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년 8월 28일 북경 태생, 중국실험예술의 대표적 인물. 건축가. 전위예술가. 드라마 <뉴욕의 북경인> 부감독.

지금까지 아이웨이웨이에게는 꼬리표처럼 아이칭(艾青)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따라붙어 왔다. 중국현대문학에서 아이칭이 갖는 시인으로서의 지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보통사람들의 뇌리에 '아이웨이웨이'의 이름이 다르게 각인되고 있는데, 바로 베이징 올림픽 국가체육관인 "새둥지"(鸟巢)의 설계 고문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다.(비록 당국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문혁 때 아버지를 따라 신강으로 쫓겨가 5년간 노동개조를 하다가 문혁이 끝난 후 북경으로 돌아왔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인데 할일은 없고, 일없이 빈둥거리다가는 삽대(지방 생산대로 하향하여 노동)를 가야할 것 같아  매일 원명원에 가서 그림 습작을 시작한다. 78년 대입학력고사가 부활된 후 유일하게 예술관련 학생을 뽑는 북경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한다.(천카이거, 장이머우 등과 동기이다.) 싱싱 화파의 일원으로 중국 당대미술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싱싱 미술전"에 참여했으며, 몽롱파 시의 근거지인 <오늘> 등에도 관여한다. 81년부터 93년까지 미국으로 건너가 표연예술, 개념예술 등의 창작과 전람회를 개최한다. 뉴욕에 머물 때 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수학한 바 있다.

(지도)

중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건축, 조각, 회화, 사진, 가구, 출판 등 거의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였다. 중국예술문건고(中国艺术文件库) 총감독을 맡고 있다. 주로 관방에서 소개하는 자료는 이 정도이다.
꼼꼼히 검색해 보지는 않았는데, 주로 예술 관련 활동만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고 그의 다른 정체성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잘 모른다.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들은 적도 없다. 다만 다른 책에서 계속 슬쩍슬쩍 언급이 되길래 찾아봤더니, 이 아저씨 블로그에서 주목할 만한 일을 많이 꾸미고 다니는 것 같다. 좀 갸우뚱거릴 만한 사건이 생길 때 슬쩍 들어가보면 한 마디씩 뱉어놓고 있다. 이쯤에서 아저씨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시인의 아들이다)

아이웨이웨이의 홈페이지(http://www.aiweiwei.com/)에는 별 게 없다. 파리가 한 마리 날아다닌다. (정말이다...) 작품 몇 점과 개념도가 전부이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 차례 계정정지 당한 바 있는 그의 블로그( http://www.aiweiweiblog.com/)에 들어가 보면 보다 다양한 활동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은 트위터(https://twitter.com/#!/aiww)에 몰두하고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진정한 좌파다." 천단칭의 평가이다. 아마도 생략된 말은 자기정당화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중국식", "중국 스타일의"라는 말일 것이다. 좌우의 가치평가가 한국과 다른 중국에서("좌빨"의 대칭어가 중국에서는 "우파"이다.) 진정한 좌파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