.

잠시 쉬어간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이나 듣고 가자!
라고 생각했지만 잠시 후 핸드폰 카메라라도 들고 몇 장 찍기는 했다.. ㅡㅡ;;


학교 건물 1층에서 해서 그런지 앰프 소리도 별로 키우지 않고 차분하게,
마치 한밤중에 혹시 깨어있을 누군가에게 방해 될까봐 최대한
볼륨을 낮추고 듣는 음악인 듯,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듣고 있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는 연주였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듣고 있는 학생들의 관람태도도 한몫 했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었다면 연주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분위기를 제대로 잡았을 건데,
거의 클래식 공연 관람하듯이 경청하기만 하고 있었던 것.
앵콜도 할듯 말듯 머뭇대다 좀 어설프게, 이걸 해줘~ 말어~ 라는 기분이 들게 외치고 말야.. ^^;;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연주자들 또한 대단히 잘해야겠다는 욕심 없이 힘빼고 하는 공연이라 오히려 더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JZclub 같은 데서 귀가 멍할 정도로, 옆사람의 목소리는 안 들리고 숨결만 느껴지게 빵빵하고 강렬한 음악을 조용한 교정에서, 그것도 오후에,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실제로 30년대 상해의 재즈 전통을 이은, 화평반점의 할배 극단 말고(^^), JZclub에서 요일별로 하는 공연은 실력도 상당하고 관객들 분위기도 좋다. 요즘엔 못 가 봤다...)

보컬에 대한 자료를 좀 검색해 보니, 아직 별로 쓸만한 자료는 없고 오늘 학교에서 했던 공연 소식만 올라온다. 거기서 사진 몇 장을 갈무리해 둔다. 사실 베이스가 꽤 멋있게 생겼던데(나는 히스패닉 계열인 줄 알았다.), 이쪽 사진으로는 별로다.


#관련 사진은 복단대bbs, 혹은 http://www.douban.com/event/10569429/

Posted by lunarog
요즘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모임을 하고 있어, 혹시나 하고 상해의 괜찮은 커피숍을 검색해본다.
모임의 구성원이 사는 곳이 제각각인데, 고정된 한곳에서 만나기는 심심하고 해서 까페 순례를 하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작업도 검토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하여, 바이두 해 본 결과,

"올해 최고의 커피숍: 편안한 카페 환경, 맛있는 커피, 음료, 간식을 제공하는 커피숍 뽑기"라는 제목이 검색된다.(귀찮아서 제목에서 뺏다만, 그대로 번역하자면 <"간식"(甜品)이 가장 훌륭한 카페>가 원래 제목이다. 케익, 머핀, 쿠키 같은 걸 통칭하는 말로 간식 말고 뭐 있나? 잘 모르겠네용~  ㅡ_ㅡ;;)

참고삼아 저장해 두고, 하나씩 돌아볼 생각이다.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각각의 제목에 지도를 링크해 두었다.


年度最佳甜品咖啡馆 : 让人舒适的 Café环境,有最美味的咖啡、饮品、甜品提供,进行综合评分。

小洋房咖啡馆,还有免费的无线网络可以使用,下午茶套餐美味实惠。进贤路 222 号,近陕西南路( 6258 1620 )

花园内的咖啡馆,生姜汁是特色,很多饮品里都加有生姜,适合冬日饮用。复兴西路 299 弄 1 号,近华山路( 6433 9437 )

这里能吃到法国乳蛋饼和德国烘焙糕点。周六周日这里更是附近老外家庭早午餐的首选地。武康路 376 号,近湖南路( 6466 0361 )

咖啡和蛋糕都很出彩,去这家店还能尝到“西茜公主最爱的西点”。绍兴路 25 弄 2 号,陕西南路瑞金二路间( 6445 2131 )

 

在相对僻静的安福路,这家餐厅多少沾染了话剧艺术中心的文艺气质,舒适而简单的装修风格令人过目不忘,咖啡、甜品、简餐都可圈可点。安福路 201 号近乌鲁木齐中路( 5404 0998 )

 

그 결과는 지금 현재 다음과 같다.(이미 끝난 모양이다. 20일에 본 결과와 지금의 결과가 동일하다.)

이 다섯 곳 모두 나로선 처음 듣는 이름인데, 투표결과에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편견이겠지만 커피맛이나 까페 분위기에 대한 독특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다수가 자기가 가 봤거나 많이 들어본 곳을 투표했을 가능성이 많다. 나도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상해 젊은이들이 커피맛을 그렇게 따질 것 같지도 않다.. 1위로 꼽힌 곳은 상해의 "신천지" 등에 체인이 있는 곳이다. 나머지도 서양인 취향을 고려한다고 만든 상해식 카페가 아닐까 싶다. 그 중 coffee tree와 citizen cafe를 은근히 기대해 보는데.. 더도 말고 "학림"처럼 커피향과 함께 그 집에 배어있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없을까..?



