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6. 00:29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책꽃이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가 에필로그 부분을 확인해 본다.

홍콩판은 국역본과 결말이 조금 다르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판본인데 그건 잡지판을 그대로 배포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역본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이 새로운 내용이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화청>2005년호를 찾아 복사하고 콩푸쯔 헌책방에 홍콩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주문 넣었다. (그러고 보니 금서로 지정되어 전량 회수되었다던 잡지<화청>의 해당호는 버젓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소설의 홍콩판, 대만판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5금" 조치는 어쩌면 중국 내부에서는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작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외국에서 더 흥분해서 이용하는 홍보문구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쪽에서도 일단 원칙적으로 금지는 하되, 이미 파급력이 별로 없는 소설 나부랭이가 그러덩가 말덩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위도 검열되고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던 몇 군데만 찾아보고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어제 번역 정리하느라 다시 꺼낸 김에 좀 살펴보다가 국역본 결말과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국역본에는 역자가 어느 판본을 참고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짐작하기에 대만판을 참고했는데 그게 다른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저자의 요청이었을 수도 있으며, 국내 출간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출판사와 상의하에 삭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자였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판단은 어차피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잡지판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부분이 대부분 실리지 않았고(잡지 게재만으로 문제가 되었다. 즉, 사상적인 검열 때문에 부분삭제하였던 건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참고삼아 홍콩판의 결말을 추가로 번역해 둔다..


 

...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 제일 위쪽에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종이에 써 줘. 돈이 필요하거들랑 액수와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고.


눈 꽃이 휘날리는 그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 들었다. 두께가 반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조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국역본은 여기서 끝난다. 어찌보면 군더더기 없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홍콩판 결말은 바로 이어서 몇 문단이 계속된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흘 후, 이미 중년을 넘어선 류롄이 사령관과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양저우에 있는 친정에 좀 다녀올께.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가서 형제자매들이나 좀 보고 올까 해. 그러나 그렇게 떠난 뒤 류롄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사령관은 양저우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류롄이 양저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류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눈꽃처럼 군구(軍區) 대원(大院)의 1호 사택에서 사라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계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향기만이 그녀가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 놓고 있을 뿐.

2004년 8월 17일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http://lunatic.textcube.com2009-03-26T10:21:410.31010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8. 6. 5. 08:48

고서(舊書)

아청(阿城)



오경상(吳慶祥)은 열두 살에 도제가 되었다. 배우는 것은 고서점 일이었다.


고서점은 골동품 가게와 비슷해서 “반년 동안 물건을 못 팔다가, 물건을 팔면 반년을 먹고 산다.” 오경상은 취급하는 게 반년을 먹고 살 “물건”들이니 큰 장사라고 떠벌이곤 했다. 큰 장사가 잘 될 리야 없지만, 그래도 석인첩(石印帖)이나 수산석료(壽山石料; 사진) 같은 걸 원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라 들락거리면서도 장사는 되었다.

 


들락거리다 보니 온갖 사람이 다 있다. 문인들이 많은 편인데,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어 봤다가, 반나절을 뒤적이고 반나절을 서성이다가는 가 버린다. 이런 부류는 새끼 문인들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새끼 문인이 언제 대문호가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새끼 문인일 때 잘 모셔 두면 대문호가 된 후 서점의 이름값 또한 같이 올라가는 법이다.
대문호는 종종 쪽지를 남기곤 한다. 쪽지에는 찾는 책이 쓰여 있다. 쪽지의 책을 찾으면 전부 다 찾은 게 아니라 한 권이라도 먼저 찾으면 보내 줘야 한다. 정성껏 찾고 있다는 표시라도 내야 되니까.


책을 배달할 때는 항상 다른 책도 끼워 가야 한다. 어떤 책을 끼울 것인가는 문인의 기호를 잘 헤아려야 한다. 외관을 중시하는 문인에게 외관이 잘 장정된 책을 끼워 가면 보통은 구입해서 서가에 진열해 두었다가 친구가 오면 보여주곤 한다.


