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8. 12. 19. 17:08

오마이뉴스를 통해 가끔 정윤수의 BOOK...ing365 라는 블로그의 글을 보곤 한다. 오늘의 주제는 간짜장 앞에 놓고 '동파육'을 논하다 - 소동파 인데, 동파육의 유래에 대해서는 오류가 있어 간단하게 몇 가지 사항만 정리해 둔다. 베이징에서 몇 해 사업을 한 친구의 말을 듣고 재미가 있었더라도 글로 옮길 때는 관련사항을 검색해 보고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면 "황저우"에 "서호"가 있다는 식의 오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조금 더 그럴듯한 동파육의 유래를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송대 원우 4년, 즉 1089년(1080년 황주, 1089년 항주)에 소동파는 후베이(湖北)성의 벽촌 황저우(黃州)에 유배를 살고 있었다. 44살 때의 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황저우에 서호가 있어 중국 역대 시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소동파도 서호를 산보하며 많은 시를 썼는데, 시 ‘비 개인 호수에서 술을 마시다’에서는 ‘경국지색’의 서시에 비유한 적 있다. 서시가 화장을 했을 때나 안 했을 때나 천하 일색 미인이듯이, 서호 또한 ‘은빛 물결 출렁일 때나 운해에 가려 천지가 몽롱할 때나’ 천하의 절경이라고 읊었다.

바로 그 서호를 치수할 일이 생겼다. 소동파는 항주의 백성들과 함께 서호의 방제 작업을 함께 하여 오랜 고생 끝에 그것을 성공시키게 되었다. 힘겨운 공사를 끝낸 백성들이 집집마다 돼지를 잡으며 잔치를 하게 되었고 이때 소동파가 돼지고기에 소흥 술로 적절히 졸인 고기 요리를 선보이며 백성들과 한 때를 더불어 지냈다는 것이다.

소동파는 이 요리를 위하여 시까지 지었다고 한다. “질 좋은 돼지고기는 아주 싼값이지만 잘 사는 사람은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삶지를 못하는구나. 물을 적게 넣고 약한 불로 삶으면, 다 익고 나서 스스로 제 맛이 나누나."


 

물론 동파육의 유래는 다양하다. 요리법 자체는 원래 있었던 것을 소동파가 (자기 요리사에게 시켰거나 자신이 직접) 개량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소동파가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해야만 그 이름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동파는 이름난 요리를 찾아 다녔고,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이용할 수 있는 한국쪽 글은 없으니 참고삼아 바이두 백과의 동파육 유래를 간단하게 정리한다. 동파육이 황주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름난 문인 소식(동파)는 요리 쪽으로도 일가견을 이뤘다. 그가 황주(황저우; 黄州)로 폄적되었을 때(1080), 직접 요리를 하여 친구들과 맛을 보곤 했는데 특히 홍소육(红烧肉)이 최고였다. 그는 요리 비법을 "약한 불로 천천히, 물을 적게 넣고 삶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난다."란 시구로 표현하였다. 황주에서 지은 이 시는 다음과 같다.

돼지고기 먹기《食猪肉》

황주의 돼지고기는 질은 좋으면서 가격이 진흙처럼 싸,
부자는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는 삶을 줄 모른다.
약한 불로 천천히, 물을 적게 넣고 삶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난다.
매일 아침 한 그릇 뚝딱, 내 배가 부르니 그대 뭐라 하지 마오.

黄州好猪肉,价贱如粪土。
富者不肯吃,贫者不解煮。
慢着火,少着水,火候足时它自美。
每日早来打一碗,饱得自家君莫管

이것에 대한 "돼지고기 송"도 있다.

냄비를 깨끗이 씻어, 물을 적게 넣고, 화염이 일지 않을 정도의 약한 불로 천천히 익히되, 익기 전에 급하게 뚜껑을 열지 마라.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제맛이 날 것이다. 황주의 돼지고기는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진흙처럼 싸다. 부자들은 먹으려고 하지를 않는데 가난한 사람은 삶을 줄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한두 그릇 뚝딱 먹는다. 내 배가 부르니 누가 뭐래도 상관 없지.
净洗锅,少著水,柴头罨烟焰不起。待它自熟莫催它,火候足时它自美。黄州好猪肉,价贱如泥土。贵人不肯吃,贫人不解煮。早晨起来打两碗,饱得自家君莫管。(《猪肉颂》)

 

그런데 황저우 시기의 이 요리는 그냥 홍소육이지 "동파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소동파가 폄적되어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서주(쉬저우; 徐州), 황주, 항주(항저우; 杭州) 세 곳 모두에서 동파육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는데, 서주의 경우 회증육(回赠肉)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가 서주지주(徐州知州)로 재직할 때 홍수용 제방과 성곽의 보수를 하자 백성들이 감사하는 마음에 돼지를 가져다 바쳤는데, 동파가 거절하지 않고 모조리 받은 후 홍소육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 주었다고 한다. 백성들이 먹어보니 돼지비계가 많아도 느끼하지 않고 향기와 맛이 뛰어나 즐거워했다. 즉, 지금의 동파육과 거의 비슷했지만 이 시기의 이름은 "선물로 되돌려준 고기", "답례용 고기"라는 뜻의 "회증육"이었다.

