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25. 12:46

연세대 대학원신문 198호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그쪽에서 알아서 "중국의 현실을 숯으로 지핀 뜨거운 생명력"으로 뽑아줬다. 원래 부탁받은 내용이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기에 노벨상 관련 논란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웹으로 보면 폰트가 뒤섞여 있어 보기 힘들다. 참고삼아 아래 옮겨 놓는다.



모옌(莫言) :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간단한 소개

노벨문학상을 점치는 경매 사이트에서 막판까지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었던 동아시아의 두 후보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감수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해 모옌은 생긴 것부터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바깥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영화 <붉은 수수밭>의 장면인양 거나하게 한상 차려 놓고 웃통 벗어젖힌 채 같이 고량주나 비우면 어울릴 것 같은 생김새다. 그런 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안주로 오를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그의 소설이 된다. 좋게 말하면 정제된 서면어가 담지 못하는 풍부함이 살아 있지만, 다른 한편 그 시공간을 공유하지 못한 외부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감성(번역의 문제와 직결된다), 불알친구들 술자리에 낀 새색시의 불편함,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너스레, 과장된 허풍, 투박함 등이 혼재되어 있다. 대부분 옛날 어디에서 누가 말이지, 라며 시작되는데, 그 시간적 배경은 주로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이고 공간적 배경은 자신의 고향을 문학적으로 확장한 가오미(高密) 현 둥베이(東北) 향이다.

 ‘높이’ 자란 붉은 수수만 ‘빽빽한’ 고향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성 가오미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다. 가족이 아주 많았으며, “굶주림과 고독은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 할 만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이 가난은 당시 중국이 처한 정치적・경제적 고난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50년대 후반의 연이은 3년 재해와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의 시행착오로 인해 빈곤은 모든 인민이 공유한 경험이 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십년은 그 빈곤을 여러 방면에서 영속화시켰다. 굶주림으로 대표되는 결핍의 경험은 모옌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고작 50여 년 전이었던 유아기를 태고의 원시적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모든 근육이 입과 위장에 집중되어 있고 생활보다는 생존이 문제가 되는 공간이다. 시커먼 석탄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원시 삼림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소든 사람이든 불알을 까고 생육을 계획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중편 「소(牛)」, 장편 『개구리(蛙)』). 굶주림이 해결되고 먹을 게 넘쳐나는 시기가 되어서도 왕성한 식욕은 끝을 몰라 어린 아이를 잡아먹고 다른 한편 여전히 굶주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아이를 낳아 도시에 상품으로 판매한다(<술의 나라(酒國)>).