오경상이 매입자에게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책을 배달하려면 책을 알아야 한다. 우선 글자를 알아야 한다. 배달하는 게 무슨 책인지는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오경상은 글자 배우는 머리가 있었다. 서점에 들어간 지 삼년 만에 책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책을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오경상은 그때 이미 변성기였고 키도 커서 보통은 그가 열다섯에 불과한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책을 아는 두 번째는 아주 어렵다. 판본에 대한 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온갖 잡다한 학문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분야라서 실마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오경상은 서점에서 책을 사러 온 고객들을 모실 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둔 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먼저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 손발은 바쁘게 놀리면서 말이다. 서점은 학교가 아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니 주인에게 책을 팔아 줘야 한다.


머리속에 새겨진 것은 조금씩 이해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오래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기회에 단번에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해하게 된 게 많아질수록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오경상은 간혹 해정(海淀; 북경대 지역)에 있는 대학에 책을 배달하기도 했다. 가게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길옆으로 잡초만 무성하다. 오경상은 겨울에 해정까지 책을 배달하는 게 가장 겁난다. 역풍이 부는 데다 날도 빨리 저물어 돌아올 때는 모골이 송연하기 때문이다. 오경상은 훗날 대문호 몇 명과 잘 지냈다. 물론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오경상은 훗날 사창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선무문(宣武門) 바깥의 점원치고 사창가를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은 후에는 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가고 싶은 법이다. 서점에 책이 많긴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아니다.


오경상은 매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나으면 또 사창가를 찾았다.
낮에는 책 파는 일을 돕고, 책 파는 학문에 신경 쓰고 배달도 하다가 어두워지면 문을 닫았다. 문을 닫으면 동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단골을 찾는다. 매번 같은 가격으로.


북평(北平)은 1949년에 해방되어 원래 명칭으로 바뀌어 다시 북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0년 초에 오경상은 자살했다.


오경상의 자살에 대해 친하게 지내던 점원들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오경상은 주인도 아니고 고작 고참 점원에 불과하니 성분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서울 게 뭐 있었겠는가?
사창가를 단속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신사회가 시작되어 도처에 새로운 기상이 움 솟고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는데, 어찌하여 사내대장부가 쉽사리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점원들이 오경상을 언급할 때면 지금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2008년 6월 5일 초벌. <아청 정선집>(북경연산출판사, 2006년), 99-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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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55

리얼(李洱)은 1966년 허난성(河南) 지위안(济源)에서 태어났다. 《홍루몽》, 《삼국연의》와 같은 고전소설을 즐기는 할아버지와 중학교 어문교사였으며 역시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리얼이 작가가 아닌 화가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술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미술교육은 은연중에 그에게 형상적인 사유능력을 키워줬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소설 창작을 목표로 했으며 이 때문에 중문과를 지원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중문과에 입학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소설 읽기를 시작한다.

80년대의 화둥사대는 문학 창작과 비평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하고 있었으며, 오직 글쓰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문학청년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근문학(尋根文學)이나 선봉문학(先鋒文學)과 같은 최신의 문학 조류들이 캠퍼스로 쏟아져 들어왔고, 새로운 작품들이 발표되기도 전에 대학에서는 미리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에서 습작을 시작했다. 특히 선봉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처녀작 「복음(福音)」(1987)을 졸업 직전에 발표했다.

많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으며 저자 자신도 비교적 만족스러워 하는 초기작은 당대 지식인의 생활을 묘사한 중편 「지도교수가 죽었다」(1993)이다.

 

대학원생인 “나”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신중한 어투로 지도교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존경의 말투가 극진할수록 지도교수의 행색은 더욱 초라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되는 사건, 장면, 생활의 디테일은 지도교수의 어쩔 수 없는 생존환경과 정신적인 붕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수확(收获)》은 편집자가 출판을 위해 수정을 가한 흔적이 그대로 담긴 초고를 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두 글자가 달라짐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험은 이후 그의 창작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987년 화둥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향인 허난성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수년 간 역임했다. 허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허난성의 창작계와는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선봉소설이나 모더니즘 계열 소설가의 암호와도 같았던 중역본 《보르헤스 소설선》을 끼고서 거리를 다녀 봐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시 허난 창작계의 분위기였다. 리얼이 보기에 허난성 작가의 소설은 건국 이전의 고루한 양식으로의 회귀에 지나지 않았다.