 

지금은 황주 쪽에서야 동파육이란 이름을 찾아오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동파육이 유명해지고 지금까지 중국 전역에 퍼지게 된 것은 항주와의 관련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단 하나의 유래만 말한다면 동파가 항주의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 있었던 이야기만 하면 된다.

(왼쪽: 동파육은 보통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겨 나온다. 오른쪽: 동파육 모양의 수석)

 

동파가 항주에 부임했을 때 서호는 그 옛날 이름난 아름다운 호수가 아니라 옛 흔적만 남은 진흙 시궁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동파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호수 정비 사업을 한다. 이 때 호수의 진흙으로 만든 제방이 아직도 서호십경의 하나로 꼽히는 소제(苏堤)이다. 당시 백성들은 서호가 풍광도 좋아지고 넉넉한 저수량으로 풍년을 이루게 되자 소동파의 서호 정비사업을 칭송하였는데, 마침 동파가 홍소육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설날에 너나 할 것 없이 돼지고기를 선물로 보내게 된다. 어차피 혼자서 먹기에 곤란한 양이었던지라 소동파는 그 고기를 서호 정비사업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요리법을 집안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네모나게 썰어서 약한 불로 익히고 술과 함께 백성들에게 줄 것을 지시한다. 그런데 집안 사람들이 "술과 함께 라"(连酒一起)는 말을 "술과 함께 라"(连酒一起)고 듣고는 술과 고기를 함께 넣고 조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요리의 맛과 향이 더할 나위 없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동파의 이름을 딴 "동파육"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역사와 민간의 이야기가 혼합된 이것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지금도 항주의 서호변에 있는 이름난 식당 "루외루"(楼外楼菜馆)의 동파육을 가장 정통으로 친다.

 

(루외루 식당의 "동파육", 아래는 마찬가지로 루외루의 대표요리 "거지닭". 아, 다시 먹고 시포..)

#이미지 출처는 바이두(http://image.bai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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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8. 12. 13. 02:41
네 멋대로 찍어라네 멋대로 찍어라 - 6점
조선희 글.사진/황금가지

(경고: 이 글은 사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책에 대해 "내 멋대로 쓴" 글입니다.)

 

일이 있어 잠깐 집에 다녀오다 김포공항 3층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울적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가벼운 느낌과 사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뿐이었다면 이 책은 기대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다. 왠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와 버린,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아무나 특별하게 찍지는 못하는 게 사진이라는 걸 알기에, 멋대로 찍더라도 대부분 멋대로 공개하지는 못한다. 나 또한 내가 찍은 사진을 쉽게 노출시키기를 꺼려한다. 아직 그 사진에는 내 시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갈 것도 없이 노출이니 구도니 하는 가장 기본적인(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조차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초보일 뿐이니까.

 

아무리 초보일 뿐이라도, 자랑할 만한 자기만의 시각이 없더라도, 누구나 다른 시각을 가지게 마련이니 자신있게 마음대로 찍고 그 사진을 사랑할 것을 이 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손쉬운 충고가 아닐까? 사진은 생각보다 어려운 수련을 거쳐야 되는 높은 단계의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매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나 셔터를 누를 수 있지만 누구나 조선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가둘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 피사체에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그것은 무협지 식으로 말하면, 하루이틀의 수련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십년을 면벽수련한 내공절정의 고수도 이제 갓 무예계에 입문한 기재에게 깨지기도 한다. 시즈쿠와 잇세, 모짜르트와 아마데우스? 예는 차고도 넘친다. 기재도 아니고 사진기만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이 위안인 것은 분명하나, 위안만으로 자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어딘가에서 본 듯 친숙하지만 곰곰히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는 있으되, 두고두고 곱씹을 문장은 별로 없다. 즉 저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장인일지 몰라도 사진에 대한 자기사유의 측면에서는 그냥 자신감 넘치는 초보에 불과하다. 물론 이것을 꼭 평가절하의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 그 책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을 뿐이다. 한 마디는 건졌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절반을, 그 다음날 저녁에 나머지 절반과 눈에 띄는 사진들을 다시 봤다.

나에게 이 책의 가치는 거의 잊고 지냈던 조르바를 되살려 냈다는 것에 있다.