고향에서의 생활과 가난한 어린 시절은 「백구 그네(白狗秋千架)」(1984),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红萝卜)」(1985)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년기의 개인적인 경험이 깊게 투영된 이들 초기작에는 “기아와 음식물”, “아동고난사”, “꿈과 환상”, “동물과 식물” 등 이후의 창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원초적인 형태로 선보이고 있으며, ‘가오미’가 단순히 고향이란 의미를 넘어 창작의 밑그림과 같은 문학적 공간으로 설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최근작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모옌의 거의 모든 소설은 ‘가오미’에서 진행되거나 그것을 기초로 한 가상공간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혹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비견되는 장소로 지적되어 왔다. “제 소설의 가오미 둥베이향은 이미 문학적인 개념입니다. 실제 지명을 기초로 하였지만 허구의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죠.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가 창조해낸 허구의 고향과 유사한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12살 때 모옌은 소학교 5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소를 치거나 임시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76년 입대한다. 농민, 노동자, 군인으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전형적인 작가의 탄생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정상적인 교육이 정지되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기의 중국은 다른 형태의 굶주림인 고독을 모옌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프랑코 모레티가 빼기를 했는데 더하기를 한 결과라고 소개한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300년 동안 출판이 통제되고 소설 수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다양한 문학적 전통, 현실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정치적 식민지였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모더니티의 산물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공화국 건국 이후 1980년까지 30여 년간의 중국은 어찌 보면 '마술적 시각으로 변형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경이로운' 중남미의 경험을 압축한 측면이 있다. 모든 소설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형식과 내용의 글만 허용되었다. 문예계에서 인민을 위한 모범이 되는 극이나 글을 대표하는 이른바 "양판"이란 것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래서 생명이 없는 틀이었다. 문혁 10년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고 거의 모든 책이 금서가 되어 불살라졌다. 모옌, 위화, 옌롄커 등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이 시기의 굶주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게걸스러움을 회고한다. 학교가 열리고 기존의 서적들이 재출간되고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론과 작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옌 또한 이 시기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서사기법을 시도한 선봉문학의 대표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서구문화의 맹목적 추구로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의 마르케스"라는 호칭에 걸맞게 특히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향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현실과 신화 속에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한 것을 거울삼아, 그는 중국의 민간전통에서 세계문학과 대결할 수 있는 생명력을 찾아내려 했다. “예외적인 것, 기이한 것, 경이로운 것, 한마디로 말해 모험이 여전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비동시대성의 세계는 라틴 아메리카만이 아니지 않은가. <수호전>의 영웅호걸의 후예가 살고 있는 곳, <요재지이(聊齋志異)>가 못다 수집한 풍부한 지괴 이야기, 소설이라는 제국에 병합되지 않은 민간의 구술전통이 그의 고향 가오미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서구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선봉(아방가르드)과 심근(뿌리찾기)을 결합하려는 노력은 <풍유비둔(豊乳肥臀)>(1995)을 거쳐 <탄샹싱(檀香刑; 박달나무 형벌)>(2000)에서 만개한다. 이 작품은 ‘의화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여, 서양 연합군의 침입으로 서서히 멸망해 가는 청나라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제압당하고 마는 민중들의 혁명, 그리고 그에 이은 잔인한 형벌 등 중국의 민간 사회상이 밀도 있게 묘사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되자 많은 비평가들은 모옌과 중국당대문학의 세계화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탄샹싱>은 전통적인 서사방식, 민간의 가창문학, 의식의 흐름, 희극, 마술적 리얼리즘, 민간의 역사, 중서문화의 충돌이 어우러져 있는 21세기 중국의 중요한 소설로서, 전지구적 배경 하에서 중국의 뿌리를 지켜나가고, 중국의 전통을 구성하고, 깊은 문화적 전통을 확립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는 관점에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숯과 다이아몬드

노벨상 수상 후 모옌은 <인생은 고달파(生死疲勞)>(2006)를 독자들에게 추천한 바 있다. 아마도 <인생은 고달파>를 거치며 비로소 마르케스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확신을 스스로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고전 장편소설의 서사방식인 장회체(章回體)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차용한 이 작품은 모옌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시도로 평가된다. 지주가 나귀, 소, 돼지, 개와 같은 동물로 환생하여 동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독특한 사고방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전개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장회체의 차용은 폭포처럼 쏟아내던 그의 언어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문학적인 성취의 측면에서 유보적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추천하는 작품은 <개구리>(2009)이다. 작가 스스로 <백 년의 고독> 이전 상태로 회귀하여 썼다고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모옌의 초창기 중단편을 연상시키는 간결한 문체가 돋보인다. 또한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계획생육을 중심으로 환상에 기대지 않은 허구와 상징을 활용함으로써, 생명을 주관하는 신화 속 여와와 한갓 도구에 불과했던 여인의 비애, 그러한 과거에 대한 참회와 새로운 현실의 욕망이 혼재된 모순된 인간상이 고모라는 인물로 잘 형상화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현실문제에 보다 접근하고, 자기표절을 피하고자 애썼다는 모옌은 자신을 넘어 이미 다음 걸음을 딛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옌은 “말하지 말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1981년 이후 30여 년간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스스로도 말한 바 있듯이 그는 문장 하나까지 지나치게 공을 들이기보다는 격정적으로 창작욕을 분출하는 스타일의 작가이다. 모옌은 자신이 거쳐 온 삶과 중국의 현실을 정련하여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작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석탄이면 어떤가? 아니 석탄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영원히 빛나거나 단단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몸을 달구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벨상 수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모옌 자신은 담담히 말한다. 바라건대 어서 빨리 "알 낳는 암탉"은 잊어버리고 그가 "낳은 달걀"을 맛보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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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11. 05:30

새로운 애플 제품이 발표되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30년이 지나면 어떤 느낌으로 이런 풍경을 기억할까?

아래는 문혁 이후 해금된 책에 대한 위화의 추억이다.

발자크가 거의 "아이패드"와 동급이다.



