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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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8 복단대 문사연구원 "도시생활사" 관련 학회
獨立閱讀/講, 구경 2009. 3. 28. 01:46
복단대 문사연구원에서 <도시의 번화함: 1500년 간 동아시아 도시 생활사>(都市繁华:1500年来的东亚城市生活史)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문사연구원과 하바드대학 동아시아학과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기간은 3월26일부터 28일까지이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이기도 했거니와 한참 전부터 예고되어 있던 학회라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준비기간이 길었고 미리 공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에서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학회를 하더라도 공지가 잘 안 되는 편이다.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지도 않고 현수막을 내걸지도 않는다. 포스터가 하루 이틀 전에 나붙을 때도 있을 정도니.

그런데 역시 대형학회에서 내실을 기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들어볼까 생각한 발표는 26일(목) 오후와 28일(토) 오후 정도였는데, 일정을 보니 토요일 학회는 항주에 가서 호텔 잡아서 하고 또 그 다음날은 절강성 어디로 여행까지 간다고 한다. 혹시 학회가 목적이 아니라 꽃피는 춘삼월에 강남 호시절을 맛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도 데리고 가 준다면야.. 안 그래도 항주를 가려 했는데 학회 핑계로 확 가 버릴까 잠깐 생각을 했다.. ㅡㅡ;;)

아무래도 문사연구원이 창립된 후(2007) 어느 정도 굴러가니까 이런 식의 대형학회를 만들어 돈을 좀 푸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다져온 인맥도 확실히 굳히고. 뭐, 내가 내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확인할 도리는 없겠다.

근데 나는 학자들이 왜 이런 대형학회를 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기 문제를 여기 와서 풀 수도 없고,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기도 힘들다. 평소 글로만 알고 지내던 사람을 한번 만나본다는 정도? 그럼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글로 만나는 게 더 강렬한가, 아니면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게 더 강렬한가?


이번 학회의 발표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기록 차원에서 찍어둔 첫날 사진만 몇 장 올려둔다.

스티븐 웨스트 교수이다. (난 좀 더 젊을 줄 알았다.)

생각보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일본어로 관심 없는 내용을 이야기해서 먼저 나왔다. 개막식 장소로 꽤 넓은 곳을 빌렸는데, 사람이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았다. (중국학생들은 아침도 상관없이 일찍 자리를 채우는 편이다.) 따라서 오후에도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오후 일정 중 재미있을 만한 곳으로 찾아갔다. 왕더웨이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3시 30분에 시작하는데 딱 맞춰 갔더니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다. 뒤에서 서서 들을 수밖에.. (보통은 최소 30분은 먼저 가 있어야 한다. 이날은 오후 첫번째 시간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냥 쭈욱 앉게 된 모양이다.)

중국 아해들도 마찬가지로 좀 일찍 오거나 미리 자리를 맡아둔 쪽은 앉고 나머지는 서서 발표를 들었다.


질문은 주진학 선생 한 사람에게로 몰렸다. 옛 상해에 관한 발표였는데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만, 아무래도 다들 상해에 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이라 재미있게 들었나 보다.
왕더웨이 교수다. 똘똘하고 공부 잘 하게 생겼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문학자의 하나이다.

개막식은 큰 곳에서 규모 있게 하고, 각 세션은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 위주로 할 계획이었나 본데 실제로 이렇게 큰 규모에서는 토론이 잘 이뤄지기 힘들다. 발표자들도 이런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로운 글이나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 예전에 써 뒀던 글을 장소만 바꿔서 다시 발표하는 식이다. 이름난 학자일수록 그런데, 이쪽에서도 그의 이름 때문에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궁합이 잘 맞는다. (비슷한 내용을 한국과 중국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적도 있고, 대만쪽 대학 웹싸이트에 발표자료와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강연을 다시 듣게 된 경우도 있다..)

내실을 기한다면 수유에서 하고 있는 국제워크샵 같은 형식이 참고할 만하겠다.
미리 발표자와 기획 단계에서 충분한 상의를 하고, 이쪽에서도 발표자와 관련된 논문이나 저작을 세미나 등을 통해서 충분히 읽어둔다. 그냥 그 날 되어서 우르르 몰려와 한번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만날 준비를 양쪽 모두 충분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부딪혀야 발표자도 듣는 사람도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내부 구성원이 회의진행자, 사회자, 통역, 토론자, 청중의 역할을 모두 맡는다.(물론 외부에도 열려 있다.) 특히 통역의 경우 제아무리 동시통역에 능한 사람이라도 학술 쪽은 쉽지 않은 편이다. 한국어로 이야기한대도 해당 분야에 대한 상식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는 게 많을 텐데, 그걸 외국어로 어떻게 옮기겠는가. 통역은 그 언어가 아니라 그 담론에 익숙한 사람이 맡아야 원활한 회의진행이 된다. 그걸 내부구성원이 맡아서 하고, 잘 수행하기 위한 공부를 따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방식이 좋은 줄 알면서도 대학에서는 실제로 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학회를 하는 목적이 공부에 있는 게 아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방관자의 입장에서 이름만 알고 있는 학자들 얼굴이나 봐두자는 속셈으로 간 학회이니,
학회 자체보다는 이런 학회 왜 하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 들었던 것. 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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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