리얼이 땅과 향촌의 이야기에 기반한 다른 허난 작가들과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를 키운 것은 상하이, 선봉문학,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였다. 이후 허난작가들이 가진 토착성과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 자신이 향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시각을 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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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42

“대가문학상(大家文学奖)” 수상작인 중편 「망각」(1999)은 《대가(大家)》잡지의 “요철 텍스트(凸凹文本)” 특집에 문체실험으로 발표되어, 소설문체의 혁명, 순수한 문체실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서사책략과 문체기교 방면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새로움은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문체나 서사구조의 매력이 아니라 형식 배후에 감춰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문화, 생명, 정신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당대의 문화, 인문현상, 당대의 인문 지식인이 가진 진실의 허구와 그것이 가져다 준 첨예함이 그것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지도교수 허우허우이(侯后毅; 해를 쏘아 떨어뜨린 신화 속 ‘후예(后羿)’를 연상시키는 이름)는 제자 펑멍(馮蒙;후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의 제자 봉몽(逢蒙)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박사학위 논문에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인 상아(嫦娥)를 역사학적으로 고증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아울러 상아와 자신의 특수한 관계, 즉 달에 사는 상아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 러나 펑멍은 상아와 어떠한 교류를 할 수 없으며 그 속에 담긴 논리를 유추하거나 논증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모인 뤄미(羅宓)와의 미묘하고 복잡한 애정관계에 몰두한다. 신화와 현실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서로를 억누르고 있고, 역사와 신화에 대한 상상 속에서 현존재의 신비와 황당함, 패러독스가 드러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상의 담론에서 서술되며, 소설 속 현실 또한 신화에 의해 진행된다. 허우허우이가 현실과 신화를 혼동하면서 신화와 현실의 논리질서는 완전히 전복되고 해체된다.

저 명한 역사학자인 그가 전생을 찾아 신화와 전설의 논증을 필생의 임무로 삼게 되면서 엄숙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로서의 그는 망각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담론” 내부의 공간이며, 이 담론은 이미 실재적인 역사와 현실의 증거를 상실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신화는 수정이 가능하고, 역사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현실 또한 존재의 거짓말로 가득 찬 세계이다. 허우허우이가 자기 존재의 기원을 망각하는 순간, 어떠한 권위 있는 담론, 어떠한 개인적인 담론도 허황하고 아무 근거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국 상상적 존재와 담론은 똑같이 일종의 생활방식, 담론적 생활방식이 된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에서 현실과 허구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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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8. 1. 15. 21:29

농촌의 정치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작 《석류나무에 열린 앵두(石榴树上结樱桃)》(2004)는 《노래가락》과는 또 다른 변화가 시도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중국고전소설의 표현수법을 현대소설의 서사로 재활용하였으며, 지식인이 아닌 농촌을 주요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촌장 선거를 둘러싸고 권력의 유혹앞에서 시험받는 인간의 자존심과 양심을 묘사하여, 권력이 순수한 농촌을 어떻게 침식해 들어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의 선거나 과장, 부장으로의 진급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누가 촌장이 되는가에 따라 농민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농촌은 온갖 모순이 모인 곳이다. 농민은 생존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마을에서 한자리라도 차지해야 하고 조상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사내아이의 출생에 목을 매는 것 또한 합리적인 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들의 합리성은 국가정책과 모순된다.”

 

소재가 향촌으로 전환되었으되 여전히 지식인의 입장에서 향토 중국을 이해하려는시도임이 잘 드러난다. 그에게는 이 소설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인 소설이다. 지식인 자아의 개성적 표현에서 나아가 타자인 농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식인의 책임임과 동시에 더욱 순수한 지식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리얼은 다른 향촌소설과는 달리 농민들의 고난 자체보다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요소, 현대적 문화가 변화시킨 농민들의 담론생활에 더욱 주목한다. 당대의 농민들은 돼지우리에 서서 핸드폰으로 촌장 선거를 토론한다거나 타이완 해협과 같은 정치현안, 지속가능한 발전, 미국 대통령 선거, 전지구화, 페미니즘 따위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의 담론생활과 생존환경 사이의 “간극”이 그가 초점을 맞추고있는 부분이다.