더하여, 검색하다가 찾은 상해 커피숍에 대한 글(上海咖啡馆的15个瞬间) 중에 인상적인 말을 옮겨 본다.

"상해의 커피숍은 분위기는 있는데 커피가 맛이 없다. 홍콩은 커피가 맛있지만 커피숍 분위기가 별로다. 타이베이는 커피도 맛있고 커피숍 분위기도 뛰어나다."

어쨌든 상해의 커피숍에서는 대부분 죽치고 앉아 이야기하고 사람 구경, 풍경 구경하면서 앞에 놓인 커피가 천천히 식어가도록 내비둔다.

잘 차려입고 와서 데이트하거나 사람들 만나는 공간으로 까페가 활용되지 뭔가 일상적인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겠다. 사실 한국에서도 동네 까페에 갈라쳐도 느슨한 차림으로는 커피 마시며 책보기가 좀 거시기하다.. ^^;;


접어둔 글에 소개된 까페와 바는 그다지. 엄선된 것 같지는 않다. 잡지 같은 데서 좀 전문가 스러운 사람이 추천하는 괜찮은 카페 관련 글은 없는 걸까? ..

암튼, 위에 소개된 곳 중에 내가 그래도 마음에 드는 곳은 한위안 서점이다.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되어 있는 곳인데, 상해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북카페에 속한다. 지하철 역 근처가 아니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 보면 독특하면서도 조용하고 편안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주인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책도 여기서 구할 수 있다. 한위안에 대한 포스팅은 다음 기회에..
Posted by lunarog

2.  와이탄에 새로 설치될 광장

 

 앞에서도 말했듯이 와이탄은 상해의 얼굴과 같은 곳이다. 1945년 영국에 의한 개항 이전에도 물론 상해라는 지명이 존재했지만, 중국 전체에서 그 존재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광주(광저우)가 있고, 복건의 하문(샤먼)이 있고, 바로 옆에 절강의 영파(닝뽀)처럼 바다에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항구가 있는데 상해가 왜 필요했겠는가? 영국이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이곳을 요구했고, 영국의 조계지가 만들어졌고, 그러다가 중국 근대화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고, 그래서 현재의 상하이도 있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곳이 바로 와이탄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30년대의 상하이

 

지금 우리가 와이탄이라고 말하는 곳의 상당부분은 영국조계지의 동쪽 경계인 황포강변을 말한다. 항상 강물이 넘쳐 질퍽거리던 곳에 둑을 만들고(그래서 bund이다.) 그 안쪽에 건물을 세웠다. 와이탄은 항구의 역할과 함께 서양인들이 한적한 저녁에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되었다.(와이탄 산보객(外灘客; bunders)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항구의 역할은 거의 사라졌고(와이탄 남쪽의 "16포"는 여전히 항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예전 닝뽀에서 배를 타고 왔을 때 여기에서 내렸다.), 산책의 공간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다만 거주자의 산책이 아니라 관광객과 호객꾼의 산책만 남아 있다.

 

그래서 관광객과 호객꾼들에게 보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주요 목적은 2010년 엑스포 대비용이다.) 그에 앞서 10차선이던 와이탄 앞 지상도로(중산동일로)를 4차선만 남기고 지하로 옮기는 공사를 진행한다. 넓어진 지상 공간을 활용하여 주요 거점 4곳에 광장을 설치하게 된다.

 

와이탄 광장공사 전체 평면도. 광장이 추가되었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원래의 황포강 연안 산책로도 구간에 따라 상당히 많이 넓혀지며, 비스듬히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비탈길도 확장했다.


 

1. 왼쪽에서부터 보면, 와이바이두 다리를 건너 소주하를 넘어 오면 황포공원(黄浦公园)이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출입구가 따로 있고 입장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서쪽 입구에 있던 대문과 담장을 헐고 그 앞을 터 황포공원과 광장을 연결시키게 된다. 황포공원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와이탄의 기점 역할을 다시 제대로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황포공원(원래 명칭은 "공가화원(public garden)", 혹은 와이탄공원)은 예전의 잘못된 소문이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민족적 수치로 생각하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로 유명하던 곳이었다. 상해의 제국주의적 기운을 누르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민족적 자존심을 좀 세우려는 것인지, 지금은 창처럼 뾰족하게 인민영웅기념탑이 설치되어 있다(소주하와 황포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원의 중심부가 탑이다). 이제는 이소룡의 분노한 발치기로 그 팻말을 뽀개지 않아도(정무문), 개와 중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확장된 남경로 입구의 "천이광장". 인민해방군 창건자의 한 사람인 "천이"는 해방 후 상해 초대 시장을 역임했다.