 

아마도 "사소한 것에서 발견하는 특별함"일 것으로 생각되는 챕터를 읽다가 문득 조르바를 떠올렸다. 여행할 때는 그렇게 신기하게 보이던 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직접 생활하면서 좀 더 자세히 알기 전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 익숙함은 양면의 칼인데, 일주일을 여행와서 받아들이듯이 매일의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나의 머리는 터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일상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것으로 처리하며, 단단한 그것에 발을 딛고 서서야 그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현상과 새로운 사건에 주의력을 집중하고 그 의미를 캐내곤 한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이상할 수 있는 일들이 나에겐 전혀 어색하지가 않게 되어 버렸다.(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제 적응했네!"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따라서 그 사건들, 그 풍경들, 그 피사체들은 나에게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일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조르바의 능력은 이런 것이다(라고 기억된다..ㅡㅡ;;)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이는 태양과 길가에 흩어진 돌맹이들, 이름모를 풀잎의 이슬까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그는 받아들인다. 그는 항상 생명으로 충만해 있다. 그건 마치 잠이 들면 죽었다가 매일 아침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그는 항상 아이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연연해 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순전히 지금 이 순간, 한 점으로 소멸되는 현재에 살고 있다. 그것은 카잔차키스의 사유와 인위적인 수련으로 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도가에서 수련을 통해 이루려는 경지를 그는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를 동경하는 한편 겁이 난다. 안 그래도 읽는 족족 머리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매일매일 내 머리가 리셋팅된다면? 그건 절망이다. ^^;; 우리는 (이미 나의 것인) 익숙함을 버리고 그것에 오체투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동경할 뿐이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과 상식에서 새로운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사진기를 마구 갖다 대다 보면 자기도 몰랐던 새로운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건 내가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진기가 바라본 것이다.

 

아끼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20세기 그믐년에 중국으로 일 떠나는 친구에게 줬다. 나에게 그는 특히 생김새 면에서 조르바였다. 그의 삶이 얼마나 조르바다운지는 모른다. 비교적.이라고 해 두자.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남은 조르바? ^^;; 나는 헌책방에서 새로 샀으나 그 후로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그를 대하기가 겁도 나고.머.그런 거다.

조선희의 <네 멋대로 찍어라>는 서가의 한켠에 두는 것보다 읽을 만한 이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상을 잘못 골랐다.

 

상해에 처음으로 와서 이제 막 생활을 시작한 처조카에게 핸드폰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꼬맹이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유학생 카페 벼룩시장에서 비교적 적절한, 애들도 좋아할 만한 한국어가 되는 기종을 골라 연락을 취하고 만나서 협상을 시작했다. 내 협상카드는 이 책을 선물하고 가격을 '많이' 깍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가져온 이는 자기 물건이 아니라서 많이 깎을 수 없고, 사진(책)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이 떠난 책을 다시 가져오기도 그렇고 해서, 안겨 주고 50원만 깎았다.

핸드폰은 비교적 깨끗했으나 뒤늦게 충전기(아답터 딸린 충전기 말이다)가 없는 것을 발견,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으나 무응답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기다리다, 열흘이 지난 오늘 다시 연락을 취해 보니 전화번호를 죽여 놓았다. 이래저래 인연이 없었던 책이었나 본데. 책이 조금 많이 아깝다. 그 주인에게서도 사랑받지는 못할 것 같다.

카페에 아이디와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쪽을 줄까도 잠깐 생각해 봤지만, 카페가 전임 운영진의 광고비 착복 문제로 어수선하기도 하거니와 충전기 정도로 그럴 것도 없겠다. 충전기야 아무데서나 하나 사면 그만이지만(15원 하더라!), 책까지 선물한 내 정성을 생각해서 그의 미래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비겁함은 다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비겁했던 경험을 곰씹고 직시하지 못하면 그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계속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회피해야 할 것이다. 나의 저주이다. 좀 약하나?

 

 

http://lunatic.textcube.com2008-12-12T17:41:34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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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12. 1. 05:07
개혁개방 30년 이래 중국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해외전문가 15인이 선정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수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중국의 현대화 건설에 이바지한 바, 그들의 업적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잡지<국제인재교류>에서 발의한 것으로, 총 29인의 후보자가 거론되었고 이 중 "공헌력"과 "영향력"을 기준으로 15인이 투표로 선정된 것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전문가가 숫적 우위에 있으며 최근의 사스, 지진, 올림픽과 관련된 인물이 많다. 특이하게도 일본 전문가 3인이 선정되었다. (한국인은 중국하키 국가대표 김창백 감독이 후보에 올랐다.)

..
선정 결과에 지나치게 신경쓸 필요는 없으나, 거론된 후보자와 선정된 전문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http://world.people.com.cn/GB/41214/8245037.html
http://www.gg-px.net/ndetail.aspx?id=11030
http://news.sina.com.cn/c/2008-11-30/105714807752s.shtml

(중국어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표기)


  1.与中国人民携手战胜非典的健康卫士——贝汉卫; Henk Bekedam

중국인민과 손잡고 사스를 물리친 건강 지킴이.



  2.20世纪最为杰出的华裔建筑大师——贝聿铭;Ieoh Ming Pei; 베이위밍

20세기 가장 걸출한 중국계 건축가. “미국 역사상 가장 우수한 건축가”란 칭호로 불리며,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Pritzker) 상을 수상하였다.



