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讀, 서재 2008. 11. 16. 00:29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10점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책꽃이 원래 자리로 돌려놓다가 에필로그 부분을 확인해 본다.

홍콩판은 국역본과 결말이 조금 다르다.


내가 처음 읽은 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판본인데 그건 잡지판을 그대로 배포한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역본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이 새로운 내용이었다. 뒤늦게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화청>2005년호를 찾아 복사하고 콩푸쯔 헌책방에 홍콩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주문 넣었다. (그러고 보니 금서로 지정되어 전량 회수되었다던 잡지<화청>의 해당호는 버젓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소설의 홍콩판, 대만판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5금" 조치는 어쩌면 중국 내부에서는 신경쓰는 사람도 없고 작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외국에서 더 흥분해서 이용하는 홍보문구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쪽에서도 일단 원칙적으로 금지는 하되, 이미 파급력이 별로 없는 소설 나부랭이가 그러덩가 말덩가.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위도 검열되고 여기저기서 이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던 몇 군데만 찾아보고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는데, 어제 번역 정리하느라 다시 꺼낸 김에 좀 살펴보다가 국역본 결말과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 국역본에는 역자가 어느 판본을 참고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짐작하기에 대만판을 참고했는데 그게 다른 결말이었을 수도 있고, 저자의 요청이었을 수도 있으며, 국내 출간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출판사와 상의하에 삭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자였다면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다. 판단은 어차피 독자가 하는 것이니까. 잡지판은 스토리 전개상 불필요한 부분이 대부분 실리지 않았고(잡지 게재만으로 문제가 되었다. 즉, 사상적인 검열 때문에 부분삭제하였던 건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아예 빠져 있다. 참고삼아 홍콩판의 결말을 추가로 번역해 둔다..


 

...

우다왕은 편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주저하다가 열어보았다. 편지 제일 위쪽에는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가 쓰여 있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종이에 써 줘. 돈이 필요하거들랑 액수와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적고.


눈 꽃이 휘날리는 그 대문 앞에 서서 우다왕은 문 안쪽을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창백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외투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싼 팻말을 꺼내 들었다. 두께가 반치쯤 되고 너비는 세 치, 길이는 한 자 두 치쯤 되는 것이 마치 특별히 제조된 선물용 담배상자 같았다. 그는 그 팻말을 초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류롄 누님에게 좀 전해주게."


국역본은 여기서 끝난다. 어찌보면 군더더기 없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홍콩판 결말은 바로 이어서 몇 문단이 계속된다.


 

  그런 다음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흩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흘 후, 이미 중년을 넘어선 류롄이 사령관과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양저우에 있는 친정에 좀 다녀올께. 부모님도 안 계시지만, 가서 형제자매들이나 좀 보고 올까 해. 그러나 그렇게 떠난 뒤 류롄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사령관은 양저우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류롄이 양저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류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눈꽃처럼 군구(軍區) 대원(大院)의 1호 사택에서 사라져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계화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한 향기만이 그녀가 존재했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 놓고 있을 뿐.

2004년 8월 17일


번역에 참고한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다.

잡지 <화청(花城)>, 2005년 제1기, 총 제152기.

옌롄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홍콩문예출판사, 2005년 4월 제1판)


http://lunatic.textcube.com2009-03-26T10:21:410.31010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讀, 서재 2007. 11. 18. 04:03

(전면수거된 <화성>2005년 봄호 중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의 표지)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쾌활>로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제3회 라오서 문학상(老舍文学奖)을 수상하였던 그 해에, 옌롄커는 중편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爲人民服務)」(2005)를 문예지 《화성(花城)》 2005년 봄호에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발표 즉시 마오쩌둥 석고상을 부수고 <마오쩌둥 선집>을 찢는 등의 장면이 문제가 되어 당국으로부터 금서 처분과 함께 전량 회수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러나 해외로의 번역 저작권 판매는 금지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활발히 소개되었으며, 중국에서도 포털사이트 등에서 쉽게 원문을 구해 읽을 수 있다. (물론 전량회수되었다는 문예지 <화성>은 대학도서관에 버젓이 꽂혀 있다. 연구용으로는 허용되는 것인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 인민해방군 사단장의 젊은 후처와 그 집에 배속된 말단 사병의 불륜을 그린다. 작가는 쾌락의 끝을 향해 치닫는 남녀의 사랑 행위와 문혁의 집단적 광기를 대비시킴으로써 혁명 서사에 억눌렸던 인간의 감성을 부활시킨다.

 

대만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왕더웨이는 이 소설이 등장한 것은 “혁명으로 호소하는 사회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의했다.


어긋난 유토피아


《아주주간(亞洲週刊)》 세계 10대 중국어도서에 선정된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2006)은 중국 최초의 에이즈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실존하는 에이즈 마을의 환경개선을 위해 쓴 작품이며,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 기부금을 출연하기로 협의되었지만, 출판사의 계약위반으로 법정투쟁까지 벌였고 결국 기부금 전체를 저자가 부담했다.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착종된 서사 스타일로 한 소년의 기억을 통해 중국내륙의 한 에이즈 마을을 조명하고 있다. 이 오랜 마을의 농민들의 빈궁함, 우매함, 낙후, 탐욕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며, 피를 팔아 가난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마을 전체의 에이즈 병동화라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 작품에서 오히려 죽음은 향유하기조차 힘든 사치이다. 의지할 곳 없는 고난과 절망이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존재이며, 죽음은 그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연속일 뿐이었다.

 

옌 롄커는 다루고 있는 소재가 어떤 것이든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실생활을 주목하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현장성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봤을때 <딩씨 마을의 꿈>은 지금 여기의 세계에 옌롄커가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설이다.

 

“의 심할 것 없이 이 소설은 내가 허난성 출신이란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마땅히 사회와 인류에게 가장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이즈가 허난성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고난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의 변화과정, 내적세계, 그리고 그들의 생존방식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전 소설과 비교해 보자면, <일광유년>이나 <쾌활>은 상상에서 현실로 진입한 작품이다. 상상은 현실과 역사의 교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에서 역사로 진입한 작품이다. 현실은 상상으로 나아가는 교량이며,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근거이다.”


그는 세 부류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마음이 약한 사람이 읽으면 너무 괴로워질 것이다. 둘째 최신문화의 유행을 쫓는 사람들, 예를 들어 장이머우의 <영웅>이나 천카이거의 <무극> 같은 블록버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소설은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셋째,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목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읽을 필요가 없다. <딩씨 마을의 꿈>이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지불해야 할 사랑이다.”



p.s. 최근 옌롄커는 새로운 장편소설 하나를 탈고했다고 한다. 아직 정식발표되지 않아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편 <연월일> 이후의 옌롄커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곧 한두편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특히 위 두편은 곧!!?)

....
웅진의 중국당대문학 걸작선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8년 4월 30일 출간되었다.
띠지의 홍보문구는 다음과 같다.

"<색,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이다!"

표지는 상당히 매혹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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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