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獨立閱讀/閱, 읽기 2012. 11. 11. 05:30

새로운 애플 제품이 발표되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30년이 지나면 어떤 느낌으로 이런 풍경을 기억할까?

아래는 문혁 이후 해금된 책에 대한 위화의 추억이다.

발자크가 거의 "아이패드"와 동급이다.



독서에 관한 네번째 이야기는 1977년에 시작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독초로 간주되던 금서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톨스토이와 발자크, 디킨스 등의 문학작품이 처음으로 우리 작은 마을의 서점에 도착했다. 그때의 뜨거웠던 반응은 오늘날 연예계 스타들이 가난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것과 맞먹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전했고, 목을 빼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우리 마을에 도착하는 책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서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줄을 서서 서표를 받아가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내다붙였다. 서표는 한 사람에게 한 장씩만 배분되었다. 서표 한 장으로 책 두권을 살 수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책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던 장관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날이 밝기 전에 서점 문밖에는 이미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서표를 받기 위해 전날 밤에 서점 앞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밤새 앉아서 기다리기도 했다. (...) 새벽에 서점 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금새 자신들이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래 줄 맨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서점 앞에 도착해 보니 거의 3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서표는 50장밖에 없습니다. 50번째 뒤에 서 계신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주세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
위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9-0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하다!소설가 위화가 그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모택동선집 4권을 제외하면 읽을 책이 없던 시기, 문혁 이후 해금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을 기다리던 시기, 30년이 지난 후 폐지 가격으로 고전들이 팔리는 시기가 위화의 추억으로 대비되고 있다.


문혁 이후 굶주렸던 사람처럼 책과 정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것과 유사한 풍경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책 뿐 아니라 이택후 같은 사상가의 강연에 팝 콘서트처럼 사람이 몰리던 시기였다. 새롭게 재개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한밤중에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던 화장실 비상구 전등 아래서 밤새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규모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80년대 해적판으로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의 판매량을 이제 다시는 못 따라갈 것이다.


읽을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요즘은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나 한 것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기에 책 한 권의 가격은 요즘 아이패드보다 비쌌다.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권 가격이 하급관원 한달 봉급 정도였다. 게다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다섯 수레" 정도는 읽어줘야! 라고 했을 때 "다섯 수레"는 제법 많은 어감이다. 그러나 장자 시기 죽간으로 된 책 다섯 수레를 텍스트로 변환하면 몇 킬로바이트도 되지 않는 양일 거다. 선장본 종이책으로 다섯 수레 실어도 몇백 메가 될까?(12권짜리[구판 기준] 한어대사전이 텍스트 파일로 62메가 밖에 안 된다. 첫 알바비로 30만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내 한어대사전은, 석사기간 내내 유용하게 썼지만, 이사할 때마다 골치거리로 전락하여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졌다.)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정보를 취하는 방식도 상당히 달라진 듯하다. 굳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더라도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 이미 트위터화되어 있다. 계속 새로운 정보들이 보충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받아들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보다는 매일 끊임없이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맨날 고만고만한 뉴스들 속에서 살만 디룩디룩 찌는 거다. 읽기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근육훈련도 다시 해야겠다. 이런 점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도입부는 훌륭하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저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2-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읽고 쓰는 것이 바로 혁명이다!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트위터, 페이스북에 많은 글을 쓰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거기서 유포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시간 날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보다가 눈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이 숲속에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아(사실은 뭔가 더 재미난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이뤄지지 않는 기대 때문에..) 집에 돌아올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대출된 책이 내 순번까지 오기를 기다리며, 주문해 뒀다가 며칠만에 받아든 책을 펼칠 때의 두근거림을 억지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겠다. 당일배송되어 목차만 훓어보고 책장에 뒹구는 책들, 테블릿 속에 가득 저장해 놓은 책들에는 읽어야겠다는 의무감과 저걸 언제 다 보나 하는 한숨이 뒤섞여 있다. 책장에 뒹굴던 위화의 책을 잠깐 펼쳤다가 오랫만에 읽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블로그에 쓰기의 즐거움도 다시?

Posted by luna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