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示衆/flaneur, p.m. 4:30 2009. 5. 12. 00:51
낮에 볼일 보러 나갔다가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들고 간 책을 보며 밥을 기다리는데, 눈은 계속 조그만 TV를 향하고 있다.
단막극인지 연속극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웨딩플레너에 관한 연속극일수도 있겠다.)
너무 허약한 사윗감과의 결혼을 반대하며 특전사 출신의 자기회사 부하직원을 딸의 남편감으로 미는 아빠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요즘도 이렇게 딸의 결혼에 반대하는 뼈대 굵은 집안이 있긴 한가 본데, 거의 전형적인 군인정신, 상명하복의 계급주의에 물든 아빠와 부하직원의 대화가 너무 친숙해서 낫설었다. 어떤 아이디어와 구도만 있고 그것을 채우는 살이 너무, 뭐랄까, 사람의 모습을 흉내낸 인형의 그것이지 사람 얼굴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집까지 찾아와 무릎꿇고 사정하는 사윗감과 딸의 간청에 못이겨 체력으로 시합해서 삼판이승하면 딸을 주겠다고 대답한다. 시합은 윗몸일으키기, 100m달리기, 턱걸이이다. (뭐, 체력장도 아니고 마랴..)
윗몸일으키기는 간단하게 특전사가 100개를 먼저 하며 끝난다.
100m달리기는 앞서가던 특전사가 중간에 넘어졌는데, 사윗감이 지나쳐 가다가 되돌아와 일으켜 세워준다. 근데 특전사가 사윗감을 밀어제키고 달려나가 우승한다.
턱걸이는 특전사가 간단하게 10개만 하고 내려온다. 우승을 확신한 것이다. 사윗감은 젖먹던 힘 짜내어 11개를 한다.
2승1패. 우승.
그런데, 승자는 사윗감이다.
아버지가 페어플레이 정신을 내세우며 100m도 사윗감에게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대충 어떤 구도를 정했는지 알겠고, 딸과 허약한 애인의 우승으로 가는 방향으로 끌고가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작위적이었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자연스럽다. 살짝 넘어졌다고 다치지도 않는데, 사윗감이 다시 와서 일으켜 세워주고 어쩌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따뜻한 인간미? 윤리적 가치를 내세운다고 작위성이 감춰지는 건 아니다.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100m 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특전사가 넘어지면서 지나쳐가던 사윗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일어서 달려가는 장면으로 바꾸면 어떨까?
어떤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강자의 야비함을 슬쩍 보여주는 것이 윤리로 무장한 약자의 망설임을 보여주는 것보다 효과적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 어쨌든 별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밥이 나왔길래 책은 안 보고, TV로 눈을 주며 먹으면서 슬쩍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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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