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 소설에서 영화까지
이구범(레오 어우판 리)
<書城> 2007년 12월호
(<
상하이 모던>의 저자 리어우판이 쓴 <색,계>에 관한 글이다. 그는 장아이링의 소설에 대해서도, 리안의 영화에
대해서도, 그 옛날 상하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주 정교한 글은 아니지만 소설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이니
조금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너무 어렵고, 이해가 안 되니 번역하기도 쉽지
않다. 글에서 소설의 인용문이 나올 때마다 번역을 멈추게 된다..)
1.
리
안이 장아이링의 소설 <색, 계>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며 상연되기 전부터 떠들썩했다. 나는 운좋게 먼저 볼 기회가 있어
홍콩에서 시사회를 할 때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의 떨림을 잊을 수가 없다. 원래 몇 번이나 읽어본 소설이기도 해서 그보다 더
놀라운 영화를 찍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리안은 확실히 대단한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앞선 걸작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경지를 또 한 단계 넘어서는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
아이링의 <색, 계>는 결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으며,
다시 읽을 �도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세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이 소설은
고의로 감추는 서사기교를 사용하여 너무 빙빙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 온갖 사소한 세부를 이야기의 전면에 배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인 왕자즈가 등장할 때도 그녀의 용모나 옷에 대해서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그런 다음 마작판에서 다른 세 명의
마나님이 하는 대화를 장장 세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어, 오히려 이(易) 부인이 중심인물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장아이링은
이처럼 간접적인 "눈속임법"으로 섹스와 스파이가 뒤섞인 이야기를 그냥 봐서는 색정적이지도 않고 아무런 스릴도 없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반도 읽기 전에 참을 수가 없어, 장아이링 소설을 읽을 때 피해야 할 금기인
대충 이야기만 �어보는 방식으로 읽어 버렸다.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일반독자들은 더욱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장아이링은 대단히 고심하여 장면장면 서사기교에 경계심(control)을 더하여 아주 생동적이어야 할 곳마저 다채로운(색) 묘사를 아꼈다. 등장인물의 개성은 가벼운 필치로 처리되었고 줄거리마저 잘 드러나지 않아, 거의 묘사와 논리가 뒤섞인 전지적 서사언어로 대체되어 버린 것만 같다.
"이거 너무 위험한데. 오늘도 성공하지 못해서 계속 끌고 가다가는 이 부인이 알아차릴 거야."
왕
자즈가 이렇게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속으로 뱉을 때도, 처음 읽을 때는 여전히 도통 무슨 소리인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지? 왕자즈가 뭘 하려는 건데?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는 그녀가 원래 국민당의 여자 스파이이며, 왕징웨이
정부의 통제하에 있던 상하이에서 왕징웨이의 특무 대장인 이(易) 선생을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왕자즈가 이미 이 선생의 정부였던 것도 말이다. 이들의 관계를 장아이링은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신한다.
"지난 두 번은 아파트에서 만났다."
왕자즈가 처음으로 이 선생을 유혹하는 장면도 이렇게 한두 마디로 끝난다.
"그는 확실이 유혹이 너무 많아 그녀만을 바라보게 하려면 그야말로 젖가슴을 받쳐들고 그의 눈앞에다 흔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예전에 장아이링 마니아인 남자 친구에게 이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 내용은 사실 "계색(戒色)"이야.
이
는 물론 이 "문자 수수께끼"의 절반만 보아낸 것이다. <색,계>라는 제목 자체도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원래
장아이링은 왜 색과 계 사이에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썼을까? 그리고 영화에서 리안은 의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중국어 제목을 쓰고, 중간에는 모점(、병렬)도 아니고 쉼표도 아닌 줄(|)로 구분했다. 내 생각에 리안의 해석이 아주 그럴 듯한
것 같다. 이 둘은 사실 변증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상호간의 강렬한 대립이 있지만, 서로 표리 관계에 있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다이아몬드 반지(戒; 반지의 중국어가 戒指이다)
에서 이 둘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처럼 중요한 대목에서 이 선생은 스탠드 불빛 아래로 왕자즈의 손에 끼워진 6캐럿 반지를
바라본다. ― 그가 자기 마누라에게는 쓰고싶지 않으면서 왕자즈에게 준 값진 선물―그는 "눈빛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데, 속눈썹이
쌀색깔의 거위날개마냥 여윈 뺨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따스하게 자기를 아끼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쿵하며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너무 늦었다."
이
부분은 이야기 전체의 구성과 두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부분이다. 그의 경계심이 처음으로 허물어졌다. 또한 그
때문에 금기(계)를 깨고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색마의 심정에서 사랑으로 변화되었다. 그녀는 더욱이 색에서 정이 생겨난
셈이다. 의도적으로 그를 유혹하려던 계획에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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