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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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1 중독 8
示衆/flaneur, p.m. 4:30 2009. 4. 21. 01:19
요즘 우리 너굴은 소지섭에 빠져 늦은 나이에 팬질에 여념없다. 여고생도 아닌 주제에..

시작은 "영화는 영화다"이다. 그 후 한국의 훌륭한 인터넷 환경을 발판삼아 철지난 "미사"까지 밤잠 아껴가며 봐 버리더니, 요즘도 재미없다 아우성치면서 카인과 아벨을 끊지 못하고 있다. 소지섭 팬카페까지 가입해 모든 글을 읽고 동영상 순례까지 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기도 이제 재미없고 지겹고 중복되는 내용도 많아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것. 나의 조언은 이독제독! 다른 더 재미난 드라마를 봐서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라고 했는데 쉬 안 되나 보다. 한국드라마들은 나름 재미있지만, 스토리 전개상 틈이 너무 많다. 장비도 좋고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은 탁월하지만(그리고 거기에 많은 제작비를 투여하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잘 못 만든다. 빤하고 구멍이 많다. 무엇보다 느리고 긴박감이 없다. 어떤 중요한 장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슬쩍 넘겨야 정말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법인데, 우리고 또 우려먹는다. 스토리 작가에게 투자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작가파업으로 드라마 제작이 중단되는 미국이야기는 정말이지 별나라 외계인들 이야기다. 미드 찬양할 입장도 아니고, 본 것도 얼마 안 되지만 미드는 볼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한다. 물론 사람 사는 이야기 뭐 별 게 있겠냐만은, 한편 한편 이야기를 구성하는 그들의 능력을 보고 있으면 정말 촘촘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드라마는 작은 아이디어나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미드처럼 시리즈로 이어지는 드라마들은 그 속에 작은 세계, 작은 우주를 구성한다. 정말 별나라 이야기인 배틀스타 갤럭티카 같은 SF물도 그렇고,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스타워즈 같은 영화나 시리즈 드라마들, 서유기, 수호전, 홍루몽 같은 중국 장회소설들은 이렇게 끊어지며 이어지는 이야기의 조합을 통해 자기 세계를 만들고 있다.(언제고 이들을 모두 엮은 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나는 우주여행도 해보고, 의사도 되어보고, 대관원에서 시도 지어보는 것이다..

아, 하려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고. 중독이었지.. ^^;;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이고 재미도 없어져 그만하고 싶은데 그만둘 수 없는 애처러운 상황.
나에겐 그런 게 없었을까? 통화할 때는 별 적당한 게 생각이 안 났는데 생각해 보니 많다.
담배 같은 경우 언제든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가 이제 끊으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단계로 넘어왔는데, 그건 지금 재미가 없거나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아니다. 술도 습관적으로 마시는 건 아니고.

사실 가장 중독성이 강한 건 운동인데, 이제 근육도 풀렸고 그 바닥을 떠난지 오랜지라 그건 패스하고..

비교적 최근의 예를 생각해 보면, <신의 물방울>을 보고 와인에 빠졌던 경우다.
그 전에도 와인 홀짝이길 싫어한 건 아니지만 마실 기회도 많지 않았고 뭘 알고 마신 건 아니었다. <신의 물방울>도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그런데 내가 독특하게 생각한 점은 주인공이 와인을 마시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각과 후각 훈련을 와인평론가 아버지로부터 받아왔지만 와인은 한방울도 마셔보지 못한 주인공과 그 아버지에게 아무런 사랑도 받지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세상의 모든 와인을 섭렵한 와인평론가 이복형제의 대결구도인데. 이들이 와인을 마시면 갑자기 호수도 나타나고, 그 호수 한켠에 여인도 나타나고, 중세의 성에도 다녀오고, 눈 덮힌 산위에도 올라가 있다. 어떤 감각의 절정? 그런데 와인 찾기는 기억 찾기와 연결된다. 끊어진 아버지와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어머니와의 기억들. 그것은 그냥 억지로 떠올리려고 해서 생각나거나, 돌머리라서 기억 못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와인이라는 매개를 통해야만 찾아지는, 와인이라는 물질성을 통과해야만 상기되는 기억들이다. 신의 물방울 12사제는 그래서 최고의 와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 어머니에서부터 그들의 성장,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이해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편은 못봤으니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축축한 추운 날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따뜻한 홍차에 마들렌을 내어온다. 별로 땡기지는 않았지만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한입 먹어본다. 아, 뭐지? 마르셀은 홍차와 마들렌의 조합에서 봉인된 무엇을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다. 다시 한잎 베어물고 그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그 느낌에 집중해 본다. 그 맛의 뿌리를 더듬어가자 기억의 봉인이 풀리며, 어릴 적 고모네 집에서의 장면이 "상기"된다. 그 기억은 머리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억지로 떠올리려 한다고 해서 떠올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머리속이 아니라 그 물건에 들어있다고 할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물건을 만졌다고 갑자기 딱 상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물질에 새겨진 기억을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찾아가야만 되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렇게 프루스트의 <시간>은 특정한 물질, 장소에서 되찾아낸 지나간 기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신의 물방울>에서 그 매개는 와인인 셈이다.