  3.站在时代风口潮头的“洋厂长”——威尔纳·格里希Werner Gerich (1919-2003)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초청된 서양 공장장으로, 그가 근무했던 1984년-86년의 시기 동안 중국의 낙후된 공장관리 시스템을 일신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4.香港新一代商界领袖和慈善企业家——霍震寰



  5.心系祖国科技事业的科学家——李政道

조국의 과학기술 사업에 힘쓴 과학가(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정다오.



  6.中央电视台首位“洋主播”——艾德文·马厄(Edwin Charles Maher)

CCTV 최초의 서양 뉴스앵커 : 에드윈 마허



  7.关注中国经济发展的“欧元之父”——罗伯特·蒙代尔Robert A. Mundell

2003년 사스에도 불구, 뉴욕의 본사를 베이징으로 옮겨 중국에 대한 믿음 보여줌. 미국의 인민폐 절상요구에서도 중국의 입장에서 절상반대. 금융인재 양성 위해 40여개 대학의 명예교수 맡으며 활발한 강연활동.



  8.“一村一品运动”发起人——平松守彦Morihiko Hiramatsu

일촌일품운동 발기인.



  9.1美元年薪的清华大学客座教授——约翰·桑顿John Thornton

연봉 1달러의 칭화대학 객원교수. 1120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10.藏区盲童的“光明使者”——苏珊·萨布莉亚·坦芭肯Susan Sabriya Tenberken



  11.抗震救灾现场的“白求恩”——莫瑞斯·托帕兹Moris Topaz

사천대지진 현장의 "닥터 노먼 베쑨" : 모리스 토파즈.



  12.北京奥运功勋人物——海因·维尔布鲁根Hain Verbruggen



  13.新中国第一个回国访问的华裔知名学者——杨振宁

양전닝(중국/미국 물리학자; 楊振寧, Yang Chenning, 양진녕)은 리정다오와 공동으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받은 물리학자. 얼마 전 54세 연하의 제자와 결혼함(82세 때 28세의 제자 웡판과 결혼).



  14.来自日本的“治沙愚公”——远山正瑛TOYAMA SEIEI(已故)

일본에서 온 "사막을 치유하는 우공" : 도오야마 세이헤이(작고)

인간의 작은손, 거대한 사막을 밀어내다

중국에 푸른 기적 일으킨 일본 노학자


志愿者举行远山正瑛纪念活动(一)


  15.情系中国水稻事业的日本专家——原正市HARA SHOICH

중국에 일본식 한랭지 재배기술을 도입.



"일본식 비닐 온실 육묘의 도입으로 수도(水稻)의 생산량이 10%늘었다."(http://agre.krei.re.kr/file/pdfsource/WRD-00027.hwp)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10. 26. 06:55
얼마 전에 상해에서 개최된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World Congress of Food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우유의 하나인 "이리"가 수상했다.

이미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 뿐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터라, 정부와 관련업계로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던 듯하다. 이번 멜라민 파동이 전 중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단순히 브랜드만 보고 멜라민이 들어있는 우유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 낙농업자가 다르고, 관리방식이 다르고, 그 해결방식도 다른 것 같다.(멜라민 여부도 지역별 메이커를 봐야 한다. 북경만 중국은 아니니까.) "싼루"를 비롯한 대표적인 멜라민 우유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우유를 안 먹을 수도 없고 싸잡아 비난하기도 말보다는 쉽지 않다. 상해는 몇 년 전부터 엄격한 관리를 해 안전하다는 정부쪽 성명을 그냥 믿기로 했다. 일단은 생우유만, 어제부터.. ㅡㅡ;;

암튼 이리 우유의 식품올림픽 수상 소식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글이 재미난다.
그 중 최고는 물론 "SF"라는 답글이다.
아래에 기사와 답글을 내 맘대로 취사선택하여 한국어로 옮겨 본다.



http://club.business.sohu.com/main.php?c=133&b=enjoy&a=1079201


최근 전세계 유업 성장률 50% 초과는 중국의 공헌이다. 이 숫자는 또한 중국유업계에서 신제품 생산에 있어 끊임없이 노력한 것을 보여준다. 10월 20일 이리(伊利) "소화 잘 되는 우유"(营养舒化奶;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저유당 우유의 일종)가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에서 "과학기술 창신상"을 획득했다. 이 상의 수상은 중국 식품업이 이미 양적, 질적인 면에서 세계 일류 수준에 진입했음을 반영한다.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는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행사로 "식품계의 올림픽"이라 불린다.(한국은 2001년 11회 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에는 오대주의 백여 개 국가에서 수만 종의 제품이 선을 보였다. 이리 유업의 "소화 잘 되는 우유"는 고품질, 첨단 기술 제품임을 인정받아 최종적으로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기업은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탁월한 품질만이 세계의 신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제품을 찾는 사람들 또한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식품과학기술학회 이사장인 판베이레이(潘蓓蕾)의 이러한 평가는 이번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뤄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제14회 세계식품과학기술대회는 중국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 식품 관련 회의였으며, 이후 세계 식품업계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한 중국인 업자는 기자의 인터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대회의 중국 개최는 중국 식품업계가 국제적인 명품 브랜드와 직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리 제품의 수상은 세계로 하여금 중국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인정하게 했을 뿐 아니라, 중국 식품관련 기업들이 더욱 열심히 더 좋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도록 해 준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줄곧 브랜드보다는 품질을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번 수상도 그렇고, 올림픽 협찬의 성공도 잘 보여주는 것처럼 이리의 품질 우선 정책은 정확하고 실천가능한 것입니다." 이리 그룹의 회장 장젠추(张剑秋)는 이렇게 표명하였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유원료의 관리와 기술적 창신은 이리가 존중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발전 방향입니다. 우유원료 합작사의 건설을 통해 우리는 중국유업계를 위해 좋은 발전모델을 제공했습니다. "민주적 관리, 자주적인 경영, 이익의 공유, 위험의 공동부담"이란 방식으로 축산업자와 기업 간의 소통 통로를 열었으며, 낙농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원료 관리의 모든 세부사항이 기업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에 이리는 매년 계속적인 투자를 통해 낙농의 현대화된 설비를 업그레이드하여 가장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우유를 공급할 것을 확신합니다."



