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7. 17. 17:32
김혜리: 고등학교 졸업까지 대구에서 사셨다는데, 사투리를 전혀 안 쓰시네요.

신형철: 대학 오고 나서 의도적으로 많이 벗어버리려고 했어요. 경상도 말투는 힘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어양 자체가 격렬하다보니 말을 하고나면.... 힘들어요. (좌중 폭소) 친구들 만나고 나면 진이 빠지죠. 그러다 경상도 말투가 토론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힘이 들어가고 조곤조곤하지 않으니까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껴요. 말의 형식에도 논리적이지 않은 뉘앙스가 있고요. 가끔 <100분 토론>을 보면 한나라당에서 나오신 분들이 경상도 말투로 억지를 부릴 때가 꽤 있잖아요. (웃음) 천천히, 편안하게 설득력있게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말투가 바뀌게 됐어요.

<씨네21>, 김혜리가 만난 사람, "한국 문학의 사려깊은 연인,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네21을 들춰보다가 신형철의 사투리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120% 동의한다.
나도 토론이나 세미나 같은 걸 하며 한두 시간 떠들다 보면 엄청 힘들어 목이 상하고, 가끔 억지논리를 세우곤 한다. 호오나 내 판단기준은 있는데 그걸 상대에게 설득한 도구가 부족한 것.
아울러 토론에서만 문제가 아니라 부부싸움을 위시한 여러 오해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말투의 문제는 단순히 말투에 그치는 게 아니다. 모든 논리가 "버럭" 하나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우린 원래 이렇게 표현해! 그러니 니가 내 말투에 적응해." 이런 태도를 고치고 당신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을 연습해야 한다.

그런데, 몇 십년간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하던 말을 바꾸는 게 또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외국어를 들을 때처럼 번역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굉장히 피곤한 일이고, 서울에 올라온 첫해는 그래서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말이 힘들었다. 아직도 나에겐 서울말이 어색하다.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 그냥 자주 듣다 보니 편해진 것일 뿐.

곁다리로, 어제 100분토론에 전화토론으로 참가한 부산대 김좌관 교수는 부산 사투리임에도 "천천히, 편안하게 설득력있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사투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것. 사투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 문제를 잘 파악하고 보완하면 억양이 사투리라도 다른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교훈적인 결론?!


신형철이라는 이름, 입소문만 들어오다 경향, 한계레 등에 올린 글들을 인터넷으로 읽어보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부러워했다. <몰락의 에티카>가 나오자마자 사 봤지만, 왠지 긴 글에서는 단문의 느낌이 살지 않은 것 같았다. 뭐, 어쨌든, 그런 걸 내가 평가할 문제는 아니고..
위 인터뷰에서 또 하나 챙겨둘 말은,

 생각 자체가 신선하면 말은 평이할수록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데 생각이 평범해서인지 자꾸 어휘 차원에서 신기한 걸 쓰려고 해요.

'示衆 > flaneur, p.m. 4:3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레이] 편견 타파?  (6) 2009.07.30
어떤 상상  (6) 2009.07.14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진리 릴레이  (8) 2009.07.02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