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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9 77학번, 중국의 대입학력고사(高考) 재실시 첫 세대
문화혁명/80년대 2007. 6. 9. 02:33

77학번, 78학번. 문혁 종결후 재실시된 대입학력고사(高考) 첫 세대.
그들은 젊은 날 혁명의 물길에 휩쓸여, 그리고 이어서 지식청년으로 농촌에서, 공장에서 노동을 직접 경험하느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이다.

한창 기본기를 닦아야 할 나이에 세상을 배운 세대,
그래서 배움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던 세대.
그런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80년대를 거친 후 각계에서 현재 중국을 움직이는 주역이 된 것 또한 이들 세대이다.

눈여겨 보고 있던 이 세대에 대한 특집이 <남방 인물주간> 최근호에 소개되었다.
꼼꼼히 번역하려 보니 시간도 많이 들고 이것저것 찾아봐야겠다.

다음 글부터는 시간과 정력을 아껴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만 정리하는 식으로 소개해볼까 한다.

 

대입고사(高考) 재실시 30년, 상식을 회복한 이후


인물주간(人物週刊) 2007년6월1일 제13기 總第86期


1977년 8월 6일, 베이징. 전국과학교육공작 회의가 진행되는 사흘 내내 덩샤오핑은 듣고만 있었다. 

  이 회의에 참가한 33인의 과학자와 학자 중 가장 젊은 52세의 무한대학 부교수 자취안싱(査全性)은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몇 해 동안 수업 한 번 못해본 것이다. 용기를 내어 주석을 향해 7년간 계속되어 온 “추천입학” 모집방식의 4대 폐단을 지적한 뒤 대입고사(高考)의 재실시를 건의했다. 말이 떨어지자 수학자 우원쥔(吳文俊), 광학자 왕다헝(王大珩), 화학자 왕여우(王猷) 등이 찬성하는 뜻을 표하며 대입고사 재실시의 중요성에 대해 한층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였다.


  심사숙고하며 듣기만 하던 덩샤오핑은 그 즉시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대입고사는 반드시 재실시하도록 하자!” 두 달 후 10년 동안 닫아 둔 대입고사의 문의 활짝 열려 전국 570만의 학생이 고사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이 해의 대입고사가 가지는 의미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중국 전체로 봤을 때도 이 대입고사는 아주 의미심장하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이를 기점으로 점점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무질서한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이성이 통하는 사회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때 문에 상식을 회복한 지 30년, 이 30년 동안 국가의 운명과 대학생들의 운명은 서로 연결되기도 했고, 서로 중첩되기도 하여,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생의 운명을 해독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밟아온 궤적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30 여 년 동안 대입고사는 개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자젠잉(査建英), 거자오광(葛兆光), 양잉밍(楊迎明), 팡톄(方鐵) 형제 등 이 대입고사를 통해 77학번, 78학번이 된 하향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지청(知靑)들이 있는가 하면, 급변하는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한 80년대 후반학번 IT계의 엘리트 다이즈캉(戴志康) 같은 사람도 있다. 특수한 시대가 77, 78학번 대학생들에게 역사적인 고난을 가져다주었지만 후배들이 누리기 어려운 혜택 또한 누릴 수 있게 해줬다. 그들 중 상당수가 논밭을 갈다가 오늘날 중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위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터져나가는 인재시장에서 대부분의 졸업생이 2000원(30만원 이하)이라는 최저 봉급을 받기 위해 치열히 경쟁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 입 제도는 부단히 개혁되고 대학은 모집인원을 확장하며 학비도 올랐다. 그러나 최근 입시제도에 기대보다는 비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매체에서는 계속하여 대학생들에게 취업 시기를 조정할 것을 호소한다. 그러나 계획경제시대와 다리 직장을 분배받지 못하게 된 대학생들은 완전히 다른 심정을 내보인다. 일부는 분노하고, 원망하며, 상실감에 빠져 지내고, 다른 일부는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을 기뻐하며 자기가 택한 길을 향해 나아간다.


  오 늘날의 학생들도 “지식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실용주의, 기능주의가 가득 찬 오늘날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수한 개인의 운명이 쌓여 국가의 운명이 되고, 국가의 운명이 또다시 개인에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피해갈 수는 없다.

 

이글루스에서 옮김 by luna | 2007/06/09 02:33 | 八十年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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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