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사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6 [릴레이] 나의 사진론 - 사진은 [창]이다. 35
  2. 2008.09.26 사진 없는 사진 이야기
示衆/明室 2009. 6. 26. 21:16
사진은 [창]이다.

1. 사진은 창(窓)이다. 우리는 창 밖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의 빛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창을 활짝 열고 바라보는가 살짝 열려진 틈으로 훔쳐보는가, 혹은 창밖으로 한참 응시하는가 슬쩍 눈길을 주고 마는가에 따라 빛과 색깔은 달라진다. 빛이 달라지면 사물 자체가 달라진다. 저 바깥에 언제나 똑같이 있을 것만 같은 그것은 창을 어떻게 여는가에 따라 나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빛으로 가득한 천상과 우울한 암흑의 하계는 창문 여는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동일한 풍경이다. 조리개와 셔터속도의 배합은 언제나 어렵다. 노출.

2. 사진은 창이다. 창문 바깥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내가 그것을 창틀로 가두기 전까지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세상 자체일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라는 바로 그 의미에서 그렇다. 사진은 그것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떼어내고 단절시키고 축소한다. 그것이 폭력이냐구? 천만에. 그것을 폭력으로 만드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틀에 가두는 자의 특정한 태도이다. 틀에 가두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주고 왜곡시키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사진은 포착이 아니라 창조일 수 있다. 한정된 틀 속에 가득 채우기와 비우기의 적절한 조합이 쉽지는 않지만 재미있다. 구도.

3. 사진은 창(槍)이다. 맥락과는 상관없이. 다른 중요하고 이쁘고 익숙한 풍경 사이에서 그것은 나를 쳐다봐 달라고 찌르고 들어온다. 살짝 아파오지만 그 정도 고통 없이 문신처럼 내 몸에 각인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은 내가 그를 자르고 조각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이다. 낯선 여행지를 찍으며,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며, 나의 옛 사진을 보다가, 견고하게 굳어버린 내 감각을 뚫고 들어오는 창을 발견한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옛 추억, 기억, 어떤 느낌들이 흘러나온다.
내 사진이 누군가에게 그러한 창이 될 수 있을까? 푼크툼.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 길거리의 화로는 주전자를 태울 듯 더 세게 불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래서 바로 옆에 놓인 소화전과 함께 내 눈을 찌르고 왔다. 그러나 자전거를 세우거나 다시 돌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부엌이 좁아 길거리에 화로를 놓아야 하는 누군가의 생활에 끼어들 용기가 나지 않아서이다. 다음날 같은 길을 같은 자전거로 달리면서 지나치듯 찍고 돌아올 때는 제법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와 인사까지 하면서 몇 번 더 찍었다. 그러나 불은 사그라들었고 주위는 어두워졌다. 여백을 잘라내고 "불이아(弗二我)"라는 제목을 달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인사 같은 거였겠지만, "서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상대방의 공간을 노리는 야생짐승들 같습니다. 언제 깨어져도 이상할 것 없을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충고같은 평을 반군이 달았다. 실패의 흔적들이지만 그 말에 부합되는 사진을 찍으러 애쓴다.


이 릴레이는 mooo님, 꼬미님, 엘군님, 연님을 거쳐 저에게 왔습니다. 이건 이런 거야! 라는 식의 정의내릴 깜냥이 되지 않지만, 제 의견은 릴레이에 참여하시는 많은 분들이 만드신 별자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별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금은 겉멋 같고 재미 없는 내용이지만 마음대로 지껄여 보았습니다.. ^^;; 문득 떠오른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제가 원래 사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없으면 만들어내야지, 이리저리 찾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릴레이 규칙입니다.

1. 사진이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글을 적으시고 thruBlog에 여러분의 글을 트랙백해주세요.
5. 이 릴레이는 7월 6일까지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바톤을 이어받을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바톤 전달에 실패한 전적이 있습니다만. ㅡㅡ;; 그때 "릴레이의 오상"을 꼼꼼히 다시 봤는데 정말로 주옥같은 내용이더군요. 하하.)

저에게 독서론 릴레이를 전달하신 띠용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당.. 저는 받은대로 돌려주는 사람이어요. ^^
또 한분은 색깔 리스트 시리즈와 함께  독특한 감성의 글과 사진을 보여주시는 폴.님께 바톤을 넘기겠습니다.

'示衆 > 明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페에서... (필카 연습)  (10) 2009.07.10
맑은 날 상하이의 저녁 하늘  (10) 2009.06.25
부서진 시멘트 다리  (4) 2009.06.22
Posted by lunarog
示衆/明室 2008. 9. 26. 23:27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싫어한다.
응시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응시를 알아차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그다지 잘 찍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경우, 즉 아이를 찍거나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모습을 찍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하나의 풍경이 나의 응시를 통해 하나의 틀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그렇게 영원히 평범함에 머물 것이다.

좋은 사진을 보면 오르가즘을 느낀다.
좋은 소설이나 굉장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영화는 몰아쳐오는 쾌감을 최대한 같은 호흡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소설은 쾌감이 몰려올 때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어쩌다 급한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니.
너무 한 문장에만 머물러 있다가 절정에 도달하기도 전에 식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여성적인 오르가즘이고 소설은 남성적인 오르가즘이다. 내 편견이다.

사진은 지속되는 오르가즘이다.
순간을 영원히 고정, 정지시키는 죽음의 이미지가 사진에는 강한데, 여기서 방점은 영원에 찍히게 된다.
오르가즘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뭐인지 모를 자극이 눈을 때리는 순간 내 몸은 이미지에 고정되고
천천히 세부를 훓으며 그 쾌감을 음미한다.
그 순간 절정은 이미 지나가 있다.
오르가즘 이후 그것이 못내 아쉬워 애무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속이 영원에 가닿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示衆 > 明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도 연습  (1) 2009.04.19
둘로 이뤄진 세상  (2) 2009.03.05
네 멋대로 찍어라! ...... 그러나 새롭게 바라보라  (0) 2008.12.13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