와인? 그냥 맛있기만 한걸? 아무리 마셔봐도 내 눈앞에는 꽃밭도 펼쳐지지 않고, 호숫가에서 다소곳이 목욕하는 그녀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래도 난 감각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퍽!!)

불행인지 다행인지, 와인에 미치기 위해서는 돈이 조금 많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2-3만원대 와인이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 가격대에서 살 수 있는 맛있는 와인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조차 종류별로, 원산지별로 다 마셔보려면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맥주 한잔 하고 속 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때 와인에 미칠 뻔 했지만, 애달픈 속을 추스르며, <신의 물방울>만 꼭꼭 챙겨보며 그냥 잊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도 가끔 코스트코 와인 진열대에서 기웃거리다가 너굴에게 쥐어박히는 일이 다반사다. 보는 것 가지고 너무 뭐라 그러지 말라구...

조금 다르지만, 음악 쪽 만화로는 <피아노의 숲>이 비슷하다. 카이의 연주는 사람들에게 피아노의 숲을 시각적으로 연상시키고, 숲의 바람을 촉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아직 연주하는 곡이 매개가 되어 각각의 곡마다 다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못 본 것 같다. 카이는 사람들을 자신의 숲으로 인도할 뿐이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런 이미지나 감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듣기에 즐거울 뿐이다.. ㅡㅡ;;)

그렇담 이제 <노다메 칸타빌레>로 넘어갈 차례다.
일본 드라마는 거의 본 게 없다. 그 유명한 <하얀 거탑>의 바람이 몰아칠 때도 그닥 땡기지 않아 한국, 대만, 일본의 거탑 전부를 안 봤다. 노다메도 별로 볼 마음이 없었는데, 밥먹다가 룸메가 틀길래 슬쩍 봤는데 . . 화~ 바로 뻑 가 버렸다. 다행히 일드는 짧다. 미드처럼 시리즈 10까지 가고 그런 일도 없다. 노다메가 시즌 3,4로 가지 않는 게 다행이고 불행이다.

클래식은 이전까지 기껏 들어봐야 리히터의 피아노곡 몇 개, 애너 빌스마의 첼로곡 몇 개 등등만 옆에 두고 가끔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노다메의 유쾌함에 빠져, 거기에 등장하는 곡들을 시작으로 온갖 클래식 음반을 뒤지고 다녔다.
다행히 중국 e-mule에는 온갖 명반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불행히도 인터넷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ape나 flac 같은 무손실 음반을 받는 데 며칠, 몇 주가 걸렸고, 고클래식 같은 곳에서 돈 내고 다운받아도 속이 터진다. (한국에서는 몇 분에 끝날 일이다.) 그렇다고 그 정도를 못 참겠는가? ^^;;
노다메는 떠났지만 명반은 내 하드에 남았다. 재즈까지 합치면 100기가 가까운 음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따로 이동하드에 보관중인 압축도 안 풀린 놈들까지 합치면, 글쎄 아직 듣지 못한 놈들이 너무 많은 셈. 물론 이조차 정말 몇년에 걸쳐 수집하고 들어온 사람(모씨는 테라 단위라고 한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차고도 넘친다. 음반 수집의 단계를 넘어 클래식에 대한 모든 것으로 넘어갔다면 나의 중독은 꽤 심각해졌을 것이다. 내가 듣는 음악을 그냥 느낌이 아닌 분명한 느낌, 지식으로 알고 싶어 책을 뒤지기도 했는데 적당한 책이 발견되지 않았다. 딱 100기가 수집에서 멈췄기에 망정이지. 나는 아직도 내가 듣는 음반을 부르는 법을 모른다. 그냥 리히터의 바흐 무슨 곡, 그 정도다. (소나타 몇번 몇단조 이런 거 몰라!) 그리고 여기서 만족한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과 누구의 무슨 곡이 좋네, 뭐가 명반이네 하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다.

중독되고 빠질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아주 작은 차이에 민감해진다. 그 작은 차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와 비용을 감수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에 연연할 정도로 지금 나에게 그것이 필요한가? 중독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질문이 이것인 것 같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중독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디오, 자전거, 카메라 등등에 빠진 사람들은 아주 미세한 음의 차이, 페달을 밟을 때의 작은 느낌, 빛을 잡아내고 색깔을 고정시키는 특정 장비의 힘에 연연해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굉장히 중요해진다. 그런데 장비만 갖춘다고 높이 올라가지는 건 또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비싼 와인이 우아함을 보증할 수 없듯이, 고급장비가 감각을 끌어올려 주는 건 아니다. 아, 물론 원액을 희석한 3000원짜리 마주앙(요즘도 있나?) 먹으면서 와인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만. 격식있는 자리에서 기백만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불편함을 감수하느니, 편한 친구들과 할인마트 와인을 마시면서 그 맛과 분위기를 음미할 줄 아는 정신. 헝그리와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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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