 

2. 남경로(南京路) 입구에 있던 천이광장(陈毅广场)은 지금보다 규모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 원래 남경로 입구는 예전 영국조계 시절부터 각종 기념행사의 주요한 공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도로를 잘 살펴보면, 고속주행 자동차는 지하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상에는 버스 등 공공교통 수단 및 이 곳을 방문하는 차량 위주로 운행되며, 4차선 좌우에 여유차선을 만들어 임시주차, 버스 정류장 등으로 이용할 계획이다.(위 그림처럼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차선 없는 일반도로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80% 이상이라고 본다. ^^) 또한 건물 쪽 인도의 폭도 지금보다 넓게 확장하여 와이탄의 이름난 건축물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3. 복주로(福州路) 입구에는 중간 정도 높이로 경축광장(节庆广场)이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와이탄의 역사적인 건축물을 적절한 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고, 각종 기념일, 경축 관련 행사(节庆活动)를 진행하는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지금은 이 지점에 임시로 지어진 육교가 설치되어 있다.

 

 

 

4. 연안로(延安路) 입구에는 기상대(信号台)를 중심으로 하는 광장이 들어서 와이탄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준다. 연안 고가도로를 철거한 이유도 이 광장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연안로는 영국조계지의 남쪽 경계로, 원래 "양징방"이라는 운하였다. 중서의 경계였기 때문에 "양징방"이 조계를 대신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상업적인 용도의 피진(pidgin; business의 중국적 발음) 영어를 "양징방 영어"라고 했던 것도 한때 이곳이 중서 교역의 중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양징방이 오물로 더러워지고 보다 넓은 도로가 요구되면서 메워져 현재의 연안동로가 되었다.(상해의 주요도로 중 이렇게 운하였던 곳이 많다.)

 

경계의 역할을 했던 것이 기상대이다. 1884년에 처음 만들어진 후 몇 번의 재공사를 거친 뒤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와이탄이 부두의 역할을 겸했기 때문에 진입하는 선박들에게 적절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는데,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안고가도로를 철거하기 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상대 위쪽 전망대를 이용하려 했는데, 레스토랑 쪽에서 레스토랑 최소 소비액을 요구하거나 전망대 관람료를 따로 받아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고가가 사라진 후 저 위치, 저 높이에서 와이탄의 전망을 제공하는 곳이 기상대 뿐인 셈이라 한몫 제대로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 거다. 그것도 연안고가 철거 직전에나 가능했지, 공사가 진행중인 지금은 죽을 맛일 거다. 도대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지 않은가.(들어갈 수나 있는지, 영업은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저 난리법석인 곳이 위의 조감도처럼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와이탄의 옛 사진을 보면 상당히 정겹기도 하고 소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한쪽에 벤치를 놓고 산책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가 하면, 시대에 따라서는 전차, 자동차와 배, 사람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 어쨋든 그 시절과는 다른 기능이 지금은 요구되는 것이 정상이다. 따라서 너무 미끈하고 인공적인 냄새가 풍김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사에 전체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 지하도로를 건설할 때, 그리고 지하로 자동차가 달릴 때의 진동 같은 게 이 지역의 건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에 대해 조금 더 면밀한 조사가 진행되어 안전하다는 판단 하에 했다면, 지상은 조금 더 여유로운 공간이 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아무리 넓혀 놓아도 이곳은 항상 사람들로 득실거릴 테지만 말이다.

 

 

출처:  http://sh.eastday.com/qtmt/20080528/u1a433541.html

1. 이미지는 모두 위 링크에서 가져왔으며, 기사는 광장에 관련된 몇 부분만 참고하였다.

2. 위 링크에 들어가면 보다 큰 사이즈의 그림을 다운받을 수 있다.

Posted by lunarog

1. 와이탄 지하도로 건설

 

요즘 와이탄을 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온통 먼지투성이에 뭔가 공사를 한창 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와이탄 남쪽 끝에 위치한 연안고가도로가 철거되었다는 점, 그리고 북쪽으로는 와이바이두 다리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와이바이두 다리는 원래도 대부분의 교통량은 우숭루자 다리(吴淞路闸桥)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다리의 흉물스러움이라니. 교통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상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와이바이두 다리를 포함한 쑤저우허-황푸강 접경의 경관을 망쳐 놓고 있었다. 지금 진행중인 공사는 이들을 포함한 와이탄 전체를 지하도로로 잇고, 지상은 와이탄을 가로지르는 10차선의 중산동일로를 4차선으로 축소, 나머지 공간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즉 교통은 지하로 돌리고, 지상은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이다.