답글 1 :   sf

답글 2 : 드디어 소가 왜 하늘로 날아갔는지 알게 됐군. 오늘 또다시 그놈의 품질이 화성인의 품질을 뛰어넘엇다고 허풍을 치는 꼴이라니..
(멜라민 사태 때 여론무마용으로 유인우주선 발사한 것 풍자)

답글 3 : 이리는 쓰레기야.
글 하나로 네티즌들을 바보로 만들려고? 자기들 품질관리나 더 엄격하게 하셔!
"유제품업계 제일"의 모자를 쓰고 "멜라민 함량이 가장 적은 우유"라는 연극은 하지 말고.
친구들, 씻고 잠이나 자라고들~~

답글 4 : 자기 애한테는 멜라민 안 먹이나?

답글 5 :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들! 여러분, 저놈들 우유는 절대 사지 맙시다. 우리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주자구요. 멜라민 집어넣을 땐 대체 뭔 생각을 했던 걸까?

답글 6 : 가증스러운 것들! 멜라민을 못 넣게 되었으니 이제 뭘 또 넣으려고?

답글 7 : 잘 들어! 중국 우유에 멜라민만 안 넣으면 그게 바로 "창신"이야!

답글 8 : 노벨 풍자상 후보로 추천하자구..


답글 9 : 批准~~钦此~~~~~~~~~~~~~~~~
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8. 9. 26. 23:27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싫어한다.
응시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응시를 알아차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그다지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경우, 즉 아이를 찍거나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모습을 찍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하나의 풍경이 나의 응시를 통해 하나의 틀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그렇게 영원히 평범함에 머물 것이다.

좋은 사진을 보면 오르가즘을 느낀다.
좋은 소설이나 굉장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영화는 몰아쳐오는 쾌감을 최대한 같은 호흡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은 쾌감이 몰려올 때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어쩌다 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
너무 한 문장에만 머물러 있다가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식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여성적인 오르가즘이고 소설은 남성적인 오르가즘이다. 내 편견이다.

사진은 지속되는 오르가즘이다.
순간을 영원히 고정, 정지시키는 죽음의 이미지가 사진에는 강한데, 여기서 방점은 영원에 찍히게 된다.
오르가즘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뭐인지 모를 자극이 눈을 때리는 순간 내 몸은 이미지에 고정되고
천천히 세부를 훓으며 그 쾌감을 음미한다.
그 순간 절정은 이미 지나가 있다.
오르가즘 이후 그것이 못내 아쉬워 애무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속이 영원에 가닿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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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9. 1. 00:01
올림픽이 끝났지만 중국은 여전히 올림픽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글쎄 TV를 틀었다 하면 아직도 주요 경기장면이 나오곤 하니 말이다.
한국도 올림픽, 월드컵 등이 끝나면 많이 우려먹긴 한 것 같은데,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 장정일이 에코를 빌어 한 마디 했다.
스포츠 일반을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올림픽에 대한 심기를 슬쩍 내비친 것인데.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려고 사창가에 가는 사람"이라는 일갈은 스포츠 관람객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일 듯하다.

나 자신, 미친 스포츠는 없지만 또 보다보면 재미가 있든 없든 보게 되는 것이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 말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사실 그 관음증이다.
그게 뭐가 나쁠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몰래 보는 게 뭐 어때서?
내가 떳떳하게 책을 읽기 위해, 영화를 보기 위해,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써야 하고, 영화를 찍어야 하고, 웹사이트를 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소설을 쓰지 않고도, 영화를 제작하거나 비평에 관여하지 않아도
몰래 나 혼자만 발견한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기뻐한다.
그런 거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자기가 제작해 쓰는 고대로 돌아갈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그것이 '유리'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비판도 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보면서 어떤 경기의 승패에 따라 국력이 신장되었다가 축소되었다가 하는 느낌을 받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 따위는 문제가 있겠다.
중국이 올림픽 전부터 지금까지 전국민(?)이 그것의 성공 여부에 목을 매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좀 오바다.
어떤 중국애가 이렇게 (농담삼아) 물었다고 한다.
"(한국 니네들) 중국이 올림픽 성공해서 좀 서운해?"
역시 오바다.