독서에 관한 네번째 이야기는 1977년에 시작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독초로 간주되던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톨스토이와 발자크, 디킨스 등의 문학작품이 처음으로 우리 작은 마을의 서점에 도착했다. 그때의 뜨거웠던 반응은 오늘날 연예계 스타들이 가난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것과 맞먹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고, 목을 빼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우리 마을에 도착하는 책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서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줄을 서서 서표를 받아가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내다붙였다. 서표는 한 사람에게 한 장씩만 배분되었다. 서표 한 장으로 책 두권을 살 수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책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던 장관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날이 밝기 전에 서점 문밖에는 이미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서표를 받기 위해 전날 밤에 서점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밤새 앉아서 기다리기도 했다. (...) 새벽에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금새 자신들이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래 줄 맨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서점 앞에 도착해 보니 거의 3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서표는 50장밖에 없습니다. 50번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주세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
위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9-0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다!소설가 위화가 그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모택동선집 4권을 제외하면 읽을 책이 없던 시기, 문혁 이후 해금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을 기다리던 시기, 30년이 지난 후 폐지 가격으로 고전들이 팔리는 시기가 위화의 추억으로 대비되고 있다.


문혁 이후 굶주렸던 사람처럼 책과 정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것과 유사한 풍경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책 뿐 아니라 이택후 같은 사상가의 강연에 팝 콘서트처럼 사람이 몰리던 시기였다. 새롭게 재개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한밤중에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던 화장실 비상구 전등 아래서 밤새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80년대 해적판으로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판매량을 이제 다시는 못 따라갈 것이다.


읽을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요즘은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나 한 것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기에 책 한 권의 가격은 요즘 아이패드보다 비쌌다.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권 가격이 하급관원 한달 봉급 정도였다. 게다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다섯 수레" 정도는 읽어줘야! 라고 했을 때 "다섯 수레"는 제법 많은 어감이다. 그러나 장자 시기 죽간으로 된 책 다섯 수레를 텍스트로 변환하면 몇 킬로바이트도 되지 않는 양일 거다. 선장본 종이책으로 다섯 수레 실어도 몇백 메가 될까?(12권짜리[구판 기준] 한어대사전이 텍스트 파일로 62메가 밖에 안 된다. 첫 알바비로 30만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 한어대사전은, 석사기간 내내 유용하게 썼지만, 이사할 때마다 골치거리로 전락하여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정보를 취하는 방식도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굳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더라도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이미 트위터화되어 있다. 계속 새로운 정보들이 보충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받아들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보다는 매일 끊임없이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맨날 고만고만한 뉴스들 속에서 살만 디룩디룩 찌는 거다. 읽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근육훈련도 다시 해야겠다. 이런 점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도입부는 훌륭하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저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읽고 쓰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트위터, 페이스북에 많은 글을 쓰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거기서 유포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시간 날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보다가 눈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이 숲속에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사실은 뭔가 더 재미난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이뤄지지 않는 기대 때문에..) 집에 돌아올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대출된 책이 내 순번까지 오기를 기다리며, 주문해 뒀다가 며칠만에 받아든 책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을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당일배송되어 목차만 훓어보고 책장에 뒹구는 책들, 테블릿 속에 가득 저장해 놓은 책들에는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저걸 언제 다 보나 하는 한숨이 뒤섞여 있다. 책장에 뒹굴던 위화의 책을 잠깐 펼쳤다가 오랫만에 읽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블로그에 쓰기의 즐거움도 다시?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9. 6. 12. 03:32

이 릴레이는 시작할 때부터 "아~ 재미난 놀이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관심있게 지켜봤지만, 점점 참여인원이 기하급수적을 늘어나면서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아마도 수형도의 꼭대기, 이 릴레이의 모든 자식들의 아버지이신 Inuit님이 최종적으로 가계도를 가지치기하듯 그려, 각각의 [대답]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릴레이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혹시라도 저에게까지 바톤이 전해진다면 그건 띠용님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역쉬 시나리오대로 띠용님이 저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에 없는 게 누구에게 바톤을 넘길 것인가 입니다. 릴레이를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제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변방이라서.. 쉽지 않군요.

 

일단 릴레이 방식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1. 독서란 [수집]이다.

독서는 수집이다. 독서는 세상 모든 것을 수집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전체를 통으로 수집할 수도 있고, 작은 파편만을 모을 수도 있다. 수집으로서의 독서는 예쁘게 포장된 상품보다는 혹시 지나쳐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 이미 잊혀져 버렸을 지도 모르는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가끔 쓰레기 더미나 중고시장의 어느 구석에서 헐값에 모셔올 수도 있는데, 이럴 땐 땅을 파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했을 때처럼 기쁨을 가져준다. 세상의 모든 책이 모여진 도서관은 없는 법. 수집하다 보면 자신만의 목록이 만들어진다.