"와이탄"이 상하이의 얼굴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상하이에 여행 와서 와이탄을 보고 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공사가 완공되면 우리 위대한 관광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분명.

 

와이탄에 건설중인 자동차 전용 지하도로

 

 위의 그림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이 지하도로는 상하 2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남북 방향, 아래층은 북남 방향의 승용차들이 다니게 된다.(지도의 좌측이 남쪽, 우측이 북쪽이다.) 남쪽의 기점은 중산난루(中山南路) 라오타이핑롱(老太平弄), 그리고 옌안둥루(延安东路) 허난중루(河南中路)의 두 지점에서 시작하고, 북쪽은 우숭루(吴淞路) 하이닝루(海宁路), 둥창지루(东长治路) 뤼순루(旅顺路)에서 시작한다.(두 개의 길 이름을 말한 것은 교차로를 표시한 것이다.) 전체 길이는 약 3720미터, 지하도로의 길이는 약3300에 이른다고 한다. 지하도로 내부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둥먼루(东门路)에서 옌안둥루(延安东路)는 쌍방향 4차선에 긴급정차구역이 있고, 옌안둥루(延安东路)에서 톈퉁루(天潼路)까지는 쌍방향 6차선, 톈퉁루(天潼路)에서 위항루(余杭路)는 쌍방향 4차선, 옌안둥루 지하교차로는 쌍방향4차선, 창즈루(长治路) 지하교차로가 쌍방향 4차선이다. 대체로 각 입구는 4차선으로 시작하되, 차량이 증가하는 와이탄의 지하쪽은 6차선으로 설계했다고 보면 되겠다.

 

 (옌안둥루의 고가가 와이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 만들어질 때만 해도 "아시아 제1만(亚洲第一弯)"이라 불리며 그 "현대화"된 모습에 많은 상해 사람들이 열광했다 한다.(m.i.3에서도 잠깐 등장)

 

지금까지도 와이탄 앞을 지나는 중산둥일로는 많은 교통량을 담당하는 주요도로였는데, 그 대부분의 차량이 와이탄을 방문할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차량이었다.(70-80%를 점한다.) 그것이 와이탄의 역사적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문제는 그 해결방안(?)으로 지하를 뚫는다면 공사 자체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33개의 우수 역사보호건축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인가 라는 점이다. 더하여 시공구간에 와이바이두 다리, 지하철 2호선, 옌안루 터널 등 이미 여러 시설이 교차하고 있어 시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하이는 암반이 없고 모래땅으로 이뤄져 있다(전형적연토지질(软土地质)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질 조건에서 터널 등 지하 공사를 하는 건 두부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공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상하이 와이탄 지역 교통종합개조공정 건설지휘부의 한진화(韩金华)는 역사건축물의 기존 구조 및 침강상황 등에 대해 전면적인 실측이 행해졌고, 위험수치를 체크하여 위험도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푸저우루(福州路)를 경계로 그 남쪽으로는 지면에서 굴착해 들어가지만, 북쪽은 13.95m의 盾构掘进 방식으로 시공한다고 한다. (이 말이 궁금하여 좀 찾아보니, 盾构는 실드머신(Shield Machines)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기계를 활용하여 터널을 굴착하는 방식을 TBM(Tunnel Boring Machine)공법이라고 한다. 이 공법은 무진동, 무발파의 기계화 굴착이므로, 소음, 진동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위 링크를 따라갈 것.)

 

중국에서는 이미 TBM 공법이 꽤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07년 3월 신문에 따르면 베이징 지하철 4호선은 이 공법을 사용하여 1100m를 굴착하여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는 상하이 지하철 11호선 시공 장면이다.

상하이 지하철11호선 盾构掘进

 

암튼 시공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공법을 쓰면 건축물에 대한 피해는 걱정을 좀 줄여도 될 듯하다.

 

이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영국조계에서 길을 건너 와이탄 쪽으로 들어가려면 원래 있던 베이징루와 난징루의 지하도로를 이용하거나, 푸저우루에 임시로 설치된 육교를 이용할 수 있다. (꽤나 흉물스러운 이 육교는 그러나 적당한 높이에서 해관 등 와이탄 북쪽 건물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시야를 가져다 준다.)원래 있던 옌안동루의 육교와 사진에 표시된 진링둥루(金陵東路)의 육교는 철거되었다.

 

푸저우루에 새로 설치된 육교에서 내려다 본 해관(시계탑) 근처 도로 모습


이 지하도로는 엑스포 직전인 2010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http://news.sina.com.cn/c/2008-02-06/021514910065.shtml

http://jfdaily.eastday.com/eastday/jfsy/j/20080229/u1a405871.html


 (이 글의 지하도로 관련 정보는 대부분 위의 중국어 기사에서, 공사가 건물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것은 아래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