“향토 중국에 관한 소설을 쓰는 건 계속 꿈꿔오던 것이었다. 다른 향촌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기이한 사건을 서술하거나, 일상적 사건을 배경으로 현재의 모든 난제를 묘사하고 싶지 않았으며, 현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향토 중국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작가들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곤란”함에 더 주목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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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4:03

(전면수거된 <화성>2005년 봄호 중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의 표지)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쾌활>로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제3회 라오서 문학상(老舍文学奖)을 수상하였던 그 해에, 옌롄커는 중편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爲人民服務)」(2005)를 문예지 《화성(花城)》 2005년 봄호에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발표 즉시 마오쩌둥 석고상을 부수고 <마오쩌둥 선집>을 찢는 등의 장면이 문제가 되어 당국으로부터 금서 처분과 함께 전량 회수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러나 해외로의 번역 저작권 판매는 금지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활발히 소개되었으며, 중국에서도 포털사이트 등에서 쉽게 원문을 구해 읽을 수 있다. (물론 전량회수되었다는 문예지 <화성>은 대학도서관에 버젓이 꽂혀 있다. 연구용으로는 허용되는 것인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 인민해방군 사단장의 젊은 후처와 그 집에 배속된 말단 사병의 불륜을 그린다. 작가는 쾌락의 끝을 향해 치닫는 남녀의 사랑 행위와 문혁의 집단적 광기를 대비시킴으로써 혁명 서사에 억눌렸던 인간의 감성을 부활시킨다.

 

대만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왕더웨이는 이 소설이 등장한 것은 “혁명으로 호소하는 사회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의했다.


어긋난 유토피아


《아주주간(亞洲週刊)》 세계 10대 중국어도서에 선정된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2006)은 중국 최초의 에이즈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실존하는 에이즈 마을의 환경개선을 위해 쓴 작품이며,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 기부금을 출연하기로 협의되었지만, 출판사의 계약위반으로 법정투쟁까지 벌였고 결국 기부금 전체를 저자가 부담했다.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착종된 서사 스타일로 한 소년의 기억을 통해 중국내륙의 한 에이즈 마을을 조명하고 있다. 이 오랜 마을의 농민들의 빈궁함, 우매함, 낙후, 탐욕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피를 팔아 가난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마을 전체의 에이즈 병동화라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 작품에서 오히려 죽음은 향유하기조차 힘든 사치이다. 의지할 곳 없는 고난과 절망이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존재이며, 죽음은 그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연속일 뿐이었다.

 

옌 롄커는 다루고 있는 소재가 어떤 것이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생활을 주목하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현장성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딩씨 마을의 꿈>은 지금 여기의 세계에 옌롄커가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설이다.

 

“의 심할 것 없이 이 소설은 내가 허난성 출신이란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마땅히 사회와 인류에게 가장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이즈가 허난성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고난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의 변화과정, 내적세계, 그리고 그들의 생존방식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전 소설과 비교해 보자면, <일광유년>이나 <쾌활>은 상상에서 현실로 진입한 작품이다. 상상은 현실과 역사의 교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에서 역사로 진입한 작품이다. 현실은 상상으로 나아가는 교량이며,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근거이다.”


그는 세 부류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마음이 약한 사람이 읽으면 너무 괴로워질 것이다. 둘째 최신문화의 유행을 쫓는 사람들, 예를 들어 장이머우의 <영웅>이나 천카이거의 <무극> 같은 블록버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소설은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셋째,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목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읽을 필요가 없다. <딩씨 마을의 꿈>이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지불해야 할 사랑이다.”



p.s. 최근 옌롄커는 새로운 장편소설 하나를 탈고했다고 한다. 아직 정식발표되지 않아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편 <연월일> 이후의 옌롄커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곧 한두편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특히 위 두편은 곧!!?)

....
웅진의 중국당대문학 걸작선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8년 4월 30일 출간되었다.
띠지의 홍보문구는 다음과 같다.

"<색,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이다!"