올림픽과 ‘스포츠 관음증’

필 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가진 영국의 문화비평가가 그 글들을 모아 에코의 반(反)스포츠론을 완벽히 다듬어낸 일종의 ‘오마주 북’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 부를지 잘 안다.

마 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관음증 환자다. 에코의 말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놀이를 잃어버린 관객들이 생생한 체험을 보상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하며, 피를 보고야 마는 훌리건의 난동은 경기 시간 동안 자기 신체를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청년들의 슬픈 마스터베이션이다. 비약하면, 세계가 놀란 한국인의 응원문화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만큼 자기 향락이 무엇인지 모르며, 실제 스포츠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증거다.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과 육체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라면, 관음화된 현대의 스포츠는 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제거된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잡담가로 타락시킨다. 그들은 장관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축구 감독에 대해 논의하며,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선수의 기록을 복기한다. 또 새로운 정책이나 법령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어제 벌어진 승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면서 마치 중요한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화된 스포츠 경기란 사익에 충실한 극히 개인적인 활동임이 분명한데도, 스포츠 잡담가들은 그걸 국력과 연관지으며 공적(公的)인 화제인 양 기만한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올림픽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사족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면, 사변적이고 나약한 ‘먹물’이라는 기왕의 이미지를 단번에 씻겠다는 듯, 문인들은 참 오지게도 도착적인 스포츠를 예찬하고 스타를 ‘빨아’준다. 유명세를 부풀릴 좋은 기회를 어쩌자고 놓치랴?

장정일 소설가

by luna | 2008/09/01 00:01 | 조리돌림 |


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8. 3. 17. 21:45

루쉰의 쇠로 된 방의 비유를 생각해 본다. 사방이 쇠로 막힌 방에 사람들이 자고 있다. 그들은 서서히 질식되어 죽을 것이다. 그들이 깬다고 하더라도 두꺼운 쇠를 뚫고 밖으로 나올 방법은 없다. 아무런 고통 없이 서서히 죽어가게 둘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겠지만 그들을 깨워 마지막 순간까지 그 방을 나올 모든 수를 써보게 할 것인가.


최근 티베트 사태를 잠깐 생각해보다 이 비유를 떠올렸다.


티베트를 어떤 순수하고 신성한 땅, 중국의 식민치하에 억압받는 소수민족의 땅으로 신비화하거나 그런 신비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시위와 중국의 강경대응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은 그걸 재확인시켜 주는 한 사례이다. 중국도 초반에 확 잡아서 올림픽 때 문제가 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도 들 테고 그러면서도 외국 눈치도 봐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도 중국에 한 마디씩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카드의 하나로 생각하는 듯하고.

박노자는 예전에 티베트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티베트가 신성화되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고, 중국 견제용으로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드의 하나이라는 전제에, 더하여 달라이 라마를 수장으로 한 티벳 불교 승려가 신분적으로 최상층을 구성하면서 나머지 인민들을 착취했던 역사를 언급했다. 그 수가 얼마인가, 혹은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해방된 사람도 없지는 않은 셈이다. 문제는 그러한 해방에 수반되는 다른 언어, 다른 가치, 다른 이데올로기의 강요가 빈곤이나 익숙한 억압보다 더 억압적일 수도 있다는 점일 테다.
국 가, 민족을 초월한 신분적 해방이 더욱 행복할까, 익숙한 내 언어, 내 풍속 안에 살 수 있는 민족적 해방이 더욱 행복할까? 이분법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만 놓고 보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물론 이 이분법이 티베트 문제를 아우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냥 뒀으면 정치+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계급/신분에 만족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쇠로 된 방을 다시 떠올려 본 것이다. 쇠로 된 방에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면 그들은 쉽게 질식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당연한 듯이 죽어갈 테니까. 루쉰의 반성은 옳았다. 그 반성이 자기를 포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쉰은 바깥의 초월적 위치에서 방 안의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망설이던 순간에 어떤 희망을 발견했고, 쇠로 된 것으로 보였던 방은 너무 쉽게 벽이 허물어졌다.

그런데, 똑같은 비유를 이런 입장에서 해 보자.
지금 너는 쇠로 된 방에 갖혀 있어. 내가 그 쇠로 된 벽을 허물어 줄께.
이런 방식은 너무나 쉽게 폭력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고 쇠로 된 방 안의 현재에 만족하면서 살라고, 외부의 너희는 간섭하지 말라는 방식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당연하게도.

중국이 만든 벽에도, 달라이 라마가 만든 벽에도 갖히지 않는 방식을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찾아낼 수 있을까..


내 별로 깊지 않은 고민이 바닥을 드러낸다.