  • 중독에 주의할 것! 골동품 수집가처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용하지 않을 그릇들을 진열해 놓기만 할 수도 있다.
  •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책이 필요없게 된다. 검 없이도 검술을 펼칠 수 있는 고수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읽어야 할 텍스트로 수집될 것이다. (결론은 굳이 책을 읽을 필욘 없다! .. 응?!)


2. 앞선 릴레이 주자

Inuit님 - 독서란 [자가교육] 이다.
buckshot님 - 독서는 [월아] 이다.
고무풍선기린님 - 독서란 [소통] 이다.
mahabanya님 - 독서란 [변화] 다.
어찌할가님 - 독서란 [습관] 이다.
김젼님 - 독서란 심심풀이 [호두] 다.
엘군님 - 독서란 [삶의 기반] 이다.
님 - 독서란 [지식] 이다.
okgosu님 - 독서란 [지식섭식] 이다.
bkzzang님 - 독서란 [Shift + 1] 이다.
리예님 - 독서란 [끝이 없]다.
띠용님 - 독서란 [더하기]이다.


3. 릴레이 다음주자

우선, 기발한 상상력의 주인공이신 착한영에게 바톤을 넘깁니다. (해 주실 거죠? *^^*)

 

아직 잘 모르지만(관블 등록 하루만에!) 왠지 재미난 대답을 들려주실 것 같은 지윤에게도 부탁드려 봅니다. 말 걸기의 한 방식으로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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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9. 3. 22. 19:16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원래 청출어람(청어람)이라는 고사성어를 비튼 말이다.

夫靑生於藍, 絳生於蒨, 雖踰本色, 不能復化.(《문심조룡》, <通變>)

푸른 색은 쪽풀(藍草)에서 나왔고, 붉은 색은 꼭두서니(茜草)에서 나왔다. 비록 그 색깔이 원재료의 빛깔을 뛰어넘는 것이 사실이나, 다시 다른 것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이 구절은 <문심조룡>이라는 중국 위진시기의 문학비평서에서 나온 말이다.

쪽풀로 염색을 하면 풀색깔보다 훨씬 푸른 색의 천이 만들어진다.(쪽풀 염색하는 과정 보기... 물론 요즘같은 화학염료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이 "청출어람"이라는 고사성어는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를 가리키는 좋은 말로 사용되어 왔다. 하나를 가르쳤는데 열을 아는 그런 제자겠다.
그런데 이렇게 염색된 푸른색은 다시 다른 색깔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즉 이 훌륭한 제자는 단지 제자에 그칠 뿐 훌륭한 스승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유협이 사용한 원래 맥락은 아마 요즘 나오는 삐까번쩍한 베스트셀러에만 빠지지 말고 고전으로 돌아가 본질적인 읽기를 하라고 독려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염색하는 것보다 염색된 천으로 다양한 옷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고 그게 더 좋다, 잘 배워서 다른 데 써먹는 게 뭐가 나쁘냐는 식으로 이 비유를 비틀지 않기를 바란다. ^^)


물론 나는 유협처럼 고전을 더 강조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가 제기한 어떤 입장은 곱씹을 만하다.
자신의 행위가 소비만을 지향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생산이 가능한 재료를 만들어낼 것인가의 태도 말이다. 나는 소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산을 도와준다고 항변하면 할말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이다. "나"는 소비만 할 것인가? 내가 도움받은 재료들을 이용해 혹시 뭔가를 만든다면, 내가 만든 그 물건이 누군가에게 다른 재료로 사용되어 또다른 물건을 만들어낼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이 질문을 던져왔고, 잊을 만하면 다시 생각이 나곤 한다. 학생이라는 현실적 조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변명한다).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블로그가 되었던 인쇄매체이든 다른 무엇이든,
행위 자체로는 하나의 생산이다.
그러나 같은 블로그가 아니고 같은 글이 아니다.
자신이 받은 느낌과 정보를 발산하고 소비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받아들인 느낌과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사유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글도 있다.
이런 글은 원저자의 글에 대한 하나의 주석이나 해석에 머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원저자에게 새로운 재료가 되기도 한다.