표지는 상당히 매혹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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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4:02

쾌활한 리얼리즘


< 쾌활(受活)>(2004)은 옌롄커 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묘한 상상력, 은유, 아이러니를 버물려 놓은 중국식 마술적 사실주의의 완성이며, “중국문학의 사유를 바꾼 개척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 부가된 작가의 주석에 따르면 제목 “수활(受活)”은 “향락, 향유, 쾌활, 즐거움” 등을 뜻하는 북방 방언이다. 파러우 산맥(耙耬山脈)에 위치한 쾌활촌민의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바로 이 “쾌활(受活)”이다. 작품은 중국내륙의 외딴 곳에 있는 쾌활촌(受活庄) 이라는 허구의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대대로 이 마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맹인, 벙어리, 절름발이 등 197명의 장애인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상인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는 그런 곳이다. 깊은 산맥 속에 위치해 있어 중국근현대사의 그 수많은 전쟁과 운동도 이 마을의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방해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의 붉은 깃발이 중국 대륙 전체를 뒤덮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은 마오즈(茅枝) 할멈과 류잉췌(柳鹰雀) 현장이라는 두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홍군(紅軍)이었던 마오즈는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낙오되어 쾌활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혁명의 물결이 쾌활촌에 미쳤을 때 홍군이었던 마오즈의 피는 다시 끓어오른다. 토호 타도, 농지 분배, 대약진, 인민공사, 문혁과 같은 일련의 혁명개조운동에 촌민들을 이끌고 앞장선다. 그러나 전국을 뒤덮던 3년간의 자연재해를 거치면서 쾌활촌의 자급자족 경제가 상급부처의 징세와 이재민의 약탈로 파괴되는 것을 목도한 후 차츰 혁명의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그 후 인민공사에서 “퇴사(退社)”하여 원래의 “방임, 자유, 자급, 자족”의 생활로 회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또 다른 중심인물 류잉췌(柳鹰雀) 현장은 현의 경제상황을 진작시키기 위해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운다. 소련의 해체소식을 접한 후 레닌의 유체를 사와 레닌기념당을 만들어 입장료로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레닌의 유체를 구입할 막대한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마오즈와 협상을 생각해 낸다. 쾌활촌이 “퇴사”하여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게 해 주는 대신 장애인들로 구성된 기예단을 만들어 전국순회공연을 하면서 레닌 구입비용을 모은다는 것이다. 쾌활촌민은 육체적 수난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것을 위해 인격적인 수난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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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3:58

혁명과 사랑


<물처럼 단단하게(坚硬如水)>(2001)는 성적 욕망이 가장 억압되었던 “문혁” 시기를 배경으로 혁명의 물길 속에서 사랑에 탐닉하였던 조반(造反) 남녀를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미친 듯이 조반하고, 우파의 집안을 뒤집어 놓았으며 폭력을 행사하고 비판을 주도하는 혁명을 단행하는 한편, 무덤이든 땅굴이든 인적 드문 곳을 찾아들어가 미친 듯이 사랑의 탐욕에 빠져들기도 한다. 특 히 주목할 만한 설정은 “혁명 가곡”의 반주가 울리는 순간 그들의 욕망 또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대의 혁명적 열정을 사랑했다. 샤홍메이(夏紅梅)에게 가오아이쥔(高愛軍)은 혁명의 훌륭한 교과서였고, 가오아이쥔은 혁명의 이름으로 그녀에게 맹세한다.

 

“홍메이, 당신이 믿던 안 믿던, 당신을 위해, 나는 죽을 각오로 혁명을 완수하겠소!”

 

이 소설의 내부구조는 지상과 지하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지상”은 혁명, 정치, 권력, 광명, 미래 등 거대한 붉은 글자들로 가득 찬 양(陽)의 세계이다. 이 부분은 문혁 시기 문학에 자주 사용되던 혁명과 사랑의 서사와 대응하도록 의도적으로 구성한 패러디로도 볼 수 있다. 반면 “지하”는 묘지, 터널, 정욕 등 음(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혁명가곡에 의해 촉발되는 충동적인 욕망만이 이 두 세계를 연결시켜 준다.

 

한 편 이 두 세계는 작품 내부에서 두 가지 상이한 담론체계를 구성한다. 독립적이면서 서로 뒤엉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두 세계와 마찬가지로 정치 담론과 개인 담론은 서로 병치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면서 독특한 담론적 풍경을 보여준다.