Posted by lunarog
示衆/flaneur, p.m. 4:30 2008. 1. 9. 03:40

아침 8시 30분에 시험을 보는데 봐야할 분량의 1/3도 못 봤다.
낮에는 중국친구들이 드디어 영어시험이 끝났다고, 그네들 말로 "해방되었다"면서 종강파티를 한데서
같이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낮술도 한잔..
지들은 해방되었지만 나는 그 다음날 시험이 있는데 말이다.
사실 어학시험은 . 글쎄.
학교에서 요구하는 필수과정이라서 듣는 어학과정은 영양가도 없고, 하기도 싫은 법.
영양가는 없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것도 시험인지라 쓰기가 힘들 거라는 것,
그것이 내 실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핑계까지.
뒤섞여 머리에서 맴돌며 시험공부에 빠져드는 걸 피하게 해준다.
나에겐 해야할, 하고 싶은, 더 중요한, 할 만한 일이 많단 말야.. ㅡㅡ;;

로얄제리를 조금씩 챙겨먹고 있다.
중국에서는 비싸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호주산 머시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벌이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관리를 어떻게 잘 한다고 해도 오십보백보일 것이다(라면서 위안을 삼는다).

태어날 때 일벌과 여왕벌은 아무런 구별이 없어.
먹는 것에 따라 누구는 일벌이 되어 일주일 만에 죽고, 누구는 여왕벌이 되어 몇년을 살며 엄청난 생산력을 보여주지.
애야.
먹는 게 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어떤 책을 읽느냐가 사람을 달라지게 한단다.
여왕처럼은, 더 부유하게와 반드시 연결되는 건 아닐거야.
그래도 더 고귀하게 살 수는 있겠지.
꿀같은 책도 있고, 로얄제리같은 책도 있단다.
먹을 땐 달콤하지만, 물론 이것도 몸에 좋은 거긴 하지만, 일주일도 못 가 사라져 버릴 책도 있고,
먹을 때는 시큼하고, 떨뜨럼하고, 톡 쏘고, 역겨워서 못 삼킬 수도 있지만
너를 여왕처럼 고귀하게 만들어줄 책도 있지요.

로얄제리를 먹으며,
아이가 커서 말을 이해할 때가 되면 이런 말을 들려줘야지 하는 몽상을 해본다.
그러나, 사실은,
그건 나에게 필요한 말일 터다.
그게 자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아니라, 자신에게 되묻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꿀같은 책을 읽고 있나, 로얄제리같은 책을 읽고 있나.
이미 굳어진 내 신체와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로얄제리와 같은 책을 상대할 자신은 있는가.
시큼떨떠름한 세상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외면하고 달콤한 몇 가지 말귀에 내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아닌가.

며칠째 계속 묻고 있지만,, 글쎄다.
내가 이 말을 자신있게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쓰디쓴 어학책을 팽겨치고 달콤한 텍스트들에 빠지고 싶은 생각 뿐.
좀 자 둬야 그나마라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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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示衆/조리돌림 2007. 11. 27. 02:28

늦은 저녁을 먹는데, 뉴스에 온통 무인 달탐사 우주선 창어1호가 보내온 달 사진 이야기 뿐이다.
이제와서 다 아는 달 표면 찍어서 뭣에 쓸 건지 모르겠지만, 속셈은 대충 알겠다.
미국하고 맞짱 뜨고,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되고 싶은 거겠지..

“창어 1호의 성공은 힘차게 일어서는 중국의 국력은 물론 높아지고 있는 세계 속의 중국 지위를 상징한다”(원자오바오 총리)



달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로 드높아진 중국의 위상을 자축하고 있을 때,
다른 채널에서는 "남편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하여, 산모와 태아가 죽은 사건"에 대한 심층 보도가 있었다.
지난 21일(수)에 벌어진 모양인데, 오늘 알게 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대충 이렇다.

며칠째 기침을 하던 마누라(李丽云; 22세)를 데리고 감기 치료를 하러 병원을 찾은 초씨(肖志军; 34세)는
갑자기 의사들이 산부인과로 입원시키고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수술동의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자
"우리는 감기치료를 위해 왔다, 감기만 낫게 해주면 마누라가 애는 알아서 놓을 거다"는 말만 반복하며 서명을 거부했다.

昨天,肖志军将责任推至医院:“我就是不签字,他们也可以做手术啊!” 记者 周民 摄

("우린 애 낳으러 온 게 아니라 감기 치료하러 온 거라니깐요. 아직 애 놓을 때도 안 됐는데..")


임신 41주인 산모 이씨는 사실 중증폐렴으로 심폐기능이 이미 상당히 약해져 있어
산모와 태아 모두 극히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에 즉시 제왕절개술을 해야 했다.
그때 즉시 시술했다면 산모와 태아 모두를 살릴 확률이 60~70%는 되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그때 발생했다.
초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명을 거부한 것이다.
산모는 이미 수술실로 옮길 수도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병실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서둘러 제반준비를 갖췄다.
의사, 간호사, 옆병실 환자, 보호자, 심지어 병원원장까지 나와 번갈아가며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사이 산모가 위기를 맞아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리긴 했지만, 태아는 이미 심장이 멎어버린 상태였다.