"소비되기 좋은 소비재"와 "소비재의 생산에 좋은 것"이라는 구분에서 사진기의 '장치'적 특성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가(물론 사진이 한낱 소비재이거나 사진기가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며 뒷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잊고 있던 문구를 떠올려본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되는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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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9. 3. 21. 06:12
   춘분 지나 내린 눈

예로부터 춘분 지나 눈 내리는 일 드물거늘
불 금하는 한식 맞기도 전에 추위 더한다네.
매화 속여 꽃피우니 향기 돌아오라 시샘하는 듯,
버들에 붙어 벌써부터 어지러이 버들개지 날리우듯.
하늘의 절기 뒤틀려 꽤나 늦어졌음을 이미 알았으니
사람의 일 또한 그에 따라 어지러지겠구나.
어찌하면 꽃을 재촉하는 비로 변하여
사이좋게 봄님과 함께 활짝 피어나게 할꼬.


<春分後雪>, 權擊

雪入春分自古稀   禁煙時節助寒威
설입춘분자고희   금연시절조한위

欺梅似妬香魂返   着柳先成亂絮飛
기매사투향혼반   착류선성난서비

已覺天時差較晩   從敎人事轉相違
이각천시차교만   종교인사전상위

何當變作催花雨   好與東君共發揮
하당변작최화우   호여동군공발휘




가끔 드나드는 게시판에서 이 시를 보다. "매화 속여 꽃피우니 향기 돌아오라 시샘하는 듯, 버들에 붙어 벌써부터 어지러이 버들개지 날리우듯."(欺梅似妬香魂返 / 着柳先成亂絮飛)라는 구절에 꽂히다.

절기로는 춘분과 한식(청명) 사이이다. 춘분에 더 가까운 시기로 보인다.

매화는 이미 졌고, 수양버들에 버들개지는 아직 날리지 않을 무렵이다.
그러고보니 딱 지금 쯤이겠다.(찾아보니 3월 20일, 즉 어제가 춘분이었다.)

눈이 이리저리 휘날리다가,

매화가지에 붙으니 꽃은 다시 폈으되 향기는 나지 않고
버들가지에 붙었다가 아직 피지도 않은 버들개지처럼 어지러이 흩날린다.
봄을 예감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려 겨울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을
매화와 버들을 빌어 눈에 보이듯 잘 묘사한 듯하다.
눈꽃이 매화가지에 붙어 향기를 탐내고, 버들가지에 붙어 버들개지처럼 하얗게 날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


사진출처: http://blog.jnilbo.com/blog.php?Blog=sajin21&query=post&menu=216
흩날리는 진짜 버들개지는 아래 사진과 같다.
이게 날아다니면 아래 같이 된다. 亂絮飛!
아~~! 시의 정취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으나, 현실이 그렇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시는 독음을 잘못 적은 부분이 있어 표시해 둔다.
한시는 잘 모르지만 아래 번역문을 기준으로 내 마음대로 바꿔서 풀어봤다.
꼼꼼하게 번역하려면 사전 뒤지고 문장구조 분석하고 해야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진 없겠다.
한시의 문법구조 그대로 한글로 살릴 수도 없고, 어차피 내 기분 따라 하는 거니까~~

아래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 원문과 번역이다.
번역문은 역자의 것이겠지만, 한글 독음은 인터넷에 올린 사람의 실수가 아닌가 싶다.

=================================================

<춘분 뒤에 내린 눈 春分後雪>

 권 격 (權擊)

 

눈 속에 춘분 맞는 일 옛부터 드문데
불 안 때는 한식 무렵 추위를 돕는구나.
질투하듯 매화 속여 향기로운 혼 돌아오고
벼들에 붙어 먼저 꽃으로 피니 어지러운 솜털 날린다.
천시가 비교적 늦어진 걸 깨달았으니
인사 더욱 어긋나리라는 것 이어서 알겠다.
어찌 하면 꽃을 재촉하는 비로 바꾸어
동군과 잘 해서 함께 피어나게 할꼬.

 

雪入春分自古稀   禁煙時節助寒威
설입춘분자고희   금연시절조한위

欺梅似妬香魂返   着柳先成亂絮飛
기매사투향혼반   착류선성난서비

已覺天時差較晩   從敎人事轉相違
이각천시차만   종교인사전상위

何當變作催花雨   好與東君共發揮
변작최화우   호여동군공발휘

- <삼라만상을 열치다>, 김풍기 글, 푸르메, 55~56쪽 중에서.