 

문화대혁명 초기 마오쩌둥에 의해 행해졌던 중요한 언설들이 가오아이쥔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지만 그건 어딘지 비틀어져 있다.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개인 담론에 의한 정치 담론의 전복을 통해 더욱 반어적으로 다가온다. 가오아이쥔과 샤홍메이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혁명의 언어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거기서 정치 담론과 개인 담론은 완전히 뒤섞인 상태로 나타난다. 옌 롄커는 정치권력의 담론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지상 세계의 견고한 자태를 묘사하는 동시에 지하 세계의 개인 담론을 통해 정치 담론을 해체하고 그것의 허위와 황당함을 까발리며, 그 부드러운 본질을 보여준다. 유희적인 문체 속에서 정치담론과 개인담론, 견고함과 부드러움 사이의 묘한 전환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러나 상흔문학(傷痕文學)이나 반사문학(反思文學)이 정치담론의 개인담론에 대한 폭력을 강조하면서 둘 사이의 이원대립적 관계를 구성한 것과는 달리, 옌롄커는 그것이 양자 간의 묵계에 의해 서로 교환되는 것임에 더욱 주목하였다. 정치담론이 원초적 충동에 근거한 개인담론의 체계 속으로 들어오면서 둘은 서로 의존하기도, 충돌하기도 하며, 양자는 배척관계인 동시에 공모관계인 것이 드러난다.

 성 과 사랑에 관한 서사는 문혁 시기까지 다루기 애매한 주제였다. 그나마 사랑은 있었지만 성과 욕망에 관한 묘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성이 버려지고 그 자리를 동지끼리의 정치적 신념과 혁명 신앙이 대신한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기의 소설에 대한 다음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 자들은 혁명으로 인해 사랑을 얻고, 여자들은 사랑 때문에 혁명을 추종하는 줄거리가 사랑을 묘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리하여 원래 생동적이고 미묘하여 규범 짓기 어려운 사랑의 체험은 협애한 혁명적 주제로 수렴되었고, 색정적이고 애욕적인 부분은 말끔히 씻겨나가 버렸다.”

 

“성적 욕망은 사회제도에 대한 잠재적 전복이다. 정욕이 싹트는 것은 이질적인 사회구성의 시작이다.”

 

성적 생산과 권력 생산을 미묘하게 중첩시켜 상징질서를 재조합하고 프롤레타리아 정치구조를 재검토했다는 면에서 <물처럼 단단하게>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은 현재 2008년 출간을 예정으로 번역 중이라고 한다. 내 실력으로는 내용만 대충 파악할 정도다. 매끄러운 한글로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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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3:56

중국에 대한 가혹한 은유와 냉엄한 반어


형이하학적인 현실과 “고난”을 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색의 도구로 삼아 자신의 스타일로 체화한 것은 <일광유년(日光流年)>(1998)부터이다. 허난성의 파러우 산맥(耙耬山脈)의 한 궁벽한 곳에 위치한 삼성촌(三姓村)의 주민들은 후도절증(喉堵絶證)이라는 특이질환으로 인해 대대로 40세를 넘기지 못한다. 39세의 촌장 사마람(司马蓝)은 식수가 발병원이라고 판단하고는 백리 바깥에 있는 강물을 끌어오려 한다. 이에 그의 연인 남사십(蓝四十)을 필두로 여자들은 몸을 팔고, 남자들은 화상환자들에게 자신의 건강한 피부를 팔아 모은 자금으로 도랑을 파지만, 흘러들어온 건 시커멓게 오염된 폐수였다. 질병 없이 40세 이상을 살겠다는 촌민들은 꿈은 부서졌다. 도랑을 파기 위해 감수했던 모든 고난은 물거품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에 뛰어들고 목매어 자살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사마람은 40세 생일에 병 없이 죽는다. 그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깊은 절망으로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깥세상의 폐수를 마주하는 순간 유일하게 남아 있던 희망마저 사라진 것이다.