다시 한번 위기가 닥쳐 심폐소생술을 한 후 의사들이,
"지금 수술을 하면 어른은 살릴 수 있다"고 또 다시 권해봤지만 되돌아오는 건,
"그녀는 감기 때문에 왔다, 감기만 나으면 애는 마누라가 알아서 놓을 거다"라는 말 뿐이었다.

세 번의 수술기회를 모두 놓친 후, 병원에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산모 리리윈(李丽云)씨는 사망했다.
이날(11월21일) 3시에서 7시 2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는 갑자기 "당신들 왜 내가 서명하지 못하게 막은 거야?"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일단 뉴스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환자나 보호자(가족)의 서명 없이 의사가 수술을 할 수는 없는가? 즉 병원의 책임이냐, 남편 초씨의 책임이냐?
2. 남편 초씨가 정말 합법적인 남편이 맞는가?
3. 남편 초씨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닌가?
4.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비합리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닌가?

이 중 2번 3번은 병원 측에서 경찰을 불러 사건 당일 확인한 바 있다.
합법적인 남편이 맞으며(그러나 신부측 부모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결혼 후 찾아갔지만 쫓겨났다)
간단한 정신측정을 통해 보건대 정신이상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이 때문에 더욱 서명 없는 수술을 병원 측에서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용 문제의 경우, 남편 초씨가 어떤 태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모두들 심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건, 같은 병원에 있던 환자, 보호자 등이 모금을 해서
서명만 하면 1만 위안(125만원 정도; 제왕절개에 드는 비용은 5천 위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거부한 점이다.
병원 관계자들도 돈 걱정 하지 말고 수술을 하자고 권유했는데도 말이다.


(병원 영안실에서 아내에게 절하는 초씨. 뱃속의 아기가 아직 살아 있다며 시체를 냉동시키지 못하게 했으며,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 달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에 병원의 책임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호자의 서명 없이 의사가 수술할 수 없다"라는 조항이 있기 위해 필요한 어떤 전제가
아직 중국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모든 수술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모든 걸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면 시술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때문에 수술의 필요성과 생존확률을 보호자에게 알리고, 환자와 보호자가 "선택"을 하게 하는 게 옳다.
그런데 보호자에게 그런 상황에 어떤 선택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 없는 자신의 환경에 대한 걱정은 차지하고라도..)

병원이란 곳은 가만 두면 낫는 병을 괜히 건드려 돈만 잡아먹는 곳이란 생각을 촌사람 초씨는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정말 아내의 "감기" 때문에 온 건데,
의사들이 추운 겨울에 아내의 옷을 벗겨 추워서 감기가 더 심해지게 만들고, 쓸데없이 배를 눌러대 죽게 만든 것이다.
촌에서는 의사가 서명이고 뭐고 없이 치료를 해주니,
서명 안 하고 버티면 병원에서 알아서 치료해주고 그에 따른 책임은 자기가 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환자가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동네 병원에서 급히 대병원으로 옮기고, 대병원에서도 즉각적인 긴급조치들을 취한 정황증거만으로도 알 수 있을)
다른 모든 걸 팽개치고 해야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가난, 무지, 판단능력의 부재가 가져다 준 비극이라고 정리하기엔 ...
그냥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 뿐이다.

사실 이 소식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은,
사건 자체에서 먼저 받았고,
그 사건을 전하는 TV 프로그램의 애매한 태도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담당의사는 가끔 실실 웃으면서 사건당시를 회고했고,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도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담당 아나운서의 말투도 상당히 거슬렸다.
남편 초씨는 법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이 사건을 통해 중국 사회가 반성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그냥 "이해할 수 없음"이란 멘트로 마무리를 했다.
죽은 사람도, 남편도, 의사들도, 그걸 바라보는 관중들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인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 있는 가난과 무지를 없애지 않고
외면적인 번영만 추구하는 세계 최고의 중국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달 표면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사진찍는 그 비용으로
지금 자기 땅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찰하는 데 써야하지 않을까?


이게 먼 나라 이웃 나라 가난한 나라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다른 욕망, 다른 상황, 다른 고려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판단능력이 사라져
가장 중요한 뭔가를 놓치곤 하지 않는가.


 

덧붙이며: 최근 멜라민 사태 때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예정보다 앞당겨 유인위성을 쏘아 멜라민 진화라는 의도를 대부분 알아차렸다. 때문에 위성 타고 우주 가기 전에 "많은 아이들이 우주(하늘)로 떠났다"며 그 돈으로 먹거리 걱정없게 하라는 비판여론이 드높았다. 1년 전에는 우연히 대비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 1년 후에는 의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위대한 중국이 좋을까, 행복한 중국이 좋을까? 미국과 제대로 맞장뜨려면 사람들 하나하나가 좀 더 어둠에서 깨어나야(계몽)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올림픽보다는 멜라민 사태가 중국인을 더 깨어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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