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4. 3. 00:22
별로 과학적인 근거는 없겠지만 나는 정신이 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력으로 버텨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사람이 없지는 않으나, 내가 보기에 그건 정신력이 아니라 욕심, 혹은 욕망 때문에 몸에게 너무 가혹한 짓을 하는 거다. 링겔 맞아가면서 공부하는 것을 택한 건 그 사람의 입장인 것이고,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몸은 최대한 살살 달래가면서 사용해 줘야 한다. 앞으로 한참을 같이 지내야 하지 않는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기분이 울적할 때 웃는 표정을 지어보라고 한다. 양미간을  펴고 입도 옆으로 길게, 얼굴에 근육도 느슨하게 만들어서.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정말 슬퍼야 할 때 웃는 표정을 짓다가는 조커 취급 당한다. why so serious, son?)
자세는 우선 어깨를 낮춰야 한다. 긴장되어 있을 때 잘 보면 어깨가 들려 있다. 컴퓨터를 오래 쓰다 보면 자연히 어깨가 위로 들리기 쉽다. 팔과 어깨선이 만나는 그곳에 긴장을 풀고 어깨를 낮춰라. 그리고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그렇다. 참선하는 자세다. 앉아 있을 때든 서 있을 때든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어깨를 낮추고 팔을 늘어뜨려 보자. 별 효과는 없을 수 있다만. (이건 태극권 하는 애들, 혹은 이연걸 어깨를 잘 보면 연상이 될까?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애들과는 달리 무술하는 사람들 어깨는 각이 없이 둥글둥글하다. 태권도는 제외다.)

대학원생이 된 후, 그리고 중국에 혼자 와 있으면서 몸을 많이 잊고 지낸다.
억지로 몸을 가지런히 하려고 해도 어느새 내 허리는 구부정해져 있고 어깨는 들려 있으며, 양 미간은 내천자를 그리고 있다. 입술은 꽉 다문 채, 혹은 앞으로 삐죽 내민 채. 자세가 굳어져서 어떨 때는 턱이 아플 지경이다. 입 꽉 깨물고 무슨 비장한 일을 하는 걸까?

편안하게.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앞으로 이 친구와 같이 지낼 날이 적지 않기에, 애 보듯이, 강아지 훈련시키듯이 살살 비위 맞춰가며 칭찬도 해줘가며 잘 데리고 살아야 한다. 막 부려도 따라올 놈이긴 하나, 이놈 욱 하는 성질이 있어 언제 배신 때릴 지 모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 많은 시간을 앉아 있지만 사실은 비능률적이다. 시간 정해놓고 몰아서 6시간을 투자하는 게 훨씬 능률도 좋고, 몸에도 좋고, 내 정신상태에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미 늦었기에, 지금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이게 끝나고 나면, 다음부터는...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이다.

정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부리고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습관으로 몸이 그것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정신도 만들어질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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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