신중국의 농촌을 그린 이 소설은 옌롄커가 3년간 세 차례에 걸쳐 수정을 가하며 완성한 노작이다. “나는 이 작품을 살아 있는 인류, 세계와 토지에게 바친다. 이 작품은 또한 장차 내가 인류, 세계와 토지를 떠나게 될 때 남길 유언이기도 하다.” “고난”을 해결하려 할 때 더욱 큰 “고난”에 포위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그는 가난과 기아, 물질과 욕망이 착종된 농촌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신선한 언어와 대담한 의식, 시적인 상상으로 농촌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문단 내외의 주목을 받았으며, 중국의 농촌에 대한 전범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립된 유토피아가 만난 바깥세상의 폐수는 개혁개방 이후 전지구화의 오염에 물든 중국의 은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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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3:48

농촌이라는 신화


 

제2회 루쉰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연월일(年月日)」은 천고에 다시없는 가뭄으로 모두 “바깥세상으로 떠나버린” 후 72세의 할아버지(先爺)만 남은 파러우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옥수수 싹을 키우기 위해 할아버지는 대자연에 완강하게 대항하고 있다. 소설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할아버지의 생존상황을 묘사한다. 그는 집도 양식도 없이 쥐를 잡아먹거나,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하면서 먼저 웅덩이를 차지하고 있는 늑대와 대치해야 한다. 오직 눈먼 개 한 마리만이 그를 지키고 있다. 그는 개와 교류하고, 바람과 이야기하며, 자기 자신과 이야기한다. 쥐는 그의 양식을 훔쳐 먹고, 바람은 옥수수 싹을 쓰러뜨리며, 태양은 대지를 철판처럼 단단히 태워버린다. 옥수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옥수수 뿌리에 묻는다. 옥수수의 삶 또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온갖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할아버지의 살과 골수에 뿌리를 내려 인체의 양분으로 살아남아 결국 열매를 맺게 된다.

 

이야기는 생동적이되 결코 현실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적인 농촌소설과는 달리 「연월일」은 구체적인 시공간도, 닭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세계에는 할아버지와 개, 쥐, 늑대, 태양, 바람, 그리고 적막함과 황량함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추상적일수록 보편성을 얻어 소설에 등장하는 일련의 예술적 이미지들은 깊은 의미를 지닌 상징적 기호로 화한다.

 

“연월일”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를 뜻하는 말이며, 유사 이래 인류가 겪어왔으며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대자연에 대한 항쟁을 상징화한 것이다. 「연월일」의 세계는 중국 농민의 생존환경에 대한 상징이며, 중국사회의 역사적 상징이기도 하다.


耙耧天歌——涨潮丛书




阎连科:与土地有关(节选)


“如果我写不好,不能怪任何人,只能怪自己对自己的束缚。
我首先要冲破自身的束缚,这一关冲不破,不要怪任何人。
解决了这一点,我觉得作品会比原来好一些。解决不了这一
点,不管社会怎么变化,我也写不出什么好作品。不在于意
识形态如何,在于你的内心勇气有多大”

郭玉洁/文

逃离土地:“文学改变了我的命运”

《生活》:你最早开始写作是在什么时候?我记得你说过,写东西可以把你带入不同的生活?

阎 连科:我出生在河南嵩县,是洛阳地区非常贫穷的一个县,改革开放二十多年来,一直稳居河南省人均收入倒数第一,偶尔掉到第二、第三,从来没有到第四。这样 的地方,饥饿是最重要的问题。再加上家里长期有病人,我大姐从12岁开始老是犯腰疼,又找不到原因,现在知道就是股骨头坏死,但当时谁也不知道,为她看病 花了好多钱。

我 老家现在变成了小镇,以前是公社(乡)所在地。每天中午,你会看见公社干部敲着饭盒,提着开水壶往食堂去了,每个月还能领几十块钱工资。当时我对他们羡慕 不已,心想能过上这样的生活,就是人生最大的理想了。但这样的生活首先要有个工作,解决了户口,说白了,就是逃离土地。

说 到写作,我一再说到,真是要感谢张抗抗。她有个小说叫《分水岭》,我是在1975、1976年看到这篇小说,内容提要上有一百多字,说张抗抗是下乡到北大 荒的知青,写出这个小说,出版以后,她就留在哈尔滨工作了。当时我觉得,写小说就可以去城里工作,哦,原来就这么简单,所以我就这么偷偷摸摸地写起来了。

《生活》:一开始写作就写长篇吗?是从长篇的结构出发去构思的吗?