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8. 11. 20. 22:31


레비 스트로스가 이달 28일에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한다.(관련소식: 한겨레 보러가기)
로쟈님의 서재에서 소식을 접한 김에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정리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즉, 중국에서는 이들 사상가들, 혹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얼마나, 어떤 게 번역되었을까?
(서점을 훓어보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이런 건 대충이라도 정리를 해 둬야지 마음만 먹었다가 계속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보일때마다 조금씩 해 두도록 하겠다..)

인구가 많다는 건 이 경우에 상당한 장점이 된다. 역자도 많을 뿐 아니라 그걸 사볼 독자도 많다.
아무리 안 팔릴 분야의 책이라고 해도 '기본으로' 나가는 양이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륙만이 아니라 홍콩과 대만까지 포함시킨다면 웬만한 책들은 다 번역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주로 홍콩과 대만에서 주요 서적들이 먼저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륙에서는 그대로 찍어내던가, "참고"해서 새로 출간하곤 한다.)  물론 관심사와 유행이 한국과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는 전부 다 번역된 사상가의 책이 중국에서는 아예 번역되지 않았거나 막 번역되기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 분야의 기본이 되는 서적들은 대부분 번역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플라톤 전집, 베버 전집 등등..

번역의 질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곤란하겠다. 맑스 자본론 같이 20세기 초에 번역이 시작된 데다 오랫동안 정권의 지지를 받는 책이야 당연히 우리나라의 번역보다 훨씬 좋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영어에서 옮긴 글은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중국도 석박사과정을 동원시켜 총서를 찍어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주 난잡한 수준인 번역도 적지 않다. 또 학술번역만을 전문으로 하는 역자가 많지는 않다. 즉 워낙 수가 많아 각자 한두 권씩만 번역해도 되는 셈인데, 수고야 적게 덜겠지만 그만큼 전문화된 역자는 적을 수밖에 없겠다. 예전에는 있었다. 문학 전문번역가 푸레이(傅雷), 미학 전문번역가 주광첸(朱光潛)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일부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 번역가가 있을 수도 있으나 내가 관심있게 보고 있는 쪽으로는 거의 찾지 못했다.

레비스트로스의 번역은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훨씬 좋은 편이다. 간간히 한두권이 번역되어 나오다가 2006년 인민대학출판사에서 1권 <구조인류학>을 시작으로 문집으로 정리되고 있다. 서점에서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의 중국어 번역본을 본 기억이 어렴풋하나 인터넷으로 검색되지는 않는다.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그새 절판되었을 수도 있겠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사진) : 출처(한겨레신문)



아래는 <레비스트로스 문집>으로 인민대학출판사에서 출간된 선집이다.


1. 구조인류학(1-2) : 1권은 1989년 文化艺术出版社 초판. 2권은 1999년 上海译文出版社 초판
   
结构人类学(1-2)——列维-斯特劳斯文集1

2. 야생의 사고 : 초판연도(1987년. 商务印书馆). .
  
野性的思维列维-斯特劳斯文集2


3. 신화학1: 날 것과 익힌 것
  
神话学:生食和熟食

4. 신화학2: 꿀에서 재까지
   
神话学:从蜂蜜到烟灰










12. 보다 듣다 읽다 : 초판연도(2003년 三联书店).
   
看·听·读——列维-斯特劳斯文集12



14. Totemism;     图腾制度——世纪人文系列丛书 (2005) : 초판연도(2003?)

15. <슬픈열대>는 <우울한 열대>(2005년, 삼련서점/초판은 2000년)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
바이두에서 "레비스트로스 100세"라는 제목이 검색되어 훓어보니,,
http://www.thebeijingnews.com/culture/spzk/2008/08-02/037@103634.htm

민간고사를 연구하는 "바이"(白)라는 아가씨가 레비스트로스에게 자기 연구주제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100살 먹은 할배가 손수 답장을 보내줬다는 이야기이다.(8월2일자 신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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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narog
獨立閱讀/閱, 읽기 2007. 12. 16. 01:48

<색, 계> : 소설에서 영화까지


이구범(레오 어우판 리)
<書城> 2007년 12월호

(< 상하이 모던>의 저자 리어우판이 쓴 <색,계>에 관한 글이다. 그는 장아이링의 소설에 대해서도, 리안의 영화에 대해서도, 그 옛날 상하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주 정교한 글은 아니지만 소설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이니 조금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 어렵고, 이해가 안 되니 번역하기도 쉽지 않다. 글에서 소설의 인용문이 나올 때마다 번역을 멈추게 된다..)