阎连科:那时候哪知道什么长篇、中篇和短篇的区别啊,完全没有构思可谈,就写了二十多万字,然后就丢在家里当兵走了。

我后来一直说,还是文学改变了我的命运。

跟 你说心里话。当兵走,才第一次坐火车,在部队,第一次看见电视机,第一次听说中国有女排。在新兵连出黑板报,写点顺口溜的诗歌啊,写点所谓的散文诗啊,反 正压点韵就叫散文诗了。指导员一看,黑板报出得很好,就问我,你爱写什么样的东西?我说爱写小说。他说拿给我看看。我就给哥哥写信,哥哥说,这些稿子母亲 烧柴火的时候烧了,不过没烧完,还剩一些,就寄了过来。
我的命运好就好在,1979年打仗了,那个指导员非常爱才,他告诉我说,武汉军区有个创作学习班,在河南信阳,你去吧。万一我们的部队要去打仗,你就回来,但是他又说,你要实在回不来,也别那么赶,回来以后把连队的猪喂好就行了。我对这个人非常感激。

在 那个创作学习班上,我才知道什么叫长篇、中篇、短篇,知道有杂志叫《人民文学》,《解放军文艺》。真正的开始应该是这里。1979年,我在武汉军区的《战 斗报》发了一篇小说,叫《天麻的故事》。故事很荒唐,就是一个战士非常想入党,给指导员送了几斤天麻,指导员把天麻悄悄放在战士床头,又给他放了一封信。

我觉得那个小说能发表,主要是我抄了好多屠格涅夫的《白色草原》的风景描写。编辑一眼就看了出来,他说你这小说写得很好,人物也塑造得活灵活现,但是,你受屠格涅夫的影响太大了。

这 篇小说发表以后,在连里特别轰动。怎么突然之间来了一个新兵,在报纸上就发了大半版,那时候部队特别重视新闻,大家都吓坏了,就把我调过去搞新闻。但我搞 新闻真搞不来,又没参加过新闻学习班,就发一个小散文、小诗歌,只要你的名字在报纸上出现一次,就算发了一篇新闻。最后变成一个规定,名字在省级报纸上出 现五次,年底就记个三等功;如果在国家级报纸上出现一次,就记一个三等功,如果名字在国家级报纸上出现五次,马上就能提干了。但这怎么可能呢?怎么可能在 《解放军日报》、《人民日报》上发表文章呢?那个难度是极其大的。

所以我那时候就等着节日,劳动节、七一、八一,写个节日的诗歌呀、散文呀。那时候为了记三等功努力再努力,目的非常明确,就是为了提干,逃离土地,改变命运。

但不凑巧,1979年以后,战场上立过功的人都提干了。干部太多,上面就下文件说,全军停止直接从战士中提干,所有提干都必须经过院校培训。就是考大学了嘛,但还有一个规定,所有考生年龄不得超过21周岁,我当时22岁,那就是什么也不能了。

就 这样的情形维持了三年,考学也不行,提干也提不。就想退伍回家算了,我当兵三年,立了三个三等功,党也入了,就一心想回家当党支部书记。但走的时候,火车 还有半小时就开了,团长开着越野车从月台上飞驰而来,下了车就大叫,阎连科在哪里?在哪里?他一路小跑,一个车厢一个车厢地喊,找到我以后说,那年武汉军 区业余战士演出队在全军汇演的时候拿了一个第一名,其中独幕话剧是我写的。总政给武汉军区二十多个特殊的提干指标,也就是不需要考学,也不需要打仗立功。 其中写作方面,军里点名要我。

可是当时我退伍的手续都办完了,退伍的钱也花完了,粮票也寄回去了,连被子都没了。团长说,这样吧,你回家去,一个礼拜后回来提干,如果你不回来,这个指标就给别人了。

我 回家后和家里人商量。大家心情都很矛盾。回去吧,前线打仗还没完呢,不回去吧,这可是一生的事情。再说,家里也的确需要劳动力。那时候我哥哥在县邮电局工 作,晚上12点,他沿着河,打着手电,徒步三十里回来了,告诉父母说,让连科回部队提干去吧,在家里一点用都没有。说完坐了一坐,又徒步三十里回去了。

哥哥的一句话就这么决定了我的前途。第二天,家里把喂的一头猪卖掉,还110块的退伍费。我回到部队,年底提干。

这就是文学改变了命运。特别具体,特别现实。

(全文即将刊登于《生活》杂志2006年5月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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