1.

리 안이 장아이링의 소설 <색, 계>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며 상연되기 전부터 떠들썩했다. 나는 운좋게 먼저 볼 기회가 있어 홍콩에서 시사회를 할 때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원래 몇 번이나 읽어본 소설이기도 해서 그보다 더 놀라운 영화를 찍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리안은 확실히 대단한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앞선 걸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경지를 또 한 단계 넘어서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 아이링의 <색, 계>는 결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으며, 다시 읽을 �도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세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 소설은 고의로 감추는 서사기교를 사용하여 너무 빙빙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 온갖 사소한 세부를 이야기의 전면에 배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인 왕자즈가 등장할 때도 그녀의 용모나 옷에 대해서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그런 다음 마작판에서 다른 세 명의 마나님이 하는 대화를 장장 세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어, 오히려 이(易) 부인이 중심인물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장아이링은 이처럼 간접적인 "눈속임법"으로 섹스와 스파이가 뒤섞인 이야기를 그냥 봐서는 색정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스릴도 없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반도 읽기 전에 참을 수가 없어, 장아이링 소설을 읽을 때 피해야 할 금기인 대충 이야기만 �어보는 방식으로 읽어 버렸다.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일반독자들은 더욱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장아이링은 대단히 고심하여 장면장면 서사기교에 경심(control)을 더하여 아주 생동적이어야 할 곳마저 다채로운() 묘사를 아꼈다. 등장인물의 개성은 가벼운 필치로 처리되었고 줄거리마저 잘 드러나지 않아, 거의 묘사와 논리가 뒤섞인 전지적 서사언어로 대체되어 버린 것만 같다.

"이거 너무 위험한데. 오늘도 성공하지 못해서 계속 끌고 가다가는 이 부인이 알아차릴 거야."
왕 자즈가 이렇게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속으로 뱉을 때도, 처음 읽을 때는 여전히 도통 무슨 소리인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지? 왕자즈가 뭘 하려는 건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는 그녀가 원래 국민당의 여자 스파이이며, 왕징웨이 정부의 통제하에 있던 상하이에서 왕징웨이의 특무 대장인 이(易) 선생을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왕자즈가 이미 이 선생의 정부였던 것도 말이다. 이들의 관계를 장아이링은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신한다.
"지난 두 번은 아파트에서 만났다."
왕자즈가 처음으로 이 선생을 유혹하는 장면도 이렇게 한두 마디로 끝난다.
"그는 확실이 유혹이 너무 많아 그녀만을 바라보게 하려면 그야말로 젖가슴을 받쳐들고 그의 눈앞에다 흔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예전에 장아이링 마니아인 남자 친구에게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 내용은 사실 "계색(戒色)"이야.

이 는 물론 이 "문자 수수께끼"의 절반만 보아낸 것이다. <색,계>라는 제목 자체도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원래 장아이링은 왜 색과 계 사이에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썼을까? 그리고 영화에서 리안은 의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중국어 제목을 쓰고, 중간에는 모점(、병렬)도 아니고 쉼표도 아닌 줄(|)로 구분했다. 내 생각에 리안의 해석이 아주 그럴 듯한 것 같다. 이 둘은 사실 변증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상호간의 강렬한 대립이 있지만, 서로 표리 관계에 있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다이아몬드 반지(戒; 반지의 중국어가 戒指이다) 에서 이 둘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처럼 중요한 대목에서 이 선생은 스탠드 불빛 아래로 왕자즈의 손에 끼워진 6캐럿 반지를 바라본다. ― 그가 자기 마누라에게는 쓰고싶지 않으면서 왕자즈에게 준 값진 선물―그는 "눈빛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데, 속눈썹이 쌀색깔의 거위날개마냥 여윈 뺨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따스하게 자기를 아끼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쿵하며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너무 늦었다."

이 부분은 이야기 전체의 구성과 두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다. 그의 경계심이 처음으로 허물어졌다. 또한 그 때문에 금기(계)를 깨고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색마의 심정에서 사랑으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더욱이 색에서 정이 생겨난 셈이다. 의도적으로 그를 유혹하려던 계획에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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